1.1. 天主敎 文學(Catholic literature)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ꡔ現代 世界의 司牧 憲章ꡕ에서 文學과 藝術에 대하여 “문학과 예술은 인간 본연의 자질과,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완성시키는 데에 요구되는 인간의 課題와 체험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며, 역사와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발견하고, 인간의 불행과 기쁨, 필요와 능력을 밝혀 주며, 인간의 보다 나은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1)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大前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문학”이라는 명제를 접할 때 조금 저어하게 되는데 이는 천주교 문학을 곧잘 가톨릭의 敎義(Dogma)나 倫理를 문학의 형식을 빌어서 찬미 찬양하는 護敎文學과 혼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2) 이러한 오해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François Mauriac(1885-1970)3)은 “나는 소설가다. 가톨릭이다. 여기에 나의 싸움이 있다.”라고 솔직하게 피력하여 천주교 문학을 창작하는 어려움을 표현하였다.4) 실상 이러한 어려움은 소위 近代的 의미의 문학, 즉 휴머니즘의 문학이 꽃피게 됨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왜냐하면 중세까지의 가톨릭 문학가나 예술가들은 스스로가 세계관이나 인간관이나 윤리관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지어가면서 창작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하겠다. 즉 이미 신앙에 의해서 주어지고 질서지어진 것에 안주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즉 그들의 창작 정신에는 공동적 근거가 있었고, 오직 그 예술 表象만이 예술가와 예술의 문제였다. 그러나 예술적으로는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적 개성의식과 종교적으로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개인의식에 자극되어, 가톨릭 문학에 있어서도 비록 신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자기만의 美意識, 자기만의 倫理意識,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체험에 있어서도 개인의 실존적인 삶을 통한 證得에 나아가려고 하였고, 이러한 個人意識과 個性意識이 창작정신과 그 표상의 근거가 되었다.5)
그렇다면 어떤 것이 참다운 의미의 천주교 문학인가? 가톨릭 교회는 인간의 창작 능력과 그 감상의 자질을 하느님일 주신 자연적 능력 중의 하나로 보고,그 능력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물론 하느님을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는 것이 문학의 창작이 교리의 옹호나 전파의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6) 이러한 原則을 밑바탕에 깔고서 具常은 “한마디로 말하면 종교적 모럴과 문학적 모럴의 모순과 대립과 그 상충 속에서 탄생된 문학작품”7)이라 이야기 한다. 한편 정진홍은 ‘종교’와 ‘문학’은 두개의 다른 실재 개념임을 상정하면서 그 양자의 수렴 영역으로서의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고자 한다.8)
여기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이 나타나는데 아무리 심오한 인식의 표백도 그 작가의 내면적 苦鬪의 흔적과 성취가 엿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陷穽을 영국의 대시인 T.S.Eliot(1888-1965)는 “왜 종교시 거의가 별로 좋지 않은가? 그 원인은 그 작가가 주로 일종의 신심이 깊다고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不正直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도를 쓰는 이들은 언제나 자신이 느끼는 대로가 아니라 그렇게 느꼈으면 하는 것을 쓰고 있다”고 간파한다. 또한 종교문학이라면 그 내용 즉, 메세지가 거룩해야 하고 언어표상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 역시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나타난다.9)
이러한 나름대로의 천주교문학의 개념접근들과 나타날 수 있는 위험 내지 함정을 살펴보면서 천주교 문학가로 시선을 돌릴 필요를 느낀다. 종교를 가진 문학가일수록 내면적 자기 正直과 誠實性과 追求力 없이는 실제 참다운 문학이 성립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상 참된 신앙도 그는 지닐 수 없다 하겠다. 그리고 창작의 실제에서 연유하는 바로는 문학가들이 살아있는 인간을 그려내야 하고 따라서 그들은 어떤 한 인간, 또는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때 그 無限量한 자기 모순과 분열과 대립을 통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 속에 不可思議하게 도사리고 있는 죄악의 뭉치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고, 한편 신비하게 깃들어 있는 신의 손길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인간의 죄악과 그 고통을 파고들면 들수록 가엾은 생각, 즉 연민을 느끼고 공감마저 일으키지 않고선 그 세계를 描破할 수가 없다고 하겠다. 이러한 천주교 문학가들의 문제의식과 고뇌는 필경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고뇌와 고통을 따르는 것이라 하겠다. 실상 우리는 내면적 상충과 갈등, 고난과 고통없이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10)
지금까지 천주교 문학의 일반론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본고에서 다루려 하는 박해시대의 천주교 문학은 위의 일반론에 있어서는 호교문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참된 문학이라 할 수 없어진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문학을 이야기할 때 문자로 기록된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음을 감안하여 본고에서는 그보다는 좁은 의미로 하되, 좀더 확대 해석하여 작자의 개인적인 독창성이 인정되는 호교문학까지를 포함하려 한다.11) 이는 박해라는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서 적어도 그 당시에 근대 문학론이 유입되지 않았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근대 이후에 생긴 문학론을 끌어들여 조선 후기 문학에 적용하려 하는 것은 矛盾된 논리적용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본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박해시대의 천주교 문학을 위하여 天主歌辭, 時調, 漢詩類, 傳記類(日記類), 自責類(懺悔錄類), 그리고 書簡類(護敎論 포함)의 範疇안에서 고찰하면 특히 천주가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