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天主歌辭에서 現代 天主敎 文學으로의 移讓 科程
천주가사는 대략 1930년대를 전후하여 소멸된다. 하지만 이것이 천주가사 자체가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는 앞서 가사의 시대구분에서 살펴보았듯이 가사라는 문학 형식 자체가 쇠퇴기에 접어 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학적 시대사조 속에서 천주가사도 1920년 이후는 신문학의 대두로 말미암아 문학의 권외로 밀려나고 빛을 잃어가며 형식상 껍질을 벗으려는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그러한 천주가사의 새로운 ‘詩形찾기’의 작업은 두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첫째는 천주가사 중 몇몇 작품이 拔萃·作曲되어 聖歌1)로 불리운 것인데 1932년의 再版 과정을 거치면서 1940년대에를 고비로 소멸되었다. 둘째는 현대시로의 移讓作業이라 할 수 있는데 4·4조, 4음보격 연속체의 전통적 가사의 율조가 파괴되면서 6·4조(3·3·4조), 6·5조, 7·5조 등의 율조가 나타나고 형식에 있어서도 창가 형식을 거쳐 시조 및 자유시로 변천되었다.2)
이러한 자유시로의 변천 속에서 신문·잡지의 역할은 의외로 미비하였다. 1911년 창간된 <경향잡지>는 韓國雜誌史上 가장 精髓의 잡지였으나 문인들의 발표지 구실은 못하고 교리 해설에 치중하였고, <가톨릭 청년>3), <창조>, <별>4), <가톨릭 硏究>5) 등이 창간되어 잠시 발표지 구실을 일부 하였으나 별로 수확은 없었다. 1930년대 성바오로 수도회와 분도 수도회의 진출로 본격적인 출판문화가 시작되었으나 종교 교양도서 부분의 토착화를 위해 작가를 발굴, 육성하는 데에는 소극적인 실정이었다. 1980년대 이후 평신도가 운영하는 출판사들은 창작 부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순교자의 생애집, 묵상집, 희곡 등 다양한 창작 간행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창작 시도에서 영성적으로 다듬어진 작가군이 얇은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세례를 받은 작가는 많은데 세례를 받을 만한 작품은 매우 적은 실정이다. 그런 속에서 순수 천주교 문예지인 <천주교 문학>이 1992년 창간된 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다.6)
여러가지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천주교 문학은 천주가사에서부터 昨今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의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며 빛깔을 확실히 하는데 열의를 다해왔다. 그러나 “종교적 모럴과 문학적 모럴의 모순과 대립과 그 상충 속에서 탄생된 문학작품”(具常)으로서의 천주교 문학은 당분간 요원해 보인다. 이는 우선 ‘종교적 모럴’이란 것이 가톨릭시즘이 사회 전반에 토착화되어야 가능한 것이라는 이유이고, 둘째로 우리의 종교문학에 대한 이해가 호교문학7)적이거나 지나치리 만치 거룩하고 아름다운 시어 내지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8) 이와 연관하여 신앙과 문학의 괴리감을 느끼는 세례받은 문인들이 천주교 문학을 창작하기를 꺼려한다는 것 역시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9) 셋째로 교회의 지원 부족이다. 위의 여러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창작된 작품들과 서구의 번역 작품과의 시장 경쟁은 열악하기 그지없고, 많은 시간과 투자를 해야할 실정에서 자연히 의욕적인 노력은 후퇴, 현실 시장 논리로 퇴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2000년대를 미래의 민족복음화는 필연적이고 이러한 한에서 창작문화의 육성은 포기되어서는 않된다.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