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직자
4.1. 르네쌍스 교황들
르네쌍스 교황들은 니콜라스 5세에서 시작하여 레오 10세에 이르는 10명의 교황들을 말한다. 이들의 시대적 사명은 교회의 개혁과 회교도들과의 투쟁을 위한 서구의 단합이었으나 실천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주로 르네쌍스 교황들의 두 가지 역사적 과오에 있다. 첫째는 족벌주의였다. 그들 중의 일부는 교회의 재산, 영토를 사유화하고 교회의 중요한 직책을 자기들의 가족에게 분배하는 가족정책을 하였다. 둘째는 배타적 자기중심주의였다. 이러한 사상으로 르네쌍스 교황들은, 비록 그들의 개인적 취미의 所産인 문화적 업적에 대한 호평을 받고 있지만, 당시에 그들의 본래의 종교적 사명인 교회개혁에 헌신하기를 소홀히 하였고 안일한, 더 나아가서는 비도적적 생활을 하였다. 아울러 몇몇 교황은 뇌물을 줌으로써 교황에 선출되기도 했다(Innocent 8세, Callistus 3세, Julius 2세). 이러한 성직매매의 행위는 일반적으로 묵인되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교황은 교회의 영신적 지도자이기보다는 세속적 군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4.2. 재속성직자
추기경, 대주교, 주교 등의 고위성직자들은 중세 말기에 세 가지 입장으로 처신하였다. 즉 봉건영주(특히 독일과 이태리 지역의 경우), 문인들과 학자의 후원자, 그리고 자신들의 교구를 보살피는 영신 지도자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교직이란 하나의 세속적 직업과 같은 평범한 인상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영신적 사명을 망각하고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많은 주교들은 신학이나 사제양성 및 교육에 관심이 없었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며 지냈다. 이런 생활을 하던 주교들은 한 교구의 정상적 收入으로는 부족하여 여러 성직록을 취득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任地住在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 이런 악폐들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주교직이란 거의 귀족의 독점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급성직자들인 신부들은 당시에 신학교가 설립되어 있지 않아서 소수를 제외하고서 대부분이 신학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단지 서품에 요구되었던 것은 기초적 교리지식과 독서능력이 전부였다. 그러나 라틴어를 읽어도 해석하지 못하는 신부들도 많았다고 한다. 또 성직자로서 비도적적 생활을 하거나 사목적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신부들이 목자로서의 직무를 성실히 실행하였다는 점도 고려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