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평신도의 신앙생활 , 교회 건축

 

평신도의 신앙생활




  이 시기에 특징으로는 무엇보다도 평신도들의 신앙생활이 활발해지고 풍부해졌음을 들 수 있다.  탁발수도회의 수도자들이 평신도의 새로운 종교적 요구에 생활과 모범으로 전지하게 응했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평범하고 대중적인 설교는 평신도들의 신앙심을 더없이 열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12세기에는 ‘성모 신심의 세기’로 불릴 만큼 ‘성모공경’이 성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안셀모, 베르나르도, 도미니꼬, 보나벤뚜라와 같은 성인들의 성모에 관한 설교와 저술에 힘입은 것이었다. 




  또한 성모축일이 많아지고 특히, ‘주의 기도’와 ‘사도시경’에 의어 ‘성모송’이 애송되면서 ‘묵주신공’이 시작되었다.  거듭된 십자군 원정으로 ‘구세주의 고난과 5상(五傷)에 대한 신심’, 그리고 ‘성지 순례’와 ‘유해 공경’이 성행했고, 그리고 ‘성지 순례’와 ‘유해 공경’이 성행했고  예수  고난에 대한 신심의 특별 형식으로는 ‘십자가의 길’이 행해지기 시작했다.




  13세기는 ‘성체 신심의 세기’로 불릴 정도로 이 신심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성체 신심을 앙양시키기 위한 조치로 미사 때 ‘거양  성체’가 도입되고, 성체를 성광(聖光)에 모셔 현시(顯示)하게 되고, 적어도 일 년에 한번 부활절에는 고해성사와 영성체할 것이 의무화 되었으며,  또 ‘성체축일’이 교회의 축일로 격상되었고 아울러 성체성사를 포함해 성서의 수가 비로소 7성사로 확정되었다. 




 


  2-14.  교회 건축 예술




  11세기초부터 ‘로마네스크’란 고유한 건축양식이 발전하여 서구에서 유행하였다.  클뤼니 수도회의 성당들이 이 양식으로 지었고 이어 시토 회원들이 그것을 크게 보급하였는데 라틴 십자형의 성당, 지하성당, 다양한 양식, 견고함 등을 그 특징으로 들 수 있다.




  12세기 초 북부프랑스에서 발생한 고딕은 포마네스크에서 우기적으로 성장핱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움이 있다.  생 드니 수도원 성당이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었고 점차 각 지방에 적응하면서 전 서구로 번졌다.




  순수 고딕시대의 걸작으로는 파리의 노트르담, 로마네스코와 비교할 때 전반적으로 도딕이 그 장식에 있어 더 우아하고 훨씬더 인간미가 있으며, 구조에 있어서 청순하고 웅대해졌다.  구체적으로는 높은 창, 호화스러운 스테인드 글라스, 많은 장미창, 성당 안팍의 다양하고 풍부한 조각 등이 그 주요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고딕은 모든 시대를 통해 최대의 예술적 창조의 하나인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가톨릭 정신을 완전히 구현한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2-15.   종교분열 전야의 교회




  14-15세기에 있어서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중앙집권 정치체게 또는 지방분권화의 정치적 상황으로 단일성을 상실하였다.  또한 교회는 일련의 대사건 즉 교황청의 아비뇽 환도와 서구의 대이교(大離敎)로 인한 교황권의 악화로, 공의회 우위 사상의 흐름 속에서 이단 운동이 발생하여 혼란 속에 빠졌다.




  프랑스인들이 교황으로 뽑히면서 그들이 프랑스의 아비뇽에 머무는 70여년 동안(1305-1377) 교회는 중심을 잃고 크게 흔들렀으며, 교회 개혁 또한 지지부진하개 되었다.  교황청이 로마로 다시 천도한 후에 교회는 세명의 교황이 선출됨으로써 서로가 자신을 정통 교황이라고 주장하게 되고 이로써 교회 전체가 분열된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1414년에 열린 콘스탄스공의회(1414-1417)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렸고 이후 분규는 끝났으나 그 후유증은 오래 남았으니 영성의 쇠퇴, 신학의 퇴보, 교회 쇄신 작업의 실패로 교회는 날로 흔들려 갔다.




  한편 이 시대 일반 대중의 신심생활을 매우 활발하였다.  수많은 성당이 건립되고 자선 활동과 신심서의 보급이 활발해지고, 모국어로 성가가 번역되었으며, 새로운 신심이 번창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심은 개인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현세적두려움을 피하고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치중하여 미신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교회 안에서는 비난과 함께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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