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 순교자 성(聖) 알렉시오 우세영(禹世英, 1845-1866)

 

성(聖) 알렉시오 우 세영(禹世英, 1845-1866)


  고집이 세다고 ‘세필’이라고도 불린 우 세영은 1845년에 황해도 서흥 지방의 유명한 양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아들이 총명하고 뛰어난 재질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고 교육에 힘써 1862년에 우 세영은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즈음에 그는 김 요한이라는 회장을 만나 천주교에 대한 얘기를 듣고 감화되어 입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안 식구의 감시에서 몰래 빠져 나와 어느 교우촌에서 교리를 배우고 1863년에 다른 예비자들과 함께 한양의 베르뇌 주교를 만나 세례를 간청하였다. 주교는 젊은이의 학식과 신앙심에 매혹되었으나 나이가 어리고 외교인 가정에서 신앙 보존이 어렵다고 보아 영세를 연기하고 그를 정 의배 회장에게 보내어 관찰하도록 지시하였다. 1주일 후에 정 회장은 우 세영이 꾸준히 신앙생활할 능력이 있음을 주교에게 보고하였다. 마침내 우 세영은 알렉시오라는 세례명으로 영세하였다. 후에 그는 주교에게 약속한 대로 그의 집안 식구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다. 그러나 그의 가정은 지방에서 널리 알려져 신앙생활하기도 어렵고 박해의 위험도 있어 평안도 논재 지방(지금의 평안남도 대동군 율리면 답현리)으로 이사하였다.


  1866년 박해가 일어나자 즉시 우 세영은 16명의 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지방 관장의 위협과 고문에 못 이겨 배교하고 석방되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뉘우치고 말 한 필을 준비하여 고문으로 상처난 몸을 이끌고 이웃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양으로 떠났다. 우 알렉시오는 정 의배 회장댁에 도착하여 그곳에 있던 포졸에게 자기도 천주교인이라고 자수하여 포도청에 압송되었다. 그는 재판관이 감언이설과 위협을 통해 배교를 강요하였으나 끝내 신앙을 지켰고 감옥에서 베르뇌 주교를 만나 고해성사를 보고 3월 11일에 정 회장과 함께 사형언도를 받고 새남터로 향하는 함거에 올랐다. 형장으로 가는 도중에 병졸들이 배교시키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지난번에 배교한 사실만으로도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제 나는 우리 베르뇌 주교님을 따라 죽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우 세영은 치명하기 바로 직전에 다시 한 번 배교의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하고 두 성직자와 정 회장 다음으로 마지막에 칼을 받아 2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그도 역시 1968년에 복자로 선언되었고 1984년에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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