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주문

 

토사주문


조선 정부가 신유박해(辛酉迫害)의 전말과 청(淸)나라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처형에 대한 해명을 적은 진정서. 1801년 10월 대제학 이만수(李晩秀)로 하여금 토사주문을 짓게 하고, 10월 27일 동지사(冬至使) 겸 진주사(陳奏使) 조윤대(趙允大)를 청나라에 파견, 토사주문과 황사영(黃嗣永)의 백서(帛書)를 고친 가백서(假帛書)를 인종(仁宗)에게 전달하였다. 내용은 조선은 개국 이래 중국에 충성을 다하고 유교를 받들었으나, 수십년 전부터 사학(邪學)이 퍼져 피해가 크므로 주동자를 처형하였는데, 주문모 신부를 조선인으로 알고 처형하였으나 뒤에 청국인으로 밝혀져 이를 보고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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