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신한 교우들이 옹기굽고 살던 교우촌
한티
1862년 당시 경상도 일원을 담당하던 다블뤼 안 주교는 「칠곡(漆谷) 깊고 험한 산골 신자촌에서 450여명에게 성사를 주었다」는 기록을 남겼으며 “- 지방은 매우 작고 매우 의심을 받는 지대로서 20-30명 밖에 집합할 수 없는 공소가 있다. 그러나 이 자방은 큰 읍내의 ‘작은핵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행한 곳이다” 라고 기록 하였는데 이는 한티를 말하며 큰읍은 대구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한티는 산세가 험해 박해를 피해온 교우들이 몰려 들면서 교우촌을 형성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옹기를 구웠으며 칡뿌리를 먹으며 연명하였다.
교우들이 살던 흔적은 아직도 옹기굴과 집터로 남아 있어 신앙의 요람지로 번성하였슴을 알려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