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2세 교황 Paschalis 2.

 181. 파스칼 2세 교황  Paschalis Ⅱ.  1099~1118

클뤼니 수도회의 수도승이자 동시에 추기경이었던 라이너(Rainer)는 1099년 8월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으로 선출된 그 다음날 성성식을 치렀다. 교황 파스칼 2세는 대립 교황과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자신의 첫 번째 과제로 파악하였다. 대립 교황 클레멘스 3세는 1100년 9월에 서거하였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로 테오도리크(Theoderich, 1100~1102년)와 알베르트(Albert, 1102년)가 선출되기도 하였다. 교황 파스칼 2세와 그의 지지자들은 테오도리크와 알베르트를 수도원으로 추방하였다. 아울러 대립 교황으로선출되었던 실베스테르 4세(1105년) 역시 교황 선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황직으로부터 퇴위해야만 하였다. 대립 교황 실베스테르 4세는 로마를 탈출하였으나 1111년에 이르러 최종적으로 자신의 교황직을 포기하였다.


  교황 파스칼 2세가 자신이 해결해야 할 두 번째 과제로 생각하였던 것은 평신도 성직 임명을 둘러싼 문제였다. 독일의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성직 밍명권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시종일관 주장하였다. 이로써 성직 임명권을 둘러싼 갈등은 그 절정에 도달하였다. 교황 파스칼 2세는 1102년에 개최되었던 시노드를 통해 평신도 성직 임명권 행사의 금지를 재확인하였고 하인리히 4세에게 파문의 처벌을 내렸다. 이에 대해 황제 하인리히 4세는 마인츠에서 개최되었던 제국 의회를 통해 교황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교황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면 예루살렘 원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1105년에 상황의 변화가 일어났다. 하인리히 4세의 아들, 하인리히 5세가 부황(父皇 )을 거슬러 봉기를 일으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하인리히 4세와 하인리히 5세는 교황에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재에 나설 것을 요청하였다. 교황 파스칼 2세는 하인리히 5세의 편을 들면서 정의롭게 통치할 것과 교회와의 관계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하인리히 5세 역시 성직 임명권과 관련해서는 부황의 노선을 확고하게 견지하였다. 하인리히 5세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독일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교황 파스칼 2세는 자신의 계획을 취소하였다. 독일 여행 대신 프랑스를 방문하였고, 거기서 프랑스의 국왕 필립 1세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교황 파스칼은 독일의 국왕이 성직 임명권을 고수하고 있다는 이유로 독일과의 어떠한 협상도 거부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협상이 부단하게 모색되었고, 그 결과 상당한 의견 접근에 도달하기도 하였다. 하인리히 5세는 황제로 대관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1111년 2월에 비밀 조약을 체결하였고, 이 조약의 내용은 황제 대관 전에 발표되어야 했다.


  1111년 2월에 있었던 황제 대관 예식 도중에 교황 파스칼 2세는 비밀 조약의 내용을 낭독하였다. 즉시 독일의 주교들이 항의를 제기하였다. 왜냐하면 이 비밀 조약에 의하면 독일의 주교들은 제국의 제후의 자리를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교황 파스칼 2세가 이러한 항의를 수용하지 않자 하인리히 5세는 교황과 추기경들을 체포하였다. 체포된 지 11일만에 교황 파스칼 2세는 더 큰 교회 분열을 막기 위해 양보하였다. 그리고 1111년 4월에 하인리히 5세는 황제로 대관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교황의 양보에 항의하였다. 황제 하인리히 5세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였고, 교황 파스칼 2세는 너무 많은 것을 보장하였다는 항의가 제기되었다. 교황은 자신이 부당하게 처신하였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였고, 아울러 교황은 이단의 혐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신앙 고백을 선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뿐만 아니라 평신도 성직 임명을 둘러싼 선임자들의 결정 – 특히 교황 그레고리오 7세 – 을 재확인해야만 하였다.


1112년 9월 비엔나에서 개최되었던 시노드에 참가하였던 참석자들은 황제 하인리히 5세에게 파문의 처벌을 내릴 것을 결정하였다. 1117년 초에 교황 파스칼 2세는 폭동 때문에 로마를 떠나야만 하였다. 로마의 관리들은 하인리히 5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하인리히 5세는 로마로 와서 브라가(Braga)의 대주교로 하여금 부활 대축일에 자신의 황제 대관식을 주재하도록 하였다. 교황 파스칼 2세는 추기경들을 통해 황제 하인리히에게 평신도 성직 임명권을 포기할 용의가 있음을 통고하였다. 하지만 하인리히 5세는 파스칼 2세 교황의 포기 의사를 수용하지 않았다. 1118년 초에 교황 파스칼 2세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자신의 적들이 점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로 귀환할 수 있었다. 교황 파스칼 2세는 1118년 1월 21일에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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