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제니오 3세 교황 Eugen 3.

 195. 에우제니오 3세 교황  Eugen Ⅲ.  1145~1153

교황 에우제니오 3세의 원래 이름은 베르나르도(Bernhard Aganelli de Montemagno)였다. 그는 로마의 시스테르시안 수도회의 대원장을 역임하였다.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Bernhard Clairvaux)의 제자로서 1145년 2월 15일 그의 선임자 루치오 2세가 로마 백성들이 일으킨 봉기로 서거한 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교황 선출 후 즉시 아르놀드와 적대 관계에 직면하였고, 그 결과 로마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로마의 외곽에서 교황 서품식을 치렀다. 1145년 12월에 사태가 원만하게 수습되어 화평을 회복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교황의 최고 통치권을 인정하였고,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로마로 귀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1147년 다시금 로마를 떠나 프랑스로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프랑스에서 십자군 운동을 제창하였고, 베르나르도는 십자군 운동의 제창에 협력하였다. 십자군 운동의 실패는 교황 에우제니오 3세와 베르나르도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베르나르도의 이념에 따라 교회의 개혁에 열중하였다. 교회의 개혁을 위해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프랑스를 근거로 삼아 여러 차례에 걸친 여행길에 올랐다. 그 가운데는 트리어(Trier) 여행도 포함되었다.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보호 아래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1152년 로마로 귀환할 수 있었다. 1153년에 체결된 협약을 통해 프리드리히 1세는 교회 국가의 질서를 다시금 회복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이에 대한 감사로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프리드리히 1세를 황제로 대관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프리드리히가 로마에 도착하기 전 1153년 6월 8일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서거하였다. 교황 비오 9세는 1872년 교황 에우제니오 3세를 시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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