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인노첸시오 4세 교황 Innocenz Ⅳ. 1243~1254
교황 첼레스티노 4세 서거 후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우호적인 자세를 취한 추기경들과 그에게 적대적인 자세를 취한 추기경들 사이의 대립은 조기의 교황 선거를 어렵게 만들었다. 약 2년간 지속된 공위 기간을 거친 후 아나나(Anagni)에서 1243년 6월 25일 인노첸시오 4세 – 그의 본래 이름은 시니발도(Sinibald Fieschi)였다 – 가 만장일치의 표결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인노첸시오 4세 교황의 선출을 환영하였다. 하지만 그는 곧 교황이 교회의 자유와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암중 모색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4세는 화평을 도모하는 것이 자신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파악하였다. 1244년 평화 조약의 서명이 준비되고 있었다. 서명을위해서는 선임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프리드리히 2세 황제에게 내린 파문의 처벌이 철회되어야 했고, 황제가 그 당시 아직도 감금시키고 있던 성직자들을 자유 방면해야 했으며 아울러 점령하고 있던 교회 국가로부터 물러나야만 하였다. 하지만 쌍방간에는 여전히 불신의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평화 조약의 서명은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교황 인노첸시오 4세는 선임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소집하였으나 프리드리히 2세의 방해 공작으로 개최되지 못하였던 시노드를 다시금 소집하여 프리드리히 2세 황제와의 갈등 문데를 논의할 것을 모색하였다. 그래서 교황 인노첸시오 9세는 제노바(Genua)를 거쳐 리옹(Lyon)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프리드리히 2세가 사망할 때까지 교회를 이끌었다. 1244년 12월에 발표되었던 얼세 번째의 공의회는 드디어 1245년 6월 24일 리옹에서 개최되었다. 이 공의회에는 150여 명의 주교들이 참석하였다. 독일에서는 아주 소수의 주교들이 참석하였으나, 스페인, 영국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다수의 주교들이 참석하였다. 공의회에 참석하였던 제후들의 숫자는 열세하였다.
첫 번째 회기에서 교황 인노첸시오 4세는 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성지가 처한 급박한 사정에 대해 – 1244년 예루살렘은 다시금 이슬람교도들의 수중 떨어졌고, 예수의 무덤 성당은 파괴되어 황폐화되었으며, 예루살렘의 존립이 위급한 상태에 직면하였다 – 동방 교회와의 분열에 대해, 황제에 의한 교히 박해에 대해, 그리고 성직자와 백성들의 신앙과 도덕의 타락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하였다.
두 번째 회기에서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고발이 제기되었고, 세 번째 회기에서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퇴위가 선언되었다. 황제의 모든 권한과 명예는 박탈되었고, 황제의 신하들에게는 충성 서약의 의무가 면제되었으며, 황제에게 도움을 주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파문의 처벌이 경고되었다. 이러한 선언은 교황과 황제 사이의 전쟁을 의미하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4세는 프리드리히 2세 황제에게 대항하기 위해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시칠리아의 모든 힘을 동원하였다. 이로써 쌍방간의 이해는 철저하게 차단되었다. 더구나 독일의 일부 제후들은 1246년 튀링겐(Thuringen)의 백작 하인리히(Heinrich Rapse)를 독일의 국왕으로 추대하였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1250년 12월 13일 아풀리아(Apulien)에서 사망하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4세는 다시금 로마로 귀환하였으며, 이제부터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슈타우퍼(Staufer) 가문의 출신을 독일의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였다. 그 때문에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콘라트 4세는 독일의 국왕 승인을 교황에게 요청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콘라트 4세는 1254년 5월 21일에 사망하였다. 그의 두 살짜리 아들 대신에 콘라트 4세의 이복 형제인 만프레드(Manfred)가 섭정(攝政)을 맡았다. 만프레드는 시칠리아에 대한 교황의 통치권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교황과의 화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만프레드는 교황과 적대 관계에 돌입하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4세는 1248년 프랑스의 국왕 루이 9세에게 십자군의 출정을 종용하였으나, 십자군 출정이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4세는 1254년 12월 7일 나폴리에서 서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