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토 4세 교황 Sixtus 4.

 251. 식스토 4세 교황   Sixtus Ⅳ.  1471~1484

교황 식스토 4세는 원래 이름이 프란체스코(Francesco della Rovere)였고, 1414년 7월 21일 사보나(Savona) 근교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승으로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대학의 교수로 활동했고, 1464년에는 수도회의 총원장으로 재직하였으며, 1467년에는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1471년 8월 9일에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으로 선출된 후 식스토 4세는 즉시 자신의 조카 2명을 추기경에 임명하였다. 1474년 두 명의 추기경 가운데 1명의 추기경이 사망하자 즉시 자신의 조카 가운데 한 명을 추기경에 임명하기도 하였다. 교황 식스토 4세는 이탈리아의 영주 제도를 척결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이러한 시도로 말미암아 이탈리아의 영주들과 심한 갈등의 상황에 직면하였다.


  교황 식스토 4세는 교회 내적으로는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하였다. 1475년 교황 식스토 4세는 성년을 선포하였고, 이때 수많은 순례자들이 로마를 방문하였다. 아울러 교황 식스토 4세는 선거 공약을 통해 공의회의 소집을 약속한 바 있으나,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1482년 3월에 뮌스터의 자모메티크(Zamometic) 대주교가 바젤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인으로서, 그리고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공의회를 소집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자모메티크 대주교는 교황 식스토 4세의 퇴위와 교회의 개혁을 구상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교황 식스토 4세는 바젤 시 전체에 파문의 처벌을 내렸다. 그 결과 바젤 공의회는 소집되지 못하였다. 식스토 4세의 교황 재임은 교회를 위해서는 불운이었다. 교황 식스토 4세가 임명한 34명의 추기경 가운데에는 6명의 조카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 6명의 추기경들은 추기경의 직분에 걸맞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아울러 교황청도 점점 세속화되어 갔다. 사치스러운 생활, 예술과 가족을 위한 지출은 엄청난 재정적인 경비를 필요로 하였다. 교황 식스토 4세는 로마를 르네상스의 도시로 변모시켰다. 시스티나 경당 역시 교황 식스토 4세의 작품이었다. 교황 식스토 4세는 1484년 8월 12일에 서거하였고, 자신의 후임자에게는 엄청난 부담감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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