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에페 1,22-23)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인간에게 가장 큰 희소식인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바로 구원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예수님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와서 그 나라를 차지하라 부르고 계신다. 이제 예수님에 의해 이 지상에 이미 와 있는 하느님의 나라는 만물이 완성되는 세말때까지 교회를 통해 현존한다. 그리하여 모든 이를 그 나라에로 초대한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그의 백성이 되어 약속된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누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성취해야 될 구원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구원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가? 하느님의 나라는 언제 차지하며,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오고 있는가?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이러한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1. 하느님 나라의 완성과 교회
세상에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역사 안에 현존하면서 모든 것을 완성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자라나는 겨자씨앗에(마태 13,31-32) 비기셨다. 비록 인간의 눈에는 작게 보이지만, 싹이 트고 자라면 어느 푸성귀보다도 커져서 모든 새들을 안식케 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또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누룩과 같다고 하셨다(마태 13,33).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이 누룩의 작용이다. 하느님의 나라도 이와 같다는 말씀이다. 모든 것에 침투되어 만물을 새로이 변화시키며 완성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힘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 나라가 역사 안에 현존하면서 전 인류를 구원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는 바로 하느님 나라에로 인도한다. “교회는 그 창립자의 은혜를 받아 사랑과 겸손과 극기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며, 모든 민족들 가운데 건설할 사명을 받음으로써 지상에 있어서 천국의 시작과 싹이 된 것이다”(교회 5)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지상에 현존하면서 모든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는 마치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대어졌음과 같다(마태 3,10).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모든 이를 심판하게 될 세말 때이다. 그때까지는 마치 도끼가 그냥 뿌리에 대어져 있음과 같다. 그러므로 받아들여 좋은 열매를 맺으면 그 나라를 차지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임박하게 다가오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 그 자체가 벌써 심판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가 세상에 온 것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땅과 인류의 완성기를 알지 못한다. 우주 변혁의 방법도 모른다. 죄로 이지러진 현세의 모습은 분명 지나간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처소와 새로운 땅을 마련하실 것이며, 거기서는 정의가 지배할 것이고, 그 행복은 인간들 마음속에서 치솟는 평화의 온갖 소망을 충족시키고 넘치게 하리라는 가르침(1고린 2,9; 묵시 21,4-5)을 우리는 받고 있다”(사목 39). 하느님 나라는 새로운 땅, 인간이 영원히 머물 새로운 처소이다. 그것은 언제인지는 모르나 세말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재림하는 그 세말에 나타날 것이다. 교회는 그때까지 모든 인류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며 그 완성을 애타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2. 하느님 나라에 들어감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고기 그물에 비유하시며(마태 13,47-51)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또 하느님의 나라를 밭에 묻힌 보물과 진주에 비유하시어(마태 13,44-46) 그를 발견한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도 가르쳐 주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밭에 묻힌 보물과 같아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만 발견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 현존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지배권이 나에게 미치는 시간은 바로 ‘오늘, 이 순간’ 이기에 그 속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이 하느님의 나라를 발견하면 값진 진주를 만난 사람이 자기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그것을 사듯이 모든 것을 다 들여 그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 노력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데서 완성된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첫째 조건이다. 한국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민족의 자녀로서 이 땅에 태어나야 되듯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는 일,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길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가르치신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그런데 아버지의 뜻이란 바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 속에 들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핵심인 ‘사랑의 계명’이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르 12,30-31).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하느님 나라의 특징은 바로 ‘사랑’으로 나타난다. 사랑을 얼마만큼 실천했느냐 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심판의 기준이 되고 있다(마태 25,31-46). 예수님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하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1요한 4,20)하고 우리는 추궁을 당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불의와 부정을 금하는 구약에서 명한 십계명을 넘어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을 요구하셨다. 이 사랑의 계명이야말로 세상을 혁신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여덟 가지 행복’(마태 5,3-12) 속에 나오는 부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복팔단의 정신이 아니고서는 세상을 변형시킬 수도 없고 세계를 하느님께 바칠 수도 없다“(교회 31).
이상으로 우리는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쁜 소식인 하느님 나라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나라를 얻어 구원되는 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의 백성이 되며, 또한 그러한 신분에 맞게 세상을 살 때 이미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누리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가 부활할 때, 완성된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자는 세상에서 벌써 희망을 갖고 기쁘게 사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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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에페 1,22-23)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인간에게 가장 큰 희소식인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바로 구원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예수님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와서 그 나라를 차지하라 부르고 계신다. 이제 예수님에 의해 이 지상에 이미 와 있는 하느님의 나라는 만물이 완성되는 세말때까지 교회를 통해 현존한다. 그리하여 모든 이를 그 나라에로 초대한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그의 백성이 되어 약속된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누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성취해야 될 구원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구원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가? 하느님의 나라는 언제 차지하며,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오고 있는가?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이러한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1. 하느님 나라의 완성과 교회
세상에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역사 안에 현존하면서 모든 것을 완성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자라나는 겨자씨앗에(마태 13,31-32) 비기셨다. 비록 인간의 눈에는 작게 보이지만, 싹이 트고 자라면 어느 푸성귀보다도 커져서 모든 새들을 안식케 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또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누룩과 같다고 하셨다(마태 13,33).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이 누룩의 작용이다. 하느님의 나라도 이와 같다는 말씀이다. 모든 것에 침투되어 만물을 새로이 변화시키며 완성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힘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 나라가 역사 안에 현존하면서 전 인류를 구원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는 바로 하느님 나라에로 인도한다. “교회는 그 창립자의 은혜를 받아 사랑과 겸손과 극기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며, 모든 민족들 가운데 건설할 사명을 받음으로써 지상에 있어서 천국의 시작과 싹이 된 것이다”(교회 5)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지상에 현존하면서 모든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는 마치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대어졌음과 같다(마태 3,10).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모든 이를 심판하게 될 세말 때이다. 그때까지는 마치 도끼가 그냥 뿌리에 대어져 있음과 같다. 그러므로 받아들여 좋은 열매를 맺으면 그 나라를 차지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임박하게 다가오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 그 자체가 벌써 심판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가 세상에 온 것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땅과 인류의 완성기를 알지 못한다. 우주 변혁의 방법도 모른다. 죄로 이지러진 현세의 모습은 분명 지나간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처소와 새로운 땅을 마련하실 것이며, 거기서는 정의가 지배할 것이고, 그 행복은 인간들 마음속에서 치솟는 평화의 온갖 소망을 충족시키고 넘치게 하리라는 가르침(1고린 2,9; 묵시 21,4-5)을 우리는 받고 있다”(사목 39). 하느님 나라는 새로운 땅, 인간이 영원히 머물 새로운 처소이다. 그것은 언제인지는 모르나 세말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재림하는 그 세말에 나타날 것이다. 교회는 그때까지 모든 인류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며 그 완성을 애타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2. 하느님 나라에 들어감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고기 그물에 비유하시며(마태 13,47-51)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또 하느님의 나라를 밭에 묻힌 보물과 진주에 비유하시어(마태 13,44-46) 그를 발견한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도 가르쳐 주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밭에 묻힌 보물과 같아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만 발견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 현존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지배권이 나에게 미치는 시간은 바로 ‘오늘, 이 순간’ 이기에 그 속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이 하느님의 나라를 발견하면 값진 진주를 만난 사람이 자기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그것을 사듯이 모든 것을 다 들여 그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 노력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데서 완성된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첫째 조건이다. 한국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민족의 자녀로서 이 땅에 태어나야 되듯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는 일,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길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가르치신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그런데 아버지의 뜻이란 바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 속에 들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핵심인 ‘사랑의 계명’이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르 12,30-31).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하느님 나라의 특징은 바로 ‘사랑’으로 나타난다. 사랑을 얼마만큼 실천했느냐 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심판의 기준이 되고 있다(마태 25,31-46). 예수님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하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1요한 4,20)하고 우리는 추궁을 당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불의와 부정을 금하는 구약에서 명한 십계명을 넘어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을 요구하셨다. 이 사랑의 계명이야말로 세상을 혁신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여덟 가지 행복’(마태 5,3-12) 속에 나오는 부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복팔단의 정신이 아니고서는 세상을 변형시킬 수도 없고 세계를 하느님께 바칠 수도 없다“(교회 31).
이상으로 우리는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쁜 소식인 하느님 나라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나라를 얻어 구원되는 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의 백성이 되며, 또한 그러한 신분에 맞게 세상을 살 때 이미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누리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가 부활할 때, 완성된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자는 세상에서 벌써 희망을 갖고 기쁘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