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무능한 사랑의 희생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바치셔서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건져내시고 깨끗이 씻어 주셨습니다.”(디도 2,14)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은 믿음의 영역을 떠나서라도 실로 옳으신 말씀이다.
사실 세상에는 예수님 외에도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죄없이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 죽으신 예수보다도 더 혹독한 형벌을 받고 죽어간 무죄한 사람들이, 역사상에 그리 드물지 않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예수님만이 최고의 사랑을 보여준 우리의 구세주라고 믿어 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예수의 죽음의 역사적 상황
예수는 반대자들의 손에 체포되기 전에 세 번씩이나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보는 듯 예고하셨다. (마르 8,31; 9,30-31; 10,33 참조) 이미 예고하신 대로 체포되어 극심한 고문을 당하시고 끝내는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그 당시 예수의 상황을 4복음서는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마태 26,1-27.56; 마르 14,1-15.41; 루가 22,1-23.49; 요한 18,1-19.37 참조)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가 사형을 당하신 직접적인 동기는 엉뚱하게도 당시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죄로 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아래에서 예수가 사형 당하신 동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가. 유대인들의 그릇된 메시아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천 년을 두고 애타게 기다려오던 구세주, 메시아는 마침내 그들 가운데 탄생하셨다(요한 1,14 참조)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2천 년 전 나자렛 고을에서 태어나셨던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당시 유대인들이 바라던 메시아는 예수와 같은 그런 분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타민족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침략을 받아 왔고, 예수께서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셨던 당시에는 로마인들의 지배하에 있었던 만큼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로마인들의 손에서 해방시켜 전세계를 지배하는 최강국으로 만들어 줄 왕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마치 36년간 일제의 탄압 속에서 우리 민족이 바라던 최대의 염원이 자유와 해방이었던 것처럼 그들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구원해 줄 ‘왕’이야말로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켰던 모세와 같이 이스라엘의 조국 독립 운동에 앞장서고 하느님의 힘으로 이스라엘의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줄 분으로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세주이신 예수 자신의 생각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방식과는 전혀 달랐다는 데 있다.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시고(요한 6,1-15) 나병환자와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고(루가 5,12-26) 죽은 라자로를 무덤으로부터 다시 살려내신(요한 11,38-44) 예수는 당신 자신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명백히 드러내셨지만(마태 26,64; 마르 14,62; 루가 22,69) 분명히 그 나라는 이 지상의 것이 아님을 밝히셨다(요한 18,36)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인들의 손으로부터 자기들을 해방시켜 자유를 줄 구세주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무능하기 만한 예수에게 극심한 분노를 터뜨려 마침내는 그분을 사형에 처하고 말았다. 마르코 복음서를 보면 예수는 곳곳에서 당신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지 말도록 사람들에게 명하셨는데(1,34; 3,12; 5,43; 7,36; 9, 9) 그 이유는 전혀 그릇된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이 당신을 현세의 왕으로 착각하여 수난과 죽음으로 완성하실 당신의 구원사업을 성취하지 못할까 하는 염려에서였다고 현대 성서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확실히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우리 위에 군림하는 현세적인 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릇된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무척이나 많은 듯하다. 현대인들 역시 옛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릇된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다면 예수에 대한 그들의 실망은 언젠가 다시 한번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분노를 터뜨릴 것이 아닌가?

나. 예수의 죄목
유대 지방을 통치하고 있던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사형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마태 27,37; 마르 15,26; 루가 23,38; 요한 19,19)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충동해서 로마에 반기를 든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사형언도를 받은 것이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재판을 받으시는 광경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즉 폭도들에게 체포되어 대제관 앞에 끌려가신 예수는 자칭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했다는 이유로써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걸리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고위층을 형성하고 있던 대제관들과 율법학자들은, 적어도 자기네들이 수천 년동안 기다려 오던 메시아라면 예수와 같이 무력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칭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하는(마르 14,61- 62) 예수야말로 하느님을 모독한 가장 증대한 죄인으로 죽어 마땅하다고 진단했다. 그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의하였으나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그들로서는 정식으로 죄인을 사형에 처할 권리가 없었다(요한 18,31 참조) 그 때문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하기 위하여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압송, 고발하였다. 그러나 빌라도는 종교적인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더군다나 유대인들에게 고문을 당하여 지칠대로 지친,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한 마리의 양과 같은(이사 53,7참조) 예수의 처절한 모습에l 로마 정부에 반기를 들 만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고발된 예수를 무죄 석방할까 했다(요한 19,12 참조) 예수께서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로 자칭한다는 것이 로마 법으로는 전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므로 유대인들은 예수 자신이 선동해서 로마 정부를 멸망시킬 왕이라고 주장한다는 죄목으로 고발하며(루가 23,2) 빌라도에게 누차 사형에 처하기를 청하였다. 자기가 통치하고 있는 백성들의 선동이 두려웠던 빌라도는 마침내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 로마 정부에 반기를 든 반역 죄인으로 예수를 당시 로마 사형 풍습에 의한 십자가 형에 처하고 말았다.
2천 년 전의 예수께서 정치범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범으로 사형 당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나 지금이나 엉뚱하게 정치범으로 몰려 박해를 당하는 많은 의인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처럼 이 땅에 하느님의 정의를 외치다가 체포되었고, 예수님처럼 엉뚱한 죄목으로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예수께서는 로마 정부를 전복해서 자신이 전유럽을 다스리는 황제가 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정치적인 야욕가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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