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신의 인간적인 사랑의 모습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가까와졌습니다.”(에페 2,13)

1. 사랑의 계시인 예수님의 제사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완전한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집전됨에 따라 성취되었다. 구약의 제사는 대신할 수 없는 ‘제물’을 갖고 드려진 것이기에 구속의 가치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바쳐진 제사는 하느님의 사람이 죄인인 인간을 찾아와 인간을 본성상 개조하는 것이기에 구원의 힘을 갖는 완전한 제사이다. 예수님께서 드리신 제사의 본질은 구약의 제사처럼 물건을 봉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의 사랑이 인간적 사랑이 됨으로써 계시된 사랑의 행위라는 데 있다. 십자가를 통해 계시된 이 사랑은 이제 전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나가고 인간의 본성을 개조하여 하느님을 닮게 하는 힘이다. 이 사랑은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진 하느님의 은총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바친 당신 자신의 희생이 바로 사랑의 제사였다는 점을 최후만찬에서부터 깨달을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이별의 만찬을 나누실 때 당신이 어떻게 죽으실 것인지를 보여주신다. 바울로 사도가 전해 주는 다음의 구절은 가장 오래된 자료로서 그때 그 말씀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해서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1고린 11,23-25).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빵과 포도주로 당신이 어떻게 죽으실지를 보여주실 뿐 아니라 당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인간과 새로운 계약을 맺기 위한 하느님 아들의 희생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의 본질이다. ‘새로운 계약’ 이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예레미아 예언자의 말씀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 줄 내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 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1,33) 이 예언은 구세주에 의해 새로이 맺어질 계약과 새로운 법을 말한다. 옛날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제헌된 동물의 피로 확인되었듯이(출애 24,8 참조) 예레미아 예언자가 600년 전에 예언한 이 새로운 계약은 하느님의 아들(성자)의 피로 확인된다. 예수님의 피는 ‘많은 이들을 위하여’ 흘려졌다. 예수님의 생애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마태 26,28)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이들의 죄사함을 위한 제사요,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희생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죽음을 해석하여 구원의 의미를 붙여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최후만찬에서 가르쳐 주신 당신의 죽음의 결과를 믿는 것뿐이다. 그분의 제사로 우리는 죄 사함을 얻고 악에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 앞에 의롭게 됐음을 믿는 것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로 죄에서 해방되고 의롭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십자가상 예수님의 희생이 보여준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순명과 그리고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해 계시된 사랑을 우리가 사는 새로운 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실현된다.
성서는 예수님의 이 제사의 결과로 우리가 근본적으로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화해를 얻었다고 수없이 말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아담의 불순명으로 인해 본성상 죄악에 빠진 인성을 하느님의 아들이 개조하기 위한 순명의 제사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인간의 본성은 새로와졌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로마 5,19)라는 사도 바울로의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가 가져오는 결과를 잘 말해 주고 있다.

2. 신약의 제사인 미사
인간의 죄사함을 위해 바쳐진 예수님의 제사는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게 계속되도록 명령되었다. 그로써 예수님의 십자가상 피흘림의 제사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제자들을 통해 재현된다. “우리 주께서는 팔리시던 날 밤 최후만찬 중에, 당신의 살과 피로써 제사(미사성제)를 제정하셨으니 이는 당신이 재림하는 날까지 십자가의 제사를 영속화하고 또한 사랑하는 당신의 정배인 성교회에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의 기념제를 위탁하시기 위함이었다.”(전례 47) 교회는 주님의 이 명을 따라 성찬례를 거행한다. 사제들에 의해 주의 이 십자가상 제사가 매일같이 재현된다. 그것은 십자가상 제사의 은총을 모든 사람이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미사성제는 십자가 제사의 은총을 각 사람에게 전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주의 구원사업을 계속케 하는 교회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요 일치의 표징이며 사랑의 맺음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게 하여 마음을 은총으로 충만케 하고, 우리에게 장래 영광의 보증을 주는 파스카(즉 죽음에서 영광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는) 잔치이다.”(전례 47). 미사성제에서 우리 파스카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신 십자가의 제사가 재현됨으로 우리의 구원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십자가의 제사와 미사에의 참여
미사가 십자가상 예수님의 제사의 재현이라면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자신을 그리스도께 결합하여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 이것이 미사참여의 목적이다. 자신을 거룩하고 하느님의 뜻에 드는 산 제물로 봉헌하여(로마 12,1 참조) 그리스도의 제사에 가담하는 것이 미사참여이다. 그러므로 미사참여는 예수님처럼 자신의 희생과 사랑을 갖고 해야 한다. 십자가를 통해 계시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힘을 미사에서 얻고, 실천한 결과를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거쳐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미사의 모임이다. 예레미아 예언자가 말한 새로운 계약과 새로운 법은 바로 예수님의 전생애를 통해 계시되고 주어진 ‘사랑’의 계약이며 법이다. 이 사랑은 우주의 역사를 하느님께로 완성케 하는 힘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친히 사람이 되시고 인간세계에 거처하시며 완전한 인간으로서 세계의 역사 속에 들어오셨고, 세계 역사를 당신 안에 받아들이시어 새롭게 하셨다. 그분은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계시하시며 인간 완성과 세계 개혁의 근본법칙은 사랑의 새 계명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다.”(사목 38). 이러한 사랑의 모습과 계명을 우리는 미사에서(예수님의 십자가) 배우고 깨달아 그 힘으로 실생활을 사는 것이다. 미사 성제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나누며 모든 신부는 예수님 안에 일치되어 사랑이란 끈으로 모든 자기의 이웃과 일치한다. 자신을 하느님께 산 제물로 바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을 우리 생활 안에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이상으로 우리는 구원의 제사인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를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중재하시는 대사제로서 당신의 거룩하고 흠없는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제사를 드렸다. 같은 제사를 우리도 미사성제에 참여함으로써 드리며 그 은혜로 구원된다. 신약의 제사와 사랑의 법은 대사제이신 예수님만이 참된 구세주이심을 깨닫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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