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만이 참 신, 살아 계시는 하느님, 영원한 임금이시다(예레 10,10).
앞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하느님이 계신다는 사실만 막연히 알아서는 우리 신앙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함께 알아야 된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자세히 알려면 사도 바울로의 말씀을 따라 창조물을 통해서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특성을 아는 수밖에 없다.
특히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을 통해서 그분의 능력과 특성을 깨닫는 것이 제일 알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과 비교하면서 이야기가 되더라도 이상히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점을 미리 밝혀 두는 것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무신론자들이 가끔 하느님이란, 인간의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인간 정신이 생각해 낸 가상의 절대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 하느님은 신령한 분이시다.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계신다. 인간은 육체를 갖고 있지만, 하느님은 육체가 없다. 순수한 영체(靈體)로 계시어 신령한 분이다.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 드려야 한다”(요한 4,24)
이 말씀은 하느님을 예배 드릴 곳이 어디냐고 묻는 사마리아의 여인에게 예수님이 주신 대답이다. 물론 순수 영체가 어떤 것인지 우리 인간은 잘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체를 통해서만 어떤 것을 보고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올 우리의 영혼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이해가 가리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영혼은 하느님의 신령함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2. 하느님은 전능한 분이시다.
구약성경은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으로 시작되어 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겨났다”(창세 1,3). 이 말씀은 하느님이 전능한 분임을 가르쳐 준다. 전혀 없던 것을 한 마디 말씀으로 온갖 것을 지어 내시고, 당신의 원의 하나로 모든 것을 생겨나도록 하신다. 그 중에 가장 지혜로운 조물이 인간이다. 그러니 그것을 깨닫는 인간이 어찌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해와 달아, 반짝이는 별들아 모두 찬미하여라. 야훼의 명령으로 생겨났으니 그의 이름 찬양하여라”(시편 148,3-5)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하면서 전능하신 하느님을 찬미하라고 이른다.
하느님이 전능하신 분임은 예수님에 의해서도 드러나고 그분의 말씀 속에서도 나타난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성자)로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갖가지 기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은 눈먼 사람을 보게 하시고(마르 10,46-52), 한 마디 말씀으로 문둥병 환자를 깨끗이 고쳐 주시고(마태 8,1-4),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가 하면(요한 11,1-16), “잠잠하라”는 말씀 한 마디로 바다의 풍랑을 멈추게 하시는 분이었다.(마르 4,35-41) 예수님은 또한 말씀으로도 하느님은 못하시는 일이 없으신 분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마태 19,26)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행적을 보든지 세상 만물을 보고 그 지으신 분을 생각할 때 우리는 쉽게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분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3.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토록 인간에게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이야기다. 정초에 웃어른께 세배를 가면 웃어른께서 꼭 물어 보시는 말씀이 있다. “이제 몇 살 되는거지?” 그러면 “예, 이제 얼마 되옵니다”라고 대답한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알았던 것도 잊어버린다. 나비의 종류가 약 십만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 중 나비의 이름을 다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렇게 인간은 아는 데 있어서도 매우 불완전하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서 존재해 있기에 그분은 우리처럼 배우거나 깨닫거나 궁리하거나 기억해서 아시는 분이 아니다.
“야훼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사람을 낱낱이 살펴보신다. 사람들의 마음을 몸소 빚어 주신 분이시라 사람이 하는 일 모르는 것이 없으시다”(시편 33,13.15)
이렇듯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알고 계신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2-4)
하느님의 전지(全知)하심은 이상의 성경 말씀으로도 입증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특히 곤란에 부딪쳤을 때에도 실망하지 말고 하느님께 의탁해야 할 것이다.
4. 하느님은 무한히 선하시다.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마태 7,9-11)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느님이 얼마나 선한 분이신가를 보여준다. 인간은 착하면서도 때로는 악의를 품는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완전히 선하신 분이다. 악의란 자신의 부족함에서 생기는 것인데, 하느님은 우리 인간과는 달리 모자람이 없이 가장 완전한 분이시므로 그분에게는 악의란 있을 수도 없다.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으로서 선(善) 자체이시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선함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렇듯 선 자체이신 하느님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지니시니 거룩하시기 이를 데 없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이란 선을 지녀야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선함을 나누어주심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에 들어오라 하심이다.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따라 우리 힘대로 우리의 선함을 키워나가 거룩한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5. 하느님은 공의로우시다.
공의하다 함은 옳은 것을 옳게 그른 것은 그르게 판단하고, 선한 일에는 상급을 베풀고 악한 일에는 벌함을 뜻한다. 하느님이 공의로운 분이라 함은 우리 인간의 행실을 심판하시어 상벌을 주시는 데 있어 조금도 어긋남이 없으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가끔 눈이 어두워 잘못 판단하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일도 있다. 그래서 종종 신문에서 겨우 누명을 벗고 감금되었다가 풀려 나오는 사람들의 기사를 읽곤 한다.
자식의 나쁜 행실은 그의 아버지를 욕되게 한다. 그래서 그것을 안 아버지는 자식을 꾸짖으며 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식의 좋은 행실은 아버지의 명예를 빛나게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와 함께 기뻐하며, 그를 칭찬하고 상을 베풀고 잘못한 일에는 벌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느님이야 어련하시겠는가!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대하시니 말입니다”(로마 2,6-11)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억울함을 당할 때가 가끔 있다. 이럴 때 우리의 속까지 다 보시고 아시는 공의로운 하느님께 의탁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다 알고 우리를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공의로우심은 우리의 억울한 설움을 언제나 삭혀 주고 평온한 마음을 지니도록 위로해 주신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았다. 무한히 능하시고 선하신 하느님, 무엇이나 다 아시고 공의로우신 하느님. 이러한 하느님이 우리의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한없이 완전한 분이라 한다.
다음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되겠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느님께 대해 많은 것을 안다 해도 사랑의 하느님을 깨닫지 못한다면 절름발이 신앙이 되고 말겠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완전한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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