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구약의 하느님

3. 구약의 하느님
3.1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신체험 내지는 신신앙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신체험의 절정은 말할 것도 없이 출애급 사건이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도 그 뿌리인 이스라엘의 신앙도 본래는 체험으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교가 체험을 떠나 사변적으로 하나의 이론적 체계를 형성하게 된 것은 바오로 사도 이래 타민족과의 만남에서 그들의 처지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입장을 설명해야만 했던 처지에서 비롯되었고, 여기서 그리이스의 철학이 크게 영향을 주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애급 사건이 이스라엘의 신체험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신체험의 시작으로 소개된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1850년경 살았던 인물로서 본래는 우루지방(지금의 이라크 영토 안에 있는 지역으로서 쿠웨이트와 근접한 지역) 출신이었다. 여기서 그는 고향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한다. 성서는 그것이 하느님의 소명이었다고 말한다.
“우리 선조는 떠돌며 사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얼마 안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에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 몸붙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불어나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집트인들은 우리를 억누르고 괴롭혔습니다. 우리를 사정없이 부렸습니다. 우리가 우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는 우리의 아우성을 들으시고 우리가 억눌려 고생하며 착취 당하는 것을 굽어 살피셨습니다. 그리고 야훼께서는 억센 손으로 치시며 팔을 뻗으시어 온갖 표적과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모두 두려워 떨게 하시고는 우리를 에집트에서 구출해 내셨습니다.”(신명 26,5-9)
이 귀절은 이스라엘 족장 설화의 가장 간결하고, 또 가장 오래된 형태라고 말한다. 이 형태로부터 창세기 12장 이하의 기록에 자세한 족장들 이야기가 구성되었다고 본다. 물론 여기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커다란 뼈대가 있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약속이다. 이 하느님의 약속이 여러가지 다양한 족장들의 신체험을 일관성있게 엮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땅의 정복과 후손의 번영이라는 축복의 약속과 여기에 대한 하느님의 하느님으로서의 위치). 이미 이 주제는 창조설화와 족장설화를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그들의 소박한 구원개념이었다고도 보여진다.

이 족장사화(모세의 소명에서 요셉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건을 지배하고 있는 신은 야훼이다.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년대착오를 범하고 있다고 성서학은 말한다. 말하자면 모세 이전 시대에는 야훼신앙을 전혀 몰랐고, 야훼라는 이름이 비로소 등장한 것은 모세에 의해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은 조상들의 신으로서 야훼신앙과는 다른 기준에서 제사드려지던 신이었으며 ‘엘’ 또는 ‘엘로힘’으로 불려졌다. 유목민족으로서 그들과 동반하였던 ‘길의 신’, 초원의 신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하느님’, 그밖에 그리이스 신화에서 나타나는 모든 신적 능력을 수용하였다. 그리이스에서 상이한 제신으로 나타나고 구약성서는 야훼로 부른다. 여기엔 이방인들의 만신전에서 임금으로 군림하고 있는 ‘엘’신에 매력을 느꼈고, 이 엘 신은 그리이스 신화와 비교할 때 제우스 신과 견준다. 제신과 인간들의 아버지요, 세계의 창조주며, 우호적이고 거룩하고 연민적이고 연만하고, 품위가 있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야훼를 그와 동일시한다. 엘로힘으로도 자주 반복된다. 이 말은 추상적으로 ‘신성’을 뜻하는 일반적인 의미 때문에 나중에 쉽게 야훼라는 명칭의 신으로 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엘은 강대하고, 그의 아들 바알처럼 장소에 매여 있지 않았다. 바알신이 디오니소스적인 정감적인 면모를 지닌데 비해서 엘은 아폴로적인 이지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초기 이스라엘의 신 이해는 이방인들의 엘에서 영향을 받고 독립적으로 각별한 체험 속에서 야훼라는 신 이해를 가져온다.
우선 이 조상의 신은 특히 장소와 결부된 신이 아니라 인물과 결부된 신이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난관을 모두 포함하는 이민생활을 과감하게 떠나게 하고(현대의 우리나라의 미국, 일본, 브라질 이민사와 비교), 후손을 유지시켜주고 이사악을 이민족으로부터 아내와 재산을 보호해주고, 야곱과 씨름하며 체험한 신이었다.
물론 이 족장설화는 하느님의 체험이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이 그 모습을 감추거나 지나친 것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체험되기도 하고 약속이 지연되어 갈등과 시련을 겪게되는 사실도 보여준다. 이 조상의 신은 나중에 에집트 탈출 이후 야훼로 불리우는 신과 동일한 신으로 이해하면서 그 이름이 혼동되어 때로는 엘로, 또는 야훼로 등장한다. 어떻든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란 명칭은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기 이전 하나의 가족, 하나의 부족을 수호해 주고 축복해 준 하느님으로 체험된 신이었다는 것을 반영해 준다.

3.2 모세의 하느님 야훼
구약의 신 이해와 신에 대한 신앙고백의 핵심적 발언은 불타는 가시덤불 사건(출애 3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이 개념의 결정적인 기초를 여기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의 정체를 묻는 모세와 하느님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느님은 “내가 있노라하는 이로다”하는 ‘야훼’의 명칭이 주어진다. 이어서 “나는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설명이 보태어 지고 있다(출애 3,13-15).
이 귀절의 의도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야훼’라는 이름을 결정적인 한늼의 이름으로 확립하고자 하는데 있다. 첫째로 이 야훼 하느님에 이스라엘 민족형성과 하느님의 계약체결의 기원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둘째로는 내용상의 의미부여가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도가 분명해진다. 야훼라는 이름을 ‘있다’ 또는 ‘내가 있노라’라고 해석하는데 곧 이 야훼가 바로 선조들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풀이에서 이스라엘이 이제껏 엘 또는 엘로힘으로 불러오던 하느님과 이 야훼 하느님이 동일한 분이라고 말함으로써 야훼라는 말의 이해를 더 심화시키자는 의도가 깊이 깔려 있다.

‘있다’ 또는 ‘존재’라는 개념이 신의 풀이로 등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희랍철학에서 일상과 관련맺고 나타나는 많은 현상으로서의 신적 행위 이면에 존재라는 포괄적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존재’가 가장 적절한 신적 개념으로 여긴 것을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생각하였듯이 성서도 마찬가지로 가시덤불 사건에서 발견한 존재로서의 하느님의 칭호를 한늼께 가장 합당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훗날 교부들은 이 야훼의 이름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리이스 철학자들의 하느님과 일맥상통하는 것을 보았다.
교부들은 철학정신의 탐구와 이스라엘의 신앙에서 실현된 신 이해의 심오한 동일성을 보고 플라톤 이후의 철학자들이 이 계시의 신비를 스스로 알 수 없었고 필경 구약을 알고 있었고 거기서 이런 생각을 얻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계시가 반드시 어떤 신비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과 자연 현상을 통해서도 하느님이 인간에게 알려 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히브리어 성서를 희랍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벌써 희랍정신이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내가 있노라 하는 이로다”라는 귀절을 ‘나는 존재자다’로 번역함으로써 성서적 신관념이 희랍사상으로 건너오는 다리를 놓게 되었다.
이러한 성서의 신 이해와 희랍사상의 신관념의 일치를 두고 어떤 것이든 그 궁극에 가면 그것이 진리인 한 일치하게 된다는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에 반대한 사람들도 있다. 예컨데 에밀 부르너는 이와같은 처사는 명칭 대신에 개념이 자리를 잡고, 정의할 수 없는 분을 정의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계시의 철학화”요, “이스라엘의 희랍화”라는 전락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야훼’라는 이름은 모세 이전에는, 또 이스라엘 밖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야훼라는 이름의 온전한 형성은 이스라엘에 와서 비로소 있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신앙이 이룩한 것이다. 독창적으로 그 이전의 신이해를 재구성하면서 고유한 신의 칭호와 신의 모습을 이룩해 낸 것이다. 이것은 모세의 업적이며, 이 이름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 하느님의 이름에서 볼 수 있는 첫번째 특징은, 바빌론 제국의 신의 칭호 가운데 대명사로서 야운(Yaun)이라는 어간으로 형성된 것이 있는데 야우(yau), 야(ya)라는 요소는 ‘내 분’, ‘나의 님’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대명사가 말하는 것은 잡다한 신의 유형 가운데 위격적인 신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스라엘의 야훼 역시 사람을 향하여 있는 위격적인 신, 다시 말해서 위격적 존재자로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칭호는 모세 이전에 이스라엘이 지녔던 선조들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과 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대인신(對人神)을 택하였지 토재신(土在神)이 아니었다. 즉 지역적으로 규정되고 국한되는 신을 찾는 이방인들과는 달리 선조들의 신은 어느 곳의 신이 아니라 인간들의 신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한 곳에 묶이지 않으며 어디든지 사람이 있는 곳이면 존재하면서 권능을 드러내는 신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신에 대한 전혀 다른 사고방식에 다다르게 된다. 하느님을 너와 나의 차원에서 보게 되고 공간적 현실의 차원에서 보지 않게 된다. 따라서 신은 어느 곳에도 국한될 수 없는 차원에 놓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나 가까운 분, 한계없이 능력이 있으신 분이 되는 것이다(물론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토재신의 유혹과 싸워야 했던 흔적을 보게 된다. 어떤 성소, 지정된 성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둘째로 엘신은 위격의 주체로서, 아버지로서, 피조물의 창조주로서, 임금으로서 가장 높은 하느님이었다는 점을 택하였다. 즉 야훼는 모든 권세들을 초월하는 권세였다.


셋째는 약속의 신이었다. 이 신은 자연법칙에 따라 생성 또는 탄생되고 소멸 또는 죽어가는 자연과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보다 나은 희망의 목표, 의의를 제시하고 그것을 이룩해 주시는 분으로서의 하느님이다(과거나 현재 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미래까지도 관장하시는 하느님,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게 하시는 하느님).
유일신을 고집하면서도 엘의 복수형 엘로힘을 사용한 의도는 무엇인가? 야훼는 하나이면서 너무나 위대하고 자신의 단수와 복수를 초월한 저 피안의 세계의 존재로서 그분의 다양한 신의 특성을 묘사하기 위해서 단수였던 엘을 엘로힘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이 하나의 신의 이름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것이 본격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모세가 묻기를 “당신이 나를 보내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너를 보낸 신이 누구냐? 그의 이름은 무엇이냐?’ 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라 대답해야 합니가?” 하였더니 하느님은 “나는 ‘내가 있노라’하는 자이다”라고 모세에게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내가 있노라’ 하는 자이다”라는 말은 ‘나는 나다’라고 옮길 수도 있는 말이다. 다시 마래서 하나의 거절로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판관기 13,18에 삼손의 아버지 마노악이 하느님의 이름을 묻는다. 여기서 하느님의 답변은 “내 이름이 비밀이거늘 어찌 너는 묻느냐?”, 창세 32,30에는 야곱이 하느님의 이름을 묻는다. “내 이름은 왜 묻느냐?”라는 부정적인 답만을 받는다. 이런 귀절과 연관시켜서 볼 때 야훼라는 이 말은 ‘나는 나다’라는 부정적인 답변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여기서 야웨 하느님은 주변의 다른 신령들처럼 비등한 신들 사이에 끼어있기 때문에 이름을 밝힐 필요가 있는 그런 신이 아니다. 그분은 그런 식으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야훼라는 이름은 너무도 잘 알려진 현실을 다시 미지의 현실, 숨은 현실, 감추임과 동시에 드러남이 있도록 해주는 이름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신학적 해석은 “나는 있다”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나는 여기 있다”, “나는 너희를 위해 있다” 즉, 이스라엘을 위한 신의 현존을 의미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존재 자체로서 보다는 무엇을 또는 누구를 위한 존재로서 풀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야훼라는 이 말이 인간을 돕고 보호하시는 하시는 분으로서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이심을 표명하고 실제로 이 가시덤불에서 계시된 하느님은 이어서 출애급의 사건을 통해 그것을 입증한 것이다(“나는 있다”라는 이 하느님의 이름과 신약 특히 요한 복음에는 예수가 나는…이다, 또는 있다(ego eimi)로 자주 등장하게 되는 것과 관련시켜 볼 수 있겠다).
또 이름의 개념에서 하느님이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사회관계 안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뜻한다. 이름 없이 하나의 번호로 불린다는 것은 인간 공동성의 구조 밖으로 제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야훼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자신을 내주어 부리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며, 이렇게함으로써 인간들과의 공동존재 안으로 들어서서 인간과 접할 수 있게 되고 인간을 위해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3.3 모세 이후에서 왕정 이전 시기의 이스라엘의 하느님
이러한 야훼라는 신의 명칭이 지니는 신학적 의미와 그 해석 이외에도 우리가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은, 하나의 가족 내지는 씨족의 수호자로서의 엘로힘 또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 모세에게선 이미 하나의 부족 내지는 민족의 수호신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을 본다.물론 엘 신이 지니고 있는 창조신 등의 개념이 내재하곤 있지만 철저한 선택 신앙에 의한 선민의식 속에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벗어나기가 몹시 어려웠다.

판관기는 가나안 정복의 이야기를 전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왕정이 설립된 과정을 이야기 해주는 사무엘서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우선 여호수아는 모세에 의해 결정적으로 받아들인 야훼 신앙을 재확인한다. 그것은 24장에 나타나는 세켐집회이다. 여기서 가나안 정착 후 즉시 이스라엘 12부족들을 소집하고, 조상의 하느님, 즉 엘 신이었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을 야훼 하느님과 동일한 하느님으로 소개하며, 그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루신 업적을 낱낱이 열거한다(사바옽 = 군대의 하느님?). 그리고는 백성들에게 의견을 제시한다. “만일 야훼를 섬기고 싶지 않거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늘 택하시오.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여러분의 조상들이 섬기던 신을 택하든지, 여러분이 들어와서 이 땅 아모리인의 신을 택하든지 결정하시오.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소”(여호수아 24,15).
세켐은 전략상 중요한 요새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 앞에’ 소집하였다고 전한다. 여호수아의 제안에 백성들은 “에집트에서 끌어내 주시고 가나안으로 정착케하신 야훼를 섬기겠다”고 대답한다. 그렇게 해서 계약을 맺고 야훼의 성소에 있는 상수리 나무 아래 큰 돌을 기념비로 세운다.
이 귀절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호수아가 처음에는 야훼와 백성을 묶는 계약의식을 거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당시까지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지 못했고, 또 야훼도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지도 않았다. 물론 이 때의 계약은 계약의 개시가 아니라 과거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의 재확인이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승리감에 도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의 계약을 소홀히 하고 가나안의 종교관습을 따르려는 유혹이 일 무렵 계약을 갱신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일 것이다. 이 귀절은 이스라엘에게는 한 분의 하느님 밖에 없다는 모세적 신앙을 재확인 한 셈이다.
그러나 한 편 유심히 살펴보면 다른 면도 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착을 위해 가나안 원주민과 투쟁한 일들이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구원지대인 세켐을 공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말하자면 이 지역 주민들이 이스라엘 부족들과 인척관계였거나 아니면 우호조약으로 우호적 관계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이미 창세 33,18-20에서 야곱이 세켐에 ‘이스라엘의 하느님 엘’의 제단을 세웠다는 정보를 지니고 있고, 세켐지방 사람들이 야곱, 즉 이스라엘 가문과 우호관계를 맺으려 했다는 기사를 34장에서 본다.
성서학자들은 본시 야곱의 모든 가문들이 에집트 탈출체험을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말하자면 야곱의 자손들 가운데 레아 보족들은 이미 가나안에 정착해 있었고, 에집트로 건너간 부족들은 요셉지파와 벤냐민지파였던 라헬계열의 부족들이었고, 에집트 탈출 후 가나안 정착이 보다 쉬웠던 이유는 이미 기존해 있던 이스라엘 부족들의 협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너희는 오늘 택하라”는 강력한 요구는 의미가 있다. 성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엘 신을 섬기든지 아니면 가나안 지지방에서 물려받은 이방인들의 신을 섬기든지 아니면 에집트 탈줄을 성공시킨 야훼 하느님을 믿든지 결단하라고 촉구하는 셈이다.
또 한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항은 12지파이다. 세켐에 이스라엘의 온 자파가 모두 모였다고 전한다. 여기서 온 지파는 12지파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운 야곱의 자손이 12라는 점(창세 29,16-30. 24 ; 35,16-20)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12지파는 꼭 12이 아니었음에도 12지파로 구성하고 있다. 레위지파가 제사를 맡기 위해 빠져 나갔을 때 요셉지파가 그의 두 아들들 므나쎄와 에브라임 두 지파로 나뉘어 참가 시킴으로써 12지파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예수의 12제자의 경우도 그렇다. 유다가 자살을 하자 제자단은 마티아와 바르나바 둘 중에서 제비를 뽑아 보선을 하여 12을 채웠다. 12이라는 완전 숫자로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이 12지파의 부족연맹채는 매우 특인한 것이다. 그리이스나 이태리의 신성동맹체나, 인보동맹체와 비교하는데, 성읍국가나 도시국가에서의 동맹은 정치가 그 목적인데 비해서, 여기서는 바로 종교가 목적이라는 점이다. 종교적 의무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부족마다 돌아가며 성소를 관리하는 것이다. 세켐 집회의 증거가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여호수아가 이 세켐에서 부족의 조직체를 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하느님의 다스림을 내건 신정체제의 동맹체였다. 나중에 이 중앙성소가 실로로 옮겨지지만 처음에는 바로 이 세켐이 중앙성소였다. 실제로 고고학은 로마 이전의 성전 중 가장 큰 고대 성전의 기초를 바로 세켐에서 찾았다. 판관기 9,4에 보면 바알 브릿(계약의 주님)이라고 그 신전의 이름이 붙여진 것을 보게 된다. 어떻든 이스라엘 부족들이 국가로 성장하기 이전에 각각의 부족들이 강력하게 결속되었던 구심점은 바로 야훼 하느님 신앙이었다는 점이다.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 사울이 왕정을 세우기까지 이스라엘의 동맹체제는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었음을 판관기가 보여준다. 물론 군사적 투쟁의 형식으로 엮어지지만, 내면에는 종교적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판관기가 서술하고 있는 양식은 일정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의 신을 섬겨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못할 짓을 하였다. 그래서 야훼는 그들을 …이민족에게 넘겨 주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 년동안 그들을 섬겼다. 이스라엘은 야훼께 울부짖었다. 그리고 잘못을 빌었다. 야훼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고만 계실 수 없었다. 야훼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하여 한 구원자…세우셨다. 그가 …이방인들을 쳐 이겼다. 그리고 그가…년동안 평화롭게 다스렸다.”
대동소이하지만 거의가 이런 형식 속에서 판관들이 소개된다. 배반하고 벌을 받고, 후회하고 용서 청하고, 그래서 하느님은 용서하고 구원한다. 그러면 다시 배반하기를 번번히 한다. 7번씩 70번까지도 용서하시는 하느님과 뻔뻔스러운 인간의 동일한 잘못의 반복을 바로 이곳에서 보게된다. 목덜미가 뻣뻣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이러한 영성적 차원 이외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긴 했어도 문화적으로는 역지배 당했다는 사실을 긍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울을 왕으로 내세우는 결정적인 동기가 된다. “우리는 왕을 모셔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다른 나라처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다스려줄 왕,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를 이끌고 나가 싸워줄 왕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사무엘 상 8,19-20). 이들은 이웃 국가들의 번영, 문화, 종교를 부러워했다는 사실이다. 다윗이 돌멩이로 철갑옷을 입은 골리앗과 대결을 벌이는 것은 석기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이스라엘과 철기문화권을 이룩한 이웃국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준다(사무엘 상 17,12-58).
판관기에 나타나는 이방인들의 신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이다. 바알이란 ‘주인’ 또는 ‘소유주’를 뜻하며 땅을 소유하여 풍산을 관장하는 남성의 신을 가리킨다. 그리고 바알의 배우자로서 아스다롯은 바알랏(안주인)이라는 여신의 개별적인 이름이다. 이러한 신들이 지방마다 있다고 여겼으므로 바알과 아스다롯이 도시의 수만큼이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당대의 농부들은 땅을 신들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토양의 결실에 달려 있는 비옥한 지대에서는 자연의 신비를 종교적 차원으로 해석했다. 어느 한 지역의 바알을 바로 그 지역의 ‘주인’ 또는 ‘소유주’로 생각했고, 그 땅의 풍요로운 생산은 바알과 그의 배우자 아스다롯 사이의 성적 관계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비가 와서 물이 땅과 섞이면 신비로운 풍년을 이룩한다. 이 놀라운 자연의 소생이 바알과 그의 아내 아스다롯의 성교에서 비롯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인간은 신들의 성혼을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바알의 성관계를 의식을 통해 재연하여 번식력을 그들의 행위에까지 미치게 함으로써 자연의 번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제사로서, 종교의식으로서, 매음행위가 가나안의 종교의식의 특징을 이루었다(신명 23,18 : 이스라엘의 딸들은 아무도 성소에서 몸을 파는 여자가 되지 못한다.

이스라엘의 아들들도 아무도 성소에서 몸을 파는 남자가 되지 못한다.). 남자는 바알과 여자는 아스다롯의 성행위를 모방함으로써 이들 두 신을 결합시켜 풍산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감응마법 : 인간이 신들의 행위를 모방하면 그런 행위가 실제 일어나게 된다고 믿는 것). 우리는 나중에 예언자들이 하느님 야훼를 떠나 이방인들의 신을 섬기는 일을 두고 간음이라고 고발하는 이유가 여기서 더욱 더 잘 이해된다. 물론 이러한 종교의식은 가나안 만이 아니라 에집트(오시리스 또는 호루스와 이시스 또는 하토르), 바빌론의 타무즈와 이쉬타르 여신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이것을 극화한 타무즈 축제나 이시스 축제가 있었다. 이것은 이들의 종교가 에로티시즘, 즉 성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자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생존이 걸린 종교의식이었다는 점이다.
성과 관련해서 야훼는 바알신처럼 달리 배우자가 없고, 여성과 남성으로 구별되지도 않고 있다. 성이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차이점은 가나안 사람들이 감응마법 등의 마술로써 신을 지배하려는 데 비해서 이스라엘 신 신앙은 오로지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며, 하느님은 지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제 유목민족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이란 일정한 지역에 정착함으로써 농경생활로 전환함에 있어서 이러한 풍산신을 무시할 수 없었던 배경이 깔려 있다고 보겠다. 이스라엘의 신 신앙은 이러한 험란한 고비를 넘어 야훼 하느님을 고백해야 했다. 여기서 성서의 작가들은 하느님을 “질투하는 신”으로 야훼를 자주 소개하는 뜻도 어느 정도 알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러한 이방인들의 신들의 유혹에서 이겨낼 수 있도록 부추긴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서 절충이나 타협할 수 없는 절대 유일신앙의 한 표현이라고 본다.
(판관들이란 계약의 중재자로서 비세습적이었으며 카리스마적 인물이었다. 이미 왕정제를 시도하려던 시기가 있었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 신정체제에서 왕정체제로. 이 판관들이란 군장과 제사장의 겸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4 예언자들의 하느님
예언사상을 특징짓는 근본적인 요소 중 하나가 하느님이 자연과 역사의 주권자라는 주장이다.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이 과연 모세부터 시작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우선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이 하느님을 유일한 신으로 믿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들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유일신 신앙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으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였다고 말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일신 신앙을 모세에게 드려는 시도가 있지만 그렇게 단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만일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정의의 근원이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에집트에서나 사막에서나 파레스티나에서나 한결같이 권능을 행사하시며 성(性)도 神話도 지니지 않으시며 사람의 형상을 하셨으나,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어떤 형상으로도 나타낼 수 없는 분이신, 그러한 하느님의 존재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모세가 유일신 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초기 이스라엘에서 유일신 사상이 논리적으로 명확히 언급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도 모세의 하느님이 창조 및 우주에서의 모든 권능을 쥐고 계신 분, 즉 다른 신들을 이스라엘에 대해 실격시킬 뿐만 아니라 우주 안에서의 제반 기능을 박탈하며 그 신들을 아예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모세의 종교가 유일신교라는 말은 정당하다고 설명한다(존 브라이트).


이 자료가 모세 시대의 사건들을 차례대로 상세히 서술하려는 취지를 보이지만 그 자료 가운데 상당수가 후대의 믿음이나 교의를, 말하자면 과거의 인물들을 이상화하여 역사적으로 샐재하지도 않았던 믿음이나 교의를 그들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던 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세에 관한 성서 자료 속에는 명백히 모세의 종교가 유일신교가 아니었다는 견해를 용납하지 않는 암시들이 있다. ‘야훼께서 에집트인들을 조롱하셨다’(출애 10,2)라는 귀절이 있긴 하지만, 야훼의 관할권이 에집트까지 미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인식이었다. 그의 민족적 신분은 그가 특별히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출애 7,16; 9,1.13)이라고 불리운다는 사실에서 암시된다. 십계명이 모세와 직접 관련된다고 해도, 첫째 계명은 다른 신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야훼를 숭배하라는 탄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출애 18,11에 기록된 ‘야훼는 모든 신들보다 더 위다하다’라는 말도 다른 신들의 존재를 암시하며, 이밖의 모세시대에 관련된 다른 구절에서도 이교도의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출애 34,15-16; 민수 25,2).
나아가서 출애급기 전반에 걸쳐 다소 원시적 개념들이 야훼와 연결되어 있다. 야훼는 천둥과 번개에 에워싸여 시나이산에 체류하며, 인간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그에게 접근할 수 있다. 또 야훼는 궤 속에 거주하며 그곳에서 다소 마술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대화를 갖는다. 어느 제단에서나 야훼께 제사를 드릴 수 있지만 제단을 만들 때 다듬은 돌로 지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 금제(禁制)는 돌을 다듬으면 그 안에 사는 신의 마음을 어지럽힌다는 원시신앙으로부터 유래한다. 야훼가 자신의 백성을 위해서 전쟁하러 나간다는 인식은 모압의 그모스나 아시리아의 아수르의 경우와 흡사하다.
그러므로 비록 모세의 하느님은 자신을 직접 모세에게 계시한 하느님이긴 하지만 그 하느님은 오로지 이스라엘 민족만을 관할하는 이스라엘의 민족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일신교는 국가적 한계선을 초월하는 초국가적 신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의미라고 한다면 모세의 하느님은 유일신일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에게만 유일신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모세의 하느님이 유일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이다. 이 당시 모든 민족들이 민족의 단위로서 그들의 신들을 생각하고 있었고, 다른 국가와 달리 그들이 다신을 섬기는데 비해 이스라엘은 유일신을 섬겼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세의 신개념은, 다시 말해서 다른 나라의 신들을 인정하는 것은 모세 이후 예언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갈멜산에 바알신 숭배자들과 대결하던 엘리야도 팔레스티나의 신을 인정하고 있다. 바알의 능력이 야훼보다 못하다는 것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격적인 유일신 사상은 바로 8세기 이후의 예언자들에 의해서 시도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의 영토 안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격리되어 살 때까지는 다른 세계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8세기 중엽 아시리아 세력이 크게 부각되어 시리아 및 팔레스티나 전역을 장악할 지경에 이르자 이스라엘은 이제까지 결코 겪어보지 못한 그런 대규모적인 세계사의 움직임에 직면하게 되었다. 막강한 앗시리아의 군대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저희 민족신의 한계성을 느겼다. 현재 이들이 처한 긴박한 상황에서는 야훼도 조금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신이었다.
아모스가 등장한 것은 이와같이 이스라엘이 침략군에게 삼켜질 위험에 직면한 때였다. 아모스는 현재 벌어진 사건들 앞에서 야훼가 무력하다고 보기는 커녕 그 사건들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야훼의 심판일 따름이라고 해석하였다. 아모스에 의하면 야훼는 당신의 도덕적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비이스라엘 민족들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야훼는 지상의 모든 가족들을 다 알고 계신다’(아모 3,2)라고 암시하고 있다. 야훼께서는 오로지 이스라엘에 관심을 표명하신다고 인정하기는 커녕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너희는 내게 에디오피아인들과 마찬가지가 아니더냐?
이스라엘 백성아,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스라엘을 에집트 땅으로부터,
필리스티아인들을 갑돌로부터,
시리아인들을 키르로부터 끌어올리지 않았더냐?(9,7)

이러한 선언은 8세기의 이스라엘인들을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이말이 야훼의 눈에는이스라엘이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인들과 다를 바 없으며, 이스라엘을 에집트에서 끌어낸 것처럼 지중해에서 필리스티아 사람들을, 멀리 동쪽에서 아람인들을 끌어내셨다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이나, 그들의 적이었던 필리스티아인들이나,이스라엘을 핍박해 온 시리아인들이나 모두 그 기원과 역사가 바로 야훼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된다. 이러한 선언은 그들의 신들도 결국 야훼께 속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 결국 아모스는 야훼가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신이라는 관념이 타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밝히는 동시에 그분의 주권은 오히려 다른 민족들에게까지 널리 미치는 것임을 선언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신학사상에 있어서 중대한 발전을 보여주는 셈이다.
같은 시기에 소명을 받은 호세아도 아모스보다는 관심이 덜하지만 아모스와 마찬가지로 아시리아가 당시의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을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결과로 해석하였다.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될 것이지만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야훼라는 것이다. “내가 멀지않아 이즈르엘의 피에 대해 에후 집안을 벌할 것이며, 이스라엘 집안의 왕조가 종말을 고하게 할 것이다”(1,4). 아시리아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대행하는 야훼의 도구가 된다. 아시리아가 재기한 것도 또 정복을 거듭해 오는 것도 모두 이스라엘의 멸망계획 안에 들어있는 한 과정인 것이다.
당시의 엄청난 사건들을 계획하고 주재하는 장본인이 바로 야훼시라는 선언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이사야였다. 그 시대 아하즈왕은 야훼보다 시리아 신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시리아 침공을 막기 위해 앗시리아의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다마스커스로 가서 디글랏빌레셀에게 신하의 예를 표하는 한편 그곳에 세워진 제단에 경탄한 나머지 예루살렘에도 그와 유사한 제단을 세우고(열왕 하 16,10-11), 이 새 제단에서 몸소 제사를 드렸다(열왕 하 16,12-13). 역대기 작가는 아하즈가 “시리아의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므로, 이제 나는 그들이 나를 돕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제사를 바치겠다.”고 말한 것을 전한다(역대 하 28,23). 유다의 왕 아하즈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그같이 중대한 국제적인 사태 앞에서 무력한 신이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의 충고를 무시하고 다른 방도를 찾았다. 이사야가 아시리아의 권력은 하느님의 손에 들린 복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선언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생소했음이 분명하다.

아, 아시리아, 나의 분노의 몽둥이, 내 진노의 막대기여
믿음없는 한 민족을 치라고 내가 그들 보냈으며,
내 진노의 백성을 치라고 내가 그에게 명령하였으니
매질하고 약탈하며
거리의 진흙처럼 그들을 짓밟으라 하였도다(10,5-6).

이사야는 예언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모든 국제적 사건들을 결정짓는 요소는 곧 얏훼의 손이라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하느님이 모든 민족에 대해 주권을 지니시며 당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들을 보호하신다는 이 선언은 이스라엘 종교사상에 하나의 중대한 요소를 마련해 준 것이다.
모든 민족의 움직임 속에 야훼의손을 볼 수 있다는 사상은 예레미아 예언자에게서도드러난다. 그보다 앞선 예언자들 보다 더 위기에 처한 시기에 할동하였던 예레미아였기 때문에 이러한 사상은 자연스럽게 그의 가르침의 근본이 되었다. 예레미아는 유배자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바빌론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가정을 꾸미라고 권한다. 그것은 야훼가 바빌론에도 현존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이다(29,11-12). 야훼는 성전이나 민족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그분을 진심으로 찾기만 하면 어디에서나 그분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앙에 기인한다. 야훼를 이런 관점에서 이해했기 때문에 예레미아는 이방민족의 신들을 “쓸모없는 것”(2,5), “물이라곤 저장할 수 없는 깨진 물통”(2,13)이라고 몰아부칠 수 있었다. 예레미아는 대제국이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아울러 예언하였다.
제2이사야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 가운데 누구보다도 가장 장엄하게 야훼 하느님이 모든 민족은 물론 역사와 창조 일체를 지배하시는 분이심을 선언하였다. 페르샤의 부흥, 바빌론 제국의 멸망 등의 국제적인 사건도 야훼 하느님의 눈에는 ‘물동이에서 떨어지는 한방울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으며(40,15), 야훼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40,17)을 확신하고 있었으며, 야훼는 ‘왕자들을 파멸케 하고 세상의 지배자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40,23)분으로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신들은 허수아비, 누군가 그것에게 외쳐도 그것은 대답도 못하며, 그자를 곤경에서 구해내지도 못할 ‘경멸의 대상’이라고 공언한다(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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