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만족 Normannen

 노르만족  ~族  Normannen

  원래는 노르드만족이라 불렸던 바이킹족으로서, 이들은 바다에서 약탈과 정복을 일삼으면서 스칸디나비아, 특히 덴마크로부터 출발하여 유럽의 해안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8세기 말경부터 프랑크 제국의 해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911년 센 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던 노르망디에서 노르만족은 그리스도교와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접촉하게 되었다. 프랑스화된 노르만족은 11세기 중엽에 이탈리아의 남부 지역과 시칠리아에 왕국을 건설하였다.


  교황 레오 9세(1049~1054년)는 교회와 수도원을 엄청나게 황폐화시킨 노르만족에 대항하여 출정하였으나, 1053년 교황의 군대는 아풀리아(Apulien)에서 참패하였고, 교황 자신도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9개월 동안 베네벤토(Benevent)에서 감금 생활을 해야만 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2세부터 노르만족에 대한 교황의 정책은 변화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2세는 1059년에 개최된 시노드에서 노르만족에게 아직은 사라센족의 수중에 있던 칼라브리아(Kalabrien), 아풀리아 그리고 시칠리아를 봉토로 주었다. 노르만족은 교황에게 신하로서의 충성을 서약하였고, 교회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자청하였다. 특히 노르만족은 자유로운 교황 선거를 보장하였다. 노르만족에게 남부 이탈리아 지역을 봉토로 하사한 사건은 독일 제국의 권리 침해를 의미하였다. 그래서 독일과 로마 사이에는 관계 단절이 발생하였다.


  독일의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오 7세 사이의 불화로 하인리히 4세는 1084년 초에 로마 도시 전체를 점령하였다. 단지 ꡐ천사의 성ꡑ만을 지키고 있던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독일의 황제 하인리히 4세에 의해 퇴위당하였고, 대립 교황이 베드로 대성전에서 베드로좌에 착좌하였으며, 하인리히 4세는 대립 교황에 의해 치러진 대관식을 거쳐 황제로 즉위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위치가 점점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노르만족이 나타나 교황을 감금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노르만족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로마 시를 매우 심하게 황폐화시켰다. 이러한 사실은 로마의 시민들로 하여금 노르만족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교황직 자체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독일의 황제 하인리히 6세가 시칠리아를 포함한 남부 이탈리아 지역을 점령하자 로마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인리히 6세는 1197년 32세로 요절하였고, 그의 후계자 프리드리히 2세는 겨우 3살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교황직의 위기는 지나가게 되었고,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 이르러서는 교황의 주권이 절정을 이루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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