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

 

5.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구세사적인 효력’을 발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총의 충만이 우리 구원을 위해 세계에 현존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골로 1,19이하). 그러므로 이 은총은 강생에 입각해서 인간적으로 세계에 선사된다. 또한 이 은총은 인간적 활동에 입각해서 인간적으로 세계에 분배된다. 이 인간적 활동은 지상에서 교회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간성이 인류 구원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 인간성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 중에서 자기 안에 구원을 현실화한 인간들의 모임인 교회도 구원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 사건은 교회 안에서 완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선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와의 연대성은 교회실존의 근거이며,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성취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1)


“우리의 이 인식을 신학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정식화하여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그리스도론은 교회론 안에서 성취된다. 그리스도론은 구세사적으로 볼 때 교회론의 전제이며 교회론은 그리스도론의 계속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구세사의 정점이요 중심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이다. 이러한 통찰은 한 인물이나 한 사건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와 갖는 관계에 존속됨을 깨닫게 해 준다.”2)


앞선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마리아가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는 하느님과의 연대감으로 인해 세계를 위한 구원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론이 교회론에서 성취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한 인물의 구세사적 가치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 속에서 측정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이 됨으로써 교회 안의 그리스도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마리아는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의해 언급되어져야 한다. 그리스도론이나 교회론에서 분리된 진정한 마리아론이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마리아를 그리스도께로 더 치중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교회에 더 치중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구원을 이룩하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그리스도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만 구원활동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3)


공의회는 교회헌장 안에서 마리아에 관한 문제를 헌장의 결론격 위치인 맨 끝자리에 배치함으로써, 또 8장 안에서도 본론부분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마리아와 교회 안에서의 마리아로 전개해 나감으로써 이 점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공의회는 제3부에서 성신강림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싸우는 교회의 종막을 드리우실 때인 마지막 빠루시아(Parousia)까지의 교회의 역사 과정동안 인류를 위한 마리아와 교회와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 60항에서는 유일 중재자(Unus Mediator)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성에 종속된 마리아의 참여적(Participata), 모성적(Materna) 중재성4)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고, 61항에서는 제2부(54-59항)에서 충분히 언급한, 아드님의 지상생활 동안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이룩한 구원사업 안에서의 그녀의 협력을 다시 한번 분명하고도 명확한 표현으로 증언하고 그 결론으로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모친이 되셨다」고 확언하며, 62항에서는 영적모성의 지속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63-64항에서는 교회의 전형이신 마리아에 관해서, 65항에서는 완덕의 모범이신 마리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이 장에서 살피고자 하는 마리아와 교회간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공의회가 마리아에 관하여 확인한 점, 즉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전형이라는 점을 모두 고찰해 보아야 한다.5) 따라서 우리는 이제 교회헌장 8장의 제3부(60-65항)의 61-62항에서 언급하고 있는 마리아의 교회에 대한 영적모성과 63-64항에서 말하고 있는 교회의 전형으로서의 마리아를 살핌으로서 교회 안에서의 마리아의 위치와 역할을 고찰하고자 한다.




5.1. 마리아의 모성과 교회


공의회는 교회헌장 61-62항에서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영적모성과 그 지속성을 논하고 있는데 역사 안에서 우리에게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을 확인시켜 주는 문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8장이 처음이었다.6)


초대교회 때부터 이레네오, 에삐파니오, 암브로시오, 아우구스띠누스 같은 교부들은 마리아의 영적모성에 관한 교리를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은 다소 약하고 부분적이다. 따라서 이 영적모성에 관한 신학의 발전을 중세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신학적 표현이나 연구가 확립되기 이전부터 교회와 신자들은 마리아의 영적모성을 인정해 왔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의 의식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이런 자세는 지적 인식이나 발견에 의한 진리에 근거하여 나타난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존재와 활동이 신자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7)


공의회는 61항8)에서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이 은총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과 그 역할의 근거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로 부를 때, 이 칭호의 본질적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보편적인 인간적 체험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칭호의 내용을 명백하게 설명해야 할 입장에 처하면 대답은 그리 쉽지가 않다. 우리의 자연적인 모든 모성의 특성을 마리아께 적용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육체적으로 마리아의 자녀들이 아니라, ‘은총의 세계에서’ 자녀들이기 때문이다.9)


공의회는 마리아의 인류에 대한 모성적 역할의 근거로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그분께 대한 협력을 들고 있다. 본문을 살피자면 공의회는 먼저, 말씀이신 성자의 강생과 마리아의 신적모성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섭리에 따라 영원부터 계획하신 섭리이며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구세주의 좋은 어머니」이고 구세주의 구세사업에 있어서 남보다 「각별히 친절한 주님의 동반자」요 「겸손한 종」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마리아와 하느님과의 일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를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기르시고 성전에서 성부께 바치시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그 아드님과 함께 수난 하신>(교회 61) 사실을 말하고, 이 일치는 전 인류 안에 마리아의 덕행과 인간적인 공로를 통하여 전 인류에게 초자연적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한 일치였음을 지적한다.


우리에게 대한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원행위의 결과에서 나온다. 사실 마리아가 성자를 위하여, 성자와 함께 하신 모든 것은 그 분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생활과 결부가 되는 것이다.10)


62항11)에서는 마리아의 인류를 향한 이러한 영적모성이 「영구히 끊임없이 계속된다」면서 그 지속성과 실천성 그리고 모성적 중재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리아를 과거 역사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구세주의 어머니’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모성은 천상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확언하고 있는 것이다. 즉 “구세주께서 교회의 각 영혼과 지체에 구원의 열매를 나누어주시기 위하여 천상 어좌로부터 당신의 중재행위를 중단없이 계속하고 계시듯이(히브 7,25), 성 마리아께서도 영혼들이 초자연적 생명을 지니게 하기 위하여 천상에서 당신의 사랑과 전구로써 당신의 모성을 계속 실현하고 계시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여전히 구원된 이들의 어머니이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시다.”12)


공의회는 62항의 첫 서두에서 은총의 세계 속에서 마리아의 영적모성의 지속성과 실천성을 증언한다. 「천사의 아룀을 듣고 충실히 동의하신 그 순간부터」 마리아는 자유로운 응답으로 신적인 모성에 동의하셨고 그럼으로써 생명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며, 또한 자신의 아들인 예수께서 펼치신 구속사업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참여할 수 있게 된 초자연 생명의 세계 안에서 우리의 영적인 어머니가 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성은 「뽑힌 이들의 수가 찰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된다.」 왜냐하면 영원한 구원과 질서 지어져 초자연적인 생명과 상통하는 마리아의 모성이기 때문이다.13)


그리고 “공의회는 복되신 동정녀가 아직도 지상을 순례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천국에서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모성과 자녀의 질서 안에서 당신의 모성적 직무를 실천하고 있음을 <하늘에 올림을 받은 후에도 이 구원의 역할을 그치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여러 가지 당신 전구로써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 주신다>고 말하면서 드러낸다.”14) “그러나 공의회는 마리아의 모성이 끊임없는 영구한 중재로서만 끝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당신 모성애로써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이 지상 여정에서 위험과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돌보시어 행복된 고향으로 인도해 주신다.> 그러므로 이 언급은 마리아와 우리 각자의 관계가 인격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일반적인 관심만을 보이시는 분이 아니다. 공의회의 이 언급은 우리가 마리아께 ‘우리 위해 빌으소서’하며 기도할 때, 인격적인 관계에서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가리키는 것이다.”15)


공의회는 마리아의 천상적 모성의 직무를 표현하기 위한 호칭들을 시사하면서 이렇게 증언한다. <그 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되신 동정녀를 변호자, 보호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공의회는 문헌 안에 나타나 있는 이 호칭들에 대해서 특히 ‘중재자’라는 호칭에 대해서 찬반의 논의를 가져야 했다.16) 그리고 오랜 찬반의 토의 끝에 <그러나 이것은 유일한 중재자 그리스도의 지위와 효능을 조금도 감하지도 가하지도 않는다는 의미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결론을 못박았다.17)


공의회는 이미 앞선 60항에서 <사람들에게 대한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은 그리스도의 유일 중재성을 흐리게 하거나 감소시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고 지적하였었다. 60항에서 그리스도의 유일 중재성을 못박고자 인용한 디모테오 전서 2,5-6의 표현은 적극적인 하느님의 뜻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표현이 2차적이고 종속적인 다른 제2의 중재성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는다.18)


사람들에 대한 마리아의 역할, 죽 그리스도 안에서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리아의 역할을 그리스도의 유일하신 중재의 곁에서가 아니라 그 안에 두어야 한다. 마리아는 유일하신 중재자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리아는 중재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영향이 구원에 꼭 필요했다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느님의 호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공적의 충만함에서 흘러나와 그리스도의 중재에 의해 그리고 전적으로 그 중재에 의존하며, 그 중재로부터 모든 능력을 얻는 것이다. 또 그러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직접 일치하는 것을 결코 방해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도와준다. 한 분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중재자이시고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 그리스도에 자신의 중재를 보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직접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은총을 받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전선에서 직접 그 은총의 전류를 끌어내는 것이다. 마리아는 어머니의 역할로 그리스도께 종속된 중재를 펼침으로써 우리를 보다 한층 더 그리스도께 접근시키는 것이다.19)


62항에서는 마리아의 중재성을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하느님의 선성에 대한 신앙교리에서 제공된 유비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는 성직자나 평신도나 여러 모양으로 참여하는 것처럼, 또 하느님의 유일한 선이 피조물들에게 서로 다른 모양으로 널리 퍼지듯이, 구세주의 중재도 유일한 것이지만 그 유일한 원천에 참여하는 피조물들의 협력을 배제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요구하는 것이다>(교회 62). 사제직무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이고 모든 사제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 중재자들이다(히브 5,1이하). 그러므로 만일 성직자들과 세례 받은 이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단일한 사제직에 참여한다면 그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단일하고 유일한 중재성에 참여하는 것이고 예수의 중재성을 결코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복되신 동정녀께서도 예수의 구원사업에 참여하셨고, 따라서 「유일 중재자 그리스도의 지위와 효능을 조금도 감하지도 가하지도 않는」 모양으로 그리스도의 중재에 참여한 것이다.20)


공의회는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단일하고 유일한 중재성에 종속된 마리아의 탁월한 모성적 중재성을 확언하고 나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성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결합하도록 권고하면서 62항을 마친다.:<교회는 주저함이 없이 이와 같은 마리아의 종속적 역할을 선언하고, 끊임없이 체험하며, 신도들의 마음도 이러한 모성적 보호로 중재자이신 구세주께 보다 깊이 결합되도록 권고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고찰을 통해 우리는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영적모성은 비록 마리아의 신적모성과 구별된다 할지라도,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신적모성에서 연유하는 것이 영적모성이며, 영적모성은 이 신적모성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말하자면, 마리아의 영적모성은 신적모성의 연장이다.”21)




5.2. 교회의 전형(typus)인 마리아


공의회는 마리아의 천상에서의 중재를 통한 교회지체의 구원과 성화에 협력하는 마리아에 대한 논술을 마치고 나서, 63항과 64항을 통하여 마리아와 교회와의 단일한 다른 관계의 윤곽을 그려 주고 있다. 즉 동정성(童貞性)과 모성애 그리고 그 양자에 공통된 덕행이 지닌 특성들 위에 기초되어 있는 전형(典型) 또는 유사성의 관계이다. 교부들의 증언에 의하면 마리아는 교회의 전형, 모형 또는 원형이다.


공의회는 63항22)에서 마리아가 지니고 있는 특전을 통하여 마리아와 교회와의 일치를 증언하고 있다.:<복되신 동정녀는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은혜와 역할로써 아드님 구세주와 결합되신 그만큼 당신의 특수한 은총과 임무로써 교회와도 밀접히 결합되어 계신다.> 그리고 공의회는 다시 마리아와 교회간에 병행론을 말하는 암브로시오의 말을 대두시킨다.23):<신앙과 사랑과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에 있어서 천주의 모친은 교회의 전형이다.>24) 이 덕행들은 -신앙과 사랑과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 즉 신·망·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교회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 덕행들은 마리아 안에서 독자적이고 탁월한 모양으로 실현되어 있으므로 마리아는 교회의 전형이자 모형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실지로 마리아가 영보 때에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으로써 하느님의 바라심에 승낙하고, 거기에 일치하고, 그 일치에 따라 한 평생을 살았던 것처럼 교회는 하느님의 바라심에 완전히 일치해서 살고 있다. 교회는 마리아와 같이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신앙과 사랑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믿음, 희망, 사랑의 덕은 특히 교회가 본받아야 할 뛰어난 덕이며, 마리아는 교회의 전형이 되는 것이다.25) 그리고 이 전형과 모형의 개념들은 대형(對型)과 예형(例型)에 관련된 통상적인 하위관념을 암암리에 말하는 전형, 모형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의 전형이고 모형이다.:<당연히 교회의 신비 안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탁월하고 독자적인 어머니와 동정녀로서의 모범을 보여 줌으로써 뛰어난 위치를 차지한다.>


뒤이어 공의회는 마리아가 동정녀이자 어머니로 나타내 보이신 「탁월하고 독자적인」 방법을 증언한다. 첫번째로는 <마리아는 믿음과 순명으로 바로 성부의 아들을 세상에 낳아 드렸다. 남자를 몰랐지만 성신의 그느르심을 받고 새 에바로서 옛 뱀에게 속하지 않고 하느님의 천사를 믿어 조금도 의심치 않으셨다>고 말하면서 마리아의 동정성을 증언한다. 여기서는 마리아의 물리적 또는 신체적 동정성에 대해서 확언할 뿐 아니라, 그녀에게 전달된 천상 메시지에 대한 그녀의 신앙과 신뢰 그리고 한 분 하느님께 향한 그녀의 완전한 사랑 안에 자리잡고 있는 윤리적 동정성울 확인한다. 다시 말해서 신적모성과 일치된 신체적 동정성을 지니게 한 윤리적 동정성을 -남자를 몰랐지만, 마리아는 그녀의 믿음과 순명으로 성부의 아들을 세상에 낳아 드린 동정성- 확언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마리아가 낳으신 아들을 하느님은 그 형제들인 많은 신도들 가운데에 맏이로 삼으셨다. 마리아는 이 신도들을 낳아 기르는데 모성애로 협력하신다>며 마리아의 모성을 증언하고 있다. 공의회는 여기서 마리아의 신적모성과 「신도들을 낳아 기르는데」에 모성애의 협력을 실천하시는 신자들의 질서 안에 보편적인 영적모성을 동시에 증언하고 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사랑으로써 교회 안에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써 신도들이 태어나도록 협력하셨기 때문이다>(교회 53). 신도들을 낳아 기르는 데에 마리아의 모성적 협력은 앞선 항목에서 언급한 바로 「천상의 여러 가지 전구」(교회 62)에 있는 것이다.26)


이렇게 마리아의 동정성과 모성 그리고 성덕에 대한 모범을 밝히고 나서 공의회는 64항27)에서 마리아의 모성과 동정성을 교회가 지녀야 함을 말해 준다. 동정녀이고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같이 교회도 처녀이고 어머니이다.28)


교회는 마리아처럼 어머니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선교, 세례, 성신으로 잉태되고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을 새롭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교회는 마리아의 깊은 성덕을 바라보고 그 사랑을 본 받으며 성부의 뜻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스스로도 어머니가 된다. 과연 교회는 복음 전도와 성체성사로서 성신으로 잉태되어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나는 자녀들을 낳아 줌으로써 그들에게 불사의 새 생명을 준다.> 또한 교회의 모성은 마리아의 모성처럼 풍요로운 것이다. 즉 대(大) 레오 교황의 말과 같이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의 기원이고 머리의 탄생은 전 지체의 탄생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세례와 성신을 통해 태어난 자녀들을 머리이신 그리스도와의 견고한 일치로 항상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29)


또, 교회는 마리아처럼 처녀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신랑에게 서약한 충실을 깨끗하고 완전히 지키고, 자신의 어머니를 본받아 성신의 능력에 의해 상처 없는 믿음과 견고한 희망과 성실한 사랑을 깨끗한 처녀처럼 보전하기 때문이다.:<교회는 또한 동정녀로서 신랑에게 바친 완전한 신의를 깨끗이 지키며, 주님의 어머니를 본받아 성신의 능력으로 처녀답게 완전 무결한 신앙과 굳은 희망과 진실한 사랑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이처럼 마리아와 교회는 깊은 관계가 있지만 교회의 전형으로서 마리아와 교회 자체는 뚜렷한 구별이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성스러운 것이다. 즉 교회는 은총과 신앙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지만 한편으로는 죄인인 지체로 구성되어 있어 죄인의 교회이다. 마리아는 59항에서 가리키고 있는 바와 같이, 지상 생활을 마치고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결정적인 단계에 도달하였다. 그렇지만 죄인인 교회는 그 결정적 단계를 향하여 계속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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