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성월의 의미와 유래

 

    5월 성모성월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 특별한 신심을 드리기 위하여 봉헌한” 달로써, “세계 도처의 신자들이 하늘의 여왕에게 표현하는 사랑의 달”이다. 성모성월 동안 모든 신자들은-교회 공동체와 개인 혹은 가정 공동체들은-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마리아께 드리고, 기도와 찬양을 통해 어머니 마리아의 숭고한 사랑을 찬송한다.1)


    성모님께 대한 신심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성모님을 기리는 여러 형태․형식의 찬양기도문이 나타나기도 하였고, 또한 여러 가지로 성모님의 신앙을 기념하는 성모축일이 생겨났다. 교회의 교도권은 그럴 때마다 건전한 전통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그것을 판단해 주었다. 묵주의 기도 역시 이러한 교회의 성모 신심에서 생겨났고, 매주 토요일을 성모의 날이라 하여 성모미사를 바치던 관습2)도 중세 시대부터 시행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많은 부분이 사라지거나 소홀히 되고 있으나, 공의회의 정신은 “세기를 통하여 교도권이 권장해온 신심행위 풍습을 중히 여겨라”3)고 한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신심행위의 한가지로서 특히 5월은 날마다 또한 특별한 열성을 가지고 자주 성모님의 영광을 찬미하여 열심한 마음으로 그분께 기도하도록 제정된 달이다. 성모성월이 오늘날처럼 5월에 시행되고 널리 보급된 역사를 살펴보면, 중세 이전(以前)에 있었던 5월 신심에서 비롯된다.


    복자로 공경을 받는 헨리 세우세(Heinrich Seuse)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5월을 당신께 대한 신심의 달로 봉헌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받고 난 후(後)부터 5월에 특별히 성모님을 공경하는 신심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일부 지역에서만 행해지던 것이 중세 터어키나 사라센족 등의 침입 등으로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서 ‘적으로부터의 보호’받기를 성모님께 청하게 되면서 5월 신심은 널리 알려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이는 13세기 말(末)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교회는 세속적인 축제들을 그리스도교화 하는데 노력했으며, 16세기에 이르러 ‘5월의 마리아 신심’은 예수회 회원들 사이에서 특히 사랑을 받았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예수회 로마대학 학생들이 성모 성월 행사를 자체적으로 거행하였고, 이후 로마의 “예수 경당”에서 공개적으로 시행되어 전(全) 교회로 확산(擴散)되었다.


    ‘성모성월 신심’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처음 발전하게 된 것은 18세기 초엽 이태리에서부터라 하겠다. 그 후 프랑스와 이태리 지방으로 전파되어 갔고 19세기 초엽에는 벨기에와 스위스 지방으로, 19세기 중엽, 1840년대에 와서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도 전파되어 갔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모든 신자들이 다 참여하는 신심행사로 발전하게 된 것은 1815년 3월21일과 1822년 5월 16일 두 차례에 걸쳐 교황 비오 7세가 5월을 성모님의 달로 거룩히 지내고 타당히 고백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면 특별 은사를 받는다고 윤허한 후(後)부터이다.


    1859년 교황 비오 9세가 전대사를 부여함으로써 더욱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고 그로 인하여 성모성월 신심은 보편적으로 교회 안에서 제일 큰 대사의 범주에 드는 신심이 되었다. 그러나 성모성월 신심을 위한 공식기도나 예식은 제정되지 않았다. 많은 지역교회는 성모상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그 앞에 함께 모여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로사리오 기도를 매일 바치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또 다른 경우에 교회는 “말씀의 전례” 양식을 도입하여 입당성가, 시작기도, 성서봉독, 성모님을 주제로 하는 간단한 강론, 로사리오 기도, 끝기도, 성모님을 노래하는 시 낭송, 화환과 촛불을 봉헌하는 예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이 신심의 핵심은 온 세상을 통하여 성모님께 영예를 드리는데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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