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간>
복음 : 마르 15, 25-27. 33-37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올리브산에서 죽기까지 이르신 저 혹독한 고통과 괴로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는 인간적인 위로를 예수성심께 드리고 우리 죄로 인한 성부의 의노를 거두시기를 빌며, 죄인들을 위해 주님의 자비를 빌어야겠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온갖 수난을 참아 받으신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우리 죄를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영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이사 53, 4)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이사 53, 6) — 잠시 멈춘 후,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그윽히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그분께 말을 걸어보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모든 고통을 받아 지셨고, 지금도 기꺼이 우리의 고통을 나누어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습니까? 함께 살아가는 형제들이 힘겨워할 때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습니까? 능력을 탓하며 많은 일을 형제들에게 떠맡기면서도 감사의 마음보다 외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까?
바울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1고린 9,22) —-
예수님, 연약하고 멍든 제가 여기 있습니다. 어떨 때는 제가 꽤나 잘나 보여 뭐든지 저의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저의 교만과 위선 때문에 멍이 든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께서 이제 고개를 들어 보잘 것 없는 이 종에게 고통으로 여윈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십시오. 주님, 이 종은 당신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진실로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하고 멍들고 맞아 터진 당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또한 저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음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당신은 참으로 부요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당신이 가난해 지심으로써 우리는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당신이 저를 위해 얻어 주신 영적 풍요를/ 앞으로 삶에 있어 거부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십자가에서 온갖 고통 중에 숨을 거두신 당신을 보며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그렇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끊기었다.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이사 53, 8) —–
당신은 우리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한 당신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나를 살리기 위해 죽으시는 당신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 당신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문득 죽음이 두려워질 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겸손되이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저의 삶과 죽음을 오롯이 당신께 맡깁니다.

<성시간>
복음 : 마르 15, 25-27. 33-37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올리브산에서 죽기까지 이르신 저 혹독한 고통과 괴로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는 인간적인 위로를 예수성심께 드리고 우리 죄로 인한 성부의 의노를 거두시기를 빌며, 죄인들을 위해 주님의 자비를 빌어야겠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온갖 수난을 참아 받으신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우리 죄를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영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이사 53, 4)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이사 53, 6) — 잠시 멈춘 후,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그윽히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그분께 말을 걸어보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모든 고통을 받아 지셨고, 지금도 기꺼이 우리의 고통을 나누어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습니까? 함께 살아가는 형제들이 힘겨워할 때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습니까? 능력을 탓하며 많은 일을 형제들에게 떠맡기면서도 감사의 마음보다 외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까?
바울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1고린 9,22) —-
예수님, 연약하고 멍든 제가 여기 있습니다. 어떨 때는 제가 꽤나 잘나 보여 뭐든지 저의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저의 교만과 위선 때문에 멍이 든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께서 이제 고개를 들어 보잘 것 없는 이 종에게 고통으로 여윈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십시오. 주님, 이 종은 당신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진실로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하고 멍들고 맞아 터진 당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또한 저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음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당신은 참으로 부요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당신이 가난해 지심으로써 우리는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당신이 저를 위해 얻어 주신 영적 풍요를/ 앞으로 삶에 있어 거부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십자가에서 온갖 고통 중에 숨을 거두신 당신을 보며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그렇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끊기었다.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이사 53, 8) —–
당신은 우리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한 당신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나를 살리기 위해 죽으시는 당신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 당신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문득 죽음이 두려워질 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겸손되이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저의 삶과 죽음을 오롯이 당신께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