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르가리따(말가리따)의 삶,

 


1. 어떻게 위로 해 드릴까?


1647년 예수님이 프랑스 방문회 수녀인 마르가리따 마리아 성녀에게 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주 목요일 저녁, 성시간을 통해 겟세마니에서 외로이 피와 땀을 흘리시며 고뇌하신 것을 위로해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시간을 갖는 영혼에게 많은 은총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이때부터 성시간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위로를 청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위로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전달 받도록 선택받았던 말가리따 성녀의 삶에서 그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녀의 전 삶은 겟세마니에 계시는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위로하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성녀가 예수님의 뜻을 전달하도록 불리움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였구나 하는 것을 우리는 성녀의 삶에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2. 말가리따 성녀의 삶


2.1. 어린시절과 수녀원 입회


말가리따 성녀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에 대해 누구보다 뛰어난 신심을 가지셨던 분입니다. 이 성녀는 첫영성체 할 때부터 성체성사의 놀라운 신비를 아주 깊이 체험을 하게 됩니다. 첫영성체를 아홉 살때 했는데 첫영성체 후 성녀가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아홉 살이면 철부지 어린아이인데, 그때는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고 하는 재미로 한창때인 나이입니다. 그리고 실재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성녀가 첫영성체를 한 다음부터는 친구들하고 어울려 노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곳으로 물러가서 기도하는 것만을 즐겨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성체 하는 것을 가장 기쁘게 생각했고, 영성체 하는 시간을 가장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생활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성녀는 수녀원에 들어갔는데 수녀원에 간 이유도 수녀원에 가면 더 자주 성체를 모실 수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우리가 배워서 잘 알고 있듯이 그때에는 오늘날 처럼 매일 영성체를 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영성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뜨거웠기 때문에 더 자주 성체를 모시려 수녀원에 들어갔습니다.




2.2. 수녀원에서의 삶


2.2.1. 뜨거운 성체신심


수녀원에 들어가 살면서도 말가리따 성녀는 “성체 앞에 나와서 성체께 조배드리는 시간이 가장 기쁘고,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고, 영성체 하는 시간이 가장 황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성체를 하기 위해 인생을 산다고 할 만큼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2.2.2. 성체 사랑에 대한 일화


말가리따 성녀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잘 드러나는 예가 있습니다. 한번은 원장 수녀님이 성녀가 한일이 아닌데 잘못 오해를 해서 벌을 줬습니다. 그 벌이 무엇인가 하면 영성체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벌은 성녀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 세상에서 영성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형선고를 받는 것 보다 천배는 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라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성녀가 영성체를 얼마나 갈망했고, 또 영성체를 통해 주님을 모시는 걸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해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성체성사에 대해 남달리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사셨던 성녀였습니다.




3. 예수님의 요청


예수님께서 성녀를 통해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은 성체안에 계신 당신께서 인간으로부터 버림 받고, 사랑받지 못하고, 잊혀지는 것에 대해 너무 마음 아프니 이를 위로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인류가 예수님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죽었다”로 시작된 20세기는 피로 얼룩진 역사였음을 우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우리나라의 육이오 전쟁, 월남전, 걸프전, 크고작은 전쟁들, 인종간의 갈등… 공산주의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만해도 일억명에 이릅니다. 이들 희생자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이들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자녀들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예수님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인류는 파멸의 길을 걸어갑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보고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아파하시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녀는 예수님을 위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는 곧 인류를 위한 삶이기도 했습니다.




4. 성녀의 삶에서 배울점


성녀는 성체 안에 계시면서도 인간으로부터 버림받고 잊혀지는 천대와 모욕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위해,  또 예수님을 떠나 사는 사람들의 잘못을 대신 보속하고 속죄하기 위하여 그렇게 성체를 뜨겁게 사랑하고 또 흠숭하고 그러셨습니다.




5. 오늘의 겟세마니


우리도 말가리따 성녀의 성체신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겟세마니는 바로 성체 안에서 외로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있고, 성체를 영할 수 있습니다. 이 성녀는 그때 그렇게 자주 영성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자주 성체를 찾아 뵙고, 또 성체를 영하되 더 잘 준비하고, 보다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보다 더 큰 사랑과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겟세마니에 계시는 예수님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6. 이 시간


이 시간 그 동안 무관심하고 차가웠던 우리 마음을 진심으로 아파하며 예수님께 우리의 뜨거운 사랑과 위로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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