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聖週間)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전 한 주간을 성주간이라 한다. 이는 예수님이 위대한 구원사업을 이룩하는 때요, 교회전례의 정점을 이루기 때문이다. 성주간은 예수수난[성지]주일부터 시작된다. 성지주일에 사제는 홍색 제의를 입고 성지[빨마가지]를 축성하여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죽음에 처할 분이지만 그 죽음을 쳐부술 왕이며, 파괴될 성전이지만 새로이 건설될 성도 예루살렘[교회]의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다함께 ‘호산나’를 부르며 환영한다.
말씀의 전례 때에는 수난사(受難史)가 봉독된다.
성 월요일에는 예수님의 죽음[장례]를 예고하고,
성 화요일에는 제자들의 배반을 예고하고,
성 수요일에는 예수님이 당신이 어떻게 죽으실 지 예고하신다.
이 3일 동안에 특별한 전례는 없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다.
성 3 일[빠스카 3일]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사업과 하느님의 완전한 영광을 드러내는 사업을 당신의 빠스카 신비를 통하여 완성하셨다. 그분은 인간의 죽음을 당신의 죽음으로 쳐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새 생명을 마련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빠스카 성 3일은 교회 전례주년의 절정이고, 성 3일의 정점은 부활주일이다.
성 3일은 성주간의 후반부 3일인데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로 절정을 이루며 부활주일 저녁기도로 끝난다.
성 목요일
이날은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시면서 유언을 남기셨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시사를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셨다. 이 성체성사와 함께 사제직을 설정하심으로써 당신의 구원성업을 세세에 전하여 모든 이가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받게 하셨고, 올리브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외로운 투쟁을 하셨으며, 마침내 사랑하시던 제자 유다 이스가리옷의 배반으로 이교도들의 손에 붙잡히셨던 날이다.
성 목요일 전례
이날은 원래 주교를 중심으로 미사 한 대만 봉헌하고 이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와 성유를 각 본당으로 모셔가도록 분배했지만 지금은 두 가지 즉 성유 축성 미사와 주의 만찬 미사를 거행한다.
성유 축성 미사 : 예수님이 당신 사제직을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주셨음을 기념하는 미사이다.
이날 아침에 주교좌성당에서 주교와 사제단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성유를 축성한다. 이로써 주교와 사제들의 일치가 표현되고, 사제들은 약속갱신식을 거행함으로써 사랑과 봉사를 다짐하며, 축성된 성유를 나누어 감으로써 성사집행에 있어서 교구 전체의 연대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 성유는 사제들이 성세, 견진, 신품, 병자성사를 집행할 때 사용한다.
이 미사중에 신자들은 교구의 일치와 사제들의 성화와 성소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주의 만찬 미사 : 예수님이 수난하시기 전날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저녁식사로써 당신을 만인에게 성체성사로서 주심을 기념하는 미사이다. 새 계약이 맺어지고 “서로 사랑하라”(요한 13, 34)는 새 계명이 선포되는 미사이다.
대영광송을 장엄하게 노래하면서 풍금과 종을 울린 후 부활성야 미사에서 대영광송을 할 때까지 풍금과 종을 울리지 않고 영광송도 하지 않는다.
세족례(洗足禮)가 강론 후에 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을 본받아 선발된 신자들의 발을 씻는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도들의 발을 씻으면서 남기신 사랑의 계명을 상기시켜 서로 봉사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님의 뜻을 가르치는 예식이다.
사랑의 헌금을 할 수 있다. 성세, 신품,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사랑의 계명을 주시는 주님의 명에 응답하는 행위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한다.
영성체 후에 다음 날[성 금요일]을 위한 성체를 본 감실에 모시지 않고 비워둔 채 현양제대에 모시고 본 제대를 벗긴다. 이것은 예수께서 3일 동안 땅에 묻혀계셨음을 드러낸다.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슬퍼하고 주님을 주게 한 우리 죄를 미워하면서 잃어버린 주님을 다시 찾아 만날 것을 다짐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영성체 후 기도를 마친 다음 사제는 십자가를 앞세우고 현양제대로 성체를 모셔간다. 이때 신자들은 죽음의 길로 가시는 예수님과 함께 가겠다는 마음으로 이 전례에 참여할 것이다. 사제가 성체를 현양제대에 모시고 분향한 후부터 성 금요일 수난예절까지 신자들은 성체조배를 한다. 이것은 올리브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시기까지 기도와 번민으로 고통당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함이다.
현양제대로 성체가 옮겨질 때부터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예절에서 십자가를 벗길 때까지 십자가는 가리워둔다.
성 금요일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길’을 따라 죽음의 산 골고타로 오르셨고,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희생제물로서 죽으시고, 우리의 죽음을 물리치기 위해 땅에 묻히신 날이다.
성 금요일 전례
교회가 미사를 드리지 않는 유일한 날이다. 미사뿐만 아니라 다른 성사도 집행하지 않는데, 이것은 성사가 그리스도의 행위이기 때문에 무덤에 묻히신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기 위함이다.
수난예식 : 예수님이 운명하신 오후 3시경에 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목상의 이유로 더 늦은 시간에도 거행한다.
사제는 홍색 제의를 입으며 제단에는 십자가도 촛대도 제단보도 없다.
말씀의 전례 : 말씀의 전례가 엄숙하게 전개되는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게 하며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과임을 깨닫게 한다. 사제는 입장 후 즉시 제단 앞에 엎드려 주의 수난을 묵상하고 말씀의 전례를 시작하는 특별한 예식을 거행한다.
장엄기도 : 대신자들의 기도라고도 하는데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께 드리는 예수님과 그의 몸인 교회의 기도이다.
십자가 경배예식 : 비탄과 경건함 속에서 이루어진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이 십자가는 구원과 생명의 나무이며 계속 세상을 새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징이다. “내 백성아,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대답해다오” 하는 예수님의 물음에 응답한다.
영성체를 위하여 본 제대로 성체가 옮겨지고 남은 성체는 별실에 모셔둔다.
성 토요일
이날은 교회가 주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날이다. 제대도 벗겨진 채 그대로 있고 미사도 드리지 아니한다.
그러나 밤이 깊어 오면서 우리는 부활의 희망에 부푼다.
부활성야(復活聖夜)
이 밤은 하느님이 인류를 위해 섭리하신 가장 밝고 아름다운 밤이다. 주께서 무덤을 여시고 영원한 승리를 이룩하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참 삶으로 건너가심[빠스카]를 기억하는 밤이다. 즉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자유로, 죄의 어두움에서 빛으로, 죄의 죽음에서 영생[부활]으로 건너감을 체험하는 밤이다.
성 토요일 전례
사순시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 토요일 밤의 전례는 모든 전례의 극치를 이룬다.
재생의 사상이 주종을 이루는 이날 전례는 성세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한다. 예식을 밤에 거행하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밤새워 기다린 데서 유래한다.
빛의 예식 : 불과 부활초를 축성하고 불의 행렬을 한다. 부활로써 어둠의 권세를 몰아내고 세상에 나타나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어 기다린다는 뜻에서 이 예식을 거행한다.
말씀의 전례 : 일곱 개의 독서와 일곱 개의 응송을 노래하며 구원의 역사를 되새기고 구원의 은총을 기원한 다음 대영광송을 장엄하게 노래로 시작한다. 풍금과 종을 다시 치고 이때부터 영광송을 하게 된다.
성세 예식 : 성세수 축성과 세례식 후 모두가 촛불을 밝혀 들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며 영세자와 함께 성세서약 갱신을 하여 이미 받은 성세성사를 새로이 한다.
성찬 예식 : 죄악과 죽음이 물러가고 펼쳐지는 새 세상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써 시작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성체로써 우리와 결합되므로 우리는 죄악과 죽음을 근심하지 않고 살게 된다. 그러므로 새로 밝혀질 그리스도의 빛이 자신 안에서 꺼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날 제의는 백색이다.

Ⅰ. 서 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빠스카 사건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이요 기초이다. 주님의 빠스카 사건은 구약의 빠스카 사건에서 예시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십자가 상의 죽음과 부활을 함께 포함하는 양면성을 지닌 한가지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빠스카 사건을 깊은 통찰없이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부활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의 죄를 위해 속죄의 피를 흘리신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의 치욕과 죽음은 무의미한 사건이 되어버리며 그 십자가가 우리 인간들에게 가져다 준 구속과 구원도 그 의미를 상실해 버린다. 더구나 예수에게 있어서도 이 십자가는 무거운 짐 밖에 다른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치욕, 미움, 경멸 등을 받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없었더라면 부활도 없고, 부활이 없었더라면 죽음도 의미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그분의 죽음도 헛된 일이 되어 버리고 우리의 구원도 그리고 그 십자가 상의 죽음에서 예시되었던 교회의 탄생,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님의 부활로 “당신의 성령”(1요한 4,13)을 받음으로써 탄생한 교회도 그 존재 기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문제를 함께 다루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도 사라지고 그리스도교도 사라진다.
이와 같이 주님의 빠스카 사건을 가장 큰 축일로 지내는 그리스도교는 성삼일을 통해서 위와 같은 주님의 빠스카의 사건이 가지는 전체적인 의미로서의 “주의 수난과 죽음” 과 “주님의 부활”을 서로 조화시키면서, 그 속에서 드러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구원 그리고 성삼위 하느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전인류를 위한 구원경륜과 구원사업을 성대히 기억하고 기념한다.
본고에서는 성삼일에 있어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주제의 절정을 이루는 날인 성 금요일 전례를 살펴 보고자 한다. 특히 이중에서도 “제2부 십자가의 경배” 예식을 중심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부활에 치중하여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성 금요일 전례를 재조명해 보고 이날이 지닌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하는 데 이 본고의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주님의 빠스카 사건을 대략 살펴 보고 성삼일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좀더 상세히 성 금요일의 기원과 발전을 살펴보는 것으로 역사 부분을 끝마치고, 성 금요일 전례로 들어가 제1부 말씀의 전례에 있어서 이날 전례를 포괄하는 “요한에 의한 예수 수난기” 복음의 의미를 살펴본 다음, 제2부 십자가의 경배를 예식 순서에 따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제3부로서 영성체를 간단히 언급한 다음 결론에서 이 성 금요일 전례의 의미와 우리들의 참여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면서 본고를 끝마치고자 한다.
Ⅱ. 본 론
1. 성삼일의 기원과 발전
『빠스카절은 교회 전례주년의 중심이요 기원이다.』1) 그리스도교에서 지내는 빠스카절은 유대교의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즉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심, 제자들 모임 가운데 나타나심, 부활하신 분께서 당신 제자들과 함께 하신 종말론적 식사, 성령의 증여와 선교사로서의 교회의 파견, 이 모든 것이 온전한 의미의 그리스도교 빠스카이다.』2)
예수께서는 이러한 당신의 빠스카를 제자들이, 그리고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교회가 항구히 기념토록 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의 빠스카 축제에 앞서 마련하신 만찬식을 가리켜 “우리의 빠스카” 또는 “신약의 빠스카”라 불렀다.』3)
제자들과 교회는 그 초기부터 이런 주님의 부활, 빠스카 사건의 중대성을 절실히 인식하였으며 이 사건이 바로 교회의 시발점이요 존재의 근거가 됨을 깨달았다. 그래서 교회는 주간 첫날, 즉 주님의 부활날인 주일에 이 주님의 빠스카를 기념하고 성찬례를 거행하였다. 이와 같이 주님의 빠스카 사건은 그리스도교의 출발점이요 구원사의 중심 사건이 되었고, 모든 전례적 축일들이 이 빠스카 축제를 기점으로 형성되는 전례주년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주일날 지내던 주님의 빠스카를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빠스카 축제로서 일년 중 하루를 잡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2세기 후반이 되어서였다. 초기 교회는 이 축제를 유대교에서 빠스카 축제를 지내는 시기와 연관시켰다.4)
이 시기에 빠스카 축제에는 아직 성삼일이 나타나지 않았다. 3세기 초반부터 부활시기(사순절과 부활절)가 형성되었으며, 4세기 이후 오순절 축일이 형성되면서 동시대에 빠스카 삼일, 즉 성삼일이 형성되었다.
1) 성삼일
주님의 빠스카 축제가 유대교의 빠스카 축제와 연관 하에서 생각되기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이라는 두 가지 면이 빠스카 축제 내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수난이 없다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다면 수난이 없듯이 그리스도교의 빠스카 축제는 그것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 이 양면성을 항상 동시에 봐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연관 하에서 4세기 이후 그리스도교의 빠스카 축제는 예수 수난 날 성 금요일과 주님의 부활날인 부활 주일이 빠스카의 밤에서 확대되어서 성삼일을 형성하게 되었다. 즉, 성 금요일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의 날로써 교회는 이날에 성 토요일과 더불어 단식을 하고 재를 지키며 성찬례 없이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는 예절을 지내고, 부활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로써 기쁨과 환희를 드러내고 성교회의 탄생을 기억하며 주님의 새계약에 대한 성취를 기념한다. 이렇게 해서 초기의 성삼일 즉, 원성삼일인 성 금요일, 성 토요일 그리고 부활 주일이 형성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그리고 부활의 빠스카 신비를 기념하였다. 7세기에 들어와서 사순절의 마지막 날이자 성삼일이 시작되는 성 목요일날 거행되는 주의 만찬 미사가 등장하였고, 중세에 와서 성삼일의 개념이 구세사적인 의미보다는 복음서에 나타난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 바뀌면서 성체 성사의 설정과 예수의 체포의 날이었던 성 목요일을 성삼일 안에 포함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성삼일을 말하면 성 목요일까지 포함한다.
빠스카 성삼일은 그 기원을 예루살렘 교회의 전례에 두고 있다. 이것은 381-384년 사이에 예루살렘 성지순례에 대한 기록인 에테리아 여행기5) 에 의해 증언되었다. 이 문헌에 의하면, 당시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에 의해 일어났던 구원의 역사적 사건들을 복음에 따라 시간과 장소 등 당시 예수님의 고난의 모습을 그대로 생생하게 재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당시 교회는 공식적으로 성삼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4세기 말경 성 암브로시오는 ‘Christus passus est, et Requievit et resurrexit’(그리스도께서는 수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이라는 표현으로써, 부활 성삼일(Triduum Sacrum)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후 성 아오스딩도 ‘Sacratissimum Triduum Crucifixit, sepulti, et resuscitati’이라고 상기하고 있다.』6) 성 레오 대교황은 빠스카 축제와 빠스카 성사에 대해 말하면서 빠스카 전례의 세분화에 대해 말을 하였다. 이 성삼일은 1969년 전례력 규정의 쇄신에서 공식으로 인가하였다. 제2차 바티간 공의회의 전례 개혁으로 나온 미사경본에는 성삼일에 대해 『인류 구원과 하느님의 완전한 현양의 사업을 그리스도께서 주로 당신의 빠스카 신비로 완성하셨으니, 즉 당신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소멸하시고 당신이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을 되찾아 주셨으니,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빠스카 3일은 전례 주년의 정점으로 빛난다.』7) 그리고 이어서 성삼일의 기간에 대해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빠스카 3일은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제로 정점에 이르며 부활 주일 저녁 기도로 끝난다.』8)
2) 성 금요일
초기 2세기부터 교회는 금요일과 토요일을 예수 수난일로 여겨 왔으며 단식과 금육을 지켜 왔다. 6, 7세기에 평일 미사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금요일은 성서봉독과 기도와 같이 특별한 단식의 날로 여겨졌으며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금요일날 금육제를 지키고 있다.
4세기 이후 성삼일이 형성되면서 성 금요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날로 빠스카 시기의 중요한 날이 되었다.
성 금요일 전례에 대한 첫 증언은 에테리아 여행기9)이다. 이를 통해 당시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성 금요일 전례를 알 수 있다. 그 후 로마에서 공식적인 가장 오래된 중언은 7세기에 만들어진 교황청 전례인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조금 뒤늦게 만들어진 「복음집」이다. 성사집은 예루살렘 십자가 성당에서 성 금요일의 전례와 관련된 신자들의 기도문들을 전하고 있으며, 복음집은 요한에 의한 예수 수난기를 전하고 있다. 이와 동시대의 일반 본당 전례는 이보다 더 풍성하고 대중적인 전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성 금요일 전례와 비슷한 형식, 즉 말씀의 전례, 십자가 경배, 영성체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십자가 경배 때에 비잔틴 전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지는 “십자가 경배”와 “비탄의 노래”, 그리고 “성시(Crucem tuam)” 등을 부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대중적인 전례였던 십자가 경배가 8세기에 들어와서 교황청 전례에도 도입되었다. 이 전례는 라떼란 대성당에서부터 예루살렘의 십자가 대성당까지의 십자가 행렬-정확히 말해서 십자가 유물을 들고 행렬하였다-과 십자가 나무에 대한 경배, 그리고 말씀의 전례로 이루어졌으나 영성체는 없었다. 이러한 로마 전례는 프랑스에 적용되었으며, 10세기 중반의 마인츠의 예식서는 이 전례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13세기에 와서는 이 예식들에 사제만 축성하지 않은 포도주에 성체를 섞어 모시는 관행이 생겼는데 이 관행은 1955년까지 계속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거행하는 성 금요일 전례는 1956년 성주간 전례의 개정 이후의 것으로, 오랜 관습에 따라 성사를 전혀 집전할 수 없었으며, 전례의 시작은 3시부터 6시 사이에 거행되었고 사목상의 이유로 좀더 늦게 할 수도 있었다. 이 주의 수난을 기념하는 전례는 말씀의 전례(제1부)와 십자가 경배(제2부), 영성체(제3부)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붉은 색 제의를 입은 사제의 기도로 이 전례는 시작하며, 곧바로 말씀의 전례가 시작되는데 일반 미사 전례의 말씀의 전례와 동일하다.
제2부 십자가 경배는 십자가를 보여 주는 예식으로 시작하는데 사제나 부제가 가리운 십자가를 들고 머리 부분부터 차례로 오른쪽, 왼쪽을 벗기면서 높이 쳐들고 “보라, 십자 나무(Ecce lignum)” 노래를 시작하면 신자들은 “모두 와서(Venite adoremus)” 노래로 대답하고 잠깐 십자가에 대해 고개를 숙이는 예식을 반복한다. 이것이 끝나면 사제는 십자가를 제대 중앙에 놓고 먼저 경배한 다음 모든 신자들의 경배가 시작된다. 이 때 “주의 십자가(Crucem tuam)”나 “비탄의 노래”등의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십자가 경배가 끝나면 제단에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하고 성체를 모셔온다. 제3부는 주의 기도와 몇 가지 기도가 이어지며 영성체를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는 파견으로 이 전례는 끝을 맺는다. 이 날 전례에 참여한 사람들은 저녁 기도를 바치지 않는다.
2. 제1부 말씀의 전례
말씀의 전례는 성 금요일 전례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예절이다. 이 말씀의 전례의 구성은 두개의 독서10), 응송과 복음 전 노래11)를 하고 “요한에 의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읽고 간단한 강론이 있은 후 신자들의 기도12)로 이루어진다. 이 부분에서는 말씀의 전례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기 보다는 복음(요한에 의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18,1-19,42)만을 살펴봄으로써 복음이 의미하는 바와 성 금요일 전례와의 관련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끝내겠다.
이 요한에 의한 예수 수난기는 크게 5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즉, 겟세마니 동산에서 체포되시는 예수(18,1-11), 예수께서 안나스 앞에 서시고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장면(18,12-27),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18,28-19,16a),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로 향하시는 예수(19,16b-37), 무덤에 묻히심(19,38-42)로 구분된다. 즉 예수께서 잡히심으로부터 예수의 수난기는 본격적인 의미에서 시작하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두 장에 걸친 요한의 예수 수난기는 막을 내린다.
1) 신학적 의미
요한 복음서의 절정인 만큼 이 수난기에는 요한의 신학 사상들이 집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강생하신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써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높이 들어 올려지시고 현양됨으로써 어둠이 지배하던 세상을 구원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신다. 이러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은 예수에게 있어서 고통이고 수치가 아니라 인간들과 세상을 위해 우리들에게 주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사랑의 행위였으며 사랑의 선물이었다.
요한은 수난기에서 몇 가지 자신의 특수한 주제들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현양”, “종말”, “그리스도의 왕권”, “구원론”, “교회론” 등이다. “현양”이라는 주제는 요한의 복음서 특히 수난기에서 모든 주제들에 일관되어 있다. 이 주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예수께서 성취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중심 주제라 할 수 있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는 당신 자신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렇게 들어올려져야 합니다. 그것은 믿는 이마다 모두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3,14-15)고 하신 것처럼, 십자가에 들여높여진 예수는 그 십자가에서 이미 현양되시며 부활을 선취하신다. 현양되신 예수께서는, 구리 뱀을 신앙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으로 그 병이 치유되었듯이, 신앙을 가지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는 부활의 선취이며 우리 인간들의 구원의 시작이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 ‘높이 들어올려지신 사건’이-십자가와 부활이-발생한 순간부터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도래해야 할 모든 것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13) 또한 예수의 들여올려지심은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써 그리스도의 왕권을 드러내심을 의미한다. 이러한 왕권을 가지신 예수의 위엄에 적대자들은 땅바닥에 넘어지고(18,6), 빌라도는 예수 앞에서 불안을 느끼며 빌라도에 의해 왕으로 선언된다. 그리고 예수를 심판함은 왕권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에 대한 심판이다. 요한은 반어법적인 표현들을 씀으로써, 실제로 그들이 내린 예수에 대한 사형 선고가 결국 그들 자신 스스로를 단죄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예수의 세상에 대한 심판은 십자가에서 절정에 달한다. 예수께서는 이 십자가에서 세상을 심판하신다. 그 심판은 십자가에 들여높여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거나 거절하는 사람들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예수의 십자가에서 발휘되신 이 왕권은 전적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며 이에 따른 구원은 예수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러나 현세에서는 아직 그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왕권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을 최후의 심판에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에 의하면 십자가에 들여높여지신 예수께서는 왕권을 가지시고 자유로이 구원을 성취하셨고 지금도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고 계시며 미래에도 종말에까지 그러하실 것이다.
요한은 십자가를 예수께서 만민을 당신께 끌어들이실 왕좌로 간주한다. 구약의 백성이 모세에 의해 시나이 산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진 것과 같이 신약의 백성,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은 예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모여진다. 예수께서는 이 왕좌에서 심판하신다. 예수의 십자가의 심판으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형성되며 이로써 만민은 예수를 중심으로 그분께로 모여든다. “내가 땅에서부터 들어올려지게 되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입니다.”(12,32) 즉 십자가에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모여지고 일치에로 초대받는다. 이것은 교회를 뜻하며 혼솔 없는 속옷의 상징과 십자가 밑에 서 있는 제자 요한과 마리아도 바로 교회,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의 탄생을 선취하는 하나의 표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시고(요한 16,16.20 참조), 실제로 암흑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셨으며(16,33 참조), 세상이 있기도 전에 이미 누리고 계시던 영광을 이 세상 안에 결정적으로 나타내셨다. 수난과 부활은 그분 자신이 사도들을 감싸 주시게 될 영광의 현현인 것이다.』14) 요한은 수난하시는 예수의 내면을 주시하며 아버지의 뜻에 대한 예수의 순종 또한 강조한다.
2) 전례적 의미
전례 특히 미사 전례는 기념이다. 구약의 백성들의 모임, 여러가지 제사들은 야훼 하느님께서 그들을 에집트에서 해방시켜주심을 기억하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념하고 갱신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하느님의 백성들의 모임, 즉 성찬례 또한, 구약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memoria)하고 그로써 그분과 맺어진 새로운 계약을 기념(anamnesis)하는 기념제이다. 이로써 우리는 나날이 새로워지고 주 하느님께로 방향지워지며 정화되어 그분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며 그분과 더욱 친밀한 관계, 일치를 가지며 전례적 공동체와도 친밀한 관계, 일치를 이룬다.
전례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으로 우리를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되도록 부르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의 응답이다. 이 전례적 응답은 그분에게서 일어났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기념하고 새롭게 한다. 즉 주님의 빠스카 사건을 기념하여 이를 현재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재화를 통해 빠스카 사건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라는 공동체가 함께 바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성 금요일 전례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인 에테리아 여행기도 복음서에 나오는 사건들의 배열에 따라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생생하게 다시 재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순례하고 기도드리며 묵상하면서 그들은 감정에 북받쳐 울었고 슬퍼하였다. 이렇게 전례는 예전에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현재화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의 가슴에 깊이 새길 수 있도록 해준다.
성 금요일 전례에 있어서도 요한 복음에 의한 예수 수난기는 이날 전례 전체에 일관 되어 있다.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경배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며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십자가의 경배는 복음 말씀의 가시적 표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십자가의 경배는 복음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응답15)이요 결심16)이요 희망17)이요 힘18)이다.
3) 성극(聖劇)
이 부분에서 성극을 다루는 것은 성지주일과 성 금요일날 복음 때 읽게 되는 요한에 의한 예수 수난기가 바로 성극의 형식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은 주인공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베드로, 빌라도, 유대 지도자들 몇명, 유대인 군중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연극은 그리스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신을 모시는 축제에서 이에 알맞은 노래와 춤들 그리고 문학들이 생겨나면서 연극도 같이 생겨났다. 이러한 연극은 중세시대에 와서 교회에 의해 폐지되었다. 그 이유는 선정적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북부 유럽을 개종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매한 민중들의 교화를 위해 이 연극을 받아들여 성극을 창안하였다. 이러한 교화 방법은 성공적이었다. 그 이후로 연극은 교회19) 안에서 계속 발전해 나갔다.20)
『극이란 역사적 사건을 재창조하여 그 의미를 예배자들에게 선포하기 위해 그 역사적 사건을 공연해 내는 것이다.』21) 즉 교회는 성지주일과 성 금요일에 봉독되는 요한에 의한 예수 수난기를 극적으로 꾸밈으로써 신자들의 주위를 환기시키고 집중시키며 그 사건이 현재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여 적절한 정서, 즉 진지함, 애도감, 환희, 황홀 등을 유발시켜 자신들이 예수를 사형시켰음을 상기시키고,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 기뻐하며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하고 부활을 희망했듯이,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들의 구원과 부활을 희망할 수 있도록 한다. 신자들은 극화된 복음에 동참함으로써 체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을 더욱 더 간절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3. 제2부 십자가의 경배
신자들의 기도가 끝나면 이어서 성대하게 십자가의 경배 예식이 거행된다. 제2부 십자가의 경배 예식은 십자가를 보여 주는 예식으로 시작하여 사제의 십자가 경배 후 전신자들의 경배 예식으로 끝을 맺는다. 십자가를 보여 주는 양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사제는 이 두 가지 양식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된다.
이 십자가의 경배 예식은 에테리아 여행기에서도 보여지듯이 4세기 말경부터 점차 서방의 각 교구에 도입되어 전통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교황청 전례 등과 같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면서 거행되었다. 하지만 신자들 대부분이 여력이나 재력이 없는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순례를 가는 대신에 본당에서 이 십자가 경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본당에서 가능한 형태로 축소된 것 같다. 이것은 7세기 중반에 교황청 전례와는 달리 일반 본당에서 일반적으로 거행되었던 성 금요일 전례의 십자가 경배 예식을 봐서도 알 수 있다.
1) 십자가를 보여 주는 첫째 양식
보로 가리운 십자가를 든 사제가 촛불을 켜 든 두 복사와 함께 제단으로 입장한다. 제단 중앙에서 사제는 십자가의 머리 부분을 벗겨 높이 쳐들고 십자가 경배의 권고, 즉 “보라, 십자 나무(Ecce lignum)”를 시작하면 신자 전체22)가 “모두 와서(Venite, adoremus)”로 대답한다. 이 노래가 끝나면 사제는 십자가를 높이 쳐든 채 서 있고 모두 꿇어서 잠깐 묵묵히 경배한다. 그 다음에 사제는 십자가의 오른팔 쪽을 벗겨 다시 높이 쳐들며 십자가 경배의 권고를 노래한다. 모든 것을 위와 같이 한다.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가리웠던 보를 전부 벗겨 높이 쳐들며 십자가 경배의 권고를 노래하며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한다. 그 다음에 두 복사와 함께 사제는 십자가와 초를 제단이나 또는 다른 적당한 장소에 놓든지, 아니면 복사들이 들고 서 있는다. 그리고는 십자가의 경배가 이루어진다.
2) 십자가를 보여 주는 둘째 양식
보로 가리우지 않은 십자가를 든 사제나 부제가 또는 다른 적합한 사람이 성당 뒷문에서 초를 켜 든 복사들과 함께 교우들 자리를 통하여 제단 앞으로 행렬한다. 문간에서와 성당 중앙에서 그리고 제단 앞에서 십자가를 높이 쳐들고 십자가 경배의 권고를 노래하고 대답을 노래한다. 대답이 끝날 때마다 모두 무릎을 꿇고 잠깐 묵묵히 경배한다. 그 다음에 십자가는 적당한 자리에 놓는다. 그리고는 십자가의 경배가 이루어진다.
3) 십자가 경배
십자가 경배는 사제의 “십자가 경배의 권고”와 사제를 비롯한 신자들 모두가 십자가를 경배하는 “십자가의 경배” 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십자가 경배의 권고는 사제가 선창으로 “보라, 십자 나무(Ecce lignum)”를 노래로 하면 전체 신자들이 “모두 와서(Venite, adoremus)”를 노래로 대답하는 형식으로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 십자가 경배의 권고(Ecce lignum)
+ 보라, 십자 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 모두 와서 경배하세.
이 십자가 경배의 권고는 우리 모두가 십자가를 보면서 주님께서 몸소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짊어짐으로써 이 세상과 인간들의 모든 죄를 사랑으로써 사해주시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게 해주심에 대한 감사와 찬미의 마음으로 경배할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
– 십자가의 경배
경배 예식에는 십자가 하나만을 사용해야 한다. 이 십자가 경배는 사제가 먼저 하고 난 뒤에 신자 전체가 하게 되어 있다. 경배 방법은 차례로 행렬을 지어 십자가 앞을 지나면서 경의를 표하면 되는데, 지방의 풍습대로 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십자가 경배 행렬이 계속될 동안 “주의 십자가(Crucem tuam)”나 “비탄의 노래” 등을 부른다. 십자가 경배를 마친 이는 자리에 앉아서 다른 이들이 경배를 할 동안 노래를 부른다23). 십자가 경배가 끝나면 십자가는 제단 위 제자리에 놓고 촛불은 제단 주위나 십자가 곁에 놓는다.
4) 십자가 경배 때 부르는 노래
(1) 주의 십자가를 경배하오며…
예식서에는 노래를 부를 때 두 편으로 갈라서 노래하도록 하며 그 구분을 1, 2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두 편이 함께 노래할 때는 ◎표를 하였다.
이 노래는 “주의 십자가 경배하오며 주의 거룩하신 부활을 찬양하오니, 십자가 나무 통해 온 세상에 기쁨이 왔나이다”를 후렴으로 하며 시편 67,1를 부른다. 『이 노래는 십자가 경배와 성 금요일 예식 전체의 빠스카적 성격을 읊은 것이기 때문에 꼭 불러야 한다.』24)
(2)비탄의 노래(Trisagion)
이 노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수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는 동시에 그분의 천주성과 우리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노래이다.
-비탄의 노래 Ⅰ
이 노래는 그리스어와 우리말로 된 후렴이 있다.
“하기오스 오 테오스(ἅγιος ὁ θεὀς).
거룩하신 천주여.
하기오스 이스키로스(ἅγιος ἰσχυρὸς).
거룩하신 용사여.
하기오스 아타나또스, 엘레이손 히마스(ἅγιος ἀθάνατος, ἐλὲησον ἰμἀς).
거룩하신 불사신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후렴은 세 번에 걸쳐져 있다. 첫번째 후렴구 앞의 구절들은 구약의 출애급 사건을 일으키신 하느님의 행위와 주님의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고, 두번째 후렴구 앞의 구절들은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만나를 주시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느님의 행위와 연결되어 있으며, 세번째 후렴구 앞의 구절들은 이스라엘에게 번영을 가져다 주신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다.
– 비탄의 노래 Ⅱ
이 노래도 후렴을 가지고 있다.
“내 백성아,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무엇으로 너를 근심케 하였더냐? 대답해다오.”
이 노래는 역사적 사건들과 주님의 수난을 연결하는 한 행과 각 행에 이어서 나오는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