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권 제 2장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들의 율법을 어겨 큰 불행을 당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내란의 결과로 베냐민 지파가 600명을 제외하고 멸망당한 것에 대하여

 


제 2 장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들의 율법을 어겨 큰 불행을 당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내란의 결과로 베냐민 지파가 600명을 제외하고 멸망당한 것에 대하여



1. 유다 지파가 시므온 지파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행군하다 [삿1:1]



  한편,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이 죽고 나자 비느하스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가나안 족속을 전멸시키기 위해서는 유다 지파가 통솔권을 지녀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가를 무척이나 알고자 했었기 때문이었다. 유다지파는 시므온 지파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일단 그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섬멸하고 나서 시므온[㈜ 헬라어 본분에는 빠져 있음.] 지파를 도와 그들의 땅에 거하는 거민들을 섬멸할 것을 조건으로 하였다.



  2. 아도니베섹의 패배와 예루살렘의 포위 [삿1:4]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은 그 당시 매우 번영할 때였으므로 베섹(Zebeke)에[㈜ 히브리어로 \’베섹\’. 위치 불명.] 대군을 배치시켜 놓고 모든 통수권을 왕인 아도니베섹(Adonizebek)에게[㈜ 히브리 성경에는 아도니 베섹.] 위임한 채, 이스라엘 군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여기에서 아도니는 히브리어로 \’주\’라는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베섹인들의 왕\’이란 의미를 나타낸다-그들은 여호수아가 죽었으므로 이스라엘은 더 이상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했던 이스라엘 두 지파의 군대는 전투에 나아가서 빛나는 전과를 얻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100,000명이 넘는 적군을 살해했으며, 그 나머지 군사들을 추격하다가 결국 왕인 아도니베섹을 포획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생포되어 손과 발이 잘리는 고통과 수모를 당하게 되자, \”옛날에는 내가 72명의[㈜ 삿1:7에는 \’70\’이지만 어떤 칠십인역 사본들에는 \’72\’로 되어 있다.] 왕들 앞에서 내가 당한 고통으로 인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가 하느님의 눈을 피하지 못해 이처럼비참한 운명이 되었구나\”라고 탄식하였다. 이스라엘 군사들은그를 산 채로 예루살렘까지 데려왔으나, 그가 죽게 되자 그를 무덤에 장사하였다.[㈜ 매장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석권하였으며 수 많은 성읍들을 점령한 후에 예루살렘을 차지하게 되었다. 낮은 지역에 있는 도시들의 성읍을 정복하거나 주민들을섬멸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지만, 높은 지역에있는 성읍들은[㈜ 요세푸스가 성읍의 높은 곳과 낮은 곳을 구별해서 기술한 것은 삿1:8을 삿1:21과 수15:63에 일치시키기 위해서 한 것이다.] 천연적으로 유리한 지형과 견고하게 요새화된 성벽 때문에 이를 탈취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3. 헤브론을 장악함 [삿1:10]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병영을 헤브론으로 옮겨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을 모두 살해하고 그곳을 장악하였다. 그런데 그곳에는 보기만 해도 겁이 나고 듣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거인들이[㈜ 삿1:20에서 갈렙이 쫓아낸 \’아낙의 아들들.\’ 그들의 신장에 대해서는. 민13:33에 나오는 표현들을 보라 <고대.3권. 14:2(305)>.] 살고 있었다. 이들의 뼈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데 그들의 모양은 지금까지 어느 인류에게도 그 유례가 없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인들에게 특별 선물로 주었던성읍은 2,000규빗의  넓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모세의 명령대로 한 것 <고대.4권. 4:3(67)>.] 그러나 이성읍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지난 날 모세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땅을 정탐하러 파견되었던 갈렙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또한그들은 미디안 사람인 이드로의 후손에게 거주할 땅을 하사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의 조국을 버리고 히브리 민족을 뒤따랐으며 그들과 더불어 광야의 어려움을 같이 하였기 때문이다.



 4. 두 지파의 또 다른 정복 [삿1:9,17]



  유다와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의 산간 지방에 있는 도시들과,해변과 평야지대에 있는 성읍들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가사(Gaza)와 에그론(Akkaron)을 빼앗지는 못하였다. 이 두성읍은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었으나, 워낙 많은 마차를 진고 있었던 까닭에 공격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 부분은 그들 사이에 화해가 있었던 성경 본문과 다르다. 히브리 성경은(삿1:18이하) \’유다가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을 차지하였지만 철 병거 때문에 그 골짜기에 사는 거민들은 쫓아내지 못했다\’고 한다(아스돗이나 아소투스는 기록되어 있지 않음). 70인역에서 유다는 가사나 아스글론, 에그론이나 아소투스도 차지하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이 두 지파의 사람들은 전쟁을 통하여 수많은 부를 소유한 후, 각자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무기를 놓고 편안히 안식하였다.



 5. 가나안 주민들과의 대체적인 평화 [삿1:21,27]



  그러나 예루살렘 지역을 거주지로 할당받은 베냐민 지파는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조공만 바쳐도 되도록 허락해 주었다.그들은 죽여 없애야 후환이 없을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둔 것이었다. 이에 다른 지파들도 베냐민 지파의 선례를 따라, 그들의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묵인해 주고그 댓가로 조공을 바치도록 허락해 주었다.



 6. 에브라임 지파의 벧엘 장악 [삿1:22]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는 벧엘을 공략할 때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도 시간을 들인 만큼 전과가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을 포위하고 끈덕지게 버티었다. 얼마 후 벧엘주민 중 한 명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그들에게 왔다. 그들은그 자에게 만일 그가 도시를 넘겨 준다면 그와 그의 식구들을 모두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그 자는 그렇게만 해 준다면도시를 그들의 손에 넘겨 주겠다고 맹세했다. 이렇게 해서 자기동족들을 배반하고 도시를 넘겨 준 그 자는 식구들과 함께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으나, 그 밖의 주민들은 이스라엘인들에 의하여 몰살당하고 말았다. 결국 벧엘 성은 에브라임 지파의 소유가되었다.



 7. 평화가 오히려 타락을 조장하다 [삿2:11]



  그 후 이스라엘인들은 점점 여자처럼 나약해지더니, 마침내는 적들과 더 이상 싸울 생각도 않고 땅을 경작하는 데에만 골몰하였다. 땅을 경작하여 부를 축적해 감에 따라, 그들은 가나안인들을 전멸시키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사치와 쾌락에 깊이 빠지게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율법에 청종하려고 하지도 않았다.이에 진노하신 하느님께서는 계시로써 그들을 경고하셨다. 그것은 첫째 가나안인들을 살려두어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과, 둘째 가나안인들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두가지 사실을 경고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척했지만 좀처럼 귀찮은 전투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가나안인들에게서 막대한 양의 조공을 얻고 있었고 현재 상태로서도 편한데 굳이 어렵게 전투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관료제도 역시 부패를 더해만 갔다. 그들은 의회를 구성하거나 행정 장관을 임명함에 있어서도 율법이 정하는 바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즐기는 일이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재산을 증식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정치적 부패에 관한 것은 성경의 부연이다.] 그들의 이와 같은 나태로 인하여 결국 무서운 소동이 터지게 되었고, 마침내는 끔찍한 동족 상잔의 비극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8.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한 레위인과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 [삿19:1]



  [㈜ 성경에서 이 사건은 사사기의 끝부분을 장식한다.]



  한편,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거하는 신분이 낮은 한 레위인이있었다. 이 사람은 유다 땅의 베들레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아내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무척 불행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아내는 그를 사랑하기보다 오히려 역겨워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내의 태도는 오히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열정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이 부부 사이에는 싸움이 멈출 날이 없었다.



 [도망가 버린 아내]



  마침내 이 아내는 싸움에 지친 나머지 4개월만에 그녀의 친정으로 도망가 버렸다.[㈜ 성경의 오해. 삿19:2에는 그 여인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의 날을 보내매\’라고 되어 있다.] 남편은 아내의 가출이 몹시 못마땅했지만, 아내를 사랑한 나머지 장인 장모를 찾아가 아내와 화해를 했다. 그리고는 장인 장모의 푸짐한 대우를 받으며 나흘을 머물렀다. 닷새째가 되어 그는 집으로 가기로 결심했으나, 장인 장모가 자기 딸과 헤어지기가 섭섭하다는 이유로 계속 시간을 연장하다보니 낮이 다 지나가고 저녁 때가 되어서야 출발하게 되었다.



  [아내를 찾아 돌아오는 레위인]



  그는 종을 하나 거느리고 아내를 나귀에 태우고 집을 향해 떠났다. 30퍼얼롱을[㈜ 헬라어로는 \’스다디온\'(약 1/8마일).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5마일 되는 거리에 위치한다. 다른 곳에서도 그 거리는 \’20스다디온\’으로만 아노다.<고대.7권. 12:4(312)>.] 여행한 후에 그들이 예루살렘 근처에 거의 가까워졌을 때 종이 말하기를, 적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있고 친구도 믿을 수가 없는 때인 만큼 밤에 여행하다 보면 어떤일을 당할지 모르니 근처 어디에서 하룻밤 묶고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충고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 도시가 가나안 땅에 속해 있으므로,[㈜ 참).고대.5권 2:2(124) 주 80.] 20퍼얼롱 정도 더 가다 보면 이스라엘인이 거하는 성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밤을 묶고 싶지 않아서 종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막 어두워지려는 때에 다행히도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Gaba)에[㈜ 히브리 성경에는 기브아. 이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마일되는 곳인 텔 엘-풀(Tell el-Ful)로 생각된다. 전쟁.5:51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약30스다디온 되는…가밧 사울(Gabath Saul)로 나온다.]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장에 있는 자들은 아무도 그들에게 들어와 쉬라고 권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브아의 한 노인이 레위인을 대접함]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이면서도 기브아 땅에 거하는 한 노인이 들에서 오다가 그를 만나, 그대는 누구이기에 이렇게 늦은 시각에 이 곳에 와서 저녁 식사할 곳을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노인의 물음에 그는 자기는 레위인으로서 아내를 장인 집에서 데려 가는 중이며 집은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노인은 자기도 같은 동족이요, 더욱이 같은 지파의 땅에 거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자기 집에 가서 유숙하자고 그들을 초청하였다. 그러나 기브아에 거하는 청년들이 시장에서 그의 아내를 보고 그 미모에 감탄한 나머지, 그들이 그노인의 집에서 유숙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노인의 가세(家勢)가 미약하고 식구 수가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헬라어로는 \’그들으 약함과 숫적인 열세.\’ 참).전쟁.3권. 7:33(317).] 얕잡아 본 나머지, 그 노인의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노인이 그들에게 제발 난폭한 짓이나 폭행은 삼가하고 가 달라고 간청하자, 그들은 낯선 그 여인을 자기들에게 넘겨 주면 그들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인은 자기에게 찾아 온 그 손님은[㈜ 즉 남편. 한 사본엔는 \’그녀(레위인의 부인)는 일가 친척이었다\’로 기록되어 있다.] 레위인으로서 자기의 친척이라고 말하고 만일 그들이 욕정을 이기지 못한다면 율법을 범하는 것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노인의 옳은 충고를 무시하며 코웃음을 쳤다.



  [기브아의 청년들이 레위인의 아내를 능욕함]



  그들은 만일 노인이 계속해서 방해를 놓게 된다면 그냥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노인은 이왕 큰 곤경에 처한 것은 매 일반이니 손님들을 순순히 넘겨 주어 봉변을 당하게할 수는 결코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딸을 그들에게 주면서 손님들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내 딸을 데려가는 것이 경미한 죄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노인은 이렇게 하면 손님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노인의 간절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 낯선 여인에 대한 욕정이 수그러 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경하게 그 여인을 내 놓으라고 강요하였다. 노인은 그러한 부당한 요구를 해서는 안된다고 통사정을 했으나 그들은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폭력으로 그 여인을 납치해서 자기들 집으로 데려갔다.[㈜ 성경에는레위인 자신이 그 여인을 내준다.] 그들은 밤새도록 그 여인을 능욕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그 여인을 풀어주었다.



 [레위인이 수치심 때문에 자살한 아내를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감]



  그 여인은 자기가 당한 일로 인해 큰 고통과 슬픔을 안고 노인의 집을 찾아 왔으나 부끄러워 남편의 얼굴을 감히 쳐다 보지 못하였다. 남편이 자기를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 여인은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남편은 단지 자기 아내가 깊이 잠든 것 쯤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 밤에 있었던 씁쓸한 생각들은 잊어버리고, 당신이 자발적으로 사내들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간 것이므로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려고 마음 먹고 아내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그때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였다. 그는 이 엄청난 악에 전율하면서 그의 죽은 아내를 나귀 등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죽은 아내의 시체를 열 두 토막을 내어 각 지파에 보내고,[㈜ 성경에는 \’그것을 이스라엘의 사방에 두루 보내매\’로 나와 있으며 \’각 지파에 하나씩\’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자기 아내를 욕보이고 죽게 한 사람들이 베냐민 지파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9.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자들에게 항복하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하다 [삿20:1]



  백성들은 전에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이런 끔찍한 사실에큰 충격을 받아 의분에 떨며 실로(Silo)로 모여 들었다.[㈜ 성경에서 지파들은 미스바에 모인다.] 백성들은 성막 앞에서 대회로 모인 즉시 기브아 주민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무력으로 징벌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장로들은 이를저지하고 나서면서, 대화로 협상해 보기도 전에 같은 동족끼리 맞붙어 싸우는 것은 너무나 성급한 일이라고 설득하였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잘못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먼저 사신들을 보내 잘못을 회개할 것인지 아닌지, 의사 타진을 하기도 전에 병력을동원해 공격하는 것은[㈜ 혹은 다른 사본과 같이 \’전쟁\’.] 율법에서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장로들의 충고는 그들이 모세의 율법에 따른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첨가된 것이다.<신20:10, 고대.4권. 8:41(297)>.] 그러므로 율법에 따라 먼저 기브아 주민들에게 사신을 보내 범죄한 자들을 넘겨 주도록 요청하고, 범죄한 자들을 넘겨 주는 경우에는 그들만을 처벌하는 것으로 만족하겠으며, 그렇지 않고 사신들을 무시하는 경우에는 그때 가서 무력으로 징벌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백성들을 설득하였다. 결국 그들은 기브아 주민들에게 사신을 보내 레위인의 아내를 욕보인 젊은 청년들을 고소한 후에, 율법에 어긋난 행동을 한 그들은[㈜ 혹은(남성형으로 aujtw\’n ejkevinwn을 취하여) \’그 자신이 백성 대신에 죽어야 하는 사람들\’. 무법한 행동을 했으므로 전멸(全滅)이 당연하지만 최소한 그 범죄자들은 고통 받아야 한다.] 죽어야 마땅하니 자기들에게 넘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기브아의 주민들은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다른 이의 요구에 복종하는 것은 치욕적인 것이라 여기고 젊은이들을 넘겨 주려 하지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자기들이 전쟁을 해도 전략에 있어서나 용감성에 있어서 남에게 결코 뒤질 것이 없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도 역시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은 힘에는 힘으로 대항하겠다고 결의할 만큼 완전히 미쳐 있었다.



10. 내란에서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을 이기다 [삿21:1]



  기브아 주민들의 반응을 전해 들은 이스라엘인들은 누구나 베냐민 지파에게는 딸을 주지 않기로 작정하고, 우리 선조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마다 더 무서운 적개심에 차서 베냐민 지파를치러 나섰다. 그들은 400,000의 군대를 동원해서 베냐민 지파를공격한 반면에, 베냐민 지파의 군대는 25,600명에[㈜ 히브리 성경에서는 베냐민 족속 26,000명과 기브아 거민 700명. 칠십인역에서는 베냐민 족속 25,000(혹은 23,000)과 기브아 거민 700명. 요세푸스는 전치사 휘포 (uJpo:아래에, 밑에, 쯤에)가 \’약\'(about)을 뜻한다고 생각한 것 같으며 이것은 성경의 여러 사본들에 익숙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 것이다.] 그쳤다. 그러나 그 중 500명은[㈜ 히브리 사본에는 (칠십인역 사본들과 같이)700. 다른 칠십인역 사본들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왼손 잡이로 모두가 돌을 던지는 데에 있어서는 당할 자가 없는 그들이었기에, 기브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베냐민 지파의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를 이길 정도였다.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2,000명이나 되는 전사자를 냈다. 만일밤이 오지 않아 전투가 계속되었다면 아마도 더욱 많은 전사자들이 나왔을 것이다. 이에 베냐민 지파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기 성으로 돌아갔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에 패배한 데에 대해 크게 당황하면서 병영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전투가 다시 벌어졌으나 다시 베냐민 지파가 승리를 거두었고 18,000명의이스라엘 군인들이 전쟁에서 사망했으며, 나머지는 죽을까 두려워 병영을 버리고 도망쳤다. 따라서 그들은 병영 근처에 있는 벧엘로[㈜ 벧엘은 기브아(텔 엘-풀)라고 하는 곳에서 약 8마일 되는 곳이다. 성막이 있는 곳(고대.5권. 2:9(150)인 실로는 북쪽으로 상당한 거리에 있다.] 가서, 그 다음날 금식하면서 대제사장 비느하스를 통해서, 그만 진노를 그치시고 자기들이 두 번 패한 것으로 만족하시어 하느님께 이제는 적을 이기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비느하스의 예언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11. 베냐민 지파의 패배 이스라엘의 재공격 [삿20:29]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군대를 둘로 나누어 밤을 이용하여 반은 기브아 성 주변에 매복하게 하고, 나머지 반은 베냐민을 공격하게 했다.[㈜ 이 싸움의 광경은 투키디데스의 글을 연상시킨다. 즉 투키디데스 2:28, 8:1, 7:84.] 히브리인들은 공격하다가 도중에 후퇴하는 척하였는데, 그러자 베냐민 사람들이 뒤를 추격해 왔다. 히브리인들은 베냐민인들을 도시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끌어 내기 위하여[㈜ 혹은 \’끌어내려고\’.] 계속 도망쳤다. 이에 베냐민들은 싸울 능력이 없어 성에 남겨 두고 온 노인들고 어린 아이까지 모조리 없애 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히브리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성에서 상당한거리가 떨어지자 히브리인들은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되돌아 반격을 시도하면서 매복해 있는 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매복해 있던 자들이 일어나서 큰 함성을 지르며 성을 습격했다. 이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둥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은 계곡에 움푹 파인 곳으로 몰리게되었고,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둘러싸여 협공을 당하여 600명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전멸당하고 말았다. 이 600명도 힘을 합하여 이스라엘 사이를 간신히 뚫고 인근 산들로 도망을 쳐서 간신히 살아 남았던 것이지만 그 외 나머지 25,000명은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아 성을 불태워 버렸으며, 성년이 된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살해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다른 도시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행했다. 그들은 어찌나 격분했던지, 야베스 길르앗이 베냐민 지파를 정벌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2,000명의 병사를 보내 야베스 길르앗을 함락시키라고 명령했을 정도였다. 병사들은 400명의 처녀를 제외하고, 전쟁에 나갈 만한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을 모두 죽였다. 이들이 이렇게 격분한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첫 번째는 레위인의 아내의 죽음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자기편 병사들이 너무나 많이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12. 베냐민 지파와의 화해 : 그들 중에서 신랑감을 찾다 [삿21:2,6]



  그러나 그들은 베냐민 지파가 당한 재난이 율법을 어긴 보상으로 마땅히 받았어야 할 벌이었다고 고집은 하면서도 그들의 고통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리하여 베냐민 지파를 위하여 금식을 할 것을 백성들에게 명하였으며, 광야에 있는 로아(Rhoa)라고[㈜ 히브리어 립몬(석류나무)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곳은 주로 벧엘 서쪽 수마일 되는 현 \’람문\’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러나 기브아에 더 가까운, 더 근거 있는 장소가 거론되는 실정이다.(Burney, \’사사기\’ p.21).] 하는 바위 위에 머무르며 피신해 있던 600명의 나머지 베냐민 사람들은 데리러 사신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베냐민 지파에게 내린 재난은 곧 동족 상잔이었으므로 모든 이스라엘의 재난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재난을 인내로 참고 그들과 함께 거하면서 베냐민 지파가 완전히 멸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그들을 설득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제안하였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베냐민 지파의 온땅을 줄 것이며, 당신들이 가져갈 수 있는 한 얼마든지 전리품들을[㈜ 즉 \’가축\’.]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요.\” 그리하여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은 이러한 그들의 불행이 하느님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그들의 악행 때문에 비롯된 것임을 뼈아프게 인정하고 조상의 땅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베스(Jabeth)로부터 온 400명의 처녀를 그들의 아내로 맞을 수 있도록 선처해 주었으며,[㈜ 고대.5권. 2:11(165).] 나머지 200명의 남자들에게도 어떻게 하면 아내를 만나 아이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하기로 했다. 한편, 그들은 전쟁 이전에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에게는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않기로 맹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들이 흥분한 나머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한 맹세를 취소하여 하느님께 거스릴 것이 없게 하여야 온 백성이 파멸될 위기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그들은 꼭 필요할때에 마지 못해 하는 거짓 맹세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악한 마음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행했을 경우에는 심각한 위증이 되며 위험하기까지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장로들이 이처럼 거짓 맹세에 대해 반발하고 있을 때에 한 사람이 일어나 한가지방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얻게 해줄 수 있게 하면서도 그들이 했던 맹세를 파기하지 않을 수 있는 묘안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그 방안에 대해 질문을 하자, 그는 \”우리는 실로에서 매년 세차례 씩 만날 때에 열리는 절기에[㈜ 삿21:15, \’보라 실로에 매년 야훼의 절기가 있도다.\’ 여기서 \’절기\’는 숙곳의 가을 포도 수확 절기나 장막절 같은 가장 오래된 유대 절기를 암시한다. 실로에서의 연례적인 의식 행사에 대해서 삼상1:3을 참고하라. 요세푸스는 유월절과 오순절을 포함하여 매년 최대의 세 절기를 지키는 것을 그들의 초창기로 소급해 언급한다.] 우리의 아내나 딸들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베냐민 남자들로 하여금 여기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 때에 모인여자를 그들을 아내로 데려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딸을 잃은 부모들이 만일 이에 항의하여 그들을처벌할 것을 요구해오면, 당신들이 딸을 잘 간수하지 못하여 생긴 사고이니 누구에게 탓을 돌려서는 안되며 이미 그 정도[㈜ 몹시 서두른다는 뜻을 내포한 다톤(qavatto)은 다른 곳에서는 프로테론(pravoteron: 더 멀리)으로 나온다.] 화를 냈으면 되었지 베냐민 지파에게 화를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에 이스라엘인들은 이 방안을 따르기로하고, 베냐민인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처녀를 훔쳐서 결혼할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처녀들을 약탈하는 베냐민의 아들들]



  절기가 다가오자 200명의 베냐민 사람들은 둘이나 세명씩 짝을 지어 그 도시 앞에 숨어 있으면서 포도원이나 그 밖의 다른곳에 처녀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처녀들은 아무런 영문도모른 채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희희낙낙 하면서 거리로 나왔다.이때 그들은 길에 흩어져 숨어 있다가 별안간 뛰쳐 나와서 그 처녀들을 잡아갔다. 이렇게 해서 베냐민인들은 아내를 구할 수가있었고, 농사에 전념하면서 그 전의 행복했던 삶을 찾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이런 이스라엘인들의 지혜로 인해 거의 멸절의 위기에 있던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 구제될 수가 있었으며, 오래지 않아서 이 지파는 예언처럼 수적으로나 다른 모든 면에 있어서의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베냐민지파와의 내전은 완전히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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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권 제 2장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들의 율법을 어겨 큰 불행을 당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내란의 결과로 베냐민 지파가 600명을 제외하고 멸망당한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2 장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들의 율법을 어겨 큰 불행을 당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내란의 결과로 베냐민 지파가 600명을 제외하고 멸망당한 것에 대하여


    1. 유다 지파가 시므온 지파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행군하다 [삿1:1]


      한편,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이 죽고 나자 비느하스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가나안 족속을 전멸시키기 위해서는 유다 지파가 통솔권을 지녀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가를 무척이나 알고자 했었기 때문이었다. 유다지파는 시므온 지파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일단 그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섬멸하고 나서 시므온[㈜ 헬라어 본분에는 빠져 있음.] 지파를 도와 그들의 땅에 거하는 거민들을 섬멸할 것을 조건으로 하였다.


      2. 아도니베섹의 패배와 예루살렘의 포위 [삿1:4]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은 그 당시 매우 번영할 때였으므로 베섹(Zebeke)에[㈜ 히브리어로 ‘베섹’. 위치 불명.] 대군을 배치시켜 놓고 모든 통수권을 왕인 아도니베섹(Adonizebek)에게[㈜ 히브리 성경에는 아도니 베섹.] 위임한 채, 이스라엘 군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여기에서 아도니는 히브리어로 ‘주’라는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베섹인들의 왕’이란 의미를 나타낸다-그들은 여호수아가 죽었으므로 이스라엘은 더 이상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했던 이스라엘 두 지파의 군대는 전투에 나아가서 빛나는 전과를 얻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100,000명이 넘는 적군을 살해했으며, 그 나머지 군사들을 추격하다가 결국 왕인 아도니베섹을 포획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생포되어 손과 발이 잘리는 고통과 수모를 당하게 되자, “옛날에는 내가 72명의[㈜ 삿1:7에는 ’70’이지만 어떤 칠십인역 사본들에는 ’72’로 되어 있다.] 왕들 앞에서 내가 당한 고통으로 인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가 하느님의 눈을 피하지 못해 이처럼비참한 운명이 되었구나”라고 탄식하였다. 이스라엘 군사들은그를 산 채로 예루살렘까지 데려왔으나, 그가 죽게 되자 그를 무덤에 장사하였다.[㈜ 매장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석권하였으며 수 많은 성읍들을 점령한 후에 예루살렘을 차지하게 되었다. 낮은 지역에 있는 도시들의 성읍을 정복하거나 주민들을섬멸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지만, 높은 지역에있는 성읍들은[㈜ 요세푸스가 성읍의 높은 곳과 낮은 곳을 구별해서 기술한 것은 삿1:8을 삿1:21과 수15:63에 일치시키기 위해서 한 것이다.] 천연적으로 유리한 지형과 견고하게 요새화된 성벽 때문에 이를 탈취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3. 헤브론을 장악함 [삿1:10]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병영을 헤브론으로 옮겨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을 모두 살해하고 그곳을 장악하였다. 그런데 그곳에는 보기만 해도 겁이 나고 듣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거인들이[㈜ 삿1:20에서 갈렙이 쫓아낸 ‘아낙의 아들들.’ 그들의 신장에 대해서는. 민13:33에 나오는 표현들을 보라 <고대.3권. 14:2(305)>.] 살고 있었다. 이들의 뼈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데 그들의 모양은 지금까지 어느 인류에게도 그 유례가 없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인들에게 특별 선물로 주었던성읍은 2,000규빗의  넓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모세의 명령대로 한 것 <고대.4권. 4:3(67)>.] 그러나 이성읍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지난 날 모세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땅을 정탐하러 파견되었던 갈렙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또한그들은 미디안 사람인 이드로의 후손에게 거주할 땅을 하사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의 조국을 버리고 히브리 민족을 뒤따랐으며 그들과 더불어 광야의 어려움을 같이 하였기 때문이다.


     4. 두 지파의 또 다른 정복 [삿1:9,17]


      유다와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의 산간 지방에 있는 도시들과,해변과 평야지대에 있는 성읍들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가사(Gaza)와 에그론(Akkaron)을 빼앗지는 못하였다. 이 두성읍은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었으나, 워낙 많은 마차를 진고 있었던 까닭에 공격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 부분은 그들 사이에 화해가 있었던 성경 본문과 다르다. 히브리 성경은(삿1:18이하) ‘유다가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을 차지하였지만 철 병거 때문에 그 골짜기에 사는 거민들은 쫓아내지 못했다’고 한다(아스돗이나 아소투스는 기록되어 있지 않음). 70인역에서 유다는 가사나 아스글론, 에그론이나 아소투스도 차지하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이 두 지파의 사람들은 전쟁을 통하여 수많은 부를 소유한 후, 각자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무기를 놓고 편안히 안식하였다.


     5. 가나안 주민들과의 대체적인 평화 [삿1:21,27]


      그러나 예루살렘 지역을 거주지로 할당받은 베냐민 지파는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조공만 바쳐도 되도록 허락해 주었다.그들은 죽여 없애야 후환이 없을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둔 것이었다. 이에 다른 지파들도 베냐민 지파의 선례를 따라, 그들의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묵인해 주고그 댓가로 조공을 바치도록 허락해 주었다.


     6. 에브라임 지파의 벧엘 장악 [삿1:22]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는 벧엘을 공략할 때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도 시간을 들인 만큼 전과가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을 포위하고 끈덕지게 버티었다. 얼마 후 벧엘주민 중 한 명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그들에게 왔다. 그들은그 자에게 만일 그가 도시를 넘겨 준다면 그와 그의 식구들을 모두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그 자는 그렇게만 해 준다면도시를 그들의 손에 넘겨 주겠다고 맹세했다. 이렇게 해서 자기동족들을 배반하고 도시를 넘겨 준 그 자는 식구들과 함께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으나, 그 밖의 주민들은 이스라엘인들에 의하여 몰살당하고 말았다. 결국 벧엘 성은 에브라임 지파의 소유가되었다.


     7. 평화가 오히려 타락을 조장하다 [삿2:11]


      그 후 이스라엘인들은 점점 여자처럼 나약해지더니, 마침내는 적들과 더 이상 싸울 생각도 않고 땅을 경작하는 데에만 골몰하였다. 땅을 경작하여 부를 축적해 감에 따라, 그들은 가나안인들을 전멸시키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사치와 쾌락에 깊이 빠지게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율법에 청종하려고 하지도 않았다.이에 진노하신 하느님께서는 계시로써 그들을 경고하셨다. 그것은 첫째 가나안인들을 살려두어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과, 둘째 가나안인들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두가지 사실을 경고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척했지만 좀처럼 귀찮은 전투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가나안인들에게서 막대한 양의 조공을 얻고 있었고 현재 상태로서도 편한데 굳이 어렵게 전투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관료제도 역시 부패를 더해만 갔다. 그들은 의회를 구성하거나 행정 장관을 임명함에 있어서도 율법이 정하는 바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즐기는 일이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재산을 증식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정치적 부패에 관한 것은 성경의 부연이다.] 그들의 이와 같은 나태로 인하여 결국 무서운 소동이 터지게 되었고, 마침내는 끔찍한 동족 상잔의 비극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8.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한 레위인과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 [삿19:1]


      [㈜ 성경에서 이 사건은 사사기의 끝부분을 장식한다.]


      한편,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거하는 신분이 낮은 한 레위인이있었다. 이 사람은 유다 땅의 베들레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아내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무척 불행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아내는 그를 사랑하기보다 오히려 역겨워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내의 태도는 오히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열정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이 부부 사이에는 싸움이 멈출 날이 없었다.


     [도망가 버린 아내]


      마침내 이 아내는 싸움에 지친 나머지 4개월만에 그녀의 친정으로 도망가 버렸다.[㈜ 성경의 오해. 삿19:2에는 그 여인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의 날을 보내매’라고 되어 있다.] 남편은 아내의 가출이 몹시 못마땅했지만, 아내를 사랑한 나머지 장인 장모를 찾아가 아내와 화해를 했다. 그리고는 장인 장모의 푸짐한 대우를 받으며 나흘을 머물렀다. 닷새째가 되어 그는 집으로 가기로 결심했으나, 장인 장모가 자기 딸과 헤어지기가 섭섭하다는 이유로 계속 시간을 연장하다보니 낮이 다 지나가고 저녁 때가 되어서야 출발하게 되었다.


      [아내를 찾아 돌아오는 레위인]


      그는 종을 하나 거느리고 아내를 나귀에 태우고 집을 향해 떠났다. 30퍼얼롱을[㈜ 헬라어로는 ‘스다디온'(약 1/8마일).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5마일 되는 거리에 위치한다. 다른 곳에서도 그 거리는 ’20스다디온’으로만 아노다.<고대.7권. 12:4(312)>.] 여행한 후에 그들이 예루살렘 근처에 거의 가까워졌을 때 종이 말하기를, 적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있고 친구도 믿을 수가 없는 때인 만큼 밤에 여행하다 보면 어떤일을 당할지 모르니 근처 어디에서 하룻밤 묶고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충고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 도시가 가나안 땅에 속해 있으므로,[㈜ 참).고대.5권 2:2(124) 주 80.] 20퍼얼롱 정도 더 가다 보면 이스라엘인이 거하는 성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밤을 묶고 싶지 않아서 종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막 어두워지려는 때에 다행히도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Gaba)에[㈜ 히브리 성경에는 기브아. 이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마일되는 곳인 텔 엘-풀(Tell el-Ful)로 생각된다. 전쟁.5:51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약30스다디온 되는…가밧 사울(Gabath Saul)로 나온다.]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장에 있는 자들은 아무도 그들에게 들어와 쉬라고 권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브아의 한 노인이 레위인을 대접함]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이면서도 기브아 땅에 거하는 한 노인이 들에서 오다가 그를 만나, 그대는 누구이기에 이렇게 늦은 시각에 이 곳에 와서 저녁 식사할 곳을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노인의 물음에 그는 자기는 레위인으로서 아내를 장인 집에서 데려 가는 중이며 집은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노인은 자기도 같은 동족이요, 더욱이 같은 지파의 땅에 거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자기 집에 가서 유숙하자고 그들을 초청하였다. 그러나 기브아에 거하는 청년들이 시장에서 그의 아내를 보고 그 미모에 감탄한 나머지, 그들이 그노인의 집에서 유숙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노인의 가세(家勢)가 미약하고 식구 수가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헬라어로는 ‘그들으 약함과 숫적인 열세.’ 참).전쟁.3권. 7:33(317).] 얕잡아 본 나머지, 그 노인의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노인이 그들에게 제발 난폭한 짓이나 폭행은 삼가하고 가 달라고 간청하자, 그들은 낯선 그 여인을 자기들에게 넘겨 주면 그들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인은 자기에게 찾아 온 그 손님은[㈜ 즉 남편. 한 사본엔는 ‘그녀(레위인의 부인)는 일가 친척이었다’로 기록되어 있다.] 레위인으로서 자기의 친척이라고 말하고 만일 그들이 욕정을 이기지 못한다면 율법을 범하는 것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노인의 옳은 충고를 무시하며 코웃음을 쳤다.


      [기브아의 청년들이 레위인의 아내를 능욕함]


      그들은 만일 노인이 계속해서 방해를 놓게 된다면 그냥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노인은 이왕 큰 곤경에 처한 것은 매 일반이니 손님들을 순순히 넘겨 주어 봉변을 당하게할 수는 결코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딸을 그들에게 주면서 손님들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내 딸을 데려가는 것이 경미한 죄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노인은 이렇게 하면 손님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노인의 간절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 낯선 여인에 대한 욕정이 수그러 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경하게 그 여인을 내 놓으라고 강요하였다. 노인은 그러한 부당한 요구를 해서는 안된다고 통사정을 했으나 그들은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폭력으로 그 여인을 납치해서 자기들 집으로 데려갔다.[㈜ 성경에는레위인 자신이 그 여인을 내준다.] 그들은 밤새도록 그 여인을 능욕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그 여인을 풀어주었다.


     [레위인이 수치심 때문에 자살한 아내를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감]


      그 여인은 자기가 당한 일로 인해 큰 고통과 슬픔을 안고 노인의 집을 찾아 왔으나 부끄러워 남편의 얼굴을 감히 쳐다 보지 못하였다. 남편이 자기를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 여인은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남편은 단지 자기 아내가 깊이 잠든 것 쯤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 밤에 있었던 씁쓸한 생각들은 잊어버리고, 당신이 자발적으로 사내들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간 것이므로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려고 마음 먹고 아내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그때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였다. 그는 이 엄청난 악에 전율하면서 그의 죽은 아내를 나귀 등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죽은 아내의 시체를 열 두 토막을 내어 각 지파에 보내고,[㈜ 성경에는 ‘그것을 이스라엘의 사방에 두루 보내매’로 나와 있으며 ‘각 지파에 하나씩’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자기 아내를 욕보이고 죽게 한 사람들이 베냐민 지파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9.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자들에게 항복하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하다 [삿20:1]


      백성들은 전에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이런 끔찍한 사실에큰 충격을 받아 의분에 떨며 실로(Silo)로 모여 들었다.[㈜ 성경에서 지파들은 미스바에 모인다.] 백성들은 성막 앞에서 대회로 모인 즉시 기브아 주민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무력으로 징벌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장로들은 이를저지하고 나서면서, 대화로 협상해 보기도 전에 같은 동족끼리 맞붙어 싸우는 것은 너무나 성급한 일이라고 설득하였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잘못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먼저 사신들을 보내 잘못을 회개할 것인지 아닌지, 의사 타진을 하기도 전에 병력을동원해 공격하는 것은[㈜ 혹은 다른 사본과 같이 ‘전쟁’.] 율법에서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장로들의 충고는 그들이 모세의 율법에 따른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첨가된 것이다.<신20:10, 고대.4권. 8:41(297)>.] 그러므로 율법에 따라 먼저 기브아 주민들에게 사신을 보내 범죄한 자들을 넘겨 주도록 요청하고, 범죄한 자들을 넘겨 주는 경우에는 그들만을 처벌하는 것으로 만족하겠으며, 그렇지 않고 사신들을 무시하는 경우에는 그때 가서 무력으로 징벌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백성들을 설득하였다. 결국 그들은 기브아 주민들에게 사신을 보내 레위인의 아내를 욕보인 젊은 청년들을 고소한 후에, 율법에 어긋난 행동을 한 그들은[㈜ 혹은(남성형으로 aujtw’n ejkevinwn을 취하여) ‘그 자신이 백성 대신에 죽어야 하는 사람들’. 무법한 행동을 했으므로 전멸(全滅)이 당연하지만 최소한 그 범죄자들은 고통 받아야 한다.] 죽어야 마땅하니 자기들에게 넘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기브아의 주민들은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다른 이의 요구에 복종하는 것은 치욕적인 것이라 여기고 젊은이들을 넘겨 주려 하지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자기들이 전쟁을 해도 전략에 있어서나 용감성에 있어서 남에게 결코 뒤질 것이 없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도 역시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은 힘에는 힘으로 대항하겠다고 결의할 만큼 완전히 미쳐 있었다.


    10. 내란에서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을 이기다 [삿21:1]


      기브아 주민들의 반응을 전해 들은 이스라엘인들은 누구나 베냐민 지파에게는 딸을 주지 않기로 작정하고, 우리 선조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마다 더 무서운 적개심에 차서 베냐민 지파를치러 나섰다. 그들은 400,000의 군대를 동원해서 베냐민 지파를공격한 반면에, 베냐민 지파의 군대는 25,600명에[㈜ 히브리 성경에서는 베냐민 족속 26,000명과 기브아 거민 700명. 칠십인역에서는 베냐민 족속 25,000(혹은 23,000)과 기브아 거민 700명. 요세푸스는 전치사 휘포 (uJpo:아래에, 밑에, 쯤에)가 ‘약'(about)을 뜻한다고 생각한 것 같으며 이것은 성경의 여러 사본들에 익숙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 것이다.] 그쳤다. 그러나 그 중 500명은[㈜ 히브리 사본에는 (칠십인역 사본들과 같이)700. 다른 칠십인역 사본들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왼손 잡이로 모두가 돌을 던지는 데에 있어서는 당할 자가 없는 그들이었기에, 기브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베냐민 지파의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를 이길 정도였다.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2,000명이나 되는 전사자를 냈다. 만일밤이 오지 않아 전투가 계속되었다면 아마도 더욱 많은 전사자들이 나왔을 것이다. 이에 베냐민 지파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기 성으로 돌아갔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에 패배한 데에 대해 크게 당황하면서 병영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전투가 다시 벌어졌으나 다시 베냐민 지파가 승리를 거두었고 18,000명의이스라엘 군인들이 전쟁에서 사망했으며, 나머지는 죽을까 두려워 병영을 버리고 도망쳤다. 따라서 그들은 병영 근처에 있는 벧엘로[㈜ 벧엘은 기브아(텔 엘-풀)라고 하는 곳에서 약 8마일 되는 곳이다. 성막이 있는 곳(고대.5권. 2:9(150)인 실로는 북쪽으로 상당한 거리에 있다.] 가서, 그 다음날 금식하면서 대제사장 비느하스를 통해서, 그만 진노를 그치시고 자기들이 두 번 패한 것으로 만족하시어 하느님께 이제는 적을 이기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비느하스의 예언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11. 베냐민 지파의 패배 이스라엘의 재공격 [삿20:29]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군대를 둘로 나누어 밤을 이용하여 반은 기브아 성 주변에 매복하게 하고, 나머지 반은 베냐민을 공격하게 했다.[㈜ 이 싸움의 광경은 투키디데스의 글을 연상시킨다. 즉 투키디데스 2:28, 8:1, 7:84.] 히브리인들은 공격하다가 도중에 후퇴하는 척하였는데, 그러자 베냐민 사람들이 뒤를 추격해 왔다. 히브리인들은 베냐민인들을 도시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끌어 내기 위하여[㈜ 혹은 ‘끌어내려고’.] 계속 도망쳤다. 이에 베냐민들은 싸울 능력이 없어 성에 남겨 두고 온 노인들고 어린 아이까지 모조리 없애 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히브리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성에서 상당한거리가 떨어지자 히브리인들은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되돌아 반격을 시도하면서 매복해 있는 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매복해 있던 자들이 일어나서 큰 함성을 지르며 성을 습격했다. 이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둥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은 계곡에 움푹 파인 곳으로 몰리게되었고,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둘러싸여 협공을 당하여 600명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전멸당하고 말았다. 이 600명도 힘을 합하여 이스라엘 사이를 간신히 뚫고 인근 산들로 도망을 쳐서 간신히 살아 남았던 것이지만 그 외 나머지 25,000명은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아 성을 불태워 버렸으며, 성년이 된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살해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다른 도시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행했다. 그들은 어찌나 격분했던지, 야베스 길르앗이 베냐민 지파를 정벌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2,000명의 병사를 보내 야베스 길르앗을 함락시키라고 명령했을 정도였다. 병사들은 400명의 처녀를 제외하고, 전쟁에 나갈 만한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을 모두 죽였다. 이들이 이렇게 격분한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첫 번째는 레위인의 아내의 죽음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자기편 병사들이 너무나 많이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12. 베냐민 지파와의 화해 : 그들 중에서 신랑감을 찾다 [삿21:2,6]


      그러나 그들은 베냐민 지파가 당한 재난이 율법을 어긴 보상으로 마땅히 받았어야 할 벌이었다고 고집은 하면서도 그들의 고통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리하여 베냐민 지파를 위하여 금식을 할 것을 백성들에게 명하였으며, 광야에 있는 로아(Rhoa)라고[㈜ 히브리어 립몬(석류나무)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곳은 주로 벧엘 서쪽 수마일 되는 현 ‘람문’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러나 기브아에 더 가까운, 더 근거 있는 장소가 거론되는 실정이다.(Burney, ‘사사기’ p.21).] 하는 바위 위에 머무르며 피신해 있던 600명의 나머지 베냐민 사람들은 데리러 사신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베냐민 지파에게 내린 재난은 곧 동족 상잔이었으므로 모든 이스라엘의 재난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재난을 인내로 참고 그들과 함께 거하면서 베냐민 지파가 완전히 멸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그들을 설득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제안하였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베냐민 지파의 온땅을 줄 것이며, 당신들이 가져갈 수 있는 한 얼마든지 전리품들을[㈜ 즉 ‘가축’.]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요.” 그리하여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은 이러한 그들의 불행이 하느님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그들의 악행 때문에 비롯된 것임을 뼈아프게 인정하고 조상의 땅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베스(Jabeth)로부터 온 400명의 처녀를 그들의 아내로 맞을 수 있도록 선처해 주었으며,[㈜ 고대.5권. 2:11(165).] 나머지 200명의 남자들에게도 어떻게 하면 아내를 만나 아이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하기로 했다. 한편, 그들은 전쟁 이전에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에게는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않기로 맹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들이 흥분한 나머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한 맹세를 취소하여 하느님께 거스릴 것이 없게 하여야 온 백성이 파멸될 위기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그들은 꼭 필요할때에 마지 못해 하는 거짓 맹세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악한 마음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행했을 경우에는 심각한 위증이 되며 위험하기까지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장로들이 이처럼 거짓 맹세에 대해 반발하고 있을 때에 한 사람이 일어나 한가지방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얻게 해줄 수 있게 하면서도 그들이 했던 맹세를 파기하지 않을 수 있는 묘안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그 방안에 대해 질문을 하자, 그는 “우리는 실로에서 매년 세차례 씩 만날 때에 열리는 절기에[㈜ 삿21:15, ‘보라 실로에 매년 야훼의 절기가 있도다.’ 여기서 ‘절기’는 숙곳의 가을 포도 수확 절기나 장막절 같은 가장 오래된 유대 절기를 암시한다. 실로에서의 연례적인 의식 행사에 대해서 삼상1:3을 참고하라. 요세푸스는 유월절과 오순절을 포함하여 매년 최대의 세 절기를 지키는 것을 그들의 초창기로 소급해 언급한다.] 우리의 아내나 딸들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베냐민 남자들로 하여금 여기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 때에 모인여자를 그들을 아내로 데려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딸을 잃은 부모들이 만일 이에 항의하여 그들을처벌할 것을 요구해오면, 당신들이 딸을 잘 간수하지 못하여 생긴 사고이니 누구에게 탓을 돌려서는 안되며 이미 그 정도[㈜ 몹시 서두른다는 뜻을 내포한 다톤(qavatto)은 다른 곳에서는 프로테론(pravoteron: 더 멀리)으로 나온다.] 화를 냈으면 되었지 베냐민 지파에게 화를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에 이스라엘인들은 이 방안을 따르기로하고, 베냐민인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처녀를 훔쳐서 결혼할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처녀들을 약탈하는 베냐민의 아들들]


      절기가 다가오자 200명의 베냐민 사람들은 둘이나 세명씩 짝을 지어 그 도시 앞에 숨어 있으면서 포도원이나 그 밖의 다른곳에 처녀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처녀들은 아무런 영문도모른 채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희희낙낙 하면서 거리로 나왔다.이때 그들은 길에 흩어져 숨어 있다가 별안간 뛰쳐 나와서 그 처녀들을 잡아갔다. 이렇게 해서 베냐민인들은 아내를 구할 수가있었고, 농사에 전념하면서 그 전의 행복했던 삶을 찾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이런 이스라엘인들의 지혜로 인해 거의 멸절의 위기에 있던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 구제될 수가 있었으며, 오래지 않아서 이 지파는 예언처럼 수적으로나 다른 모든 면에 있어서의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베냐민지파와의 내전은 완전히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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