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이 재난 후에 백성들은 범죄로 인하여 앗수르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하느님께서 옷니엘을 보내셔서 백성들을 구원하심에 대하여
1. 단 지파가 북부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다
베냐민 지파가 겪었던 어려움과 유사한 어려움을 단 지파도 겪었다. 그 자세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에 대한 관심을 멈추고 다만 땅을 경작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자, 가나안인들은 이러한 이스라엘인들을 얕잡아 보고서 군대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단지 이스라엘인들의 공격을 막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에게 해를 입혀 그들을 몰아내고 자기들의 도시를 다시 찾아 좀 더 편안히 살자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가나안 사람들은 계속해서 마차를 준비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그들의 여러 성들을 동맹연합시키어서 유다 지파에 속한 아스글론(Ascalon)과 에그론(Akkalon)에 있는 평지에 위치한 많은 성들을 공략해 왔다.[㈜ 고대.5권. 2:4(128)과 대조하라. 거기서는 에그론이 정복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요세푸스는 여기서 정복된 도시들중에 에그론이라는 이름이 있는 성경의 히브리본문에 맞추었다 (삿1:18).] 한편, 단 지파의 사람들은 그들의 공격에 밀려 모두 산으로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식량을 얻을 수 있는 땅은 단 한치의 땅도 얻지 못하였다.[㈜ 요세푸스는 여기서 비교훈적인 미가의 이야기와 요세푸스의 생각을 기록하진 않았다. 성경에는 단 지파의 원정과 뒤섞여 있다(삿17장 이하).] 이 때부터 단 지파는 가나안인들과 싸울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식량을 얻을 수 있는 땅도 없게 되자, 다섯명을 뽑아서 가나안 땅 중앙부에 보내 그들이 거주할 곳이 어디 있는가를 알아오도록 했다. 따라서 이들은 시돈 대 평지까지 하루 거리가 되는 리바누스 산 인근 지역과 소(小) 요단강의 근원까지[㈜ 현재 지명은 훌레 호수 북쪽 요단으로 가는 길. 참).전쟁.3권. 10:7(509)이하.] 거슬러 올라갔다.[㈜ \’시돈의 대평지로 하룻길을 행진해 갔다\’는 번역은 (100마일 이상되는)거리를 무시한 것이다. 이는 라틴역의 \’사흘길\’이라는 것과 전혀 맞지 않다.] 그들이 그 곳에서 땅을 바라다 보니 땅이 비옥하고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 사실을 그들의 지파에게 알렸고 그 성을 야곱의 한 아들의이름이자 그들 지파의 이름인 \’단\’을 따서 단 (Dan) 성이라고 명명하였다.
2. 앗수르 지배하의 이스라엘 [삿3:5]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의 정신 상태는 날이 갈수록 해이해져서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 버렸고, 하느님께 대해서도 관심을 두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율법을 떠나 버렸기때문에, 자기들의 유혹과 쾌락에 따라서 중심이 없는 삶을 살게되어 마침내 가나안인들에게 성행하는 악한 행위들로 오염되어 버렸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이들에게 진노를 발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어렵게 얻을 수 있었던 행복을 그들의 안일과 사치스러운 삶으로 인하여 모두 잃어 버리게 되었다. 앗수르의 왕인[㈜ 성경에는 아람-나하라임의 왕 구산-리사다임(칠십인역은 쿠살다임:cousaraqaivm). 즉 \’두 강의 아람의\’라는 뜻이며 이는 메소보다미아의 본명이다. 사람의 이름으로는 \’두번 죽은 극안한 구산\’이 되는데 이는 약간 오래된 성경의 왜곡 형태이다.] 구산리사다임(Chusarsathus)이 쳐들어 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투를 벌였으나 수많은 사람을 잃어 버렸고 결국 무력에 의하여 점령당하고 말았으며, 또한 두려움 때문에 자진해서 앗수르의 왕인 구산리사다임에게 나아가 항복해 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앗수르의 요구에 따라 분에 넘치는 조공을 바쳐야 했으며, 8년 동안이나 온갖 모욕을 견디며 살아야만 했다. 8년이 지난 후에야 그들은 이러한 지긋지긋한 생활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3. 그나스에 의한 그들의 구출 [삿3:9]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 중에 그나스(Keniaz)라고[㈜ 성경에는 \’갈렙의 아우 그나스으 아들 옷니엘\’. 요세푸스는 아버지로 아들을 대신했다 비슷하게 \’필로의 성경고대사\'(Biblical Antiguities of Philo)에서도 그나스(Cenez)는 최초의 사사이며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나타난다(M.R.James. p.146 주). 고대. 5권의 내용을 요약한 헬라어 본문의 편집자는 옷네일(Othniel)을 언급하지만 그 관계가 바뀌어 있다.] 하는 매우 정렬적이고 자상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떠나지 말고 그들의 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라고 하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위험한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현재의 부끄러운 모습을 개탄하여 이를 개혁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을 침공해 온 구산리사다임의 특공대를 쳐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전투가 큰 승리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백성들이 그들 도와 앗수르 군과 맞서 싸우겠다고 몰려 들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앗수르와의 전쟁에서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멀리 유브라데 강건너편까지 몰아내 버렸다. 이 일로 용맹한 인물임이 입증된 그나스는 백성들로부터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받아 40년간 백성을 다스린 후에 세상을 떠났다.[㈜ 히브리 사본에는 에훗. 칠십인역에는 아옷( ).]

제 3 장
이 재난 후에 백성들은 범죄로 인하여 앗수르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하느님께서 옷니엘을 보내셔서 백성들을 구원하심에 대하여
1. 단 지파가 북부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다
베냐민 지파가 겪었던 어려움과 유사한 어려움을 단 지파도 겪었다. 그 자세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에 대한 관심을 멈추고 다만 땅을 경작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자, 가나안인들은 이러한 이스라엘인들을 얕잡아 보고서 군대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단지 이스라엘인들의 공격을 막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에게 해를 입혀 그들을 몰아내고 자기들의 도시를 다시 찾아 좀 더 편안히 살자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가나안 사람들은 계속해서 마차를 준비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그들의 여러 성들을 동맹연합시키어서 유다 지파에 속한 아스글론(Ascalon)과 에그론(Akkalon)에 있는 평지에 위치한 많은 성들을 공략해 왔다.[㈜ 고대.5권. 2:4(128)과 대조하라. 거기서는 에그론이 정복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요세푸스는 여기서 정복된 도시들중에 에그론이라는 이름이 있는 성경의 히브리본문에 맞추었다 (삿1:18).] 한편, 단 지파의 사람들은 그들의 공격에 밀려 모두 산으로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식량을 얻을 수 있는 땅은 단 한치의 땅도 얻지 못하였다.[㈜ 요세푸스는 여기서 비교훈적인 미가의 이야기와 요세푸스의 생각을 기록하진 않았다. 성경에는 단 지파의 원정과 뒤섞여 있다(삿17장 이하).] 이 때부터 단 지파는 가나안인들과 싸울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식량을 얻을 수 있는 땅도 없게 되자, 다섯명을 뽑아서 가나안 땅 중앙부에 보내 그들이 거주할 곳이 어디 있는가를 알아오도록 했다. 따라서 이들은 시돈 대 평지까지 하루 거리가 되는 리바누스 산 인근 지역과 소(小) 요단강의 근원까지[㈜ 현재 지명은 훌레 호수 북쪽 요단으로 가는 길. 참).전쟁.3권. 10:7(509)이하.] 거슬러 올라갔다.[㈜ ‘시돈의 대평지로 하룻길을 행진해 갔다’는 번역은 (100마일 이상되는)거리를 무시한 것이다. 이는 라틴역의 ‘사흘길’이라는 것과 전혀 맞지 않다.] 그들이 그 곳에서 땅을 바라다 보니 땅이 비옥하고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 사실을 그들의 지파에게 알렸고 그 성을 야곱의 한 아들의이름이자 그들 지파의 이름인 ‘단’을 따서 단 (Dan) 성이라고 명명하였다.
2. 앗수르 지배하의 이스라엘 [삿3:5]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의 정신 상태는 날이 갈수록 해이해져서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 버렸고, 하느님께 대해서도 관심을 두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율법을 떠나 버렸기때문에, 자기들의 유혹과 쾌락에 따라서 중심이 없는 삶을 살게되어 마침내 가나안인들에게 성행하는 악한 행위들로 오염되어 버렸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이들에게 진노를 발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어렵게 얻을 수 있었던 행복을 그들의 안일과 사치스러운 삶으로 인하여 모두 잃어 버리게 되었다. 앗수르의 왕인[㈜ 성경에는 아람-나하라임의 왕 구산-리사다임(칠십인역은 쿠살다임:cousaraqaivm). 즉 ‘두 강의 아람의’라는 뜻이며 이는 메소보다미아의 본명이다. 사람의 이름으로는 ‘두번 죽은 극안한 구산’이 되는데 이는 약간 오래된 성경의 왜곡 형태이다.] 구산리사다임(Chusarsathus)이 쳐들어 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투를 벌였으나 수많은 사람을 잃어 버렸고 결국 무력에 의하여 점령당하고 말았으며, 또한 두려움 때문에 자진해서 앗수르의 왕인 구산리사다임에게 나아가 항복해 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앗수르의 요구에 따라 분에 넘치는 조공을 바쳐야 했으며, 8년 동안이나 온갖 모욕을 견디며 살아야만 했다. 8년이 지난 후에야 그들은 이러한 지긋지긋한 생활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3. 그나스에 의한 그들의 구출 [삿3:9]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 중에 그나스(Keniaz)라고[㈜ 성경에는 ‘갈렙의 아우 그나스으 아들 옷니엘’. 요세푸스는 아버지로 아들을 대신했다 비슷하게 ‘필로의 성경고대사'(Biblical Antiguities of Philo)에서도 그나스(Cenez)는 최초의 사사이며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나타난다(M.R.James. p.146 주). 고대. 5권의 내용을 요약한 헬라어 본문의 편집자는 옷네일(Othniel)을 언급하지만 그 관계가 바뀌어 있다.] 하는 매우 정렬적이고 자상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떠나지 말고 그들의 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라고 하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위험한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현재의 부끄러운 모습을 개탄하여 이를 개혁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을 침공해 온 구산리사다임의 특공대를 쳐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전투가 큰 승리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백성들이 그들 도와 앗수르 군과 맞서 싸우겠다고 몰려 들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앗수르와의 전쟁에서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멀리 유브라데 강건너편까지 몰아내 버렸다. 이 일로 용맹한 인물임이 입증된 그나스는 백성들로부터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받아 40년간 백성을 다스린 후에 세상을 떠났다.[㈜ 히브리 사본에는 에훗. 칠십인역에는 아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