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권 제 1장 블레셋인들이 법궤를 빼앗아 간 것에 대하여, 그리고 하느님의 진녹 블레셋인과 땅에 임하여 파괴당한 후 히브리인들에게 법궤를 돌려 준 것에 대하여

 


제 6 권  32년간의 사건을 다룸



엘리의 죽음부터 사울의 죽음까지



제 1 장



  블레셋인들이 법궤를 빼앗아 간 것에 대하여, 그리고 하느님의 진녹 블레셋인과 땅에 임하여 파괴당한 후 히브리인들에게 법궤를 돌려 준 것에 대하여



 1. 블레셋의 법궤와 재앙 [삼상5:1]



  내가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던 대로 블레셋 사람들은 히브리인들에겟 전리품 중의 하나로 법궤를 탈취한 후, 아스돗(Azo-tus)[㈜ 히브리어 본문에 대한 70인역의 이름은 아스돗(Ashdod).] 시로 옮겨, 다곤(Dagon)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신 옆에갖다 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절하기 위해서 성전에 들어갔다가 마치 자기들이 다곤 신에게 절을 하는 것처럼 다곤 신이 법궤에 절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들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자기들의 다곤 신이 서 있던 곳에서 내려와서 히브리인의 법궤 앞에 엎드려 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곤 신을 일으켜 세워 원래 있던 곳에 세워 놓은블레셋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심히 근심하였다. 또한 그들은 다곤 신전에 갈 때마다[㈜ 성경은 두 번째의 방문만 언급하면서 우상의 훼파에 대한 상술(詳述)을 첨가하고 있다.] 여전히 법궤 앞에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있는 다곤 신의 모습을 목격하고서 큰 고통과 혼돈에 빠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침내 하느님께서는아스돗시와 인근 지방에 질병을 내려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그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이질과 설사에 걸려 손 쓸 사이도 없이 죽어갔다.[㈜ 성경에 사용된 단어는 아마 \’전염성 종기\’를 의미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편안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그들의 몸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그들은 창자를 토해내고 먹은 음식물과 병으로 썩은 더러운 분비물을 토해내면서 죽어갔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그 지방의 열매들은 땅에서 수 많은 쥐 떼가[㈜ 요세푸스는 이점에서 쥐들을 언급함에 있어서 칠십인역과 일치한다. 히브리 사본은 차후에 그것들을 암시해줄 뿐이다(고대.6권.1:1(4)이하).] 기어나와상하게 하는 바람에 식물은 물론 과일 열매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제 아스돗 사람들은 이와 같은 엄청난 불행을 모두 다겪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불행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법궤 때문이며, 그들이 거두었던 전쟁에서의 승리와 법궤를 노획한 것이 결코 자기들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스글론(Ascalon)사람을 보내어[㈜ 성경에는 블레셋 방백들을 만난 후 하느님의 궤는 가드(Gath)로 먼저 옮겨지고 그후 에그론(Ekron)으로 보내어졌다 <70인역에는 아스글론(Ascalon)>.] 그곳주민들이 아스돗 사람들에게서 법궤를 받아 줄 것을 원했다. 이아스돗 사람들의 소원은 아스글론 주민들의 별 다른 반대 없이받아들여져 법궤는 아스글론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스글론 주민들이 법궤를 받았을 때에도, 아스돗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똑같은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 까닭은 법궤가 아스돗 사람들이 받았던 고통을 아스글론주민들에게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스글론 사람들도 법궤를 다른 인근 도시로 옮겼다. 그러나 다른 어떤 도시에서도 법궤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도시의 주민들도 똑같은재앙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 도시는 인근 도시로 법궤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양상으로 법궤는 마치 조공을 받으러 다니는 대국의 사신처럼 블레셋의 다섯 도시를 순회한결과가 되었다.



2. 블레셋인들의 협의와 결정 [참고, 삼상6:1]



  이 무서운 재앙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재앙들 때문에 지쳐 있었고,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법궤를 들여 놓으려 하지않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엄청난 희생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들은 법궤의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는 방안과 수단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가드(Gitta), 에그론(Akkaron), 아스글론(Ascalon), 가사(Gaza), 아스돗(Azo-tus)이라는 다섯 도시의 통치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는 것이적합한지를 의논하였다.[㈜ 성경에는 (6:2) 블레셋 사람들은 따라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제사장들과 복술자\”를 소집한다. 요세푸스에 기록된 이들의 모임에서 토론된 내용은 삼분(三分)의 관점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소포클레스(Sophocles)조수를 모방했다. 이와 유사한 견해들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고대.3권. 5:7(96)이하를 보라. 거기에는 여기서처럼(고대.5권.1:2(9)) 한 파는 침착을 유지할려고 한다.] 처음에 그들은 법궤를 탈취한 것이 하느님이 진노하신 원인이되었음을 인정하고,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려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되돌려 주어서는 안되며, 법궤가 그들이 당하고 있는 재앙의 원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왜냐하면 법궤에는 자기들에게 그런 재앙을 내릴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법궤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하느님께서그것을 인간들의 손에 들어가도록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래서 그들은 조용히 인내심을가지고 자기들에게 내려진 재앙을 수용하도록 타일렀고, 그리고 급작스러운 자연의 변화에 의해 때로는 인체에, 땅에, 식물에,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물체에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가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과거에 지성(知性)과 총명함으로 신뢰를 얻고 있었던사람들은 그러한 제안을 거부했으며 모임을 갖고 그 문제에 대해 가장 적절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법궤를 돌려보내는 것이나 그대로 보관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라, 한도시를 위하여 하나씩 모두 다섯 개의 황금으로 만든 형상을[㈜ 인간 형상을 한 작은 조각품. 성경에는 \”종양\” 혹은 \”종기\”라고 되어있음. 70인역에는 e[dra\”(전염병의 징조가 기본 형태임)로 기록되어 있음.] 하느님께 그들의 목숨을 보존시켜 주시고 자기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생명 보존이 불가능한 재앙에서 구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제를[㈜ 성경에는 법궤에 행한 잘못을 속죄하기 위하여 드리는 속건제(6:3)로 되어 있음.] 드리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라를 파괴하고 황폐화시킨 쥐들과 같은 모양의 쥐를 다섯 마리 만들어 그것들을 자루에 담은 다음 법궤 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하였다. 또한 법궤를 싣고 갈 수레를 새로 만들고 소로 하여금수레를 끌게 하되, 소의 새끼들이 울면 그 울음소리를 듣고 어미소가 가다가 되돌아오므로 그런 일이 없도록 새끼는 집에 가두어 두고 어미 소만 법궤를 메게 하여 세 길이 만나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소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궤를 멘 소가 히브리어로 향하면 블레셋 사람들의재앙의 원인이 법궤에 있다고 생각하고, 만일 그 소들이 다른길을 선택하면 그 법궤를 계속 추적하도록 하여 법궤에는 그와같은 재앙을 내릴 힘이 없다고 결론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 법궤가 벧세메스로 돌아가다 [삼상6:10]



  블레셋의 다섯 도시의 통치자들은 이 사람들의 말이 옳다고 판단하고 그들의 말을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그래서 다섯 통치자들은 세 길이 갈라지는 곳으로 소를 데리고 가서 자유롭게 소가 길을 선택하게 하였다. 그들은 소가 어디로, 누구에게 법궤를 끌고 갈 것인가 호기심에 가득 차서 소의 뒤를 따르는 데, 소는 마치 누군가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처럼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벧세메스(Bethes)라고[㈜ 성경에는 벧세메스(Bethshemesh),70인역에는 baiqsavmu\”), 에그론 남동 약 12마일 떨어진 유대국경에 위치한 지금의 아인셈스(\’Ain Shems)임.] 불리는 유다 족속의 한 마을이 나오는데 소는 그 마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소가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 소의 앞에는 광활하고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었으나[㈜ \”수레가 벧세메스사람(Beth-shemite)인 여호수아(Joshua)의 밭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삼상6:14).] 소는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마을 앞에 멈추어 섰다. 마을의 주민들은 이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때는 여름철이어서 마을의 온 주민들이 밭에서 열매를 거두고 있었는데, 그들은 일손을 놓은 채 법궤를 싣고 온수레를 보고 기뻐하였다. 그들은 법궤를 보자마자 수레가 서 있는 곳으로 달려와 법궤와 황금으로 만든 쥐를 내린 후 밭 근처에있는 바위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수레와 소를 제물로하여 하느님께 희생제와 번제를 드리고 큰 잔치를 베풀면서 즐거워하였다. 블레셋의 통치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돌아갔다.[㈜ \”에그론으로\”(삼상6:16).]



  4. 법궤를 만진 자에게 내려진 형벌과 법궤가 아미나답의 집으로 옮겨짐 [삼상6:19]



  그러나 이때 하느님의 진노가 내려 벧세메스(Bethes)사람 70명이[㈜ 성경에는 \”70인과 오만명\”으로 되어 있음(칠십인역도 유사함). 이는 불가능한 읽기임. 더 큰 숫자는 주로 주석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요세푸스의 성경본문도 이 점에 있어서는 자유롭다.]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사장이 아니므로[㈜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성경은 단지 \”그들이 궤를(뚫어지게)쳐다보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지은 죄의 성격에 대한 랍비 전승에 대해서는 베이(Weill)의 각주 부분을 참고할 것.] 법궤에 손을 댈 수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법궤를 만졌기 때문이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서 매우 큰 슬픔에 잠겼고, 하느님이 내리신 무서운 징벌을 당했으니 슬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당한 그들의 친척들을 애도하였다. 그리고 자기들은 법궤를 만질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스라엘 공의회에 사람을 보내[㈜ 성경(삼상6;21)에는 그 말이 모든 히브리인들에게가 아니라 기럇 여아림(Kiriath-jearim)의 주민들에게만 주어졌다.] 법궤가 블레셋인들에 의해 보관되었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사실을 알게 된 이스라엘 공의회는 벧세메스 옆에 있는 기럇여아림(Kariathiareim)이라는[㈜ 70인역도 같음. 히브리어 Kiriath-jearim은 벧세메스(Beth-shemesh)북동쪽 약9마일 떨어진 지금의 Kuryet el \’Enab일 것이다. 하느님의 궤의 원래 장소였던 실로(Shiloh)는 블레셋 치하에 있었을 수도 있다.] 마을로 법궤를 옮겼다. 이 마을에는 아비나답(Aminadab)이라는[㈜ 70인역도 같음. 히브리어 Kiriath-jearim은 벧세메스(Beth-shemesh)북동쪽 약 9마일 떨어진 지금의 Kuryet el \’Enab일 것이다. 하느님의 궤의 원래 장소였던 실로(Shiloh)는 블레셋 치하에 있었을 수도 있다.] 레위 출신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이 거하는 집은 하느님이 계시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법궤를 그의 집으로 옮겨왔다. 그의 아들들도[㈜ 성경에는 \”그의 아들 엘르아살(Eleazar).\”] 법궤를 거룩하게 모셨으며, 20년동안 법궤를 귀중하게 관리하였다. 그래서 블레셋인들의 손에는 겨우 4개월 동안[㈜ 성경에는 \”7개월\”(삼상6:1).] 법궤가 있었지만 기럇여아림(Kariathiarem)에서는 수십년 동안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 TN-catholicdictionary3-C1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제 6권 제 1장 블레셋인들이 법궤를 빼앗아 간 것에 대하여, 그리고 하느님의 진녹 블레셋인과 땅에 임하여 파괴당한 후 히브리인들에게 법궤를 돌려 준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6 권  32년간의 사건을 다룸


    엘리의 죽음부터 사울의 죽음까지


    제 1 장


      블레셋인들이 법궤를 빼앗아 간 것에 대하여, 그리고 하느님의 진녹 블레셋인과 땅에 임하여 파괴당한 후 히브리인들에게 법궤를 돌려 준 것에 대하여


     1. 블레셋의 법궤와 재앙 [삼상5:1]


      내가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던 대로 블레셋 사람들은 히브리인들에겟 전리품 중의 하나로 법궤를 탈취한 후, 아스돗(Azo-tus)[㈜ 히브리어 본문에 대한 70인역의 이름은 아스돗(Ashdod).] 시로 옮겨, 다곤(Dagon)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신 옆에갖다 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절하기 위해서 성전에 들어갔다가 마치 자기들이 다곤 신에게 절을 하는 것처럼 다곤 신이 법궤에 절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들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자기들의 다곤 신이 서 있던 곳에서 내려와서 히브리인의 법궤 앞에 엎드려 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곤 신을 일으켜 세워 원래 있던 곳에 세워 놓은블레셋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심히 근심하였다. 또한 그들은 다곤 신전에 갈 때마다[㈜ 성경은 두 번째의 방문만 언급하면서 우상의 훼파에 대한 상술(詳述)을 첨가하고 있다.] 여전히 법궤 앞에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있는 다곤 신의 모습을 목격하고서 큰 고통과 혼돈에 빠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침내 하느님께서는아스돗시와 인근 지방에 질병을 내려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그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이질과 설사에 걸려 손 쓸 사이도 없이 죽어갔다.[㈜ 성경에 사용된 단어는 아마 ‘전염성 종기’를 의미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편안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그들의 몸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그들은 창자를 토해내고 먹은 음식물과 병으로 썩은 더러운 분비물을 토해내면서 죽어갔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그 지방의 열매들은 땅에서 수 많은 쥐 떼가[㈜ 요세푸스는 이점에서 쥐들을 언급함에 있어서 칠십인역과 일치한다. 히브리 사본은 차후에 그것들을 암시해줄 뿐이다(고대.6권.1:1(4)이하).] 기어나와상하게 하는 바람에 식물은 물론 과일 열매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제 아스돗 사람들은 이와 같은 엄청난 불행을 모두 다겪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불행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법궤 때문이며, 그들이 거두었던 전쟁에서의 승리와 법궤를 노획한 것이 결코 자기들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스글론(Ascalon)사람을 보내어[㈜ 성경에는 블레셋 방백들을 만난 후 하느님의 궤는 가드(Gath)로 먼저 옮겨지고 그후 에그론(Ekron)으로 보내어졌다 <70인역에는 아스글론(Ascalon)>.] 그곳주민들이 아스돗 사람들에게서 법궤를 받아 줄 것을 원했다. 이아스돗 사람들의 소원은 아스글론 주민들의 별 다른 반대 없이받아들여져 법궤는 아스글론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스글론 주민들이 법궤를 받았을 때에도, 아스돗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똑같은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 까닭은 법궤가 아스돗 사람들이 받았던 고통을 아스글론주민들에게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스글론 사람들도 법궤를 다른 인근 도시로 옮겼다. 그러나 다른 어떤 도시에서도 법궤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도시의 주민들도 똑같은재앙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 도시는 인근 도시로 법궤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양상으로 법궤는 마치 조공을 받으러 다니는 대국의 사신처럼 블레셋의 다섯 도시를 순회한결과가 되었다.


    2. 블레셋인들의 협의와 결정 [참고, 삼상6:1]


      이 무서운 재앙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재앙들 때문에 지쳐 있었고,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법궤를 들여 놓으려 하지않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엄청난 희생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들은 법궤의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는 방안과 수단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가드(Gitta), 에그론(Akkaron), 아스글론(Ascalon), 가사(Gaza), 아스돗(Azo-tus)이라는 다섯 도시의 통치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는 것이적합한지를 의논하였다.[㈜ 성경에는 (6:2) 블레셋 사람들은 따라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제사장들과 복술자”를 소집한다. 요세푸스에 기록된 이들의 모임에서 토론된 내용은 삼분(三分)의 관점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소포클레스(Sophocles)조수를 모방했다. 이와 유사한 견해들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고대.3권. 5:7(96)이하를 보라. 거기에는 여기서처럼(고대.5권.1:2(9)) 한 파는 침착을 유지할려고 한다.] 처음에 그들은 법궤를 탈취한 것이 하느님이 진노하신 원인이되었음을 인정하고,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려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되돌려 주어서는 안되며, 법궤가 그들이 당하고 있는 재앙의 원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왜냐하면 법궤에는 자기들에게 그런 재앙을 내릴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법궤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하느님께서그것을 인간들의 손에 들어가도록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래서 그들은 조용히 인내심을가지고 자기들에게 내려진 재앙을 수용하도록 타일렀고, 그리고 급작스러운 자연의 변화에 의해 때로는 인체에, 땅에, 식물에,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물체에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가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과거에 지성(知性)과 총명함으로 신뢰를 얻고 있었던사람들은 그러한 제안을 거부했으며 모임을 갖고 그 문제에 대해 가장 적절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법궤를 돌려보내는 것이나 그대로 보관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라, 한도시를 위하여 하나씩 모두 다섯 개의 황금으로 만든 형상을[㈜ 인간 형상을 한 작은 조각품. 성경에는 “종양” 혹은 “종기”라고 되어있음. 70인역에는 e[dra”(전염병의 징조가 기본 형태임)로 기록되어 있음.] 하느님께 그들의 목숨을 보존시켜 주시고 자기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생명 보존이 불가능한 재앙에서 구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제를[㈜ 성경에는 법궤에 행한 잘못을 속죄하기 위하여 드리는 속건제(6:3)로 되어 있음.] 드리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라를 파괴하고 황폐화시킨 쥐들과 같은 모양의 쥐를 다섯 마리 만들어 그것들을 자루에 담은 다음 법궤 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하였다. 또한 법궤를 싣고 갈 수레를 새로 만들고 소로 하여금수레를 끌게 하되, 소의 새끼들이 울면 그 울음소리를 듣고 어미소가 가다가 되돌아오므로 그런 일이 없도록 새끼는 집에 가두어 두고 어미 소만 법궤를 메게 하여 세 길이 만나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소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궤를 멘 소가 히브리어로 향하면 블레셋 사람들의재앙의 원인이 법궤에 있다고 생각하고, 만일 그 소들이 다른길을 선택하면 그 법궤를 계속 추적하도록 하여 법궤에는 그와같은 재앙을 내릴 힘이 없다고 결론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 법궤가 벧세메스로 돌아가다 [삼상6:10]


      블레셋의 다섯 도시의 통치자들은 이 사람들의 말이 옳다고 판단하고 그들의 말을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그래서 다섯 통치자들은 세 길이 갈라지는 곳으로 소를 데리고 가서 자유롭게 소가 길을 선택하게 하였다. 그들은 소가 어디로, 누구에게 법궤를 끌고 갈 것인가 호기심에 가득 차서 소의 뒤를 따르는 데, 소는 마치 누군가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처럼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벧세메스(Bethes)라고[㈜ 성경에는 벧세메스(Bethshemesh),70인역에는 baiqsavmu”), 에그론 남동 약 12마일 떨어진 유대국경에 위치한 지금의 아인셈스(‘Ain Shems)임.] 불리는 유다 족속의 한 마을이 나오는데 소는 그 마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소가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 소의 앞에는 광활하고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었으나[㈜ “수레가 벧세메스사람(Beth-shemite)인 여호수아(Joshua)의 밭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삼상6:14).] 소는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마을 앞에 멈추어 섰다. 마을의 주민들은 이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때는 여름철이어서 마을의 온 주민들이 밭에서 열매를 거두고 있었는데, 그들은 일손을 놓은 채 법궤를 싣고 온수레를 보고 기뻐하였다. 그들은 법궤를 보자마자 수레가 서 있는 곳으로 달려와 법궤와 황금으로 만든 쥐를 내린 후 밭 근처에있는 바위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수레와 소를 제물로하여 하느님께 희생제와 번제를 드리고 큰 잔치를 베풀면서 즐거워하였다. 블레셋의 통치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돌아갔다.[㈜ “에그론으로”(삼상6:16).]


      4. 법궤를 만진 자에게 내려진 형벌과 법궤가 아미나답의 집으로 옮겨짐 [삼상6:19]


      그러나 이때 하느님의 진노가 내려 벧세메스(Bethes)사람 70명이[㈜ 성경에는 “70인과 오만명”으로 되어 있음(칠십인역도 유사함). 이는 불가능한 읽기임. 더 큰 숫자는 주로 주석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요세푸스의 성경본문도 이 점에 있어서는 자유롭다.]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사장이 아니므로[㈜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성경은 단지 “그들이 궤를(뚫어지게)쳐다보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지은 죄의 성격에 대한 랍비 전승에 대해서는 베이(Weill)의 각주 부분을 참고할 것.] 법궤에 손을 댈 수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법궤를 만졌기 때문이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서 매우 큰 슬픔에 잠겼고, 하느님이 내리신 무서운 징벌을 당했으니 슬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당한 그들의 친척들을 애도하였다. 그리고 자기들은 법궤를 만질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스라엘 공의회에 사람을 보내[㈜ 성경(삼상6;21)에는 그 말이 모든 히브리인들에게가 아니라 기럇 여아림(Kiriath-jearim)의 주민들에게만 주어졌다.] 법궤가 블레셋인들에 의해 보관되었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사실을 알게 된 이스라엘 공의회는 벧세메스 옆에 있는 기럇여아림(Kariathiareim)이라는[㈜ 70인역도 같음. 히브리어 Kiriath-jearim은 벧세메스(Beth-shemesh)북동쪽 약9마일 떨어진 지금의 Kuryet el ‘Enab일 것이다. 하느님의 궤의 원래 장소였던 실로(Shiloh)는 블레셋 치하에 있었을 수도 있다.] 마을로 법궤를 옮겼다. 이 마을에는 아비나답(Aminadab)이라는[㈜ 70인역도 같음. 히브리어 Kiriath-jearim은 벧세메스(Beth-shemesh)북동쪽 약 9마일 떨어진 지금의 Kuryet el ‘Enab일 것이다. 하느님의 궤의 원래 장소였던 실로(Shiloh)는 블레셋 치하에 있었을 수도 있다.] 레위 출신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이 거하는 집은 하느님이 계시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법궤를 그의 집으로 옮겨왔다. 그의 아들들도[㈜ 성경에는 “그의 아들 엘르아살(Eleazar).”] 법궤를 거룩하게 모셨으며, 20년동안 법궤를 귀중하게 관리하였다. 그래서 블레셋인들의 손에는 겨우 4개월 동안[㈜ 성경에는 “7개월”(삼상6:1).] 법궤가 있었지만 기럇여아림(Kariathiarem)에서는 수십년 동안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