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장
다윗이 죽음이 임박하여 아들 솔로몬에게 한 부탁과 성전건축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물건을 솔로몬에게 남겨 두었는지에 대하여
1.임종을 맞이하는 다윗이 솔로몬에게 훈시함 [왕상 2:1]
이 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윗은 고령으로 인해 병이 들 었는데 곧 죽게 될 것임을 알고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아들아, 나는 나의 갈길을 가려 한다. 나의 열조들을 향해 떠나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날 자들도 언젠가 가 야하는 그 길. 아무도 다시 되돌아 온 적이 없는 그 길을 가야만 한다. 죽음이 눈앞에 입박했으므로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 전에 너에게 조언한 것과 마찬가지로,[㈜ 참). 고대.7권 14:5(356)의 각주 427)] 내가 열심히 네게 권한 다[왕상 2:5 ]. 신하들에게는 공정하고, 네게 왕권을 부여하신 하느님께 경건히 행하고, 하느님께서 친히 모세를 통해 우리에 게 내려주신 하느님의 율법과 규례들을 지켜 행하라. 그리고 개 인적인 이익이나 아첨 혹은 탐욕 및 여타 감정에 이끌리어 그것을 소홀히 한다면, 너는 하느님의 은혜를 잃게 될 것이다. 또한 네가 하느님의 명령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긴다면, 하느님의 친절 한 돌보심은 적대적인 태도로 바뀐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수정된 본문 : 여러 사본들에는 \”너희들은 모두 다 하느님 친절한 돌보심을 멀리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강조한 대로 마땅히 네가 행할 바를 이행한다면, 너는 우리의 자손을 통해 계승될 왕권을 보장받게 될 것이다. 또한, 영원히 히브리 사람들을 통치할 가문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의 가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군대장관 요압의 범죄를 기억하라, 그 는 시기하여 두 명의 용감하고 의로운 장군인 넬의 아들 아브넬 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죽였다.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 법으로 그들의 죽음을 복수하거라. 요압은 나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는 모든 영예를 누리도록 배려 하여 나를 기쁘게 하라. 나의 망명 시절에 그들의 아버지가 내 게 공궤하였으므로 그때 진 호의를 갚고자 함이니라. 그리고 베냐민 자파의 게라의 아들 시므이(Simuis)에[㈜ 고대.7권 9:4(207)에서는 \’사무이스(samuis)로 불리워 짐. 성경에는 \’시므이\’로 나와 있음] 대해서는, 내가 마하나임 땅으로 도피하는 중에 거듭 나를 저주하였으나 내가 돌아올 때 요단강에서 나를 영접하였으므로 내가 당분간은 아무런 해도 받지 않게 해주겠다 약속을 했기에, 이제까지 처벌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마땅할 구실을 찾아 내어 그를 처벌하라.\”
2.다윗의 죽음 [왕상 2:10]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처벌받아야 될 사람들과, 그의지지 세력들과, 나라의 형편에 대해 여러 가지 말로 권고를 하고 나서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 만을 7년 6개월을[㈜ 열왕기상에서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통치한 기간이 단7년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세푸스가 말한 숫자는 삼하 5:5에 나타난다.] 다스렸으며, 예루살렘에서 전 이스라엘을 33년 동안 다스렸다. 그는 매우 탁월한[㈜ 혹은 \’혹은 대단히 용감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토록 많은 나라들의 왕의 지녀야 할 모든 덕을 소유한 사람이었 다.[㈜ \”그는 매우 탁월한 사람이었다\” 에서부터의 본문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본에는 \”그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덕망을 지니고 있었으며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도록 위임된 인물이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의 용기와 그의 능력과 그의 성실성, 지성을 칭송해야만 할 것이다\” 라고 나와 있다.] 용기에 있어 다윗왕에 필적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전투에 있어서도 신하들을 대신하여 제일 먼저 위험 속으로 뛰어들 어 적과 싸움으로써 병사들에게 적의 방어선을 공격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우두머리로써 명령만 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또한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간파하고 분별하는데에 뛰어 났으며. 위급한 상황을 처리하는 능력이 특출했다. 신중하고 온유하며 곤경에 처한 자에게 친절을 베풀고 공정하고 인정 있는 가장 위대한 왕들에게 요구되어지는 자질들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그토록 큰 권세를 지녔으면서도 우리아의 아내 사 건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더욱이 히브 리인 중에서 다른 나라들 중에서나 그와 같이 엄청난 부를 남겨 놓은 왕은 없엇다.
3.다윗이 장사됨 [왕상 2:10]
그의 아들 솔로몬은 성대한 장례를 치루고 다윗을 예루살렘 성안에 매장하면서 엄청난 많은 양의 재물을 함께 묻었다. 그 양 이 얼마나 엄청났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쉽게 알 수 있다. 다윗이 장사된지 1,300년이[㈜ 여기에서 언급된 예루살렘 성의 점령은 주전 135년(혹은134년)에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요세푸스는 다윗의 사망 연도를 일반적으로 인적으로 인정되는 햇수보다 무려 오백년이나 이른 주전 1,435년으로 잡는다(주전 약970)] 지난 후 데메트리우스(Demetrius)의 아들로 피우스(Pious 혹은 Eusebes)라고도[㈜ \’시메테스(Sidetes)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데메트리우스 1세, 소테르(Demetrius I. Soter)의 아들인 아티오쿠스 7세 유에르게테스(Antiochus Ⅶ. Euergetes)이다. 요세푸스는 고대. 8권.11:1(271)에서 안티오쿠스 소테르 라고 부르고 있다. 고대.7권.10:3(244)에는 경건자(Pious)라고 하는 그의 별명이 그의 특출한 경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요세푸스가 안티오쿠스 시데테스에게 붙인 소테르나 유세베스(Eusebes 즉 Pious 의 헬라어 표현)라고 하는 별명은 고대 문헌에는 아무데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불리는 안티오쿠스(Antiochus)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지 대제사 장 힐카누스는 포위를 풀고 군대를 철수시키기를 원했다. 그는 다른 방도가 없자 다윗왕의 무덤에 있는 방들가운데 한 방을 열 고 3,000달란트를 꺼낸 뒤에 그 일부를 안티오쿠스에게 건네 주 었으며 이에 안티오쿠스는 포위를 풀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 른 곳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있다.[㈜ 유대 전쟁. 1권.2:5(61), 고대.13권.8:4(249). 베이(Weill)는 그가 한 주에서 이전 절을 간과한다.] 또 한번은 몇 년이 지난뒤헤롯왕의 다른방을 열어서 엄청난 양의 돈을 취했다.[㈜ 참). 고대.16권.7:1(179)] 그러나 아무도 왕들의 관에까지는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관이 무덤에 들어간 자들이 볼 수 없도록 땅 밑에 교묘히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내용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충분히 다루기로 하자.

제 15 장
다윗이 죽음이 임박하여 아들 솔로몬에게 한 부탁과 성전건축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물건을 솔로몬에게 남겨 두었는지에 대하여
1.임종을 맞이하는 다윗이 솔로몬에게 훈시함 [왕상 2:1]
이 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윗은 고령으로 인해 병이 들 었는데 곧 죽게 될 것임을 알고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아들아, 나는 나의 갈길을 가려 한다. 나의 열조들을 향해 떠나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날 자들도 언젠가 가 야하는 그 길. 아무도 다시 되돌아 온 적이 없는 그 길을 가야만 한다. 죽음이 눈앞에 입박했으므로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 전에 너에게 조언한 것과 마찬가지로,[㈜ 참). 고대.7권 14:5(356)의 각주 427)] 내가 열심히 네게 권한 다[왕상 2:5 ]. 신하들에게는 공정하고, 네게 왕권을 부여하신 하느님께 경건히 행하고, 하느님께서 친히 모세를 통해 우리에 게 내려주신 하느님의 율법과 규례들을 지켜 행하라. 그리고 개 인적인 이익이나 아첨 혹은 탐욕 및 여타 감정에 이끌리어 그것을 소홀히 한다면, 너는 하느님의 은혜를 잃게 될 것이다. 또한 네가 하느님의 명령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긴다면, 하느님의 친절 한 돌보심은 적대적인 태도로 바뀐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수정된 본문 : 여러 사본들에는 “너희들은 모두 다 하느님 친절한 돌보심을 멀리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강조한 대로 마땅히 네가 행할 바를 이행한다면, 너는 우리의 자손을 통해 계승될 왕권을 보장받게 될 것이다. 또한, 영원히 히브리 사람들을 통치할 가문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의 가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군대장관 요압의 범죄를 기억하라, 그 는 시기하여 두 명의 용감하고 의로운 장군인 넬의 아들 아브넬 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죽였다.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 법으로 그들의 죽음을 복수하거라. 요압은 나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는 모든 영예를 누리도록 배려 하여 나를 기쁘게 하라. 나의 망명 시절에 그들의 아버지가 내 게 공궤하였으므로 그때 진 호의를 갚고자 함이니라. 그리고 베냐민 자파의 게라의 아들 시므이(Simuis)에[㈜ 고대.7권 9:4(207)에서는 ‘사무이스(samuis)로 불리워 짐. 성경에는 ‘시므이’로 나와 있음] 대해서는, 내가 마하나임 땅으로 도피하는 중에 거듭 나를 저주하였으나 내가 돌아올 때 요단강에서 나를 영접하였으므로 내가 당분간은 아무런 해도 받지 않게 해주겠다 약속을 했기에, 이제까지 처벌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마땅할 구실을 찾아 내어 그를 처벌하라.”
2.다윗의 죽음 [왕상 2:10]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처벌받아야 될 사람들과, 그의지지 세력들과, 나라의 형편에 대해 여러 가지 말로 권고를 하고 나서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 만을 7년 6개월을[㈜ 열왕기상에서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통치한 기간이 단7년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세푸스가 말한 숫자는 삼하 5:5에 나타난다.] 다스렸으며, 예루살렘에서 전 이스라엘을 33년 동안 다스렸다. 그는 매우 탁월한[㈜ 혹은 ‘혹은 대단히 용감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토록 많은 나라들의 왕의 지녀야 할 모든 덕을 소유한 사람이었 다.[㈜ “그는 매우 탁월한 사람이었다” 에서부터의 본문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본에는 “그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덕망을 지니고 있었으며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도록 위임된 인물이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의 용기와 그의 능력과 그의 성실성, 지성을 칭송해야만 할 것이다” 라고 나와 있다.] 용기에 있어 다윗왕에 필적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전투에 있어서도 신하들을 대신하여 제일 먼저 위험 속으로 뛰어들 어 적과 싸움으로써 병사들에게 적의 방어선을 공격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우두머리로써 명령만 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또한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간파하고 분별하는데에 뛰어 났으며. 위급한 상황을 처리하는 능력이 특출했다. 신중하고 온유하며 곤경에 처한 자에게 친절을 베풀고 공정하고 인정 있는 가장 위대한 왕들에게 요구되어지는 자질들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그토록 큰 권세를 지녔으면서도 우리아의 아내 사 건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더욱이 히브 리인 중에서 다른 나라들 중에서나 그와 같이 엄청난 부를 남겨 놓은 왕은 없엇다.
3.다윗이 장사됨 [왕상 2:10]
그의 아들 솔로몬은 성대한 장례를 치루고 다윗을 예루살렘 성안에 매장하면서 엄청난 많은 양의 재물을 함께 묻었다. 그 양 이 얼마나 엄청났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쉽게 알 수 있다. 다윗이 장사된지 1,300년이[㈜ 여기에서 언급된 예루살렘 성의 점령은 주전 135년(혹은134년)에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요세푸스는 다윗의 사망 연도를 일반적으로 인적으로 인정되는 햇수보다 무려 오백년이나 이른 주전 1,435년으로 잡는다(주전 약970)] 지난 후 데메트리우스(Demetrius)의 아들로 피우스(Pious 혹은 Eusebes)라고도[㈜ ‘시메테스(Sidetes)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데메트리우스 1세, 소테르(Demetrius I. Soter)의 아들인 아티오쿠스 7세 유에르게테스(Antiochus Ⅶ. Euergetes)이다. 요세푸스는 고대. 8권.11:1(271)에서 안티오쿠스 소테르 라고 부르고 있다. 고대.7권.10:3(244)에는 경건자(Pious)라고 하는 그의 별명이 그의 특출한 경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요세푸스가 안티오쿠스 시데테스에게 붙인 소테르나 유세베스(Eusebes 즉 Pious 의 헬라어 표현)라고 하는 별명은 고대 문헌에는 아무데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불리는 안티오쿠스(Antiochus)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지 대제사 장 힐카누스는 포위를 풀고 군대를 철수시키기를 원했다. 그는 다른 방도가 없자 다윗왕의 무덤에 있는 방들가운데 한 방을 열 고 3,000달란트를 꺼낸 뒤에 그 일부를 안티오쿠스에게 건네 주 었으며 이에 안티오쿠스는 포위를 풀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 른 곳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있다.[㈜ 유대 전쟁. 1권.2:5(61), 고대.13권.8:4(249). 베이(Weill)는 그가 한 주에서 이전 절을 간과한다.] 또 한번은 몇 년이 지난뒤헤롯왕의 다른방을 열어서 엄청난 양의 돈을 취했다.[㈜ 참). 고대.16권.7:1(179)] 그러나 아무도 왕들의 관에까지는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관이 무덤에 들어간 자들이 볼 수 없도록 땅 밑에 교묘히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내용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충분히 다루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