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솔로몬이 왕궁을 건축한 것과 히람과의 우호관계에 대하여
1. 솔로몬 왕궁의 건축 [왕상 7:1, 70인역 7:38][㈜ 성경상에는 왕궁을 건축하는 일이 성전 건축 직후에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고대. 8권.4:1(99)] 7년이 걸린 성전 건축 후에, 그는 왕궁 건물의 기초를 놓았다. 왕궁은 13년이 지나서도 완성되지 못했다. 왕궁은 성전 건축시와 같일 부지런하게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전은 7년만에 건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웅대하고, 정교하며, 놀라우며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해 진행되는 서전 건축 사역게 도 움을 주셨기 때문이다.[㈜ 경이로운 성전 건축에 관한 랍비 전승을 참고하기 위해서는 Ginzberg iv:155를 보라.] 그러나 왕궁은 성전에 비해 위엄있는 면에서는 열세였고, 건축자재들도 오래 전에 준비되지 못했을 뿐더러, 성전 건축시와 같은 비용이 들지 않았다.[㈜ 성경에는 없는 상세한 기술이다.] 그 이유는 하느님이 아닌 왕이 거처할 곳이었기에 시간이 더 걸려서 완성 되엇던 것이다. 이 왕궁 역시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의 이스라엘 의 번영과 그들의 왕에 어울리는 규모와 방식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왕궁의 전체적 계획과 배치등을 기술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이 역사(役事)에 대해 읽는 사람들이 이 기술을 통해 그 규모를 짐작해 보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성경에는 \”레바논 숲에 있는 집\”]
2. 왕궁 건물들에 대한 기술 [왕상7:2, 70인역 7:39]
왕궁에는 수많은 기둥들에 의해 지탱되는 크고 아름다운 거실이[㈜ 성경에는 \”레바논 숲에 있는 집\”.] 있었는데, 왕은 이곳을 재판 및 국가 소송의 결정을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입장할 수 있도록 크게 지었고, 재판시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자들이 모여 있을 방도 마편하였다. 이 곳은 길이가 100규빗이엇고, 넓이가 50규빗, 높이가 30규빗이었는데 백향목으로 된 정방형 기둥들에 의해 떠받쳐져 있었으며 고린도 양식으로[㈜ 물론 성경에 나와있지 않은 이러한 기술은 시대 착오적인 것이다.] 지붕이 덮여졌으며 동시에 3개의 홈이 파진 판벽널과[㈜ 왕상 7:5에 대해 히브리 사본과 70인역에 본문 둘다 애매모호하다. 그것은 히브리어 saquph는 탈굼역이 번역했던 것처럼 \’광선\'(beam)혹은 \’유리창(직 역하면\’투명\’)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가 사용한 Qurwvmata라는 단어는 70인역에서도 발견되는데, \’유리창\’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 히브리어 mehezah를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qurwvmata는 또한 \’문\'(door)을 의미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그 어려운 히브리 사본과 70인역의 본문을 번역하고자 하는 것은 소용 없는 일인것처럼 보인다. 그 본문은 아마 현대의 학자들에게 만큼이나 요세푸스자신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웠었을 것이다.] 같은 크기의 튼튼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벽기둥이 받치고 있었다. 건물들의 중심부에 또 하나의 거실이[㈜ 성경에는 \”기둥(흠정역에는 \”현관\”)을 세워 지은 낭실\”로 나와 있다.] 있었는 데, 처음 건물의 전체 넓이를 따라 폭 30규빗의 정방형 꼴이었 다.[㈜ 성경에는 \”장이 오십 규빗이요, 광이 삼십 규빗이며\”로 나와 있다.] 이 거실은 거대한 기둥들에 의해 받쳐 잇는 성전의 맞은 편에 있엇다.[㈜ 성경에는 \”그것들(즉,기둥들)앞에 낭실(흠정역에는 \”현관\”)이 있었다\”고 나와 있다. 베이(Weill)는 \’성전\’에 대하여 \’현관\’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는 이것이 히브리어ulam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가주한다. 그러나 여기의 ulam은 \’집회장\’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요세푸스의 \’성 전\'( )은 아마도 이러한 일반적인 용어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그안 에는 왕이 앉아 재판하는 웅장한 방이[㈜ 성경에는\”재판하는 낭실\”(흠정역엔 \”현관\”)로 나와 있다.]있었고 그 옆에는 여왕을 위한 방이 있었으며 나머지 방들은 공 공 업무를 마친 후의 휴식과 식사를 위한 방들이었는데, 그 모든 방들은 백향목 널빤지로 바닥을 덮었다. 그가 건축한 이 방들 중 몇몇은 10규빗의 돌들로[㈜ 성경에는 \”그 기초석은 귀하고 큰 돌… 십 규빗되는 돌과 여덟 규빗되는 돌이라\”로 나와 있다.] 지어졌다.
그 벽은 성전 장식을 위해 파내었던 그리고 톱으로 켠 매우 중 요한 돌로 덮었다. 이 돌은 그 돌의 생산지로 유명한 곳에서 왕궁의 외양을 매우 고귀하게 꾸미기 위해 가져온 것이었다[㈜ 수정된 본문] 이돌의 아름다움은 3개의 열(列)에서 보여지는데, 특히 네 번째 열 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각가들의 세기(細技)를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그들은 돌 위에 온갖 종류의 나무와 식물을 가지와 잎들에 음영을 집어넣어 그 려 넣었는데, 너무도 세밀하게 표현한 까닭에 보는 사람이 실제 로 움직이는 가지와 잎들이며 그들이 돌을 뒤덮고 있다고 상상 할 정도였다. 지붕에까지 이르는 벽의 나머지 부분들은 다양한 색상과 색조로 채색하여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 외 에도 솔로몬왕은 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오락을 위한 다 른 방들을 지었으며, 그들 사이에는 매우 긴 열주(列柱)들이 있었다. 그 방은 각종 연회와 잔치를 위해 금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 밖에 손님 접대용의 모든 용기도 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왕궁의 규모나 다양한 구조, 곧 큰 방들과 작은 방들과 보이지 않는 지하 방들의 수가 몇개이며, 그 왕궁의 외견상의 아름다움과 여름철의 작렬하는 햇빛을 피할 피서지와 휴양지 역할을 하는 작은 숲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총괄적으로 말한다면 그가 성전을 아름답게 꾸몄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얀 대리석, 백향목, 금, 은 그리고 장식된 지붕둘, 금으로 도금한 돌들로 세운 벽으로 전체 왕궁의 건물을 꾸몄다. 또 한 솔로몬왕은 단(壇)의 형태를 만들어 그 안에 거대한 상아 왕 좌를 만들게 하고 왕조까지 이르는 여섯 계단을 만들어 각 계단 의 양쪽에 2마리의 사자를 서 있게 하고 맨 윗계단에는 또 다른2마리의 사자를 양쪽에 세웠다[왕상 10:18]. 왕좌는 왕을 품으 로 안아들이는 형상을 하였고 왕좌는 왕좌의 후면을 마주보고 서있는 소의머리 위에[㈜ 70인역은, 히브리 본문에서 ros agol,즉 \’둥근 윗면\’ 대신에 rase egel즉 \’송아지의 머리들\’로 읽어서 protomai; movscwn이라고 기록 하고 있다.] 앉혀 있었는데 모든 왕좌는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직역하면 \’동여매어 있었다\’이다.]
3. 솔로몬과 두로왕 히람 [왕상 9:10]
솔로몬은 이 역사를 20년만에 마무지었다. 두로 왕 히람이 그들의 건축에 쓰일 백향목과 소나무들[㈜ 참). 고대 8권. 2:7(54) 각주 (74)] 뿐 아니라 엄청남 양 의 금.은을[㈜ 성경에는 은은 언급되지 않았다] 기증하였기 때문에 솔로몬 왕은 이 거대한 양의 선물들에 대한 답례로서 그 역시 히람에게 매년 곡식과 기름과 술을 선물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고대. 8권 2:7(54)] 히람이 섬에 거주하였기에 항상 이와같은 곡식. 기름. 술 등이 부족하 였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솔로몬은 히람에게 두로에서[㈜ 성경에는 \”갈릴리 땅 안에\”로 나와 있다.] 그 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갈릴리에 있는 20개의 성읍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히람이 그 성읍으로 가서 살펴보았을 때, 그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솔로몬에게 별로 쓸모없는 땅이라 는 전갈을 보냈다. 그때부터 그 성읍들은 가불 땅이라고 불렸는데, 베니게 방언으로 가불(Caul)은)[㈜ 성경에는 가불(Cabul)로 나와 있다. 70인역은 gebul이라고 나오며 o[rion은 \’경계\'(국경)를 의미한다.] \’기쁨을 주지 못하는\’[㈜ 이 해석에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는 유일한 셈어의 어원도 아람어 어근 kbl인데, 이 어근의 의미들 중의 하나인 \’…….이 결핍된\'(be barren)이다. 요세푸스의 해석, \’기쁨을 주지 못하는\’은 명백히 성경의 어구 \”그들 (즉 그 성읍들)은 그를 즐겁게 해주지 않았다\”에 근거하고 있다. 한 랍비 전통 은 그 이름이 \’구속되다\’를 나타내는 kabaldml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설 명한다. 다른 유대 주석가들은 요세푸스의 견해에 더 가깝게 해석한다. ] 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두로 왕은 또한 솔로몬에게 교묘한 문제들과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보내면서 그에게 그 의미를 명쾌히 설명해 주고 제기된 문제들에 관한 난점으로부터 자신을 구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현명하고 예지가 뛰어난 솔로몬 에게는 이들 중 어느것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판단력으로 모 든 문제를 해결하여 그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했다.
[베니게 역사가가 히람의 통치에 대해 기록함]
이 두 왕들은 베니게 방언들로 된 두로의 기록들을 헬라말로 번역한 메난더(Menander)에 의해 다음과 같은 말로 잘 언급되 어 있다.[㈜ 참). 고대.1권.4:3(116)이하에서 뒤이어 나오는 인용문은 동일한 말들로 되 어 있다.] \”아비발로스(Abibalos)의 사후(死後)에 그의 아들 히람이 왕국을 계승하여 53세까지 살면서 34년을 통치하였다. 유리코로스[(Eurychoros: 넓은 곳이라는 의미임>라는 제방을 쌓고 제우스[㈜ 제우스(Zeus)는 요세푸스가 고대.9권.6:6(138)에서 지칭하는 것처럼 두로 원주민들의 바알(Baal)에 해당하는 헬라어이었다.] 신전에 금으로 된 기둥을 세운 자도 다름 아닌 그였다. 게다가 그는 리바노스(Libanos)라고 불리는 산에서 나 무를 베어다가 신전들의 지붕을 만들고 고대의 신전들을 무너뜨리고 헤라클레스와[㈜ 헤라클레스(Heracles)는 두로의 멜카트(Melkart)에 해당하는 헬라어이 었다] 아스다롯(Astarte)을 위해 새 신전들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그는 페리티우스(Peritius)달에 헤라클레스의 각성을[㈜ 나(Ralph Marcus)는 (dkv.1권. 18: (119)에서)허드슨, 쉬스톤, 텍커레 이 등이 표현한 (성전을) \’세움\’이라는 점에서 보다 e[gerin이란 단어를 사 용한 베이(Weill)의 입장을 지지한다.] 기념하는 첫번째 사람이었다. 그는또 조공을 바치지 않는 이티카이(Itykaian-Uticans)에게 병력을 이끌고 가 서 다시 그들을 그에게 복종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통치 기간 중 아브데모노스(Abdemonos)라는 한 젊은이가 살았는 데, 항상 예루살렘 왕 솔로몬이 그에게 낸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풀어내었다.\” 또한 그들은 디오스(Dios)라는[㈜ 참).아피.1권 17(113) 이하에는 다음에 나오는 발췌문이 똑같이 나온다.] 사람에 의해 다 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아비발로스가 죽가 그의 아들 히람 이 왕이 되었다. 그 성의 동부에다 제방을 축조하고 그 성의 지경을 넓힌 것은 바로 그였다. 그 정전과는 별도로 지어졌던 제우 스 올림피우스(Zeus Olympius)의 신전 사이의 공간을 채워서 연결시키고 금으로 된 헌물로 치장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또한 레바논으로 올라가서 신전 건축을 위해 벌목하였다. 그리고 그 들이 말하기를 예루살렘의 통치자 솔로몬이 히람(Eiromos)에 게 수수께끼를 내고는 히람도 다른 수수께끼들을 보내라고 요청 했다. 솔로몬이 문제를 풀지 못한 사람은 문제를 푼 사람에게 벌 금을 내도록 하는 제안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동의했던 하람은 그 수수께끼를 푸눈데 실패하자 엄청난 양의 돈을 벌금 으로 지불하였다. 이후에 히람은 두로 사람이었던 압데몬(Abdemon)을 통해 제기된 수수께끼를 풀었다.[㈜ 다른 사본에는 \”압데몬이……해결하였다.] 그리고 히람이 솔 로몬에게 다른 수수께끼를 냈는데 솔로몬이 문제를 풀지 못하자 거금을 히람에게 지불하였다.\”[㈜ 혹은 (택커래이가 아피. 1권.24:(115)에서 번역한 대로) \”그가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되돌려 주었다.] 이것들이 디오스(Dios)가 한 말들이다.

제 5 장
솔로몬이 왕궁을 건축한 것과 히람과의 우호관계에 대하여
1. 솔로몬 왕궁의 건축 [왕상 7:1, 70인역 7:38][㈜ 성경상에는 왕궁을 건축하는 일이 성전 건축 직후에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고대. 8권.4:1(99)] 7년이 걸린 성전 건축 후에, 그는 왕궁 건물의 기초를 놓았다. 왕궁은 13년이 지나서도 완성되지 못했다. 왕궁은 성전 건축시와 같일 부지런하게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전은 7년만에 건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웅대하고, 정교하며, 놀라우며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해 진행되는 서전 건축 사역게 도 움을 주셨기 때문이다.[㈜ 경이로운 성전 건축에 관한 랍비 전승을 참고하기 위해서는 Ginzberg iv:155를 보라.] 그러나 왕궁은 성전에 비해 위엄있는 면에서는 열세였고, 건축자재들도 오래 전에 준비되지 못했을 뿐더러, 성전 건축시와 같은 비용이 들지 않았다.[㈜ 성경에는 없는 상세한 기술이다.] 그 이유는 하느님이 아닌 왕이 거처할 곳이었기에 시간이 더 걸려서 완성 되엇던 것이다. 이 왕궁 역시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의 이스라엘 의 번영과 그들의 왕에 어울리는 규모와 방식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왕궁의 전체적 계획과 배치등을 기술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이 역사(役事)에 대해 읽는 사람들이 이 기술을 통해 그 규모를 짐작해 보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성경에는 “레바논 숲에 있는 집”]
2. 왕궁 건물들에 대한 기술 [왕상7:2, 70인역 7:39]
왕궁에는 수많은 기둥들에 의해 지탱되는 크고 아름다운 거실이[㈜ 성경에는 “레바논 숲에 있는 집”.] 있었는데, 왕은 이곳을 재판 및 국가 소송의 결정을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입장할 수 있도록 크게 지었고, 재판시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자들이 모여 있을 방도 마편하였다. 이 곳은 길이가 100규빗이엇고, 넓이가 50규빗, 높이가 30규빗이었는데 백향목으로 된 정방형 기둥들에 의해 떠받쳐져 있었으며 고린도 양식으로[㈜ 물론 성경에 나와있지 않은 이러한 기술은 시대 착오적인 것이다.] 지붕이 덮여졌으며 동시에 3개의 홈이 파진 판벽널과[㈜ 왕상 7:5에 대해 히브리 사본과 70인역에 본문 둘다 애매모호하다. 그것은 히브리어 saquph는 탈굼역이 번역했던 것처럼 ‘광선'(beam)혹은 ‘유리창(직 역하면’투명’)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가 사용한 Qurwvmata라는 단어는 70인역에서도 발견되는데, ‘유리창’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 히브리어 mehezah를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qurwvmata는 또한 ‘문'(door)을 의미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그 어려운 히브리 사본과 70인역의 본문을 번역하고자 하는 것은 소용 없는 일인것처럼 보인다. 그 본문은 아마 현대의 학자들에게 만큼이나 요세푸스자신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웠었을 것이다.] 같은 크기의 튼튼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벽기둥이 받치고 있었다. 건물들의 중심부에 또 하나의 거실이[㈜ 성경에는 “기둥(흠정역에는 “현관”)을 세워 지은 낭실”로 나와 있다.] 있었는 데, 처음 건물의 전체 넓이를 따라 폭 30규빗의 정방형 꼴이었 다.[㈜ 성경에는 “장이 오십 규빗이요, 광이 삼십 규빗이며”로 나와 있다.] 이 거실은 거대한 기둥들에 의해 받쳐 잇는 성전의 맞은 편에 있엇다.[㈜ 성경에는 “그것들(즉,기둥들)앞에 낭실(흠정역에는 “현관”)이 있었다”고 나와 있다. 베이(Weill)는 ‘성전’에 대하여 ‘현관’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는 이것이 히브리어ulam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가주한다. 그러나 여기의 ulam은 ‘집회장’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요세푸스의 ‘성 전'( )은 아마도 이러한 일반적인 용어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그안 에는 왕이 앉아 재판하는 웅장한 방이[㈜ 성경에는”재판하는 낭실”(흠정역엔 “현관”)로 나와 있다.]있었고 그 옆에는 여왕을 위한 방이 있었으며 나머지 방들은 공 공 업무를 마친 후의 휴식과 식사를 위한 방들이었는데, 그 모든 방들은 백향목 널빤지로 바닥을 덮었다. 그가 건축한 이 방들 중 몇몇은 10규빗의 돌들로[㈜ 성경에는 “그 기초석은 귀하고 큰 돌… 십 규빗되는 돌과 여덟 규빗되는 돌이라”로 나와 있다.] 지어졌다.
그 벽은 성전 장식을 위해 파내었던 그리고 톱으로 켠 매우 중 요한 돌로 덮었다. 이 돌은 그 돌의 생산지로 유명한 곳에서 왕궁의 외양을 매우 고귀하게 꾸미기 위해 가져온 것이었다[㈜ 수정된 본문] 이돌의 아름다움은 3개의 열(列)에서 보여지는데, 특히 네 번째 열 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각가들의 세기(細技)를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그들은 돌 위에 온갖 종류의 나무와 식물을 가지와 잎들에 음영을 집어넣어 그 려 넣었는데, 너무도 세밀하게 표현한 까닭에 보는 사람이 실제 로 움직이는 가지와 잎들이며 그들이 돌을 뒤덮고 있다고 상상 할 정도였다. 지붕에까지 이르는 벽의 나머지 부분들은 다양한 색상과 색조로 채색하여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 외 에도 솔로몬왕은 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오락을 위한 다 른 방들을 지었으며, 그들 사이에는 매우 긴 열주(列柱)들이 있었다. 그 방은 각종 연회와 잔치를 위해 금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 밖에 손님 접대용의 모든 용기도 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왕궁의 규모나 다양한 구조, 곧 큰 방들과 작은 방들과 보이지 않는 지하 방들의 수가 몇개이며, 그 왕궁의 외견상의 아름다움과 여름철의 작렬하는 햇빛을 피할 피서지와 휴양지 역할을 하는 작은 숲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총괄적으로 말한다면 그가 성전을 아름답게 꾸몄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얀 대리석, 백향목, 금, 은 그리고 장식된 지붕둘, 금으로 도금한 돌들로 세운 벽으로 전체 왕궁의 건물을 꾸몄다. 또 한 솔로몬왕은 단(壇)의 형태를 만들어 그 안에 거대한 상아 왕 좌를 만들게 하고 왕조까지 이르는 여섯 계단을 만들어 각 계단 의 양쪽에 2마리의 사자를 서 있게 하고 맨 윗계단에는 또 다른2마리의 사자를 양쪽에 세웠다[왕상 10:18]. 왕좌는 왕을 품으 로 안아들이는 형상을 하였고 왕좌는 왕좌의 후면을 마주보고 서있는 소의머리 위에[㈜ 70인역은, 히브리 본문에서 ros agol,즉 ‘둥근 윗면’ 대신에 rase egel즉 ‘송아지의 머리들’로 읽어서 protomai; movscwn이라고 기록 하고 있다.] 앉혀 있었는데 모든 왕좌는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직역하면 ‘동여매어 있었다’이다.]
3. 솔로몬과 두로왕 히람 [왕상 9:10]
솔로몬은 이 역사를 20년만에 마무지었다. 두로 왕 히람이 그들의 건축에 쓰일 백향목과 소나무들[㈜ 참). 고대 8권. 2:7(54) 각주 (74)] 뿐 아니라 엄청남 양 의 금.은을[㈜ 성경에는 은은 언급되지 않았다] 기증하였기 때문에 솔로몬 왕은 이 거대한 양의 선물들에 대한 답례로서 그 역시 히람에게 매년 곡식과 기름과 술을 선물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고대. 8권 2:7(54)] 히람이 섬에 거주하였기에 항상 이와같은 곡식. 기름. 술 등이 부족하 였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솔로몬은 히람에게 두로에서[㈜ 성경에는 “갈릴리 땅 안에”로 나와 있다.] 그 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갈릴리에 있는 20개의 성읍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히람이 그 성읍으로 가서 살펴보았을 때, 그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솔로몬에게 별로 쓸모없는 땅이라 는 전갈을 보냈다. 그때부터 그 성읍들은 가불 땅이라고 불렸는데, 베니게 방언으로 가불(Caul)은)[㈜ 성경에는 가불(Cabul)로 나와 있다. 70인역은 gebul이라고 나오며 o[rion은 ‘경계'(국경)를 의미한다.] ‘기쁨을 주지 못하는’[㈜ 이 해석에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는 유일한 셈어의 어원도 아람어 어근 kbl인데, 이 어근의 의미들 중의 하나인 ‘…….이 결핍된'(be barren)이다. 요세푸스의 해석, ‘기쁨을 주지 못하는’은 명백히 성경의 어구 “그들 (즉 그 성읍들)은 그를 즐겁게 해주지 않았다”에 근거하고 있다. 한 랍비 전통 은 그 이름이 ‘구속되다’를 나타내는 kabaldml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설 명한다. 다른 유대 주석가들은 요세푸스의 견해에 더 가깝게 해석한다. ] 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두로 왕은 또한 솔로몬에게 교묘한 문제들과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보내면서 그에게 그 의미를 명쾌히 설명해 주고 제기된 문제들에 관한 난점으로부터 자신을 구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현명하고 예지가 뛰어난 솔로몬 에게는 이들 중 어느것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판단력으로 모 든 문제를 해결하여 그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했다.
[베니게 역사가가 히람의 통치에 대해 기록함]
이 두 왕들은 베니게 방언들로 된 두로의 기록들을 헬라말로 번역한 메난더(Menander)에 의해 다음과 같은 말로 잘 언급되 어 있다.[㈜ 참). 고대.1권.4:3(116)이하에서 뒤이어 나오는 인용문은 동일한 말들로 되 어 있다.] “아비발로스(Abibalos)의 사후(死後)에 그의 아들 히람이 왕국을 계승하여 53세까지 살면서 34년을 통치하였다. 유리코로스[(Eurychoros: 넓은 곳이라는 의미임>라는 제방을 쌓고 제우스[㈜ 제우스(Zeus)는 요세푸스가 고대.9권.6:6(138)에서 지칭하는 것처럼 두로 원주민들의 바알(Baal)에 해당하는 헬라어이었다.] 신전에 금으로 된 기둥을 세운 자도 다름 아닌 그였다. 게다가 그는 리바노스(Libanos)라고 불리는 산에서 나 무를 베어다가 신전들의 지붕을 만들고 고대의 신전들을 무너뜨리고 헤라클레스와[㈜ 헤라클레스(Heracles)는 두로의 멜카트(Melkart)에 해당하는 헬라어이 었다] 아스다롯(Astarte)을 위해 새 신전들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그는 페리티우스(Peritius)달에 헤라클레스의 각성을[㈜ 나(Ralph Marcus)는 (dkv.1권. 18: (119)에서)허드슨, 쉬스톤, 텍커레 이 등이 표현한 (성전을) ‘세움’이라는 점에서 보다 e[gerin이란 단어를 사 용한 베이(Weill)의 입장을 지지한다.] 기념하는 첫번째 사람이었다. 그는또 조공을 바치지 않는 이티카이(Itykaian-Uticans)에게 병력을 이끌고 가 서 다시 그들을 그에게 복종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통치 기간 중 아브데모노스(Abdemonos)라는 한 젊은이가 살았는 데, 항상 예루살렘 왕 솔로몬이 그에게 낸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풀어내었다.” 또한 그들은 디오스(Dios)라는[㈜ 참).아피.1권 17(113) 이하에는 다음에 나오는 발췌문이 똑같이 나온다.] 사람에 의해 다 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아비발로스가 죽가 그의 아들 히람 이 왕이 되었다. 그 성의 동부에다 제방을 축조하고 그 성의 지경을 넓힌 것은 바로 그였다. 그 정전과는 별도로 지어졌던 제우 스 올림피우스(Zeus Olympius)의 신전 사이의 공간을 채워서 연결시키고 금으로 된 헌물로 치장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또한 레바논으로 올라가서 신전 건축을 위해 벌목하였다. 그리고 그 들이 말하기를 예루살렘의 통치자 솔로몬이 히람(Eiromos)에 게 수수께끼를 내고는 히람도 다른 수수께끼들을 보내라고 요청 했다. 솔로몬이 문제를 풀지 못한 사람은 문제를 푼 사람에게 벌 금을 내도록 하는 제안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동의했던 하람은 그 수수께끼를 푸눈데 실패하자 엄청난 양의 돈을 벌금 으로 지불하였다. 이후에 히람은 두로 사람이었던 압데몬(Abdemon)을 통해 제기된 수수께끼를 풀었다.[㈜ 다른 사본에는 “압데몬이……해결하였다.] 그리고 히람이 솔 로몬에게 다른 수수께끼를 냈는데 솔로몬이 문제를 풀지 못하자 거금을 히람에게 지불하였다.”[㈜ 혹은 (택커래이가 아피. 1권.24:(115)에서 번역한 대로) “그가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되돌려 주었다.] 이것들이 디오스(Dios)가 한 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