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권 3장 요람과 여호사밧이 어떻게 모압에 출정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엘리야의 기적과 야호사밧의 죽음에 대하여

 


제 3 장



    요람과 여호사밧이 어떻게 모압에 출정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엘리야의 기적과 야호사밧의 죽음에 대하여



1.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동맹하여 모압과 싸움 [왕하 3:4]



  여호람이 왕이 된 후 그는 메사(Meisa)라[㈜ 성경에는 메사(Mesha:Mesa), 70인역 Mwsav. 성경에 나오는 메사에 대한 기사는 1,868년에 발견된 우명한 모압 비석(Moabite Stone)에 의해 보충된다. 거기에는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와 거의 동인한 언어로 기록되어져 있다.]는 모압왕을 공격하기로 결심하였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고대. 9권, 2:1(19)] 메사가 그의 아 비 아합에게는 200,000마리의 양과[㈜ 성경에는 100,000마리 어린양과 100,000마리의 수양]양털을 조공으로 바쳤는데그의 형 (아하시야)에게는 순종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래서 여호람은 자기 군대를 모집함과 동시에 여호사밧에게 사람을 보내어 간청하였다. \”왕은 처음부터 나의 아버지와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러니 순종하기를 거절한 모압을 공격하려는데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그를 도와주겠다는 약속뿐 아니라  자기의 통치 아래 있는 에돔(Edom)의 왕을 공격하자고 하였  다.[㈜ 에돔왕의 강제성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 없는 것을 덧붙인 것이다. 성경에는 단순히 여호사밧이 여호람에게 에돔을 지나갈 것을 충고해 주었고, 에돔왕 은 그 전투에 동참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고대. 9권. 5:1(97)] 여호람은 여호사밧에게서 원조에 대한 확신을 받고서 자 기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는 예루살렘 왕이 호화  스럽게 환대하자[㈜ 성경은 예루살렘에서 여호람의 영접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에돔의 광야를 지나 적들을 향해 진군한 것을 결심하였다. 모압인들은 유대인들이 광야로는 오지 않으리라 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허를 찔러 광야길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세 왕들 즉 유대왕과 이스라엘왕과 이두매왕이 예루살렘을 출 발하였다. 이들은 7일 길을 우회하였는데 그들을 인도하는 인도  자가 잘못된 길로 인도하여 가축과 군사들이 먹을 물이 없어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안내에 대한 세부 사항은 성경에 없다.] 특히 여호람은 그들의 슬픔으로 인해 하느님께 울부짖으면서 우리가 어떤 죄를 범했기에 싸움도 하지 못하고 세 왕을 모두 모압왕에게 넘겨주려고 하는지를 알기 원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인 여호사밧은 그에게 용기를 주면서 진영으로 사람을 보내 하느님의 선지자가 여기를 따라왔는지 알아보게 하여 그에게서 우리가 해야할 것을 배우자고 하였다.



 [동맹을 맺은 세 왕이 엘리사에게 자문을 구하다 왕하 3:11]



  이에 그때 여호람의 종들 중 하나가 엘리야의 제자인 사밧 (Shaphat)의 아들 엘리사가 그곳에 있다고 일러 주었다. 이에  여호사밧의 간청으로 세 왕은 그에게로 갔다. 왕들은 진영 밖에 있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음] 선지자의 천막에 와서 그에게 이 군대가 어찌될 것인가를 물어보았다. 특히 여호람은 그에게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다 .선지자는 그들에게 \”나를 괴롭히지 말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의 선지자에게로 가십시오. 이 분들이 참선자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여호람은 선지자에게 예언하여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애원하였다. 선지자는 경건하고 의로운 여호사밧이 없었다면 대답해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느님께 맹세하면서 말하였다. 선 지자는 악기를 다루는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음악이 연주되면서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계곡에 많은 도랑을 팔 것을 명령하였다.[㈜ 요세푸스는 히브리 본문의 nahal(흠정역은 \”계곡\”)을 번역한 70인역과 동인 한 단어를 사용한다. 참). 고대.6권. 7:2(135) 주.] 선지자는 \”구름과 바람과 폭풍우가 보이지 않 지만 군사들과 가축이 물을 먹고 구원 받을 때까지 물이 넘쳐서 강이 됨을 볼 것입니다. 그대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들 은총은  이것만이 아니라 적들에게서 승리를 얻게 될 것이고 모압의 가 장 좋고 강한 도시들을 함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과일나무를 잘라 버리고 그들 나라를 황폐케하고 샘과 강들을 막아버리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해주었다.



2. 자연현상의 착시를 일으켜 모압을 공격함 [왕하 3:20]



  선지자가 이 말을 하고난 다음 날 해가 뜨기 전[㈜ 성경에서는 \”minhah(흠정역은 \”희생 제물\”)가 바쳐진 아침녘에.\”]  큰 급류가흘러 내렸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에돔쪽 3일길 되는 거리에  풍성한 비를 내려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사들과 가축은 풍족하게 마실 물을 얻을 수 있었다.[㈜ 문장의 마지막 부분 (\”왜냐하면 그것이 발생했기 때문에,\”등)은 성경에 없는 것이 덧붙여져 있다. 랍비 전통에서도 샘을 메우는 유사한 설명을 하고 있 다.] 한편 모압왕은 세 왕이 쳐들어와 광야를 지나 자기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 었다. 이에 모압왕은 즉각 자기 군사들을 모집하고 그들에게 산 위에 진을 칠 것을 명령하였다.[㈜ 본문은 성경과 같이 수정되었다. 사본들에는 \”산들\”.] 이것은 적들이 자기나라로 들 어 오려고 할때 적들이 숨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해가 떠오르자 이들은 모압땅에서 멀리 있지 아니했기 때문에 급류로 흘러가는 물을 보게 되었다. 이때 햇빛이 물에 비 치어 빨간색으로 보였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핏빛 같았다. 그리 하여 이것을 본 이들은 적들이 갈증을 참지 못하고 우군끼리 서로 죽여 강물이 핏빛으로 변한 것으로 적의 상태를 잘못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경우라면 왕이 자기들을 내보내주어 적 들을 약탈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 모두는 이미 승리를 얻은 것처럼 서둘러 갔고 적들은 이미 자중지란으로 멸망했으리라고 생각하여 적 진영까지 도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짐작은 크나큰 착오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적들이 그들을 포위하여 일부는 죽임을 당했고, 일부는 흩어져 모압땅으로 도망하였다. 이에 세 왕은 모압땅으로 들어가 그곳 도시들을 파괴시키고, 그들의 밭 을 약탈하고 훼손시켰다. 그들은 시냇물에서 돌들을 가져와 밭을 메꾸었고 자장 좋은 나무들을 마구잡이로 잘라 버렸으며 샘들을 막아버렸다.[㈜ 성경은 돌들을 얻은 장소에 대해 기록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히브리 본문 25절을 번역한 70인역(d}w\” tou\’ katalipei\’n toul\” livqou\” tou\’ toivcou), 죽 \”길하렛셋의 돌들은 남기고\” 라고 번역한 것과 같다. 이는 모압어 Kir- (qir-\’성읍\’)을 히브리어 qir(\’벽\’)으로 번역한 것이 분명하며 어근 hrs, \’파괴하다\’에서 나온 것처럼 하레셋(haraseth)을 번역했다. 탈굼도 유사하게 번역했다. 길 하렛셋(모압의 \’길 (Kir)로도 불림)은 사해 남단 정서 12마일 쯤되는 현재의 케락(Kerak)이다.] 모암  왕은  추격을 당하여 포위공격을 받게 되었다. 점점 힘의 열세로 전복될 위기에 있는[㈜ 길 하레셋(Kir Haraseth)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이 부분에 대해 언급되지 않는다. 거기는 모압왕이 \”전투가 치열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라고 나 온다.] 도시를 보고 700명과 함께 기병들로 하여금 적 진영을 뚫게 하고 돌격하였다. 그는 그곳이 경계가 가장 허술할 곳인 줄 알고 시도를 하였는데 그곳이 가장 경계가 견고한 곳이었다.[㈜ 성경에서는 \”에돔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능히 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는 도주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 왔다. 



 [모암의 왕이 자기 장남을 희생제물로 바치다 왕하 3 : 26]



  이제 그는 그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 될 한가지 일을 수행하려 고 하였다. 그는 왕위를 계승할 자기 장남을 데리고 성전을 올라 가 모든 적들에게 보인 후에 그를 하느님께 온전한 번제로 드렸다. 세 왕들은 이것을 보고 그 고통을 불쌍히 여겨 인간적으로  동정심이 생겨[㈜ 왕의 동정에 관한 언급은 27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의 qeseph, \”통분\'(痛憤)이라는 히브리어를 metavmelo\”, \’후회\’ 로 번 역한 70인역에 근거한다. 27절은 모압왕의 통부늘 언급한 듯하며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패비를 언급한 것 같다.] 포위망을 풀고 집으로 각자 돌아갔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며 그곳에는 평화가 유지되었다.



[여호사밧의 죽음 대하 21:1, 20:31]



  그러나 그는 아주 잠시동안 침략에서 해방되어 살다가 죽었 다. 이때가 그의 나이 60세이었고 25년간 통치하였다. 그는 다 윗의 행위를 따랐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장엄한 장례를 치루었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 TN-catholicdictionary-C1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제 9권 3장 요람과 여호사밧이 어떻게 모압에 출정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엘리야의 기적과 야호사밧의 죽음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3 장


        요람과 여호사밧이 어떻게 모압에 출정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엘리야의 기적과 야호사밧의 죽음에 대하여


    1.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동맹하여 모압과 싸움 [왕하 3:4]


      여호람이 왕이 된 후 그는 메사(Meisa)라[㈜ 성경에는 메사(Mesha:Mesa), 70인역 Mwsav. 성경에 나오는 메사에 대한 기사는 1,868년에 발견된 우명한 모압 비석(Moabite Stone)에 의해 보충된다. 거기에는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와 거의 동인한 언어로 기록되어져 있다.]는 모압왕을 공격하기로 결심하였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고대. 9권, 2:1(19)] 메사가 그의 아 비 아합에게는 200,000마리의 양과[㈜ 성경에는 100,000마리 어린양과 100,000마리의 수양]양털을 조공으로 바쳤는데그의 형 (아하시야)에게는 순종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래서 여호람은 자기 군대를 모집함과 동시에 여호사밧에게 사람을 보내어 간청하였다. “왕은 처음부터 나의 아버지와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러니 순종하기를 거절한 모압을 공격하려는데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그를 도와주겠다는 약속뿐 아니라  자기의 통치 아래 있는 에돔(Edom)의 왕을 공격하자고 하였  다.[㈜ 에돔왕의 강제성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 없는 것을 덧붙인 것이다. 성경에는 단순히 여호사밧이 여호람에게 에돔을 지나갈 것을 충고해 주었고, 에돔왕 은 그 전투에 동참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고대. 9권. 5:1(97)] 여호람은 여호사밧에게서 원조에 대한 확신을 받고서 자 기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는 예루살렘 왕이 호화  스럽게 환대하자[㈜ 성경은 예루살렘에서 여호람의 영접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에돔의 광야를 지나 적들을 향해 진군한 것을 결심하였다. 모압인들은 유대인들이 광야로는 오지 않으리라 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허를 찔러 광야길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세 왕들 즉 유대왕과 이스라엘왕과 이두매왕이 예루살렘을 출 발하였다. 이들은 7일 길을 우회하였는데 그들을 인도하는 인도  자가 잘못된 길로 인도하여 가축과 군사들이 먹을 물이 없어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안내에 대한 세부 사항은 성경에 없다.] 특히 여호람은 그들의 슬픔으로 인해 하느님께 울부짖으면서 우리가 어떤 죄를 범했기에 싸움도 하지 못하고 세 왕을 모두 모압왕에게 넘겨주려고 하는지를 알기 원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인 여호사밧은 그에게 용기를 주면서 진영으로 사람을 보내 하느님의 선지자가 여기를 따라왔는지 알아보게 하여 그에게서 우리가 해야할 것을 배우자고 하였다.


     [동맹을 맺은 세 왕이 엘리사에게 자문을 구하다 왕하 3:11]


      이에 그때 여호람의 종들 중 하나가 엘리야의 제자인 사밧 (Shaphat)의 아들 엘리사가 그곳에 있다고 일러 주었다. 이에  여호사밧의 간청으로 세 왕은 그에게로 갔다. 왕들은 진영 밖에 있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음] 선지자의 천막에 와서 그에게 이 군대가 어찌될 것인가를 물어보았다. 특히 여호람은 그에게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다 .선지자는 그들에게 “나를 괴롭히지 말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의 선지자에게로 가십시오. 이 분들이 참선자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여호람은 선지자에게 예언하여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애원하였다. 선지자는 경건하고 의로운 여호사밧이 없었다면 대답해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느님께 맹세하면서 말하였다. 선 지자는 악기를 다루는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음악이 연주되면서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계곡에 많은 도랑을 팔 것을 명령하였다.[㈜ 요세푸스는 히브리 본문의 nahal(흠정역은 “계곡”)을 번역한 70인역과 동인 한 단어를 사용한다. 참). 고대.6권. 7:2(135) 주.] 선지자는 “구름과 바람과 폭풍우가 보이지 않 지만 군사들과 가축이 물을 먹고 구원 받을 때까지 물이 넘쳐서 강이 됨을 볼 것입니다. 그대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들 은총은  이것만이 아니라 적들에게서 승리를 얻게 될 것이고 모압의 가 장 좋고 강한 도시들을 함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과일나무를 잘라 버리고 그들 나라를 황폐케하고 샘과 강들을 막아버리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해주었다.


    2. 자연현상의 착시를 일으켜 모압을 공격함 [왕하 3:20]


      선지자가 이 말을 하고난 다음 날 해가 뜨기 전[㈜ 성경에서는 “minhah(흠정역은 “희생 제물”)가 바쳐진 아침녘에.”]  큰 급류가흘러 내렸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에돔쪽 3일길 되는 거리에  풍성한 비를 내려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사들과 가축은 풍족하게 마실 물을 얻을 수 있었다.[㈜ 문장의 마지막 부분 (“왜냐하면 그것이 발생했기 때문에,”등)은 성경에 없는 것이 덧붙여져 있다. 랍비 전통에서도 샘을 메우는 유사한 설명을 하고 있 다.] 한편 모압왕은 세 왕이 쳐들어와 광야를 지나 자기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 었다. 이에 모압왕은 즉각 자기 군사들을 모집하고 그들에게 산 위에 진을 칠 것을 명령하였다.[㈜ 본문은 성경과 같이 수정되었다. 사본들에는 “산들”.] 이것은 적들이 자기나라로 들 어 오려고 할때 적들이 숨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해가 떠오르자 이들은 모압땅에서 멀리 있지 아니했기 때문에 급류로 흘러가는 물을 보게 되었다. 이때 햇빛이 물에 비 치어 빨간색으로 보였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핏빛 같았다. 그리 하여 이것을 본 이들은 적들이 갈증을 참지 못하고 우군끼리 서로 죽여 강물이 핏빛으로 변한 것으로 적의 상태를 잘못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경우라면 왕이 자기들을 내보내주어 적 들을 약탈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 모두는 이미 승리를 얻은 것처럼 서둘러 갔고 적들은 이미 자중지란으로 멸망했으리라고 생각하여 적 진영까지 도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짐작은 크나큰 착오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적들이 그들을 포위하여 일부는 죽임을 당했고, 일부는 흩어져 모압땅으로 도망하였다. 이에 세 왕은 모압땅으로 들어가 그곳 도시들을 파괴시키고, 그들의 밭 을 약탈하고 훼손시켰다. 그들은 시냇물에서 돌들을 가져와 밭을 메꾸었고 자장 좋은 나무들을 마구잡이로 잘라 버렸으며 샘들을 막아버렸다.[㈜ 성경은 돌들을 얻은 장소에 대해 기록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히브리 본문 25절을 번역한 70인역(d}w” tou’ katalipei’n toul” livqou” tou’ toivcou), 죽 “길하렛셋의 돌들은 남기고” 라고 번역한 것과 같다. 이는 모압어 Kir- (qir-‘성읍’)을 히브리어 qir(‘벽’)으로 번역한 것이 분명하며 어근 hrs, ‘파괴하다’에서 나온 것처럼 하레셋(haraseth)을 번역했다. 탈굼도 유사하게 번역했다. 길 하렛셋(모압의 ‘길 (Kir)로도 불림)은 사해 남단 정서 12마일 쯤되는 현재의 케락(Kerak)이다.] 모암  왕은  추격을 당하여 포위공격을 받게 되었다. 점점 힘의 열세로 전복될 위기에 있는[㈜ 길 하레셋(Kir Haraseth)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이 부분에 대해 언급되지 않는다. 거기는 모압왕이 “전투가 치열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라고 나 온다.] 도시를 보고 700명과 함께 기병들로 하여금 적 진영을 뚫게 하고 돌격하였다. 그는 그곳이 경계가 가장 허술할 곳인 줄 알고 시도를 하였는데 그곳이 가장 경계가 견고한 곳이었다.[㈜ 성경에서는 “에돔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능히 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는 도주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 왔다. 


     [모암의 왕이 자기 장남을 희생제물로 바치다 왕하 3 : 26]


      이제 그는 그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 될 한가지 일을 수행하려 고 하였다. 그는 왕위를 계승할 자기 장남을 데리고 성전을 올라 가 모든 적들에게 보인 후에 그를 하느님께 온전한 번제로 드렸다. 세 왕들은 이것을 보고 그 고통을 불쌍히 여겨 인간적으로  동정심이 생겨[㈜ 왕의 동정에 관한 언급은 27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의 qeseph, “통분'(痛憤)이라는 히브리어를 metavmelo”, ‘후회’ 로 번 역한 70인역에 근거한다. 27절은 모압왕의 통부늘 언급한 듯하며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패비를 언급한 것 같다.] 포위망을 풀고 집으로 각자 돌아갔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며 그곳에는 평화가 유지되었다.


    [여호사밧의 죽음 대하 21:1, 20:31]


      그러나 그는 아주 잠시동안 침략에서 해방되어 살다가 죽었 다. 이때가 그의 나이 60세이었고 25년간 통치하였다. 그는 다 윗의 행위를 따랐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장엄한 장례를 치루었다.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