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권 제 8장 바벨론 왕이 어떻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백성과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고갔는지, 또한 왕정하에서 대제사장직을 계승해온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대하여

 


제 8 장



바벨론 왕이 어떻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백성과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고갔는지, 또한 왕정하에서 대제사장직을 계승해온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대하여



1. 유대인들이 완강하게 바벨론에 저항하다[왕하 25 :1, 렘 52 : 4]



  한편 바벨론왕은 사력을 다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 그는 큰 토성위에 망대를 세우고 감시하여 성벽위에 진치고 있는 자들을 꼼짝못하게 했다. 그리고 성벽 전체를 돌아가면서 성벽 과 같은 높이의 토성을 쌓았다. 그러나 비록 포위되어 있지만 유대인들은 용기와 신념으로 잘 견뎌낼 뿐만 아니라 그들은 기근 과 질병 때문에 내적으로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지만 약화되지 않고, 완강한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였다. 이들은 적군의 장비와 무기들에 당황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적들이 무기를 사용할 때  잘 보아 두었다가 무기를 그대로 만들어 냈다. 그래서 바벨론과 예루살렘 백성들간의 전투는 전적으로 지혜와 기술의 싸움이었다. 바벨론인 편에서는 도시를 함락하는데[㈜ 異文에는 \”파괴(destruction).\”] 더 쉽고 효과적인 것들을 생각하는 반면에, 유대인편에서는 적들의 무기들을 무용지물로 만들도록 그보다 월등한 다른 대체 무기를 만드는데 유 일한 구원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기근과 적군들이 망대에서 쏘는 무기(missiles)들로 인해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18개월간 동안 계속하여 전쟁을 하였다.[㈜ 요세푸스는 그러한 공성(攻城)에 관한 성경상 진술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베이(Weill)가 제안한 것처럼 아마도 요세푸스는 티투스(Titus)에 의한 예루살렘 공성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2. 예루살렘이 함락됨 [주전 586년 렘39:2(70인역46:2)]



   예루살렘은 시드기야 통치 11년이 되던 해 4월 9일에 함락되었다. 성을 함락한 사람은 느부갓네살로부터 공격을 위임받은 바 벨론군대의 사령관들이었다. 이는 느부갓네살 자신을 아라블라다(Arablatha)[㈜ 추측되는 형태 : 여러 사본들 아라바다(Aramatha) : 성경에는 립라(Riblah), 70인역에는 \’ \’, 다른 본문에는 성경은(렘 39:5)은 이곳이 하맛(Hamath) 땅에 있었다는 것을 첨부한다. 이곳은 레바논(Lebanon)과 헬몬(Hermon) 사이 계곡안에 있는 현재의 립레(Ribleh)로서 하맛의 남서쪽 약50마일에 위치한 오론테스(Orontes)강의 오른쪽에 위치한 곳이다.]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라고 임명된 장군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네르갈사레셀(N?regalsaros), 삼갈르보(Aremantos), 살스김(Semegaros), 랍사리스(Mab?saris) 그리고 네르갈사레셀(Acharampsaris)이다.[㈜ 성경의 히브리어 본문과 헬라어 본문 둘다의 혼돈을 고려하여 본다면 요세푸스 본문에 나타난 이러한 이름들의 원래 형태를 추측할 가망성은 없는 것 같다. 히브리어 본문과 70인역에 나타나는(6개의) 이름들을 베끼는 것으로도 족할 것이다(70인역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요세푸스의 형태는 그 이름들이 현재의 히브리어 본문이 명명한 방식과는 다르게 분류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Marganasa;r kaiv Samagw;Q(A사본, Nhrge;l asavsar !EissamagavQ) kaiv Nabousaca;rkaiv Nabousareiv\”, Nagargasnsevr, !RabamavQ(A사본 @Rabamavk)] 예루살렘은 한밤중에 함락되었고, 시드기야는 적들의 장군들이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그의 처자식과 친구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요새화된 계곡과[㈜ 혹은 \”가파른 계곡\”(?). 요세푸스가 성경상의 묘사인 \”두 성벽 사이의 문을 지나서\”를 기억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위의 번역은 보다 더 적절할 것이다.] 광야를 지나 피신하였다. 그러나 몇몇의 배신자들은 이를 바벨론 사람들에게 고발하자[㈜ 성경에 없는 사항. 랍비 전승은 바벨론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보낸 사슴을 사냥하는 동안 시드기야를 우연히 만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참). Ginzberg. 동서(同書)]그들은 시드기야를 찾으려고 새벽에 추격하여 여러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따라잡고 거기서 시드기야를 포위하게 되었다. 시드기야와 함께 달아나던 시드기야의 친구들과 신하들은 적들이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는 시드기야를 버리고 살길을 찾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 어졌다.[㈜ 렘 52:8\”…그리고 그의 모든 군사는 흩어졌다\”의 부연 설명이다.] 그러자 시드기야는 단지 몇몇 사람들만 자기 주변에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벨론 군사들은 손쉽게 그를 생포하여 그의 처자식과 함께 느부갓네살왕에게 데려갔다.



 [시드기야의 아들들이 그 아버지 앞에서 죽음 왕하25:7, 렘 39:5, (70인역 45:5)]



  시드기야가 왕앞에 오자 느부갓네살은 \”나를 위해 안전하게 나라를 지키도록 약속했을 때 말했던 언약들을 잃어버린[㈜ 다른 본문은 \”알지 못한\”] 불경건하고 비열하며 조약을 위반한 자\”라고 비난하기 시작하였  다. 또 그 왕권을 넘겨주었던(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에게서 왕국을 빼앗아 시드기야에게 주었다.)그 은혜를 모르고 자라고 비난하였다. 권력을 부여해준 사람에게 대항하여 그 권력 힘을 사용했던 것에 대해서도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네 행동이 혐오스러워 너를 우리 손에 멸망시키신 하느님을 위대하신 분이시다\”[㈜ 느부갓네살의 행위와 연설에 대한 이런 표현은 성경에 첨가된 것 이다.]라고 하였다. 시드기야에게 이런 말들을 한후 느부갓살은 그의 처자를 시드기야와 다른 포로들이 보는 앞에서 죽였다.[㈜ 다른 본문에는 \”그곳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하도록 그리고 그의 친구들을 살육하도록(문자적으로는 \”희생하도록\”)으로 표기]그런후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버리고 그를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이렇게하여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그에게 예언했던 것들, 즉 시드기야가 잡혀서 바벨론왕에게로 끌려가 그와 얼굴 을 맞대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의 눈으로 바벨론왕 의 눈을 보리라고 하였던 예언이 실현되고 말았다. 더구나 바벨론에 눈이 멀어 끌려가게 되었기 때문에 에스겔이 예언한 대로 시그기야는 바벨론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참). 고대. 10권. 7:2(106) 각주 172.]



 3. 신성한 예언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논해온 것들은 하느님의 성품이 얼마나 다양하다는 것과 그분이 말씀하신 것이 어떻게 성취되며 정한 시간 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더 분 명히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무지와 불신앙으로 인해 이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내다보지 못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주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 의를 기울이지 아니하여 재난을 당했을 때 그것을 피해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재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밝혀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이다.



 4. 다윗 후예의 총 통치 연도



  이렇게 다윗의 가계로 이어지는 왕위계승은 끝이 났다. 왕의 수는 마지막왕을 포함하여 모두 21명이었다.[㈜ 다윗의 혈통이 아닌 아달랴 여왕(Queen Athaliah)은 제외함.]이들 모두가 합하여 514년 6개월 10일을[㈜ 다른 본문에는 16일간으로 기록됨.] 통치하였다. 20년동안[㈜ 추측컨대 우리는 , \”그동안 20년을 제외한\”등을 읽게된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우리가 사울의 통치(참고. 고대. 6권. 14:9(378) 각주 329. 20년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다웃과 성전파괴까지 기간이 514년 6개월10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성전건축과 파괴 사이 기간을 아래에 주어진(고대. 10권. 8:5(147) 연대기와 일치하고 있다. 즉 솔로몬통치 초기 4년과 다윗의 통치 40년을 더하여 470년6개월10일이 된다. 그러나 다윗에서 시드기야까지 유다의 왕들의 전체 통치 연도는 요세푸스가 제공한 것처럼 507년6개월20일간이다. 이는 다음과 같다.



다윗          40년간(고대 7권 15:2(389))

솔로몬 80년간(고대 8권 7:8(211))

르호보암     17년간(고대 8권 10:4(264))

아비야        3년간(고대 8권 11:3(285))

아사         41년간(고대 8권 12:6(314))

여호사밧     25년간(고대 9권  3:2(44))

여호람        8년간(고대 9권  5:3(104))

아하시아      1년간(고대 9권  6:3(121))

여호아스     40년간(고대 9권  7:5(211),8:4(172))

아마샤       29년간(고대 9권  9:3(204))

웃시아       52년간(고대 9권 10:4(227))

요담         16년간(고대 9권 12:1(243))

아하스       16년간(고대 9권 12:3(257))

히스기야     29년간(고대10권  3:1(36))

므낫세       55년간(고대10권  3:2(46))

아몬          2년간(고대11권  3:4(47))

요시아       31년간(고대11권  4:1(77))

여호아하스   3개월10일(고대 11권  4:3(83))

여호야김     11년간(고대 11권 4:6(98))

여호야긴     3개월10일(고대 11권 5:2(135))

시드기야     11년간총 507년 6개월 20일



이렇게 통치연도가 생각되는 사망시기와 위에 보여진 요약된 연대사이에는 약 7년간의 모순이 있다. 그러나 만약 요세푸스가 아달랴(고대 9권 7:1(142))의 6년간을 불일치하게 계산한 것으로 추측한다면 모순은 약1년으로 축소된다. 요세푸스는 죽은 자의 날수를 낱이 세면서 설명하므로 해서 남은 기간들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윗의 6개월간(고대 7권 15:2(389))과 시드기야의 5개월을 첨가하여야 한다.(고대 10권8:2(135))]

  첫왕인 사울은 같은 지파는 아니지만 왕권을 잡고 있었다.



5. 다윗 후예들의 종말



  그후 바벨론왕은 자기의 군대장관 느부사라단(Nabuzardanes)을[㈜ 성경에는 느부사라단(Nebuzaradan), 70인역에는 Nabouxardavn.] 예루살렘으로 보내 성전을 약탈하게 하였고, 성전과 궁전을 동시에 불태우고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하며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이주시킬 것을 명하였다. 그러자 느부사라단은 시드기야 통치 11년에 예루살렘으로와 성전을 약탈하고 하느님의 금.은 그릇을 가져갔다.



 [바벨론인들에 의해 파멸된 예루살렘 왕하 25:8, 렘52:12]



  특히 금상과[㈜ 금탁자는 따로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성경에는 성전을 불태운 것은 그릇들을 옮겨 놓은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촛대는 물론 솔로몬대왕이 세워 놓은 커다란 놋대접과 놋기둥, 그 받침대 모두를 가져갔다. 그가 이 모든 것을 가져간 후 그는 시드기야 통치 11년 5월 초순(new moon),[㈜ 왕하(히브리 사본과 70인역)에는 \”그 달의 7일째 되던 날\”(루키안 역본에서는 9일째 되던 날) : 렘에서는 \”그 달의 10일째날\”Franz Kugler, \’모세로부터 파울루스에 이르기까지\'(Von Moses big Paulus), p.474이하. 여기서 요세푸스가 역법(曆法)에 대한 전문가였음을 가정하면서 이 모순에 대한 정교한 수학적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느부갓네살 통치 18년에[㈜ 성경에는 19년째] 성전을 불살라 버렸다.



 [연대(年代) 요약]



  그리고 그는 궁전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을 파괴시켰다. 성전은 세워진지 470년 6개월 10일만에[㈜ 참). 고대 10권 8:4(143) 각주 222. 그러나 고대 20권 10:2([㈜ 이 숫자와 다른 본문에 있는 3,513은 아담과 성전건축 사이의 간격으로 고대 1권 3:3(82)에 주어진 3,102년과 일치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성전 지속기간인 470년간의 총 연도를 3,102에 더하면, 우리는 아담과 성전파괴 사이의 총 기간으로 3,572년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에 의하면 사독(Sadok)에서 요사닥(Josadak)에 이르기까지 대제사장직은 466년간 지속된다. 후반부에서 요세푸스는 4년을 첨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전의 지속기간인 470년간에서 4년간을 경솔하게 제하였다. 왜냐하면 사독(Sadok)은 솔로의 통치 첫해에 대제사장이었는데 성전은 그의 통치 4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굽에서 백성들이 이주한지 1,062년 6개월10일만에,[㈜ 이 연대는 고대 7권 3:2(68)과 8권 3:1(61)에 주어진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출애굽부터 성전건축까지의 기간이 592년간으로 계산되어 있다(592+470=1,062) 그러나 앞의 인용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연대기는 출애굽과 성전건축 사이의 기간이 612년으로 계산되어진 고대 20권 10:1(120)과 아피 2권. 2(19)에 있는 연대기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만일 612년이라고 한다면 출애굽과 성전파괴 사이의 기간은 1,082년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아 홍수에서 예루살렘이 약탈당할 때까지 계산하면 1,957년 6개월 10일만에,[㈜ 이 계산에 의하면 대홍수에서 성전건축까지의 기간은 1,487ㄴ녀간(1,947-470=1,487)이 된다. 이는 고대. 8권. 3:1(61)에 있는 1,440년간이라는 숫와는 다르다.] 그리고 아담의 탄생에서 성전에 이런 일이 있을 때까지 4,153(사천[㈜ 이문(異文)에는 3,000]오백십삼[㈜ 이문에는 10])년 6개월10일만에[㈜ 이 숫자와 다른 본문에 있는 3,513은 아담과 성전건축 사이의 간격으로 고대. 1권. 3:3(82)에 주어진 3,102년과 일치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성전 지속기간인 470년간의 총연도를 3,102에 더하면, 우리는 아담과 성전파괴 사이의 총 기간으로 3,572년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불태워졌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의 기간(the number of years)이다. 이 기간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서 우리는 각각 여러 가지로 서술해왔던 것이다.



[세번째로 바벨론에 이송된 유대인들 왕하 25 : 18,렘 52 : 24]



  한편 바벨론왕의 군대장관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백성들을 이주시킨 후에 그는 대제사장 스라야(Saraios)와[㈜ 다른 본문에는 세베오스(Sebeos), 세바이오스(Sebaios : 여러 사본들은 사라이오스 Saraios, 또는 사레오스 Sareos 읽음) : 성경에는 스라야(Seraiah), 70인역에는 Saraiva\” 참) 고대. 10권 8:6(153) 각주 245.] 다음 서열인[㈜ 다른 본문에는 \”그와 함께한 제사장\” : 위에서 인용된 본문은 스바냐를\”제2의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성경과 아주 밀접하게 일치한다.] 제사장 스바냐(Sephenias)와[㈜ 성경에는 스바냐(Zephaniah), 70인역에는 Sofoniva\”, 루키안에는 Sofoniva\”]성전을 지키고있던 관리(이들중3명)와[㈜ 히브리본문은 \”입구를 지키던 3명의 문지기들\”(흠정역 \”문\” : 70인역은 \”문설주\”). 요세푸스이 문구인 \”성전을 지키던 관리들\”은 amarkelayya \”성전 관리인\”의 탈굼역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병사들을 맡고 있는 내시와 시드기야(Sacchias)의 일곱[㈜ 예레미야와 동일 : 열앙기하에는 5명] 친구들과 그의 서기관과 60명의 다른 관리들 모두를 전리품으로 약탈했던 그릇들과 함께 수리아에 있는 립라(Arablatha)[㈜ 추측형태:여러 사본들. 살라바다(Salabatha), 살라마다(Salamatha)  사볼라다(Sabolatha) : 성경에는 립라(Riblah), 참). 고대 10권 8:2(135) 각주 135]에 있던 왕에게로 끌고 갔다. 왕은 대제사장과 관리들의 목을 자르라고 명령한 후 왕은 모든 포로들과 시드기 야를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대제사장 여호사닥(Josadakos)은[㈜ 성경에는 여호사닥(Jehozadak), 70인역에는 다른 본문에는 ] 묶어서 끌고갔다.그는 대제사장 스라야의 아들로서 스라야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수리아의 립라(Ara- blatha)에서 바벨론왕에게 죽임을 당했던 사람이다.



 6. 대제사장 목록



  우리는 왕통(royal line)이 어떻게 이어졌으며 그들이 누구이며 몇 년간 통치하였는가를 일일이 열거해왔기 때문에 나는 대제사장들의 이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가 생각되므로 왕들이 통치하는 기간동안에 대제사장권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하 려고 한다.[㈜ 본문과 의미가 의심스럽다.:\”잡혔다\” 또는 받아드렸다\”라는 본문을 제안한다. 그러나 대상6:10(히브리사본은 5:36)에 의하면 사독으로부터 네 번째 제사장인 아사랴(Azariah)는 \”솔로몬이 세운 성전의 제사장이었다\”이는 그가 솔로몬 시대의 제사장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요세푸스가 \”제사장직을 설립했던 사람들\”기록할 것이라고 언급한 이유일 것이다(만약  katadsivxante\”가 여기서 \”설립했다\”라는 의미라면). 따라서 솔로몬의 동시대인인 사독으로부터 아사랴에 이르기까지 첫 4명의 제사장들을 모호하게 포함시켰다.] 솔로몬이 세운 성전에서 첫 대제사장은 사독(Sadok)이었고[㈜ 성경에는 사독(Zadok), 70인역에는 Sadwvk, 루키안에는 Saddouvk참) 고대 8권 1:3(10)이하] [대상6:8,히브리 성경5:34], 그후 그의 아들 아히마아스(Achimas)가[㈜ 성경에는 아히마하스(Ahimaaz), 70인역에는 !Aceimava\”] 그 직무를 계승하였다. 아히마아스 후에는 아사랴(Azarias)가[㈜ 70인역에는 동일 : 성경에는 아사랴(Azariah)] 되었으며, 그후에는 그의 아들 요람(Joramos)이[㈜ 여기서부터 요세푸스의 목록은 성경(히브리사본과 70인역 둘 다)과는 상당히 빗나간다. 성경은 아사랴(Azariah)이후 이름은 다음과 같다.

요하난(Johanan),!Iwanav\”

아사랴(Azariah),!Axaria\”

아마랴(Amariah),!Amariva\”

아히둡(Ahitub),!Aceitwvb

사독(Zadok),Sadwvk

살룸(Shallum),Salwvm(다른 본문에는 Sellouvm)

힐기야(Hilkiah),Celkeiva\”

아사랴(Azariah),!Axariva\”

스라야(Seraiah), Saraiva\”

여호사닥(Jehozadak),!Iwsadavk

그 밖의 다른 이름들은 연대기작품인 Seder Olam에 있는 목록에 수록되어 있다.]그 다음으로는 요람의 아들 이오스(Ios)가 되었다. 그후에는 악시오라모스(Axioramos)가 되었고, 그후 에는 그의 아들 피데아스(Phideas)가 되었고, 그 후에는 그의 아들 수다이오스(Sudaios)가 되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유엘로스(Juelos)가 되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요다모스(Jothamos) 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그의 아들 우리아스(Urias)가 되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네리야(N?rias)가 되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오다이아스(Odaias)가 되  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살룸(Sallumos)이 되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힐기야(Elkias)가 되 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아사랴(Azaros)가 되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의 아들 여호사닥(Josadakos)이 되었는데 여호사닥은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이들은 모두 아들이 아버지를 계승하여 대제사장직을 이어갔다.[㈜ 고대 20권 10:1(231)안에서 요세푸스는 첫 성전의 18명의 대제사장들을 언급하고 있다. 현재의 목록에는 17명만 있다. 사라이아스(Saraias : 성경은 스라야, Seraiah)라는 이름은 그 유사성으로 인해 아자로스(Azaros : 성경은 아사랴)다음에 우연히 누락되었을 것이다.]



  7. 바벨론에서 시드기야의 죽음[렘34:5(70인역41:5),대하36:7)



  한편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으로 돌아오자 그는 시드기야를 죽을때까지 옥에 가두어 두었다가 그가 사망하자 그를 왕의 예 우에 맞게 장례를 치르어 주었다.[㈜ 성경은 시드기야가 어떻게 죽었으며 장사되었는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참), 렘34:5에 있는 예언\”그러나 너는 평화롭게 죽게 될 것이며, 너의 선조에게 분향하던 … 네게 분향하며(흠정역 향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등의 기록은 있다. 랍비 전승은 시드기야가 바벨론에서 왕의 장례를 수락하였다는 요세푸스의 진술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랍비들은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의 죽음 이전 또는 이후에 감옥에서 풀려났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다. 참) Ginzberg vi.383, 428.] 그후 왕은 자기 신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전리품으로 약탈해온 그릇들을 헌납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한 지역에서 정착시켰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한 지역에 한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도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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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권 제 8장 바벨론 왕이 어떻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백성과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고갔는지, 또한 왕정하에서 대제사장직을 계승해온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8 장


    바벨론 왕이 어떻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백성과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고갔는지, 또한 왕정하에서 대제사장직을 계승해온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대하여


    1. 유대인들이 완강하게 바벨론에 저항하다[왕하 25 :1, 렘 52 : 4]


      한편 바벨론왕은 사력을 다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 그는 큰 토성위에 망대를 세우고 감시하여 성벽위에 진치고 있는 자들을 꼼짝못하게 했다. 그리고 성벽 전체를 돌아가면서 성벽 과 같은 높이의 토성을 쌓았다. 그러나 비록 포위되어 있지만 유대인들은 용기와 신념으로 잘 견뎌낼 뿐만 아니라 그들은 기근 과 질병 때문에 내적으로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지만 약화되지 않고, 완강한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였다. 이들은 적군의 장비와 무기들에 당황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적들이 무기를 사용할 때  잘 보아 두었다가 무기를 그대로 만들어 냈다. 그래서 바벨론과 예루살렘 백성들간의 전투는 전적으로 지혜와 기술의 싸움이었다. 바벨론인 편에서는 도시를 함락하는데[㈜ 異文에는 “파괴(destruction).”] 더 쉽고 효과적인 것들을 생각하는 반면에, 유대인편에서는 적들의 무기들을 무용지물로 만들도록 그보다 월등한 다른 대체 무기를 만드는데 유 일한 구원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기근과 적군들이 망대에서 쏘는 무기(missiles)들로 인해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18개월간 동안 계속하여 전쟁을 하였다.[㈜ 요세푸스는 그러한 공성(攻城)에 관한 성경상 진술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베이(Weill)가 제안한 것처럼 아마도 요세푸스는 티투스(Titus)에 의한 예루살렘 공성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2. 예루살렘이 함락됨 [주전 586년 렘39:2(70인역46:2)]


       예루살렘은 시드기야 통치 11년이 되던 해 4월 9일에 함락되었다. 성을 함락한 사람은 느부갓네살로부터 공격을 위임받은 바 벨론군대의 사령관들이었다. 이는 느부갓네살 자신을 아라블라다(Arablatha)[㈜ 추측되는 형태 : 여러 사본들 아라바다(Aramatha) : 성경에는 립라(Riblah), 70인역에는 ‘ ‘, 다른 본문에는 성경은(렘 39:5)은 이곳이 하맛(Hamath) 땅에 있었다는 것을 첨부한다. 이곳은 레바논(Lebanon)과 헬몬(Hermon) 사이 계곡안에 있는 현재의 립레(Ribleh)로서 하맛의 남서쪽 약50마일에 위치한 오론테스(Orontes)강의 오른쪽에 위치한 곳이다.]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라고 임명된 장군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네르갈사레셀(N?regalsaros), 삼갈르보(Aremantos), 살스김(Semegaros), 랍사리스(Mab?saris) 그리고 네르갈사레셀(Acharampsaris)이다.[㈜ 성경의 히브리어 본문과 헬라어 본문 둘다의 혼돈을 고려하여 본다면 요세푸스 본문에 나타난 이러한 이름들의 원래 형태를 추측할 가망성은 없는 것 같다. 히브리어 본문과 70인역에 나타나는(6개의) 이름들을 베끼는 것으로도 족할 것이다(70인역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요세푸스의 형태는 그 이름들이 현재의 히브리어 본문이 명명한 방식과는 다르게 분류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Marganasa;r kaiv Samagw;Q(A사본, Nhrge;l asavsar !EissamagavQ) kaiv Nabousaca;rkaiv Nabousareiv”, Nagargasnsevr, !RabamavQ(A사본 @Rabamavk)] 예루살렘은 한밤중에 함락되었고, 시드기야는 적들의 장군들이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그의 처자식과 친구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요새화된 계곡과[㈜ 혹은 “가파른 계곡”(?). 요세푸스가 성경상의 묘사인 “두 성벽 사이의 문을 지나서”를 기억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위의 번역은 보다 더 적절할 것이다.] 광야를 지나 피신하였다. 그러나 몇몇의 배신자들은 이를 바벨론 사람들에게 고발하자[㈜ 성경에 없는 사항. 랍비 전승은 바벨론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보낸 사슴을 사냥하는 동안 시드기야를 우연히 만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참). Ginzberg. 동서(同書)]그들은 시드기야를 찾으려고 새벽에 추격하여 여러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따라잡고 거기서 시드기야를 포위하게 되었다. 시드기야와 함께 달아나던 시드기야의 친구들과 신하들은 적들이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는 시드기야를 버리고 살길을 찾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 어졌다.[㈜ 렘 52:8″…그리고 그의 모든 군사는 흩어졌다”의 부연 설명이다.] 그러자 시드기야는 단지 몇몇 사람들만 자기 주변에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벨론 군사들은 손쉽게 그를 생포하여 그의 처자식과 함께 느부갓네살왕에게 데려갔다.


     [시드기야의 아들들이 그 아버지 앞에서 죽음 왕하25:7, 렘 39:5, (70인역 45:5)]


      시드기야가 왕앞에 오자 느부갓네살은 “나를 위해 안전하게 나라를 지키도록 약속했을 때 말했던 언약들을 잃어버린[㈜ 다른 본문은 “알지 못한”] 불경건하고 비열하며 조약을 위반한 자”라고 비난하기 시작하였  다. 또 그 왕권을 넘겨주었던(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에게서 왕국을 빼앗아 시드기야에게 주었다.)그 은혜를 모르고 자라고 비난하였다. 권력을 부여해준 사람에게 대항하여 그 권력 힘을 사용했던 것에 대해서도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네 행동이 혐오스러워 너를 우리 손에 멸망시키신 하느님을 위대하신 분이시다”[㈜ 느부갓네살의 행위와 연설에 대한 이런 표현은 성경에 첨가된 것 이다.]라고 하였다. 시드기야에게 이런 말들을 한후 느부갓살은 그의 처자를 시드기야와 다른 포로들이 보는 앞에서 죽였다.[㈜ 다른 본문에는 “그곳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하도록 그리고 그의 친구들을 살육하도록(문자적으로는 “희생하도록”)으로 표기]그런후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버리고 그를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이렇게하여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그에게 예언했던 것들, 즉 시드기야가 잡혀서 바벨론왕에게로 끌려가 그와 얼굴 을 맞대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의 눈으로 바벨론왕 의 눈을 보리라고 하였던 예언이 실현되고 말았다. 더구나 바벨론에 눈이 멀어 끌려가게 되었기 때문에 에스겔이 예언한 대로 시그기야는 바벨론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참). 고대. 10권. 7:2(106) 각주 172.]


     3. 신성한 예언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논해온 것들은 하느님의 성품이 얼마나 다양하다는 것과 그분이 말씀하신 것이 어떻게 성취되며 정한 시간 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더 분 명히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무지와 불신앙으로 인해 이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내다보지 못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주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 의를 기울이지 아니하여 재난을 당했을 때 그것을 피해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재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밝혀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이다.


     4. 다윗 후예의 총 통치 연도


      이렇게 다윗의 가계로 이어지는 왕위계승은 끝이 났다. 왕의 수는 마지막왕을 포함하여 모두 21명이었다.[㈜ 다윗의 혈통이 아닌 아달랴 여왕(Queen Athaliah)은 제외함.]이들 모두가 합하여 514년 6개월 10일을[㈜ 다른 본문에는 16일간으로 기록됨.] 통치하였다. 20년동안[㈜ 추측컨대 우리는 , “그동안 20년을 제외한”등을 읽게된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우리가 사울의 통치(참고. 고대. 6권. 14:9(378) 각주 329. 20년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다웃과 성전파괴까지 기간이 514년 6개월10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성전건축과 파괴 사이 기간을 아래에 주어진(고대. 10권. 8:5(147) 연대기와 일치하고 있다. 즉 솔로몬통치 초기 4년과 다윗의 통치 40년을 더하여 470년6개월10일이 된다. 그러나 다윗에서 시드기야까지 유다의 왕들의 전체 통치 연도는 요세푸스가 제공한 것처럼 507년6개월20일간이다. 이는 다음과 같다.


    다윗          40년간(고대 7권 15:2(389))

    솔로몬 80년간(고대 8권 7:8(211))

    르호보암     17년간(고대 8권 10:4(264))

    아비야        3년간(고대 8권 11:3(285))

    아사         41년간(고대 8권 12:6(314))

    여호사밧     25년간(고대 9권  3:2(44))

    여호람        8년간(고대 9권  5:3(104))

    아하시아      1년간(고대 9권  6:3(121))

    여호아스     40년간(고대 9권  7:5(211),8:4(172))

    아마샤       29년간(고대 9권  9:3(204))

    웃시아       52년간(고대 9권 10:4(227))

    요담         16년간(고대 9권 12:1(243))

    아하스       16년간(고대 9권 12:3(257))

    히스기야     29년간(고대10권  3:1(36))

    므낫세       55년간(고대10권  3:2(46))

    아몬          2년간(고대11권  3:4(47))

    요시아       31년간(고대11권  4:1(77))

    여호아하스   3개월10일(고대 11권  4:3(83))

    여호야김     11년간(고대 11권 4:6(98))

    여호야긴     3개월10일(고대 11권 5:2(135))

    시드기야     11년간총 507년 6개월 20일


    이렇게 통치연도가 생각되는 사망시기와 위에 보여진 요약된 연대사이에는 약 7년간의 모순이 있다. 그러나 만약 요세푸스가 아달랴(고대 9권 7:1(142))의 6년간을 불일치하게 계산한 것으로 추측한다면 모순은 약1년으로 축소된다. 요세푸스는 죽은 자의 날수를 낱이 세면서 설명하므로 해서 남은 기간들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윗의 6개월간(고대 7권 15:2(389))과 시드기야의 5개월을 첨가하여야 한다.(고대 10권8:2(135))]

      첫왕인 사울은 같은 지파는 아니지만 왕권을 잡고 있었다.


    5. 다윗 후예들의 종말


      그후 바벨론왕은 자기의 군대장관 느부사라단(Nabuzardanes)을[㈜ 성경에는 느부사라단(Nebuzaradan), 70인역에는 Nabouxardavn.] 예루살렘으로 보내 성전을 약탈하게 하였고, 성전과 궁전을 동시에 불태우고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하며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이주시킬 것을 명하였다. 그러자 느부사라단은 시드기야 통치 11년에 예루살렘으로와 성전을 약탈하고 하느님의 금.은 그릇을 가져갔다.


     [바벨론인들에 의해 파멸된 예루살렘 왕하 25:8, 렘52:12]


      특히 금상과[㈜ 금탁자는 따로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성경에는 성전을 불태운 것은 그릇들을 옮겨 놓은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촛대는 물론 솔로몬대왕이 세워 놓은 커다란 놋대접과 놋기둥, 그 받침대 모두를 가져갔다. 그가 이 모든 것을 가져간 후 그는 시드기야 통치 11년 5월 초순(new moon),[㈜ 왕하(히브리 사본과 70인역)에는 “그 달의 7일째 되던 날”(루키안 역본에서는 9일째 되던 날) : 렘에서는 “그 달의 10일째날”Franz Kugler, ‘모세로부터 파울루스에 이르기까지'(Von Moses big Paulus), p.474이하. 여기서 요세푸스가 역법(曆法)에 대한 전문가였음을 가정하면서 이 모순에 대한 정교한 수학적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느부갓네살 통치 18년에[㈜ 성경에는 19년째] 성전을 불살라 버렸다.


     [연대(年代) 요약]


      그리고 그는 궁전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을 파괴시켰다. 성전은 세워진지 470년 6개월 10일만에[㈜ 참). 고대 10권 8:4(143) 각주 222. 그러나 고대 20권 10:2([㈜ 이 숫자와 다른 본문에 있는 3,513은 아담과 성전건축 사이의 간격으로 고대 1권 3:3(82)에 주어진 3,102년과 일치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성전 지속기간인 470년간의 총 연도를 3,102에 더하면, 우리는 아담과 성전파괴 사이의 총 기간으로 3,572년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에 의하면 사독(Sadok)에서 요사닥(Josadak)에 이르기까지 대제사장직은 466년간 지속된다. 후반부에서 요세푸스는 4년을 첨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전의 지속기간인 470년간에서 4년간을 경솔하게 제하였다. 왜냐하면 사독(Sadok)은 솔로의 통치 첫해에 대제사장이었는데 성전은 그의 통치 4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굽에서 백성들이 이주한지 1,062년 6개월10일만에,[㈜ 이 연대는 고대 7권 3:2(68)과 8권 3:1(61)에 주어진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출애굽부터 성전건축까지의 기간이 592년간으로 계산되어 있다(592+470=1,062) 그러나 앞의 인용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연대기는 출애굽과 성전건축 사이의 기간이 612년으로 계산되어진 고대 20권 10:1(120)과 아피 2권. 2(19)에 있는 연대기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만일 612년이라고 한다면 출애굽과 성전파괴 사이의 기간은 1,082년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아 홍수에서 예루살렘이 약탈당할 때까지 계산하면 1,957년 6개월 10일만에,[㈜ 이 계산에 의하면 대홍수에서 성전건축까지의 기간은 1,487ㄴ녀간(1,947-470=1,487)이 된다. 이는 고대. 8권. 3:1(61)에 있는 1,440년간이라는 숫와는 다르다.] 그리고 아담의 탄생에서 성전에 이런 일이 있을 때까지 4,153(사천[㈜ 이문(異文)에는 3,000]오백십삼[㈜ 이문에는 10])년 6개월10일만에[㈜ 이 숫자와 다른 본문에 있는 3,513은 아담과 성전건축 사이의 간격으로 고대. 1권. 3:3(82)에 주어진 3,102년과 일치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성전 지속기간인 470년간의 총연도를 3,102에 더하면, 우리는 아담과 성전파괴 사이의 총 기간으로 3,572년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불태워졌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의 기간(the number of years)이다. 이 기간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서 우리는 각각 여러 가지로 서술해왔던 것이다.


    [세번째로 바벨론에 이송된 유대인들 왕하 25 : 18,렘 52 : 24]


      한편 바벨론왕의 군대장관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백성들을 이주시킨 후에 그는 대제사장 스라야(Saraios)와[㈜ 다른 본문에는 세베오스(Sebeos), 세바이오스(Sebaios : 여러 사본들은 사라이오스 Saraios, 또는 사레오스 Sareos 읽음) : 성경에는 스라야(Seraiah), 70인역에는 Saraiva” 참) 고대. 10권 8:6(153) 각주 245.] 다음 서열인[㈜ 다른 본문에는 “그와 함께한 제사장” : 위에서 인용된 본문은 스바냐를”제2의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성경과 아주 밀접하게 일치한다.] 제사장 스바냐(Sephenias)와[㈜ 성경에는 스바냐(Zephaniah), 70인역에는 Sofoniva”, 루키안에는 Sofoniva”]성전을 지키고있던 관리(이들중3명)와[㈜ 히브리본문은 “입구를 지키던 3명의 문지기들”(흠정역 “문” : 70인역은 “문설주”). 요세푸스이 문구인 “성전을 지키던 관리들”은 amarkelayya “성전 관리인”의 탈굼역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병사들을 맡고 있는 내시와 시드기야(Sacchias)의 일곱[㈜ 예레미야와 동일 : 열앙기하에는 5명] 친구들과 그의 서기관과 60명의 다른 관리들 모두를 전리품으로 약탈했던 그릇들과 함께 수리아에 있는 립라(Arablatha)[㈜ 추측형태:여러 사본들. 살라바다(Salabatha), 살라마다(Salamatha)  사볼라다(Sabolatha) : 성경에는 립라(Riblah), 참). 고대 10권 8:2(135) 각주 135]에 있던 왕에게로 끌고 갔다. 왕은 대제사장과 관리들의 목을 자르라고 명령한 후 왕은 모든 포로들과 시드기 야를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대제사장 여호사닥(Josadakos)은[㈜ 성경에는 여호사닥(Jehozadak), 70인역에는 다른 본문에는 ] 묶어서 끌고갔다.그는 대제사장 스라야의 아들로서 스라야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수리아의 립라(Ara- blatha)에서 바벨론왕에게 죽임을 당했던 사람이다.


     6. 대제사장 목록


      우리는 왕통(royal line)이 어떻게 이어졌으며 그들이 누구이며 몇 년간 통치하였는가를 일일이 열거해왔기 때문에 나는 대제사장들의 이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가 생각되므로 왕들이 통치하는 기간동안에 대제사장권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하 려고 한다.[㈜ 본문과 의미가 의심스럽다.:”잡혔다” 또는 받아드렸다”라는 본문을 제안한다. 그러나 대상6:10(히브리사본은 5:36)에 의하면 사독으로부터 네 번째 제사장인 아사랴(Azariah)는 “솔로몬이 세운 성전의 제사장이었다”이는 그가 솔로몬 시대의 제사장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요세푸스가 “제사장직을 설립했던 사람들”기록할 것이라고 언급한 이유일 것이다(만약  katadsivxante”가 여기서 “설립했다”라는 의미라면). 따라서 솔로몬의 동시대인인 사독으로부터 아사랴에 이르기까지 첫 4명의 제사장들을 모호하게 포함시켰다.] 솔로몬이 세운 성전에서 첫 대제사장은 사독(Sadok)이었고[㈜ 성경에는 사독(Zadok), 70인역에는 Sadwvk, 루키안에는 Saddouvk참) 고대 8권 1:3(10)이하] [대상6:8,히브리 성경5:34], 그후 그의 아들 아히마아스(Achimas)가[㈜ 성경에는 아히마하스(Ahimaaz), 70인역에는 !Aceimava”] 그 직무를 계승하였다. 아히마아스 후에는 아사랴(Azarias)가[㈜ 70인역에는 동일 : 성경에는 아사랴(Azariah)] 되었으며, 그후에는 그의 아들 요람(Joramos)이[㈜ 여기서부터 요세푸스의 목록은 성경(히브리사본과 70인역 둘 다)과는 상당히 빗나간다. 성경은 아사랴(Azariah)이후 이름은 다음과 같다.

    요하난(Johanan),!Iwanav”

    아사랴(Azariah),!Axaria”

    아마랴(Amariah),!Amariva”

    아히둡(Ahitub),!Aceitwvb

    사독(Zadok),Sadwvk

    살룸(Shallum),Salwvm(다른 본문에는 Sellouvm)

    힐기야(Hilkiah),Celkeiva”

    아사랴(Azariah),!Axariva”

    스라야(Seraiah), Saraiva”

    여호사닥(Jehozadak),!Iwsadavk

    그 밖의 다른 이름들은 연대기작품인 Seder Olam에 있는 목록에 수록되어 있다.]그 다음으로는 요람의 아들 이오스(Ios)가 되었다. 그후에는 악시오라모스(Axioramos)가 되었고, 그후 에는 그의 아들 피데아스(Phideas)가 되었고, 그 후에는 그의 아들 수다이오스(Sudaios)가 되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유엘로스(Juelos)가 되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요다모스(Jothamos) 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그의 아들 우리아스(Urias)가 되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네리야(N?rias)가 되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오다이아스(Odaias)가 되  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살룸(Sallumos)이 되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힐기야(Elkias)가 되 었고, 그후에는 그의 아들 아사랴(Azaros)가 되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의 아들 여호사닥(Josadakos)이 되었는데 여호사닥은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이들은 모두 아들이 아버지를 계승하여 대제사장직을 이어갔다.[㈜ 고대 20권 10:1(231)안에서 요세푸스는 첫 성전의 18명의 대제사장들을 언급하고 있다. 현재의 목록에는 17명만 있다. 사라이아스(Saraias : 성경은 스라야, Seraiah)라는 이름은 그 유사성으로 인해 아자로스(Azaros : 성경은 아사랴)다음에 우연히 누락되었을 것이다.]


      7. 바벨론에서 시드기야의 죽음[렘34:5(70인역41:5),대하36:7)


      한편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으로 돌아오자 그는 시드기야를 죽을때까지 옥에 가두어 두었다가 그가 사망하자 그를 왕의 예 우에 맞게 장례를 치르어 주었다.[㈜ 성경은 시드기야가 어떻게 죽었으며 장사되었는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참), 렘34:5에 있는 예언”그러나 너는 평화롭게 죽게 될 것이며, 너의 선조에게 분향하던 … 네게 분향하며(흠정역 향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등의 기록은 있다. 랍비 전승은 시드기야가 바벨론에서 왕의 장례를 수락하였다는 요세푸스의 진술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랍비들은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의 죽음 이전 또는 이후에 감옥에서 풀려났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다. 참) Ginzberg vi.383, 428.] 그후 왕은 자기 신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전리품으로 약탈해온 그릇들을 헌납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한 지역에서 정착시켰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한 지역에 한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도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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