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데메트리우스가 요나단에게 알렉산더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데메트리우스와 싸우던 알렉산더(발라스)가 어떻게 요나단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그를 대제사장에 임명했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데메트리우스의 죽음에 대하여
1. 알렉산더 발라스(Alexander Balas)가 수리아(Syria)를 침입하자 데메트리우스(Demetrius)가 요나단의 지원을 명하다[마카비 1서 10:1]
수리아로 올라온 주후 160년에[㈜ 주전 153/2년. 알렉산더가 주전 152년 여름에 팔레스틴에 도착하였다. ]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의 아들인[㈜ 그는 마카비 1서에서도 동일하게 불리워진다. 고대. 헬라역사가들은 알렉산더와 페르가뭄(Pergamum)의 아탈루스 Ⅱ세(Attalus Ⅱ)와애굽의 톨레미 Ⅵ세 필로메토르(Ptolemy Ⅵ Philometor)가 자신들의 요구를 앞세운 협잡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셀류키드 권좌에 대한 그의 요청을 승인해 주도록 로마 원로원을 설득시켰다. 알렉산더의 별칭 발라스(Balas)에 대해서는 주 124를 보라. 고대. 13권. (37)에 나오는 이야기는 헬라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다메섹(Damascus)의 폴리비우스(Polybius)이거나 니콜라스(Nicolas)일 것이다. ] 알렉산더(Alexander)는[㈜ 다른 본문에는 이름을 생략하고 있다. ] 수리아 내부 군인들의 반역으로 인해 톨레마이스(Ptolemais)를[㈜ 현재는 \’Akka, 참). 고대. 12권. (331) 각주 416. ]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은 데메트리우스의 오만한 성격과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고압적 자세로 인해 그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던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데메트리우스는 안디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이 세웠던 4개의 망대가있는 궁전 안에서만 생활하였고 어느 누구도 믿으려하지 않았드며 공적인 일에 대해서는 게으르고 부주의하였기 때문이었다.이와같은 이유로 해서 그에 대한 신하들의 원한은 우리가 이미앞서 언급했었던 것처럼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다. [㈜ 요세푸스에는 그런 단락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구절들이 그의 자료로부터 가져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 데메트리우스는 알렉산더갸 톨레마이스에 이미 도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그에 맞서기 위해 자신의 전군(全軍)을 이끌고 나갔다. 그는 다른 한편 특사들을 요나단에게 보내어 우호 동맹을 맺을 것을 제안하였다. 그가 이런 제안을 하게 된 데는 알렉산더가 자기보다먼저 요나단과 교섭하여 그로부터 원조를 얻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이를 미리 차단해 보겠다는 목적과, 또 한가지는 요나단이 이전에 자기의 적이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악의를 품고 자신을 공격하는데 가담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이 두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데메트리우스는 요나단에게 군사를 소집하여 보내라고 요구하는 한편, 박키데스가 전에 예루살렘 성채 안에 볼모로 가두어 두었던 유대인들을 풀어 주라고 명령하였다. 데메트리우스로부터 이같은 전갈을 받은 요나단은 곧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성채를 지키는 사람들과 백성들 앞에서 그전갈을 읽었다. 그가 이러한 지시 사항들을 다 읽었을 때, 그 성채에 있던 불경한 자들과 배반자들은 크게 두려워하였다. 왜냐하면 이제는 군대를 일으키는 것과 볼모들을 풀어주는 것을 왕이 요나단에게 일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채에 있던 자들 모두를 그들의 부모 품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그리고 요나단은 예루살렘에 자신의 거처를[㈜ th;n monh;n ejpoiei\’to는 투키디데스의 구절이며(Thuc. I. 131) 고대. 8권. 14 : 4(350)에도 있다. ] 정하여, 그 도시를 돌아보며 파괴된 것은 원상복귀 시키고 모든 것을 자신이 좋은 대로 배열해 놓았다. 그는 또 적의 공격에[㈜ 다른 본문에는 \’전쟁. \’] 대해 자신들을 더욱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도시 성벽을[㈜ 마카비 1서 10 : 11은 \’성벽과 시온의 산\’, 즉 안티오쿠스 유파토르(Antiochus Eupator)에 의해 파괴된 성전 언덕과 성벽. 참). 고대. 12권. (382) 이하(=마카비 1서 6 : 60이하). ] 정사각령 돌(square stones)로 쌓으라고 명령하였다. 유대에 주둔하고 있는 수비대(주둔군)들은이같은 상황을 팔피다가 자신들의 주둔지를 떠나 안디옥으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벧술(Bethsur) 시(市)에 있는 수비대와 예루살렘 성채 안에 있는 수비대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 예루살렘은 마카비 1서의 이 부분에서는 특별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 최근에 발견된 최근에 발견한 벧술(Bethsur)의 점령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의 간략한 요약은 \’BASOR\’, 43(1931. 10), pp. 2~12에 있는 알브라이트(Albright)의 책 또는 왓진거(Watzinger) ii. 24이하와 타펠(Tafel) 3을 보라. ] 왜냐하면 이들은 대부분이 불경하고 배교한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 주둔지를 떠나지 못했던 것이다.
2. 알렉산더 발라스가 선물과 약속으로 요나단을 설득하려 하다[마카비 1서 10 ; 15]
알렉산더는 데메트리우스가 요나단과 약정을 체결했다는 사실을 알고(그는 요나단의 용기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마게도냐인들과의 싸움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는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그가 데메트리우스와 데메트리우스의 군사령관인 박키데스의 손에 얼마나 큰 고난을 당하였던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편 친구들에게,[㈜ 참). 고대. 12권. (134). 각주 149. ] 이 중대한시기에 전투에서[㈜ 다른 본문에는 \’적들에 대한. \’] 용맨스런 요나단보다 더 좋은 동맹자는 찾아볼 수 없노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요나단 역시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도 많은 손상을 가하였던 데메트리우스를 미워하기 때문에 알렉산더 자신과 요나단이동맹을 맺으면 요나단에게도 유리한 상황이 되리라고 말했다.\’만일 우리가 요나단을 데메트리우스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우리편으로 만들 결심이라면, 지금 당장 우리와 동맹을 맺도록기 위하여 그를 초청하는 것이 가장 이로울 것이다. \’그리하여요나단에게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되자 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 이 편지의 진정성과 데메트리우스의 진위성에 대해서는 부록에 인용된 문헌을 참고하라. ] \’왕 알렉산더가 형제 요나단에게 문안합니다. 유리는오랫동안 당신의 용기와 충의데 대하여 들어 왔습니다. 이런이유로 당신에게 우호동맹을[㈜ 다른 본문에는 \’우호적인\'(friendly)을 생략한다. ] 제안하기 위하여 사람을 보냅니다. 우리는 오늘 당신에게 나의 친구라는 칭호를 드리며, 당신을 유대인들의 대제사장으로 선출하였습니다. 또한 선물로 자주빛 겉옷과 금관을 보내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존경하는 당신에게 우리에 대하여 매 한가지로 행동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
3. 데메트리우스가 요나단에게 반대 제안(Counter Proposals)을 하다[마카비 1서 10 : 21]
이 편지를 받은 요나단은, 장막절 절기 때에 대제사장 의복을 입었다. 대제사장 의복이 여러 사람 앞에 선보인 것은 그의 형 유다가 죽은지 4년만에 처음이었다. – 왜냐하면 이 기간 동안에 대제사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카비 1서 10 : 21에 \’160년 7월에\’즉 주전 152년의 가을에<여기서는 셀류키드 시대가 시작된 주전 311년의 봄이라 생각됨. 참). 고대. 12권. (240)각주 270>유다는 주전 159년에 죽었다. 요나단이 대제사장으로 계승된 것은 유다가 죽은 후 7년이 지나서였다. 참). 고대. 20권. 10 : 3(237) ; 유사한 모순에 대해서는 고대. 12권. (414)와 각주 530. ] – 그뿐만 아니라 요나단은 많은 군사들을 한데 모으고 수많은 무기들을 만들었다. 한편 데메트리우스는 이같은 사실들을 알고 비탄에 빠졌다. 이와같은 일들이 벌어진 것은 알렉산더가 요나단에게 데메트리우스 자신이 제시한 조건을 거절하는 대신에 자기와 동맹을 맺으면 더 큰 이득을[㈜ filanq rwpeuvein의 의미는 벨레스(Welles)에 의해 자성된 \’Royal Corr\’, pp. 373에 포함되어 있다. ] 볼 수 있다고 교섭할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요나단이 자기와 동맹을 맺어 주기를 바라며 마냥 기다리만 하였기 때문이라고 후회하였다. 그리하여 그도 요나단과 그 백성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왕데메트리우스가 요나단과[㈜ 마카비 1서는 요나단의 이름이 없다. ] 유대 백성들에게 문안하오. 당신들이, 나의 원수들이 유혹하는 조건들을 제시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연합하지 아니하고 우리와의 우정을 유지시켜 왔기 때문에 나는 이같은 당신들의 충절을 칭송하며 계속해서 같은 길을 고수할것을 권고하오. 왜냐하면 계속 그렇게 할 경우 당신들이 우리로부티 보상과 우리의 호의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나는 지금까지 당신들이 우리의 선왕들과 나에게 바쳤던 공물과 조세를 이제부티 당신들 대다수에게 면제시켜 주려하오. 그리고 당신들이 우리에게 내오던 소금세(salt-tax)와 왕관세(crown-tax)의[㈜ 이것들과 다음의 세금들에 대해서는 비커만(Bikerman), \’Inst. Sel. \’ pp. 111~114을 보라. ] 공납도 면제할 것이오. 그리고 곡식의 3분의 1과 나무 열매의 반 대신에, 나의몫에 해당하는 부분을 오늘부티 계속해서 면제할 것이오. 그리고 유대와 유대에 인접한 세 지역,[㈜ 지l역(the nome)의 구분으로써의 \’관할권한\'(toparchy)에 대해서는 Schalit, pp. 21, 29이하를 보라. ] 즉사마리아(Samaria), 갈릴리(Galilee), 페라이아(Peraea)에 사는 거주자들이 나에게 바쳐야만 했던 인두세(poll-tax)마저도오늘부티 완전히 면제하겠소. [㈜ 마카비 1서 10 : 30은 \’지금 당장 당신들에게 자유를 주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조공, 소금세, 왕관세를 면제해 주고 또 나에게 바치는 공물의 삼분의 일세와 과일의 이분의 일세를 오늘부티 면제해 주는 바입니다. 나는 오늘부티 시작하여 언제까지 유다나라와 사마리아, 갈리릴, 그리고 유다에 편입된 세 지역에 지금 말한 세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몇몇 학자들은 \’갈릴리\’를 삭제시키고 사마리아의 세 지역 즉, 아파이레마(Aphairema), 룻다(Lydda)와 라마다임(Ramathaim)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문을 이해하고 있다. 이 지역들은 마카비 1서 11 : 34에서 이름으로 언급되었으며, 그리고 마카비 1서 10 ;: 38에 언급되어 있다 ; 참). 각주 130. 요세푸스는 주후 1세기에 있은 유대지역의 분할에 비추어서 본문을 해석한 것 같다. ] 그리고 덧붙여서 예루살렘 시는신성불가침 지역이 되어야 하며 그 접경 지역에서는 십일조와 통행세가 면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바라는 바이오. 그리고내가 당신들의 대제사장인 요나단의 손에 맡기는 예루살렘 성채는 그가 자신에게 충성스럽고 우호적이라 판단한 사람들에게 성채를 지키는 수비대로 배치해도 무방하오. 나 또한 포로로 끌려와 우리 영토 안에서 노예로 생활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풀어 줄것이오. [㈜ 톨레미Ⅱ세 필라델푸스(Ptolemy Ⅱ Philadelphus)의 유사한 행위가 고대. 12권. (17)이하의 아리스테아스(Aristeas) 12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 그리고 나는 유리의 군대가 유대인 소유의 짐 나르는짐승들을 강제로 사용하지[㈜ ajggareuvesqai의 의미에 대해서는 참). Hatch,\’Essays in Bibical Greek\’, p. 37. ] 못하도록 명령할 것이며 안식일과모든 절기, 그리고 절기 3일 전에는[㈜ 마카비 1서는 \’그리고 삼일 이후에. \’] 유대인들은 노동하지 않아도 되도록 명령할 것이오. [㈜ 유사한 면제에 대해서는(a!tevleia tw\’n leitourgiw\’n) 참). Welles, \’Royal Corr. \’p. 16. ] 나의 영토 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자유롭게 할 것이며 그들을 괴로게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오. 나의 군대에서 복무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겠소. 그런데 이것은 30,000명까지만 허용하며 그들은 가는 곳이 어디든지 간에 바로 나의 군대처럼 똑같은 봉급을 받게 될 것이오. 그들 중 일부는 수비대 안에배속될 것이며, 그 나머지는 나의 경호대에 배치시키고 또 나의궁전에서 일하는 관리로 삼을 것이오. [㈜ 마카비 1서 10 : 37. \’어떤 사람들은 왕국의 요직을 맡아 왕의 신임을 얻게 될 것입니다. \’] 나는 또한 그들에게 자기 나라의[㈜ 추측형태 : 여러 사본들은, \’조상의. \’] 법에 따라 사는 것과 그 법을 지키는 것을 허용하겠소. 그리고 유대에 인접한 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참). 위의 각주 57. ] 이러한 법률들에[㈜ 본문은 다소 확실치 않음. ] 적용받도록 하는 것과, 결혼하지 아니한 유대인에게는 예루사렘에 있는 성전에서만 예배 드리도록 하는 일은 대제사장이 관장하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뜻이오. [㈜ 마카비 1서 10 : 38은 단순히 새롭게 획득된 세 지역의 주민들은 \’대제사장 이외의 다른 권위에 복종하지 아니할 것입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자유롭게 부연한다. 또한 그는 39절에서 톨레마이스(Ptolemais)의 기증을 생략하고 있다. ] 그리고 나는 제물에 드는 비용을 위해 매년 나 자신의 수입에서 150,000드라크마를[㈜ 마카비 1서 10 : 40, \’은 15,000세겔. \’이는 고대. 3권. 8 : 2(194)에서 요세푸스의 계산에 따르면 30,000드라크마이거나 거의 60,000(Attic)이다. ] 줄 것이오. 그런데 이 금액에서 얼마가 남든지 간에 그것은 당신들의 것이 되게 한다는 것이 나의 뜻이오. [㈜ 마카비 1서 10 : 41. \’전에 성전금고에 들어오지 않았던 보조금을 징수하여 성저에 바쳐 앞으로 성전을 위하여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전에 셀류키드(그리고 톨레미)왕들이 만든 성전에 수여된 것을 의미한 것으로 최근에 셀류키드 관리들에 의해 징수된 것이다. ] 왕들이 성전으로부터 받곤 하던 10,000드라크마[㈜ 마카비 1서 \’5,000세겔\’: 참). 위의 주 67. ] 마저도 나는 당신들에게 면제하겠소. 왜냐하면 그것은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예루사렘에 있는 성전이나, 이름이 붙어 있는 어느 장소에 피난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들이 피난한 이유가 왕에게 돈을 빚지고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다른 어떤 이유이든 간에 자유롭게 되도록 하겠소. 그리고 그들의 소유물은 손을 대지 않도록 하겠소. 나는 또한 당신들에게 성전을 보수하거나 재건하는 것을 허용하며 그 비용은 나의 수입에서 지출하도록 하겠소. 그리고 나는 당신들의 도시에 성벽을쌓는 것과 높은 망대들을 세우는 것을 허용하며, 나의 비용으로그 모든 것을 재건하는 것을 허가하겠소. 더욱이 유대 나라가 힘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수비대가 있다면, 이것 또한 나의 비용으로 지출하도록 하겠소. \’
4. 알렉산더 발라스와의 싸움에서 데메트리우스가 죽다[마카비 1서 10 : 48]
이것들이 데메트리우스가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제시하였던 여러 가지 약속들과 호의들이었다. [㈜ 마카비 1서 10 : 45이하는 요나단과 백성들이 데메트리우스가 한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알렉산더 발라스(Alexander Balas)에게 충성을 하였다고 말한다. ] 그 동안에 알렉산더 왕은 수많은 외국인 용병과 자신과 연합한 수리아로부터 온 군인들을 한데 모아서 데메트리우스에 대항하기 위해 진군하였다. [㈜ 다음의 이야기는 고대. 13권. (80)에 나오는 것으로 헬라의자료에서 가져온 것이다. 데메트리우스와 알렉산더 사이의 전투에 대한 부분은 유스티누스(Justinus) xxxv와 아피안(Appian), \’수리아\'(Syria) 67에 병행절이 있다. 베반(Bevan), \’H. Sel. \’ ii. 211은 이 모든 이야기들이 폴리비우스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났. Reinach와 Kolbe는 연대기적 모순을 지적한다. 다음의 주를 보라. ] 데메트리우스의 좌익 부대가 참전한 전투에서는 적들을 패퇴시켰다. 상당한 거리를 추격하면서 많은 적군을 죽였으며그들의 진지를 약탈하였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가 직접 참전한우익 부대는 패하였다. 데메트리우스는 다른 모든 아군들이 도주함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싸우며 적지 않은 적들을 죽였다.그러나 그는 다른 적들을 뒤쫓다가 그만 빠져 나오기가 어려운깊은 늪지가 있는 곳으로 말을 목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데메트리우스의 말은 늪 속에 빠지고 말았고 늪에 빠진 그는 꼼짝도 할수 없었다. 이리하여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적군은 그의말이 늪지에 빠진 것을 보고는 뒤돌아서 데메트리우스를 포위한 후에 일제히 그를 향해 창을 던졌던 것이다. 그는 꼿꼿이 서서 최후까지 상처를 입은 그는 더 이상 저항을 하지 못하고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우리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다른 본문에는 \’우리들의 다른 일들에서\’, 요세푸스에는 그런 문장이 없다 ; 추측컨대 그러한 문구는 그의 자료에 가져왔을 것이다. 참). 고대. 12권. (390). 주 500. ] 이것이 11년간 통치해 온[㈜ 폴리비우스와 유세비우스는 그가 12년간의 통치를 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주전 162년에 통치를 시작하고<참). 고대. 12권. . (389). 각주 498>그의 죽음은 아마도 주전 150년에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참). Kolbe, p. 56. 데메트리우스와 알렉산더는 강탈자들이기 때문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의 통치가 지속되었는지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 ] 데메트리우스의 최후의 운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