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바수스의 음모에 빠져 살해된 섹스투스의 왕위를 무르쿠스가 이어받은 것과 가이사가 죽은 후 카시우스가수리아에 와서 유대를 괴롭힌 것에 대하여, 또한 말리쿠스가 안티파테르를 살해하고 자신은 헤롯에게 살해된 것에 대하여
1. 폼페이당 사람들(the Pompeians)에 대적하여 안티파테르(Antipater)가 가이사당의 사람들을 도움
[㈜ 여기에서부터 \’유대전쟁사\’의 내용과 병행 구절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고대. 14권. 11 : 1-3(268-279)는 전쟁. 1권. 10. 10(216, 217), 11 : 1-3 (218-224)의 병행구절이다. 참). Laqueur, pp.186-188]
이 당시 수리아(Syria)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소동이 일어났다. 폼페이 지지자 중 하나인 바수스 카이킬리우스(Bassus Caecilius)가[㈜ 홈스(Holmes), iii. 326각주에서 바수스(Bassus)가 폼페이의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바수스가 통치하던 수리아를 율리우스 가이사가 떠났다는 다른 고대의 설명들보다 더욱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음모를 꾸며 섹스투스 가이사(Stxtus Caesar)를 살해한 후[㈜ 참).고대, 14권. 9 4(170).] 그의 군대를 장악하고 수리아의 권좌에 올랐다.[㈜ 주전 46-45년. 이 무렵 율리우스 가이사는 아프리카에서 폼페이의 군대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즉시 가이사의 장군들이[㈜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휘하에 있었던 사람. 참). Dio Cassius xlvii. 27과 Thackeray 박사의 전쟁 1권 (218) 각주.] 기병과 보병을 이끌고 진격하였고 아파메아(Apamea) 근처에서 대접전이 시작되었다.[㈜ 주전 45년의 가을. povlemo\” sunevsth 요세푸스의 책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투키티데스의 구절(Thur. i. 15, 2)이 다.] 안티파테르도 또한 가이사에게 입은 은총을 잊지 않고 있었으며, 섹스투스의 원수를 갚고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기에 그의 아들과 함께 지원병을 가이사 지지군에 파견하였다.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섹스투스의 지배권을 이양받기 위해 로마에서무르쿠스(Murcus)가[㈜ 사본들에 나오는 \’마르쿠스\’로부터 수정된 내용. 주전 44년 초에 율리우스 가이사는 바수스(Bassus)와 맞서 싸우도록 스타티우스 마르쿠스(L. Statius Marcus)를 수리아로 보냈다.] 왔다. 그리고 율리우스 가이사(Julius Caesar)가 원로원 의사당에서 카시우스(Cassius)와 브루투스 및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써 율리우스 가이사의 3년 6개월 간의[㈜ 주전 48년 8월 9일부터 44년 3월 15일까지 약 3년 7개월간에 걸쳐서 벌어졌던 파르살리아(Pharslia)전쟁의 모습은 전쟁. 1권. 11 : 1(218)에 묘사되어 있음.] 통치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도[㈜ 다를 역사가들에 의해.] 언급한 바 있다.
2. 카시우스가 수리아의 권좌에 오르고, 안티파테르와 그의 아들들의 지원을 받음
가이사가 죽자 세력가들이 곳곳에서 군대를 일으키며 내란이[㈜ polevmou sunerrwgovto\”는 또 다른 투키디데스의 구절인데 \’전쟁사\’와 \’아피 온반박문\’에서 발견됨.] 발발하게 되었다. 이때 카시우스는 아파메아(Apamea) 근처에있는 군대를 인계받기 위해 수리아에 도착하였다.[㈜ 라틴 사본에 영향을 받은 리차드(Richards)와 슈트(Shutt)의 paralhyovmeno\”의 구둣점과 시제를 읽기 편하게 바꾸었다. \’카시우스(Cassius)는 수리아에 도착하였다 ; 그리고 정복해 버렸다.] 그는 포위공격을 한 후 바수스(Bassus)와 무르쿠스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 후 카시우스는 각 도시를 습격하여 무기와 병사를 모았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그는 어느 곳보다도 유대를 가장 못살게 굴었는데, 무려 은화 700달란트를[㈜ \’전쟁사\’도 역시 같음 : 신켈루스(Syncellus)는 그의 책 1권 576에서 800달란트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아래 각주를 보라.] 세금으로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보고[㈜ 포스트(Post)교수는 \’거대한 공포와 혼돈의 사건을 보면서\’라고 주장함. ejn fovbw kaiv tarach\’도 역시 투키디데스식의 표현이 (Thuc. iii. 79 : ) 참). 고대. 2권. 6 : 3(100) .] 정확한 금액을 할당하였으며 그의 아들들로 하여금 각 지역의 세금 징수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래서 일부분은 안티파테르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말리쿠스(Malichus)가 세금을 징수하게 하고,[㈜ 본문이 약간 불분명함. 말리쿠스(흑은 말쿠스-이 두 형태는 요세푸스의 사본들과 동시대의 비명에서 발견됨)는 힐카누스가 지원한 유대 귀족이었다. 참), 고대. 14권. 5 : 2(84). 아랍왕 말쿠스와 흔동하지 않을 것이다. 참). 고대. 14권. 14 1 (370).] 나머지는 다른 이들이 맡게 하였다. 그리고 헤롯은 갈릴리에 할당된 세금을 누구보다도 먼저 징수하였기 때문에[㈜ 전쟁. 1권. (221)에 따르면 100달란트. 신켈루스가 생각한 카시우스가 거둬들인 총액에는 이것과 유다에서 걷은 700달란트를 더했던 것이 분명하다.] 카시우스와각별히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이것은 헤롯이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로마와 친선 관계를 지켜나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을 희생시켜 가면서\’라는 구절은 \’전쟁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반헤롯적인\'(anti-Herodian) 첨가에 관해 라쿠오이어의 저술 p.187을 보라.] 그러나 나머지 도시들의 관리자들은 모조리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 당시에 카시우스는 네 도시를 장악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곳이고프나(Gophna)와[㈜ 아벨(Abel, ii 339)과 아비 요나(Avi Yonah, p.11)에 따르면 이곳은 베델의 북서쪽으로 3마일되는 현 이프나(Jifna)이다. 이곳은 본문에 나오는 다른 도시들이 그렇듯이 로마시대에 소왕국의 수도였다. 참). Thackeray, 전쟁.3권. 3 : 5(55)에 나오는 각주.] 엠마오(Emmaus)이며[㈜ 중에 니고블리(Nicopolis)로 불리며 현 \’암와스\'(\’Amwas), 참). 고대. 13권. (15), 주.] 나머지 두 곳은룻다(Lydda)와[㈜ 나중에 디오스폴리스로 불리며 현 룻(Ludd), 참), 고대. 13권. 4 : 9(127) 각주.] 담나(Thamna)[㈜ 참). 고대. 13권. 1 . 1 (5).]이다. 그리고 카시우스는힐카누스(Hyrcanus)가 안티파테르의 중재를 통해 그에게 자기소유의 돈[㈜ 참). 고대. 1권. 11 : 2(222)에는 \”그는 공물을 징수하는 이유로 말리쿠스가 죽기까지 계속 나아갔다.\”] 100달란트를 보내어서 그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더라면 격노한 나머지 말리쿠스-왜냐하면 말리쿠스가카시우스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를 제하였을 것이다.[㈜ 힐카누스는 \’전쟁\’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참). 고대. 14권. 8 \’ 1(127)에 나오는 반헤롯적인 유사한 대체구를 언급한다 Laqueur, p.187.]
3. 말리쿠스가 안터파테르의 암살을 음모함
그러나 카시우스가 유대를 떠나가자,[㈜ 라틴어 역은 \’많은 돈과 함께\’라는 것이 첨가되어 있다. 본문에서 요세푸스는 카시우스가 돌라벨라(Dolabella)와의 전쟁(고대. 14권. 10 . 11(223))을 준비하는 주전 43년의 전반기의 사건을 언급하는지 카시우스가 마크 안토니(Mark Antohy)와 옥타비안전을 준비하는 주전 42년의 전반기의 사건을 얘기하는지 분명치 않다. 후자라면 그는 주전 43년에 있었던 안티파테르의 살해 후에 일어났던 사건<고대. 14권. (282)>을 예기한 것이다. 참). 오토(Otto)의 \’헤로데스\'(herodes), pp.21-22.] 말리쿠스는 안티파테르의 죽음만이 힐카누스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안티파테르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전쟁사\’에서 말리쿠스는 \’그가 부정한 행위를 하는데 방해가 되었던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안티파테르에 대해 음모를 꾸몄다고 언급된다 동기가 어떻게 다른 것에 대해 라쿠오이어(Laqueur)는 그의 책 p.118에서 지루하게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음모는 안티파테르에게 누설되었고, 이를 안 안티파테르는 요단강을 건너가 동족 뿐 아니라 아랍족으로부터도 병사를 모집하였다. 그러자 임기응변에 능한[㈜ \’고대사\’에서 말리쿠스를 표현하는 \’약삭빠른\'(deinov\”, shrewd)이라고 나오는 단어는 전쟁. 에서는 \’부끄럼없는\'(ajnaideiva, shamelessness)으로 나온다.] 말리쿠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자신과 자기 아들들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였다.[㈜ 전쟁사\’에서 파사엘과 헤롯은 안터파테르와 함께 중재자로 활동한다. 안티파데르는 말리쿠스가 직접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말리쿠스는 파사엘(Phasael)이 예루살렘 수비대를 지휘하고 있고 헤롯이 무기를 관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으며,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말리쿠스는 안티파테르와 화해하게 되었으며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 당시에 수리아는 무르쿠스가[㈜ 사본들을 정정하면 \’마르쿠스(Narcus)\’임. 고대. 14권. 11 . 1(270) 각주 433을 참조.] 통치하던 때였는데 그는 말리쿠스가 유대에서[㈜ 한 사본에는 \’수리아(Syria) \’로 되어 있음.] 반란을 선동하고 있는 것을 알고 말리쿠스를 살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안터파테르의 청원으로 말리쿠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4. 로마 지도자들의 후원하에 헤롯당의 세력이 커지게 되고, 말리쿠스는 안티파테르를 독살함
[㈜ 고대. 14권. 11 : 4-7(280-296), 12 : 1-6(297-323), 13 : 1-10(324-369)와 전쟁. 1권. 11 4-8(225-235), 12\’1-7(236-247), 13 : 1-11(248- 273)사이의 병행에 대하여는 Laqueur, pp.188-193을 볼 것. 그는 이 단락들에 있어서 어떤 \’특출한\'(remarkable) 차이라든지 의도적인 개정부분들을 발견할 수 없다.]
이제는 안티파데르가 말리쿠스의 생명을 살려 준 것은 생각지도 않게 자신의 살해자를 구해준 격이 되었다. 한편 카시우스와무르쿠스는 군대를 모집한 후 헤롯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그리고 그에게 선박과[㈜ \’전쟁사\’에 언급되지 않은 배들.] 기병과 보병을 주어서 코엘레-수리아(Coele-Syria) 군사령관으로[㈜ \’전쟁사\’에 따르면 \’수리아 전 지역의 집정관\’임. 오토(Otto)는 \’Herodes\’p.22에서 연대기적인 관점에서 후자의 임명<고대. 14권. 11 : 3(277) 각주 참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그것은 Appian의 \’Bell, Civ\’4. 63에서 카시우스(Cassius)가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그의 조카에게 수리아(Syria)를 맡겨다는 진술과 상충되기 때문에 다음의 고대. 14권. 11 : 7(295) 각주를 볼 것. 모미글리아노(Momigliano)는 \’Ricerche\’, pp.219이하에서 이러한 난점들을 지적하며 헤롯이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두 지위에 재위했다고 제안한다. 오히려 고대가 전쟁의 개정판이라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임명하였다. 또한 이 때는 아들 가이사와[㈜ 즉 옥타비안(Octavian). 후에 아구스도(Augustus)가 됨. 고대. 14권. 12 : 301) 각주487을 참조.] 안토니(Antony) 사이에서 전쟁이 시작된 다음이었 는데, 이 전쟁이 끝난 뒤 헤롯을 유대왕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 했다. 한편 말리쿠스는 안티파테르를 이제까지 보다 더욱더 두려워하게 되었으므로 그를 제거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래서 그는 힐카누스(Hycanus)의 집사를 돈으로 매수하여 그와 안티파테르가 집사의 집에서 함께 대접을 받을 때 안티파테르를[㈜ 문자적으로 \’그 사람\’, to;n o[ndra(톤 안드라)가 단지 중성적인 영웅이든지 흑은 보다 유리한 언외(言外)의 의미(요세푸스에서는 종종 \’가치있는\’으로 되어있음)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다음의 고대. 14권. 11 : 4(283)에서 말리쿠스(Malichus)에게 적용되어진 것으로 그것은 \’친구\’를 의미한다[영어 문맥에서는 \’사람(man) \’으로 번역되었다].] 독살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예루살렘시를 장악했다. 그러나 헤롯과 파사엘은 그들의 아버지의 암살 음모 를 알고 몹시 격노하였다. 말리쿠스는 또 다시 그 사건과 아무관련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그 살해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 는 체 하였다. 애국심과 정의감과 조국에 대한 헌신이 남과 달랐 던 안티파테르는[㈜ \’유대전쟁사\’에서 요세푸스는 안티파테르(Antipater)를 \’업무 처리 특히힐카누스 왕국의 회복과 아주 큰 심혈을 기울인 사람\’으로 특징적으로 묘사하였다. 만일 고대.에서 전쟁.의 반(反)헤롯 개정이라는 라쿠오이어(Laqueur)의 가설이 정확하다면 고대.에 대하여 상당히 좋지 못한 평가가 예상되나 사실은 그 반대로 고대.가 전쟁.보다 더 낫게 평가받고 있다. 라쿠오이어는 침묵함으로써 어려움을 모면하고자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안티파테르의 차남인 헤롯은 즉시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군대를 이끌고 말리쿠스를 공격하러 떠난 반면에 장남인 파사엘은 그들이 내란을 시작하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서 음모를 꾸며 자 기편을 확보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파사엘은[㈜ 명백히 파사엘을 가리키고 있지만 전쟁.에서 와 마찬가지로 말리쿠스(Malichlus)의 방어를 수락하여 안티파테르를 매장한 사람은 바로 헤롯이다.] 말리쿠스의 변명을 받아들이면서 말리쿠스가 안티파테르의 죽음과 관련된 죄가 전혀 없다는 그의 주장을 믿는 척하였다. 그 후 파사엘은 그의 부친의 장례식을 치루었다. 한편 헤롯은 사마리아에 들렀다가 주민들의 딱한 상황을 알게 되어 손상된 것들을 복구하고 주민들 간의 분쟁을 그치게 하였다.
5. 헤롯이 힐카누스와 말리쿠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입성함
그로부터 얼마 후, 예루살렘에서 절기가[㈜ 아마도 초막절(주전 43년 10월)을 가리킬 것이다. 참). 고대. 13권. 13 : 5 (372) 각주 475.] 시작될 때 헤롯이 병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말리루스는 크게 놀라 힐카누스에게 헤롯이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힐카누스는 이를 받아들여 헤롯의 입성을 막기위해 주민들이 종교 의식상 정결한 상태에서 이방인들이 들어올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헤롯은 힐카누스가 보낸 전갈에[㈜ 다론 본문에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추측됨 \’순결의 법에\’]조금도 개의치 않고 야음을 틈타 예루살렘성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이에 말리쿠스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지만, 그가 결백하다는가식을 벗어 버리려 하지 않았고 도리어 안티파테르와 친구였던것처럼 겉으로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밀리에 그의 경호원을 배치해 두고 있었다.[㈜ 이 사항은 \’전쟁사\’에는 없다.] 그러나 혜롯과 그 의 친구들은 아직 그의 정체를 폭로하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으며 오히려 자기들이 의심하고 있음이 드러나지 않도륵 말리쿠스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주었다.
6. 카시우스가 헤롯에게 안티파테르의 복수를 위해 말리쿠스를 죽일 권한을 부여함
헤롯은 카시우스에게 부친의 죽음에 대한 글을 올렸다. 카시우스는 말리쿠스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참). 전쟁. 1권. 11 . 6(230), \’카시우스(Casslus), 그는 말리쿠스(Mal-ichus)를 미워할 수 있는 다른 근거들을 가지고 있었다\’ , 이 언급은 유대에서 반역을 자극하려 했던 말리쿠스의 시도이다. 참). 고대. 14권. 11 3(279) .]헤롯에게 부친의 원수를 갚으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비밀리에 두로에 있는 군단 사령관에게 전갈을 띄워 헤롯이부친의 원수를 갚는 일을 도우라고 지시하였다. 카시우스가 라오디게아(Laodicea)를 함락시키자,[㈜ 돌라벨라(Dolabella)를 공격한 이후 그는 포위를 당하자 자살을 하였다. 주전 43년 6월 참) \’PW.\’iv. 1308에 나오논 뮌져(Munzer)의 책.] 그들은 모두 공식적으로그에게로 나와 왕관과 돈을 선사하였다 헤롯은 말리쿠스가 라오디게아에 있는 동안 복수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말리쿠스는 베니게(Phoenicia)의 두로(Tyre) 근처에 있는 동안 이런동향을 눈치채고 일대 모험을 벌이기로 결심하였다 말리쿠스는아들이 두로에 볼모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서 아들을 빼낸 후에 유대로 돌아가려고 결심하였다. 그 다음엔 카시우스가 안토니를 치기위해 진격하고 있을 동안 유대인들이 반역을일으키게 하여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였다.[㈜ 카시우스(Casslus)는 주전 42년 초가 될 때까지는 수리아를 떠나지 아니했다. 여기에 있는 사친들은 주전 43년 후반에 일어났던 것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하늘의[㈜ 문자적으로는 \’신(daimon)\’. 전쟁. 1권. 11 : 8(233)은 \’운명의 여신\'(Destiny to; crewvn). 쉴라터(Schlatter), \’Theol. jos.\’, p.35에는 요세푸스가 to; daimovion 과 tov qei\’on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뜻은 그의 계획과 맞지 않았다. 헤롯은 그의 의도를 간파할 만큼 영리하였기 때문에 두로로 그의 종을 미리 보내어 겉으로는 만찬을 준비하게 하고-왜냐하면 헤롯은 이미 전부터 그들 모두를 초대하여 대접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단순히 \’그와(말리쿠스)와 힐카누스(Hyrcanus)를 저녁에 초대하였다\’라고 나온다.]-실제로는 군단 사령관에게 가서 말리쿠스가 나타날 때 단검을 준비하고 있다가 살해하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부하들은 두로시 근처해변에서 말리쿠스를 만나 단검으로 찔러 죽였다. 힐카누스는이 소식을 듣고 놀란 나머지 말문이 막혔다. 겨우 충격에서 회복이 되자 말리쿠스를 살해한 이유는 무엇이며, 누가 그 장본인인지를 헤롯의 부하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들이 카시우스가 이일을 지시했다고 말하자, 태도를 바꾸어 말리쿠스는 악한 자이며 조국에 반역을 도모한 자라고 말하면서 잘 되었다고 그 공적을 칭송하였다.[㈜ 전쟁.에서 힐카누스는 더 정확하게 \’카시우스는 우리에 대해 공모했던 자를 없애므로 나와 나의 나라를 구하였다\’라고 말한다. 요세푸스는 거기에 덧붙여 \’그가 마음에서 우러난 의견을 표현했는지 또는 행위로 묵묵히 따르며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는 확실치 않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말리쿠스는 안터파테르를 무고히 죽인 죄 값을 치루었다.
7. 카시우스가 떠난 뒤 유대 땅에 일어난 소요 사태
그러나 카시우스가 수리아를 떠나자,[㈜ 고대. 14권. 11 . 6(290) 각주467.] 유대땅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남아 군대를 거느리고 있던 헬릭스(Helix)가[㈜ 라틴어로는\’\’펠릭스(Felix)\’.] 파사엘을 공격하러 진군했으며[㈜ 두로를 향해 그가 떠난 것은 힐카누스(Hyrcanus)에 의한 것이다. 이는 라이나흐(Relnach)가 추측한 것이다.]) 유대 주민들도 무기를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헤롯은 형에게 원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다메섹(Damascus)의 총독인 파비우스(Fabius)를[㈜ 라이나흐(Relnach)는 이 파비우스(Fabius)가 카시우스(Cassius)에 의해 수리아에 조카-이 조카 이름은 아피안(Appian), \’Bell. Civ.\’iv. 63에 나오지 않는다-를 남겨두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한다. 참). 고대. 14권. 11 : 4(280)의 주. 그러나 쉬러(Scurer)는 노리스(Norls)의 \’Cenotaphla Plsana\’, 1681, p. 290을 인용하면서 조카는 루키우스 카시우스(Luclus Cassius)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아피안(Appian), \’Bell. Civ.\’tv 135에 의하면 그는 후에 빌립보(Phillppi)에서 죽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파비우스(Fablus)는 카시우스(Cassius)의 조카를 계승하여 충독으로 임명된 것이 틀림없다. 이는 추측컨대 주전 42년 초기에 있었다.] 찾아갔으나 그만 병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 하였다. 결국 파사엘은 혼자서 헬릭스와 전투를 벌려서 그를 망대에 가두었다. 그러나 뒤에 그와 협정을 맺고 놓아주었다. 파사엘은 또한 힐카누스에게 비록 자신이 입은 은혜가 크지만 어떻게 자신의 적을 도울 수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왜냐하면 말리쿠스 형제가 반란을 일으켜 최강의 요새인 마사다(Masada)를[㈜ 사해의 동쪽 해변에 있논 현재의 세베(Sebbe)이다 ; 하스모네아와 헤롯시대의 요새들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전쟁. 7권. 8 : 3(200) 이하와 슐텐(A. Schulten), \’Dle Burg des Herodes\’, 1933을 보라.] 포함하여 상당수의 좋은 요새들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롯이 병에서 회복되었을 때, 헬릭스를 공격하여 그에게 빼앗긴 요새 들을 모두 탈환하였고 협정을 맺은 후에 그를 풀어주었다.

제 11 장
바수스의 음모에 빠져 살해된 섹스투스의 왕위를 무르쿠스가 이어받은 것과 가이사가 죽은 후 카시우스가수리아에 와서 유대를 괴롭힌 것에 대하여, 또한 말리쿠스가 안티파테르를 살해하고 자신은 헤롯에게 살해된 것에 대하여
1. 폼페이당 사람들(the Pompeians)에 대적하여 안티파테르(Antipater)가 가이사당의 사람들을 도움
[㈜ 여기에서부터 ‘유대전쟁사’의 내용과 병행 구절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고대. 14권. 11 : 1-3(268-279)는 전쟁. 1권. 10. 10(216, 217), 11 : 1-3 (218-224)의 병행구절이다. 참). Laqueur, pp.186-188]
이 당시 수리아(Syria)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소동이 일어났다. 폼페이 지지자 중 하나인 바수스 카이킬리우스(Bassus Caecilius)가[㈜ 홈스(Holmes), iii. 326각주에서 바수스(Bassus)가 폼페이의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바수스가 통치하던 수리아를 율리우스 가이사가 떠났다는 다른 고대의 설명들보다 더욱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음모를 꾸며 섹스투스 가이사(Stxtus Caesar)를 살해한 후[㈜ 참).고대, 14권. 9 4(170).] 그의 군대를 장악하고 수리아의 권좌에 올랐다.[㈜ 주전 46-45년. 이 무렵 율리우스 가이사는 아프리카에서 폼페이의 군대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즉시 가이사의 장군들이[㈜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휘하에 있었던 사람. 참). Dio Cassius xlvii. 27과 Thackeray 박사의 전쟁 1권 (218) 각주.] 기병과 보병을 이끌고 진격하였고 아파메아(Apamea) 근처에서 대접전이 시작되었다.[㈜ 주전 45년의 가을. povlemo” sunevsth 요세푸스의 책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투키티데스의 구절(Thur. i. 15, 2)이 다.] 안티파테르도 또한 가이사에게 입은 은총을 잊지 않고 있었으며, 섹스투스의 원수를 갚고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기에 그의 아들과 함께 지원병을 가이사 지지군에 파견하였다.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섹스투스의 지배권을 이양받기 위해 로마에서무르쿠스(Murcus)가[㈜ 사본들에 나오는 ‘마르쿠스’로부터 수정된 내용. 주전 44년 초에 율리우스 가이사는 바수스(Bassus)와 맞서 싸우도록 스타티우스 마르쿠스(L. Statius Marcus)를 수리아로 보냈다.] 왔다. 그리고 율리우스 가이사(Julius Caesar)가 원로원 의사당에서 카시우스(Cassius)와 브루투스 및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써 율리우스 가이사의 3년 6개월 간의[㈜ 주전 48년 8월 9일부터 44년 3월 15일까지 약 3년 7개월간에 걸쳐서 벌어졌던 파르살리아(Pharslia)전쟁의 모습은 전쟁. 1권. 11 : 1(218)에 묘사되어 있음.] 통치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도[㈜ 다를 역사가들에 의해.] 언급한 바 있다.
2. 카시우스가 수리아의 권좌에 오르고, 안티파테르와 그의 아들들의 지원을 받음
가이사가 죽자 세력가들이 곳곳에서 군대를 일으키며 내란이[㈜ polevmou sunerrwgovto”는 또 다른 투키디데스의 구절인데 ‘전쟁사’와 ‘아피 온반박문’에서 발견됨.] 발발하게 되었다. 이때 카시우스는 아파메아(Apamea) 근처에있는 군대를 인계받기 위해 수리아에 도착하였다.[㈜ 라틴 사본에 영향을 받은 리차드(Richards)와 슈트(Shutt)의 paralhyovmeno”의 구둣점과 시제를 읽기 편하게 바꾸었다. ‘카시우스(Cassius)는 수리아에 도착하였다 ; 그리고 정복해 버렸다.] 그는 포위공격을 한 후 바수스(Bassus)와 무르쿠스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 후 카시우스는 각 도시를 습격하여 무기와 병사를 모았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그는 어느 곳보다도 유대를 가장 못살게 굴었는데, 무려 은화 700달란트를[㈜ ‘전쟁사’도 역시 같음 : 신켈루스(Syncellus)는 그의 책 1권 576에서 800달란트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아래 각주를 보라.] 세금으로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보고[㈜ 포스트(Post)교수는 ‘거대한 공포와 혼돈의 사건을 보면서’라고 주장함. ejn fovbw kaiv tarach’도 역시 투키디데스식의 표현이 (Thuc. iii. 79 : ) 참). 고대. 2권. 6 : 3(100) .] 정확한 금액을 할당하였으며 그의 아들들로 하여금 각 지역의 세금 징수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래서 일부분은 안티파테르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말리쿠스(Malichus)가 세금을 징수하게 하고,[㈜ 본문이 약간 불분명함. 말리쿠스(흑은 말쿠스-이 두 형태는 요세푸스의 사본들과 동시대의 비명에서 발견됨)는 힐카누스가 지원한 유대 귀족이었다. 참), 고대. 14권. 5 : 2(84). 아랍왕 말쿠스와 흔동하지 않을 것이다. 참). 고대. 14권. 14 1 (370).] 나머지는 다른 이들이 맡게 하였다. 그리고 헤롯은 갈릴리에 할당된 세금을 누구보다도 먼저 징수하였기 때문에[㈜ 전쟁. 1권. (221)에 따르면 100달란트. 신켈루스가 생각한 카시우스가 거둬들인 총액에는 이것과 유다에서 걷은 700달란트를 더했던 것이 분명하다.] 카시우스와각별히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이것은 헤롯이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로마와 친선 관계를 지켜나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을 희생시켜 가면서’라는 구절은 ‘전쟁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반헤롯적인'(anti-Herodian) 첨가에 관해 라쿠오이어의 저술 p.187을 보라.] 그러나 나머지 도시들의 관리자들은 모조리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 당시에 카시우스는 네 도시를 장악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곳이고프나(Gophna)와[㈜ 아벨(Abel, ii 339)과 아비 요나(Avi Yonah, p.11)에 따르면 이곳은 베델의 북서쪽으로 3마일되는 현 이프나(Jifna)이다. 이곳은 본문에 나오는 다른 도시들이 그렇듯이 로마시대에 소왕국의 수도였다. 참). Thackeray, 전쟁.3권. 3 : 5(55)에 나오는 각주.] 엠마오(Emmaus)이며[㈜ 중에 니고블리(Nicopolis)로 불리며 현 ‘암와스'(‘Amwas), 참). 고대. 13권. (15), 주.] 나머지 두 곳은룻다(Lydda)와[㈜ 나중에 디오스폴리스로 불리며 현 룻(Ludd), 참), 고대. 13권. 4 : 9(127) 각주.] 담나(Thamna)[㈜ 참). 고대. 13권. 1 . 1 (5).]이다. 그리고 카시우스는힐카누스(Hyrcanus)가 안티파테르의 중재를 통해 그에게 자기소유의 돈[㈜ 참). 고대. 1권. 11 : 2(222)에는 “그는 공물을 징수하는 이유로 말리쿠스가 죽기까지 계속 나아갔다.”] 100달란트를 보내어서 그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더라면 격노한 나머지 말리쿠스-왜냐하면 말리쿠스가카시우스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를 제하였을 것이다.[㈜ 힐카누스는 ‘전쟁’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참). 고대. 14권. 8 ‘ 1(127)에 나오는 반헤롯적인 유사한 대체구를 언급한다 Laqueur, p.187.]
3. 말리쿠스가 안터파테르의 암살을 음모함
그러나 카시우스가 유대를 떠나가자,[㈜ 라틴어 역은 ‘많은 돈과 함께’라는 것이 첨가되어 있다. 본문에서 요세푸스는 카시우스가 돌라벨라(Dolabella)와의 전쟁(고대. 14권. 10 . 11(223))을 준비하는 주전 43년의 전반기의 사건을 언급하는지 카시우스가 마크 안토니(Mark Antohy)와 옥타비안전을 준비하는 주전 42년의 전반기의 사건을 얘기하는지 분명치 않다. 후자라면 그는 주전 43년에 있었던 안티파테르의 살해 후에 일어났던 사건<고대. 14권. (282)>을 예기한 것이다. 참). 오토(Otto)의 ‘헤로데스'(herodes), pp.21-22.] 말리쿠스는 안티파테르의 죽음만이 힐카누스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안티파테르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전쟁사’에서 말리쿠스는 ‘그가 부정한 행위를 하는데 방해가 되었던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안티파테르에 대해 음모를 꾸몄다고 언급된다 동기가 어떻게 다른 것에 대해 라쿠오이어(Laqueur)는 그의 책 p.118에서 지루하게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음모는 안티파테르에게 누설되었고, 이를 안 안티파테르는 요단강을 건너가 동족 뿐 아니라 아랍족으로부터도 병사를 모집하였다. 그러자 임기응변에 능한[㈜ ‘고대사’에서 말리쿠스를 표현하는 ‘약삭빠른'(deinov”, shrewd)이라고 나오는 단어는 전쟁. 에서는 ‘부끄럼없는'(ajnaideiva, shamelessness)으로 나온다.] 말리쿠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자신과 자기 아들들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였다.[㈜ 전쟁사’에서 파사엘과 헤롯은 안터파테르와 함께 중재자로 활동한다. 안티파데르는 말리쿠스가 직접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말리쿠스는 파사엘(Phasael)이 예루살렘 수비대를 지휘하고 있고 헤롯이 무기를 관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으며,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말리쿠스는 안티파테르와 화해하게 되었으며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 당시에 수리아는 무르쿠스가[㈜ 사본들을 정정하면 ‘마르쿠스(Narcus)’임. 고대. 14권. 11 . 1(270) 각주 433을 참조.] 통치하던 때였는데 그는 말리쿠스가 유대에서[㈜ 한 사본에는 ‘수리아(Syria) ‘로 되어 있음.] 반란을 선동하고 있는 것을 알고 말리쿠스를 살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안터파테르의 청원으로 말리쿠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4. 로마 지도자들의 후원하에 헤롯당의 세력이 커지게 되고, 말리쿠스는 안티파테르를 독살함
[㈜ 고대. 14권. 11 : 4-7(280-296), 12 : 1-6(297-323), 13 : 1-10(324-369)와 전쟁. 1권. 11 4-8(225-235), 12’1-7(236-247), 13 : 1-11(248- 273)사이의 병행에 대하여는 Laqueur, pp.188-193을 볼 것. 그는 이 단락들에 있어서 어떤 ‘특출한'(remarkable) 차이라든지 의도적인 개정부분들을 발견할 수 없다.]
이제는 안티파데르가 말리쿠스의 생명을 살려 준 것은 생각지도 않게 자신의 살해자를 구해준 격이 되었다. 한편 카시우스와무르쿠스는 군대를 모집한 후 헤롯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그리고 그에게 선박과[㈜ ‘전쟁사’에 언급되지 않은 배들.] 기병과 보병을 주어서 코엘레-수리아(Coele-Syria) 군사령관으로[㈜ ‘전쟁사’에 따르면 ‘수리아 전 지역의 집정관’임. 오토(Otto)는 ‘Herodes’p.22에서 연대기적인 관점에서 후자의 임명<고대. 14권. 11 : 3(277) 각주 참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그것은 Appian의 ‘Bell, Civ’4. 63에서 카시우스(Cassius)가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그의 조카에게 수리아(Syria)를 맡겨다는 진술과 상충되기 때문에 다음의 고대. 14권. 11 : 7(295) 각주를 볼 것. 모미글리아노(Momigliano)는 ‘Ricerche’, pp.219이하에서 이러한 난점들을 지적하며 헤롯이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두 지위에 재위했다고 제안한다. 오히려 고대가 전쟁의 개정판이라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임명하였다. 또한 이 때는 아들 가이사와[㈜ 즉 옥타비안(Octavian). 후에 아구스도(Augustus)가 됨. 고대. 14권. 12 : 301) 각주487을 참조.] 안토니(Antony) 사이에서 전쟁이 시작된 다음이었 는데, 이 전쟁이 끝난 뒤 헤롯을 유대왕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 했다. 한편 말리쿠스는 안티파테르를 이제까지 보다 더욱더 두려워하게 되었으므로 그를 제거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래서 그는 힐카누스(Hycanus)의 집사를 돈으로 매수하여 그와 안티파테르가 집사의 집에서 함께 대접을 받을 때 안티파테르를[㈜ 문자적으로 ‘그 사람’, to;n o[ndra(톤 안드라)가 단지 중성적인 영웅이든지 흑은 보다 유리한 언외(言外)의 의미(요세푸스에서는 종종 ‘가치있는’으로 되어있음)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다음의 고대. 14권. 11 : 4(283)에서 말리쿠스(Malichus)에게 적용되어진 것으로 그것은 ‘친구’를 의미한다[영어 문맥에서는 ‘사람(man) ‘으로 번역되었다].] 독살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예루살렘시를 장악했다. 그러나 헤롯과 파사엘은 그들의 아버지의 암살 음모 를 알고 몹시 격노하였다. 말리쿠스는 또 다시 그 사건과 아무관련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그 살해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 는 체 하였다. 애국심과 정의감과 조국에 대한 헌신이 남과 달랐 던 안티파테르는[㈜ ‘유대전쟁사’에서 요세푸스는 안티파테르(Antipater)를 ‘업무 처리 특히힐카누스 왕국의 회복과 아주 큰 심혈을 기울인 사람’으로 특징적으로 묘사하였다. 만일 고대.에서 전쟁.의 반(反)헤롯 개정이라는 라쿠오이어(Laqueur)의 가설이 정확하다면 고대.에 대하여 상당히 좋지 못한 평가가 예상되나 사실은 그 반대로 고대.가 전쟁.보다 더 낫게 평가받고 있다. 라쿠오이어는 침묵함으로써 어려움을 모면하고자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안티파테르의 차남인 헤롯은 즉시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군대를 이끌고 말리쿠스를 공격하러 떠난 반면에 장남인 파사엘은 그들이 내란을 시작하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서 음모를 꾸며 자 기편을 확보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파사엘은[㈜ 명백히 파사엘을 가리키고 있지만 전쟁.에서 와 마찬가지로 말리쿠스(Malichlus)의 방어를 수락하여 안티파테르를 매장한 사람은 바로 헤롯이다.] 말리쿠스의 변명을 받아들이면서 말리쿠스가 안티파테르의 죽음과 관련된 죄가 전혀 없다는 그의 주장을 믿는 척하였다. 그 후 파사엘은 그의 부친의 장례식을 치루었다. 한편 헤롯은 사마리아에 들렀다가 주민들의 딱한 상황을 알게 되어 손상된 것들을 복구하고 주민들 간의 분쟁을 그치게 하였다.
5. 헤롯이 힐카누스와 말리쿠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입성함
그로부터 얼마 후, 예루살렘에서 절기가[㈜ 아마도 초막절(주전 43년 10월)을 가리킬 것이다. 참). 고대. 13권. 13 : 5 (372) 각주 475.] 시작될 때 헤롯이 병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말리루스는 크게 놀라 힐카누스에게 헤롯이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힐카누스는 이를 받아들여 헤롯의 입성을 막기위해 주민들이 종교 의식상 정결한 상태에서 이방인들이 들어올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헤롯은 힐카누스가 보낸 전갈에[㈜ 다론 본문에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추측됨 ‘순결의 법에’]조금도 개의치 않고 야음을 틈타 예루살렘성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이에 말리쿠스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지만, 그가 결백하다는가식을 벗어 버리려 하지 않았고 도리어 안티파테르와 친구였던것처럼 겉으로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밀리에 그의 경호원을 배치해 두고 있었다.[㈜ 이 사항은 ‘전쟁사’에는 없다.] 그러나 혜롯과 그 의 친구들은 아직 그의 정체를 폭로하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으며 오히려 자기들이 의심하고 있음이 드러나지 않도륵 말리쿠스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주었다.
6. 카시우스가 헤롯에게 안티파테르의 복수를 위해 말리쿠스를 죽일 권한을 부여함
헤롯은 카시우스에게 부친의 죽음에 대한 글을 올렸다. 카시우스는 말리쿠스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참). 전쟁. 1권. 11 . 6(230), ‘카시우스(Casslus), 그는 말리쿠스(Mal-ichus)를 미워할 수 있는 다른 근거들을 가지고 있었다’ , 이 언급은 유대에서 반역을 자극하려 했던 말리쿠스의 시도이다. 참). 고대. 14권. 11 3(279) .]헤롯에게 부친의 원수를 갚으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비밀리에 두로에 있는 군단 사령관에게 전갈을 띄워 헤롯이부친의 원수를 갚는 일을 도우라고 지시하였다. 카시우스가 라오디게아(Laodicea)를 함락시키자,[㈜ 돌라벨라(Dolabella)를 공격한 이후 그는 포위를 당하자 자살을 하였다. 주전 43년 6월 참) ‘PW.’iv. 1308에 나오논 뮌져(Munzer)의 책.] 그들은 모두 공식적으로그에게로 나와 왕관과 돈을 선사하였다 헤롯은 말리쿠스가 라오디게아에 있는 동안 복수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말리쿠스는 베니게(Phoenicia)의 두로(Tyre) 근처에 있는 동안 이런동향을 눈치채고 일대 모험을 벌이기로 결심하였다 말리쿠스는아들이 두로에 볼모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서 아들을 빼낸 후에 유대로 돌아가려고 결심하였다. 그 다음엔 카시우스가 안토니를 치기위해 진격하고 있을 동안 유대인들이 반역을일으키게 하여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였다.[㈜ 카시우스(Casslus)는 주전 42년 초가 될 때까지는 수리아를 떠나지 아니했다. 여기에 있는 사친들은 주전 43년 후반에 일어났던 것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하늘의[㈜ 문자적으로는 ‘신(daimon)’. 전쟁. 1권. 11 : 8(233)은 ‘운명의 여신'(Destiny to; crewvn). 쉴라터(Schlatter), ‘Theol. jos.’, p.35에는 요세푸스가 to; daimovion 과 tov qei’on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뜻은 그의 계획과 맞지 않았다. 헤롯은 그의 의도를 간파할 만큼 영리하였기 때문에 두로로 그의 종을 미리 보내어 겉으로는 만찬을 준비하게 하고-왜냐하면 헤롯은 이미 전부터 그들 모두를 초대하여 대접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단순히 ‘그와(말리쿠스)와 힐카누스(Hyrcanus)를 저녁에 초대하였다’라고 나온다.]-실제로는 군단 사령관에게 가서 말리쿠스가 나타날 때 단검을 준비하고 있다가 살해하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부하들은 두로시 근처해변에서 말리쿠스를 만나 단검으로 찔러 죽였다. 힐카누스는이 소식을 듣고 놀란 나머지 말문이 막혔다. 겨우 충격에서 회복이 되자 말리쿠스를 살해한 이유는 무엇이며, 누가 그 장본인인지를 헤롯의 부하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들이 카시우스가 이일을 지시했다고 말하자, 태도를 바꾸어 말리쿠스는 악한 자이며 조국에 반역을 도모한 자라고 말하면서 잘 되었다고 그 공적을 칭송하였다.[㈜ 전쟁.에서 힐카누스는 더 정확하게 ‘카시우스는 우리에 대해 공모했던 자를 없애므로 나와 나의 나라를 구하였다’라고 말한다. 요세푸스는 거기에 덧붙여 ‘그가 마음에서 우러난 의견을 표현했는지 또는 행위로 묵묵히 따르며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는 확실치 않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말리쿠스는 안터파테르를 무고히 죽인 죄 값을 치루었다.
7. 카시우스가 떠난 뒤 유대 땅에 일어난 소요 사태
그러나 카시우스가 수리아를 떠나자,[㈜ 고대. 14권. 11 . 6(290) 각주467.] 유대땅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남아 군대를 거느리고 있던 헬릭스(Helix)가[㈜ 라틴어로는”펠릭스(Felix)’.] 파사엘을 공격하러 진군했으며[㈜ 두로를 향해 그가 떠난 것은 힐카누스(Hyrcanus)에 의한 것이다. 이는 라이나흐(Relnach)가 추측한 것이다.]) 유대 주민들도 무기를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헤롯은 형에게 원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다메섹(Damascus)의 총독인 파비우스(Fabius)를[㈜ 라이나흐(Relnach)는 이 파비우스(Fabius)가 카시우스(Cassius)에 의해 수리아에 조카-이 조카 이름은 아피안(Appian), ‘Bell. Civ.’iv. 63에 나오지 않는다-를 남겨두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한다. 참). 고대. 14권. 11 : 4(280)의 주. 그러나 쉬러(Scurer)는 노리스(Norls)의 ‘Cenotaphla Plsana’, 1681, p. 290을 인용하면서 조카는 루키우스 카시우스(Luclus Cassius)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아피안(Appian), ‘Bell. Civ.’tv 135에 의하면 그는 후에 빌립보(Phillppi)에서 죽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파비우스(Fablus)는 카시우스(Cassius)의 조카를 계승하여 충독으로 임명된 것이 틀림없다. 이는 추측컨대 주전 42년 초기에 있었다.] 찾아갔으나 그만 병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 하였다. 결국 파사엘은 혼자서 헬릭스와 전투를 벌려서 그를 망대에 가두었다. 그러나 뒤에 그와 협정을 맺고 놓아주었다. 파사엘은 또한 힐카누스에게 비록 자신이 입은 은혜가 크지만 어떻게 자신의 적을 도울 수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왜냐하면 말리쿠스 형제가 반란을 일으켜 최강의 요새인 마사다(Masada)를[㈜ 사해의 동쪽 해변에 있논 현재의 세베(Sebbe)이다 ; 하스모네아와 헤롯시대의 요새들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전쟁. 7권. 8 : 3(200) 이하와 슐텐(A. Schulten), ‘Dle Burg des Herodes’, 1933을 보라.] 포함하여 상당수의 좋은 요새들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롯이 병에서 회복되었을 때, 헬릭스를 공격하여 그에게 빼앗긴 요새 들을 모두 탈환하였고 협정을 맺은 후에 그를 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