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권 제 1장 폴리온과 사메아스에 대하여, 헤롯이 안티고누스의 친구들 중 우두머리를 죽이고 예루살렘 시의 재산을 약탈했으며, 안토니는 안티고누스를 참수한 것에 대하여

 


제 15 권  18년 동안의 사건을 다룸



안티고누스의 죽음부터 헤롯이 성전 건축을 완공할 때까지



 제 1 장



폴리온과 사메아스에 대하여, 헤롯이 안티고누스의 친구들 중 우두머리를 죽이고 예루살렘 시의 재산을 약탈했으며, 안토니는 안티고누스를 참수한 것에 대하여



 1. 헤롯이 폴리온과 사메아스에게 자비를 베풀다



  소시우스(Sossius)와 헤롯이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점령한 것과, 그 외에도 그들이 안티고누스를 포로로 사로잡은 것에 관하여는 우리가 이미 전 권에서 다루었다. 우리는 이제 그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한다. 헤롯은 모든 유대의 지배권을 손아귀에 장악한 후, 자기가 평민으로 있을 때 자기 편을 들었던[㈜ 다른 사본에는 \’평민들이었으며 그의 측근이었던.\’] 그도시의 주민들에게 특혜를 주었다. 그러나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을 매일 몇 명씩 골라 처벌하고 복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바리새인 폴리온과 그의 제자인 사메아스는 헤롯에 의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친절한 환대를 받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이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헤롯을 받아들이도록 권고했는데, 그로 인해 그들이 보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폴리온은[㈜ 다른 사본에는 \’사마이아스(Samaias)\’. 이것은 위의 이야기를 이루는 것으로 고대. 14권. 9 : 4(172-176)에 있는 것과 일치한다. 반면 본문은 고대. 15권. 10 : 4(370)의 간략한 진술로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전에 헤롯이 생사가 걸린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힐카누스와 다른재판관들에게 헤롯을 살려두면 후에 헤롯에게 그들 모두가 심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의 예언대로 때가 되자하느님께서 그대로 성취하셨다.[㈜ 헤롯이 이 두명의바리새파 지도자들에게 보여준 경의에 대해서는 참). 고대. 15권. 10 : 4(370).]



 2. 안토니가 안티고누스를 처형하다



  헤롯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즉시 왕궁의 모든 보물들을[㈜ 대개의 번역자들은 (kovsmo\”)를 \’예배 의식에 쓰는 기구\'(ornaments)로 번역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비록 본문에서 형용사 polemikov\”가 빠져있지만 고대. 13권. 11 : 2(308)<전쟁. 1권. 3 : 3(76)의 병행구>에서와 같이(전쟁) 무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 1권. 18 : 4(358)에서 Thackeray는 \’귀중한\’으로 번역한다. 헤롯의재정난에 대해서는 예레미아스(J. Jeremias), \’Jerusalem zur Zeit Jesu,\’ ii, B. 40을 보라. 그리고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A. Momigliano, \’Ricerche\’, p.351을 참조.] 강탈하고 부자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전리품으로 빼앗아갔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가 엄청난 양의 금은을 모으게 되자, 그는 안토니와 그의[㈜ 즉 안토니의.헤롯이 자신의적대자들을 처리한 것과 안토니(antony)에 대한 그의선물은 전쟁. 1권. 18 : 4(358)에서 간략히 언급되었다.] 친구들에게 그것을 모두 뇌물로 바쳤다. 

  그는 또한 안티고누스파의 지도자급 요인 45명을 살해하고,성문에 파수병을 배치하여 아무도[㈜ 다른 본문에는 \’어느 누구도\'(no one), 그러나 본문은 다음의 문장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의 시체를 가지고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들은 또한 시체를 뒤져 은이나 금 혹은 보물 등 그 어떤 것이든지 발견하면 왕에게 헌상하였다. 시민들의고통은 끝이 없었다. 이러한 고통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탐욕스런 왕의 약탈과 때마침[㈜ 비록 요세푸스가 한해 일찍 계산하고 있지만 안식년은 주전 37년 10월에서 36년 10월까지이다. 고대. 12권. 9 : 5(378)과 14권. 16 :2(475)의 주 729)를 보라.] 안식년이어서 경작을 하지 못한 것이겹쳐 가중되었다. 안토니가 안티고누스를 포로로 잡았지만 그는 승리할[㈜ 파르티아인들(Parthians)에 대한 승리.] 때까지 안티고누스를 살려두려 했다. 그러나 헤롯에 대한 반감 때문에 유대 나라 전체에 반역적인 기운이 감돌며 안티고누스에 대한 지지가 계속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안토니는 안디옥에서[㈜ 안토니와 크레오파트라는 주전 37-36년 겨울을 안디옥에서 보냈다. 고대. 14권. 16 : 4(488) 주 842(Tarn, \’CAH\’, x. 69의언급을 덧붙임) 안티고누스의 처형은 주전 37년 여름에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몇 달 안되어서 집행된 것이다.] 안티고누스를 참수하기로 결심했다.[㈜ 라틴어 사본은 \’헤롯이 뇌물을 주었다.\’주 12)를 보라.] 그렇게 하지않으면 유대인들을 조용하게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갑바도기아의 스트라보(Strabo of Cappadocia)는 나의 말을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안티고누스가 안디옥으로 호송되어 오자, 안토니는 거기서그를 참수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처형의 방법에 대해서는 고대. 14권. 16 : 4(490) 주 744를 보라<Plutarch, \’Ant.\’36에서 안토니가 안티고누스(Antigonus)의 머리를 잘랐다(ejpelejkise)라고 말하고 있다>.] 안토니는 왕을 참수한 첫번째 인물이었는데, 안티고누스 대신 왕으로 세운 헤롯을 받아들이도록 유대인들이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어떠한 고통도 헤롯을 왕이라고부르게 할 수 없었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선왕을 너무 존경했기때문이다.[㈜ Klausner,\’HBS \’, iii. 271은 하스모네안 왕가에 대한 유대인들의헌신과 그리고 로마에 대한 그들의 불신 때문인 것으로 안티고누스의 인기를 설명하고 있다. 고대. 14권. 16 : 4(490)에서 요세푸스는 안티고누스의 인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헤롯이 안토니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강조하고 있다<고대. 14권. 14 : 4(382)>.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의인기에 대한 헤롯의두려움은 고대. 15권. 2 : 6(30)에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안토니는 유대인들이 그에[㈜ 즉 안티고누스(Antigonus).] 대해 갖고 있는 호감을 말살하기 위해 이와 같이 불명예스럽게 죽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헤롯을 향한 증오를 감소시키려 했다. \’이상이 스트라보(Strabo)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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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권 제 1장 폴리온과 사메아스에 대하여, 헤롯이 안티고누스의 친구들 중 우두머리를 죽이고 예루살렘 시의 재산을 약탈했으며, 안토니는 안티고누스를 참수한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15 권  18년 동안의 사건을 다룸


    안티고누스의 죽음부터 헤롯이 성전 건축을 완공할 때까지


     제 1 장


    폴리온과 사메아스에 대하여, 헤롯이 안티고누스의 친구들 중 우두머리를 죽이고 예루살렘 시의 재산을 약탈했으며, 안토니는 안티고누스를 참수한 것에 대하여


     1. 헤롯이 폴리온과 사메아스에게 자비를 베풀다


      소시우스(Sossius)와 헤롯이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점령한 것과, 그 외에도 그들이 안티고누스를 포로로 사로잡은 것에 관하여는 우리가 이미 전 권에서 다루었다. 우리는 이제 그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한다. 헤롯은 모든 유대의 지배권을 손아귀에 장악한 후, 자기가 평민으로 있을 때 자기 편을 들었던[㈜ 다른 사본에는 ‘평민들이었으며 그의 측근이었던.’] 그도시의 주민들에게 특혜를 주었다. 그러나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을 매일 몇 명씩 골라 처벌하고 복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바리새인 폴리온과 그의 제자인 사메아스는 헤롯에 의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친절한 환대를 받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이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헤롯을 받아들이도록 권고했는데, 그로 인해 그들이 보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폴리온은[㈜ 다른 사본에는 ‘사마이아스(Samaias)’. 이것은 위의 이야기를 이루는 것으로 고대. 14권. 9 : 4(172-176)에 있는 것과 일치한다. 반면 본문은 고대. 15권. 10 : 4(370)의 간략한 진술로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전에 헤롯이 생사가 걸린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힐카누스와 다른재판관들에게 헤롯을 살려두면 후에 헤롯에게 그들 모두가 심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의 예언대로 때가 되자하느님께서 그대로 성취하셨다.[㈜ 헤롯이 이 두명의바리새파 지도자들에게 보여준 경의에 대해서는 참). 고대. 15권. 10 : 4(370).]


     2. 안토니가 안티고누스를 처형하다


      헤롯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즉시 왕궁의 모든 보물들을[㈜ 대개의 번역자들은 (kovsmo”)를 ‘예배 의식에 쓰는 기구'(ornaments)로 번역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비록 본문에서 형용사 polemikov”가 빠져있지만 고대. 13권. 11 : 2(308)<전쟁. 1권. 3 : 3(76)의 병행구>에서와 같이(전쟁) 무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 1권. 18 : 4(358)에서 Thackeray는 ‘귀중한’으로 번역한다. 헤롯의재정난에 대해서는 예레미아스(J. Jeremias), ‘Jerusalem zur Zeit Jesu,’ ii, B. 40을 보라. 그리고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A. Momigliano, ‘Ricerche’, p.351을 참조.] 강탈하고 부자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전리품으로 빼앗아갔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가 엄청난 양의 금은을 모으게 되자, 그는 안토니와 그의[㈜ 즉 안토니의.헤롯이 자신의적대자들을 처리한 것과 안토니(antony)에 대한 그의선물은 전쟁. 1권. 18 : 4(358)에서 간략히 언급되었다.] 친구들에게 그것을 모두 뇌물로 바쳤다. 

      그는 또한 안티고누스파의 지도자급 요인 45명을 살해하고,성문에 파수병을 배치하여 아무도[㈜ 다른 본문에는 ‘어느 누구도'(no one), 그러나 본문은 다음의 문장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의 시체를 가지고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들은 또한 시체를 뒤져 은이나 금 혹은 보물 등 그 어떤 것이든지 발견하면 왕에게 헌상하였다. 시민들의고통은 끝이 없었다. 이러한 고통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탐욕스런 왕의 약탈과 때마침[㈜ 비록 요세푸스가 한해 일찍 계산하고 있지만 안식년은 주전 37년 10월에서 36년 10월까지이다. 고대. 12권. 9 : 5(378)과 14권. 16 :2(475)의 주 729)를 보라.] 안식년이어서 경작을 하지 못한 것이겹쳐 가중되었다. 안토니가 안티고누스를 포로로 잡았지만 그는 승리할[㈜ 파르티아인들(Parthians)에 대한 승리.] 때까지 안티고누스를 살려두려 했다. 그러나 헤롯에 대한 반감 때문에 유대 나라 전체에 반역적인 기운이 감돌며 안티고누스에 대한 지지가 계속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안토니는 안디옥에서[㈜ 안토니와 크레오파트라는 주전 37-36년 겨울을 안디옥에서 보냈다. 고대. 14권. 16 : 4(488) 주 842(Tarn, ‘CAH’, x. 69의언급을 덧붙임) 안티고누스의 처형은 주전 37년 여름에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몇 달 안되어서 집행된 것이다.] 안티고누스를 참수하기로 결심했다.[㈜ 라틴어 사본은 ‘헤롯이 뇌물을 주었다.’주 12)를 보라.] 그렇게 하지않으면 유대인들을 조용하게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갑바도기아의 스트라보(Strabo of Cappadocia)는 나의 말을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안티고누스가 안디옥으로 호송되어 오자, 안토니는 거기서그를 참수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처형의 방법에 대해서는 고대. 14권. 16 : 4(490) 주 744를 보라ejpelejkise)라고 말하고 있다>.] 안토니는 왕을 참수한 첫번째 인물이었는데, 안티고누스 대신 왕으로 세운 헤롯을 받아들이도록 유대인들이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어떠한 고통도 헤롯을 왕이라고부르게 할 수 없었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선왕을 너무 존경했기때문이다.[㈜ Klausner,’HBS ‘, iii. 271은 하스모네안 왕가에 대한 유대인들의헌신과 그리고 로마에 대한 그들의 불신 때문인 것으로 안티고누스의 인기를 설명하고 있다. 고대. 14권. 16 : 4(490)에서 요세푸스는 안티고누스의 인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헤롯이 안토니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강조하고 있다<고대. 14권. 14 : 4(382)>.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의인기에 대한 헤롯의두려움은 고대. 15권. 2 : 6(30)에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안토니는 유대인들이 그에[㈜ 즉 안티고누스(Antigonus).] 대해 갖고 있는 호감을 말살하기 위해 이와 같이 불명예스럽게 죽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헤롯을 향한 증오를 감소시키려 했다. ‘이상이 스트라보(Strabo)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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