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권 제 6장 헤롯이 힐카누스를 죽이고 급히 가이사에게 가서 왕권을 그에게서도 인정받게 된 것과 조금 후에 가이사를 가장 정중한 태도로 접대하게 된 것에 대하여

 


제 6 장




헤롯이 힐카누스를 죽이고 급히 가이사에게 가서 왕권을 그에게서도 인정받게 된 것과 조금 후에 가이사를 가장 정중한 태도로 접대하게 된 것에 대하여




 1. 악티움 전쟁 : 헤롯이 힐카누스를 제거하기로 결심하다




  [㈜ 고대. 15권. 6 : 1(161, 162)는 전쟁. 14권. 20 : 1(386)과 부분적인 병행구가 있다. 그러나 고대. 15권. 6 : 6(187)에 이르는 다음의 단락은 \’유대전쟁사\’에 병행구가 없다.]




  이제 헤롯이 하는 모든 일들이 잘 되어가고 있어서, 어떤 면에서도 쉽게 그를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안토니가 가이사(옥타비안)에게 악티움 전투에서 패하게 되자, 헤롯 자신은 물론 그의 적과 친구들도 헤롯이 전권을 상실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고대. 15권. 5 : 2(1210에서 언급된 주전 31년 9월에.] 왜냐하면 그 때는 헤롯이 너무 안토니 편을 들어서가이사에게  처벌받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헤롯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으며 가이사(Caesar)가 헤롯이 그의 동맹국으로 남아 있는  한 안토니(Antony)를 생각하였던 전쟁. 1권. 20 : 1(386)에 있는 이상한 진술에 대한 병행구가 고대사에는 없다.] 그렇게 되자그의 친구들이 낙담하였는데, 이에 헤롯은 도망할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헤롯의 적들은 겉으로는 헤롯의 곤경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자기들이 유리하게 변화되기를 바라면서 매우 기뻐했다. 헤롯은 힐카누스 외에는 왕이 될 위엄을 갖춘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더 이상 힐카누스를 장애물이 되도록 놓아 두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참). 전재. 1권. 22 : 1(434)는 \”그는 왕관에 대한 어떤 요구를 함으로써가 아니라 왕권이 그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라 고하여 헤롯의 노함을 일으켰다.] 헤롯은 한편으로는, 만일 자기가 살아남아 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자기가 어려울 때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넘보는 이와 같은 자를 없애버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 또 다른 한편으로, 자기가 가이사의 손에서 고통당하다가 죽게 된다 하더라도 자기의 뒤를 이어 왕이 될 힐카누스를 질투심 때문에라도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헤롯이 아랍 왕과 함께 탈출하려는 힐카누스의 계획을 알아 차리고 힐카누스를 처형하다




  헤롯이 이런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힐카누스는 언제나 온화한 성품을 갖고 있어서 공적인 일에 간섭하거나 개혁적인 일에 관여하기를 꺼려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모든 것을 운수에 맡겼다.[㈜ 힐카누스의 온화한 성격은 고대. 14권. 1 : 3(13)을 보라.] 그러나 (그의 딸) 알렉산드라는[㈜ 헤롯의 아내인 마리암메의 어머니와 힐카누스의 딸.] 공격적이고 정권교체를 몹시 열망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헤롯이 항상 자기가문을 모욕하듯 대우하는것을 참고만 있지 말고, 자기들도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자고 아버지 힐카누스에게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아버지 힐카누스로 하여금 아랍 총독 말쿠스(Malchus)에게[㈜ 나바타이아(Nabataa)왕 말쿠스 I 세(Malchus I )는 고대. 15권. 5 : 1(108)을 보라. 전쟁. 1권. 22 : 3(440)에 의하면(주전 약 30년)이후 곧 그의 죽음을 계획한 자는 클레오파트라였다.] 편지하여 자신들을[㈜ 다른 본문에는 \”그를\”(힐카누스).] 받아주고(헤롯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만약 자신들이 그 곳으로 도피하고 나서 헤롯이가이사의 적으로 판명될 경우, 자신들은 왕손일 뿐 아니라 백성들이  자신들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정권을 차지하게될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가 이처럼 설득해도 힐카누스는 그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라는 공격적이고 천성적으로 질투심이 많은 여자이므로, 이 문제와 자기 가족에 대한 헤롯의 배신적인 행동에 관해 밤작을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힐카누스를 졸라댔다. 마침내 그녀의 설득에굴복한 힐카누스는 그의 친구 도시데우스(Dositheus)에게 편지를 주어 아랍 총독에게 보냈다. 그 편지에서 힐카누스는 자신의결심을 쓰고, 아랍 총독이 기병을 보내 자기를 만나게 하여 예루살렘에서 300[㈜ 라틴어 사본에는 \”200\”.] 스다디온이나[㈜ 300스다디온은 약 35마일. 여기서 거리는 사해의 북단에서 측정한 것이 분명하다.] 되는 아스팔티테스(Asphalti-tes) 호수까지[㈜ 사해.] 안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도시데우스는 힐카누스와 알렉산드라에게 용의주도한 충복이었고 헤롯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적지 않게 갖고 있었다. 이에 힐카누스는도시데우스를 아주 믿어 그에게 편지를 주었다. 도시데우스는헤롯이 살해한 요셉의[㈜ 헤롯의 누이 살로메(Salome)의 남편 요셉(Joseph)은 마리암메와의 간통에 대한 의심을 받고 헤롯에게 처형당했다. 고대. 15권. 3 : 9*87)<전쟁. 1권. 22 : 5(443)과 병행>을 보라.] 친척이며 전에 안토니가 두로(Tyre)에서 살해했던 사람들과는 형제지간 이었다.[㈜ 고대. 14권. 13 : 2(327-329)<전쟁. 1권. 12 : 6, 7(245-247)과 병행>을 보라. 왜냐면 많은 선한 자들이 안토니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는 도시데우스(Dositheus)가 그들 중 어떤 이들의 형이었다고 의미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한이유만으로는 도시데우스가 힐카누스를 충성스럽게 섬기기에는부족했다. 도시데우스는 힐카누스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현재의왕에게 기대하는 것이 더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편지를 헤롯에게 갖다 주었다. 그러자 헤롯은 도시데우스의 밀고를 듣고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이미 그가 지시받은 대로 하라고 했다.즉 편지를 말아서 다시 인봉한 후에, 말쿠스에게 전달하고 그에대한 답장을 받아오는 일을 하도록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랍총독 말쿠스의 의향까지 알 수 있게 되므로 헤롯에게는 더 좋겠다는 것이다. 도시데우스가 헤롯의 뜻을 받들어 그대로 편지를전했다. 이에 아랍 총독 말쿠스는 답신을 보냈는데 힐카누스를환영할 것이며 힐카누스와 함께 오는 자도 환영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유대인이 함께 온다고 할지라도 다 자기 편이될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말쿠스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 충분한군대도 보낼 것이므로 힐카누스가 원하는 것에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편지를 헤롯이 받고 즉시 힐카누스를 불러말쿠스와의 비밀경사에 대해 심문하였다. 힐카누스가 이를 부인하자, 헤롯은 공의회에[㈜ 즉 산헤드린(Sanhedrin), 참). 미쉬나, \’Sanhedrin\’, ii. 1, \”왕은 심판하거나 심판받을 수 없다.\”] 그 편지를 공개하고 힐카누스를 즉시 처형했다.[㈜ 각주 157)에 있는 처형 방법을 보라. 이것은 아마도 주전 30년 초기일 것이다.]




 3. 힐카누스의 처형에 대한 두가지 입장




  내가 독자들에게 쓴 이 내용은 헤롯왕 실록에[㈜ 라이나흐(Reinach)는 요세푸스가 헤롯의 비공식적인 실록들을 헤롯의 비서관인 다메섹의 니콜라스(Nicolas of Damascus)의 기록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실려있는 대로이다. 그러나 다른 역사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헤롯이 힐카누스의 죄를 발견할 수 없게 되자, 오히려 이를 기회로 그를 죽이려고 누명을 씌울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헤롯과 힐카누스가  한번은 한잔치에 참석하였는데, 헤롯은 자기가 힐카누스를 좋아하지않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면서 힐카누스에게 이렇게물었다. \”말쿠스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소\’\” 그러자 힐카누스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단지 안부 편지였다고 대답했다. 헤롯이 더 캐물었다. \”혹시 선물은 받지 않았소\’\” 힐카누스는 말쿠스가 보낸 승마용 말 네필 외에는 더 받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헤롯은 이것이야 말로 뇌물죄와 반역죄를 힐카누스가 범한 것이니. 그를 끌어다가 처형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질식사(주요한 형벌의 세 가지 형태, 즉 돌로 쳐죽이는 것, 화형, 목자르는 형에 반대되는) 시키는 일곱가지 범죄에 관해서는 미쉬나, \’Samhedrin\’, xi. 1에 묘사되어 있다. 비록 힐카누스가 반역죄를 저질렀지만 그에 해당하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또 Israel Abrahams, \’Studies in Pharisaism and the Gospels\’, ii(Cambridege, 1924), pp130-131을 보라. \”사형을 가하는 로마의 방법은 요세푸스를 놀라게 하지 못했다 ; 이것은 유대인들 사이에는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비역사적인 이 방법에 대한 사용에 관해서는 미쉬나에 진술된 것이 없다.\”] 역사가들은 힐카누스가 무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주장했다. 힐카누스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주 온유한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젊었을 때에도 담대함이나 성급함을보인 적이 없으며, 왕이 되었을 때도[㈜ 고대. 14권. 1 : 2(4) 각주 4를 보라.] 다를 바가 없어 국정의대부분을 안티파테르(헤롯의부친 -역자주)에게 위임했었다.그리고 힐카누스는 지금 81살 이며[㈜ 이 계산에 의하면 힐카누스 2세는 주전  약 110년에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모 알레간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와 살로메 알렉산드라(Salome Alexandra)는 살로메의 첫 남편이 죽은 주전 103년 이후에 결혼했었다. 그러므로 힐카누스는 그가 처형당할 때는 70대 초였다. 이는 벨하우젠(Wellhausen)이 그의 책 \’Israelitische and Judische Geschichte\'(8판, p.307 주 2)에서 지적하고 있다.] 헤롯의 정권이 확고한 상태에 있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를 매우 존경하는 사람들을 두고 유브라데강을 건너와 헤롯왕의 통치에 완전히 복종하였다. 그가 혁명을 일으켜, 무엇인가를 꾀한다고 하는 것은 가장믿을 수 없는 일이며, 그의 성품과도 결코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헤롯 자신이 꾸민 음모였다는 것이다.




 4. 힐카누스의 성격




  참으로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생을 살았던 힐카누스는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 그의 최후를 마감하게 되었다. 그는 9년 동안 그의 어머니 알렉산드라가 유대를 다스렸던 초기부터 대제사장이되었고, 모친의 사후에는 자신이 왕이 되어 3개월 동안 유대를다스리다가 동생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그후,폼페이(Pompey)가 그를 왕좌에 복권시켜 주고 모든 영광을 받게 하여 40년 이상을 향유할 수 있었다.[㈜ 실제로 주전 63년 무력으로 폼페이가 힐카누스를 회복한 것과 주전 40년에 있던 안티고누스의 찬탈 사이의 간격은 23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안티고누스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안티고누스에 의해 귀가 잘려불구가 되었으며, 파르티아인들에게 포로가 되었다. 얼마 후 그는 헤롯에게 기대를 걸고 귀국하였으나 그의 기대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일생 동안 불행과 싸웠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불행은 헤롯에게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것이다. 그는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졌고, 국정을 하급자들에게 위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는 국정을 간섭하기 싫어하였고 나라를 다스리기에 충분하리 만큼 꼼꼼하지도 못했다. 사실, 그가 너무 유순하였기 때문에 안티파테르와 헤롯의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힐카누스는 그들에 의해서 정의와 경건과는 거리가 멀게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5. 헤롯이 옥타비안 만나기를 주저하다




  헤롯은 힐카누스를 제거하자 마자 급히 가이사에게 갔다. 헤롯은 안토니와 우호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가이사에게 호감을 사리라는 희망은 없었다. 헤롯은 그의 장모 알렉산드라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중들을 선동해서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동생 페로라스(Pheroras)에게 모든 일을 돌보도록 하고, 그의 어머니 키르푸스(Cyprus)와 그의 여동생 살로메(Salome), 그리고 그의 전 가족을 마사다에[㈜ 헤롯의 요새화된 왕궁들 중의 하나. 이는 사해의 서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고대. 14권. 11 : 7(296)에 있는 각주에 실수로 기록된 것처럼 동쪽이 아님>. S. Guttman,\’Bulletin of the Israel Exoloration Society\’, 18(1954), 254-252에 나오는 글 \”Massda\”, [히브리어로 기록되고 영어로 요약한 것]를 보라 ; 그리고아비-요나(Avi-Yonah)(부록)을 보라.] 피신시켰다.그리고 페로라스에게 명령하기를, 자기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듣게 되면 페로라스가 정권을 차지하라고 했다. 또 그는 그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그의 부인과 불화하므로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마리암메와 알렉산드라를 알렉산드레이온에[㈜ 현재는 카른 사르타베(Qarn Sar\’abeh). 이는 얍복(Jabok)강과 요단강의 합류점의 남서쪽 약3마일 지점이다 ; 참).고대. 13권. 16 : 3(417) 각주. 565.] 보냈다.그리고 그의 재무장관 요셉(Joseph)과[㈜ 이름 요셉(Joseph)은 헤롯의매부인 요셉, 즉 살로메의 남편과 혼동된 것 같다. 이는 3 : 5-9(65-87)에 기록된 대로 헤롯이 안토니와 만났을 때 마리암메를 그와 함께 남겨두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여 혼동한 것이다.] 이투래아의 소에무스(Soemus of Iturea)를 남겨 두어 그 성을 지키게 했다. 이 두 사람은 처음부터 헤롯에게 매우 충성했던 사람들이어서 마리암메와 알렉산드라를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그들을 감시하도록 남겨둔 것이다. 그들에게도 헤롯은 만일 자기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거든 두 여인을 죽이고 가능한 한 자기 아들과 자기 동생페로라스가 정권을 잡도록 도와주라고 명령을 하였다.

6. 헤롯이 옥타비안에게 자기는 안토니와 동지였다고 시인하다




   [㈜ 고대. 15권. 6 : 6, 7(187-201)은 전쟁. 1권. 20 : 1-3(387-395)와 병행구이다.]




  헤롯이 그들에게 이 임무를 주고 가이사를 만나기 위해 로데스로 급히 갔다. 헤롯이 배로 로데스에 도착하여 그의 왕관을벗었으나, 그의 일상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들은 제거하지 않았다.[㈜ 전쟁. 1권. 20 : 1(387)에 의하면 헤롯은 \”왕관 없이 옷은 평복 차림으로 입었다. 그러나 왕의 위엄을 가지고 \”옥타비안 앞에 나타났다. 여기 있는 본문은 헤롯이 왕관을 제외하고 왕복(王服)입었음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의 차림만을 언급하는 것 같다. 옥타비안과의 만남은 주전 30년 봄에 있었다.] 헤롯은 가이사를 만나자마자, 그에게 말씀드릴 수 있도록허락해 주기를 요청했다. 헤롯은 위대한 인물이 보여주는 고상함보다 더 고상하게 행동했다. 보통 사람들이 무엇을 청원할 때보여주는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았으며 범죄자처럼 간청하지도않았다.[㈜ 또는 \’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유대전쟁사\’에는 헤롯의 연설을 전체적으로 싣고 있다. 오토(Otto)는 그의 책 p.50에서 요세푸스가 기록한 본문의 진실성 여부에 매우 회의적이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으로 가이사에게 과감하게 말했다.\”저는 안토니와 가장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저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했습니다. 제가 안토니와 함께 악티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던 것은 아랍인들이 우리를 배반해서 그들을 토벌하느라 그랬던 것입니다.그러나 저는 안토니에게 제가 당연히 해야 할 것에 비하여 극히 적은 돈과 옥수수를보냈습니다. 사람이 친구에게 은혜를 입었고 그를 은인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몸과 영혼과 재산을 다 은인에게 주어 모든 위험에서 구하도록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저는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토니가 악티움 전투에서패전하도록 방관하지만은 않았으며 제가 살 수 있는 한 정당하게 처신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안토니가 분명히 불행해지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희망을 걸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토니에게 유용한 동료 전우는 아니었지만, 충실한[㈜ 혹은 \’가치있는\’.] 상담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저는 안토니에게 그의 권력을 잃지 않고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클레오파트라를 처형하는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죽게 되면 안토니는 자기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또 폐하와 화해하게 되어더 이상 적대감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성급한 결정에 따랐습니다. 그 결과 자신은 불리하게 되었고, 폐하는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각하가 안토니에게 분노하시는 것처럼 제가 안토니를 섬긴 일에 대해 재판하실 경우 저는 제 행동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제가 그를 매우 좋아했다는 것이 공개된다 해도 제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폐하가 이 사건에서 안토니라는 특정 인물[㈜ provswwpon은 여기서 \’표현\’ 또는 \’가면\’ 또는 \’역할\’을 의미한다.]을 떠나서, 그냥 제가 저의 은인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제가 어떤 우정을 가진 사람인가 만을 조사하신다면 제가 폐하에게도 똑같이 행동하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충성의 대상이 안토니에게 폐하로 이름만 바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확고한 충성[㈜ to;th\’\” filiva\” bevbaion은 Thucydides, ii. 89. 6을 상기시킨다. 참). 고대. 13권. 16 : 2(411) 주 559. 실제로 안토니에 대한 헤롯의 충성은 디디우스(Q. Didius)에게 행한 것을 보면 의심스럽다. 더구나 Plutarch, \’Antony\’, 71에 의하면 악티움 전투 이후 곧 헤롯이 옥타비안에게로 갔다는 보고가 카니디우스(canidius)에게 왔다.]으로  폐하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7. 옥타비안이 헤롯을 칭찬하고 유대를 방문하다




  가이사는 헤롯이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가이사는 관대하고 도량이 큰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에게 고발된 모든 행동들을 용서하고 오히려 헤롯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리하여 가이사는 헤롯에게 왕관을 돌려주고, 안토니에게 충성했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충성하라고 격려하고 헤롯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더구나 가이사는 퀸투스디디우스(Quintus Didius)가[㈜ \’고대사\’와 \’유대전쟁사\’의 사본들에 있는 이름의 여러 가지 와전된 형태들은 Dio Cassius 1i. 7에서 허드슨(Hudson)에 의해 수정되었다. 이 역사가는 우연히 키지쿠스(Cyzicus)에서 안토니를 위해 훈련되었고 악티움 전투 이후에 그를 돕기 위해 보내졌던 검투사들을 가로챈 수리아 총독인 Q. Didius에 대한 헤롯의 지지를 언급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검투사들의 문제를 헤롯이 즉시 도왔다는 것을 편지했다고 덧붙여서 말했다. 헤롯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환대를 받고, 왕관이 가이사뿐만 아니라 로마의 법에 의해 헤롯에게 수여됨으로써 전보다 더 확고하고 완전하게 자리를 굳혔다. 헤롯은 가이사가 자신의 안전을 보증해 주었으므로 그에게 애굽에 가는 길을 안내하고 가이사와그의 동료들에게 자신의 능력이상으로 많은 선물을 주었다. 헤롯은 대담하게 행동했다. 헤롯은 최대한의 관대함을[㈜ 여기서 요세푸스는 6 : 7(199)에 있는대로 애굽을 옥타비안이 방문한 이야기를 미리 한다.] 보여주었다. 헤롯은 안토니의 동료였던 알렉사스를[㈜ 여기서 사본들은 \”알렉산더\”(Alexander)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 1권. 20 : 3(393)에 있는 병행구는 바르게 \”알렉사스\”(alexas)로 되어 있다 ; 참). Plutarch, ;\’Antony\’, 72에는 안토니의 친구이고 클레오파트라의 끄나불인 알렉사스가 헤롯더러 옥나비안에게 도망하지 말도록 안토니에게서 헤롯에게 파송을 받았으나 알렉사스는 옥타비안에게 도주하였다. 그러나 알렉사스는 헤롯의 청원에도 불구하고 안토니가 살아있을 때 옥타비안에게 처형되었다.] 처형하지 말도록 간청하였다.[㈜ 문자적으로는 \’어떤 운명적인\’.] 그러나 가이사는 이미 알렉산더를 처형하겠다고 결심했으므로, 헤롯의 그 청원은 거절되었다. 헤롯은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영광과 확실한 보증을 가지고 유대로 돌아왔으며,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위험 속에서[㈜ 헤롯의 행운 때문에 야기된 놀라움에 대해서는 \’유대전쟁사\’에 언급되지 않는다.] 전보다 더 큰 영광을 얻게 하심으로 그가 잘못되기를 바랐던 반대자들을 놀라게 했다. 헤롯은 가이사가 애굽을 공격하려고 수리아를 떠나기 전에 가이사를 영접할 준비를 하였다. 가이사가 오자 헤롯은 톨레마이스(Ptolemais)에서 성대하게[㈜ 다른 사본에는 \”존경\”.] 영접하였다. 그는 또한 군인들에게도 선물을 주고 보급품을 풍성하게 보냈다. 헤롯은 자기가 가이사의 가장 확실한 친구임을 증명하기위해 군대를 도열시켜 가이사와 함께 말을 타고 사열하였다. 그리고 헤롯은 모든 것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150개의 숙소에가이사와 그의 동료들을 묵게 하였다.[㈜ 본문은 약간 수정됐다. 이 사항은 \’전쟁사\’에서 빠져 있다.] 또한 헤롯은 그들이 건조한 사막을 통과해야 하므로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포도주나[㈜ 술은 병행구 전쟁. 1권. 20 : 3(395)에는 언급이 없다.] 물을 부족하지 않도록 공급해 주었다. 그 외에도 헤롯은가이사에게 800달란트를 선물하였는데, 사람들은 헤롯이 자신이 얻은 왕국이 부담할 수 있는 것보다도[㈜ \’전쟁사\’에 있는 벙행구는 옥타비안에게 돈을 바친 헤롯의 선물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더 많이 그들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헤롯은 가이사에게 자신의 굳건한충성과 헌신을 나타내어 크게 신임을 얻었다. 그의 선물은 시기적절하여 최대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애굽에서되돌아올 때도 헤롯은 전번에 했던 것 못지 않게 그들을 도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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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권 제 6장 헤롯이 힐카누스를 죽이고 급히 가이사에게 가서 왕권을 그에게서도 인정받게 된 것과 조금 후에 가이사를 가장 정중한 태도로 접대하게 된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6 장


    헤롯이 힐카누스를 죽이고 급히 가이사에게 가서 왕권을 그에게서도 인정받게 된 것과 조금 후에 가이사를 가장 정중한 태도로 접대하게 된 것에 대하여


     1. 악티움 전쟁 : 헤롯이 힐카누스를 제거하기로 결심하다


      [㈜ 고대. 15권. 6 : 1(161, 162)는 전쟁. 14권. 20 : 1(386)과 부분적인 병행구가 있다. 그러나 고대. 15권. 6 : 6(187)에 이르는 다음의 단락은 ‘유대전쟁사’에 병행구가 없다.]


      이제 헤롯이 하는 모든 일들이 잘 되어가고 있어서, 어떤 면에서도 쉽게 그를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안토니가 가이사(옥타비안)에게 악티움 전투에서 패하게 되자, 헤롯 자신은 물론 그의 적과 친구들도 헤롯이 전권을 상실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고대. 15권. 5 : 2(1210에서 언급된 주전 31년 9월에.] 왜냐하면 그 때는 헤롯이 너무 안토니 편을 들어서가이사에게  처벌받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헤롯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으며 가이사(Caesar)가 헤롯이 그의 동맹국으로 남아 있는  한 안토니(Antony)를 생각하였던 전쟁. 1권. 20 : 1(386)에 있는 이상한 진술에 대한 병행구가 고대사에는 없다.] 그렇게 되자그의 친구들이 낙담하였는데, 이에 헤롯은 도망할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헤롯의 적들은 겉으로는 헤롯의 곤경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자기들이 유리하게 변화되기를 바라면서 매우 기뻐했다. 헤롯은 힐카누스 외에는 왕이 될 위엄을 갖춘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더 이상 힐카누스를 장애물이 되도록 놓아 두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참). 전재. 1권. 22 : 1(434)는 “그는 왕관에 대한 어떤 요구를 함으로써가 아니라 왕권이 그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라 고하여 헤롯의 노함을 일으켰다.] 헤롯은 한편으로는, 만일 자기가 살아남아 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자기가 어려울 때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넘보는 이와 같은 자를 없애버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 또 다른 한편으로, 자기가 가이사의 손에서 고통당하다가 죽게 된다 하더라도 자기의 뒤를 이어 왕이 될 힐카누스를 질투심 때문에라도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헤롯이 아랍 왕과 함께 탈출하려는 힐카누스의 계획을 알아 차리고 힐카누스를 처형하다


      헤롯이 이런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힐카누스는 언제나 온화한 성품을 갖고 있어서 공적인 일에 간섭하거나 개혁적인 일에 관여하기를 꺼려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모든 것을 운수에 맡겼다.[㈜ 힐카누스의 온화한 성격은 고대. 14권. 1 : 3(13)을 보라.] 그러나 (그의 딸) 알렉산드라는[㈜ 헤롯의 아내인 마리암메의 어머니와 힐카누스의 딸.] 공격적이고 정권교체를 몹시 열망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헤롯이 항상 자기가문을 모욕하듯 대우하는것을 참고만 있지 말고, 자기들도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자고 아버지 힐카누스에게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아버지 힐카누스로 하여금 아랍 총독 말쿠스(Malchus)에게[㈜ 나바타이아(Nabataa)왕 말쿠스 I 세(Malchus I )는 고대. 15권. 5 : 1(108)을 보라. 전쟁. 1권. 22 : 3(440)에 의하면(주전 약 30년)이후 곧 그의 죽음을 계획한 자는 클레오파트라였다.] 편지하여 자신들을[㈜ 다른 본문에는 “그를”(힐카누스).] 받아주고(헤롯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만약 자신들이 그 곳으로 도피하고 나서 헤롯이가이사의 적으로 판명될 경우, 자신들은 왕손일 뿐 아니라 백성들이  자신들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정권을 차지하게될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가 이처럼 설득해도 힐카누스는 그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라는 공격적이고 천성적으로 질투심이 많은 여자이므로, 이 문제와 자기 가족에 대한 헤롯의 배신적인 행동에 관해 밤작을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힐카누스를 졸라댔다. 마침내 그녀의 설득에굴복한 힐카누스는 그의 친구 도시데우스(Dositheus)에게 편지를 주어 아랍 총독에게 보냈다. 그 편지에서 힐카누스는 자신의결심을 쓰고, 아랍 총독이 기병을 보내 자기를 만나게 하여 예루살렘에서 300[㈜ 라틴어 사본에는 “200”.] 스다디온이나[㈜ 300스다디온은 약 35마일. 여기서 거리는 사해의 북단에서 측정한 것이 분명하다.] 되는 아스팔티테스(Asphalti-tes) 호수까지[㈜ 사해.] 안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도시데우스는 힐카누스와 알렉산드라에게 용의주도한 충복이었고 헤롯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적지 않게 갖고 있었다. 이에 힐카누스는도시데우스를 아주 믿어 그에게 편지를 주었다. 도시데우스는헤롯이 살해한 요셉의[㈜ 헤롯의 누이 살로메(Salome)의 남편 요셉(Joseph)은 마리암메와의 간통에 대한 의심을 받고 헤롯에게 처형당했다. 고대. 15권. 3 : 9*87)<전쟁. 1권. 22 : 5(443)과 병행>을 보라.] 친척이며 전에 안토니가 두로(Tyre)에서 살해했던 사람들과는 형제지간 이었다.[㈜ 고대. 14권. 13 : 2(327-329)<전쟁. 1권. 12 : 6, 7(245-247)과 병행>을 보라. 왜냐면 많은 선한 자들이 안토니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는 도시데우스(Dositheus)가 그들 중 어떤 이들의 형이었다고 의미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한이유만으로는 도시데우스가 힐카누스를 충성스럽게 섬기기에는부족했다. 도시데우스는 힐카누스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현재의왕에게 기대하는 것이 더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편지를 헤롯에게 갖다 주었다. 그러자 헤롯은 도시데우스의 밀고를 듣고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이미 그가 지시받은 대로 하라고 했다.즉 편지를 말아서 다시 인봉한 후에, 말쿠스에게 전달하고 그에대한 답장을 받아오는 일을 하도록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랍총독 말쿠스의 의향까지 알 수 있게 되므로 헤롯에게는 더 좋겠다는 것이다. 도시데우스가 헤롯의 뜻을 받들어 그대로 편지를전했다. 이에 아랍 총독 말쿠스는 답신을 보냈는데 힐카누스를환영할 것이며 힐카누스와 함께 오는 자도 환영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유대인이 함께 온다고 할지라도 다 자기 편이될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말쿠스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 충분한군대도 보낼 것이므로 힐카누스가 원하는 것에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편지를 헤롯이 받고 즉시 힐카누스를 불러말쿠스와의 비밀경사에 대해 심문하였다. 힐카누스가 이를 부인하자, 헤롯은 공의회에[㈜ 즉 산헤드린(Sanhedrin), 참). 미쉬나, ‘Sanhedrin’, ii. 1, “왕은 심판하거나 심판받을 수 없다.”] 그 편지를 공개하고 힐카누스를 즉시 처형했다.[㈜ 각주 157)에 있는 처형 방법을 보라. 이것은 아마도 주전 30년 초기일 것이다.]


     3. 힐카누스의 처형에 대한 두가지 입장


      내가 독자들에게 쓴 이 내용은 헤롯왕 실록에[㈜ 라이나흐(Reinach)는 요세푸스가 헤롯의 비공식적인 실록들을 헤롯의 비서관인 다메섹의 니콜라스(Nicolas of Damascus)의 기록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실려있는 대로이다. 그러나 다른 역사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헤롯이 힐카누스의 죄를 발견할 수 없게 되자, 오히려 이를 기회로 그를 죽이려고 누명을 씌울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헤롯과 힐카누스가  한번은 한잔치에 참석하였는데, 헤롯은 자기가 힐카누스를 좋아하지않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면서 힐카누스에게 이렇게물었다. “말쿠스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소'” 그러자 힐카누스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단지 안부 편지였다고 대답했다. 헤롯이 더 캐물었다. “혹시 선물은 받지 않았소'” 힐카누스는 말쿠스가 보낸 승마용 말 네필 외에는 더 받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헤롯은 이것이야 말로 뇌물죄와 반역죄를 힐카누스가 범한 것이니. 그를 끌어다가 처형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질식사(주요한 형벌의 세 가지 형태, 즉 돌로 쳐죽이는 것, 화형, 목자르는 형에 반대되는) 시키는 일곱가지 범죄에 관해서는 미쉬나, ‘Samhedrin’, xi. 1에 묘사되어 있다. 비록 힐카누스가 반역죄를 저질렀지만 그에 해당하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또 Israel Abrahams, ‘Studies in Pharisaism and the Gospels’, ii(Cambridege, 1924), pp130-131을 보라. “사형을 가하는 로마의 방법은 요세푸스를 놀라게 하지 못했다 ; 이것은 유대인들 사이에는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비역사적인 이 방법에 대한 사용에 관해서는 미쉬나에 진술된 것이 없다.”] 역사가들은 힐카누스가 무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주장했다. 힐카누스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주 온유한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젊었을 때에도 담대함이나 성급함을보인 적이 없으며, 왕이 되었을 때도[㈜ 고대. 14권. 1 : 2(4) 각주 4를 보라.] 다를 바가 없어 국정의대부분을 안티파테르(헤롯의부친 -역자주)에게 위임했었다.그리고 힐카누스는 지금 81살 이며[㈜ 이 계산에 의하면 힐카누스 2세는 주전  약 110년에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모 알레간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와 살로메 알렉산드라(Salome Alexandra)는 살로메의 첫 남편이 죽은 주전 103년 이후에 결혼했었다. 그러므로 힐카누스는 그가 처형당할 때는 70대 초였다. 이는 벨하우젠(Wellhausen)이 그의 책 ‘Israelitische and Judische Geschichte'(8판, p.307 주 2)에서 지적하고 있다.] 헤롯의 정권이 확고한 상태에 있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를 매우 존경하는 사람들을 두고 유브라데강을 건너와 헤롯왕의 통치에 완전히 복종하였다. 그가 혁명을 일으켜, 무엇인가를 꾀한다고 하는 것은 가장믿을 수 없는 일이며, 그의 성품과도 결코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헤롯 자신이 꾸민 음모였다는 것이다.


     4. 힐카누스의 성격


      참으로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생을 살았던 힐카누스는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 그의 최후를 마감하게 되었다. 그는 9년 동안 그의 어머니 알렉산드라가 유대를 다스렸던 초기부터 대제사장이되었고, 모친의 사후에는 자신이 왕이 되어 3개월 동안 유대를다스리다가 동생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그후,폼페이(Pompey)가 그를 왕좌에 복권시켜 주고 모든 영광을 받게 하여 40년 이상을 향유할 수 있었다.[㈜ 실제로 주전 63년 무력으로 폼페이가 힐카누스를 회복한 것과 주전 40년에 있던 안티고누스의 찬탈 사이의 간격은 23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안티고누스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안티고누스에 의해 귀가 잘려불구가 되었으며, 파르티아인들에게 포로가 되었다. 얼마 후 그는 헤롯에게 기대를 걸고 귀국하였으나 그의 기대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일생 동안 불행과 싸웠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불행은 헤롯에게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것이다. 그는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졌고, 국정을 하급자들에게 위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는 국정을 간섭하기 싫어하였고 나라를 다스리기에 충분하리 만큼 꼼꼼하지도 못했다. 사실, 그가 너무 유순하였기 때문에 안티파테르와 헤롯의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힐카누스는 그들에 의해서 정의와 경건과는 거리가 멀게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5. 헤롯이 옥타비안 만나기를 주저하다


      헤롯은 힐카누스를 제거하자 마자 급히 가이사에게 갔다. 헤롯은 안토니와 우호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가이사에게 호감을 사리라는 희망은 없었다. 헤롯은 그의 장모 알렉산드라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중들을 선동해서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동생 페로라스(Pheroras)에게 모든 일을 돌보도록 하고, 그의 어머니 키르푸스(Cyprus)와 그의 여동생 살로메(Salome), 그리고 그의 전 가족을 마사다에[㈜ 헤롯의 요새화된 왕궁들 중의 하나. 이는 사해의 서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고대. 14권. 11 : 7(296)에 있는 각주에 실수로 기록된 것처럼 동쪽이 아님>. S. Guttman,’Bulletin of the Israel Exoloration Society’, 18(1954), 254-252에 나오는 글 “Massda”, [히브리어로 기록되고 영어로 요약한 것]를 보라 ; 그리고아비-요나(Avi-Yonah)(부록)을 보라.] 피신시켰다.그리고 페로라스에게 명령하기를, 자기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듣게 되면 페로라스가 정권을 차지하라고 했다. 또 그는 그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그의 부인과 불화하므로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마리암메와 알렉산드라를 알렉산드레이온에[㈜ 현재는 카른 사르타베(Qarn Sar’abeh). 이는 얍복(Jabok)강과 요단강의 합류점의 남서쪽 약3마일 지점이다 ; 참).고대. 13권. 16 : 3(417) 각주. 565.] 보냈다.그리고 그의 재무장관 요셉(Joseph)과[㈜ 이름 요셉(Joseph)은 헤롯의매부인 요셉, 즉 살로메의 남편과 혼동된 것 같다. 이는 3 : 5-9(65-87)에 기록된 대로 헤롯이 안토니와 만났을 때 마리암메를 그와 함께 남겨두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여 혼동한 것이다.] 이투래아의 소에무스(Soemus of Iturea)를 남겨 두어 그 성을 지키게 했다. 이 두 사람은 처음부터 헤롯에게 매우 충성했던 사람들이어서 마리암메와 알렉산드라를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그들을 감시하도록 남겨둔 것이다. 그들에게도 헤롯은 만일 자기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거든 두 여인을 죽이고 가능한 한 자기 아들과 자기 동생페로라스가 정권을 잡도록 도와주라고 명령을 하였다.

    6. 헤롯이 옥타비안에게 자기는 안토니와 동지였다고 시인하다


       [㈜ 고대. 15권. 6 : 6, 7(187-201)은 전쟁. 1권. 20 : 1-3(387-395)와 병행구이다.]


      헤롯이 그들에게 이 임무를 주고 가이사를 만나기 위해 로데스로 급히 갔다. 헤롯이 배로 로데스에 도착하여 그의 왕관을벗었으나, 그의 일상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들은 제거하지 않았다.[㈜ 전쟁. 1권. 20 : 1(387)에 의하면 헤롯은 “왕관 없이 옷은 평복 차림으로 입었다. 그러나 왕의 위엄을 가지고 “옥타비안 앞에 나타났다. 여기 있는 본문은 헤롯이 왕관을 제외하고 왕복(王服)입었음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의 차림만을 언급하는 것 같다. 옥타비안과의 만남은 주전 30년 봄에 있었다.] 헤롯은 가이사를 만나자마자, 그에게 말씀드릴 수 있도록허락해 주기를 요청했다. 헤롯은 위대한 인물이 보여주는 고상함보다 더 고상하게 행동했다. 보통 사람들이 무엇을 청원할 때보여주는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았으며 범죄자처럼 간청하지도않았다.[㈜ 또는 ‘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유대전쟁사’에는 헤롯의 연설을 전체적으로 싣고 있다. 오토(Otto)는 그의 책 p.50에서 요세푸스가 기록한 본문의 진실성 여부에 매우 회의적이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으로 가이사에게 과감하게 말했다.”저는 안토니와 가장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저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했습니다. 제가 안토니와 함께 악티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던 것은 아랍인들이 우리를 배반해서 그들을 토벌하느라 그랬던 것입니다.그러나 저는 안토니에게 제가 당연히 해야 할 것에 비하여 극히 적은 돈과 옥수수를보냈습니다. 사람이 친구에게 은혜를 입었고 그를 은인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몸과 영혼과 재산을 다 은인에게 주어 모든 위험에서 구하도록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저는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토니가 악티움 전투에서패전하도록 방관하지만은 않았으며 제가 살 수 있는 한 정당하게 처신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안토니가 분명히 불행해지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희망을 걸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토니에게 유용한 동료 전우는 아니었지만, 충실한[㈜ 혹은 ‘가치있는’.] 상담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저는 안토니에게 그의 권력을 잃지 않고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클레오파트라를 처형하는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죽게 되면 안토니는 자기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또 폐하와 화해하게 되어더 이상 적대감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성급한 결정에 따랐습니다. 그 결과 자신은 불리하게 되었고, 폐하는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각하가 안토니에게 분노하시는 것처럼 제가 안토니를 섬긴 일에 대해 재판하실 경우 저는 제 행동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제가 그를 매우 좋아했다는 것이 공개된다 해도 제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폐하가 이 사건에서 안토니라는 특정 인물[㈜ provswwpon은 여기서 ‘표현’ 또는 ‘가면’ 또는 ‘역할’을 의미한다.]을 떠나서, 그냥 제가 저의 은인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제가 어떤 우정을 가진 사람인가 만을 조사하신다면 제가 폐하에게도 똑같이 행동하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충성의 대상이 안토니에게 폐하로 이름만 바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확고한 충성[㈜ to;th'” filiva” bevbaion은 Thucydides, ii. 89. 6을 상기시킨다. 참). 고대. 13권. 16 : 2(411) 주 559. 실제로 안토니에 대한 헤롯의 충성은 디디우스(Q. Didius)에게 행한 것을 보면 의심스럽다. 더구나 Plutarch, ‘Antony’, 71에 의하면 악티움 전투 이후 곧 헤롯이 옥타비안에게로 갔다는 보고가 카니디우스(canidius)에게 왔다.]으로  폐하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7. 옥타비안이 헤롯을 칭찬하고 유대를 방문하다


      가이사는 헤롯이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가이사는 관대하고 도량이 큰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에게 고발된 모든 행동들을 용서하고 오히려 헤롯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리하여 가이사는 헤롯에게 왕관을 돌려주고, 안토니에게 충성했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충성하라고 격려하고 헤롯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더구나 가이사는 퀸투스디디우스(Quintus Didius)가[㈜ ‘고대사’와 ‘유대전쟁사’의 사본들에 있는 이름의 여러 가지 와전된 형태들은 Dio Cassius 1i. 7에서 허드슨(Hudson)에 의해 수정되었다. 이 역사가는 우연히 키지쿠스(Cyzicus)에서 안토니를 위해 훈련되었고 악티움 전투 이후에 그를 돕기 위해 보내졌던 검투사들을 가로챈 수리아 총독인 Q. Didius에 대한 헤롯의 지지를 언급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검투사들의 문제를 헤롯이 즉시 도왔다는 것을 편지했다고 덧붙여서 말했다. 헤롯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환대를 받고, 왕관이 가이사뿐만 아니라 로마의 법에 의해 헤롯에게 수여됨으로써 전보다 더 확고하고 완전하게 자리를 굳혔다. 헤롯은 가이사가 자신의 안전을 보증해 주었으므로 그에게 애굽에 가는 길을 안내하고 가이사와그의 동료들에게 자신의 능력이상으로 많은 선물을 주었다. 헤롯은 대담하게 행동했다. 헤롯은 최대한의 관대함을[㈜ 여기서 요세푸스는 6 : 7(199)에 있는대로 애굽을 옥타비안이 방문한 이야기를 미리 한다.] 보여주었다. 헤롯은 안토니의 동료였던 알렉사스를[㈜ 여기서 사본들은 “알렉산더”(Alexander)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 1권. 20 : 3(393)에 있는 병행구는 바르게 “알렉사스”(alexas)로 되어 있다 ; 참). Plutarch, ;’Antony’, 72에는 안토니의 친구이고 클레오파트라의 끄나불인 알렉사스가 헤롯더러 옥나비안에게 도망하지 말도록 안토니에게서 헤롯에게 파송을 받았으나 알렉사스는 옥타비안에게 도주하였다. 그러나 알렉사스는 헤롯의 청원에도 불구하고 안토니가 살아있을 때 옥타비안에게 처형되었다.] 처형하지 말도록 간청하였다.[㈜ 문자적으로는 ‘어떤 운명적인’.] 그러나 가이사는 이미 알렉산더를 처형하겠다고 결심했으므로, 헤롯의 그 청원은 거절되었다. 헤롯은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영광과 확실한 보증을 가지고 유대로 돌아왔으며,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위험 속에서[㈜ 헤롯의 행운 때문에 야기된 놀라움에 대해서는 ‘유대전쟁사’에 언급되지 않는다.] 전보다 더 큰 영광을 얻게 하심으로 그가 잘못되기를 바랐던 반대자들을 놀라게 했다. 헤롯은 가이사가 애굽을 공격하려고 수리아를 떠나기 전에 가이사를 영접할 준비를 하였다. 가이사가 오자 헤롯은 톨레마이스(Ptolemais)에서 성대하게[㈜ 다른 사본에는 “존경”.] 영접하였다. 그는 또한 군인들에게도 선물을 주고 보급품을 풍성하게 보냈다. 헤롯은 자기가 가이사의 가장 확실한 친구임을 증명하기위해 군대를 도열시켜 가이사와 함께 말을 타고 사열하였다. 그리고 헤롯은 모든 것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150개의 숙소에가이사와 그의 동료들을 묵게 하였다.[㈜ 본문은 약간 수정됐다. 이 사항은 ‘전쟁사’에서 빠져 있다.] 또한 헤롯은 그들이 건조한 사막을 통과해야 하므로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포도주나[㈜ 술은 병행구 전쟁. 1권. 20 : 3(395)에는 언급이 없다.] 물을 부족하지 않도록 공급해 주었다. 그 외에도 헤롯은가이사에게 800달란트를 선물하였는데, 사람들은 헤롯이 자신이 얻은 왕국이 부담할 수 있는 것보다도[㈜ ‘전쟁사’에 있는 벙행구는 옥타비안에게 돈을 바친 헤롯의 선물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더 많이 그들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헤롯은 가이사에게 자신의 굳건한충성과 헌신을 나타내어 크게 신임을 얻었다. 그의 선물은 시기적절하여 최대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애굽에서되돌아올 때도 헤롯은 전번에 했던 것 못지 않게 그들을 도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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