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권 제 4장 안티파테르가 로마에 머물고 있는 동안 헤롯이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가이사 앞에 데려와 고소한 것과 가이사 앞에서 알렉산더가 자신을 변호하고 자기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 것에 대하여

 


 제 4 장



안티파테르가 로마에 머물고 있는 동안 헤롯이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가이사 앞에 데려와 고소한 것과 가이사 앞에서 알렉산더가 자신을 변호하고 자기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 것에 대하여



 1. 안티파테르가 로마에서 마리암메의 두 아들에 대한 음모를 꾸미다.



 안티파테르는 로마에 있는 동안 유명해져 다른 형제들보다 우세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가 로마에서 유명하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친 헤롯이 로마의 모든 친구들에게 그를 당부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안티파테르는 그의 이복형제들을 계속적으로 중상하지 못해서 몹시 불안하였고 자기가집에 없는 동안 헤롯의 마음이 바뀌어 마리암메의 아들들을 좀더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지 않나 근심스러웠다. 이러한 생각 중에도 그는 소기의 목적을 잊지 않고 로마에서 헤롯에게 중상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내서 자기가 부친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처럼 위장해 그들에 대한 헤롯의 분노를 유도하였다.안티파테르는 겉으로는 헤롯의 안위를 극진히 생각하는 것처럼보였지만 실제로는 왕위 계승권을 확고히 해두려는 속셈으로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그는 마리암메의 아들들에 대한 헤롯의 분노를 더욱 부추기어 지금까지 강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참아온 헤롯을 더 이상 참지 못하도록 몰고 갔다.

 헤롯은 이 일을 다루는데 있어 자기가 경솔한 실수를 범하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침내 마리암메의 두 아들들을 로마의 가이사 앞에 끌고가 고소하여 그들의 죄에 합당한 처벌을 내려 주도록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헤롯은 로마에 도착한후 서둘러 가이사를 만나기 위해 아퀼레이(Aquilei)시로 조급히 달려갔다.[㈜ 고대. 16권. 4 : 3(106)과 전쟁 1권. 23 : 3(452)에 보면 이 사건은 로마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헤롯은 가이사와 만나게 되자 그들이 그에게 보이는 것처럼[㈜ 이 행의 본문의 의미는 불확실하다.] 자기의 불행한 처지를 들어 주십사 부탁하며 두아들들을 그 앞에 세워놓고 그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고소하였다. 헤롯은 그들이 얼마나 극악무도하며, 부친인 자기의 왕권을 빼앗으려고 온갖 야만적인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고 호소하였다. 그러면서 또한 헤롯은 왕위를 계승할 자를뽑을 때에는 강박 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에게 가장 충성스러운 아들을 택하라는 가이사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헤롯이 그의 후계자들을 지명할 수 있었던 권한에 관하여는 고 대 15권. 10 : 1(343)을 참조하라.] 한편마리암메의 두 아들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왕권 획득 그 자체가아니라, 비록 왕위 계승권이나 생명은 박탈당하더라도, 그들의마음 속에 끓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잔인하고 불경스러운 증오심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헤롯은 더 이상 견딜 수없어서 가이사에게까지 호소하게 되었다고 하며 자기가 그들에게 어떤 학대를 하여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토록 분노하고 있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헤롯은 어떻게 그들이 헤롯 자신이 온갖 위험과 고통을 무릅쓰고 이룩한 왕국의 왕권을 차지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왜 왕위를자기가 보기에 적당한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41) 약간 수정된 본문. 원통하다고 호소하였다. 헤롯은 자기에게 가장 충실한아들에게 최고의 상으로 왕위를 물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마리암메의 아들들이 부친을 죽이지 않고는 왕위에 오르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보고 그들 스스로 왕위획득을 위해 나서는 것 자체가 매우 오만불손한 태도로 보였다. 헤롯은 지금까지 자기가그들에게 왕의 아들로서 온갖 보물과 장신구 그리고 시종 등 합당한 대우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아들 하나를[㈜ 즉,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 참). 16권. 1 : 2(11)과 그 각주 4. 전쟁. 1권. 23 : 1(446).] 누이동생의 딸에게[㈜ 살로메(Salome)의 딸이었던 베레니케(Berenice) : 각주 42를 보 라.] 장가 보내주었고, 알렉산더는 아르켈라우스(Archelaus)왕의[㈜ 라틴어 사본에는 \”갑바도기아(Cappadocia)왕의\” : 각주 42를 보 라.] 딸에게 장가를 보내주는 등, 화려한 결혼을 주선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위로 충분히 해결해 버릴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왕인 아버지로서의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이렇게 황제 앞에 데리고 나와 그의 바른판결을 받게 해주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헤롯은 만약 가이사가 그들을 살려두면 자기가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 살게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고, 자기 부친을 죽이려고 음모한 그들이 벌을 받지 않고 햇빛을 보고 산다는 것은 부당하며, 이들이 저지른 죄는 인류역사 이래로 가장 엄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2. 마리암메의 아들들이 헤롯의 고소로 고통당하다



[㈜ 고대. 16권. 4 : 2(100) 참). 전쟁. 1권. 23 : 3(452).]



 이상이 헤롯이 가이사 앞에서 그의 두 아들들을 맹렬히 비난한 내용이다. 한편 아버지의 이러한 비난에 아들들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였다. 그들은 결백하였으나 아버지 헤롯의 비난을직접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불효라고 느껴져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의 입장을 솔직하게 밝힐 수도있는 입장이었으나 주위 분위기상 무어라 변명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 죄책감 때문에 그런 것으로 오해를 살 판이고, 말을 하자니 나이도 너무 어린 데다가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너무 충격적인 것이어서 어떻게 헤롯의 고소를 반박해야 할지도 몰라 매우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이사는 이들이 당황해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자기 변호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죄책감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이 미숙하고 수줍어서 그랬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이때 헤롯의 마음도 감동되어 자기의 가슴속에 부정(父情)이 이는 것을 내심 느낄 수 있었다.



3. 헤롯에 대한 알렉산더의 응답



 마리암메의 아들들은 헤롯과 가이사의 심경에 동정이 일고 있으며, 이 상황을 같이 보고 있던 참석자들도 눈물을 흘리며 동정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알렉산더가 일어나 부친 헤롯에게 고소를 취하해 줄 것을 부탁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님, 우리들에 대한 아버님의 배려가 이곳 법정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만약 저희를 심하게 처벌하실 생각이 셨다면, 만인의 은인이신[㈜ 혹은 \”만민의 구주\”. \”구주\”라고 하는 명칭은 디아도키(Diadochi) 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 통용되었던 것이다. 참). 고대. 12권. 1 : 1(11), 4 : 10(223), 13권. 7: 1(222) ; Wendland \’ZNTW\’ 5(1904), 335-354 : \’PW ⅢA, 1211-1221 ; M. and M. \’Vocabulary\’ p.621.] 황제 앞에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저희를 이곳까지 데려오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버님은 왕으로서의 권위로 보나 아버지로서의 권위로 보나 저희를 로마에데리고 와 가이사 황제를 증인으로 세워 우리를 구해주시려 하셨습니다. 세상에 죽이려고 작정한 자들을 성전이나 제단에 끌고가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이같이 자비하신 아버님을 우리가 살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버님을 살해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으며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만일 지금 우리의 이런 솔직한 변호가 받아 들여진다면 아버님의 분노도 풀수 있고, 우리도 처형될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만일 항간에 떠도는 중상대로 우리들을 의심하신다면 저희는 단 하루도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러한 비방을 받으면서까지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저희들이 젊은 청년이므로 왕위를 어쩌다 한번쯤 넘볼 수도 있다고 그들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행했던 어머니의 죽음을[㈜ 헬라어 본문에서 aijtivanmhtrov\” 뒤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연결시켜 우리가 왕권을 넘본 것처럼 누명을 씌운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더 비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고소가 과연 모든 젊은 청년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처형된 젊은 아들들을 둔 왕이 있다면 당연히 그 왕은 아들들이 자기에 대해 음모를꾸밀 수 있다고 의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큰 불경한 죄를 증명하기에는 의심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우리가겁없이[㈜ 다른 사본들에는 \”효과적으로\”로 되어 있다.]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어디 믿을 만한 증거를 대 보라고 하십시오. 우리가 왕인 아버님을 독살시키려고 독을 준비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음모를 꾸민 공모자나 뇌물을 주어 매수한 자나 반란을 위해만든 서신 등에 대한 증거물이 있습니까? 우리는 추호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모함하려고 하는 자들이 꾸며낸 중상일 뿐입니다. 왕가가 화목하지 못하고 분쟁이 일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충성의 보상으로 주신다고 하신 왕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얻기 위해 돌진하는 사악한 이들에게는 흉계의 목표물이 되기 쉽습니다. 이제 아무도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는 증거를 대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중상가들이 뭐라하더라도 사람들은 이를 들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가 전에 분노했던 것은 아버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에 대한 전혀 근거없는 소문을 듣고 아버님께 고해바친 자들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비난해 마지않는 것은 단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보다는 전혀 무고한 분이 중상자들의 음모로 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어떻게 아버님께서 장악하고 계신 왕권을 넘볼 수가 있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왕족이므로 그런 불필요한 시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설사 우리가 나쁜 욕심을 내서 아버님을 시해하고 왕권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땅과 바다가 분노하여 저희를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아버님을 섬기던 이 백성들과 이 나라의 종교계가 아버님을 살해한 자가 이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어 아버님이 세우신 거룩한 성전을 출입하도록 허락하겠습니까? 설사 우리가 다른 어려움 등을 다받아 넘긴다 하더라도 가이사가 살아계신 한 어찌 살인자가 그벌을 받지 않고 도망하여 살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는 아버님께서 낳으신 아들들입니다. 저희가 아버님 보시기에 아주 흡족한 아들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렇게 불손하거나 어리석은 자식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우리로부터 아버님에 대한 불평의 이유나 음모를 찾아내지 못하셨다면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불경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었습니까? 어머니가 살해된 사실은 우리에게 분노의 조건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더욱 처신을 조심하라는 경고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저희들은 저희의 처지를 더욱 길게변호하고 싶지만[㈜ 혹은 \”우리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싶지만.\”] 하지도 않은 행위를 길게 변호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기에 우리는 더 이상의 설명을 줄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만인의 주(主)시오 이 상황의 중재자이신 황제앞에서 아버님과 화해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만약 아버님께서 진실로 우리에 대한 의심을 버리신다면, 부친을 살해하려고 시도했다는 끔찍한 누명을 쓰고 사는 것이 별로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겠습니다. 그러나 아버님 마음에 한 치라도 우리에 대한 의심이 남아 있다면 아버님 뜻대로 우리를 처리 하십시오. 그러나 이것 한가지만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는 저희에게 생명을 주신 분에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4. 헤롯이 아들들과 화해하다



[㈜ 참). 전쟁. 1권. 23 : 3(454).]



 알렉산더가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는 동안 전부터 그들이 그렇게 큰 음모를 꾸몄을 것이라고 믿지 않아 왔던 가이사는약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헤롯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한편 관중들은 헤롯이 증오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법정에 돌아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헤롯의 고소는 과장이 심했고, 피고인들은 한창 젊은 나이에 외모가 준수한 청년들이어서 관중들의 연민과 동정을 받게 되었으며, 알렉산더의 변호 또한 매우 유창하고 훌륭해서 더욱 그러하였다. 그리고 두 젊은이들의 표정도 울며 아래만 참담히 내려다 보던 처음과는 달리 생기가 돌았다. 또한 상황도 호의적으로 진전되어 자기의 고소가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헤롯도 그 고소를 증명할 만한 아무런 증거를 댈 수 없게 되자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 잠시 후 가이사는 두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들은 부친의고소와는 달리 이제 결백함이 증명되었네, 하지만 부친에 대해 이러한 소문이 나돌 정도로 아버님을 소홀히 대한 것은 결코 잘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게나!\” 가이사는 또한 헤롯에게 아들들에 대한 의심을 모두 씻어 버리고 화해하라고 말하며, 자기의 친자식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덧붙였다.이렇게 부자지간에 서로 마음을 열어 쌓였던 오해를 풀고, 상대를 의심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됨으로써, 서로의 신뢰와 애정이 회복되었다. 가이사는 충고를 마치고 젊은이들을 가까이 오도록 손짓하였으나 그들은 부친의 발 아래 꿇어 엎드려 울며 용서를 빌고 있었다. 이에 헤롯은 두 아들들을 팔로 차례로 껴안으며 화해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노예이건 자유인이건 관계 없이 크게 감명을 받았다.



 5. 가이사와 헤롯의 선물교환



[㈜ 참). 전쟁, 1권. 23 : 4(455).]



 그래서 그들은 가이사에게 깊은 사의를 표하고 안티파테르와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안티파테르는 내심 그렇지 않았지만 그들의 화해를, 기뻐하는 척하였다. 다음날 헤롯은 로마 시민들에게구경거리와 분배물을 제공하고 있는[㈜ 다른 사본은 \”공급하는\”] 가이사에게 300달란트를 선물했고, 가이사도 헤롯에게 구브로(Cyprus)구리 광산에서나오는 수입의 절반을 주며 나머지 반의 관리권도 헤롯에게 맡겼다[㈜ 아구스도의 시대에는 광산(鑛山)이 국가의 재산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최초의 증거. 참).S.I.Oost가 쓴 Class. Philol.\’50(1955).103, 111, 주 41에 나오는 \”Cato a Uticensis and the Annexation of Cyprus\” ; George Hil)의 \’History of Cyprus\’Cambridge, 1949, i. 226 ; Broughton,\’Econmic Sur-vey?, iv.534 ;자세한 출판목록에 대해서는 M. Rostovtseff,\’Social and Econemic History of the Hellenistic World, iii.1187 주 102를 보라.]. 그리고 극전한 대접을 하여 전송해 주었다. 가이사는 또한 헤롯이 왕국의 계승자를 자기 임의대로 아들 중에서 선택하여 왕국을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었다. 헤롯은 즉시 이를 시행하려 했으나 가이사는 헤롯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왕국과 아들들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고대. 16권.4 : 5(129) 참). 전쟁. 1권.23 : 3(454), 6 : 3, 5(130-133)]



6. 헤롯이 아르켈라우스를 방문하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 헤롯은 유대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트라콘(Trachon)[㈜ 코엘레 수리아(Coele Syria)에 위치함. 이 소요에 관한 더 상세 한 설명을 알기 위해서는 고대. 16권. 9 : 1(271-276)을 참조하라. 고대. 15권. 10 : 1(343-348).] 등 그의 왕국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 났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 다스리라고 헤롯이 임명한 사령관들은 그곳을 떠나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헤롯은 아들들과 함께 배를 타고 길리기아의 엘라이우사(Elaeusa)섬[㈜ 앞바다의 섬]으로 갔다. 지금은 세바스테(Sebaste)로 바뀐 그섬에서 이들은 갑바도기아(Cappadocia)의 왕 아르켈라우스를만나게 되었다. 아르켈라우스는 헤롯을 반갑게 영접하였고 자기의 딸과[㈜ 글라피라(Glaphyra). 고대. 16권.1 .2(11)] 결혼한 알렉산더가 헤롯과 화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고 헤롯과 아르켈라우스는 서로 왕의 직위에 걸맞는 예물들을 교환하였다. 그 후 헤롯은 그 곳을떠나 유대로 돌아왔다. 그는 성전에서 연설을 하면서 외국 여행중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가이사가 자기에게 베푼 호의와, 백성들이[㈜ 다른 사본에는 \”다른 사람들?] 알면 자기에게 유익이 될 만한 갖가지 일등을 행한 것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와 아들들이 화해한 것을 전하면서 궁내에 거주하는사람들과 백성들이 화합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대를 이어 나라를 다스릴 아들을 지명하였다. 처음에는 안티파테르가 다스리고 그 다음에는 마리암메의 아들들인 아리스토불루스와 알렉산더가 차례로 다스릴 것이라고 공표하였다. 그러나현재로는 그가 정무를 못 살필 정도로 나이가 차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를 왕이자 유대의 지배자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고 백성들에게 주지시켰다. 헤롯은 이때까지 정정하여 나라를 통치하는데 노련하였고, 정무를 살피거나 자식들을 다스리는 데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또한 자기의 사령관들과 군사들에게 자기만을 성심껏 섬기면 편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인생에서누릴 수 있는 복의 기회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마치고 헤롯은 모임을 해산시켰다. 헤롯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긍을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참). 전쟁. 1권.23 : 5(461)이하. 여기에는 헤롯의 연설이 기록되 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헤롯이 아들들에게 건 희망과 경쟁의식은 이미 상당히 불안정한 것임을 간파하고, 그것들에 기대를 걸었던 자신들의 처지 또한 불안하였기 때문이다.[㈜ 고대. 16권. 4 : 6(135) 참). 전쟁1권. 23 : 5(4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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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권 제 4장 안티파테르가 로마에 머물고 있는 동안 헤롯이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가이사 앞에 데려와 고소한 것과 가이사 앞에서 알렉산더가 자신을 변호하고 자기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4 장


    안티파테르가 로마에 머물고 있는 동안 헤롯이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가이사 앞에 데려와 고소한 것과 가이사 앞에서 알렉산더가 자신을 변호하고 자기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 것에 대하여


     1. 안티파테르가 로마에서 마리암메의 두 아들에 대한 음모를 꾸미다.


     안티파테르는 로마에 있는 동안 유명해져 다른 형제들보다 우세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가 로마에서 유명하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친 헤롯이 로마의 모든 친구들에게 그를 당부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안티파테르는 그의 이복형제들을 계속적으로 중상하지 못해서 몹시 불안하였고 자기가집에 없는 동안 헤롯의 마음이 바뀌어 마리암메의 아들들을 좀더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지 않나 근심스러웠다. 이러한 생각 중에도 그는 소기의 목적을 잊지 않고 로마에서 헤롯에게 중상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내서 자기가 부친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처럼 위장해 그들에 대한 헤롯의 분노를 유도하였다.안티파테르는 겉으로는 헤롯의 안위를 극진히 생각하는 것처럼보였지만 실제로는 왕위 계승권을 확고히 해두려는 속셈으로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그는 마리암메의 아들들에 대한 헤롯의 분노를 더욱 부추기어 지금까지 강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참아온 헤롯을 더 이상 참지 못하도록 몰고 갔다.

     헤롯은 이 일을 다루는데 있어 자기가 경솔한 실수를 범하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침내 마리암메의 두 아들들을 로마의 가이사 앞에 끌고가 고소하여 그들의 죄에 합당한 처벌을 내려 주도록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헤롯은 로마에 도착한후 서둘러 가이사를 만나기 위해 아퀼레이(Aquilei)시로 조급히 달려갔다.[㈜ 고대. 16권. 4 : 3(106)과 전쟁 1권. 23 : 3(452)에 보면 이 사건은 로마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헤롯은 가이사와 만나게 되자 그들이 그에게 보이는 것처럼[㈜ 이 행의 본문의 의미는 불확실하다.] 자기의 불행한 처지를 들어 주십사 부탁하며 두아들들을 그 앞에 세워놓고 그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고소하였다. 헤롯은 그들이 얼마나 극악무도하며, 부친인 자기의 왕권을 빼앗으려고 온갖 야만적인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고 호소하였다. 그러면서 또한 헤롯은 왕위를 계승할 자를뽑을 때에는 강박 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에게 가장 충성스러운 아들을 택하라는 가이사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헤롯이 그의 후계자들을 지명할 수 있었던 권한에 관하여는 고 대 15권. 10 : 1(343)을 참조하라.] 한편마리암메의 두 아들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왕권 획득 그 자체가아니라, 비록 왕위 계승권이나 생명은 박탈당하더라도, 그들의마음 속에 끓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잔인하고 불경스러운 증오심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헤롯은 더 이상 견딜 수없어서 가이사에게까지 호소하게 되었다고 하며 자기가 그들에게 어떤 학대를 하여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토록 분노하고 있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헤롯은 어떻게 그들이 헤롯 자신이 온갖 위험과 고통을 무릅쓰고 이룩한 왕국의 왕권을 차지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왜 왕위를자기가 보기에 적당한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41) 약간 수정된 본문. 원통하다고 호소하였다. 헤롯은 자기에게 가장 충실한아들에게 최고의 상으로 왕위를 물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마리암메의 아들들이 부친을 죽이지 않고는 왕위에 오르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보고 그들 스스로 왕위획득을 위해 나서는 것 자체가 매우 오만불손한 태도로 보였다. 헤롯은 지금까지 자기가그들에게 왕의 아들로서 온갖 보물과 장신구 그리고 시종 등 합당한 대우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아들 하나를[㈜ 즉,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 참). 16권. 1 : 2(11)과 그 각주 4. 전쟁. 1권. 23 : 1(446).] 누이동생의 딸에게[㈜ 살로메(Salome)의 딸이었던 베레니케(Berenice) : 각주 42를 보 라.] 장가 보내주었고, 알렉산더는 아르켈라우스(Archelaus)왕의[㈜ 라틴어 사본에는 “갑바도기아(Cappadocia)왕의” : 각주 42를 보 라.] 딸에게 장가를 보내주는 등, 화려한 결혼을 주선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위로 충분히 해결해 버릴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왕인 아버지로서의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이렇게 황제 앞에 데리고 나와 그의 바른판결을 받게 해주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헤롯은 만약 가이사가 그들을 살려두면 자기가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 살게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고, 자기 부친을 죽이려고 음모한 그들이 벌을 받지 않고 햇빛을 보고 산다는 것은 부당하며, 이들이 저지른 죄는 인류역사 이래로 가장 엄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2. 마리암메의 아들들이 헤롯의 고소로 고통당하다


    [㈜ 고대. 16권. 4 : 2(100) 참). 전쟁. 1권. 23 : 3(452).]


     이상이 헤롯이 가이사 앞에서 그의 두 아들들을 맹렬히 비난한 내용이다. 한편 아버지의 이러한 비난에 아들들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였다. 그들은 결백하였으나 아버지 헤롯의 비난을직접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불효라고 느껴져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의 입장을 솔직하게 밝힐 수도있는 입장이었으나 주위 분위기상 무어라 변명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 죄책감 때문에 그런 것으로 오해를 살 판이고, 말을 하자니 나이도 너무 어린 데다가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너무 충격적인 것이어서 어떻게 헤롯의 고소를 반박해야 할지도 몰라 매우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이사는 이들이 당황해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자기 변호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죄책감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이 미숙하고 수줍어서 그랬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이때 헤롯의 마음도 감동되어 자기의 가슴속에 부정(父情)이 이는 것을 내심 느낄 수 있었다.


    3. 헤롯에 대한 알렉산더의 응답


     마리암메의 아들들은 헤롯과 가이사의 심경에 동정이 일고 있으며, 이 상황을 같이 보고 있던 참석자들도 눈물을 흘리며 동정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알렉산더가 일어나 부친 헤롯에게 고소를 취하해 줄 것을 부탁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님, 우리들에 대한 아버님의 배려가 이곳 법정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만약 저희를 심하게 처벌하실 생각이 셨다면, 만인의 은인이신[㈜ 혹은 “만민의 구주”. “구주”라고 하는 명칭은 디아도키(Diadochi) 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 통용되었던 것이다. 참). 고대. 12권. 1 : 1(11), 4 : 10(223), 13권. 7: 1(222) ; Wendland ‘ZNTW’ 5(1904), 335-354 : ‘PW ⅢA, 1211-1221 ; M. and M. ‘Vocabulary’ p.621.] 황제 앞에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저희를 이곳까지 데려오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버님은 왕으로서의 권위로 보나 아버지로서의 권위로 보나 저희를 로마에데리고 와 가이사 황제를 증인으로 세워 우리를 구해주시려 하셨습니다. 세상에 죽이려고 작정한 자들을 성전이나 제단에 끌고가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이같이 자비하신 아버님을 우리가 살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버님을 살해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으며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만일 지금 우리의 이런 솔직한 변호가 받아 들여진다면 아버님의 분노도 풀수 있고, 우리도 처형될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만일 항간에 떠도는 중상대로 우리들을 의심하신다면 저희는 단 하루도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러한 비방을 받으면서까지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저희들이 젊은 청년이므로 왕위를 어쩌다 한번쯤 넘볼 수도 있다고 그들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행했던 어머니의 죽음을[㈜ 헬라어 본문에서 aijtivanmhtrov” 뒤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연결시켜 우리가 왕권을 넘본 것처럼 누명을 씌운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더 비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고소가 과연 모든 젊은 청년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처형된 젊은 아들들을 둔 왕이 있다면 당연히 그 왕은 아들들이 자기에 대해 음모를꾸밀 수 있다고 의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큰 불경한 죄를 증명하기에는 의심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우리가겁없이[㈜ 다른 사본들에는 “효과적으로”로 되어 있다.]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어디 믿을 만한 증거를 대 보라고 하십시오. 우리가 왕인 아버님을 독살시키려고 독을 준비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음모를 꾸민 공모자나 뇌물을 주어 매수한 자나 반란을 위해만든 서신 등에 대한 증거물이 있습니까? 우리는 추호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모함하려고 하는 자들이 꾸며낸 중상일 뿐입니다. 왕가가 화목하지 못하고 분쟁이 일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충성의 보상으로 주신다고 하신 왕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얻기 위해 돌진하는 사악한 이들에게는 흉계의 목표물이 되기 쉽습니다. 이제 아무도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는 증거를 대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중상가들이 뭐라하더라도 사람들은 이를 들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가 전에 분노했던 것은 아버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에 대한 전혀 근거없는 소문을 듣고 아버님께 고해바친 자들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비난해 마지않는 것은 단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보다는 전혀 무고한 분이 중상자들의 음모로 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어떻게 아버님께서 장악하고 계신 왕권을 넘볼 수가 있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왕족이므로 그런 불필요한 시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설사 우리가 나쁜 욕심을 내서 아버님을 시해하고 왕권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땅과 바다가 분노하여 저희를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아버님을 섬기던 이 백성들과 이 나라의 종교계가 아버님을 살해한 자가 이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어 아버님이 세우신 거룩한 성전을 출입하도록 허락하겠습니까? 설사 우리가 다른 어려움 등을 다받아 넘긴다 하더라도 가이사가 살아계신 한 어찌 살인자가 그벌을 받지 않고 도망하여 살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는 아버님께서 낳으신 아들들입니다. 저희가 아버님 보시기에 아주 흡족한 아들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렇게 불손하거나 어리석은 자식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우리로부터 아버님에 대한 불평의 이유나 음모를 찾아내지 못하셨다면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불경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었습니까? 어머니가 살해된 사실은 우리에게 분노의 조건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더욱 처신을 조심하라는 경고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저희들은 저희의 처지를 더욱 길게변호하고 싶지만[㈜ 혹은 “우리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싶지만.”] 하지도 않은 행위를 길게 변호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기에 우리는 더 이상의 설명을 줄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만인의 주(主)시오 이 상황의 중재자이신 황제앞에서 아버님과 화해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만약 아버님께서 진실로 우리에 대한 의심을 버리신다면, 부친을 살해하려고 시도했다는 끔찍한 누명을 쓰고 사는 것이 별로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겠습니다. 그러나 아버님 마음에 한 치라도 우리에 대한 의심이 남아 있다면 아버님 뜻대로 우리를 처리 하십시오. 그러나 이것 한가지만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는 저희에게 생명을 주신 분에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4. 헤롯이 아들들과 화해하다


    [㈜ 참). 전쟁. 1권. 23 : 3(454).]


     알렉산더가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는 동안 전부터 그들이 그렇게 큰 음모를 꾸몄을 것이라고 믿지 않아 왔던 가이사는약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헤롯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한편 관중들은 헤롯이 증오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법정에 돌아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헤롯의 고소는 과장이 심했고, 피고인들은 한창 젊은 나이에 외모가 준수한 청년들이어서 관중들의 연민과 동정을 받게 되었으며, 알렉산더의 변호 또한 매우 유창하고 훌륭해서 더욱 그러하였다. 그리고 두 젊은이들의 표정도 울며 아래만 참담히 내려다 보던 처음과는 달리 생기가 돌았다. 또한 상황도 호의적으로 진전되어 자기의 고소가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헤롯도 그 고소를 증명할 만한 아무런 증거를 댈 수 없게 되자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 잠시 후 가이사는 두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들은 부친의고소와는 달리 이제 결백함이 증명되었네, 하지만 부친에 대해 이러한 소문이 나돌 정도로 아버님을 소홀히 대한 것은 결코 잘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게나!” 가이사는 또한 헤롯에게 아들들에 대한 의심을 모두 씻어 버리고 화해하라고 말하며, 자기의 친자식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덧붙였다.이렇게 부자지간에 서로 마음을 열어 쌓였던 오해를 풀고, 상대를 의심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됨으로써, 서로의 신뢰와 애정이 회복되었다. 가이사는 충고를 마치고 젊은이들을 가까이 오도록 손짓하였으나 그들은 부친의 발 아래 꿇어 엎드려 울며 용서를 빌고 있었다. 이에 헤롯은 두 아들들을 팔로 차례로 껴안으며 화해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노예이건 자유인이건 관계 없이 크게 감명을 받았다.


     5. 가이사와 헤롯의 선물교환


    [㈜ 참). 전쟁, 1권. 23 : 4(455).]


     그래서 그들은 가이사에게 깊은 사의를 표하고 안티파테르와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안티파테르는 내심 그렇지 않았지만 그들의 화해를, 기뻐하는 척하였다. 다음날 헤롯은 로마 시민들에게구경거리와 분배물을 제공하고 있는[㈜ 다른 사본은 “공급하는”] 가이사에게 300달란트를 선물했고, 가이사도 헤롯에게 구브로(Cyprus)구리 광산에서나오는 수입의 절반을 주며 나머지 반의 관리권도 헤롯에게 맡겼다[㈜ 아구스도의 시대에는 광산(鑛山)이 국가의 재산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최초의 증거. 참).S.I.Oost가 쓴 Class. Philol.’50(1955).103, 111, 주 41에 나오는 “Cato a Uticensis and the Annexation of Cyprus” ; George Hil)의 ‘History of Cyprus’Cambridge, 1949, i. 226 ; Broughton,’Econmic Sur-vey?, iv.534 ;자세한 출판목록에 대해서는 M. Rostovtseff,’Social and Econemic History of the Hellenistic World, iii.1187 주 102를 보라.]. 그리고 극전한 대접을 하여 전송해 주었다. 가이사는 또한 헤롯이 왕국의 계승자를 자기 임의대로 아들 중에서 선택하여 왕국을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었다. 헤롯은 즉시 이를 시행하려 했으나 가이사는 헤롯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왕국과 아들들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고대. 16권.4 : 5(129) 참). 전쟁. 1권.23 : 3(454), 6 : 3, 5(130-133)]


    6. 헤롯이 아르켈라우스를 방문하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 헤롯은 유대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트라콘(Trachon)[㈜ 코엘레 수리아(Coele Syria)에 위치함. 이 소요에 관한 더 상세 한 설명을 알기 위해서는 고대. 16권. 9 : 1(271-276)을 참조하라. 고대. 15권. 10 : 1(343-348).] 등 그의 왕국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 났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 다스리라고 헤롯이 임명한 사령관들은 그곳을 떠나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헤롯은 아들들과 함께 배를 타고 길리기아의 엘라이우사(Elaeusa)섬[㈜ 앞바다의 섬]으로 갔다. 지금은 세바스테(Sebaste)로 바뀐 그섬에서 이들은 갑바도기아(Cappadocia)의 왕 아르켈라우스를만나게 되었다. 아르켈라우스는 헤롯을 반갑게 영접하였고 자기의 딸과[㈜ 글라피라(Glaphyra). 고대. 16권.1 .2(11)] 결혼한 알렉산더가 헤롯과 화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고 헤롯과 아르켈라우스는 서로 왕의 직위에 걸맞는 예물들을 교환하였다. 그 후 헤롯은 그 곳을떠나 유대로 돌아왔다. 그는 성전에서 연설을 하면서 외국 여행중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가이사가 자기에게 베푼 호의와, 백성들이[㈜ 다른 사본에는 “다른 사람들?] 알면 자기에게 유익이 될 만한 갖가지 일등을 행한 것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와 아들들이 화해한 것을 전하면서 궁내에 거주하는사람들과 백성들이 화합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대를 이어 나라를 다스릴 아들을 지명하였다. 처음에는 안티파테르가 다스리고 그 다음에는 마리암메의 아들들인 아리스토불루스와 알렉산더가 차례로 다스릴 것이라고 공표하였다. 그러나현재로는 그가 정무를 못 살필 정도로 나이가 차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를 왕이자 유대의 지배자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고 백성들에게 주지시켰다. 헤롯은 이때까지 정정하여 나라를 통치하는데 노련하였고, 정무를 살피거나 자식들을 다스리는 데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또한 자기의 사령관들과 군사들에게 자기만을 성심껏 섬기면 편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인생에서누릴 수 있는 복의 기회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마치고 헤롯은 모임을 해산시켰다. 헤롯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긍을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참). 전쟁. 1권.23 : 5(461)이하. 여기에는 헤롯의 연설이 기록되 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헤롯이 아들들에게 건 희망과 경쟁의식은 이미 상당히 불안정한 것임을 간파하고, 그것들에 기대를 걸었던 자신들의 처지 또한 불안하였기 때문이다.[㈜ 고대. 16권. 4 : 6(135) 참). 전쟁1권. 23 : 5(4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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