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유리클레스가 헤롯의 아들들(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을 거짓으로 고발하자, 헤롯이 그들을 구금하고 그들에 대해 가이사에게 편지를 보낸 것과 실라이우스와 헤롯이 니콜라스에게 고소당한 것에 대하여
1. 라케데몬의 유리클레스가 알렉산더에 대한 안티파테르의 음모를 돕다.
헤롯왕가의 내부 분쟁이 극심하여 헤롯왕과 그 아들들과의 관계가 매우 좋지 못할 당시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이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인간적인 탐욕이 또 한번 헤롯왕가를 강타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라케데몬(Lacedemon)[㈜ C. Juljus Euryole. 참). 고대. 16권. 10 : 1(301-310)과 전쟁. 1 권. 26 : 1-4(513-531)의 설명. 고린도에 가장 훌륭한 욕탕을 건 축한 사람으로 파우사니아스(Pausanias)에 의해 언급된 저명한 가계의 스파르타 모험가. 참). PW x : 309, 495, 658, 839 ; vi : 1330 ; H. Seyrig, Rev. Arch(1929), 97-99 : Strabo viii : 5, 1 ; West. Lat. Inscr. Corinth viii, Pt. 2, No. 67 ; Plutarch, Antony 67.] 사람 유리클레스(Eurycles)는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성격이 나쁘고 사치를 즐기며 아부에 능한 아첨꾼인데, 어떤 일로 헤롯을 방문하게 되었다.[㈜ 주전8/7년.] 그는 헤롯에게 선물을 바치고 더 큰 예물을 받아냈다. 그리고 헤롯에게 매우 교묘히 접근하여 곧 그의 친구가 되었다.
또한 유리클레스는 안티파테르의 집에 기거하면서도 알렉산더와 친하게 지냈는데 이는 갑바도기아의 왕 아르켈라우스와 친분을 맺어볼 속셈으로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르켈라우스의 딸 글라피라를 존경하는 척 하기도 하며 궁 안의 온갖 비밀들을 엿듣고 다니느라 매우 분주히 나다녔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가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항상 유심히 관찰했는데 그는 이것들을 음모의 소재로 삼을 속셈이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각사람에게 자기가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인양 말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기가 무엇이든지 할준비가 되어있는 인상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이렇게 해서 그의 음모에 걸려든 사람이 젊은 알렉산더였다.
유리클레스는 알렉산더에게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얘기를 자기에게는 안심하고 말해도 된다고 꾀었다. 이에 순진한 알렉산더는 마음 속의 고충을 그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부친인 헤롯과의 관계가 어색하다는 것과 어머니 마리암메에 얽힌 사건, 그리고 어떻게 안티파테르가 자기의 지위를 빼앗아 지금까지 권력을 누리고 있는지 소상히 말해주며 이 모든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고 말했다. 또한 부친 헤롯이 자기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저녁 만찬이나 기타 다른 모임에서 자기에게 말조차 걸지 않고 있는 형편이라고 털어놓았다.
알렉산더의 이같은 불만은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을 자연스럽게밝힌 것뿐이었다. 그런데 유리클레스는 이 말을 안티파테르에게그대로 전해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것을 당신에게 알려주는것은 제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제가 당신에게 입은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서 전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알렉산더가 이 말을 할 때는 당신을 죽이려는 아주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는 듯하니 부디 그를 조심 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안티파테르는 유리클레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를 매우 신임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유리클레스에게 귀한 선물을 자주 주어 마침내 유리클레스로 하여금 알렉산더의 말을 헤롯왕에게 직접 고해 바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리하여 유리클레스는 헤롯에게 가 자기가 알렉산더의 말을 듣다 보니 부친에 대한 적대감이 많더라고 고해바쳤다. 이 같은 그의 간교한 말에 헤롯은 몹시 분노하며 알렉산더에 대한 증오로 치를 떨었다.
한편 유리클레스는 헤롯에게 선물로 50달란트를 받고 난 후 곧장 갑바도기아의 왕 아르켈라우스에게로 가서 알렉산더를 극구 칭찬하고 자기가 알렉산더와 헤롯을 화해시켰노라고 자랑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아르켈라우스에게서도 돈을 받아낸 다음 자기의 간교함이 드러나게 될까봐 무서워 급히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고향인 라케데몬(Lacedemon)에서도 못된 행실을 버리지 못하고 죄악을 많이 저질러 결국 고향에서도 쫓겨나고야 말았다.
2. 아들들에 대한 헤롯의 극심한 증오
헤롯은 이제 더 이상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전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전에는 남들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을듣기만 하더니 이제는 그들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 헤롯 자신이먼저 그들을 비난하고 남들도 그들을 비난하도록 부추키고 비난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하며 의심하였다. 또한 아들들에 관한 비난이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열성이었다.[㈜ 헬라어 본문에는 빠져 있음. 고대. 16권. 10 : 2(312)에 관해서는 전쟁. 1권. 26 : 5(532)을 참조하라.] 그러던 중 헤롯은 알렉산더와 공모한 코스의 유리투스(Euratus of Cos)에[㈜ P사본에는 suavraton. 전쟁에는 E!uavreston. 주전 12년에 Halasarna에서 아폴로(Apollo)의 제사장인 C. Julius Euaratos. 참). \’IGRR\’ iv : 1101.] 관해 듣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헤롯의 귀가 번쩍 뜨이는 중대한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3. 알렉산더에 대한 또다른 고소
[㈜ 고대. 16권. 10 : 3-7(313-330) 참). 전쟁. 1권. 26 : 3, 4(527-530).]
한편 더 큰 불행이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에게 닥쳐왔다. 이들에 대한 중상모략은 갈수록 커져만 갔고 나라 안에는 헤롯의 신변안전에 관계 될 만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쟁도 있었다.헤롯의 경호원 중에는 힘이 세고 체격이 건장한 유쿤두스(Jucundus)와 티란누스(Tyrannus)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두사람이 서로 다툰 후 헤롯에게 해고당해 알렉산더 및 그의 친구들과 함께 말을 타고 즐기면서 소일하였다. 그들은 운동 솜씨가 매우뛰어나서 알렉산더로부터 금과 다른 선물들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이에 헤롯은 그들에게 의심을 품고 급기야는 그들을 잡아다가고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용감하게 버티었으나 결국 고문에 이기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알렉산더가왕께서 사냥을 나가 짐승들을 쫓고 계실 때 왕을 살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전에 있었던 사고처럼 왕이 실수로 말에서 떨어져 창에 찔린 것처럼 위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숨겨둔 금이 마굿간 밑에 있다고 실토하였고, 또 왕의 사냥을 담당하는 대장이 알렉산더의 부하들에게 왕의 사냥용창과 무기들을 내어주는 것도 보았다고 덧붙여 말했다.
4. 알렉산더를 모함하는 내용의 위조편지
그 후 이들의 자백에 따라 알렉산드리온(Alexandrion)요새[㈜ 얍복강과 요단강 합류점의 남서쪽 3마일. 참). 고대. 13권. 16 : 3(417).] 수비대 대장이 잡혀와 고문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이 요새에 숨겨주고 이 요새에 비축되어있는 왕의 돈을 빌려주기로 약속했다는 혐의로 고소된 것이었다. 그러나 본인은 이를 극구 부인했지만 그의 아들이 달려와서그것이 사실이라고 폭로하고 알렉산더가 친히 써 보낸 것으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신을 증거물로 공개하였다. \”신의 도움으로 우리가 모든 것을 완수했을 때 다시 오겠소. 그때는그대가 약속한 대로 우리를 요새에 숨겨 주시오.\” 이 서신을 읽고 난 후 헤롯은 더 이상 아들들이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면서 분을 참지 못했다.
이에 알렉산더는 그 서신의 필체는 서기관 디오판투스(Dio-phantus)가[㈜ 전쟁. 1권. 26 : 3(529).] 자기의 필체를 흉내내어 쓴 것이며 서신의 내용은 안티파테르가 꾸며낸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사실 이 디오판투스는 그러한 일에 능수능란한 것은 사실이었으며 머지 않아 그는 이와 비슷한 위조죄를 범한 것이 발각되어 처형당하게 된다.
5. 헤롯이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투옥시키다.
또한 헤롯은 그동안 고문받았던 자들을 여리고의 백성들 앞에 세워놓고 자기 아들들을 비난하게 하였다. 이에 분노한 백성들은 그들의 코 앞에까지 다가가 돌로 쳐죽였다. 무리들이 이번에는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또한 같은 방법으로 쳐죽이려하자 헤롯이 이를 저지시키고 톨레미(Ptolemy)와[㈜ 참). 고대. 16권. 7 : 2(191) 각주 104 ; 전쟁. 1권. 24 : 2(473). 각주216.] 페로라스(Pheroras)를 시켜 군중들을 물러서게 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는 감시원들에 의해 아무도 그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호조치를 당한 채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감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저주받은 죄인들처럼 공포와 불안에 쌓인 채 온갖 모욕을 당하는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두명 중 마음이 강한 아리스토불루스는[㈜ 고대. 16권. 10 : 5(322-324)=전쟁. 1권. 27 : 1(534-536).] 그의 고모이자 장모인 살로메에게 불행을 당한 자기들을 좀 불쌍히 보아달라고 하며 자기들에게 이러한 일을 당하게 한 헤롯을 미워하라고 호소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실라이우스와 결혼하기 위해 고모님이 여기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그에게 말씀해 버린다면 고모님도 무사하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살로메는 그 즉시 이 말을 오빠인 헤롯에게 고해바쳤다. 이에 헤롯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두 아들에게 사슬을 채워 각기 딴 방에 감금시키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가이사에게 보고할 목적으로 이들이 아버지인 자신에게 저지른 잘못을 낱낱이 적어 올리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대해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는 부친에 대한 음모를 계획한 적도 실시한적도 결코 없으며 다만 자기들의 삶이 온통 의심과 고통으로 가득차 괴로운 나머지 부친의 곁을 떠나 도망가려고 마음먹은 적은 있었다고 적어 올렸다.
6. 알렉산더가 아르켈라우스와 음모를 꾸민 적이 없다고 부인함
이때 가바도기아로부터 아르켈라우스가 보낸 멜라스(Melas)라는 사신이 왔다. 그는 아르켈라우스가 아끼는 신복 중의 한 사람이었다. 헤롯은 멜라스에게 아르켈라우스가 자기를 배반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알렉산더를 감옥에서 끌어내어 그들이어디로 어떻게 도주하려 했는지 다시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이같이 대답했다. \”아르켈라우스께서 저희들을 그의왕궁에서 로마까지 보내주기로 약속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저희들은 결코 아버님을 살해하려는 음모는 꾸미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저희의 적들이 저희들을 중상모략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입니다. 티란누스(Tyrannus)와 그의 친구들이 지금 살아 있다면이것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안티파테르가 그의 신복들을 군중 속에 넣어 백성들을 선동해서 그들이 진실을 진술하지 못하도록 돌로 쳐죽여 버렸습니다.\”
7. 알렉산더의 아내 글라피라가 공모혐의로 연루되다
알렉산더가 이같이 말하자 헤롯은 멜라스와 알렉산더를 아르켈라우스의 딸 글라피라 앞에 데려와 헤롯에 대한 그들의 음모를 알고 있었는지 묻도록 하였다. 이에 글라피라는 알렉산더가사슬에 묶인 채 그들과 함께 오는 것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슬피 울었고, 알렉산더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또한 눈물을 흘렸다. 이 광경이 너무나 애처로와거기 있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몰라했다. 마침내 알렉산더를 데려오라고 명령을 받은 톨레미가 알렉산더에게 그의 부인이 그의 행적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이같이 말했다. \”내가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아내이자 내 아이들의 어머니인 그녀가 어찌 그것을 모른단말이요!\” 이에 글라피라는 알렉산더가 그런 포악한 짓을 한 적이 없다며 울면서 대답하고 남편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거짓으로라도 모든 것을 다 고백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이같이 말했다. \”난 결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음모를 꾸민 적이 없소. 단지 우리는 아르켈라우스에게로 갔다가 거기서 로마로 가려고 작정한 것뿐이오.\” 그리고그의 말에 글라피라도 동의하였다. 이것을 본 헤롯은 아르켈라우스가 자기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생각하고 올림푸스(Olympus)와[㈜ 헤롯 친구들 중의 한명 ; 참). 전쟁. 1권. 27: 1(535).] 볼룸니우스(Volumnius)에게 서신을 건네 주면서 배를 타고 길리기아(Cilicia)의[㈜ 참). 고대. 16권. 4 : 6(131) ; 전쟁. 1권. 23 ; 4(456).] 엘리이우사(Elaeusa)에 가 이것을 아르켈라우스에게 주고 그가알렉산더와 함께 음모를 꾸민 것에 대해 책망한 후 로마로 가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헤롯은 그들이 로마에 가서 가이사의 분노가 누그러진 것 같으면 자기가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고소하기 위해 준비한 서신과 증거품 등을 그에게 전하라고 일렀다.
한편 서신을 받은 아르켈라우스는 자기가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가 오면 받아주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이는 그들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헤롯의 극렬한 분노를 막아 그들과 헤롯 모두의 유익을 끼치자는 의도에서 그런 것이지 결코 그들을 가이사에게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적이나, 헤롯에게 적대감을 유발할소지가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8. 로마에 간 니콜라스가 헤롯에 대한 아라비아인의 고소를 해결하다
[㈜ 참). 전쟁. 1권. 27 : 1(536).]
헤롯의 사신들이 로마에 도착하였을 당시[㈜ ajpokomisqevnte\” 참). 투키디데스 v : 10 : 10.] 다음과 같은 니콜라스의 활약으로 헤롯에 대한 가이사의 분노가 어느 정도 누그러져 사신들은 서신을 가이사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즉, 니콜라스가 로마에 도착하여 왕궁을 방문했을 때 그는 헤롯의 문제뿐 아니라 실라이우스를 비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아라비아인들은 니콜라스가 만나 보기 전부터 자기네들끼리 서로 싸우고 있는 중 이었고 실라이우스로부터 빠져나온 어떤 아라비아인들은 니콜라스에게 실라이우스의 온갖 비행을 다 알려 주고 실라이우스가 오바다의 측근들을 살해했다는명백한 증거품 등을 가져다 주었다. 이들은 실라이우스를 배반하고 빠져 나올 때 실라이우스가 유죄인 것을 증명할 만한 실라이우스의 서신들을 몰래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니콜라스는 이것들을 하나의 행운의 징조로 보고 이것을 헤롯과 가이사 사이를 화해시키려는 자기의 미래 게획에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또한 그는 자기가 가이사 앞에서 헤롯의 행동을 노골적으로 변호하려 든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있으므로 실라이우스를 신랄히 비판하는데 역점을 두고 그 상황을 설명하는 중에헤롯을 적당히 언급하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실라이우스를 심판하는 날이 되자 니콜라스는 아레타스(Aretas)의 사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실라이우스는 아주 사악한 자입니다. 그는 오바다 왕뿐 아니라 많은 아라비아인들을 살해한 자입니다.[㈜ 고대. 16권. 7 : 6(220) 각주 120.] 더구나 그는 돈을 꾸어 흉악한 짓에 썼고 아라비아 여인뿐 아니라 로마 여인들과도 놀아난 추잡한 자입니다. 또한 실라이우스의 더욱 심각한죄는 헤롯왕의 행동을 거짓으로 황제에게 보고하여 헤롯왕과 가이사황제 사이를 이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니콜라스가 여기까지 말하자 가이사는 그의 말을 중단시키고 헤롯이 정말로 군대를 이끌고 아라비아를 침공하여 2,500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약탈하며 포로를 잡아간 것이 사실인지 만을 대답하라고 요구하였다. 이에 니콜라스는 지금 황제께서 알고 계신 내용의 전부 혹은 대부분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드리고 싶다고 말하면서 황제께서 이 설명을 듣고 나면 그렇게 헤롯에게 노여워하실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니콜라스의 말에 놀란 가이사는 그의 말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여 들었다. 니콜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을 계속 이었다. \”실라이우스는 헤롯왕에게 500달란트를 꾸어갔는데 기한까지 갚지 않았습니다.[㈜ ouj strateivan e[legen. 그 표현에 관해서는 참). 아피. 2권. 4(34) ; 고 대. 2권. 1 : 3(14) ; 신32 : 21(70인역) ; 롬 9 :25 : 그리고 고대 문헌에서의 많은 예증들을 참고하라. 참). Schmidt, p.516.] 계약상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헤롯왕이 500달란트 상당의 아라비아 영토를 어느 곳이든지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헤롯왕이 아라비아에 원정을간 것은 다만 자기가 꾸어준 돈을 받으러 간 것이지 침공의 의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기한 만료일이 되자마자 간 것이아니고 수리아의 총독 사투르니누스(Saturninus)와 볼룸니우스(Volumnius)에게 찾아가 사정을 여러번 얘기하고 베리투스(Berytus)에서[㈜ 베니게의 도시이자 이달리아 남부와 함께 약 주전 15년으로부 터 시작된 로마 식민지 ; 현재는 베이루트(Beirut).] 마침내 총독들이 동석한 자리에서 실라이우스가 가이사의 운명에 걸고 헤롯에게 진 빚을 30일 이내에 갚고,헤롯 영토에서 도망간 강도들도 돌려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까지 실라이우스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헤롯왕이 다시 총독에게 가서 직접 자기가 빚 문제를 해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나서 몇 명의 부하를 이끌고 헤롯왕이 아라비아로 원정을 간 것입니다. 이것이 실라이우스와 그의 측근들이 \’전쟁\’이라고 과장해서 모함한 사건의 전모입니다. 수리아의 총독이 승인했고 계약상의 권리를 찾는 일인데 어찌 이를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실라이우스는 황제의 이름까지걸고 맹세한 바를 지키지 않았는데 어찌 그것을 헤롯왕이 가만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포로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는데 원래 드라고닛(Trachonitus)주민 중에는 약 40여명의강도들이 살고 있었는데 후에 수가 불어나자 헤롯왕의 강력한 진압을 피해 아라비아에 근거지를 두고 강탈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실라이우스가 이런 나쁜 강도떼들을 받아들여 그들이 기거할 곳과 식량을 주고 그들의 노획물들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또한 실라이우스는 꾼 돈과 강도들을 돌려 주기로 한 헤롯과의 약속을 어기고 오히려 이 강도들을 보호해즐 뿐 아니라 숨을 곳을찾지 못한 강도들에게 안전한 은신처까지 마련하여 주었습니다.그러니 황제께서 들으신 대로 헤롯이 그 많은 포로를 잡아갖다는 소문은 전혀 근거없는 중상모략입니다. 황제시여, 실라이우스가 지금까지 꾸며 댄 끔찍한 거짓말들은 다 황제의 분노를 유발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가지확실히 알려 드릴 것은 헤롯왕이 아라비아로 원정갔을때 그의부하는 한두명이 사망했고 아라비아 쪽에서는 나케보스대장 등25명이 전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실라이우스는 백배로 과장해서 2,500명이 희생되었다고 거짓으로 보고한 것입니다.\”
9. 가이사가 실라이우스를 처형하다
가이사는 니콜라스의 말을 듣고 몹시 분노하며 실라이우스에게 도대체 아라비아 군인이 몇명이나 전사했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이에 실라이우스는 매우 당황해 하며 자기가 뭔가를 오해한 것 같다고 우물쭈물 대답하였다. 그러자 니콜라스는 실라이우스가 헤롯에게 빚진 돈의 계약서와 수리아 총독의 서신, 그리고 강도떼들에 의해 피해를 받은 여러 도시의 주민들이 낸 진정서를 낭독하였다. 마침내 가이사는 실라이우스를 처형하라고 명령하고 헤롯과는 화해를 하였다. 사실 가이사는 자기가 헤롯에게 너무 가혹한 편지를 쓴 것에 대해 후회가 되었던 것이었다.그래서 실라이우스에게 한때 친구였던 헤롯왕을 어쩌면 그렇게 중상모략 할 수가 있느냐고 책망하였다. 실라이우스는 헤롯에게 빚진 돈을 갚은 뒤 가이사의 명령대로 처형되었다.[㈜ 실라이우스(Syllaeus)의 운명에 관해. 고대. 17권. 3 :2(54-57) ; 전쟁 1권. 29 : 3(574-577) ; 스트라보(Strabo) xvi : 4 : 24를 보라.] 한편 가이사는 아레타스(Aretas)가 자기의 승락도 없이 아라비아의 왕위에 제멋대로 올랐기 때문에 이를 못마땅히 여겼다. 그래서 아라비아를 헤롯에게 넘겨주려고 작정했다가 헤롯의 서신을 받고 마음을 바꾸어 버렸다. 즉 올림푸스와 볼룸니우스는 가이사가 다시 헤롯과 화해하고 그를 총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로 헤롯의 아들들에 대한 헤롯의 고소문을 가이사에게 보냈는데 그것을 읽은 가이사는 헤롯이 이미 노쇠하였고 아들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또 하나의 왕국 아라비아를 그에게 맡기는 것은 좋지 않겠다고 판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이사는 아레타스가 보낸 사신들을 접견하고 자기의 승락도 받기 전에 왕위에 오른 아레타스의 경솔한 행동을 심하게 꾸짖은 다음 아레타스가 보낸 예물들을 수락하고 그를 왕으로서 인정하여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