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권 제 8장 헤롯의 죽음, 유언, 장례에 대하여

 


제 8 장




 헤롯의 죽음, 유언, 장례에 대하여




 1. 헤롯의 마지막 유언과 죽음




[㈜ 고대. 17권. 7 : 1(184-187), 8 : 1-3(188-199)=전쟁. 1권. 33 : 7-9(664-673).]




 그 후에 헤롯은 마음을 바꾸어 안디바(Antipas)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왕국을 아켈라오(Archelaus)에게 물려주기로 하고 안디바에게는 갈릴리와 베레아(Peraea)의 분봉국(tetrarch)을물려주기로 유언장을 정정하였다. 또한 헤롯은 가울로니티스(Gaulonitis)와 드라고닛(Trachonitis), 밧단(Batanaea), 파네아스(Paneas)를 아켈라오의 친형제인[㈜ 빌립은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부정확하며, 말다케 (Malthace)의 아르켈라우스(Archelaus)이다.] 빌립(Philip)에게 분봉국으로 주었다. 그리고 얌네이아(Jamneia)와 아소도(Azo-tus), 파사엘리스(Phasaelis)등은 은 500,000드라크마와 함께여동생 살로메에게 주었다. 헤롯은 다른 친척들에게도 많은 돈과 연수입의 원천을 주어 잘 살도록 해주었고, 가이사 황제에게는 주화 10,000,000드라크마와 금 은 그릇, 다른 귀중품 등을 유산으로 남겼고 황후 율리아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은 5,000000드라크마를 남겼다. 헤롯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 안티파테르를 처형한지 닷새째 되는 날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헤롯은 안티고누스(Antigonus)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후 34년간, 로마에서 왕으로 추인받은 때부터 계산하면 37년간 유대국을 통치하다가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헤롯은 모두에게 야비하고 잔인했으며 쉽게 격정에 타올랐고 정의를 경멸했던 사람이었다.[㈜ 헬라어 사본에 관해서는 고대. 19권. 2 : 2(173), 투키디데스 ii : 64: 1을 참 고하라.] 그러나 운은 좋아 일개 평민출신으로서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는영광을 누렸으며 수많은 난관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극복해 나갔고 장수까지 누렸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가정사에 관해 살펴본다면 일단 자기가 적이라고 생각한 자들은 모조리 죽여 없애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으므로 혹자는 헤롯이 행복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가정분쟁과 불화 때문에 헤롯은 매우 불행한 삶을 살고 간 사람 중에 하나였다.




 2. 헤롯의 장례




 한편 살로메와 알렉사스는 헤롯이 죽기 직전에 경기장에 갇혔던 사람들을 몰래 풀어 주면서 집에 돌아가서 열심히 일하라고 헤롯왕이 지시했다고 말하였다. 살로메와 알렉사스의 이러한 행동은 진정으로 나라에 큰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다. 헤롯왕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자 살로메와 알렉사스는 병사들을 여리고의 경기장에 집합시킨 후 병사들을 위해 헤롯왕이 써놓은 편지를 읽어 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그동안 자신을 위하여 그들이보여준 충성과 호의에 감사하며 앞으로는 자기 아들 아켈라오를 같은 충성으로 잘 보좌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후에는 헤롯왕의 인장을 담당하던 톨레미(Ptolemy)가 헤롯의 유언장을 읽었다. 그러나 이것은 가이사 황제의 추인을 얻은 후에라야 효력을발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쟁. 1권. 33 : 8(667)에서는 톨레미가 고인이 된 왕에 관한 축복을 선포하였 다.] 톨레미가 헤롯의 유언서 낭독을 끝마치자 즉시로 백성들은 \”아켈라오왕 만세!를 외쳤고 병사들과 지휘관들도 아켈라오왕에게 호의와 열성을 바칠 것을 다짐했으며 하느님께서 아켈라오왕을 도와주시도록 기원하였다.




3. [헤롯의 장례 행렬]




 그 후 그들은 헤롯의 장례식을 준비하였다. 아켈라오는 부친의 장례식을 아주 웅장하게 거행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장식품을 다 가지고 나와 꾸며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헤롯의 시신이담긴 관(棺)은 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온갖 진귀한 보석들이박혀있었고 자주색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또한 헤롯의 시신에는 자주색 왕복이 입혀졌으며 머리에는 금관이 씌워졌고 오른손에는 왕의 홀(笏)이 쥐어졌다. 헤롯의 관 주위에는 그의 여러아들과 친척들이 따랐으며 그 뒤에는 병사들과 각 나라의 조문객이 뒤따랐다. 맨 앞에는 헤롯의 경호병들이 섰고 다음에는 드라키아인(Thrachians) 병사들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게르만(German)병사들이 섰으며 맨 나중에는 골(Gaul)의 병사들이섰는데 이 병사들은 모두 전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헤롯의 전 군대가 전투대형으로 행진을 하며 상임지휘관들과 그의  부하들을 필두로 대행렬을 이루어 나갔다. 그 다음 줄에는 향료를 운반하는 500명의 종들이 뒤따랐다. 헤롯 자신이 지시한 장지 헤로디온(Herodeion)까지[㈜ 예루살렘 남쪽 약 8마일에 있는 현재의 jebel Fereidis. 그 위치는 전쟁. 1권. 21 ; 10(419-421)에서 기술되었다. 전쟁. 1권. 33 : 9(673)에서의 병행구절에서 그들은 여리고와 헤로디온 사이의 200스다디온을 메우기까지 매일 8스다디온을 행군했다고 전한다. 또한 Abel의 \’HP\” I : 406 주 ; Schurer의 책 I : 417 ; 부록을 참조] 시신이 운구되는 동안 장례행렬은 자그마치 8스다디온이나 되었다. 헤롯의 죽음과 장례는 이와 같았다.




 4. 아켈라오의 연설




[㈜ 고대. 17권. 8 ; 4(200-205)=전쟁. 2권. 1 : 1,291-4).]




 아켈라오는 부친을 위해 유대 율법의 전통에 따라 7일간 애곡을 한 다음 백성들을 잘 접대하고 애곡을 끝마친 후 성전에 올라갔다. 그가 지나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백성들이 서로 경쟁이나하듯이 그를 열렬히 환호하며 찬사를 보냈다. 이에 아켈라오는높은 위치에서 금으로 만든 보좌에 않아 백성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여러분들이 내게 큰 환호와 찬사를 보내 주시니 기쁘기 한량없소. 그리고 여러분들은 나의부친으로부터 학정을 당했는데도 나를 아무런 적대감 없이 이렇게 환영해주니 정말 고맙게 생각하오. 나 또한 여러분들의 성의에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하겠소. 그리고 가이사 황제께서 부친의 유언을 인준하기 전까지는나는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오. 전에 여리고에서 병사들이 나에게 왕관을 씌우려고 했을 때 내가 거절한 이유도 왕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이사 황제의 권한이고 황제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실지 아직 확실히 모르는 상황이니 왕관 쓰기를거절한 것이오. 내가 왕위에 오르면 여러분들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서 어느 면으로 보나 부친보다 덕스러운 통치를 할 것을약속하며 또한 자비와 양선을 베풀겠소.\”

 이에 백성들은 지배자들이 처음 권자에 올랐을 때 자기들의요구를 호의적으로 신경써서 잘 들어주는 법이라고 믿고 아켈라오가 관대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더욱 그를 칭송하면서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어떤이들은 일년에 한번씩내는 세금의 양을 줄여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이들은 헤롯왕이 감옥에 오랫동안 가두어 놓은 이들을 석방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 밖에 다른 이들은 물건을 사고 팔 때 내는 세금을[㈜ 판매세에 관해서는 Frank의 \’고대 로마의 경제적 개관\'(Economic Survey of Ancient Rome) iv : 238에 나오는 Heichelheim의 \”Roman Syria\”를 참조.] 완전히 없애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 백성들의 이러한 요구를 아켈라오는 다 들어 주었다. 이는 그가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의 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줄각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행(行)의 본문은 확실하지 않음.] 또한 아켈라오는 이렇게 하여 백성들의 환심을 사두는 것이 그의 왕권을 길이 보전하는데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후 그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고 친구들과 함께 잔치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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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제 8 장


     헤롯의 죽음, 유언, 장례에 대하여


     1. 헤롯의 마지막 유언과 죽음


    [㈜ 고대. 17권. 7 : 1(184-187), 8 : 1-3(188-199)=전쟁. 1권. 33 : 7-9(664-673).]


     그 후에 헤롯은 마음을 바꾸어 안디바(Antipas)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왕국을 아켈라오(Archelaus)에게 물려주기로 하고 안디바에게는 갈릴리와 베레아(Peraea)의 분봉국(tetrarch)을물려주기로 유언장을 정정하였다. 또한 헤롯은 가울로니티스(Gaulonitis)와 드라고닛(Trachonitis), 밧단(Batanaea), 파네아스(Paneas)를 아켈라오의 친형제인[㈜ 빌립은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부정확하며, 말다케 (Malthace)의 아르켈라우스(Archelaus)이다.] 빌립(Philip)에게 분봉국으로 주었다. 그리고 얌네이아(Jamneia)와 아소도(Azo-tus), 파사엘리스(Phasaelis)등은 은 500,000드라크마와 함께여동생 살로메에게 주었다. 헤롯은 다른 친척들에게도 많은 돈과 연수입의 원천을 주어 잘 살도록 해주었고, 가이사 황제에게는 주화 10,000,000드라크마와 금 은 그릇, 다른 귀중품 등을 유산으로 남겼고 황후 율리아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은 5,000000드라크마를 남겼다. 헤롯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 안티파테르를 처형한지 닷새째 되는 날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헤롯은 안티고누스(Antigonus)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후 34년간, 로마에서 왕으로 추인받은 때부터 계산하면 37년간 유대국을 통치하다가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헤롯은 모두에게 야비하고 잔인했으며 쉽게 격정에 타올랐고 정의를 경멸했던 사람이었다.[㈜ 헬라어 사본에 관해서는 고대. 19권. 2 : 2(173), 투키디데스 ii : 64: 1을 참 고하라.] 그러나 운은 좋아 일개 평민출신으로서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는영광을 누렸으며 수많은 난관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극복해 나갔고 장수까지 누렸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가정사에 관해 살펴본다면 일단 자기가 적이라고 생각한 자들은 모조리 죽여 없애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으므로 혹자는 헤롯이 행복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가정분쟁과 불화 때문에 헤롯은 매우 불행한 삶을 살고 간 사람 중에 하나였다.


     2. 헤롯의 장례


     한편 살로메와 알렉사스는 헤롯이 죽기 직전에 경기장에 갇혔던 사람들을 몰래 풀어 주면서 집에 돌아가서 열심히 일하라고 헤롯왕이 지시했다고 말하였다. 살로메와 알렉사스의 이러한 행동은 진정으로 나라에 큰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다. 헤롯왕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자 살로메와 알렉사스는 병사들을 여리고의 경기장에 집합시킨 후 병사들을 위해 헤롯왕이 써놓은 편지를 읽어 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그동안 자신을 위하여 그들이보여준 충성과 호의에 감사하며 앞으로는 자기 아들 아켈라오를 같은 충성으로 잘 보좌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후에는 헤롯왕의 인장을 담당하던 톨레미(Ptolemy)가 헤롯의 유언장을 읽었다. 그러나 이것은 가이사 황제의 추인을 얻은 후에라야 효력을발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쟁. 1권. 33 : 8(667)에서는 톨레미가 고인이 된 왕에 관한 축복을 선포하였 다.] 톨레미가 헤롯의 유언서 낭독을 끝마치자 즉시로 백성들은 “아켈라오왕 만세!를 외쳤고 병사들과 지휘관들도 아켈라오왕에게 호의와 열성을 바칠 것을 다짐했으며 하느님께서 아켈라오왕을 도와주시도록 기원하였다.


    3. [헤롯의 장례 행렬]


     그 후 그들은 헤롯의 장례식을 준비하였다. 아켈라오는 부친의 장례식을 아주 웅장하게 거행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장식품을 다 가지고 나와 꾸며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헤롯의 시신이담긴 관(棺)은 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온갖 진귀한 보석들이박혀있었고 자주색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또한 헤롯의 시신에는 자주색 왕복이 입혀졌으며 머리에는 금관이 씌워졌고 오른손에는 왕의 홀(笏)이 쥐어졌다. 헤롯의 관 주위에는 그의 여러아들과 친척들이 따랐으며 그 뒤에는 병사들과 각 나라의 조문객이 뒤따랐다. 맨 앞에는 헤롯의 경호병들이 섰고 다음에는 드라키아인(Thrachians) 병사들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게르만(German)병사들이 섰으며 맨 나중에는 골(Gaul)의 병사들이섰는데 이 병사들은 모두 전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헤롯의 전 군대가 전투대형으로 행진을 하며 상임지휘관들과 그의  부하들을 필두로 대행렬을 이루어 나갔다. 그 다음 줄에는 향료를 운반하는 500명의 종들이 뒤따랐다. 헤롯 자신이 지시한 장지 헤로디온(Herodeion)까지[㈜ 예루살렘 남쪽 약 8마일에 있는 현재의 jebel Fereidis. 그 위치는 전쟁. 1권. 21 ; 10(419-421)에서 기술되었다. 전쟁. 1권. 33 : 9(673)에서의 병행구절에서 그들은 여리고와 헤로디온 사이의 200스다디온을 메우기까지 매일 8스다디온을 행군했다고 전한다. 또한 Abel의 ‘HP” I : 406 주 ; Schurer의 책 I : 417 ; 부록을 참조] 시신이 운구되는 동안 장례행렬은 자그마치 8스다디온이나 되었다. 헤롯의 죽음과 장례는 이와 같았다.


     4. 아켈라오의 연설


    [㈜ 고대. 17권. 8 ; 4(200-205)=전쟁. 2권. 1 : 1,291-4).]


     아켈라오는 부친을 위해 유대 율법의 전통에 따라 7일간 애곡을 한 다음 백성들을 잘 접대하고 애곡을 끝마친 후 성전에 올라갔다. 그가 지나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백성들이 서로 경쟁이나하듯이 그를 열렬히 환호하며 찬사를 보냈다. 이에 아켈라오는높은 위치에서 금으로 만든 보좌에 않아 백성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여러분들이 내게 큰 환호와 찬사를 보내 주시니 기쁘기 한량없소. 그리고 여러분들은 나의부친으로부터 학정을 당했는데도 나를 아무런 적대감 없이 이렇게 환영해주니 정말 고맙게 생각하오. 나 또한 여러분들의 성의에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하겠소. 그리고 가이사 황제께서 부친의 유언을 인준하기 전까지는나는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오. 전에 여리고에서 병사들이 나에게 왕관을 씌우려고 했을 때 내가 거절한 이유도 왕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이사 황제의 권한이고 황제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실지 아직 확실히 모르는 상황이니 왕관 쓰기를거절한 것이오. 내가 왕위에 오르면 여러분들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서 어느 면으로 보나 부친보다 덕스러운 통치를 할 것을약속하며 또한 자비와 양선을 베풀겠소.”

     이에 백성들은 지배자들이 처음 권자에 올랐을 때 자기들의요구를 호의적으로 신경써서 잘 들어주는 법이라고 믿고 아켈라오가 관대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더욱 그를 칭송하면서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어떤이들은 일년에 한번씩내는 세금의 양을 줄여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이들은 헤롯왕이 감옥에 오랫동안 가두어 놓은 이들을 석방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 밖에 다른 이들은 물건을 사고 팔 때 내는 세금을[㈜ 판매세에 관해서는 Frank의 ‘고대 로마의 경제적 개관'(Economic Survey of Ancient Rome) iv : 238에 나오는 Heichelheim의 “Roman Syria”를 참조.] 완전히 없애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 백성들의 이러한 요구를 아켈라오는 다 들어 주었다. 이는 그가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의 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줄각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행(行)의 본문은 확실하지 않음.] 또한 아켈라오는 이렇게 하여 백성들의 환심을 사두는 것이 그의 왕권을 길이 보전하는데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후 그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고 친구들과 함께 잔치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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