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권 8장 유대인들이 가이우스에게 사절을 보낸 것에 대하여,그리고 가이우스가 유대인들이 자기의 동상을 받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을 공격하라고 페트로니우스를 수리아로 보낸 것에 대하여

 


 제 8 장



유대인들이 가이우스에게 사절을 보낸 것에 대하여,그리고 가이우스가 유대인들이 자기의 동상을 받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을 공격하라고 페트로니우스를 수리아로 보낸 것에 대하여



 1.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의 분쟁, 가이우스가 필로의 말을 듣지 않음



 한편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사이에 충돌이 생기자[㈜ 그 싸움에 대한 설명은 필로의 논문인 \’In Flaccum\’과 필로의 \’Legatio ad Gaium\’에 있는 사절단의 이야기에 길게 나타나 있다. 그 긴장의 진정한 원인은, 유대인들이 알렉산드리아의 시민권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인정을 얻으려고 시도한 것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스(H.Box)편 \’Philonis Alexandrini In Flaccum\’, 1939, p. xxxviii이하). 싸움이 직접적으로 일어난 경우는 아그립바가 가이우스 칼리굴라(Gaius Caligula)에 의해서 왕관을 수여받은 후, 주후 38년에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방문하였을 때이다. 유대인들은 매우 화려하게 그를 맞이하였으나, 이전에 그가 빈곤할 때에 그 도시에 방문한 것을 기억하는 헬라인들은 그를 바보같은 왕이라고 여기면서, 그를 \”마린(Marin, 아람어로 \”우리의 주님\”으로 그를 불렀다. 헬라인들은 칼리굴라가 불쾌해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가 신으로 숭배되도록 모든 회당에 황제의 상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로마의 플라쿠스(Flaccus)는 헬라인들을 지지했고, 유대인들을 이방인이나 외국인으로 선언했다. 그 결과 곧바로 유대인에 불리한 계획이 있게 되었다. 그때에 유대인의 사절단이 보내졌는데, 톨레미와조가 승인하고 야구스도가 확증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권리들을 칼리굴라가 재확인 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러한 사건들과 그 사절단에 대해서는 다음의 기록들을 보충적으로 보라. 빌리히(Willich)의 \”Caligla\”, \’Klio\’ iii을 1903, p.397이하 ; 벨(H.I.Bell)의 \’Jews and Christians in Egypt, 1924, pp. 1~21 ; 발스돈(Balsdon)의 \’The Emperor Gaius\’, pp.125~135 ; 박스(Box)의 책 p.xxxviii이하.] 각파에서 3명의 대표자를 뽑아 가이우스에게로 보내기로 했다.[㈜ 필로가 로마로 여행한 것은(\’Leg.\’ 190) 38~39년 겨울이나, 39~40년 겨울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아마도 후자가 옳을 것이다(발스돈은 가이우스가 유대인들을 다스린 일들의 연대기를 충분히 다루면서 이 기간으로 말한다.] 그 중 알렉산드리아의 대표는 유대인들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아피온(Apion)이라는[㈜ 요세푸스가 그에 대해 \’아피온반박문\'(Contra Apionem)을 쓴, 악명높은 \’반(反)-셈족\’인이다.] 사람이었는데 그는 말하기를 \”그들은 황제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에 있는 모든 민족들이 황제를 위해 제단을 쌓으며, 신전을 짓고 신에게 하듯이 황제를 숭배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황제의 상(像)으로 황제를 명예롭게 하는 것을 비난하고 그의 이름으로[㈜ \’호르키오스\'(oJrkio\”)라는 단어는 사람이 맹세하는데 언급되는 신이다. 루스(A.G.Roos)는 그의 \”Lesefruchte\”, \’Mnemosyne\’, iii Series, 2권, 1935, pp.237~!238에서 위와 같이 말한다.] 맹세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피온은 계속해서 황제의 분노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런 말을 계속했다. 유대인의 대표 단장인 필로(Philo)는 유대 행정장관인 알렉산더(Alexa-ner)와는[㈜ 고대. 18권. 6 : 3(159, 160)에서 아그립바에게 많은 액수의 돈을 빌려준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다.] 형제지간이었고 철학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는데 아피온의 비난에 대항하는 말을 준비했다.[㈜ 체리코퍼(V.Z.Tcherikover)는 그의 \’Corpus Papyrorum Judaicarum,\’ I.1957, p.67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조한다. 필로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들 중의 고위층과 부유한층을 대표했으며, 그들은 로마의 정부와 헬라인들과 화해를 모색했다. 반면에 유대인들 중의 한 부류의 유력인사들은 그러한 화해에 반대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의 말을 중단시키고 그를 밖으로 내 보낸 뒤에도 계속 화를내며 그들에게 모종의 가해행위를 할 것을 명백히 했다. 심한 모욕을 당한 필로는 방을 나와서 자기와 함께 온 동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말을 했다. \”가이우스의 분노는 단지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느님께 대적하는 것이오.\”



2. 페트로니우스가 성전에 가이우스의 상(像)을 세우기 위해서 유대로 파견되다



[㈜ 고대. 18권. 8 : 2(261, 262)는 전쟁. 2권. 10 : 1(185-187)과 병행구이다. 이 사건은 필로의 \’Leg.\’ 188과 207~208, 그리고 타키투스의 \’Hist.\’ v.9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두 사람은 칼리굴라가 그의 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라고 명령했으나 그들은 순종하기 보다는 군대를 일으키는 것을 선택했다고 언급한다.]



 가이우스는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경솔히 여김을 받는 것을 알고 분개하여 수리아의 총독인 비텔리우스 후임에 페트로니우스(Petronius)를[㈜ 주후 39~!42사이의 수리아의 통치자이다.] 파송했다. 그리고 명령하기를 유대로 대군을 이끌고 가서 유대인들이 고분고분히 순종하거든 성전에 가이우스의 상(像)을 세우고, 그들이 거역하면 무력으로 그들을 굴복시켜서라도 상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페트로니우스는 수리아의총독이 된 후 황제의 명령을 신속히 수행했다. 가능한 많은 지원군대를 모으고 로마군 2개 군단을[㈜ 병행구인 전쟁. 2권. 10 : 1(186)에는 3개의 군단(legion)을 말한다. 택커래이는 각주에서 페트로니우스(Petronius)가 그의 군대의 1/2과 함께 왔다는 필로의 진술(\’Leg.\’ 207)을 인용한다. 이때에 수리아에는 4개의 군단이 있었기 때문에 요세푸스의 진술이 더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앞세워 톨레마이스(Pto-lemais)로 이동했다. 거기서 겨울을 지내고 봄에 전쟁을 치러실수없이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가이우스에게 편지를 알렸다. 가이우스는 페트로니우스의 충성심을 칭찬하고 유대인들이 복종하지 않을 경우에는 무력으로 그들을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유대인들이톨레마이스에 있는 페트로니우스를 찾아와서 자신들 조상대대로 물려오는 율법에 반역하지 않도록 그리고 강제로 그렇게 우상 숭배하도록 무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간청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총독께서 가이우스의 상을 성전에 들여와 세우려거든먼저 우리를 죽이시오. 율법 자체가 말하고 있고 또 우리 조상들이 뜻을 모아 도덕률로 정하며 금지토록한 그 일을 한다는 것은우리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안됩니다.\” 이에 페트로니우스는 벌컥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만일 황제라서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당신들이 말한 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황제가 보낸 사람이요 그가 이미 내린 결정을 수행하기 위해서 왔을 뿐이다. 내가 이 명령을 거역하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벌을 받게 된다.\”

 이때 유대인들이 대답했다. \”페트로니우스시여, 당신이 가이우스의 명령에 거역해서는 안된다고 하듯이 우리도 율법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율법을 거역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우리 조상들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는 것이 두려워서 율법이 금지하는 일들을 행하는 사악함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율법은 그렇게 하는 우리의 선한 행위에 유익을 줄것입니다. 우리는 조상 전래의 율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비록 위험이 닥칠지라도 기꺼이 견디어 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영광을 위해서 위험도 감수한다면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총독에게 복종한다면 목숨이 아까워 율법을 반역하는 겁쟁이라는 비난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무서운 진노를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당신 보기에도 하느님은 가이우스보다 훨씬 강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 디베랴에 있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유대인들이 청원하다



[㈜ 페트로니우스에 대한 이러한 언급(고대. 18권. 8 : 3-6(269~288)은 전쟁. 2권. 10 : 3-5(192~202)와 병행되고 있다.]



 페트로니우스는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결심을 돌이키기에는 쉽지 않으며 전쟁을 하지 않고는 가이우스의 상을 세우라는가이우스의 명령을 실행하기가 어려움을 알았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살육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을 모아놓고 유대인들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디베랴(Tiberias)로갔다. 유대인들은 로마인들과 전쟁의 위험을 안고서라도 율법에 거역하지 않으려 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디베랴에 도착한 페트로니우스에게 모였다. 그들은 간청하기를 가이우스의 상을 세움으로써 우리를 그러한 재난에 빠뜨리지 않고 또 도시를 오염시키지 말도록 간청했다. 그러자 페트로니우스는 \”그렇다면 그대들이 황제와 전쟁을 할 것인가, 로마군은 부족함 없이 완전무장 했고 그대들은 보잘것 없지 않은가[㈜ 같은 말인, \”그러면 너는 가이사와 전쟁을 하러 가겠느냐\’라는 말이 전쟁. 2권. 10 : 4(196)에서의 병행구에서도 발견된다.]\”라고 말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황제를 대항해서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그들은 이와같이 말하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목을 길게 늘어 뜨리고 기꺼이 죽겠노라고 울부짖었다.[㈜ 참). 고대. 18권. 3 : 1(59)에 있는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간청하는 말고 비슷 한 구절.] 그들은 40일[㈜ 전. 2권. 10 : 5(200)에 있는 병행구에 따르면 50이다.] 동안이나 이런식으로 탄원했다. 그러는 동안에 땅을 경작하고 씨를 뿌리는 일을 등한시했다.[㈜ 필로는, \’Leg.\’ 249에서 서 이 사건을 추수 때로 본다.] 그들은 확고한 결심을 보여주었으며 성전에 상이 서는 것을 보기 보다는 죽는 것을 선택했다.



4. 아리스토불루스와 그의 지도자들이 유대인의 호소에 동참하다



 이런 상황이 전개될 때 아그립바왕의 형제인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 헬키아스 장로(Helcias the Elder)[㈜ 고대. 19권. 8 : 3(353)에서는 장관이며 아그립바왕의 친구로 언급되어 있다. 아그립바왕이 죽은 후에 헬키아스(Helcias)는 칼키스(Chalcis)의 지배자였던 헤롯과 음모하여 그들의 적인 아그립바왕의 장군 실라스(Silas)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는 분명히 성(性)이 헬키아스인 알렉사스(Alexas)와 동일인이다. 알렉사스는 고대. 18권. 5 : 4(138)에서, 대헤롯의 딸 키프로스의 딸인 키프로스(어머니와 이름이 같음-역자 주)의 남편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집안의 유력인사들이 페트로니우스를 찾아가서 총독도 유대인들의 단호한 결심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궁지로 몰아 넣지 말고 황제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편지를 써 주도록 호소했다. 그 내용으로는 유대인들이 황제의 상을 성전에 들여 놓은 것을 반대하고 있으며 그들은 이것을 반대하고 모여 있는 바람에 농사짓는 것도 포기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황제께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과 또 그들의 율법에 반역하기 보다는 기꺼이 죽음을 택할 자세가 되어 있고,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 못해 도적떼들이 급증하고 있다는것들이다. 유대인들은 가이우스가 이러한 사실을 알면 마음이누그러지면서, 유대민족을 말살하려는 잔인한 계획을 취소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황제가 전쟁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때 페트로니우스가 무력을 사용해도 늦지 않을 것임을 간청했다. 아리스토불루스와 그 동료들이 페트로니우스에게 이와같이 호소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들어 여러 방면으로 효과적인 간청과 때로는 압력을 넣었다. 페트로니우스는 유대인들의 굽히지 않는 의지를 보았고, 황제의 명령대로 하다 가는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려야 했으며, 하느님을 경외하는 그들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의 생명도 위태롭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페트로니우스는 가이우스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하고, 곧바로 황제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함으로써 야기되는 황제의 냉혹한 분노를 감수하기로 했다.[㈜ 고대. 18권. 8 \”5(270-283)으로부터 그 의미는 명확할지라도, 본문은 매우 불확실하다. 나는 페터슨(petersen)교수의 교정안을 받아들였다. 만약 \’그들의\'(aujtw\’n)이란 것이 될 수 있다면 \”회복되지 못하도록 편지를 가이우스에게 보내는 것\”이 될 것이다.] 어쩌면 황제를 납득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만약 가이우스가 광기서린 그의 계획을 계속 고집한다면 그때 유대인들과 전쟁을 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또 가이우스가 페트로니우스에게 분노를 해서 수많은 군중들 대신 자신이죽는다면 그것도 뜻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페트로니우스는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5. [페트로니우스가 유대인들에게 행한 연설]



 페트로니우스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디베랴(Tiberias)에 모아놓고, 현재의 이러한 계획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황제의 명령이었음을 설명하고,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즉각 처형하라 했다고 말했다. \”황제의 은혜로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오른 나로서는 당연히 복종해야만 한다. 그러나 내 자신의 안전과 지위만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다는것은 옳치 않다. 당신들은 생명까지 바쳐서라도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기에, 나는 전능하신 하느님에 의지하여 당신들의 성전이 황제의 오만한 권위에 희생되는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내가 가이우스에게 사람을 보내어 당신들의 마음을 잘 설명해서 당신들이 제안한 선한 것들이 받아 들여질 수 있도록[㈜ 또는(허드슨과 함께) \”네가 제안한 좋은 논증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너의 이유를 옹호활 수 있도록\”으로 될 수 있다. 포스트(Post)교수는 @upevr tou\’ kaq! uma\’\” mh; para; gnwvmhn peisovmvenou라는 기록을, \”너의 판단과 도덕적인 원칙들에 반대해서 순종하기를 거부한 너를 옹호하기 위해서 너의 지지자로서 행동하는\”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노력해 보겠다. 하느님은 사람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당신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있으시길 바란다. 인간의 변덕스러운 음모가 있을지라도 하느님은 당신들의 율법을 지켜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가이우스가 분노해서 나에게 분풀이를한다면, 지극히 도적적인 행위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나의 신상과 자리에[㈜ 다른 사본에는 \”영혼\”으로 나와 있다.]까지 영향줄지 모를 어떠한 위험과 고통도 감수할 것이다. 그러니 각자 돌아 가서 자기 일에 충실하라. 로마에 사람을 보내어 힘껏 그리고 친구들의 힘을 빌어서라도 당신들을 도와주겠다.\”



 6. 하느님께서 섭리로 내려주신 비가 유대인들을 고무시키다



 이말을 마친 후에 페트로니우스는 유대인들을 좋은 말로 설득시키고 해산시켜서 생업에 종사하도록 했다. 그는 군중들에게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느님께서는 페트로니우스에게 함께 하실 것과 모든 것을 도와주실 것을 보여 주셨다.[㈜ 사본들에는 \”하느님께서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숨김없이 보여주었다\”라고 되어 있다.] 페트로니우스가 유대인들에게 이말을 마치자마자, 하느님은 곧바로 소낙비를 내려주셨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맑았으며, 비가올 낌새가 전혀 없어서 비가 온다는 것은 일반적인 이해의 범주를 넘는 것이었다. 더구나 1년내내 가뭄이 심해서 구름 낀 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비가오지 않아 실망을 하던 때였다. 이럴 때예상하지 않게 많은 비가 내리자[㈜ 이러한 소나기에 대한 언급은, 병행구절인 전쟁. 2권. 10 : 5(199~202)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페트로니우스가황제에게 간청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페트로니우스로서는 이 놀라운 일을 통해 하느님의 도우심이 유대인들 위에 있고 하느님의 현존을 확실히 보았으므로 크게 놀랐으며, 반대의 견해를[㈜ 즉, 하느님은 유대인에게 호의적이 아니었다는 것.] 가지고 논쟁을 하려던 사람들도모두 놀랐다. 페트로니우스는 가이우스에게 쓰는 글에 이 놀라운 사건도 덧붙였다.[㈜ 비록 그 의미는 명확할지라도 이 문장에는 구문이 빠진 것으로 나타난다.] 그의 편지는 가이우스를 설득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작성되었다. 즉, 만약 그가 유대인들을 죽인다면-유대인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느님을 경배하는 풍습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국가 수입이 줄어들것이며 앞으로 계속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더구나 유대인들을 책임지고 있는 하느님이 신비한 힘을 보여 주셨고 우리는 확실히 보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내용으로 페트로니우스는 가이우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7. 로마에 있는 아그립바가 가이우스의 총애를 받다



 한편 로마에 있던 아그립바왕은[㈜ 필로의 \’Leg.\’ 276~329에서 아그립바는 페트로니우스에게로의 황제의 명령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그 명령에 관해서 칼리굴라 자신으로부터 안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몹시 당황하며 기절하게 된다. 회복된 후에 그는 그의 전임자의 예를 따르고 유대인에게 관용을 보이라고 재촉하는 황제에게 긴 글을 써보낸다. 그곳에는 에스더 7장을 생각나게 하는 배경의 향연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에스더 7장에서 에스더는 그녀에게 왕국의 반이라도 주려고 하는 아하수에로(Ahasuerus)왕에게 그녀의 백성을 위해서 탄원을 한다.] 가이우스와 매우 가까워졌다. 한번은 아그립바가 가이우스를 위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연회를 준비하는 내용에서 보나, 황제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준비한 것을 보나, 어떤 다른 사람보다 능가하는 연회였다. 그날 연회는 말할 것 없이 성공적이었고 가이우스도 똑같은 마음으로아그립바를 대해 주려 했던 것이다. 아그립바는 준비하는 것이나 황제를 위해 하는 모든 것에서 어떤 사람보다도 뛰어나게 했다. 가이우스는 아그립바가 자기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많은돈을 들여 기발하고, 웅대하고, 극진하게 준비한 것에 감탄하였다. 그래서 가이우스는 아그립바가 자신에게 한 것만큼 해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가이우스는 연회를 즐기던 중 취기가 약간돌자 평소보다 흥이 나서 자기에게 술을 권하는 아그립바에게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그립바, 당신이 내게 보여준 경의에 대해서는 전부터 잘 알고 있었소. 당신이 디베료 황제로 인해 고통받아 생명이 위태로울 때에도 내게 지극한 충성을 보여주었소.당신은 힘에 넘치도록 내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소. 당신이 내게열심으로 충성한 것에 대해 감동을 받아 과거의 나의 무성의함을 떠나 이제 무엇인가 보상하고 싶소. 전에 당신에게 베푼 나의은총은 참으로 보잘것 없었소. 당신에게 커다란 행운을 안겨주기 위해 마음과 힘을 다해 도와줄 것이오.\” 가이우스는 아그립바가 어떤 영토나 도시의 세금수입을 요구할 것으로 알고 이와같은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이미 요구사항을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도를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아그립바는 가이우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디베료의 명령에 불복종 하면서까지 황제께 경의를 표한 것은 황제로부터 어떤 유익을 기대하고 한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황제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제께서 이미 저에게 베푸신 은총은 그야말로 제가 감당할 수 없이 크고 깊은 것입니다. 황제께서는 최소한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제게는 과분할뿐입니다.\” 아그립바의 이러한 말에 더욱 감탄한 가이우스에게 아그립바는 이렇게 청원했다. \”황제 폐하, 제게 친절을 베푸사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지만 이미 제게 베푼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저의 영달과 영욕을 위해서는 간청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께서 하시는 일이 신의 은총을 입을 수 있고, 또 황제의 경건성이 알려질 수 있는 어떤 것을 부탁드리려 합니다. 그것은 제게도 영예로운 것입니다. 황제께서는 제가 부탁하는 어떤것도 결코 거절하는 적이 없음을 믿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부탁하옵기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유대인의 성전에 당신의 상을 세우라고 명령하신 것을 포기하시기를 원합니다.\”



8. 아그립바가 가이우스에게 신전에 상을 세우는 일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다



 아그립바는 그 일의 중요성에 비추어 보아 이러한 간청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면서도 모험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만일 가이우스가 그에게 호의가 없었다면 아그립바는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가이우스는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말한 바가있어서 아그립바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가이우스는 그러한 제의를 한 것을 후회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약속을 깰수가 없었고 또 아그립바가 요구하도록 강요하다시피 한것이라서 들어준 것이다. 동시에 가이우스는 아그랍바가 개인적인 영달이나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과 종교를 우선하여 공공의 행복을 위하는 그의 성품에 감탄한 것이다. 그래서 가이우스는 그 일을 포기하고 군대를 소집시켜 파송했던 페트로니우스에게 다음날 편지를 했다. \”성전에 이미 내 상을 세웠으면 그대로 두시오.[㈜ 클레멘츠(H.Clementz)는 그외 요세푸스의 독일어 번역에서, 그 의미는 \”그것을 세우지 말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외에는 아그립바에 대한 가이우스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상을 세우려는 더 이상의 생각을 가이우스가 버리도록 요청했기 때문에 가이우스는 궤변적으로 페트로니우스에게 보낸 메시지는 그 약속에 부합되는 것이며 아그립바는 그 상을 제거하도록 요청을 하지 않았다 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세우지 않았으면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군대를 해산시키고, 내가 처음에 그대를 파송하면서시켰던 그 일에만 열중하시오. 더이상 상을 세우려하지 마시오.일이 이렇게 된것은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아끼는아그립바에게 호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오. \”가이우스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이러한 글을 썼는데 이는 페트로니우스의 편지가도착하기 전이었다. 페트로니우스는 황제에게 편지하기를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는데[㈜ 그 본문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만약 발췌문의 기록을 받아들인다면 그 의미는 \”유대인들이 이미 폭동을 일으킬 결심을 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페트로니우스의 편지를 읽기 전에\”라는 것이 될 것이다. ] 그들의 태도는 로마에 대항하는 전쟁과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편지를 받은 가이우스는 유대인들이 감히 그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언짢았다. 가이우스는 언제나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에게는 잔혹하게 대했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이우스는 페트로니우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했다. \”너는 유대인들이 너에게 준 뇌물에만 급급하여 나의 명령을 소홀히 하고 나의 명령을 어기면서 기뻐하는 유대인들의 비위나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네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하도록·하고 네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도록 하라. 너에게 확고히 말하노니 너는 황제의 명령은 결코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금과 앞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하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전쟁, 에서의 병행구절에서는 칼리굴라와 함깨 한 아그립바의 중재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어 있으며, 단지 가이우스의 명령들을 페트로니우스가 늦게 실행하는데 대해서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가이우스의 화난 대답을 언급한다(2권. 203).]



 9. 황제의 사형선고에 대한 페트로니우스의 행운



 황제가 페트로니우스에게 이와같은 편지를 썼는데 페트로니우스는 가이우스가 죽은 이후에나 편지를 받아 보았다. 그 이유는 그 편지를 가진 사람들의 항해가 연기되었고 편지가 페트로니우스에게 전달되기 전에 가이우스 황제가 죽었다는[㈜ 가이우스는 주후 41년 1월 24일에 죽었다. 병행구절인 전쟁. 2권. 10 : 5(203)에 따르면 페트로니우스에게 보내는 가이우스 편지률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날씨에 묶여서 바다 위에 3개월 동안 있었고 가이우스의 죽음의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들보다 27일 후에 도착했다. ] 소식이먼저 페트로니우스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유대인들과 하느님의 영예를 위해서 호의를 베푼 페트로니우스를 기억하신 연고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교만해져서 분별력이없이 신처럼 경배틀 받으려고 한 가이우스를 제거함으로써 하느님께서 페트로니우스에게 진 빚을 갚아주신 것이었다. 사실, 로마 제국사람들 특히 원로원들은 페트로니우스에 동조했는데 이는 가이우스가 무자비하게 그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기 때문이었다. 가이우스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자결하라고 편지를 한 후 얼마있다가 죽은 것이다.[㈜ 병행구절인 전쟁. 2권. 10 : 5(203)에서는 가이우스가 단지 페트로니우스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가이우스가 죽게된 동기와 그 음모가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글을 써나가면서 밝히려 한다.[㈜ 고대. 19권. 1 : 2-15(15-114).] 페트로니우스가 가이우스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먼저 받고 조금 후에 페트로니우스에게 자결하라는 명령을 담은 편지를 받았다. 페트로니우스에게 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곧 가이우스가 죽자 페트로니우스는 기뻐했으며,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성전의 명예를 지켜준데 대해 곧바로 보답을 해주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해서 페트로니우스에게 닥친 죽음의 재난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쉽게 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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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권 8장 유대인들이 가이우스에게 사절을 보낸 것에 대하여,그리고 가이우스가 유대인들이 자기의 동상을 받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을 공격하라고 페트로니우스를 수리아로 보낸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8 장


    유대인들이 가이우스에게 사절을 보낸 것에 대하여,그리고 가이우스가 유대인들이 자기의 동상을 받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을 공격하라고 페트로니우스를 수리아로 보낸 것에 대하여


     1.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의 분쟁, 가이우스가 필로의 말을 듣지 않음


     한편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사이에 충돌이 생기자[㈜ 그 싸움에 대한 설명은 필로의 논문인 ‘In Flaccum’과 필로의 ‘Legatio ad Gaium’에 있는 사절단의 이야기에 길게 나타나 있다. 그 긴장의 진정한 원인은, 유대인들이 알렉산드리아의 시민권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인정을 얻으려고 시도한 것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스(H.Box)편 'Philonis Alexandrini In Flaccum', 1939, p. xxxviii이하). 싸움이 직접적으로 일어난 경우는 아그립바가 가이우스 칼리굴라(Gaius Caligula)에 의해서 왕관을 수여받은 후, 주후 38년에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방문하였을 때이다. 유대인들은 매우 화려하게 그를 맞이하였으나, 이전에 그가 빈곤할 때에 그 도시에 방문한 것을 기억하는 헬라인들은 그를 바보같은 왕이라고 여기면서, 그를 "마린(Marin, 아람어로 "우리의 주님"으로 그를 불렀다. 헬라인들은 칼리굴라가 불쾌해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가 신으로 숭배되도록 모든 회당에 황제의 상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로마의 플라쿠스(Flaccus)는 헬라인들을 지지했고, 유대인들을 이방인이나 외국인으로 선언했다. 그 결과 곧바로 유대인에 불리한 계획이 있게 되었다. 그때에 유대인의 사절단이 보내졌는데, 톨레미와조가 승인하고 야구스도가 확증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권리들을 칼리굴라가 재확인 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러한 사건들과 그 사절단에 대해서는 다음의 기록들을 보충적으로 보라. 빌리히(Willich)의 "Caligla", 'Klio' iii을 1903, p.397이하 ; 벨(H.I.Bell)의 'Jews and Christians in Egypt, 1924, pp. 1~21 ; 발스돈(Balsdon)의 'The Emperor Gaius', pp.125~135 ; 박스(Box)의 책 p.xxxviii이하.] 각파에서 3명의 대표자를 뽑아 가이우스에게로 보내기로 했다.[㈜ 필로가 로마로 여행한 것은(‘Leg.’ 190) 38~39년 겨울이나, 39~40년 겨울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아마도 후자가 옳을 것이다(발스돈은 가이우스가 유대인들을 다스린 일들의 연대기를 충분히 다루면서 이 기간으로 말한다.] 그 중 알렉산드리아의 대표는 유대인들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아피온(Apion)이라는[㈜ 요세푸스가 그에 대해 ‘아피온반박문'(Contra Apionem)을 쓴, 악명높은 ‘반(反)-셈족’인이다.] 사람이었는데 그는 말하기를 “그들은 황제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에 있는 모든 민족들이 황제를 위해 제단을 쌓으며, 신전을 짓고 신에게 하듯이 황제를 숭배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황제의 상(像)으로 황제를 명예롭게 하는 것을 비난하고 그의 이름으로[㈜ ‘호르키오스'(oJrkio”)라는 단어는 사람이 맹세하는데 언급되는 신이다. 루스(A.G.Roos)는 그의 “Lesefruchte”, ‘Mnemosyne’, iii Series, 2권, 1935, pp.237~!238에서 위와 같이 말한다.] 맹세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피온은 계속해서 황제의 분노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런 말을 계속했다. 유대인의 대표 단장인 필로(Philo)는 유대 행정장관인 알렉산더(Alexa-ner)와는[㈜ 고대. 18권. 6 : 3(159, 160)에서 아그립바에게 많은 액수의 돈을 빌려준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다.] 형제지간이었고 철학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는데 아피온의 비난에 대항하는 말을 준비했다.[㈜ 체리코퍼(V.Z.Tcherikover)는 그의 ‘Corpus Papyrorum Judaicarum,’ I.1957, p.67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조한다. 필로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들 중의 고위층과 부유한층을 대표했으며, 그들은 로마의 정부와 헬라인들과 화해를 모색했다. 반면에 유대인들 중의 한 부류의 유력인사들은 그러한 화해에 반대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의 말을 중단시키고 그를 밖으로 내 보낸 뒤에도 계속 화를내며 그들에게 모종의 가해행위를 할 것을 명백히 했다. 심한 모욕을 당한 필로는 방을 나와서 자기와 함께 온 동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말을 했다. “가이우스의 분노는 단지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느님께 대적하는 것이오.”


    2. 페트로니우스가 성전에 가이우스의 상(像)을 세우기 위해서 유대로 파견되다


    [㈜ 고대. 18권. 8 : 2(261, 262)는 전쟁. 2권. 10 : 1(185-187)과 병행구이다. 이 사건은 필로의 ‘Leg.’ 188과 207~208, 그리고 타키투스의 ‘Hist.’ v.9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두 사람은 칼리굴라가 그의 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라고 명령했으나 그들은 순종하기 보다는 군대를 일으키는 것을 선택했다고 언급한다.]


     가이우스는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경솔히 여김을 받는 것을 알고 분개하여 수리아의 총독인 비텔리우스 후임에 페트로니우스(Petronius)를[㈜ 주후 39~!42사이의 수리아의 통치자이다.] 파송했다. 그리고 명령하기를 유대로 대군을 이끌고 가서 유대인들이 고분고분히 순종하거든 성전에 가이우스의 상(像)을 세우고, 그들이 거역하면 무력으로 그들을 굴복시켜서라도 상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페트로니우스는 수리아의총독이 된 후 황제의 명령을 신속히 수행했다. 가능한 많은 지원군대를 모으고 로마군 2개 군단을[㈜ 병행구인 전쟁. 2권. 10 : 1(186)에는 3개의 군단(legion)을 말한다. 택커래이는 각주에서 페트로니우스(Petronius)가 그의 군대의 1/2과 함께 왔다는 필로의 진술(‘Leg.’ 207)을 인용한다. 이때에 수리아에는 4개의 군단이 있었기 때문에 요세푸스의 진술이 더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앞세워 톨레마이스(Pto-lemais)로 이동했다. 거기서 겨울을 지내고 봄에 전쟁을 치러실수없이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가이우스에게 편지를 알렸다. 가이우스는 페트로니우스의 충성심을 칭찬하고 유대인들이 복종하지 않을 경우에는 무력으로 그들을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유대인들이톨레마이스에 있는 페트로니우스를 찾아와서 자신들 조상대대로 물려오는 율법에 반역하지 않도록 그리고 강제로 그렇게 우상 숭배하도록 무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간청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총독께서 가이우스의 상을 성전에 들여와 세우려거든먼저 우리를 죽이시오. 율법 자체가 말하고 있고 또 우리 조상들이 뜻을 모아 도덕률로 정하며 금지토록한 그 일을 한다는 것은우리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안됩니다.” 이에 페트로니우스는 벌컥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만일 황제라서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당신들이 말한 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황제가 보낸 사람이요 그가 이미 내린 결정을 수행하기 위해서 왔을 뿐이다. 내가 이 명령을 거역하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벌을 받게 된다.”

     이때 유대인들이 대답했다. “페트로니우스시여, 당신이 가이우스의 명령에 거역해서는 안된다고 하듯이 우리도 율법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율법을 거역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우리 조상들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는 것이 두려워서 율법이 금지하는 일들을 행하는 사악함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율법은 그렇게 하는 우리의 선한 행위에 유익을 줄것입니다. 우리는 조상 전래의 율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비록 위험이 닥칠지라도 기꺼이 견디어 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영광을 위해서 위험도 감수한다면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총독에게 복종한다면 목숨이 아까워 율법을 반역하는 겁쟁이라는 비난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무서운 진노를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당신 보기에도 하느님은 가이우스보다 훨씬 강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 디베랴에 있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유대인들이 청원하다


    [㈜ 페트로니우스에 대한 이러한 언급(고대. 18권. 8 : 3-6(269~288)은 전쟁. 2권. 10 : 3-5(192~202)와 병행되고 있다.]


     페트로니우스는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결심을 돌이키기에는 쉽지 않으며 전쟁을 하지 않고는 가이우스의 상을 세우라는가이우스의 명령을 실행하기가 어려움을 알았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살육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을 모아놓고 유대인들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디베랴(Tiberias)로갔다. 유대인들은 로마인들과 전쟁의 위험을 안고서라도 율법에 거역하지 않으려 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디베랴에 도착한 페트로니우스에게 모였다. 그들은 간청하기를 가이우스의 상을 세움으로써 우리를 그러한 재난에 빠뜨리지 않고 또 도시를 오염시키지 말도록 간청했다. 그러자 페트로니우스는 “그렇다면 그대들이 황제와 전쟁을 할 것인가, 로마군은 부족함 없이 완전무장 했고 그대들은 보잘것 없지 않은가[㈜ 같은 말인, “그러면 너는 가이사와 전쟁을 하러 가겠느냐’라는 말이 전쟁. 2권. 10 : 4(196)에서의 병행구에서도 발견된다.]“라고 말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황제를 대항해서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그들은 이와같이 말하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목을 길게 늘어 뜨리고 기꺼이 죽겠노라고 울부짖었다.[㈜ 참). 고대. 18권. 3 : 1(59)에 있는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간청하는 말고 비슷 한 구절.] 그들은 40일[㈜ 전. 2권. 10 : 5(200)에 있는 병행구에 따르면 50이다.] 동안이나 이런식으로 탄원했다. 그러는 동안에 땅을 경작하고 씨를 뿌리는 일을 등한시했다.[㈜ 필로는, ‘Leg.’ 249에서 서 이 사건을 추수 때로 본다.] 그들은 확고한 결심을 보여주었으며 성전에 상이 서는 것을 보기 보다는 죽는 것을 선택했다.


    4. 아리스토불루스와 그의 지도자들이 유대인의 호소에 동참하다


     이런 상황이 전개될 때 아그립바왕의 형제인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 헬키아스 장로(Helcias the Elder)[㈜ 고대. 19권. 8 : 3(353)에서는 장관이며 아그립바왕의 친구로 언급되어 있다. 아그립바왕이 죽은 후에 헬키아스(Helcias)는 칼키스(Chalcis)의 지배자였던 헤롯과 음모하여 그들의 적인 아그립바왕의 장군 실라스(Silas)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는 분명히 성(性)이 헬키아스인 알렉사스(Alexas)와 동일인이다. 알렉사스는 고대. 18권. 5 : 4(138)에서, 대헤롯의 딸 키프로스의 딸인 키프로스(어머니와 이름이 같음-역자 주)의 남편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집안의 유력인사들이 페트로니우스를 찾아가서 총독도 유대인들의 단호한 결심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궁지로 몰아 넣지 말고 황제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편지를 써 주도록 호소했다. 그 내용으로는 유대인들이 황제의 상을 성전에 들여 놓은 것을 반대하고 있으며 그들은 이것을 반대하고 모여 있는 바람에 농사짓는 것도 포기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황제께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과 또 그들의 율법에 반역하기 보다는 기꺼이 죽음을 택할 자세가 되어 있고,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 못해 도적떼들이 급증하고 있다는것들이다. 유대인들은 가이우스가 이러한 사실을 알면 마음이누그러지면서, 유대민족을 말살하려는 잔인한 계획을 취소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황제가 전쟁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때 페트로니우스가 무력을 사용해도 늦지 않을 것임을 간청했다. 아리스토불루스와 그 동료들이 페트로니우스에게 이와같이 호소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들어 여러 방면으로 효과적인 간청과 때로는 압력을 넣었다. 페트로니우스는 유대인들의 굽히지 않는 의지를 보았고, 황제의 명령대로 하다 가는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려야 했으며, 하느님을 경외하는 그들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의 생명도 위태롭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페트로니우스는 가이우스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하고, 곧바로 황제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함으로써 야기되는 황제의 냉혹한 분노를 감수하기로 했다.[㈜ 고대. 18권. 8 “5(270-283)으로부터 그 의미는 명확할지라도, 본문은 매우 불확실하다. 나는 페터슨(petersen)교수의 교정안을 받아들였다. 만약 ‘그들의'(aujtw’n)이란 것이 될 수 있다면 “회복되지 못하도록 편지를 가이우스에게 보내는 것”이 될 것이다.] 어쩌면 황제를 납득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만약 가이우스가 광기서린 그의 계획을 계속 고집한다면 그때 유대인들과 전쟁을 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또 가이우스가 페트로니우스에게 분노를 해서 수많은 군중들 대신 자신이죽는다면 그것도 뜻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페트로니우스는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5. [페트로니우스가 유대인들에게 행한 연설]


     페트로니우스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디베랴(Tiberias)에 모아놓고, 현재의 이러한 계획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황제의 명령이었음을 설명하고,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즉각 처형하라 했다고 말했다. “황제의 은혜로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오른 나로서는 당연히 복종해야만 한다. 그러나 내 자신의 안전과 지위만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다는것은 옳치 않다. 당신들은 생명까지 바쳐서라도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기에, 나는 전능하신 하느님에 의지하여 당신들의 성전이 황제의 오만한 권위에 희생되는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내가 가이우스에게 사람을 보내어 당신들의 마음을 잘 설명해서 당신들이 제안한 선한 것들이 받아 들여질 수 있도록[㈜ 또는(허드슨과 함께) “네가 제안한 좋은 논증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너의 이유를 옹호활 수 있도록”으로 될 수 있다. 포스트(Post)교수는 @upevr tou’ kaq! uma'” mh; para; gnwvmhn peisovmvenou라는 기록을, “너의 판단과 도덕적인 원칙들에 반대해서 순종하기를 거부한 너를 옹호하기 위해서 너의 지지자로서 행동하는”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노력해 보겠다. 하느님은 사람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당신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있으시길 바란다. 인간의 변덕스러운 음모가 있을지라도 하느님은 당신들의 율법을 지켜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가이우스가 분노해서 나에게 분풀이를한다면, 지극히 도적적인 행위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나의 신상과 자리에[㈜ 다른 사본에는 “영혼”으로 나와 있다.]까지 영향줄지 모를 어떠한 위험과 고통도 감수할 것이다. 그러니 각자 돌아 가서 자기 일에 충실하라. 로마에 사람을 보내어 힘껏 그리고 친구들의 힘을 빌어서라도 당신들을 도와주겠다.”


     6. 하느님께서 섭리로 내려주신 비가 유대인들을 고무시키다


     이말을 마친 후에 페트로니우스는 유대인들을 좋은 말로 설득시키고 해산시켜서 생업에 종사하도록 했다. 그는 군중들에게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느님께서는 페트로니우스에게 함께 하실 것과 모든 것을 도와주실 것을 보여 주셨다.[㈜ 사본들에는 “하느님께서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숨김없이 보여주었다”라고 되어 있다.] 페트로니우스가 유대인들에게 이말을 마치자마자, 하느님은 곧바로 소낙비를 내려주셨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맑았으며, 비가올 낌새가 전혀 없어서 비가 온다는 것은 일반적인 이해의 범주를 넘는 것이었다. 더구나 1년내내 가뭄이 심해서 구름 낀 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비가오지 않아 실망을 하던 때였다. 이럴 때예상하지 않게 많은 비가 내리자[㈜ 이러한 소나기에 대한 언급은, 병행구절인 전쟁. 2권. 10 : 5(199~202)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페트로니우스가황제에게 간청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페트로니우스로서는 이 놀라운 일을 통해 하느님의 도우심이 유대인들 위에 있고 하느님의 현존을 확실히 보았으므로 크게 놀랐으며, 반대의 견해를[㈜ 즉, 하느님은 유대인에게 호의적이 아니었다는 것.] 가지고 논쟁을 하려던 사람들도모두 놀랐다. 페트로니우스는 가이우스에게 쓰는 글에 이 놀라운 사건도 덧붙였다.[㈜ 비록 그 의미는 명확할지라도 이 문장에는 구문이 빠진 것으로 나타난다.] 그의 편지는 가이우스를 설득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작성되었다. 즉, 만약 그가 유대인들을 죽인다면-유대인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느님을 경배하는 풍습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국가 수입이 줄어들것이며 앞으로 계속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더구나 유대인들을 책임지고 있는 하느님이 신비한 힘을 보여 주셨고 우리는 확실히 보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내용으로 페트로니우스는 가이우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7. 로마에 있는 아그립바가 가이우스의 총애를 받다


     한편 로마에 있던 아그립바왕은[㈜ 필로의 ‘Leg.’ 276~329에서 아그립바는 페트로니우스에게로의 황제의 명령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그 명령에 관해서 칼리굴라 자신으로부터 안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몹시 당황하며 기절하게 된다. 회복된 후에 그는 그의 전임자의 예를 따르고 유대인에게 관용을 보이라고 재촉하는 황제에게 긴 글을 써보낸다. 그곳에는 에스더 7장을 생각나게 하는 배경의 향연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에스더 7장에서 에스더는 그녀에게 왕국의 반이라도 주려고 하는 아하수에로(Ahasuerus)왕에게 그녀의 백성을 위해서 탄원을 한다.] 가이우스와 매우 가까워졌다. 한번은 아그립바가 가이우스를 위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연회를 준비하는 내용에서 보나, 황제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준비한 것을 보나, 어떤 다른 사람보다 능가하는 연회였다. 그날 연회는 말할 것 없이 성공적이었고 가이우스도 똑같은 마음으로아그립바를 대해 주려 했던 것이다. 아그립바는 준비하는 것이나 황제를 위해 하는 모든 것에서 어떤 사람보다도 뛰어나게 했다. 가이우스는 아그립바가 자기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많은돈을 들여 기발하고, 웅대하고, 극진하게 준비한 것에 감탄하였다. 그래서 가이우스는 아그립바가 자신에게 한 것만큼 해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가이우스는 연회를 즐기던 중 취기가 약간돌자 평소보다 흥이 나서 자기에게 술을 권하는 아그립바에게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그립바, 당신이 내게 보여준 경의에 대해서는 전부터 잘 알고 있었소. 당신이 디베료 황제로 인해 고통받아 생명이 위태로울 때에도 내게 지극한 충성을 보여주었소.당신은 힘에 넘치도록 내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소. 당신이 내게열심으로 충성한 것에 대해 감동을 받아 과거의 나의 무성의함을 떠나 이제 무엇인가 보상하고 싶소. 전에 당신에게 베푼 나의은총은 참으로 보잘것 없었소. 당신에게 커다란 행운을 안겨주기 위해 마음과 힘을 다해 도와줄 것이오.” 가이우스는 아그립바가 어떤 영토나 도시의 세금수입을 요구할 것으로 알고 이와같은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이미 요구사항을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도를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아그립바는 가이우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디베료의 명령에 불복종 하면서까지 황제께 경의를 표한 것은 황제로부터 어떤 유익을 기대하고 한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황제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제께서 이미 저에게 베푸신 은총은 그야말로 제가 감당할 수 없이 크고 깊은 것입니다. 황제께서는 최소한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제게는 과분할뿐입니다.” 아그립바의 이러한 말에 더욱 감탄한 가이우스에게 아그립바는 이렇게 청원했다. “황제 폐하, 제게 친절을 베푸사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지만 이미 제게 베푼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저의 영달과 영욕을 위해서는 간청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께서 하시는 일이 신의 은총을 입을 수 있고, 또 황제의 경건성이 알려질 수 있는 어떤 것을 부탁드리려 합니다. 그것은 제게도 영예로운 것입니다. 황제께서는 제가 부탁하는 어떤것도 결코 거절하는 적이 없음을 믿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부탁하옵기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유대인의 성전에 당신의 상을 세우라고 명령하신 것을 포기하시기를 원합니다.”


    8. 아그립바가 가이우스에게 신전에 상을 세우는 일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다


     아그립바는 그 일의 중요성에 비추어 보아 이러한 간청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면서도 모험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만일 가이우스가 그에게 호의가 없었다면 아그립바는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가이우스는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말한 바가있어서 아그립바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가이우스는 그러한 제의를 한 것을 후회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약속을 깰수가 없었고 또 아그립바가 요구하도록 강요하다시피 한것이라서 들어준 것이다. 동시에 가이우스는 아그랍바가 개인적인 영달이나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과 종교를 우선하여 공공의 행복을 위하는 그의 성품에 감탄한 것이다. 그래서 가이우스는 그 일을 포기하고 군대를 소집시켜 파송했던 페트로니우스에게 다음날 편지를 했다. “성전에 이미 내 상을 세웠으면 그대로 두시오.[㈜ 클레멘츠(H.Clementz)는 그외 요세푸스의 독일어 번역에서, 그 의미는 “그것을 세우지 말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외에는 아그립바에 대한 가이우스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상을 세우려는 더 이상의 생각을 가이우스가 버리도록 요청했기 때문에 가이우스는 궤변적으로 페트로니우스에게 보낸 메시지는 그 약속에 부합되는 것이며 아그립바는 그 상을 제거하도록 요청을 하지 않았다 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세우지 않았으면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군대를 해산시키고, 내가 처음에 그대를 파송하면서시켰던 그 일에만 열중하시오. 더이상 상을 세우려하지 마시오.일이 이렇게 된것은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아끼는아그립바에게 호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오. “가이우스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이러한 글을 썼는데 이는 페트로니우스의 편지가도착하기 전이었다. 페트로니우스는 황제에게 편지하기를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는데[㈜ 그 본문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만약 발췌문의 기록을 받아들인다면 그 의미는 “유대인들이 이미 폭동을 일으킬 결심을 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페트로니우스의 편지를 읽기 전에”라는 것이 될 것이다. ] 그들의 태도는 로마에 대항하는 전쟁과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편지를 받은 가이우스는 유대인들이 감히 그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언짢았다. 가이우스는 언제나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에게는 잔혹하게 대했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이우스는 페트로니우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했다. “너는 유대인들이 너에게 준 뇌물에만 급급하여 나의 명령을 소홀히 하고 나의 명령을 어기면서 기뻐하는 유대인들의 비위나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네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하도록·하고 네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도록 하라. 너에게 확고히 말하노니 너는 황제의 명령은 결코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금과 앞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하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전쟁, 에서의 병행구절에서는 칼리굴라와 함깨 한 아그립바의 중재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어 있으며, 단지 가이우스의 명령들을 페트로니우스가 늦게 실행하는데 대해서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가이우스의 화난 대답을 언급한다(2권. 203).]


     9. 황제의 사형선고에 대한 페트로니우스의 행운


     황제가 페트로니우스에게 이와같은 편지를 썼는데 페트로니우스는 가이우스가 죽은 이후에나 편지를 받아 보았다. 그 이유는 그 편지를 가진 사람들의 항해가 연기되었고 편지가 페트로니우스에게 전달되기 전에 가이우스 황제가 죽었다는[㈜ 가이우스는 주후 41년 1월 24일에 죽었다. 병행구절인 전쟁. 2권. 10 : 5(203)에 따르면 페트로니우스에게 보내는 가이우스 편지률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날씨에 묶여서 바다 위에 3개월 동안 있었고 가이우스의 죽음의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들보다 27일 후에 도착했다. ] 소식이먼저 페트로니우스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유대인들과 하느님의 영예를 위해서 호의를 베푼 페트로니우스를 기억하신 연고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교만해져서 분별력이없이 신처럼 경배틀 받으려고 한 가이우스를 제거함으로써 하느님께서 페트로니우스에게 진 빚을 갚아주신 것이었다. 사실, 로마 제국사람들 특히 원로원들은 페트로니우스에 동조했는데 이는 가이우스가 무자비하게 그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기 때문이었다. 가이우스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자결하라고 편지를 한 후 얼마있다가 죽은 것이다.[㈜ 병행구절인 전쟁. 2권. 10 : 5(203)에서는 가이우스가 단지 페트로니우스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가이우스가 죽게된 동기와 그 음모가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글을 써나가면서 밝히려 한다.[㈜ 고대. 19권. 1 : 2-15(15-114).] 페트로니우스가 가이우스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먼저 받고 조금 후에 페트로니우스에게 자결하라는 명령을 담은 편지를 받았다. 페트로니우스에게 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곧 가이우스가 죽자 페트로니우스는 기뻐했으며,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성전의 명예를 지켜준데 대해 곧바로 보답을 해주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해서 페트로니우스에게 닥친 죽음의 재난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쉽게 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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