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권 제 3장 파프티아 왕 아르타바누스가 신하들이 비밀리에 음모를 꾸미는 것이 두려워 이자테스에게 간 것과 이자테스가 그의 왕권을 강화시켜 주었으며 그의 아들 바르다네스가 이자테스에게 선전포고한 것에 대하여

 


제 3 장



파프티아 왕 아르타바누스가 신하들이 비밀리에 음모를 꾸미는 것이 두려워 이자테스에게 간 것과 이자테스가 그의 왕권을 강화시켜 주었으며 그의 아들 바르다네스가 이자테스에게 선전포고한 것에 대하여



 1. 파르티아(Parthia)왕 아르타바누스(Artabanus)가 이자테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파르티아의 왕 아르타바누스(Artabanus)는[㈜ 아르타바누스Ⅲ세(Artabanus Ⅲ), 참). 고대. 18권. 2 : 4(48-52), 4 : 4, 5(96-104), 7 : 2(250), 9 : 3, 4, 6(325-338, 353), 20권. (37).] 지방 총독들이 반역을 도모하는 것을 알고 자신이 그들 사이에서 존속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자테스의 도움으로 자신을 보호할 어떤 방법을 강구하기를 바라면서, 또 가능하다면 자신의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자테스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아르타바누스는 천명 정도의 친척들과 종들을 데리고 이자테스에게로 향하다가 중도에서 이자테스를 만났다.아르타바누스는 이자테스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자테스는 아르타바누스를 몰랐다. 아르타바누스는 이자테스에게 가까이 다가선 후 먼저 풍습에 따라서 그에게 절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오 왕이시여! 당신의 종을 못본 채 마시고 내가 하는 청원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운명(運命)의 변화로 하루 아침에 왕에서 평민으로 전락되어 이와같이 왕의 도움을 청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운명의 무상(無常)함을 살피셔서 나를 돌보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만일 내가 홀대받고 모반자들이 처벌되지 않는다면 많은 다른 백성들은 다른 왕들에 대해서도 더욱무례할 것입니다.\” 아르타바누스가 눈물을 흘리면서 낙심한 얼글로 이와같이 말하였다. 이자테스는 아르타바누스의 이름을 듣고 앞에 탄원자로 서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즉시 말에서 내려 아르타바누스에게 말하기를 \”오 왕이시여!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상황이 회복될 수 없는 것처럼 현재의 재난에 불안해 하지마십시오. 당신의 비참한 상황의 변화가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나는 더욱 당신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바라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내가 파르티아의 왕권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나 또한 파멸될 것입니다,\”



2. 이자테스가 파르티아인들을 설득하여 아르타바누스의 왕권을 회복시키다



 이자테스왕은 이같이 말하고 아르타바누스가 자신보다 위대하다는 경의의 표시로 아르타바누스를 말에 태우고 자신은 그뒤를 따라 걸었다. 이에 아르타바누스는 마음이 편치 않아 이자테스왕에게 다시 말을 타고 또 자기보다 앞서 가지 않는 한 말에서 자신은 내릴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자테스왕은 이와같은 그의 간청에 못이겨 말에 올라탔다. 이자테스왕은 아르타바누스왕을 자신의 왕궁으로 데려간 후 베풀 수 있는 모든 경의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현재의 운명이 아니라 이전의 이자테스의.]위엄을 고려하여 그리고 운명의 우여곡절이 어느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일임을 생각하여 연회에서 아르타바누스를 상석에 앉혔다. 또한그는 파르티아인들에게 아르타바누스왕을 다시 받아 들일 것을 권유하기 위하여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은 이자테스왕이 과거의 일을 잊어 버리고 아르타바누스왕과 파르티아인들 사이의 중재자로서 이 일을 시작할 것을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어 맹세한다는 것이었다. 파프티아인들은 아르타바누스를 받아 들이는 것을 거절하지는 않았으나 지금 그들의 힘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탄원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킨나무스(Cinnamus)라고[㈜ 주후 약 37년경. 키나모스(Kivnnamo\”)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McCown-Albright, \’Bull. of the Am. Sch. of Or. Res.\’ 1xvi. Apr. 1937, p.20을 보라.]하는 다른 한 사람에게 왕권을 맡겼고, 이러한 연유로 내란이 일어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킨나무스는 파르티아인들의 의도를 알아 차리고 아르타바누스왕에게 편지를 썼다. 왜냐하면 킨나무스는 아르타바누스왕에 의해 양육을 받았고 본래 착하고 온유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기를 신뢰해 줄 것과 돌아와서 다시왕위를 차지할 것을 아르타바누스왕에게 요청하였다. 이에 아르타바누스왕은 그를 신뢰하여 귀국하였다. 킨나무스가 아르타바누스왕을 영접하여 그에게 절하고 왕으로서 맞이하였다. 그리고는 광관을 벗어서 아르타바누스왕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3. 이자테스가 보상을 받다



 이렇게 하여 아르타바누스왕은 왕국의 고관들에 의해 왕권을 잃었을 때 이자테스왕의 도움으로[㈜ \”이자테스의 도움을 통하여\”에 대해서 두 개의 사본과 발췌문은 \”6년 후\”라고 나온다.] 왕권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아르타바누스왕은 이자테스왕이 베푼 은혜를 잊어버릴 수 없어서 가장 큰 존경에 해당하는 영예로서 보답하였다.아르타바누스왕은 수직 두건을[㈜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Birds\’ 487에서 비슷하게 똑바로 된 바사왕들의 관(冠, kurbasiva)을 이야기하고 있다. 참). Xenophon, \’Anab\’, ii. 5. 23. 이곳에서 티사페르네스(Tissaphernes)는 \”그 왕만이 머리 위에 그 관을 똑바로 쓰게 되었지만, 다른 이들은 당신의 도움으로 또한 마음 위에 그 관을 쉽게 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리하여 그는 헬라인들의 도움으로 사실상 혹은 아마도 실제적으로 왕적인 권위를 소유할 것임을 지시하는데, 왕적인 권위에 대한 것이 혁명의 기미(氣味)가 될 것이다.] 쓰는 것과 금으로 된 침상에서자는 것을 이자테스왕에게 허용했는데, 이것은 파르티아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특권으로 최고의 영예의 표시였다. 그는또한 아르메니아(Armenia)왕으로부터 받은 크고 비옥한 땅을나누어 이자테스왕에게 선사했다. 그 땅의 이름은 니시비스(Nisibis)인데[㈜ 명백히 고대. 18권. 9 : 1(312), 9 :9(379)의 니시비스(Nisibis)와는 구분됨. 스텀(J. Sturm)은, \’Nisibis\’, no. 3, Pauly-Wissowa, xvii, 1936, p.757에서 이 니시비스는 또한 바벨론 북동쪽에 있는 좀 더 알려진 니시비스와도 구분된다. 그러니 에피미] 마게도냐인들(Macedonians)이 이전에 에피미그도니아(Epimygdonia) 도니아(Epimygdonia)라는 명칭은 그 둘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니시비스라고 불리는 지역은 다른 방식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참). 그것을 미그도니아(Mygdonia)에 있는 안티오케이아(Antiocheia)라 언급하는 사람은 폴리비우스(Polybius, v. 51. 1)와 스트라보(Strabo xxi. 747)이다. 스텀(J. Sturm)의 \’Nixibis\’, Pauly-Wissowa, xvii. 1936, pp.727-730을 보라. ]라고 하는 안디옥(Andioch)이라는도시를 이 지역에 세웠다. 이러한 것들이 파르티아 왕에 의해 이자테스왕에게 베풀어진 경의의 표시였다.



 4. 아르타바누스의 후임 바르다네흐(Vardanes)가 로마와의 전쟁을 위한 이자테스의 협력을 얻지 못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38년경.] 아르타바누스왕은 죽었고 그의 아들바르다네스(Bardanes)에게 왕권이 넘어갔다. 이 바르다네스왕은[㈜ 타키투스(Tacitus)는 \’연대기\’ xi.8에서 아르타바누스(Artabanus)는 고타르제스(Gotarzes) Ⅱ세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고타르제스 Ⅱ세는 자기 동생 바르다네스(Vardanes)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말한다. 요세푸스는 고타르제스(혹은 코타르데스, Cotardes)가 바르다네스를 계승한다고 한다. 따라서 앤더슨(J.G.C.Anderson)은 \’Camb. Anc. Hit.\’ x. 1934, p.754 주1에서 요세푸스의 설명이 부정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타키투스 (Tacitus)와 요세푸스(Josephys)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바르다네스가 살해되었을 때, 고타르제스는 다시 한번 왕위를 생각했기 때문이다(타키투스, \’연대기\’ xi.10). 따라서 요세푸스가 고타르제스의 첫 왕위 기간을 단순히 생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이러한 생략은 요세푸스의 설명이 아주 간결하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해할 만하다. 더구나 고타르제스의 첫 번째 재위 기간 동안 바르다네스와 거의 즉각적으로 항쟁을 했고, 바르다네스가 도착한 후에는 고타르제스가 왕권에 대한 그의 주장을 철회하여 바르다네스와 협정을 맺게 되었기 때문이다(타키투스스, \’연대기\’, xi.9) 요세푸스는 실제 통치가 아닌 왕권을 주장한 고타르제스의 첫 번째 기간을 생략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44/45-45/46년 동안의 화폐로 본 증거는 타키투스가 이 기간 동안의 파르티아(Parthia)통치를 위한 싸움을 서술하는데 있어 더 완전한 설명을 하고 있음을 지적해 준다. 셀류키아(Seleucia)에서 우리는 고타르제스의 화폐들을 발견했는데, 한달 후 바르다네스의 화폐, 여섯 달 후 고타르제스의 화폐, 그후 세 달 후에는 다시 바르단스의 화폐들, 그리고 아홉 달 후에는 고타르제스의 화폐였다(R.H.McDowell, \’Coins from Seleucia on the Tigris;, 1935, pp.189-190을보라).] 이자테스왕에게 와서 군사동맹을 하여 로마와 치룰 전쟁에 자기를 도와 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바르다네스는 이자테스를 설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자테스는 로마의 힘과 행운을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이자테스는 이루기 불가능한 것을 바르다네스가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대. 20권. 6 : 1(119).] 이자테스의 모친이 성전에 예배하러갔을 뿐만 아니라 유대 학문과 더불어 유대 언어를 정확하게 배우기 위하여 다섯 명의 어린 아들을 보내었기 때문에 더욱 응하기 싫어했다. 이자테스는 로마의 막강한 군대와 뛰어난 전투력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함으로써 바르다네스를 제지하려 했다.또한 그렇게 하여 바르다네스왕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유발시켜 원정을 막고자 하였다. 그러나 파르티아 왕은 이와같은 이자테스왕의 행위에 화가 나서는 즉시 이자테스왕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하였다.[㈜ 바르다네스에 대한 이자테스의 도전은 그가 자기 적들에게 공포를 주었다는 점에서 볼 때 아주 주목할 만한 것이다. 참). 타키투스의 그의 능력에 대한 찬사(\’연대기\’ xi. 10) : \”그는 그의 적들에 의해 두려움의 대상이 된 만큼, 자기 부하들에게 사랑받기를 노력했다면 나이 든 통치자들 사이에서 몇 안되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르다네스왕은 하느님께서 모든 희망을 차단하셨기 때문에 이 전쟁으로 어떠한 이점도 얻지 못했다. 그것은 파르티아인들이 바르다네스왕의 의도와 로마와 전쟁을일으키기로 결정했었다는 것을 알고서 바르다네스왕을 살해하고[㈜ 타키투스는 \’연대기\’ xi. 10에서 바르다네스가 많은 승리를 거두어서, 파르티아인들이 기념비를 세워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르티아인들은 그가 멀리서 통치하는 것에 대해서와 바르다네스가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도 자기들을 향한 오만함과 독재적 태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에 음모가 계획되었고 바르다네스가 사냥하는 동안 그를 살해하였다. 바사의 전체 역사를 담고 있는 피르두시(Firdousi)의 10세기 서사시 \’Sh?hn?ma,\’ 즉 \’왕들의 책\'(Book of Kings)은 파루드(Farud=바르다네스)가 구다르즈(Gudarz, 고타르제스와 관계를 맺고 있던 비잔(Bizan)과 라한(Rahan)에 의해 실제로 죽임을 당하였다는 전승을 보존하고 있다. 코야지(J.C.Coyajee)의 논문 \”The House of Gotarzes,\”가 수록된 \’Jour. and Proc. of the Asiatic Soc. of Bengal,\’ N.S. xxviii, 1932, p.211을 보라.] 형제 코다르데스(Cotardes)에게 왕권을 넘겨 주었다.[㈜ 즉, 고타르제스. 타키투스는 \’연대기\’ xii, 10에서 고타르제스는 귀족이나 평민 모두를 무자비하게 다루었다고 서술한다. 그는 말하기를. \”이미 형제들, 친척들, 그리고 먼 친척들이 연속된 살인으로 제거되었다. 사실 임신한 부인들과 온순한 어린이들은 추가로 고타르제스의 희생자가 되었다. 반면에 그는 집에서 게으름을 피웠으며, 전쟁에서는 실패했고, 자기의 연약함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잔인하게 행동했다. 요세푸스는 바르다네스가 살해된 후에는 고타르제스와 메헤르다테스(Meherdates) 사이의 왕좌 경쟁을 생략한다. 타키투스의 연대기 xii. 13에 의하면 이 경쟁에 있어 이자테스는 메헤르다테스와 동맹을 맺었지만 은밀히 고타르제스를 지지했으며, 두 경쟁자 사이에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결정적인 전투가 있기 전에 고타르제스를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시 오래지 않아 반란 음모에 의해[㈜ 타키투스는 \’연대기\’ xii. 14에서 어떤 음모도 말하는것 없이 단지 고타르제스는 병들어 누워 죽었다고 말한다.] 살해되었고 고르타제스의 뒤를 이은 그의 형제[㈜ 타키투스의 \’연대기\’ xii.14에 의하면 볼로게세스(Vologeses)는 보노네스(vonones)의 아들이었다.] 볼로게세스(Vologeses)는[㈜ 이것이 보통 사용하는 철자이다. 그러나 그의 화폐에서는 그 이름이 볼라가세스(Volagases)로 나타난다 참). 전쟁. 7권. 5 : 2(105), 이곳에는 그로부터 온 한 대표가 유대인에 대한 베스파시안(Vespasian)의 승리를 인정하는 뜻으로 그에게 황금 왕관을 가져다 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 전쟁. 7권. 7 : 2(237), 7 : 3(242)에 의하면 요세푸스는 보노네스의 통치에 대한 설명을 빠뜨리고 있는데, 보노네스는 타키투스의 연대기 vii. 14에 의하면 고타르제스의 계승자였다. 그러나 타키투스는 직접 보노네스의 통치는 짧았고 불명예스러웠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파르티아인들의 복잡한 왕조 다툼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드브보아스(N.C.Debevoise)가 \’A Political History of Parthia,\’ 1938, p.174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통치 기간 중 어떤 화폐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보노네스를 생략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같은 아버지에게서 난 형제들 중 두명에게[㈜ 또한 타키투스는 \’연대기\’ xii. 44에서 볼로게세스가 그의 형제들의 동의를 얻어 왕위를 획득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영토를 맡겼다. 즉 메대(Media)를 형인 파코루스(Pacorus)에게,[㈜ 타키투스의 \’연대기\’ xv.2에 의하면 파코루스는 볼로게세스가 왕이 되었을 때, 이미 메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참). 전쟁. 7권. 7 : 4(247)에 보면 그는 자기 나라에서 도망쳐 스구디아(Scythia) 부족, 알라니(Alani)에게로 간다.] 아르메니아(Armenia)를 동생 티리다테스(Tiridates)에게[㈜ 참). Dio. 1xii(1xiii), 4 이하의 인상적인 장면. 그곳에서 네로(Nero)는 그를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선포한다. 타키투스는 \’연대기\’ xii50-51에서 아르메니아 침략을 통해 티리다테스가 왕권을 차지하게 하려는 볼로게세스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말하고 있다. 참). \’연대기\’ xv. 2에서 티리다테스가 그를 부추켜 온 후에도, 볼로게세스는 아르메니아를 압박하지 않음으로 그의 유유부단한 태도를 방어해 주는데, 아르메니아는 그가 인정하듯이,(요세푸스에 의해 여기에 언급된 것처럼 힘있는 위치가 아니라) 단지 세 번째 왕국에 불과했다. 전쟁. 7권. 7 : 4(249)에서 아르메니아 통치권을 가까스로 얻은 티리다테스는 알라니인들에 의해 격퇴되었다.] 각각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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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권 제 3장 파프티아 왕 아르타바누스가 신하들이 비밀리에 음모를 꾸미는 것이 두려워 이자테스에게 간 것과 이자테스가 그의 왕권을 강화시켜 주었으며 그의 아들 바르다네스가 이자테스에게 선전포고한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3 장


    파프티아 왕 아르타바누스가 신하들이 비밀리에 음모를 꾸미는 것이 두려워 이자테스에게 간 것과 이자테스가 그의 왕권을 강화시켜 주었으며 그의 아들 바르다네스가 이자테스에게 선전포고한 것에 대하여


     1. 파르티아(Parthia)왕 아르타바누스(Artabanus)가 이자테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파르티아의 왕 아르타바누스(Artabanus)는[㈜ 아르타바누스Ⅲ세(Artabanus Ⅲ), 참). 고대. 18권. 2 : 4(48-52), 4 : 4, 5(96-104), 7 : 2(250), 9 : 3, 4, 6(325-338, 353), 20권. (37).] 지방 총독들이 반역을 도모하는 것을 알고 자신이 그들 사이에서 존속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자테스의 도움으로 자신을 보호할 어떤 방법을 강구하기를 바라면서, 또 가능하다면 자신의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자테스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아르타바누스는 천명 정도의 친척들과 종들을 데리고 이자테스에게로 향하다가 중도에서 이자테스를 만났다.아르타바누스는 이자테스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자테스는 아르타바누스를 몰랐다. 아르타바누스는 이자테스에게 가까이 다가선 후 먼저 풍습에 따라서 그에게 절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오 왕이시여! 당신의 종을 못본 채 마시고 내가 하는 청원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운명(運命)의 변화로 하루 아침에 왕에서 평민으로 전락되어 이와같이 왕의 도움을 청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운명의 무상(無常)함을 살피셔서 나를 돌보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만일 내가 홀대받고 모반자들이 처벌되지 않는다면 많은 다른 백성들은 다른 왕들에 대해서도 더욱무례할 것입니다.” 아르타바누스가 눈물을 흘리면서 낙심한 얼글로 이와같이 말하였다. 이자테스는 아르타바누스의 이름을 듣고 앞에 탄원자로 서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즉시 말에서 내려 아르타바누스에게 말하기를 “오 왕이시여!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상황이 회복될 수 없는 것처럼 현재의 재난에 불안해 하지마십시오. 당신의 비참한 상황의 변화가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나는 더욱 당신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바라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내가 파르티아의 왕권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나 또한 파멸될 것입니다,”


    2. 이자테스가 파르티아인들을 설득하여 아르타바누스의 왕권을 회복시키다


     이자테스왕은 이같이 말하고 아르타바누스가 자신보다 위대하다는 경의의 표시로 아르타바누스를 말에 태우고 자신은 그뒤를 따라 걸었다. 이에 아르타바누스는 마음이 편치 않아 이자테스왕에게 다시 말을 타고 또 자기보다 앞서 가지 않는 한 말에서 자신은 내릴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자테스왕은 이와같은 그의 간청에 못이겨 말에 올라탔다. 이자테스왕은 아르타바누스왕을 자신의 왕궁으로 데려간 후 베풀 수 있는 모든 경의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현재의 운명이 아니라 이전의 이자테스의.]위엄을 고려하여 그리고 운명의 우여곡절이 어느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일임을 생각하여 연회에서 아르타바누스를 상석에 앉혔다. 또한그는 파르티아인들에게 아르타바누스왕을 다시 받아 들일 것을 권유하기 위하여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은 이자테스왕이 과거의 일을 잊어 버리고 아르타바누스왕과 파르티아인들 사이의 중재자로서 이 일을 시작할 것을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어 맹세한다는 것이었다. 파프티아인들은 아르타바누스를 받아 들이는 것을 거절하지는 않았으나 지금 그들의 힘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탄원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킨나무스(Cinnamus)라고[㈜ 주후 약 37년경. 키나모스(Kivnnamo”)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McCown-Albright, ‘Bull. of the Am. Sch. of Or. Res.’ 1xvi. Apr. 1937, p.20을 보라.]하는 다른 한 사람에게 왕권을 맡겼고, 이러한 연유로 내란이 일어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킨나무스는 파르티아인들의 의도를 알아 차리고 아르타바누스왕에게 편지를 썼다. 왜냐하면 킨나무스는 아르타바누스왕에 의해 양육을 받았고 본래 착하고 온유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기를 신뢰해 줄 것과 돌아와서 다시왕위를 차지할 것을 아르타바누스왕에게 요청하였다. 이에 아르타바누스왕은 그를 신뢰하여 귀국하였다. 킨나무스가 아르타바누스왕을 영접하여 그에게 절하고 왕으로서 맞이하였다. 그리고는 광관을 벗어서 아르타바누스왕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3. 이자테스가 보상을 받다


     이렇게 하여 아르타바누스왕은 왕국의 고관들에 의해 왕권을 잃었을 때 이자테스왕의 도움으로[㈜ “이자테스의 도움을 통하여”에 대해서 두 개의 사본과 발췌문은 “6년 후”라고 나온다.] 왕권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아르타바누스왕은 이자테스왕이 베푼 은혜를 잊어버릴 수 없어서 가장 큰 존경에 해당하는 영예로서 보답하였다.아르타바누스왕은 수직 두건을[㈜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Birds’ 487에서 비슷하게 똑바로 된 바사왕들의 관(冠, kurbasiva)을 이야기하고 있다. 참). Xenophon, ‘Anab’, ii. 5. 23. 이곳에서 티사페르네스(Tissaphernes)는 “그 왕만이 머리 위에 그 관을 똑바로 쓰게 되었지만, 다른 이들은 당신의 도움으로 또한 마음 위에 그 관을 쉽게 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리하여 그는 헬라인들의 도움으로 사실상 혹은 아마도 실제적으로 왕적인 권위를 소유할 것임을 지시하는데, 왕적인 권위에 대한 것이 혁명의 기미(氣味)가 될 것이다.] 쓰는 것과 금으로 된 침상에서자는 것을 이자테스왕에게 허용했는데, 이것은 파르티아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특권으로 최고의 영예의 표시였다. 그는또한 아르메니아(Armenia)왕으로부터 받은 크고 비옥한 땅을나누어 이자테스왕에게 선사했다. 그 땅의 이름은 니시비스(Nisibis)인데[㈜ 명백히 고대. 18권. 9 : 1(312), 9 :9(379)의 니시비스(Nisibis)와는 구분됨. 스텀(J. Sturm)은, ‘Nisibis’, no. 3, Pauly-Wissowa, xvii, 1936, p.757에서 이 니시비스는 또한 바벨론 북동쪽에 있는 좀 더 알려진 니시비스와도 구분된다. 그러니 에피미] 마게도냐인들(Macedonians)이 이전에 에피미그도니아(Epimygdonia) 도니아(Epimygdonia)라는 명칭은 그 둘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니시비스라고 불리는 지역은 다른 방식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참). 그것을 미그도니아(Mygdonia)에 있는 안티오케이아(Antiocheia)라 언급하는 사람은 폴리비우스(Polybius, v. 51. 1)와 스트라보(Strabo xxi. 747)이다. 스텀(J. Sturm)의 ‘Nixibis’, Pauly-Wissowa, xvii. 1936, pp.727-730을 보라. ]라고 하는 안디옥(Andioch)이라는도시를 이 지역에 세웠다. 이러한 것들이 파르티아 왕에 의해 이자테스왕에게 베풀어진 경의의 표시였다.


     4. 아르타바누스의 후임 바르다네흐(Vardanes)가 로마와의 전쟁을 위한 이자테스의 협력을 얻지 못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38년경.] 아르타바누스왕은 죽었고 그의 아들바르다네스(Bardanes)에게 왕권이 넘어갔다. 이 바르다네스왕은[㈜ 타키투스(Tacitus)는 ‘연대기’ xi.8에서 아르타바누스(Artabanus)는 고타르제스(Gotarzes) Ⅱ세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고타르제스 Ⅱ세는 자기 동생 바르다네스(Vardanes)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말한다. 요세푸스는 고타르제스(혹은 코타르데스, Cotardes)가 바르다네스를 계승한다고 한다. 따라서 앤더슨(J.G.C.Anderson)은 ‘Camb. Anc. Hit.’ x. 1934, p.754 주1에서 요세푸스의 설명이 부정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타키투스 (Tacitus)와 요세푸스(Josephys)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바르다네스가 살해되었을 때, 고타르제스는 다시 한번 왕위를 생각했기 때문이다(타키투스, ‘연대기’ xi.10). 따라서 요세푸스가 고타르제스의 첫 왕위 기간을 단순히 생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이러한 생략은 요세푸스의 설명이 아주 간결하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해할 만하다. 더구나 고타르제스의 첫 번째 재위 기간 동안 바르다네스와 거의 즉각적으로 항쟁을 했고, 바르다네스가 도착한 후에는 고타르제스가 왕권에 대한 그의 주장을 철회하여 바르다네스와 협정을 맺게 되었기 때문이다(타키투스스, ‘연대기’, xi.9) 요세푸스는 실제 통치가 아닌 왕권을 주장한 고타르제스의 첫 번째 기간을 생략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44/45-45/46년 동안의 화폐로 본 증거는 타키투스가 이 기간 동안의 파르티아(Parthia)통치를 위한 싸움을 서술하는데 있어 더 완전한 설명을 하고 있음을 지적해 준다. 셀류키아(Seleucia)에서 우리는 고타르제스의 화폐들을 발견했는데, 한달 후 바르다네스의 화폐, 여섯 달 후 고타르제스의 화폐, 그후 세 달 후에는 다시 바르단스의 화폐들, 그리고 아홉 달 후에는 고타르제스의 화폐였다(R.H.McDowell, ‘Coins from Seleucia on the Tigris;, 1935, pp.189-190을보라).] 이자테스왕에게 와서 군사동맹을 하여 로마와 치룰 전쟁에 자기를 도와 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바르다네스는 이자테스를 설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자테스는 로마의 힘과 행운을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이자테스는 이루기 불가능한 것을 바르다네스가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대. 20권. 6 : 1(119).] 이자테스의 모친이 성전에 예배하러갔을 뿐만 아니라 유대 학문과 더불어 유대 언어를 정확하게 배우기 위하여 다섯 명의 어린 아들을 보내었기 때문에 더욱 응하기 싫어했다. 이자테스는 로마의 막강한 군대와 뛰어난 전투력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함으로써 바르다네스를 제지하려 했다.또한 그렇게 하여 바르다네스왕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유발시켜 원정을 막고자 하였다. 그러나 파르티아 왕은 이와같은 이자테스왕의 행위에 화가 나서는 즉시 이자테스왕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하였다.[㈜ 바르다네스에 대한 이자테스의 도전은 그가 자기 적들에게 공포를 주었다는 점에서 볼 때 아주 주목할 만한 것이다. 참). 타키투스의 그의 능력에 대한 찬사(‘연대기’ xi. 10) : “그는 그의 적들에 의해 두려움의 대상이 된 만큼, 자기 부하들에게 사랑받기를 노력했다면 나이 든 통치자들 사이에서 몇 안되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르다네스왕은 하느님께서 모든 희망을 차단하셨기 때문에 이 전쟁으로 어떠한 이점도 얻지 못했다. 그것은 파르티아인들이 바르다네스왕의 의도와 로마와 전쟁을일으키기로 결정했었다는 것을 알고서 바르다네스왕을 살해하고[㈜ 타키투스는 ‘연대기’ xi. 10에서 바르다네스가 많은 승리를 거두어서, 파르티아인들이 기념비를 세워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르티아인들은 그가 멀리서 통치하는 것에 대해서와 바르다네스가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도 자기들을 향한 오만함과 독재적 태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에 음모가 계획되었고 바르다네스가 사냥하는 동안 그를 살해하였다. 바사의 전체 역사를 담고 있는 피르두시(Firdousi)의 10세기 서사시 ‘Sh?hn?ma,’ 즉 ‘왕들의 책'(Book of Kings)은 파루드(Farud=바르다네스)가 구다르즈(Gudarz, 고타르제스와 관계를 맺고 있던 비잔(Bizan)과 라한(Rahan)에 의해 실제로 죽임을 당하였다는 전승을 보존하고 있다. 코야지(J.C.Coyajee)의 논문 “The House of Gotarzes,”가 수록된 ‘Jour. and Proc. of the Asiatic Soc. of Bengal,’ N.S. xxviii, 1932, p.211을 보라.] 형제 코다르데스(Cotardes)에게 왕권을 넘겨 주었다.[㈜ 즉, 고타르제스. 타키투스는 ‘연대기’ xii, 10에서 고타르제스는 귀족이나 평민 모두를 무자비하게 다루었다고 서술한다. 그는 말하기를. “이미 형제들, 친척들, 그리고 먼 친척들이 연속된 살인으로 제거되었다. 사실 임신한 부인들과 온순한 어린이들은 추가로 고타르제스의 희생자가 되었다. 반면에 그는 집에서 게으름을 피웠으며, 전쟁에서는 실패했고, 자기의 연약함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잔인하게 행동했다. 요세푸스는 바르다네스가 살해된 후에는 고타르제스와 메헤르다테스(Meherdates) 사이의 왕좌 경쟁을 생략한다. 타키투스의 연대기 xii. 13에 의하면 이 경쟁에 있어 이자테스는 메헤르다테스와 동맹을 맺었지만 은밀히 고타르제스를 지지했으며, 두 경쟁자 사이에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결정적인 전투가 있기 전에 고타르제스를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시 오래지 않아 반란 음모에 의해[㈜ 타키투스는 ‘연대기’ xii. 14에서 어떤 음모도 말하는것 없이 단지 고타르제스는 병들어 누워 죽었다고 말한다.] 살해되었고 고르타제스의 뒤를 이은 그의 형제[㈜ 타키투스의 ‘연대기’ xii.14에 의하면 볼로게세스(Vologeses)는 보노네스(vonones)의 아들이었다.] 볼로게세스(Vologeses)는[㈜ 이것이 보통 사용하는 철자이다. 그러나 그의 화폐에서는 그 이름이 볼라가세스(Volagases)로 나타난다 참). 전쟁. 7권. 5 : 2(105), 이곳에는 그로부터 온 한 대표가 유대인에 대한 베스파시안(Vespasian)의 승리를 인정하는 뜻으로 그에게 황금 왕관을 가져다 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 전쟁. 7권. 7 : 2(237), 7 : 3(242)에 의하면 요세푸스는 보노네스의 통치에 대한 설명을 빠뜨리고 있는데, 보노네스는 타키투스의 연대기 vii. 14에 의하면 고타르제스의 계승자였다. 그러나 타키투스는 직접 보노네스의 통치는 짧았고 불명예스러웠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파르티아인들의 복잡한 왕조 다툼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드브보아스(N.C.Debevoise)가 ‘A Political History of Parthia,’ 1938, p.174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통치 기간 중 어떤 화폐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보노네스를 생략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같은 아버지에게서 난 형제들 중 두명에게[㈜ 또한 타키투스는 ‘연대기’ xii. 44에서 볼로게세스가 그의 형제들의 동의를 얻어 왕위를 획득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영토를 맡겼다. 즉 메대(Media)를 형인 파코루스(Pacorus)에게,[㈜ 타키투스의 ‘연대기’ xv.2에 의하면 파코루스는 볼로게세스가 왕이 되었을 때, 이미 메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참). 전쟁. 7권. 7 : 4(247)에 보면 그는 자기 나라에서 도망쳐 스구디아(Scythia) 부족, 알라니(Alani)에게로 간다.] 아르메니아(Armenia)를 동생 티리다테스(Tiridates)에게[㈜ 참). Dio. 1xii(1xiii), 4 이하의 인상적인 장면. 그곳에서 네로(Nero)는 그를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선포한다. 타키투스는 ‘연대기’ xii50-51에서 아르메니아 침략을 통해 티리다테스가 왕권을 차지하게 하려는 볼로게세스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말하고 있다. 참). ‘연대기’ xv. 2에서 티리다테스가 그를 부추켜 온 후에도, 볼로게세스는 아르메니아를 압박하지 않음으로 그의 유유부단한 태도를 방어해 주는데, 아르메니아는 그가 인정하듯이,(요세푸스에 의해 여기에 언급된 것처럼 힘있는 위치가 아니라) 단지 세 번째 왕국에 불과했다. 전쟁. 7권. 7 : 4(249)에서 아르메니아 통치권을 가까스로 얻은 티리다테스는 알라니인들에 의해 격퇴되었다.] 각각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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