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권 제 5장 알렉산드라가 9년을 통치했는데 그 기간에 유대의 실세들은 바리새파였던 것에 대하여

 


제 5 장



 알렉산드라가 9년을 통치했는데 그 기간에 유대의 실세들은 바리새파였던 것에 대하여



1. 알렉산드라 여왕〔주전 78 – 69년〕



 알렉산더는 죽기 전에 왕권을 자신의 아내 알렉산드라에게 이양하였다. 왜냐하면 알렉산더는 아내 알렉산드라가 자신과는 달리 포악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다가 율법을 범한 자신을 반대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호감을 사,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이러한 기대는 실제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약한 여성의 몸이었지만, 자신의 경건생활에대한 긍정적인 평판 덕분에 나라의 통치권을 확고히 장악하게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대의 전통을 엄수하는 데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리 만큼 철두철미 하였으며 유대 계율을 어기는 자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을 박탈하였다.[㈜ 혹은 아마도 \”국외로 추방하다.\”] 그녀는 알렉산더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나이에 맞게 매사에 신중하나 너무 심약하여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못할듯한 장남 힐카누스(Hyrcanus)를 대제사장에 임명하였으나 차남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는 성미가 급했기 때문에 사인(私人)으로 남아 있게 하였다.



 2. 바리새인들의 세력이 커짐



 알렉산드라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한 종파로서 나머지 유대인들보다 율법을 정확히 해석하고 종교 제도를 엄격히 준수한다는 바리새인들도 같은 속도로그 세를 확장하였다.[㈜ 문자적으로는 \”게다가 권력이 강해져 갔다.\”] 이 바리새인들의 말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였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이 순진한 여인을 이용하여 마침내는 행정의 실권을 장악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을 추방하고, 소환하고, 권좌에서 밀어내기도 하고 속박하기도 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왕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그들이 누리고 그에 따르는 비용과 뒷감당은 알렉산드라의 몫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는국가적인 대사(大事)를 처리하는 행정수행 능력이 뛰어났으며 수많은 외국 용병들을 모집하는 외에도 군사력을 육성하는 면에서도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군사력을 강화시켰을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만일 그녀가 나라를 다스렸다면 바리새인들은 그런 그녀를 다스렸다고 할 수 있다.



3. 〔알렉산드라 때의 정치 상황〕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저명한 인물이며 알렉산더의 친구였던 디오게네스(Diogenes)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바리새인들은그가 〔앞에서 언급했었던〕800명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왕에게 간언했었던 사람이라고 그를 고소하여 살해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알렉산드라에게 800명을 십자가에 죽이도록 왕을 부추겼던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처형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그런데 그녀는 바리새인들을 광적으로 신임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응낙함으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그러나 이런 위험에 처했던 자들 중 저명한 자들은 아리스토불루스에게 피신했는데 아리스토불루스는 모친에게 이 자들의 명성을 생각해서 살려주기를 설득했으며 만일 모친이 이 자들의 무죄함을 믿지 못하겠다면 이들을 도시 밖으로 추방하라고 설득했다. 그래서 그들은 무사히 추방당해 예루살렘밖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알렉산드라는 톨레미(Ptolemy)가 항상 다메섹을 압박한다는구실로 다메섹에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군대는 어떤 특별한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녀는 또한 톨레마이스(Ptolmais)에 머무르며 클레오파트라(Cleopatra)를[㈜ 톨레미 피스콘(Ptolemy Physcon)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혹은 셀레네(Selene). 그녀는 셀류키드 왕가의 여러 왕들과 결혼했었다. 스트라보(Strabo).xvi.749를 보면 티그라네스(Tigranes)가 수리아로부터 퇴각하면서 클레오파트라를 포로로 잡아 투옥시켰으며 곧이어 그녀를 처형하였다.] 포위했던 아르메니아(Armenia)의 왕 티그라네스(Tigranes)와 조약을 체결하고 선물을 주어 물러가게 했다 [주전 70 – 69년]. 그러나 티그라네스는 아르메니아를 침공한 루쿨루스(Lucullus)로 인해 야기된 자국 내의 소동으로 서둘러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4. 아리스토불루스의 반역



 한편 알렉산드라가 아파서 병석에 눕자 그녀의 둘째 아들 아리스토불루스가 이 기회를 포착하고는 자신의 젊은 때에 친구였던 많은 종들을 모아 모든 요새들을 자기 수중에 넣었다. 또한그는 요새에 숨겨져 있던 많은 돈으로 용병들을 고용하고는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였다. 힐카누스는 이에 대해 격분을 참지 못하고 형인 자신을 옆에 두고 아우가 왕이 되었다고 선포한 것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이에 알렉산드라도 공감하면서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내와 자식들을 안토니아(Antonia)에 감금시켜 버렸다. 이 안토니아라는 곳은 성전의 북쪽과 인접해 있는 요새였다. 이 곳은 내가 이전에도 말했듯이[㈜ 전쟁.1권. 3 : 3 (75)] 옛날에는 바리스(Baris)라고 불렸으나 후에는 안토니아라고 불렸는데 이는 안토니(Antony)가 지배하고 있을 때에 붙었던 명칭으로써 이것은 아구스도(Augustus)나[㈜ 사마리아.] 아그립바(Agr-ippa)가[㈜ 이전의 안테돈(Anthedon), 전쟁. 1권. 4 : 2(87).] 어떤 도시들을 세바스테(Sebaste)나 아그리피아스(Agrippias)라고 자기들의 이름을 붙여 명칭을 바꾼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국 알렉산드라는 형의 승계권을 무시해 버린 아리스토불루스를 처벌하지 못하고 9년을 통치한 후 세상을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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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권 제 5장 알렉산드라가 9년을 통치했는데 그 기간에 유대의 실세들은 바리새파였던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5 장


     알렉산드라가 9년을 통치했는데 그 기간에 유대의 실세들은 바리새파였던 것에 대하여


    1. 알렉산드라 여왕〔주전 78 – 69년〕


     알렉산더는 죽기 전에 왕권을 자신의 아내 알렉산드라에게 이양하였다. 왜냐하면 알렉산더는 아내 알렉산드라가 자신과는 달리 포악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다가 율법을 범한 자신을 반대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호감을 사,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이러한 기대는 실제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약한 여성의 몸이었지만, 자신의 경건생활에대한 긍정적인 평판 덕분에 나라의 통치권을 확고히 장악하게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대의 전통을 엄수하는 데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리 만큼 철두철미 하였으며 유대 계율을 어기는 자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을 박탈하였다.[㈜ 혹은 아마도 “국외로 추방하다.”] 그녀는 알렉산더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나이에 맞게 매사에 신중하나 너무 심약하여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못할듯한 장남 힐카누스(Hyrcanus)를 대제사장에 임명하였으나 차남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는 성미가 급했기 때문에 사인(私人)으로 남아 있게 하였다.


     2. 바리새인들의 세력이 커짐


     알렉산드라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한 종파로서 나머지 유대인들보다 율법을 정확히 해석하고 종교 제도를 엄격히 준수한다는 바리새인들도 같은 속도로그 세를 확장하였다.[㈜ 문자적으로는 “게다가 권력이 강해져 갔다.”] 이 바리새인들의 말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였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이 순진한 여인을 이용하여 마침내는 행정의 실권을 장악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을 추방하고, 소환하고, 권좌에서 밀어내기도 하고 속박하기도 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왕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그들이 누리고 그에 따르는 비용과 뒷감당은 알렉산드라의 몫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는국가적인 대사(大事)를 처리하는 행정수행 능력이 뛰어났으며 수많은 외국 용병들을 모집하는 외에도 군사력을 육성하는 면에서도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군사력을 강화시켰을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만일 그녀가 나라를 다스렸다면 바리새인들은 그런 그녀를 다스렸다고 할 수 있다.


    3. 〔알렉산드라 때의 정치 상황〕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저명한 인물이며 알렉산더의 친구였던 디오게네스(Diogenes)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바리새인들은그가 〔앞에서 언급했었던〕800명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왕에게 간언했었던 사람이라고 그를 고소하여 살해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알렉산드라에게 800명을 십자가에 죽이도록 왕을 부추겼던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처형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그런데 그녀는 바리새인들을 광적으로 신임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응낙함으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그러나 이런 위험에 처했던 자들 중 저명한 자들은 아리스토불루스에게 피신했는데 아리스토불루스는 모친에게 이 자들의 명성을 생각해서 살려주기를 설득했으며 만일 모친이 이 자들의 무죄함을 믿지 못하겠다면 이들을 도시 밖으로 추방하라고 설득했다. 그래서 그들은 무사히 추방당해 예루살렘밖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알렉산드라는 톨레미(Ptolemy)가 항상 다메섹을 압박한다는구실로 다메섹에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군대는 어떤 특별한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녀는 또한 톨레마이스(Ptolmais)에 머무르며 클레오파트라(Cleopatra)를[㈜ 톨레미 피스콘(Ptolemy Physcon)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혹은 셀레네(Selene). 그녀는 셀류키드 왕가의 여러 왕들과 결혼했었다. 스트라보(Strabo).xvi.749를 보면 티그라네스(Tigranes)가 수리아로부터 퇴각하면서 클레오파트라를 포로로 잡아 투옥시켰으며 곧이어 그녀를 처형하였다.] 포위했던 아르메니아(Armenia)의 왕 티그라네스(Tigranes)와 조약을 체결하고 선물을 주어 물러가게 했다 [주전 70 – 69년]. 그러나 티그라네스는 아르메니아를 침공한 루쿨루스(Lucullus)로 인해 야기된 자국 내의 소동으로 서둘러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4. 아리스토불루스의 반역


     한편 알렉산드라가 아파서 병석에 눕자 그녀의 둘째 아들 아리스토불루스가 이 기회를 포착하고는 자신의 젊은 때에 친구였던 많은 종들을 모아 모든 요새들을 자기 수중에 넣었다. 또한그는 요새에 숨겨져 있던 많은 돈으로 용병들을 고용하고는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였다. 힐카누스는 이에 대해 격분을 참지 못하고 형인 자신을 옆에 두고 아우가 왕이 되었다고 선포한 것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이에 알렉산드라도 공감하면서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내와 자식들을 안토니아(Antonia)에 감금시켜 버렸다. 이 안토니아라는 곳은 성전의 북쪽과 인접해 있는 요새였다. 이 곳은 내가 이전에도 말했듯이[㈜ 전쟁.1권. 3 : 3 (75)] 옛날에는 바리스(Baris)라고 불렸으나 후에는 안토니아라고 불렸는데 이는 안토니(Antony)가 지배하고 있을 때에 붙었던 명칭으로써 이것은 아구스도(Augustus)나[㈜ 사마리아.] 아그립바(Agr-ippa)가[㈜ 이전의 안테돈(Anthedon), 전쟁. 1권. 4 : 2(87).] 어떤 도시들을 세바스테(Sebaste)나 아그리피아스(Agrippias)라고 자기들의 이름을 붙여 명칭을 바꾼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국 알렉산드라는 형의 승계권을 무시해 버린 아리스토불루스를 처벌하지 못하고 9년을 통치한 후 세상을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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