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권 제 20장 헤롯이 가이사에게 왕권을 인정받고 엄청난 선물을 황제에게 보내 우의를 돈독히 했으며, 반면 가이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클레오파트라가 빼앗았던 그의 영토 일부를 돌려주고 제노도루스의 영토까지 덧붙여 준것에 대하여

 


제 20 장



헤롯이 가이사에게 왕권을 인정받고 엄청난 선물을 황제에게 보내 우의를 돈독히 했으며, 반면 가이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클레오파트라가 빼앗았던 그의 영토 일부를 돌려주고 제노도루스의 영토까지 덧붙여 준것에 대하여



1. 가이사에게 한 헤롯의 변명



 한편 헤롯은 안토니가 악티움에서 가이사에게[㈜ 옥타비우스(Octavius).] 패했기 때문에, 이전에 안토니와 우호관계를 맺은 사실을 매우 염려하였다.헤롯은 당장에 직접적인 해는 없으나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헤롯이 안토니를 계속해서 지원하는 한 가이사는 안토니를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장된 표현임. 고대.에는 빠진 내용.] 이에 헤롯은 가이사가 머물고 있는 로데스(Rhodes)에 배를 타고 가서 왕관도 쓰지 않은 일반 평민의 옷차림으로 그 앞에 나아갔다.하지만 그의 행동만은 왕처럼 처신했다. 헤롯은 조금도 숨김없이 정정당당하게 이같이 말하였다. \”오, 가이사시어! 저는 안토니에게서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으나 고백컨대 나에게 주어진 왕의 권력을 선하게 사용하였습니다. 만일 아라비아인들이 우리를 가로막지 않았다면, 무장을 하고 안토니를 도와 폐하를 공격했을 겁니다. 그러나 아라비아인들을 정복하기 위해서 제가 직접 참전하지는 못했으나,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원군과 곡식을 수만(萬) 코리(Cori) 지원했습니다. 또 안토니가 악티움에서 패전한 후에도 저는 은인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 더 이상 도울 처지가 못 되었기에 간곡한 충고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저는 안토니가 소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클레오파트라를 죽이는 것이라고 간언하였습니다. 저는 그녀만 제거한다면 돈과 은둔처와 원군은 물론 폐하를 대항하여 직접 전선에 나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에 눈이 먼안토니는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폐하에게 로마제국을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심이 분명합니다. 어찌됐든 저는그와 함께 전쟁에 패했습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운명을 걸고 왕관을 벗어던진 채 오직 폐하의 손에 저의 운명을 맡길 뿐입니다. 바라옵기는 제가 누구와 우호관계를 맺었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얼마만큼 우의를 충실되게 지켰는지를 살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2. 헤롯의 변명에 대한 가이사의 답변



 이에 가이사는 이렇게 답변했다 : \”좋소. 내가 그대를 살려줄뿐 아니라 전보다 더욱 확고하게 왕으로서 앉게 해주겠소. 그대의 진실성이 누구보다도 뛰어나고 백성들을 다스리기에 충분한 자임을 내가 알았소. 그러므로 그대는 안토니에게 했던 대로 나에게 변함없이 충성하도록 하시오. 나는 그대의 성품을 굳게 ale겠소. 안토니가 그대보다 클레오파트라를 택한 것은 오히려 잘된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찌 그대와 같은 친구를 얻을 수 있겠소? 내가 그대를 알기 전부터 그대는 이미 나와 가까와졌음은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니겠소? 나는 그대가 검투사들에게[㈜ 악티움 전투가 끝난 후 클레오파트라는 다방면에 도움을 구하였는데 트라페주스(Trapezus)에서 안토니를 위해 훈련받고 있던 검투사들 몇 명을 부르러 보냈었다.] 대항하여 퀸투스 디디우스(Quintus Didius)를 도왔다는것을 이미 그의 서신을 통해 알고 있었소. 따라서 나는 칙령을 선포하여 그대를 유대국의 왕으로 인준할 것이며 또 안토니와의 결별이 결코 섭섭치 않도록 더욱 많은 호의를 베풀 것이니 그리아시오.\”



 3. 가이사는 칙령을 선포하여 헤롯을 유대국의 왕으로 인준하는 한편 그의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영토를 확



 가이사는 헤롯에게 이같이 부드럽게 말을 한 후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 주었다. 가이사는 구두로 약속한 사항을 공식적인칙령으로 선포했다. 이에 헤롯은 많은 예물로써 가이사에게 답례했다. 이같이 가이사의 환심을 얻은 헤롯은 안토니의 친구인 알렉산더(Alexander)를 용서해 주십사고 간청했으나 그에 대한 가이사의 감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이에 가이사는 알렉산더의 죄과를 낱낱이 들춰내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헤롯의 간청을 거절하였다. 그후 가이사는 애굽으로 갔는데 수리아를 지나게 되었다. 이에 헤롯은 그를 국빈대우하며 정성껏 대접하였고, 가이사가 톨레마이스(Ptolemais) 근처에 주둔한 군대를 시찰할 때는 호위하며 다가가서 가이사와 그 측근들에게 흥겨운 연회를 배설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병사들에게까지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또 가시아의 군대가 메마른 땅을 지나 펠루시움(Pelusium)에 이르는 동안 필요한 물을 충분하게 공급했고 가이사의 군대가 애굽에서 돌아나올 때도 마찬가지로 대접했다. 이와 같은 헤롯의 시중을 받은 가이사는 물론 이를 지켜본 일반병사들까지도 그의 친절함에 비해 그의 왕국이 너무 작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마침 가이사가 애굽으로 진격할 때 안토니와 글레오파트라가 세상을 떠났다. 이에 가이사는 헤롯에게 많은 영예를 주는 것은 물론 그의 왕국을 확장시켜 주었다. 즉 클레오파트라가 헤롯에게서 빼앗았던[㈜ 전쟁.1권. 18:5(361).] 영토인 가다라(Gadara), 히포스(Hippos), 사마리아(Samaria), 그리고 해변 도시인 가사(Gaza), 안테돈(Anthedon), 욥바(Joppa), 스트라토의 망대(Strato\’s Tower)[㈜ 훗날 가이사랴.] 등을 하사하고, 또 예전에 클레오파트라의호위병이었던 400명의 갈인들(Galls)을 호위병으로 그에게 선물했다. 가이사는 헤롯에게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이같이 풍성하게 보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가이사가 내린 또 다른 하사품[주전 약23년]



 또한 가이사가 악티안 시기(the Actian era)의 첫 기간 후에[㈜ \”악티움 경기는 주전 28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그후 24, 20, 16년에 매4년마다 개최되었다. 그러한 영토 확장은 제1차 악티움 경기 과정이 끝난 후, 즉 24년 말이나 23년 초에 이뤄진 것이었다.\”(Schurer).] 드라고닛(Trachonitis)과 그 인접 지역인 바타나이아(Batana-ea)와 아우라니티스(Auranitis)를 헤롯에게 준 경위는 아래와같다 : 리사니아스(Lysanias)의 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제노도루스(Zenodorus)는 드라고닛에서 다메섹인들에게 강도들을 보내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다메섹인들은 수리아의 총독인바로(Varro)를 만나 가이사에게 자신들의 어려움을 호소해 줄것을 요청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가이사는 곧 강도의 소굴을 진멸토록 명령했다. 이에 바로는 군대를 이끌고 가서 강도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그 지역을 제노도루스에게서 빼앗았다. 가이사는이 지역이 다메섹인들을 대항하는 강도들의 소굴이 되지 않도록하기 위해 헤롯에게 하사했다. 그는 또 헤롯을 전 수리아의 행정장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이로부터 10년후 가이사가 수리아 땅을 다시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주전 약20년]. 일이이쯤 되니 수리아의 행정장관들은 헤롯의 도움이 없이는 어떤공무도 처리하지 못하게 되었다. 제노도루스가 죽으니 가이사는또 드라고닛과 갈릴리 사이에 있는 전 지역을 헤롯에게 주었다.그러나 헤롯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가이사와 아그립바(Agrippa)에게[㈜ 빕사니우스 아그립바(M.Vipsanius Agrippa)(63-12B.C). 그의 열렬한 친구이자 장관. 아구스도의 후계자로 점쳐지던 인물. 판테온(Pantheon)신전을 건축하였고 로마의 해군을 창설하였다.] 총애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혹은 이러한 좋은 지위 덕택에.\”] 헤롯은 한껏 행복하게 지냈지만 그러나 그가 가진 배짱은 그가 누린 행복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컸고, 그 배짱의 두둑함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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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권 제 20장 헤롯이 가이사에게 왕권을 인정받고 엄청난 선물을 황제에게 보내 우의를 돈독히 했으며, 반면 가이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클레오파트라가 빼앗았던 그의 영토 일부를 돌려주고 제노도루스의 영토까지 덧붙여 준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20 장


    헤롯이 가이사에게 왕권을 인정받고 엄청난 선물을 황제에게 보내 우의를 돈독히 했으며, 반면 가이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클레오파트라가 빼앗았던 그의 영토 일부를 돌려주고 제노도루스의 영토까지 덧붙여 준것에 대하여


    1. 가이사에게 한 헤롯의 변명


     한편 헤롯은 안토니가 악티움에서 가이사에게[㈜ 옥타비우스(Octavius).] 패했기 때문에, 이전에 안토니와 우호관계를 맺은 사실을 매우 염려하였다.헤롯은 당장에 직접적인 해는 없으나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헤롯이 안토니를 계속해서 지원하는 한 가이사는 안토니를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장된 표현임. 고대.에는 빠진 내용.] 이에 헤롯은 가이사가 머물고 있는 로데스(Rhodes)에 배를 타고 가서 왕관도 쓰지 않은 일반 평민의 옷차림으로 그 앞에 나아갔다.하지만 그의 행동만은 왕처럼 처신했다. 헤롯은 조금도 숨김없이 정정당당하게 이같이 말하였다. “오, 가이사시어! 저는 안토니에게서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으나 고백컨대 나에게 주어진 왕의 권력을 선하게 사용하였습니다. 만일 아라비아인들이 우리를 가로막지 않았다면, 무장을 하고 안토니를 도와 폐하를 공격했을 겁니다. 그러나 아라비아인들을 정복하기 위해서 제가 직접 참전하지는 못했으나,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원군과 곡식을 수만(萬) 코리(Cori) 지원했습니다. 또 안토니가 악티움에서 패전한 후에도 저는 은인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 더 이상 도울 처지가 못 되었기에 간곡한 충고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저는 안토니가 소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클레오파트라를 죽이는 것이라고 간언하였습니다. 저는 그녀만 제거한다면 돈과 은둔처와 원군은 물론 폐하를 대항하여 직접 전선에 나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에 눈이 먼안토니는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폐하에게 로마제국을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심이 분명합니다. 어찌됐든 저는그와 함께 전쟁에 패했습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운명을 걸고 왕관을 벗어던진 채 오직 폐하의 손에 저의 운명을 맡길 뿐입니다. 바라옵기는 제가 누구와 우호관계를 맺었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얼마만큼 우의를 충실되게 지켰는지를 살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2. 헤롯의 변명에 대한 가이사의 답변


     이에 가이사는 이렇게 답변했다 : “좋소. 내가 그대를 살려줄뿐 아니라 전보다 더욱 확고하게 왕으로서 앉게 해주겠소. 그대의 진실성이 누구보다도 뛰어나고 백성들을 다스리기에 충분한 자임을 내가 알았소. 그러므로 그대는 안토니에게 했던 대로 나에게 변함없이 충성하도록 하시오. 나는 그대의 성품을 굳게 ale겠소. 안토니가 그대보다 클레오파트라를 택한 것은 오히려 잘된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찌 그대와 같은 친구를 얻을 수 있겠소? 내가 그대를 알기 전부터 그대는 이미 나와 가까와졌음은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니겠소? 나는 그대가 검투사들에게[㈜ 악티움 전투가 끝난 후 클레오파트라는 다방면에 도움을 구하였는데 트라페주스(Trapezus)에서 안토니를 위해 훈련받고 있던 검투사들 몇 명을 부르러 보냈었다.] 대항하여 퀸투스 디디우스(Quintus Didius)를 도왔다는것을 이미 그의 서신을 통해 알고 있었소. 따라서 나는 칙령을 선포하여 그대를 유대국의 왕으로 인준할 것이며 또 안토니와의 결별이 결코 섭섭치 않도록 더욱 많은 호의를 베풀 것이니 그리아시오.”


     3. 가이사는 칙령을 선포하여 헤롯을 유대국의 왕으로 인준하는 한편 그의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영토를 확


     가이사는 헤롯에게 이같이 부드럽게 말을 한 후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 주었다. 가이사는 구두로 약속한 사항을 공식적인칙령으로 선포했다. 이에 헤롯은 많은 예물로써 가이사에게 답례했다. 이같이 가이사의 환심을 얻은 헤롯은 안토니의 친구인 알렉산더(Alexander)를 용서해 주십사고 간청했으나 그에 대한 가이사의 감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이에 가이사는 알렉산더의 죄과를 낱낱이 들춰내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헤롯의 간청을 거절하였다. 그후 가이사는 애굽으로 갔는데 수리아를 지나게 되었다. 이에 헤롯은 그를 국빈대우하며 정성껏 대접하였고, 가이사가 톨레마이스(Ptolemais) 근처에 주둔한 군대를 시찰할 때는 호위하며 다가가서 가이사와 그 측근들에게 흥겨운 연회를 배설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병사들에게까지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또 가시아의 군대가 메마른 땅을 지나 펠루시움(Pelusium)에 이르는 동안 필요한 물을 충분하게 공급했고 가이사의 군대가 애굽에서 돌아나올 때도 마찬가지로 대접했다. 이와 같은 헤롯의 시중을 받은 가이사는 물론 이를 지켜본 일반병사들까지도 그의 친절함에 비해 그의 왕국이 너무 작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마침 가이사가 애굽으로 진격할 때 안토니와 글레오파트라가 세상을 떠났다. 이에 가이사는 헤롯에게 많은 영예를 주는 것은 물론 그의 왕국을 확장시켜 주었다. 즉 클레오파트라가 헤롯에게서 빼앗았던[㈜ 전쟁.1권. 18:5(361).] 영토인 가다라(Gadara), 히포스(Hippos), 사마리아(Samaria), 그리고 해변 도시인 가사(Gaza), 안테돈(Anthedon), 욥바(Joppa), 스트라토의 망대(Strato’s Tower)[㈜ 훗날 가이사랴.] 등을 하사하고, 또 예전에 클레오파트라의호위병이었던 400명의 갈인들(Galls)을 호위병으로 그에게 선물했다. 가이사는 헤롯에게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이같이 풍성하게 보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가이사가 내린 또 다른 하사품[주전 약23년]


     또한 가이사가 악티안 시기(the Actian era)의 첫 기간 후에[㈜ “악티움 경기는 주전 28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그후 24, 20, 16년에 매4년마다 개최되었다. 그러한 영토 확장은 제1차 악티움 경기 과정이 끝난 후, 즉 24년 말이나 23년 초에 이뤄진 것이었다.”(Schurer).] 드라고닛(Trachonitis)과 그 인접 지역인 바타나이아(Batana-ea)와 아우라니티스(Auranitis)를 헤롯에게 준 경위는 아래와같다 : 리사니아스(Lysanias)의 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제노도루스(Zenodorus)는 드라고닛에서 다메섹인들에게 강도들을 보내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다메섹인들은 수리아의 총독인바로(Varro)를 만나 가이사에게 자신들의 어려움을 호소해 줄것을 요청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가이사는 곧 강도의 소굴을 진멸토록 명령했다. 이에 바로는 군대를 이끌고 가서 강도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그 지역을 제노도루스에게서 빼앗았다. 가이사는이 지역이 다메섹인들을 대항하는 강도들의 소굴이 되지 않도록하기 위해 헤롯에게 하사했다. 그는 또 헤롯을 전 수리아의 행정장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이로부터 10년후 가이사가 수리아 땅을 다시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주전 약20년]. 일이이쯤 되니 수리아의 행정장관들은 헤롯의 도움이 없이는 어떤공무도 처리하지 못하게 되었다. 제노도루스가 죽으니 가이사는또 드라고닛과 갈릴리 사이에 있는 전 지역을 헤롯에게 주었다.그러나 헤롯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가이사와 아그립바(Agrippa)에게[㈜ 빕사니우스 아그립바(M.Vipsanius Agrippa)(63-12B.C). 그의 열렬한 친구이자 장관. 아구스도의 후계자로 점쳐지던 인물. 판테온(Pantheon)신전을 건축하였고 로마의 해군을 창설하였다.] 총애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혹은 이러한 좋은 지위 덕택에.”] 헤롯은 한껏 행복하게 지냈지만 그러나 그가 가진 배짱은 그가 누린 행복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컸고, 그 배짱의 두둑함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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