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권 제 22장 대제사장 아리스토불루스와 힐카누스의 살해와 또한 왕비 마리암메의 처형에 대하여

 


제 22 장



대제사장 아리스토불루스와 힐카누스의 살해와 또한 왕비 마리암메의 처형에 대하여



1. 헤롯의 가정적인 불행



 그러나 헤롯은 외부적으로는 대단히 성공했을지 몰라도 가정적으로는 엄청난 불화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정에서의 불화의시작은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내 마리암메(Maramme)때문에 발생했다. 헤롯이 왕위에 오르기 전, 범인(凡人)이었을 당시 결혼한 예루살렘 출신의 도리스(Doris)를 내쫓고,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의 아들인 알렉산더(Alexander)의 딸 마리암메와 결혼을 했었다.[㈜ 전쟁. 1권. 12:3(241).] 그의 가정에서 분란이 일어난 것은 결혼한 직후였으나 심화되어 밖으로 표출된 것은 그가 로마에서 돌아온 뒤이다. 그는 마리암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위해 전처 소생인 안티파테르(Antipater)를 예루살렘 밖으로 추방하고 절기 때를 제외하고는 나타나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후 헤롯은 처(妻) 외조부(外祖父)인 힐카누스(Hyrcanus)가 파르티아(Parthia)에서 유대로 돌아오자 반역의 음모를 꾀했다는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주전 약 30년].

 힐카누스는 수리아를 휩쓸고 간 바르자파르네스(Barzapharnes)에게 포로로 잡혀 파르티아로 끌려갔던 것이다.[㈜ 전쟁. 1권. 13:5(260).] 그런데 그 곳의 유대인들은 그의 처지가 매우 불리하므로 파르티아를떠나지 말 것을 간청했었다. 사실 이들의 간청을 그가 듣고 유브라데(Euphrates)강을 건너지 않았던들 죽음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손녀의 결혼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결과가 되었다. 그는 자기 손녀가 헤롯과 결혼한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고, 또 조국에 대한 향수가 대단히 컸기에 파르티아를 떠나 유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헤롯은 그가 정권 탈취를 위해서 귀국한 것으로는 믿지 않았지만 힐카누스가 자기보다 왕위의 서열상 더 적격일 것이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마침내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의 퇴위에 관하여는 전쟁.1권. 6:1(120)을 보라.]



2. 마리암메가 낳은 헤롯의 자식들



 헤롯은 마리암메와의 사이에 다섯 자녀가 있었는데 둘은 딸이고[㈜ 살람프시오(Salampsio)와 구브로(Cyprus).] 셋은 아들이었다. 그런데 막내아들은 로마에서 유학 도중 죽고말았다. 따라서 남은 두 아들은[㈜ 알렉산더(Alexander)와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 모친이 왕족의 후예이기에 왕족의 대우를 받았다. 이 두 아들은 헤롯이 왕이 된 후에 낳은 아들들이었다. 한편 헤롯은 마리암메를 무척 사랑했고, 그 사랑은날마다 그 열기가 더해가서 마침내 마리암메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전혀 무감각했다. 그러나 마리암메는 그가 그녀를사랑하는 이상으로 그를 미워했다. 마리암메가 그를 그토록 미워 원하는 이유는 헤롯이 그녀의 외조부인 힐카누스를 살해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헤롯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대담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마리암메는 헤롯에게 그녀의 외조부인 힐카누스와 그녀의 동생인 요나단(Jonathan)을[㈜ 고대.15권. 3:3(51)등에 나오는 설명에서는 아리스토불루스로 불리워짐(아마도 그의 둘째 이름인 것 같음).] 처형한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대답하게 비난했다. 헤롯이 이에 어린아이 티를 막 벗은 요나단까지 처형한 내막은 아래와 같다. 헤롯은 그를 열일곱 살 때 대제사장직에 임명하였다. 이에 어린 요나단이 절기 때에 대제사장의 의복을 입고 제단으로 나아가면, 수많은 군중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에 헤롯은 골(Gaul)[㈜ 고대.에는 상세한 언급이 없음. 또한 라이나흐가 지적한 대로 이것은 또 하나의 시대착오이다. 주전 30년 클레오파트라가 죽은후 헤롯이 골(Gaul)지방의 그의 경호대만을 맞아들였다.(고대. 15권. 7:3(217);전쟁.1권. 20:3 (397). 아리스토불루스는 5년 일찍(즉 주전 35년에) 살해당하였다.] 병사들에게 밤중에 그를 여리고로 데려가 물에 빠뜨려 죽여버리라고 명령하였고 그들은 이 명령에 따라 요나단을 죽였다.



 3. 헤롯의 누이와 모친이 그 아내를 중상 모략함



 이런 이유 때문에 마리암메는 헤롯과 그의 누이와 모친에게 매우 오만불손한 태도로 힐난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에 못 들은척했다. 그러나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헤롯의 모친과 누이는 마리암메의 부정을 고자질하면 헤롯이 가장 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헤롯에게 마리암메가 정조를 지키지 않았다고 중상모략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럴듯한 상황으로 보이기 위해 조작해서 헤롯에게 고했다. \”마리암메는 애굽의 안토니에게 그녀의 초상화를 보내면서까지 갖은 추파를 던지고 있어요. 그녀의 색욕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서 남자라고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따라가며 특히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토니에게까지 꼬리를 치고 있어요\”. 그의 동생과 모친의 이와 같은 말은 헤롯으로 하여금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고, 마리암메에 대한 뜨거운 애정은 이제 무서운 시기심으로 비화됐다. 헤롯은 클레오파트라처럼 간교한 술책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간계에 걸려 리사니아스(Lys-anias) 왕과[㈜ 칼키스(Chalcis)의 왕 : 그가 클레오파트라의 사주에 의해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고대. 15권. 4:1(92)에 언급되어 있다. 전쟁. 1권. 18:4(360)에서는 수리아에서의 고위 관리들에 대한 음모에 관하여 전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의 이름은 언급되고 있지 않다. 마지막 부분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의도적인 음모에 의해 희생되었던 말쿠스(Malchus)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최후에 관하여는 더 이상의 언급이 없다.] 아라비아 왕 말리쿠스(Malichus)가 목숨을 잃었던 사실이 떠오르자 결혼의 파경은 고사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섬뜩했다.



4. 마리암메에 대한 헤롯의 사랑



 이때 헤롯이 해외원정을 떠나야 될 일이 있었는데 그는 그의 누이동생 살로메(Salome)의 남편인 요셉(Joseph)에게 마리암메를 감시하도록 했다. 요셉은 헤롯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충실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헤롯은 비밀지령을 통해 \”만일 안토니가나를 죽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즉시 내 아내 마리암메를 살해하게\”라고 그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요셉이 다른 나쁜 의도에서가아니라 헤롯이 죽음으로도 아내와의 이별을 원치 않는다는 그의뜨거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이 비밀을 그녀에게 알리고야 말았다. 그후 헤롯은 귀국[주전 약29년]해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지금까지 겪어온 어떠한 여인들보다도 마리암메를 더 사랑한다고 하며 거듭 맹세까지도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예, 그래요, 요셉에게 나를 죽이라고까지 명령할 정도로 극진하게 나를 사랑하는 것을 왜 모르겠어요\”라고 쏘아붙였다.



 5. 헤롯이 누이 살로메의 간교에 아내 마리암메를 살해함



 헤롯은 그의 중대한 비밀이 누설된 것을 알자 미친 사람처럼 돌변했고 요셉이 그녀와 불륜을 맺지 않고는 결코 그런 비밀을 발설했을리 없다고 외쳐댔다. 그는 격정을 견딜 수 없어 자리를 뛰쳐나가 궁중 안을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절호의 기회를 잡은 살로메는 요셉과 마리암메가 통정한 것이 틀림없노라고 헤롯을 충동질했다. 이에 헤롯은 끓어오르는 질투심과 분노를 억제치 못하고 요셉과 마리암메를 즉시 처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곧 격정이 가라앉자 헤롯은 후회했고, 다시 그녀에 대한 애정이 불붙기 시작해서, 그는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수용치 못했으며 정신이 나갈 때에는 마치 그녀가 살아서 앞에 있는 것처럼 되뇌이곤 했다. 그는 그녀가 살아있을 때 가졌던 사랑만큼이나 그의 슬픔이 깊어지게 됐을 때에야 그녀를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고대.15권에 수록되어 있는 마리암메(Mariamme)의 죽음에 관한 설명은 이와는 다르다. 이에 관하여는 신기하게도 유사한 두 가지 예화가 있다. 헤롯이 안토니에게로 가는(voyage) 도중(주전 약34년)에 요셉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하여 요셉은 사형당하였으며,마리암메는 투옥되었다. 헤롯이 아구스도에게로 항해 도중에(주전약29년) 소에무스(Soemus)가 보인 유사한 무분별한 행동 때문에 그녀는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처형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 TN-catholicdictionary-C2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제 1권 제 22장 대제사장 아리스토불루스와 힐카누스의 살해와 또한 왕비 마리암메의 처형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22 장


    대제사장 아리스토불루스와 힐카누스의 살해와 또한 왕비 마리암메의 처형에 대하여


    1. 헤롯의 가정적인 불행


     그러나 헤롯은 외부적으로는 대단히 성공했을지 몰라도 가정적으로는 엄청난 불화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정에서의 불화의시작은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내 마리암메(Maramme)때문에 발생했다. 헤롯이 왕위에 오르기 전, 범인(凡人)이었을 당시 결혼한 예루살렘 출신의 도리스(Doris)를 내쫓고,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의 아들인 알렉산더(Alexander)의 딸 마리암메와 결혼을 했었다.[㈜ 전쟁. 1권. 12:3(241).] 그의 가정에서 분란이 일어난 것은 결혼한 직후였으나 심화되어 밖으로 표출된 것은 그가 로마에서 돌아온 뒤이다. 그는 마리암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위해 전처 소생인 안티파테르(Antipater)를 예루살렘 밖으로 추방하고 절기 때를 제외하고는 나타나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후 헤롯은 처(妻) 외조부(外祖父)인 힐카누스(Hyrcanus)가 파르티아(Parthia)에서 유대로 돌아오자 반역의 음모를 꾀했다는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주전 약 30년].

     힐카누스는 수리아를 휩쓸고 간 바르자파르네스(Barzapharnes)에게 포로로 잡혀 파르티아로 끌려갔던 것이다.[㈜ 전쟁. 1권. 13:5(260).] 그런데 그 곳의 유대인들은 그의 처지가 매우 불리하므로 파르티아를떠나지 말 것을 간청했었다. 사실 이들의 간청을 그가 듣고 유브라데(Euphrates)강을 건너지 않았던들 죽음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손녀의 결혼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결과가 되었다. 그는 자기 손녀가 헤롯과 결혼한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고, 또 조국에 대한 향수가 대단히 컸기에 파르티아를 떠나 유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헤롯은 그가 정권 탈취를 위해서 귀국한 것으로는 믿지 않았지만 힐카누스가 자기보다 왕위의 서열상 더 적격일 것이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마침내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의 퇴위에 관하여는 전쟁.1권. 6:1(120)을 보라.]


    2. 마리암메가 낳은 헤롯의 자식들


     헤롯은 마리암메와의 사이에 다섯 자녀가 있었는데 둘은 딸이고[㈜ 살람프시오(Salampsio)와 구브로(Cyprus).] 셋은 아들이었다. 그런데 막내아들은 로마에서 유학 도중 죽고말았다. 따라서 남은 두 아들은[㈜ 알렉산더(Alexander)와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 모친이 왕족의 후예이기에 왕족의 대우를 받았다. 이 두 아들은 헤롯이 왕이 된 후에 낳은 아들들이었다. 한편 헤롯은 마리암메를 무척 사랑했고, 그 사랑은날마다 그 열기가 더해가서 마침내 마리암메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전혀 무감각했다. 그러나 마리암메는 그가 그녀를사랑하는 이상으로 그를 미워했다. 마리암메가 그를 그토록 미워 원하는 이유는 헤롯이 그녀의 외조부인 힐카누스를 살해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헤롯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대담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마리암메는 헤롯에게 그녀의 외조부인 힐카누스와 그녀의 동생인 요나단(Jonathan)을[㈜ 고대.15권. 3:3(51)등에 나오는 설명에서는 아리스토불루스로 불리워짐(아마도 그의 둘째 이름인 것 같음).] 처형한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대답하게 비난했다. 헤롯이 이에 어린아이 티를 막 벗은 요나단까지 처형한 내막은 아래와 같다. 헤롯은 그를 열일곱 살 때 대제사장직에 임명하였다. 이에 어린 요나단이 절기 때에 대제사장의 의복을 입고 제단으로 나아가면, 수많은 군중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에 헤롯은 골(Gaul)[㈜ 고대.에는 상세한 언급이 없음. 또한 라이나흐가 지적한 대로 이것은 또 하나의 시대착오이다. 주전 30년 클레오파트라가 죽은후 헤롯이 골(Gaul)지방의 그의 경호대만을 맞아들였다.(고대. 15권. 7:3(217);전쟁.1권. 20:3 (397). 아리스토불루스는 5년 일찍(즉 주전 35년에) 살해당하였다.] 병사들에게 밤중에 그를 여리고로 데려가 물에 빠뜨려 죽여버리라고 명령하였고 그들은 이 명령에 따라 요나단을 죽였다.


     3. 헤롯의 누이와 모친이 그 아내를 중상 모략함


     이런 이유 때문에 마리암메는 헤롯과 그의 누이와 모친에게 매우 오만불손한 태도로 힐난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에 못 들은척했다. 그러나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헤롯의 모친과 누이는 마리암메의 부정을 고자질하면 헤롯이 가장 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헤롯에게 마리암메가 정조를 지키지 않았다고 중상모략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럴듯한 상황으로 보이기 위해 조작해서 헤롯에게 고했다. “마리암메는 애굽의 안토니에게 그녀의 초상화를 보내면서까지 갖은 추파를 던지고 있어요. 그녀의 색욕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서 남자라고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따라가며 특히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토니에게까지 꼬리를 치고 있어요”. 그의 동생과 모친의 이와 같은 말은 헤롯으로 하여금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고, 마리암메에 대한 뜨거운 애정은 이제 무서운 시기심으로 비화됐다. 헤롯은 클레오파트라처럼 간교한 술책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간계에 걸려 리사니아스(Lys-anias) 왕과[㈜ 칼키스(Chalcis)의 왕 : 그가 클레오파트라의 사주에 의해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고대. 15권. 4:1(92)에 언급되어 있다. 전쟁. 1권. 18:4(360)에서는 수리아에서의 고위 관리들에 대한 음모에 관하여 전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의 이름은 언급되고 있지 않다. 마지막 부분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의도적인 음모에 의해 희생되었던 말쿠스(Malchus)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최후에 관하여는 더 이상의 언급이 없다.] 아라비아 왕 말리쿠스(Malichus)가 목숨을 잃었던 사실이 떠오르자 결혼의 파경은 고사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섬뜩했다.


    4. 마리암메에 대한 헤롯의 사랑


     이때 헤롯이 해외원정을 떠나야 될 일이 있었는데 그는 그의 누이동생 살로메(Salome)의 남편인 요셉(Joseph)에게 마리암메를 감시하도록 했다. 요셉은 헤롯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충실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헤롯은 비밀지령을 통해 “만일 안토니가나를 죽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즉시 내 아내 마리암메를 살해하게”라고 그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요셉이 다른 나쁜 의도에서가아니라 헤롯이 죽음으로도 아내와의 이별을 원치 않는다는 그의뜨거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이 비밀을 그녀에게 알리고야 말았다. 그후 헤롯은 귀국[주전 약29년]해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지금까지 겪어온 어떠한 여인들보다도 마리암메를 더 사랑한다고 하며 거듭 맹세까지도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예, 그래요, 요셉에게 나를 죽이라고까지 명령할 정도로 극진하게 나를 사랑하는 것을 왜 모르겠어요”라고 쏘아붙였다.


     5. 헤롯이 누이 살로메의 간교에 아내 마리암메를 살해함


     헤롯은 그의 중대한 비밀이 누설된 것을 알자 미친 사람처럼 돌변했고 요셉이 그녀와 불륜을 맺지 않고는 결코 그런 비밀을 발설했을리 없다고 외쳐댔다. 그는 격정을 견딜 수 없어 자리를 뛰쳐나가 궁중 안을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절호의 기회를 잡은 살로메는 요셉과 마리암메가 통정한 것이 틀림없노라고 헤롯을 충동질했다. 이에 헤롯은 끓어오르는 질투심과 분노를 억제치 못하고 요셉과 마리암메를 즉시 처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곧 격정이 가라앉자 헤롯은 후회했고, 다시 그녀에 대한 애정이 불붙기 시작해서, 그는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수용치 못했으며 정신이 나갈 때에는 마치 그녀가 살아서 앞에 있는 것처럼 되뇌이곤 했다. 그는 그녀가 살아있을 때 가졌던 사랑만큼이나 그의 슬픔이 깊어지게 됐을 때에야 그녀를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고대.15권에 수록되어 있는 마리암메(Mariamme)의 죽음에 관한 설명은 이와는 다르다. 이에 관하여는 신기하게도 유사한 두 가지 예화가 있다. 헤롯이 안토니에게로 가는(voyage) 도중(주전 약34년)에 요셉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하여 요셉은 사형당하였으며,마리암메는 투옥되었다. 헤롯이 아구스도에게로 항해 도중에(주전약29년) 소에무스(Soemus)가 보인 유사한 무분별한 행동 때문에 그녀는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처형되었다는 것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