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장
황금 독수리상이 산산조각이 난 것과 헤롯이 죽음이 임박하자 야만성을 드러낸 것과, 자살을 기도하고 안티파테르를 처형하라고 명령하고는 5일을 더 살다 죽은 것에 대하여
1. 헤롯의 병이 악화됨
헤롯의 병은 노년인데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했기에 더욱 더 악화되어 갔다. 그의 나이 70인데다 최근 들어 아들들로 인한 비극적인 가정의 불행이 겹쳐 그는 극도로 쇠약해져 갔다. 비록 병환상태가 조금 호전되는 듯해도 그의 생활에는 기쁨이 전혀 없었다. 또 안티파테르가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괴로움은 더욱 더 컸다. 그를 아직까지 살려둔 이유는 그를 조용히 처형하려 하지 않고, 건강이 회복되는 즉시 공개적으로 처형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2. 헤롯 성전으로부터 금 독수리상을 헐어내려는 선동적인 시도[주전 4년]
헤롯왕이 갖가지 고통중에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군중들의 반란까지 일어났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율법에 정통하고 학식이높다는 평판을 들으면서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두 박사들[㈜ 헬라의 \”궤변론자들\”. 이 헬라어 용어는 원래는 아무런 나쁜 뜻이 없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랍비\”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요세푸스가 수사학 등의 유급 교수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즉 세포라이우스(sepphoraeus)의 아들 유다(Judas)와 말가루스(Margalus)의 아들 마티아스(Matthias)가 있었다. 이들이 율법에 대해 강의를 할 때면 많은 청년들이 모여들어 매일처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들 랍비는 헤롯왕이 실의와 질병이 더욱 깊어짐에 따라 모여든 청년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지금은 하느님의 율법에 정면으로 대적하려고 세워진 저 건축물들을 부수고 하느님의 영광을 되찾는 아주 좋은 때입니다. 사실 율법에는 성전 안에 어떠한 상이나 흉상이나 살아있는 피조물을 세우는 것을 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롯왕은 성전 대문 위에 금 독수리상을 세웠습니다.\” 이 랍비들은 덧붙이기를 그 우상들을 산산조각 부숴뜨리라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비록 우리의 행동이 매우 위험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나라의 율법을지키기 위한 숭고한 행동이기에 우리들의 영혼은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며,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철학이 없이 무식하게 생명연장에만 관심이 있고 영웅적으로 죽기보다 늙고 병들어 죽으려 하는 자는 비열한 자일 뿐입니다.\”
3. [금 독수리상을 끌어내려 도끼로 산산조각 내버린 청년들이 체포됨]
그들이 열정적으로 강론하고 있을 때 헤롯왕의 사망 소식이 돌기 시작했다. 이 소문을 들은 청년들은 더욱 더 대담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낮이라서 성전에 많은 사람들이 배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 지붕에 있는 금 독수리상을 두꺼운 끈으로 끌어내어 도끼로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 사건은 즉시 헤롯 성전을 지키는 수비대장에게 보고되었고, 보고를 받은 수비대장[㈜ 아마도 \”성전의 대장\”을 의미하는 것임.]은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청년 40여명을 붙잡아 왕에게 끌고 갔다. 헤롯왕은 먼저 그들에게 어떻게 감히 금 독수리상을 부술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그들은 떳떳하게 맞섰다. 계속해서 헤롯왕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느냐? 그런 짓은 당연히 사형에 처해질텐데, 그런데도 기쁠 수있단 말이냐?\” 그러나 그 청년들은 대답했다.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행한 것이고, 또 그 일로 우리가 죽어야 더 큰 행복이 주어지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4. [신성모독죄와 체제 전복의 죄목으로 산 채로 화형당 함]
이러한 답변들은 헤롯왕으로 하여금 잠시 병을 잊을 정도로 격분케 하였다. 이에 헤롯은 그들을 공회에[㈜ 고대. 12권. 4:2(160) 이하에 의하자면 여리고의 극장에서의 행정 장관의 모임.] 끌고 나가서, 율법을 신봉한다는 미명하에 신성모독죄를 저지를 뿐 아니라, 체제 전복을 하려는 대역죄인이라 하며 그들의 경건치 못한 이단성을 탄핵하여 처벌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따라 백성들은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먼저 직접 관련된 주동자들만 처벌하고 배후 세력들은 나중에 체포하도록 간청했다. 그러자 배후 세력에 대한 헤롯의 노여움은 수그러들었다. 또 내키지는 않았지만 헤롯은 동의를 하고 그들을 선동한 선생들과 함께 신상들을 성전 지붕에서 끌어내린 범인들을 산 채로 화형시키고, 배후 세력들은 담당관리들에게 일임하여 처벌토록 했다.
5. 헤롯의 최후 질병
이때부터 헤롯왕의 고질병은 몸 전체로 퍼지기 시작해서 그의 고통은 극도에 이르렀다. 고열은 아닐지라도 열이 있었으며, 온몸에는 피부 가려움증으로 견딜 수 없었고, 뱃속에도 끊임없는 고통과 발에 악성종양과 배의 염증, 그리고 은밀한 부분의 회저(懷疽)로 벌레가 생기고[㈜ 행 12:23에는 그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되어 있는데 \”충이 먹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식으로 호흡조차 힘들어지며[㈜ 이 헬라어의 의미는 수직으로 서있는 상태로밖에 숨쉴 수 없는 것을 나타낸다.] 사지에 경련이 일었다. 점술가에 따르면 이렇게 헤롯이 병들게된 원인은 모두 그가 랍비들을 잘못 다룬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고통에 악착같이 싸우면서도 헤롯왕은 삶을포기하지 않고 회복될 것을 희망하며 온갖 치료 방법을 다 사용했는데, 예를 들면 요단강을 건너가 아스팔티티스(Asphaltitis)호수에[㈜ 사해. 카리르호에(Callirrhoe, 헤롯의 목욕탕)는 사해의 북동쪽 근처에 있다.] 지하수로 흘러들어가 음료수로도 충분히 사용 가능한 칼리르호에(Callirrhoe) 온천을 이용하기도 했다. 또 뜨거운 기름으로 온몸의 체온을 올리라는 의사들의 권고에 따라서, 기름이가득한 목욕통속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더욱 더 쇠약해지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그의 눈도 실명하게 되었다. 한번은 그의 종들이 부산을 떨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조금 회복되는 듯했으나, 또 다시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자 헤롯왕은 병사들 각자에게는 50드라크마씩을 주고 지휘관과 그의 친구들에게는 그보다 더 상당한 액수를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6. 헤롯이 여리고에서 유명인사들을 체포함
헤롯왕은 여행에서 돌아왔는데, 비참한 상태에 빠진 여리고(Jericho)성에 도착해서도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 답지 않게 잔인무도한 계획을 세워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대 전국 각지에서 유명인사들을 소환하여 경기장(hippodrome)에 감금하도록 명령했다. 또 그의 여동생 부부인 살로메와 알렉사스를 불러 부탁했다. \”짐작컨대 유대인들이 내가 죽는 날을 명절로 기념하여 기뻐할 것이오.[㈜ 고대.17권. 6:5(176), \”그는 유대인의 감정에 무지하지 않았다. 또한 그의 죽음이 그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한 고전 주석가는 기슬르월(12월) 제7일에 열리는 유대인의 축제가 헤롯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축제는 메길랏드 타아니드(Megillath Taanith)라고 일컬어지는 유대력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전승을 정확히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후편(전쟁.2권. 1:3(10)에 나와 있는 것처럼 헤롯은 유월절이 조금 지나서 사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대들이 내 지시만 따라준다면 비록 슬픔의 의미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성대한 장례를 치룰 것이오. 왜냐하면 내가 숨지는 순간 그대들은 여기 감금되어 있는 자들을 풀어 대량으로 학살해서 유대 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두 나를 위해 울어 줄 것이 아니겠소.?\”
7. 아크메에 대한 사형집행
헤롯이 이렇게 지시했을 때 로마의 사신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이 날아왔는데 그 내용은 가이사의 명령에 따라 아크메(Acme)가[㈜ 전쟁.1권. 32:6 (641).] 처형되었고, 또 안티파테르에 대해서는 사형에 언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만일 부친인 헤롯왕이 안티파테르를 국외로 추방하려 한다면 그것도 허용한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잠시 소생하는 듯했으나, 결국 심한 기침과 영양실조로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운명의 시간을 결정지으려 했다.
[헤롯의 자살기도]
그는 사과를 먹을 때 직접 깎아먹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칼을 달라고 하여 주위에 방해할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자결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조카 아키압(Achiab)이 달려들어 그의 손을 붙잡으며 자살을 가로 막았다. 이때 왕궁에서는 헤롯왕이 죽었다고 믿고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안티파테르의 처형]
안티파테르는 그 소리를 듣고 기뻐하여 재빨리 간수들에게 뇌물을 주며 그를 풀어 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간수장은 그 제안을 거절할 뿐 아니라 왕에게 급히 달려가 고해 바쳤다. 이에 헤롯왕은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로 고함치며 경호원들을 보내 즉각 그를 처형토록 했고, 그 처형된 시신을 힐카니움(Hyrcanium)에[㈜ 여기에 있는 헬라어는 \”힐키니아.\”] 매장토록 했다. 그후 헤롯왕은 유언장을 다시 썼는데, 그의 후계자로 안디바의 형이며 가장 나이가 많은 아켈라오를 임명하고 안디바는 분봉왕으로 임영했다.[㈜ 둘다 사마리아인이었던 말다케(Malthace)의 아들들.]
8. 헤롯의 죽음[주전 4년 3월경]
헤롯왕은 안티파테르를 처형하고 5일을 더 살다가 사망했다.그는 안티고누스(Antigonus)를 살해하고 왕이 된 날로부터 34년을,[㈜ 주전 37년.] 그리고, 로마로부터 왕으로 임명받은 후 부터는 37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전 40년. 요세푸스는 로마력에 따른 왕들의 통치의 시작과 끝에 있는 짧은 달 수들은 온전한 일년으로 계산한다(Schurer. G.J.V.i : 416).] 그의 생애에 있어서 더할 수 없이 축복받은 것은 일개 평민으로서 왕위를 물려받고 오랫동안 왕좌에있다가 그의 후손들에게 물려준 것이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그의 사생활에 있어 아들들에 관한 부분은 세상에서 다시 없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한편 살로메 부부는 병사들이 헤롯왕의 죽음을 알기 전 왕궁에 남아서 왕이 죽기 전에 자신이 죽는 즉시 죄수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었는데, 마음이 변하여 그들을 다 석방하여 고향에 돌아가도록 풀어주라고 했노라고 일렀다. 살로메 부부는 죄수들이 고향에 돌아가자 병사들에게 왕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죄수들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을 여리고의 원형경기장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이도록 했다. 이에 헤롯왕에게서 그의 인장이 새겨진 반지를 물려받고 톨레미(Ptolemy)가 군중들 앞에 나아가 돌아가신 왕의 은덕을 기리고,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후 군대에는 왕의 후계자에게도 전심과 전력을 다하여 충성하라는 내용의 유언장을 읽었다. 또 유언장의 추가 사항으로는 빌립(Philip)에게[㈜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드라고닛(Trachonitis)과 인근 지역을 다스리게하고, 안디바에게는 이미 언급한 대로 분봉왕으로 지명하는[㈜ 전쟁. 1권. 33:7 (664).] 한편 아켈라오는 왕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헤롯왕의 유언에 대한 모든 비준과 결정은 가이사의 감독 하에 있다는 것을 아는 그의 인장반지를 가지고 왕의 유언을 추인받기 위하여 가이사에게 나아갔다. 이것은 헤롯이 유언장에서 특별히 그렇게 하라고 했던 것을 따른 것이다.
9. 헤롯왕의 장례식
유언장이 공개된 즉시 아켈라오는 왕위 즉위를 축하하는 환호성과 갈채를 받았다. 군인들은 백성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자리에서 신하로서 의무를 다할 것을 약속하고, 또 왕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원했다. 그리고 헤롯왕의 장례식도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헤롯왕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치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한 아켈라오는 고인의 명예에 맞도록 절차에 따라 갖가지 진귀한 장식품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棺)은 온통 금으로 덧입혀지고 진귀한 보석들로 장식되었으며, 갖은 수를 놓은 자주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왕의 시신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씌우고, 오른손 곁에는 홀(sceptre)을 놓은 후 자주색 수의로 덮혀 있었다. 그의 장례행렬에는 관 주위에 헤롯의 아들들과 수많은 친척들이 따랐고, 그다음에는 호위병들과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완전 무장한 드라키안(Thracian), 게르만(Germans)과 골(Gauls) 연대가 뒤를 따랐다. 그외 나머지 군대는 무장을 하고 맨 앞에 세워서 지휘관과 예하 부대장의 명령에 따라 행진토록 했다. 또 군대의 뒤에는500명의 헤롯의 종들과 일꾼들이 이 향품을 들고 따랐다. 장례행렬은 헤롯의 유언대로 200퍼얼롱이나 멀리 떨어진 헤로디온(Her-odion)에 이어졌다. 이렇게 하여 헤롯의 통치는 끝을 맺었다.

제 33 장
황금 독수리상이 산산조각이 난 것과 헤롯이 죽음이 임박하자 야만성을 드러낸 것과, 자살을 기도하고 안티파테르를 처형하라고 명령하고는 5일을 더 살다 죽은 것에 대하여
1. 헤롯의 병이 악화됨
헤롯의 병은 노년인데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했기에 더욱 더 악화되어 갔다. 그의 나이 70인데다 최근 들어 아들들로 인한 비극적인 가정의 불행이 겹쳐 그는 극도로 쇠약해져 갔다. 비록 병환상태가 조금 호전되는 듯해도 그의 생활에는 기쁨이 전혀 없었다. 또 안티파테르가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괴로움은 더욱 더 컸다. 그를 아직까지 살려둔 이유는 그를 조용히 처형하려 하지 않고, 건강이 회복되는 즉시 공개적으로 처형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2. 헤롯 성전으로부터 금 독수리상을 헐어내려는 선동적인 시도[주전 4년]
헤롯왕이 갖가지 고통중에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군중들의 반란까지 일어났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율법에 정통하고 학식이높다는 평판을 들으면서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두 박사들[㈜ 헬라의 “궤변론자들”. 이 헬라어 용어는 원래는 아무런 나쁜 뜻이 없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랍비”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요세푸스가 수사학 등의 유급 교수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즉 세포라이우스(sepphoraeus)의 아들 유다(Judas)와 말가루스(Margalus)의 아들 마티아스(Matthias)가 있었다. 이들이 율법에 대해 강의를 할 때면 많은 청년들이 모여들어 매일처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들 랍비는 헤롯왕이 실의와 질병이 더욱 깊어짐에 따라 모여든 청년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지금은 하느님의 율법에 정면으로 대적하려고 세워진 저 건축물들을 부수고 하느님의 영광을 되찾는 아주 좋은 때입니다. 사실 율법에는 성전 안에 어떠한 상이나 흉상이나 살아있는 피조물을 세우는 것을 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롯왕은 성전 대문 위에 금 독수리상을 세웠습니다.” 이 랍비들은 덧붙이기를 그 우상들을 산산조각 부숴뜨리라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비록 우리의 행동이 매우 위험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나라의 율법을지키기 위한 숭고한 행동이기에 우리들의 영혼은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며,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철학이 없이 무식하게 생명연장에만 관심이 있고 영웅적으로 죽기보다 늙고 병들어 죽으려 하는 자는 비열한 자일 뿐입니다.”
3. [금 독수리상을 끌어내려 도끼로 산산조각 내버린 청년들이 체포됨]
그들이 열정적으로 강론하고 있을 때 헤롯왕의 사망 소식이 돌기 시작했다. 이 소문을 들은 청년들은 더욱 더 대담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낮이라서 성전에 많은 사람들이 배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 지붕에 있는 금 독수리상을 두꺼운 끈으로 끌어내어 도끼로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 사건은 즉시 헤롯 성전을 지키는 수비대장에게 보고되었고, 보고를 받은 수비대장[㈜ 아마도 “성전의 대장”을 의미하는 것임.]은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청년 40여명을 붙잡아 왕에게 끌고 갔다. 헤롯왕은 먼저 그들에게 어떻게 감히 금 독수리상을 부술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그들은 떳떳하게 맞섰다. 계속해서 헤롯왕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느냐? 그런 짓은 당연히 사형에 처해질텐데, 그런데도 기쁠 수있단 말이냐?” 그러나 그 청년들은 대답했다.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행한 것이고, 또 그 일로 우리가 죽어야 더 큰 행복이 주어지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4. [신성모독죄와 체제 전복의 죄목으로 산 채로 화형당 함]
이러한 답변들은 헤롯왕으로 하여금 잠시 병을 잊을 정도로 격분케 하였다. 이에 헤롯은 그들을 공회에[㈜ 고대. 12권. 4:2(160) 이하에 의하자면 여리고의 극장에서의 행정 장관의 모임.] 끌고 나가서, 율법을 신봉한다는 미명하에 신성모독죄를 저지를 뿐 아니라, 체제 전복을 하려는 대역죄인이라 하며 그들의 경건치 못한 이단성을 탄핵하여 처벌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따라 백성들은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먼저 직접 관련된 주동자들만 처벌하고 배후 세력들은 나중에 체포하도록 간청했다. 그러자 배후 세력에 대한 헤롯의 노여움은 수그러들었다. 또 내키지는 않았지만 헤롯은 동의를 하고 그들을 선동한 선생들과 함께 신상들을 성전 지붕에서 끌어내린 범인들을 산 채로 화형시키고, 배후 세력들은 담당관리들에게 일임하여 처벌토록 했다.
5. 헤롯의 최후 질병
이때부터 헤롯왕의 고질병은 몸 전체로 퍼지기 시작해서 그의 고통은 극도에 이르렀다. 고열은 아닐지라도 열이 있었으며, 온몸에는 피부 가려움증으로 견딜 수 없었고, 뱃속에도 끊임없는 고통과 발에 악성종양과 배의 염증, 그리고 은밀한 부분의 회저(懷疽)로 벌레가 생기고[㈜ 행 12:23에는 그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되어 있는데 “충이 먹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식으로 호흡조차 힘들어지며[㈜ 이 헬라어의 의미는 수직으로 서있는 상태로밖에 숨쉴 수 없는 것을 나타낸다.] 사지에 경련이 일었다. 점술가에 따르면 이렇게 헤롯이 병들게된 원인은 모두 그가 랍비들을 잘못 다룬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고통에 악착같이 싸우면서도 헤롯왕은 삶을포기하지 않고 회복될 것을 희망하며 온갖 치료 방법을 다 사용했는데, 예를 들면 요단강을 건너가 아스팔티티스(Asphaltitis)호수에[㈜ 사해. 카리르호에(Callirrhoe, 헤롯의 목욕탕)는 사해의 북동쪽 근처에 있다.] 지하수로 흘러들어가 음료수로도 충분히 사용 가능한 칼리르호에(Callirrhoe) 온천을 이용하기도 했다. 또 뜨거운 기름으로 온몸의 체온을 올리라는 의사들의 권고에 따라서, 기름이가득한 목욕통속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더욱 더 쇠약해지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그의 눈도 실명하게 되었다. 한번은 그의 종들이 부산을 떨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조금 회복되는 듯했으나, 또 다시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자 헤롯왕은 병사들 각자에게는 50드라크마씩을 주고 지휘관과 그의 친구들에게는 그보다 더 상당한 액수를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6. 헤롯이 여리고에서 유명인사들을 체포함
헤롯왕은 여행에서 돌아왔는데, 비참한 상태에 빠진 여리고(Jericho)성에 도착해서도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 답지 않게 잔인무도한 계획을 세워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대 전국 각지에서 유명인사들을 소환하여 경기장(hippodrome)에 감금하도록 명령했다. 또 그의 여동생 부부인 살로메와 알렉사스를 불러 부탁했다. “짐작컨대 유대인들이 내가 죽는 날을 명절로 기념하여 기뻐할 것이오.[㈜ 고대.17권. 6:5(176), “그는 유대인의 감정에 무지하지 않았다. 또한 그의 죽음이 그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한 고전 주석가는 기슬르월(12월) 제7일에 열리는 유대인의 축제가 헤롯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축제는 메길랏드 타아니드(Megillath Taanith)라고 일컬어지는 유대력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전승을 정확히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후편(전쟁.2권. 1:3(10)에 나와 있는 것처럼 헤롯은 유월절이 조금 지나서 사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대들이 내 지시만 따라준다면 비록 슬픔의 의미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성대한 장례를 치룰 것이오. 왜냐하면 내가 숨지는 순간 그대들은 여기 감금되어 있는 자들을 풀어 대량으로 학살해서 유대 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두 나를 위해 울어 줄 것이 아니겠소.?”
7. 아크메에 대한 사형집행
헤롯이 이렇게 지시했을 때 로마의 사신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이 날아왔는데 그 내용은 가이사의 명령에 따라 아크메(Acme)가[㈜ 전쟁.1권. 32:6 (641).] 처형되었고, 또 안티파테르에 대해서는 사형에 언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만일 부친인 헤롯왕이 안티파테르를 국외로 추방하려 한다면 그것도 허용한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잠시 소생하는 듯했으나, 결국 심한 기침과 영양실조로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운명의 시간을 결정지으려 했다.
[헤롯의 자살기도]
그는 사과를 먹을 때 직접 깎아먹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칼을 달라고 하여 주위에 방해할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자결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조카 아키압(Achiab)이 달려들어 그의 손을 붙잡으며 자살을 가로 막았다. 이때 왕궁에서는 헤롯왕이 죽었다고 믿고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안티파테르의 처형]
안티파테르는 그 소리를 듣고 기뻐하여 재빨리 간수들에게 뇌물을 주며 그를 풀어 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간수장은 그 제안을 거절할 뿐 아니라 왕에게 급히 달려가 고해 바쳤다. 이에 헤롯왕은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로 고함치며 경호원들을 보내 즉각 그를 처형토록 했고, 그 처형된 시신을 힐카니움(Hyrcanium)에[㈜ 여기에 있는 헬라어는 “힐키니아.”] 매장토록 했다. 그후 헤롯왕은 유언장을 다시 썼는데, 그의 후계자로 안디바의 형이며 가장 나이가 많은 아켈라오를 임명하고 안디바는 분봉왕으로 임영했다.[㈜ 둘다 사마리아인이었던 말다케(Malthace)의 아들들.]
8. 헤롯의 죽음[주전 4년 3월경]
헤롯왕은 안티파테르를 처형하고 5일을 더 살다가 사망했다.그는 안티고누스(Antigonus)를 살해하고 왕이 된 날로부터 34년을,[㈜ 주전 37년.] 그리고, 로마로부터 왕으로 임명받은 후 부터는 37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전 40년. 요세푸스는 로마력에 따른 왕들의 통치의 시작과 끝에 있는 짧은 달 수들은 온전한 일년으로 계산한다(Schurer. G.J.V.i : 416).] 그의 생애에 있어서 더할 수 없이 축복받은 것은 일개 평민으로서 왕위를 물려받고 오랫동안 왕좌에있다가 그의 후손들에게 물려준 것이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그의 사생활에 있어 아들들에 관한 부분은 세상에서 다시 없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한편 살로메 부부는 병사들이 헤롯왕의 죽음을 알기 전 왕궁에 남아서 왕이 죽기 전에 자신이 죽는 즉시 죄수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었는데, 마음이 변하여 그들을 다 석방하여 고향에 돌아가도록 풀어주라고 했노라고 일렀다. 살로메 부부는 죄수들이 고향에 돌아가자 병사들에게 왕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죄수들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을 여리고의 원형경기장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이도록 했다. 이에 헤롯왕에게서 그의 인장이 새겨진 반지를 물려받고 톨레미(Ptolemy)가 군중들 앞에 나아가 돌아가신 왕의 은덕을 기리고,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후 군대에는 왕의 후계자에게도 전심과 전력을 다하여 충성하라는 내용의 유언장을 읽었다. 또 유언장의 추가 사항으로는 빌립(Philip)에게[㈜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드라고닛(Trachonitis)과 인근 지역을 다스리게하고, 안디바에게는 이미 언급한 대로 분봉왕으로 지명하는[㈜ 전쟁. 1권. 33:7 (664).] 한편 아켈라오는 왕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헤롯왕의 유언에 대한 모든 비준과 결정은 가이사의 감독 하에 있다는 것을 아는 그의 인장반지를 가지고 왕의 유언을 추인받기 위하여 가이사에게 나아갔다. 이것은 헤롯이 유언장에서 특별히 그렇게 하라고 했던 것을 따른 것이다.
9. 헤롯왕의 장례식
유언장이 공개된 즉시 아켈라오는 왕위 즉위를 축하하는 환호성과 갈채를 받았다. 군인들은 백성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자리에서 신하로서 의무를 다할 것을 약속하고, 또 왕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원했다. 그리고 헤롯왕의 장례식도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헤롯왕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치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한 아켈라오는 고인의 명예에 맞도록 절차에 따라 갖가지 진귀한 장식품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棺)은 온통 금으로 덧입혀지고 진귀한 보석들로 장식되었으며, 갖은 수를 놓은 자주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왕의 시신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씌우고, 오른손 곁에는 홀(sceptre)을 놓은 후 자주색 수의로 덮혀 있었다. 그의 장례행렬에는 관 주위에 헤롯의 아들들과 수많은 친척들이 따랐고, 그다음에는 호위병들과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완전 무장한 드라키안(Thracian), 게르만(Germans)과 골(Gauls) 연대가 뒤를 따랐다. 그외 나머지 군대는 무장을 하고 맨 앞에 세워서 지휘관과 예하 부대장의 명령에 따라 행진토록 했다. 또 군대의 뒤에는500명의 헤롯의 종들과 일꾼들이 이 향품을 들고 따랐다. 장례행렬은 헤롯의 유언대로 200퍼얼롱이나 멀리 떨어진 헤로디온(Her-odion)에 이어졌다. 이렇게 하여 헤롯의 통치는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