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권 약 6개월간의 사건을 다룸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올 때부터 유대인이 정복될 최악의 궁지에 빠질 때까지
제 1장
예루살렘의 폭동에 대하여, 그리고 양식이 부족하여 시민들이 당한 비참한 모습에 대하여
1. 3개 파당으로 분열된 예루살렘
이미 언급한 대로 티투스가 애굽과 수리아 사이에 있는 사막을 행군하여 가이사랴로 왔으며, 이곳에서 전투를 시작하기에 앞서병력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티투스가 아버지를 도와 알렉산드리아에서 하느님이 새로이 내려주신 통치권을 정비하고 있을 때 예루살렘에 내분이 또 일어나 세 개의 당파로 나누어져서 서로서로 싸우는 일이 생겼다. 이렇게 나누어진 것은 사실 좋은 일이며, 하느님의 공의(divine justice)의 결과라 말할 수 있다. 예루살렘멸망의 시초인 열심당들이 주민들에게 가한 공격에 대해서는 이미 상세하게 언급했었다. 즉 열심당이 언제 결성되어서 어떻게 점점 불행을 증가시켰는지에 대해 앞에서 설명했었다.[㈜ 전쟁.4권. 3:2 (128)이하.] 그러나 지금설명하려는 내분은 마치 식량의 부족으로 인해 서로 잡아 먹는 야수와 같이 그 내분의 광란이 극에 달해 정확히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2. 엘르아살이 새로운 당파를 형성하고 내성전을 점령하다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열심당을 뽑아 처음 창설하여 그들을 성전으로 후퇴시킨 시몬의 아들 엘르아살(Eleazar)[㈜ 전쟁. 4권. 4:1 (225).]은 주민들에게 매일 압박을 주는 요한의 무례한 공격에 무척 화가 났다. 왜냐하면 요한은 전혀 살상하는 것을 그만 둘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엘르아살은 자기보다 후배 폭군인 요한을 따른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엘르아살은 전적인 권력과 통치권을 갖고 싶어서 켈키아스(Chelcias)의아들 유다스(Judas)와 에스론(Ezron)의 아들 시몬과 유명인사를 따라 다니며 힘깨나 쓰는 코바르(Chobar)의 아들 에제키아스(Ezeckias)를 포섭했다. 이들은 많은 열심당원들을 거느리던자들로, 성전의 안뜰을 장악하여 성전 정면에 있는 성전문 위에무기를 설치해 놓았다. 그들은 많은 식량이 있었기 때문에 용기백배해 있었다. 성전 안에는 제사에 쓰일 것이 아주 충분히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면서 전혀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무기를 그곳에 설치해 놓고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요한이 성전 바깥뜰을 점령하다]
요한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숫자에 있어서는 엘르아살보다 많은 장점이 있었지만, 지역적 위치상으로 엘르아살보다 아래에 있는 단점도 있어서 쉽게 두려움 없이 엘르아살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요한의 분노는 너무나 컸기에 그냥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 비록 요한은 그들을 공격하기보다는 엘르아살과그 추종자들로부터 더 많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결코 공격하는것은 멈추지 않았다. 따라서 계속되는 공방전이 있었으며 많은 화살이 오갔으며 성전이 온통 시체들로 쌓이게 되었다.
3. 시몬이 시를 장악하다
주민들이 처해있는 크나큰 재난을 구해주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 기오라의 아들 폭군 시몬은 상부지역과 대부분의 하부지역을 장악한 후, 요한과 그 일당들에게 더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전쟁.4권. 9:11(573).] 왜냐하면 시몬은 요한의 무리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역적으로 불리했기 때문에 맹렬한 공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요한은 엘르아살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로부터 엘르아살의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요한은 중간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양쪽을 대항하면서 싸웠다. 즉요한은 큰 손해를 당하면서 동시에 큰 손해를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엘르아살과 그 일당이 요한보다 위에 있었기 때문에 위치상 같은 잇점을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요한은 아래서 공격해 오는 것은 단지 손으로 화살이나 돌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쉽게 상대방을 격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쪽 성전에서 화살을 던지면서 공격해오는 상대방에 대해서는 투석기를[㈜ 투석자들(=ballistae),속사포수들(=화살을 쏘기위한 일조의 석궁이며 이는 Hudson이 말한 투석기일 수도 있다). 참). 전쟁.3권. 5:2(80).] 사용하여 대항해야 했다. 요한은 속사포나, 노포, 투석기등 적지않은 무기를 갖고 있어서 그를 공격해오는 자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뿐 아니라 제사 임무를 수행하려는 제사장들을 죽이는 데에 많이 사용했다.
[성전에서 제사드리던 사람들이 죽다]
이들은 온갖 악행과 불경건한 짓들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같은 동족들을 미리 수색하고[㈜ 다른 본문에는 \’후에 의심받고 조심스럽게 살펴졌으며 약간 우려되는 이방인들인 본토 유대인\’.] 의심하고 조사를 한 후 제사드리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허락해 주기도 하였다. 이들은 제사드리러 오는 외부인에 대해선 두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성전 뜰에들어간 외부인들은 자주 이들이 싸우는 와중에서 죽임을 당했다. 왜냐하면 투석기로 던져진 돌들이 건물을 통과해 성전까지 날아와서 제사장들과 제사의식을 돕는 자들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의 잔인성을 비난하는데 성공했지만[㈜ 혹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잔인성에 대하여 얼굴을 붉히게 함으로써 진입하는데 성공한\’이 될 것이다.] 온세상 사람들이 거룩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이 유명한 예루살렘성전에 제사드리기 위해서 열정을 가지고 도처에서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제단에 피를 흘리면서 고꾸라져 스스로 제물이 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그들 가운데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할 것 없이 경배드리는 제단 앞에서[㈜ 혹은 \’제사드리기 전에\’.] 피를 뿌리는 일이 생긴 것이었다. 따라서 이방인의 시체가 뒤섞여 온갖 사람들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성전 뜰을 피바다로 만들어놓았다. 오! 가장 사악한 도시 예루살렘이여! 로마군이 이 내란에서 그대를 정결케 하려고 올 때, 얼마나 큰 재앙을 견디려고 그러는가! 이제 그대는하느님을 위한 처소일 수 없으며 결국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도다. 오! 예루살렘이여 그대는 내란으로 동족의 시체를 위한 무덤이 되었고, 거룩한 곳을 시신 매장소로 만들었도다! 그러나 만일 멸망의 주관자인 하느님의 분노를 혹시라도 가라앉힐 수 있다면 그대는 다시 나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참). 바룩서 4:18-21 ; \”이 염병들을 너희들에게 가져오신 이가 너희를 너희 대적들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하느님께 부르짖어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를 건지시리라\”. 요세푸스는 그 책의 전반부에 나오는 참회의 간청에 호의를 보여왔을 것이지만.(주후 70년이후에 쓰여진)책의 후반부에 나오며, 결국 트라얀과 하드리안 치하에서 맹렬한 폭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금은 동족에 대한 애도를 할 때가 아니라 역사적 서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유대인의 내분에 대해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다.
4. 내전이 기근을 초래하다
예루살렘은 3개의 서로 독립적인 반역의 파당 즉 엘르아살과, 요한파, 시몬파 이렇게 3개의 파당이 형성되었다. 거룩한 첫 소산을 장악한 엘르아살파는 주민들의 약탈을 일삼던 요한파와 싸웠고, 요한파는 시몬파와 열렬히 싸웠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식량 공급을 받은 시몬은 다른 두파와 대항하며 싸웠다. 요한이 양쪽에서 공격당했을 때, 그는 공격해 올라오는 자들에게는 회랑에서 창을 던지면서 격퇴시켰고, 반면 성전에서 공격해오는 자들에게는 갖가지 공격무기로 대항했다. 위에서 공격하는 자들이지치고 술 취해서 공격이 중단될 때면 요한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몬파를 공격했다. 그는 또한 접근할 수 있는 몇몇 장소를공격하여 곡식이나 다른 물건들이 가득찬 집들을 불질렀다. 시몬 역시 이런 짓들을 감행했다. 요한의 공격이 없을 때 예루살렘곳곳을 습격했다. 마치 이들은 로마군을 돕기라도 하는 것처럼예루살렘시가 포위공격에 대비하여 쌓아둔 식량을 불사르고 로마의 세력확장에 신경거스리는 것들은 모두 제거해 버리는 것같았다. 따라서 성전 주위에 있던 곳들은 전부 불타버리고 황량한 불모지가 되었으며, 몇 년 동안 포위공격에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곡물은 모두 불타 없어졌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기근이 엄습하여 실제로 일어나기 불가능한 운명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된 것이었다.
5. 민중의 비참상
예루살렘이 이러한 3개 반역의 사악한 무리들 때문에 사방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주민들은 산산조각이 나버린 커다란 몸덩어리와 같았다. 노인들과 여자들은 내란으로 고통에 잠겨 로마군이 와서 이런 내란의 재앙에서 구출해줄 외부전쟁이 일어나기를 몹시 바랠 정도였다. 시민들은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강도들과 협상하거나 그들의 행위를 변화시킬 기회도 없었으며, 강도들의 적인 로마군과 화해할 가능성도 없었고, 도망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감시병들이 곳곳에 배치되어져 있었고, 강도들의 두목들은 서로 적대관계에 있었지만, 로마군과 화해하러 가는 자들이나 로마군에게 도망갈 의사가 있는 듯이 보이는 자들을 공동의 적으로 죽이기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죄없는 자들을 죽이기로 동의한 것이나 다름없다. 서로 싸우는 자들의 소리는 커져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통곡하는 자들의 애통의 소리는 싸우는 소리보다 더했다. 주민들의 재난이 연속적으로 계속 일어났기 때문에 통곡의 소리가 떠날 날이 없었던 것이다. 비록 그들이 극심한 공포 때문에 크게소리내어 울 수는 없었고, 두려움으로 내적 고통을 숨겨야만 하는 연고로 신음소리도 감히 내지못하는 심한 마음의 고통을 당하였다. 살아있는 친척들에게도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으며,죽은 자들의 장례를 치러줄 수도 없었다. 이같은 두가지 경우만보더라도 주민들 모두는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분에 휩싸이지 않은 자들에게는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면서 그밖에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내분을 일으키는 당사자들은 서로서로 싸우고 쌓아올린 시체들을 짓밟고 많은 시체들에게 미친 분노를 내면서 점점 더 사납게 되어갔다. 게다가 그들은 치명적인 갖가지 방법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어떤 것을 결정하며 가차없이 실행했으며, 고문이나 야만스런 행위가 어떤 것이든 스스럼없이 자행했다.
[요한이 성전 목재로 군용망대를 만들다]
요한은 성물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전투용기구를 만드는데 이용했다. 왜냐하면 주민들과 제사장들은 그전에 성전을 보수하고 높이를 20규빗 더 높이기로 결정했었다. 아그립바왕이[㈜ 아그립바(Agrippa)2세.] 상당한비용과 아주 대단한 노력을 들여 멀리서 이 목적에 적합한 곧고 큰 좋은 목재들을 가져왔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자 일이 중단되었으며 요한은 그것을 잘라서 망대를 건축하는데 사용했으며, 목재들을 위쪽의 성전에서 공격해오는 적들을 대항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요한은 또한 그 목재들을 가져와서 회당의 서쪽 맞은편에[㈜ 혹은 \’후미진 곳\’. 이는 안뜰 서쪽 벽 가운데 있는 성전( )을 둘러싸고 있는 현관으로부터 개방되어 있음. 그런데 \”문방(gate-room)\”(Hastings, \’D.B.\’ s.v.에 나오는 \’성전\’)이라는 번역은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이 지점에서는 문이 없기 때문이다(자서.40.(200)).] 있는 성전 안뜰 뒤에 망대를 세웠다. 이쪽이외에 다른 쪽에서는 사다리를 놓고 안뜰에 접근할 수 없었다.
6. 티투스가 4개 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하다
이렇게 불결스럽게 만들어진 무기들의 도움으로 요한은 적들을 퇴치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요한이 탑에 한사람도 배치하지 못하게 로마군을 끌어들여 요한의 노력을 헛수고가 되도록 만드셨다. 한편 티투스는 사령부에 군사일부를 집결시키고, 나머지 군사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자기와 합세하라고 명령내린 후, 가이사랴를 떠나 진군했다. 티투스는 그의 아버지 베스파시안이 전에 유대를 공격했던 3개의 군단을[㈜ 5군단, 10군단, 그리고 15군단. 전쟁.3권. 4:2(65).] 가지고 있었으며, 케스티우스(Cestius)지휘 아래 한번 패배한 적이 있는[㈜ 전쟁.2권. 18:9-19장.] 제12군단이 있었다. 제12군단은 용맹하다는 평판을 가진 군대로전에 한번 당했던 패배를 기억하면서 복수를 위해 더욱 민첩하게 진군했다. 이 네 개의 군단 중에 티투스는 제5군단을 엠마오를 통해 그와 연합하도록 지시했으며, 제10군단은 여리고를 통해 올라오도록 명령했다. 티투스 자신은 나머지 군대와 함께 움직였다. 티투스는 게다가 동맹국 왕들의 원군들이 점점 더 불어나 강해졌고, 상당한 숫자의 수리아 원군들도 있었다. 베스파시안이 무키아누스와 함께 이달리야로 보냈던[㈜ 전쟁.4권. 11:1 (632).] 병사들로 인해 4개의 군단의 결원된 병사들은 이제 티투스가 데려온 군단들에 의해 보충되었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에서 선발된 2천명의 군사들과 유브라데(Euphrates)강에서 3,000명의 수비병들이티투스와 함께 왔기 때문이다. 그중에 티투스의 친구 티베리우스 알렉산더(Tiberius Alexander)는[㈜ 이 특출한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의 다양한 경력에 대하여 전쟁.2권. 11:6(220)주를 참고할 것.] 귀족이며 덕망있는 자로전에 알렉산드리아의 총독이었으나, 지금은 티투스 휘하에 있는군대의 장군으로 발탁되었다. 그 이유는 베스파시안이 새로운 통치권을 수락할 때 티베리우스가 제일 먼저 베스파시안을 환영했고,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기 때문이다.티베리우스는 또한 티투스를 상담자(Counsellor)격으로 수행했으며, 이번 전쟁에서도 노년의 경험과 노련미로 그에게 많은 유용한 충고를 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