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폭도 시몬과 요한에 대하여, 또한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보다가 어떻게 니카노르가 창에 상처를 입고 이 사건으로 인해 티투스가 포위 공격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1. 유대인 파벌들의 전력과 상황
예루살렘 안에 있는 병사와 반란자들의 전력은 다음과 같다. 시몬은 이두매인을 제외하고 10,000명의 군대를 갖고 있었으며,그 중 지휘관들은 50명이었고, 시몬은 최고지휘관으로 총 지휘를 했다. 시몬이 거느린 이두매인 파견대는 5,000명이었고, 10명의 지휘관이 맡고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소사스(Sosas)의 아들인 야곱(James), 카틀라스(Cathlas)의 아들인 시몬이 가장 높게 평가받았다.[㈜ 참). 전쟁. 4권(235). 야고보(James)와 시몬(Simon)을 포함하여 20,000명의 이두매 원주민의 군대 장군으로 4명이 나온다로 언급되어 있다. 본문으로부터 예루살렘에서 철수한 병력은 기껏해야 절반 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 전쟁.4권(353)은 전체의 무리가 넌더리가 나서 후퇴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요한은 성전을 점령했을 때 6천 명의 군대를거느렸으며, 12명의 지휘관들이 지휘를 맡았다. 열심당들도 요한과 다투는 것을 그만두고 그와 연합한 숫자가 2,400명에 이르렀고, 엘르아살과 아리누스(Arinus)의 아들 시몬이 지휘를 맡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전쟁. 5권. 1:5(27).]이 두 파당들은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그 파당의 목표물이 되었으며, 그들의 약탈에 언짢은 눈치를 보이는 시민들은 양쪽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시몬은 상부도시와 기드론(Kedron)에 이르는 큰 성벽과[㈜ 세 번째<아그립바(Agrippa)의>성벽.] 실로암에서동쪽으로 구부러진 지점에서 유브라데 강을 넘어 아디아베네(Adiabene)왕인 모노바주스(Monobazus)왕궁까지 이르는 오래된 성벽을 장악하고 있었다.[㈜ 시몬(Simon)은 성벽 두곳에 병력을 배치했는데, 그곳에서 로마군의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티투스의 주력부대에 대항하여 북서쪽에서, 그리고 감람산(Mt. Olive)에서 야영(野營)한 제 10군단에 대항하여 남동쪽에서 공격을 받았다(전쟁.5권. 2:3(70)).] 그는 또한 샘과[㈜ 실로암(Siloam). 전쟁.5권. 9:4(410). 다음에 나오는 요세푸스의 권고는 실로암이 로마군의 수중에 있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지만, 로마군이 성내부 실로암 샘물의 물줄기인 성벽 바깥 샘인 기혼(Gihon)을 점령했다고 가정함으로써 실제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실로암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모순이다. <스미스(Smith), \’예루살렘\'(Jerusalem), i:224>.] 하부도시인아크라지역과 모노바수스왕의 어머니 헬레나(Helena)궁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모노바수스(Monobazus)와 헬레나(Helena)의 궁정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요한은 또한 성전과 그 주변지역 즉 오플라(Ophla)와 가드론 골짜기를 확보하고 있었다. 시몬과 요한의 싸움으로 재가 되어 버린 오플라와 기드론 사이에 있는 지역은 서로 싸우는 전투장으로 되어버렸다. 로마군이 성벽에 진을 쳤을때 조차도 그 전투장안에서 내분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그들은처음에 공격을 받을 때는[㈜ 전쟁.5권. 2:4(71)이하.] 잠시 정신을 차렸으나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와 로마군이 바라는대로 서로 나뉘어져 다시 한번 서로 싸우게 되었다. 확실히 그들은 로마군에게 당한 피해 보다,오히려 자체의 내란으로 인해 더 심한 타격을 받았던 것이다. 이들의 내란은 예루살렘 사상 전무후무한 싸움이었다. 로마군에게 점령되는 것이 차라리 이런 잔인한 내분으로 인한 재앙보다 더 나을 정도였다. 예루살렘을 점령하러 온 로마군은 유대인에게는점령군이라기 보다는 구원군이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멸망은 로마의 공격이 아니라 내분 때문이었고, 예루살렘의 비극은그 자신의 백성들 탓이며 정의로운 재판은 오히려 로마군들이 행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이 어떤지에 관해서는 자신들의 의견을 각자 따르도록 하자[㈜ 유사구절이 고대.에서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다. 예를 들면, 고대. 1권. 108, 2권. 348, 3권. 81,등. 그 구절들은 아마도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표현한 것에 유사한 상투어를 부가한 할리카르나수스(Halicarnassus)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2. 티투스가 공격지점을 정하고 토성 쌓기를 시작했다
성벽안의 상황이 이러했을 때 티투스는 정예 창병부대와 함께 정탐목적으로 한번 성밖을 둘러보았다. 이것은 그가 공격을 직접적으로 가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계곡들이 사방에있어 접근할 수 없었고, 그 계곡 너머에 있는 제1성벽은 로마군의 무기로 공격하기에는 너무 강해서 무너뜨릴 수 없어 보였기 때문에 티투스는 대제사장 요한의[㈜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 주전 135-105), 전쟁.1권. 2 : 3(54), 등. 종종 이정표로 언급되는 (전쟁.5권. 304, 356, 전쟁. 6권. 169), 그의 기념비는 야파(Jaffa)문의 북서쪽에 있었던 것 같다.] 무덤 맞은 편에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성벽의 첫 경계선은 낮은 지역이었고,두 번째 경계선은 첫 번째 경계선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도시에 사람이 별로 살지 않기 때문에 그 지역을 강화하는 것을 소홀히 하였다. 게다가 그곳에는 제 3성벽으로 가기가용이하기 때문에 티투스는 그곳을 통해 상부도시를 점령하려고 생각했으며, 안토니아 망대의 길을 따라 성전까지도 점령하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티투스가 예루살렘 사방을 말을 타고 정탐하는 동안 그의 친구인 니카노르(Nicanor)가[㈜ 호민관이자 요세푸스의 오랜 친구, 전쟁. 3권. 346.] 요세푸스와 함께성벽에 너무 가까이 접근을 했기 때문에 왼쪽 어깨에 화살을 맞았다. 니카노르와 요세푸스는 성에 있는 자들에게 평화 협상을 권유하려고 다가간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니카노르의 얼굴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니카노르는 요세푸스와 함께 협상을 권유하러 간 것이었다. 가이사 티투스는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의 적개심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유익을 위해 협상차 다가간 사람에게 조차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포위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가이사 티투스는 군사들에게 성벽 근교를 폐허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고 재목을 모아서 교두보 진지를 세우라고 명령했다. 티투스는 이 작업을 위해 군대를 3개 부대로편성하고 나서 제방 사이사이에 간격을 띄우고 창병과 궁수들을 배치했으며, 제방 앞에 속사포(quick-firers)와[㈜ 혹은 \’투석기(投石機, scorpions).] 석궁(石宮)과 투석기(stone-projector)들을[㈜ 노포(ballistae, 弩砲).] 놓고서 적들의 공격을 막도록 한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성벽에서부터 유대인들이 공격해서 작업을 못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무들을 잘라서 작업했기 때문에 그 주위는 벌거숭이가 되었다. 토성을 쌓는데 필요한 재목들이 모아졌고, 전 군대는 이 작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한편 유대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약탈과 학살의 피해자였던 주민들은 점차 용기를 내기 시작했으며, 이때까지 그들을 압박하던 반란자들이 외부의 적인 로마군과 싸우는데 여념이 없을 동안 약간의 휴식을 얻기를 바랬으며, 로마가 승리한다면 로마군들이 반란자들을 자기들 대신 복수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3. 토성 건축자들에 대한 유대인의 공격
한편 요한은 그의 추종자들이 밖에 있는 로마군과 싸우려고 안절부절 못함에도 불구하고 시몬을 두려워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몬은 로마군과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가만히있지 않고, 성벽 위에 대포를 배치했으며, 전에 케스티우스(Ce-stius)에게서 노획한[㈜ 주후 66년 11월, 전쟁. 2권. 554.] 공격무기들과 안토니아의 주둔병들에게서 탈취한[㈜ 주후 66년 8월, 전쟁. 2권. 430.] 무기들을 배치했다. 그러나 이런 무기들을 가지고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사용해보지 않던 것이어서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몇 명은 로마군에게서 도망한 자들(des-erters)에게서[㈜ 아마도 로마군의 보조(수리아의)병력들로부터 일 것이다.] 배워서 아주 서투르나마 무기를 사용했다. 그들은 또한 돌과 화살을 가지고 토성을 쌓은 건축자들을 공격했으며, 무리를 지어 로마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토성을 쌓는 병사들은 울타리 위로 쳐놓은 방어막 때문에 안전하게 작업할 수있었으며, 유대인들의 공격은 대포로 반격하였다. 모든 군단의공격무기가 놀랍게도 우수하게 잘 만들어졌고, 특히 제10군단의[㈜ 제 10군단은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에 진영을 갖추었다(전쟁.5권. 2 : 3(70)) ; 유대인들이 이동하지 않은 한, 그들의 공격은 서쪽에 있던 로마군들에 의해 구축된 보루(堡壘)를 습격하는 유대인을 견제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공격무기는 제일 뛰어났다. 제 10군단의 속사포는[㈜ 혹은 \’투석기\'(scorpions).] 더 강력했고 투석기(stone-projector)는[㈜ 혹은 \’노포\'(ballistae).] 더 컸기 때문에 공격하는 유대인뿐 아니라 성벽에 있는 유대인도 격파할 수 있었다. 로마군이 장진한 바위들의 무게는 한 달란트(talent)[㈜ (아덴의 표준으로) hundredweight의 ¾가량임.(hundredweight : 영)112 파운드, 50.8kg / <미>100파운드, 45.36kg-역자주);전쟁.3권. 167을 참고.] 정도였고,사정거리가 2퍼얼롱이나 그 이상이었다. 그 무기의 성능은 앞에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상당히 멀리 떨어져 뒤에 있는 사람들도맞출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날아오는 돌들에 대항하여 방어를 했다. 왜냐하면 날아오는 돌들이 하얗고 또한 날아올 때는 그 소리가 요란하고 멀리서 보아도 반짝이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초들이 탑위에 배치되어서 공격무기가 발사될 때 신호를 보냈으며, 돌이 날아갈 때 유대말로 \’돌이[㈜ 렐란트(Reland)가 언급한 것과 같이, ha-eben(돌)이 habben(\’아들\’)로 와전되었다 ;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된 \’죄수 호송차\'(Black Maria)와 같은 유사한 우스꽝스런 표현과 비교해보라.] 날아온다\'(Sommy\’s co-ming)라고 외쳤다. 사정거리 안에 있던 자들은 즉시 피해 몸을 낮추었으며, 따라서 돌은 아무 피해도 주지 못하고 뒤에 떨어졌다. 이런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로마군은 돌에 검은 칠을 했다. 이제는 미리 식별이 안되기 때문에 로마군은 목표물을 공격하여단 한방으로도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런 검은 돌이 날아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로마군들이 토성을 쌓도록 가만히 놓아두지는 않고, 밤낮으로 온갖 생각을 짜내고 용기를 총동원하여 로마군을 공격했다.
4. 공성 장비를 실전에 배치했다.
토성을 쌓는 작업이 끝나자 기술자들은 납에다 줄을 달아 성벽에 던져 성벽과 토성간의 거리를 측정했는데, 그것이 위에서 활과 창이 날아 다니는 와중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성망치(battering-ram)가 맞힐 수 있는 것을 파악하자 그들은 공성망치를 배치했다. 티투스는 성벽 가까이에 대포를 포진시켜서 유대인들이 공성망치를 막지 못하게 하고서 공격명령을 내렸다. 일제히 각기 다른 3개의 지역에서 무시무시한 소음이 예루살렘 전체를 뒤흔들었고, 성 안에 있던 시민들은 비명을 질렀으며, 반란자들도 경악에 사로잡혔다. 반란자들은 공동의 위험에 처해 있음을 인식하자 두 무리의 반란자들이 공동방어를 했다. 서로 경쟁적인 반란자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이 로마군을 격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비록 하느님께서그들을 끝까지 하나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지라도 적어도현재로서는 서로 싸우는 것을 연기하고 로마군에 대항하여 힘을 합쳐야 했다. 시몬은 요한의 부하들에게 누구나 성전에서 성벽으로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다고 선언했으며, 요한은 비록 시몬을 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허락을 했다. 시몬과 요한의 두 파당은 서로의 미움과 사적인 싸움을 잊어버리고 한몸이 되었다.그들을 성벽을 따라 늘어서서 불붙은 나무토막으로 공성망치를 불태우려 하였다. 좀더 용감한 유대인들은 무리를 지어 습격하여 공성무기들을 보호하고 있는 방패막이를 쳐부수고 공성무기를 조정하는 자들을 쓰러뜨렸다. 유대인들이 기술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용기만을 가지고 로마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티투스는 어려움에 처한 로마군들을 돕기 위해 얼른 달려와 공성장비 양편에 기병과 궁수들을 배치하여 공성망치에 불을 지르려고 하는 자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망대에서 공격하는 자들을 반격했으며, 공성망치도 작동하도록 했다. 그러나 성벽은 강한 타격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고, 단지 로마 제15군단이 망대의 모퉁이를 무너뜨렸을 뿐, 성벽 자체는 손상이 없었다. 왜냐하면 성벽은 망대가 무너진다해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5. 로마 진지를 불태우려는 유대인들의 결사적인 시도는 티투스에 의해 격퇴되다
얼마동안 공격을 자제하던 유대인들은 로마군들이 토성을 쌓는 작업을 마치고 각 진지로 흩어졌을 때 기회를 포착하여 갑자기 히피쿠스탑 가까이에 있는 숨겨진 문을 통해 일시에 공격을가했다. 유대인들은 횃불을 들고 짓고 있는 건물을 불태우면서 로마군 요새로 공격을 감행했다.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이 지치고 두려워서 물러간 줄 알았기 때문에 갑자기 습격을 당한 것이었다. 그들의 고함소리에 가까이 있던 로마군들이 즉시 모여 들었고, 더 멀리 있던 로마군들도 와서 공격에 합세했다. 그러나 유대인의 용감함이 로마군의 질서정연함을 능가했으며, 첫 번째그들과 부딪힌 로마군들을 몰아내고 다시 모여도 로마군 무리들을 계속 공격했다. 참혹한 전투가 공성무기 주위에서 일어났으며, 한쪽은 공성무기를 불태우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못하게 막았다. 혼란스러운 외침이 양쪽 편에서 흘러 나왔으며, 선두에선 용감한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필사적인 태도는 대단했으며, 이미 로마군이 작업하고 있는 곳에 불을 지르고 있었으므로, 로마군 전체가 공성무기 주위에서 불에 타죽을 뻔했지만 다행히 알렉산드리아의 정예군단들이 그들의 본래 명성을 훨씬 능가하는 용감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정예군단들의 이번 전투에서의 활약상은 다른 유명한 군단들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그 후 곧 가이사가 그의 창병 중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이끌고 유대인을 공격하러 왔다. 가이사티투스는 최전선에 있는 12명을 한번에 살해했다. 남아있던 유대인들은 이들이 당한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도망갔다. 티투스는 뒤쫓아가서 그들 모두를 시내로 몰고 갔으며, 화재로 인해 진지가 잿더미가 되는 것을 막았다. 이때 유대인 죄수 하나가 체포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티투스는 그 유대인 죄수를 성벽 앞에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명령했으며, 나머지 유대인들이 이 광경을 보고 질겁하여 항복하리라 기대했다. 이즈음 이두매의 족장인 요한은[㈜ 4명의 이두매 원주민 지도자들중 첫 번째로 불리워진 사람, 전쟁.4권. 235 ; 형제 야고보(James)가 후에 그를 능가한 것 같다. 전쟁. 5권. 249. (이곳에서 요한<John>은 언급되지 않음).] 후퇴를 한 후 대열에 배치된 안면이 있는 병사와 말하고 있는 도중 아랍인이 쏜 화살에 가슴을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요한의 죽음은 이두매인들에게 애통을 자아내게 했으며, 유대난동자들(강도떼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요한은 용감성과 확고한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 6 장
폭도 시몬과 요한에 대하여, 또한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보다가 어떻게 니카노르가 창에 상처를 입고 이 사건으로 인해 티투스가 포위 공격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1. 유대인 파벌들의 전력과 상황
예루살렘 안에 있는 병사와 반란자들의 전력은 다음과 같다. 시몬은 이두매인을 제외하고 10,000명의 군대를 갖고 있었으며,그 중 지휘관들은 50명이었고, 시몬은 최고지휘관으로 총 지휘를 했다. 시몬이 거느린 이두매인 파견대는 5,000명이었고, 10명의 지휘관이 맡고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소사스(Sosas)의 아들인 야곱(James), 카틀라스(Cathlas)의 아들인 시몬이 가장 높게 평가받았다.[㈜ 참). 전쟁. 4권(235). 야고보(James)와 시몬(Simon)을 포함하여 20,000명의 이두매 원주민의 군대 장군으로 4명이 나온다로 언급되어 있다. 본문으로부터 예루살렘에서 철수한 병력은 기껏해야 절반 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 전쟁.4권(353)은 전체의 무리가 넌더리가 나서 후퇴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요한은 성전을 점령했을 때 6천 명의 군대를거느렸으며, 12명의 지휘관들이 지휘를 맡았다. 열심당들도 요한과 다투는 것을 그만두고 그와 연합한 숫자가 2,400명에 이르렀고, 엘르아살과 아리누스(Arinus)의 아들 시몬이 지휘를 맡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전쟁. 5권. 1:5(27).]이 두 파당들은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그 파당의 목표물이 되었으며, 그들의 약탈에 언짢은 눈치를 보이는 시민들은 양쪽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시몬은 상부도시와 기드론(Kedron)에 이르는 큰 성벽과[㈜ 세 번째<아그립바(Agrippa)의>성벽.] 실로암에서동쪽으로 구부러진 지점에서 유브라데 강을 넘어 아디아베네(Adiabene)왕인 모노바주스(Monobazus)왕궁까지 이르는 오래된 성벽을 장악하고 있었다.[㈜ 시몬(Simon)은 성벽 두곳에 병력을 배치했는데, 그곳에서 로마군의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티투스의 주력부대에 대항하여 북서쪽에서, 그리고 감람산(Mt. Olive)에서 야영(野營)한 제 10군단에 대항하여 남동쪽에서 공격을 받았다(전쟁.5권. 2:3(70)).] 그는 또한 샘과[㈜ 실로암(Siloam). 전쟁.5권. 9:4(410). 다음에 나오는 요세푸스의 권고는 실로암이 로마군의 수중에 있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지만, 로마군이 성내부 실로암 샘물의 물줄기인 성벽 바깥 샘인 기혼(Gihon)을 점령했다고 가정함으로써 실제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실로암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모순이다. <스미스(Smith), '예루살렘'(Jerusalem), i:224>.] 하부도시인아크라지역과 모노바수스왕의 어머니 헬레나(Helena)궁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모노바수스(Monobazus)와 헬레나(Helena)의 궁정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요한은 또한 성전과 그 주변지역 즉 오플라(Ophla)와 가드론 골짜기를 확보하고 있었다. 시몬과 요한의 싸움으로 재가 되어 버린 오플라와 기드론 사이에 있는 지역은 서로 싸우는 전투장으로 되어버렸다. 로마군이 성벽에 진을 쳤을때 조차도 그 전투장안에서 내분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그들은처음에 공격을 받을 때는[㈜ 전쟁.5권. 2:4(71)이하.] 잠시 정신을 차렸으나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와 로마군이 바라는대로 서로 나뉘어져 다시 한번 서로 싸우게 되었다. 확실히 그들은 로마군에게 당한 피해 보다,오히려 자체의 내란으로 인해 더 심한 타격을 받았던 것이다. 이들의 내란은 예루살렘 사상 전무후무한 싸움이었다. 로마군에게 점령되는 것이 차라리 이런 잔인한 내분으로 인한 재앙보다 더 나을 정도였다. 예루살렘을 점령하러 온 로마군은 유대인에게는점령군이라기 보다는 구원군이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멸망은 로마의 공격이 아니라 내분 때문이었고, 예루살렘의 비극은그 자신의 백성들 탓이며 정의로운 재판은 오히려 로마군들이 행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이 어떤지에 관해서는 자신들의 의견을 각자 따르도록 하자[㈜ 유사구절이 고대.에서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다. 예를 들면, 고대. 1권. 108, 2권. 348, 3권. 81,등. 그 구절들은 아마도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표현한 것에 유사한 상투어를 부가한 할리카르나수스(Halicarnassus)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2. 티투스가 공격지점을 정하고 토성 쌓기를 시작했다
성벽안의 상황이 이러했을 때 티투스는 정예 창병부대와 함께 정탐목적으로 한번 성밖을 둘러보았다. 이것은 그가 공격을 직접적으로 가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계곡들이 사방에있어 접근할 수 없었고, 그 계곡 너머에 있는 제1성벽은 로마군의 무기로 공격하기에는 너무 강해서 무너뜨릴 수 없어 보였기 때문에 티투스는 대제사장 요한의[㈜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 주전 135-105), 전쟁.1권. 2 : 3(54), 등. 종종 이정표로 언급되는 (전쟁.5권. 304, 356, 전쟁. 6권. 169), 그의 기념비는 야파(Jaffa)문의 북서쪽에 있었던 것 같다.] 무덤 맞은 편에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성벽의 첫 경계선은 낮은 지역이었고,두 번째 경계선은 첫 번째 경계선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도시에 사람이 별로 살지 않기 때문에 그 지역을 강화하는 것을 소홀히 하였다. 게다가 그곳에는 제 3성벽으로 가기가용이하기 때문에 티투스는 그곳을 통해 상부도시를 점령하려고 생각했으며, 안토니아 망대의 길을 따라 성전까지도 점령하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티투스가 예루살렘 사방을 말을 타고 정탐하는 동안 그의 친구인 니카노르(Nicanor)가[㈜ 호민관이자 요세푸스의 오랜 친구, 전쟁. 3권. 346.] 요세푸스와 함께성벽에 너무 가까이 접근을 했기 때문에 왼쪽 어깨에 화살을 맞았다. 니카노르와 요세푸스는 성에 있는 자들에게 평화 협상을 권유하려고 다가간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니카노르의 얼굴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니카노르는 요세푸스와 함께 협상을 권유하러 간 것이었다. 가이사 티투스는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의 적개심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유익을 위해 협상차 다가간 사람에게 조차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포위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가이사 티투스는 군사들에게 성벽 근교를 폐허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고 재목을 모아서 교두보 진지를 세우라고 명령했다. 티투스는 이 작업을 위해 군대를 3개 부대로편성하고 나서 제방 사이사이에 간격을 띄우고 창병과 궁수들을 배치했으며, 제방 앞에 속사포(quick-firers)와[㈜ 혹은 ‘투석기(投石機, scorpions).] 석궁(石宮)과 투석기(stone-projector)들을[㈜ 노포(ballistae, 弩砲).] 놓고서 적들의 공격을 막도록 한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성벽에서부터 유대인들이 공격해서 작업을 못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무들을 잘라서 작업했기 때문에 그 주위는 벌거숭이가 되었다. 토성을 쌓는데 필요한 재목들이 모아졌고, 전 군대는 이 작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한편 유대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약탈과 학살의 피해자였던 주민들은 점차 용기를 내기 시작했으며, 이때까지 그들을 압박하던 반란자들이 외부의 적인 로마군과 싸우는데 여념이 없을 동안 약간의 휴식을 얻기를 바랬으며, 로마가 승리한다면 로마군들이 반란자들을 자기들 대신 복수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3. 토성 건축자들에 대한 유대인의 공격
한편 요한은 그의 추종자들이 밖에 있는 로마군과 싸우려고 안절부절 못함에도 불구하고 시몬을 두려워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몬은 로마군과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가만히있지 않고, 성벽 위에 대포를 배치했으며, 전에 케스티우스(Ce-stius)에게서 노획한[㈜ 주후 66년 11월, 전쟁. 2권. 554.] 공격무기들과 안토니아의 주둔병들에게서 탈취한[㈜ 주후 66년 8월, 전쟁. 2권. 430.] 무기들을 배치했다. 그러나 이런 무기들을 가지고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사용해보지 않던 것이어서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몇 명은 로마군에게서 도망한 자들(des-erters)에게서[㈜ 아마도 로마군의 보조(수리아의)병력들로부터 일 것이다.] 배워서 아주 서투르나마 무기를 사용했다. 그들은 또한 돌과 화살을 가지고 토성을 쌓은 건축자들을 공격했으며, 무리를 지어 로마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토성을 쌓는 병사들은 울타리 위로 쳐놓은 방어막 때문에 안전하게 작업할 수있었으며, 유대인들의 공격은 대포로 반격하였다. 모든 군단의공격무기가 놀랍게도 우수하게 잘 만들어졌고, 특히 제10군단의[㈜ 제 10군단은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에 진영을 갖추었다(전쟁.5권. 2 : 3(70)) ; 유대인들이 이동하지 않은 한, 그들의 공격은 서쪽에 있던 로마군들에 의해 구축된 보루(堡壘)를 습격하는 유대인을 견제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공격무기는 제일 뛰어났다. 제 10군단의 속사포는[㈜ 혹은 ‘투석기'(scorpions).] 더 강력했고 투석기(stone-projector)는[㈜ 혹은 ‘노포'(ballistae).] 더 컸기 때문에 공격하는 유대인뿐 아니라 성벽에 있는 유대인도 격파할 수 있었다. 로마군이 장진한 바위들의 무게는 한 달란트(talent)[㈜ (아덴의 표준으로) hundredweight의 ¾가량임.(hundredweight : 영)112 파운드, 50.8kg / <미>100파운드, 45.36kg-역자주);전쟁.3권. 167을 참고.] 정도였고,사정거리가 2퍼얼롱이나 그 이상이었다. 그 무기의 성능은 앞에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상당히 멀리 떨어져 뒤에 있는 사람들도맞출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날아오는 돌들에 대항하여 방어를 했다. 왜냐하면 날아오는 돌들이 하얗고 또한 날아올 때는 그 소리가 요란하고 멀리서 보아도 반짝이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초들이 탑위에 배치되어서 공격무기가 발사될 때 신호를 보냈으며, 돌이 날아갈 때 유대말로 ‘돌이[㈜ 렐란트(Reland)가 언급한 것과 같이, ha-eben(돌)이 habben(‘아들’)로 와전되었다 ;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된 ‘죄수 호송차'(Black Maria)와 같은 유사한 우스꽝스런 표현과 비교해보라.] 날아온다'(Sommy’s co-ming)라고 외쳤다. 사정거리 안에 있던 자들은 즉시 피해 몸을 낮추었으며, 따라서 돌은 아무 피해도 주지 못하고 뒤에 떨어졌다. 이런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로마군은 돌에 검은 칠을 했다. 이제는 미리 식별이 안되기 때문에 로마군은 목표물을 공격하여단 한방으로도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런 검은 돌이 날아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로마군들이 토성을 쌓도록 가만히 놓아두지는 않고, 밤낮으로 온갖 생각을 짜내고 용기를 총동원하여 로마군을 공격했다.
4. 공성 장비를 실전에 배치했다.
토성을 쌓는 작업이 끝나자 기술자들은 납에다 줄을 달아 성벽에 던져 성벽과 토성간의 거리를 측정했는데, 그것이 위에서 활과 창이 날아 다니는 와중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성망치(battering-ram)가 맞힐 수 있는 것을 파악하자 그들은 공성망치를 배치했다. 티투스는 성벽 가까이에 대포를 포진시켜서 유대인들이 공성망치를 막지 못하게 하고서 공격명령을 내렸다. 일제히 각기 다른 3개의 지역에서 무시무시한 소음이 예루살렘 전체를 뒤흔들었고, 성 안에 있던 시민들은 비명을 질렀으며, 반란자들도 경악에 사로잡혔다. 반란자들은 공동의 위험에 처해 있음을 인식하자 두 무리의 반란자들이 공동방어를 했다. 서로 경쟁적인 반란자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이 로마군을 격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비록 하느님께서그들을 끝까지 하나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지라도 적어도현재로서는 서로 싸우는 것을 연기하고 로마군에 대항하여 힘을 합쳐야 했다. 시몬은 요한의 부하들에게 누구나 성전에서 성벽으로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다고 선언했으며, 요한은 비록 시몬을 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허락을 했다. 시몬과 요한의 두 파당은 서로의 미움과 사적인 싸움을 잊어버리고 한몸이 되었다.그들을 성벽을 따라 늘어서서 불붙은 나무토막으로 공성망치를 불태우려 하였다. 좀더 용감한 유대인들은 무리를 지어 습격하여 공성무기들을 보호하고 있는 방패막이를 쳐부수고 공성무기를 조정하는 자들을 쓰러뜨렸다. 유대인들이 기술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용기만을 가지고 로마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티투스는 어려움에 처한 로마군들을 돕기 위해 얼른 달려와 공성장비 양편에 기병과 궁수들을 배치하여 공성망치에 불을 지르려고 하는 자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망대에서 공격하는 자들을 반격했으며, 공성망치도 작동하도록 했다. 그러나 성벽은 강한 타격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고, 단지 로마 제15군단이 망대의 모퉁이를 무너뜨렸을 뿐, 성벽 자체는 손상이 없었다. 왜냐하면 성벽은 망대가 무너진다해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5. 로마 진지를 불태우려는 유대인들의 결사적인 시도는 티투스에 의해 격퇴되다
얼마동안 공격을 자제하던 유대인들은 로마군들이 토성을 쌓는 작업을 마치고 각 진지로 흩어졌을 때 기회를 포착하여 갑자기 히피쿠스탑 가까이에 있는 숨겨진 문을 통해 일시에 공격을가했다. 유대인들은 횃불을 들고 짓고 있는 건물을 불태우면서 로마군 요새로 공격을 감행했다.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이 지치고 두려워서 물러간 줄 알았기 때문에 갑자기 습격을 당한 것이었다. 그들의 고함소리에 가까이 있던 로마군들이 즉시 모여 들었고, 더 멀리 있던 로마군들도 와서 공격에 합세했다. 그러나 유대인의 용감함이 로마군의 질서정연함을 능가했으며, 첫 번째그들과 부딪힌 로마군들을 몰아내고 다시 모여도 로마군 무리들을 계속 공격했다. 참혹한 전투가 공성무기 주위에서 일어났으며, 한쪽은 공성무기를 불태우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못하게 막았다. 혼란스러운 외침이 양쪽 편에서 흘러 나왔으며, 선두에선 용감한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필사적인 태도는 대단했으며, 이미 로마군이 작업하고 있는 곳에 불을 지르고 있었으므로, 로마군 전체가 공성무기 주위에서 불에 타죽을 뻔했지만 다행히 알렉산드리아의 정예군단들이 그들의 본래 명성을 훨씬 능가하는 용감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정예군단들의 이번 전투에서의 활약상은 다른 유명한 군단들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그 후 곧 가이사가 그의 창병 중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이끌고 유대인을 공격하러 왔다. 가이사티투스는 최전선에 있는 12명을 한번에 살해했다. 남아있던 유대인들은 이들이 당한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도망갔다. 티투스는 뒤쫓아가서 그들 모두를 시내로 몰고 갔으며, 화재로 인해 진지가 잿더미가 되는 것을 막았다. 이때 유대인 죄수 하나가 체포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티투스는 그 유대인 죄수를 성벽 앞에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명령했으며, 나머지 유대인들이 이 광경을 보고 질겁하여 항복하리라 기대했다. 이즈음 이두매의 족장인 요한은[㈜ 4명의 이두매 원주민 지도자들중 첫 번째로 불리워진 사람, 전쟁.4권. 235 ; 형제 야고보(James)가 후에 그를 능가한 것 같다. 전쟁. 5권. 249. (이곳에서 요한은 언급되지 않음).] 후퇴를 한 후 대열에 배치된 안면이 있는 병사와 말하고 있는 도중 아랍인이 쏜 화살에 가슴을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요한의 죽음은 이두매인들에게 애통을 자아내게 했으며, 유대난동자들(강도떼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요한은 용감성과 확고한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