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권 제 5장 성전이 불에 타자 유대인들이 크게 괴로워하는 모습과 한 거짓 선지자와 성전 소실 전에 나타난 징조들에 대하여

 


제 5 장



 성전이 불에 타자 유대인들이 크게 괴로워하는 모습과 한 거짓 선지자와 성전 소실 전에 나타난 징조들에 대하여



 1. 성전의 화재로 인한 비참한 현장 모습에 관하여



 성전이 불타는 동안 승리자 로마군은 닥치는 대로 약탈했으며 유대인들을 붙잡는 대로 가릴 것 없이 모두 살해하였다. 로마 병사들은 어린 아이건 노인이건 나이에 상관없이 그리고 제사장이건 일반인이건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모두 살해했다. 유대인들은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추격당하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들이나 저항하여 대드는 자들이나 똑같이 학살당하였다. 무섭게 치솟는 불길은 사방으로 퍼지면서 죽어가는 유대인들의 신음소리와 뒤섞였다. 성전이 꽤 높은 산위에 있었는데다 성전 건물 자체도커서, 불타는 성전을 보고 사람들은 예루살렘 전체가 불바다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귀를 찌를 듯한 섬뜩한 비명소리와 시끄러운 소음이 온통 뒤섞여 들여왔다. 로마 병사들이 공격하면서 질러대는 함성소리와 로마군의 칼과 불에 둘러싸인 강도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뒤엉켰다. 또한 위쪽으로 도망가다 길이 막힌 주민들은 당황하여 되돌아 오다가 로마군의 칼에 맞아 비명을 질러댔다. 게다가 산위에 있던 주민들의 비명소리와 성안에 있던 주민들의 비명소리도 한데 섞였다. 또한 배고픔으로 인해 쇠약해져 말도 제대로 못하는 많은 주민들이 성전이 불타는것을 보자, 혼신의 힘을 모아 통곡하며 애꿇는 신음소리를 질러댔다. 이러한 모든 함성과 울부짖는 비명과 신음소리는 페라이아(Peraea)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메아리쳐 더욱 슬프게 들렸다.[㈜ 참). 요타파타 공격을 설명하는 산울림 소리를 포함하여 무서운 소리들에 관한 기록으로는 전쟁. 3권. 7:23(247-250)을 보라.] 그러나 실제로 유대인들이 당한 고통은 이러한 소란스러운 소리보다 더 처참했다. 성전이 세워진 언덕은 바닥에서부터 온통 불덩이로 꿇고 있는 것 같았고, 이러한 치솟는 불길보다도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들이 더욱 많아 완전 피바다를 이루었으며 살해된 자들이 살해하는 자들보다 더 많았다. 땅에는 시체들로 뒤덮혀 있어 맨땅은 어느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로마 병사들은 도망가는 유대인들을 추격하는데 시체 더미 위로 밟고 올라가야만 했다. 이때 강도들의 무리가 로마군을 밀며 뚫고 지나가 힘들게 성전의 바깥 뜰 쪽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예루살렘 시내로 도망갔다. 한편 살아남아 있던 유대 주민들은 성전의 바깥 회랑으로 도망갔다.[㈜ 그들의 운명은 전쟁. 6권. 5:2(283)이하에서 서술된다.] 일부 제사장들은 처음에는 성전에서 납으로 된 소케트로 긴 못을 떼어내 로마군에게 던졌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얼마후 자신들의 행동이 아무 효과도 없고 도리어 자신들 쪽으로 불길이 다가오자 너비 8규빗의 성벽으로 도망갔으며 그곳에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2명의 저명한 제사장들은 로마군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구하거나 나머지 다른 제사장들과 운명을 함께할 선택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속에 몸을 던져 성전과 함께 불에 탔다. 이 두명의 제사장은 벨가스(Belgas)의 아들 메이루스(Meirus)와 달라이우스(Dalaeus)의 아들 요세푸스(Josephus)였다.



 2. 보물고와 다른 건물들이 불에 탄 것에 관하여



 한편 로마군들은 성전이 불타고 있는 마당에 성전 주위의 건물들을 남겨 둔다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여 아직 불타지 않고 남아있는 회랑의 나머지 부분들과 2개의 성문을 제외한 모든 성문들에 불을 질러버렸다. 제외된 2개의 성문은 동쪽에 있던 문과 남쪽에 있던 문이었다. 로마군들은 이 두 개의 문들역시 그 후에 무너뜨렸다. 로마군들은 또한 상당한 액수의 돈과다량의 의복과 그밖에 귀중하고 값진 진귀품들이 들어있는 보물고(the treasury-chambers)도[㈜ 전쟁. 5권. 5:2(200) ; 헤롯 아그립바(Herod Agrippa)가 감옥에서 풀려나와 칼리굴라(Caligula)가 그에게 준 금고리를 매달아둔 곳이 이곳이다. 고대. 19권. 6:1(294).] 불질렀다. 이 보물고는 한마디로 말해서 유대인들 재산의 일반적인 보관소였다. 부유한 유대인들은 자식들의 집에서 이러한 돈이나 의복이나 진귀한 물건들을 가져다 보물고에 위탁했던 것이다. 로마군들은 보물고에 불을 지르고 나서 성전 바깥뜰에 있는 불타지 않고 남아있던 한 회랑으로 달려갔다.



 [6,000명이 희생됨]



 그곳에는 약6,000명 가량의 부녀자들과 어린이들과 일반 주민들이 불길을 피해 도망쳐 와 있었다. 로마 병사들은 티투스가이 6,000명의 사람들에 대한 어떤 결정이나 명령을 지휘관들에게 내리기도 전에, 분노에 앞뒤를 가리지도 않은채 이 회랑 밑부분에 불을 질러 버렸다. 그 결과 일부 유대인들은 불을 피하다가 회랑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나머지 유대인들은 불에 타 죽는 등,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거짓 선지자의 속임]



 이같이 많은 유대인들이 몰살 당하게 된 것은 한 거짓 선지자가 하느님이 성전뜰에 올라가 그곳에서 구원의 표를 받으라고 명하셨다고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당시 많은 선지자들이 강도들에게 매수당해 주민들에게 하느님의 도움을 기다려야 된다고 말하면서 주민들을 미혹하였다. 강도들은 많은 선지자들을 사주하여 거짓 예언을 하게 함으로써 주민들의 탈주를 막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주민들에게 희망을 넣어 주려고 획책했던 것이다. 원래 역경 속에서는 인간이 빨리 설득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가 예루살렘 성안의 기근과 화재의 이러한 끔찍스러운 참담함에서 구원될 것이라고 선언하자,주민들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3. 멸망의 징조들



 이렇게 하여 불쌍한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 당시 거짓 선지자들과 하느님의 사자(使者)라고 자처하는 엉터리 협잡꾼들에 의해 미혹 당했던 것이다. 한편 주민들은 다가오고 있는 멸망을 미리 보여주는 명백한 징조들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으며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분명하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타키투스의 \’박물학\’ 5:13, \”타키투스는 유대인들이 로마인들과 같지 않게 (그가 미신이라고 부르는)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경이로운 일들이 그들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았다는 뜻으로 말했다\”.]



[별과 혜성]



 하느님이 유대인들을 멸망할 것을 미리 보여준 징조들 가운데 하나는 예루살렘 위에 칼처럼 생긴 별 하나와 혜성이 일년동안 계속 떠 있었다는 것이다.



 [한 밤중에 비친 제단 주위의 불빛]



 또 다른 징조로는 로마군과의 전쟁을 야기시킨 유대인들의 반항과 대소동이 있기전 크산티쿠스(Xanthicus)월[㈜ 3월-4월 ; 요세푸스가 자주 사용했던 것을 따르자면 율리우스력 4월 25일이다. 그러나 그는 더 오랜 고대 유대의 계산을 따른 것 같다(Niese).] 8일 밤 제9시에 무교절을 지내기 위해 주민들이 함께 모여 있었을 때 일어났다. 아주 밝은 빛이 제단과 성전 본당 주위를 비치고 있어서마치 대낮같았다. 이러한 현상이 한시간 반동안 계속되었다. 경험이 없는 미숙한 서기관들은 이 현상을 길조(吉兆)라고 여겼으나 거룩한 서기관들은 이후에 일어날 재난을 알리는 불길한 징조로 해석했다.



[이상스럽게 성전에서 새끼를 낳음]



 바로 무교절에 제단에 바치려던 암소가 성전 뜰 한가운데서 새끼 양을 낳았던 것이다.



[성전 문이 열림]



 게다가 성전 안뜰의 동쪽문이 저녁에 닫혀 있었는데 밤 제6시경에 저절로 열린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 동쪽문은 황동으로 된 아주 육중한 문으로 장정 20명이 밀어야 겨우 열릴 수 있는 문으로 쇠로 만든 빗장으로 잠겨 있었고 나사못들이 단단한 돌로 된 문지방에 깊이 박혀 있어 도저히 저절로 열릴 수 없는 문이었다.[㈜ 타키투스의 \’박물학\’, \”갑자기 성전문이 열리고\”.] 성전을 경비하던 자가 성전 수비대장에게[㈜ \”성전 맡은자\”, 행 4:1, 5:24.] 달려와 이 사건을 알렸으며 수비대장은 문으로 다시 달려와서 힘들게 겨우 문을 잠갔다. 이 사건은 무엇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가장 좋은 징조로 보여서 하느님이 유대인들에게 축복의 문을 열것이라고 해석했다.그러나 학식이 있는 자들은 성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징조로 해석하면서 성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 로마군에게 잇점으로 작용하여 성전의 안전이 허물어 진다고 생각하였다.



 [천군(天軍)]



 이밖에 하느님이 예루살렘을 멸망할 것이라는 또다른 징조로는 무교절이 지난 몇일 후인 아르테미시움(Artemisium)월[㈜ 5월경(\”6월 8일\” 위에서 Niese 얘기한 것처럼).] 21일에 믿기 어려운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 설명하려는이 현상은 만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자들의 진술이 없었거나 그후에 그 징조대로 재난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한낱 우화로 여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해가 지기 전에 예루살렘 전 지역에 병거들과 무장한 병사들의 대부대가 구름 가운데 나타나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은 타키투스의 \’박물학\’에 나오는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일부는 Virgil에서 나온것이다.]



 [성전에서 들리는 음성]



 이 현상 이외의 예루살렘 멸망의 또다른 징조는 오순절(Pentecost)이라 부르는 유대인 절기에 제사장들이 관례대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밤에 성전의 안뜰로 들어갈 때의 일이었다. 이때 제사장들은 소동과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번쩍들었으며 잠시후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우리는 이곳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라는[㈜ 본문에서는 이문에 나오는 \’이제 우리를 떠나게 하라.\’는 것보다 \’ metabaivnomen \’이 더 어울린다. 이는 타키투스의 \’박물학\’에 나오는 본문의 지지를 받는다.]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전쟁 전 4년 동안 예수라는 사람의 불길한 외침이 있었다.]



 이와같이 하느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경고하는 징조들은 그밖에도 많이 있었다. 앞에서 말한 징조들보다 더 놀라운 징조는 전쟁이 나기 4년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그때는 예루살렘이 아주 평화롭고 번창함을 누리고 있을 때였다. 장막절에 전 유대인들이 관습에 따라 장막을 치고 하느님께 절기를 지키고 있을때,[㈜ 전쟁. 6권. 5:3(308)에서 오는 것처럼 주후 62년 가을, 숙고의 장막절, 4년후 주후 66년의 가을에 케스티우스(Cestius)의 패배와 함께 전쟁이 시작됐다.] 아나니아스(Ananias)라고 어느 한 미천한 농부의 아들인 예수(Jesus)라 하는 자가 성전문 앞에 갑자기 다음과 같이 외치기 시작했다 \”동쪽에서 들여오는 한 목소리, 서쪽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가 있으니 이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대적하는 소리요, 신랑과 신부를 대적하는 소리요[㈜ 참).예레미야에 나오는 반복적인 상투어, \”그때에 나는 예루살렘의 거리…신랑의 목소리와 신부의 목소리가…끊쳐지게 하리니\”(7:34등).] 온 백성을 대적하는 목소리니라.\” 예수는 밤이나 낮이나 이렇게 외치면서 사방 골목마다 모두 돌아다녔다. 일부 지도자격인 백성들 중 유명인사들은 이러한 불길한 예언에 분개하여 예수를 붙잡아서 심하게 채찍질 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을 변명하거나 매질을 하는 자들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오직 전에 외치던 그 말만을 계속 소리쳤다. 그러자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가 불가사의한 어떤 힘에 조정되어 진다고 생각하고 그를 로마 총독에게 데리고 갔다. 예수는 채찍에 뼈가 드러나도록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단지 가장 슬픈 목소리로 채찍질 당할 때마다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아!\” 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유대 총독인 알비누스(Albinus)가[㈜ 주후 62-64년 사이의 행정장관. 전쟁.2권. 14:1(272-276).] 예수에게 그가 누구며 어디 출신이며 왜 그런저주의 말만 되풀이 하느냐고 물었다. 예수는 알비누스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말만 되풀이 하였다 결국 알비누스는 예수를 정신이 돈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석방시켰다. 예수는 로마와의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그후 내내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시민들과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으며 오로지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아!\” 라는 말만 매일 마치 기도문을 암송하듯이 되풀이 하였다. 그는 매일 자신을 때리는 자들을 조금도 저주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음식을 주는 자들에게도 축복하지 않았다.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있는 유일한 대꾸의 말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우울한 저주뿐이었다. 그의 저주의 외침은 유대인들의 명절때에 더욱커졌다. 그래서 7년 5개월 동안 내내 예수는 저주를 계속했으며 그의 목소리가 결코 위축되거나 지치지 않았다. 그는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그의 예언이 실지로 증명되고서야 외치기를 그만두었으며 그도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이 포위당하자 예수는 성벽을 돌면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아! 백성과 성전에 화가 있을지어다!\”라고 외치고 난 뒤 마지막으로 \”내게도 또한 화가 있을 지어다\”라고 덧붙였고 이와 동시에 로마군 투석기에서 돌이 날라와 그를 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는 죽으면서까지 이제까지 계속 되풀이 하던 저주의 말을 입에 담은 채 숨을 거두었다.



 4. 두가지 신탁



 이러한 것들을 깊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하느님이 인간을 돌보시며 갖가지 방법으로 미리 자신의 뜻을 알리는 표적(징조)들을 통해 자기 백성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보이셨다는 것으로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미친 듯이 파멸의 길로 치달아스스로 재난을 자초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언서에 성전이 4스퀘어(four square)될 때 예루살렘과 성전이 함락되리라고 기록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스퀘어인 안토니아 망대를 파괴한 후에 성전을 4스퀘어 만들었던 것이다.[㈜ 근거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전쟁을 하게 한 것은 \”그때에 유대에서 난자가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리라\”라는 성경에 있는 애매모호한 예언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통치자가 유대 민족중에 한명이라고 이해했으며 많은 현명한 유대인들도 그러한 잘못된 해석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실제로 유대땅에 황제로 선포된 베스파시안의 통치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Tacitus의 \’박물학\’ 13절과 동일함. 참).수에토니우스(suetonius)의 \’Vesp.\’ 4에 동일한 진술이 나온다. 이(메시아적) 예언에 관한 것과 요세푸스와 티투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견에 관해서는 E. Norden이 쓴 \’헬라 로마시대에 관한 신연보\'(Neus Jahrbucher fur das Klassische Alertum) (1913)의 31:637이하와 P.Corrsen이 쓴 \’신약학지\’ (Zeitschrift fur die NT Wissenschaft) (1914)의 114이하를 보라. 타키투스는 요세푸스 본문을 읽은 것 같지 않으며 두사람 모두 공통 자료를 의존한 것 같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미리 그것을 예견했다고 하더라도 운명을 피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아무튼 유대인들은 이같은 징조(표적)들을 자기들 좋을 대로 해석하거나 아예 징조들을 무시하였으며 결국 이 같은 그들의 광기로 인해 예루살렘과 자신들의 파멸을 자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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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권 제 5장 성전이 불에 타자 유대인들이 크게 괴로워하는 모습과 한 거짓 선지자와 성전 소실 전에 나타난 징조들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5 장


     성전이 불에 타자 유대인들이 크게 괴로워하는 모습과 한 거짓 선지자와 성전 소실 전에 나타난 징조들에 대하여


     1. 성전의 화재로 인한 비참한 현장 모습에 관하여


     성전이 불타는 동안 승리자 로마군은 닥치는 대로 약탈했으며 유대인들을 붙잡는 대로 가릴 것 없이 모두 살해하였다. 로마 병사들은 어린 아이건 노인이건 나이에 상관없이 그리고 제사장이건 일반인이건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모두 살해했다. 유대인들은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추격당하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들이나 저항하여 대드는 자들이나 똑같이 학살당하였다. 무섭게 치솟는 불길은 사방으로 퍼지면서 죽어가는 유대인들의 신음소리와 뒤섞였다. 성전이 꽤 높은 산위에 있었는데다 성전 건물 자체도커서, 불타는 성전을 보고 사람들은 예루살렘 전체가 불바다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귀를 찌를 듯한 섬뜩한 비명소리와 시끄러운 소음이 온통 뒤섞여 들여왔다. 로마 병사들이 공격하면서 질러대는 함성소리와 로마군의 칼과 불에 둘러싸인 강도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뒤엉켰다. 또한 위쪽으로 도망가다 길이 막힌 주민들은 당황하여 되돌아 오다가 로마군의 칼에 맞아 비명을 질러댔다. 게다가 산위에 있던 주민들의 비명소리와 성안에 있던 주민들의 비명소리도 한데 섞였다. 또한 배고픔으로 인해 쇠약해져 말도 제대로 못하는 많은 주민들이 성전이 불타는것을 보자, 혼신의 힘을 모아 통곡하며 애꿇는 신음소리를 질러댔다. 이러한 모든 함성과 울부짖는 비명과 신음소리는 페라이아(Peraea)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메아리쳐 더욱 슬프게 들렸다.[㈜ 참). 요타파타 공격을 설명하는 산울림 소리를 포함하여 무서운 소리들에 관한 기록으로는 전쟁. 3권. 7:23(247-250)을 보라.] 그러나 실제로 유대인들이 당한 고통은 이러한 소란스러운 소리보다 더 처참했다. 성전이 세워진 언덕은 바닥에서부터 온통 불덩이로 꿇고 있는 것 같았고, 이러한 치솟는 불길보다도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들이 더욱 많아 완전 피바다를 이루었으며 살해된 자들이 살해하는 자들보다 더 많았다. 땅에는 시체들로 뒤덮혀 있어 맨땅은 어느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로마 병사들은 도망가는 유대인들을 추격하는데 시체 더미 위로 밟고 올라가야만 했다. 이때 강도들의 무리가 로마군을 밀며 뚫고 지나가 힘들게 성전의 바깥 뜰 쪽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예루살렘 시내로 도망갔다. 한편 살아남아 있던 유대 주민들은 성전의 바깥 회랑으로 도망갔다.[㈜ 그들의 운명은 전쟁. 6권. 5:2(283)이하에서 서술된다.] 일부 제사장들은 처음에는 성전에서 납으로 된 소케트로 긴 못을 떼어내 로마군에게 던졌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얼마후 자신들의 행동이 아무 효과도 없고 도리어 자신들 쪽으로 불길이 다가오자 너비 8규빗의 성벽으로 도망갔으며 그곳에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2명의 저명한 제사장들은 로마군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구하거나 나머지 다른 제사장들과 운명을 함께할 선택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속에 몸을 던져 성전과 함께 불에 탔다. 이 두명의 제사장은 벨가스(Belgas)의 아들 메이루스(Meirus)와 달라이우스(Dalaeus)의 아들 요세푸스(Josephus)였다.


     2. 보물고와 다른 건물들이 불에 탄 것에 관하여


     한편 로마군들은 성전이 불타고 있는 마당에 성전 주위의 건물들을 남겨 둔다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여 아직 불타지 않고 남아있는 회랑의 나머지 부분들과 2개의 성문을 제외한 모든 성문들에 불을 질러버렸다. 제외된 2개의 성문은 동쪽에 있던 문과 남쪽에 있던 문이었다. 로마군들은 이 두 개의 문들역시 그 후에 무너뜨렸다. 로마군들은 또한 상당한 액수의 돈과다량의 의복과 그밖에 귀중하고 값진 진귀품들이 들어있는 보물고(the treasury-chambers)도[㈜ 전쟁. 5권. 5:2(200) ; 헤롯 아그립바(Herod Agrippa)가 감옥에서 풀려나와 칼리굴라(Caligula)가 그에게 준 금고리를 매달아둔 곳이 이곳이다. 고대. 19권. 6:1(294).] 불질렀다. 이 보물고는 한마디로 말해서 유대인들 재산의 일반적인 보관소였다. 부유한 유대인들은 자식들의 집에서 이러한 돈이나 의복이나 진귀한 물건들을 가져다 보물고에 위탁했던 것이다. 로마군들은 보물고에 불을 지르고 나서 성전 바깥뜰에 있는 불타지 않고 남아있던 한 회랑으로 달려갔다.


     [6,000명이 희생됨]


     그곳에는 약6,000명 가량의 부녀자들과 어린이들과 일반 주민들이 불길을 피해 도망쳐 와 있었다. 로마 병사들은 티투스가이 6,000명의 사람들에 대한 어떤 결정이나 명령을 지휘관들에게 내리기도 전에, 분노에 앞뒤를 가리지도 않은채 이 회랑 밑부분에 불을 질러 버렸다. 그 결과 일부 유대인들은 불을 피하다가 회랑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나머지 유대인들은 불에 타 죽는 등,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거짓 선지자의 속임]


     이같이 많은 유대인들이 몰살 당하게 된 것은 한 거짓 선지자가 하느님이 성전뜰에 올라가 그곳에서 구원의 표를 받으라고 명하셨다고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당시 많은 선지자들이 강도들에게 매수당해 주민들에게 하느님의 도움을 기다려야 된다고 말하면서 주민들을 미혹하였다. 강도들은 많은 선지자들을 사주하여 거짓 예언을 하게 함으로써 주민들의 탈주를 막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주민들에게 희망을 넣어 주려고 획책했던 것이다. 원래 역경 속에서는 인간이 빨리 설득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가 예루살렘 성안의 기근과 화재의 이러한 끔찍스러운 참담함에서 구원될 것이라고 선언하자,주민들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3. 멸망의 징조들


     이렇게 하여 불쌍한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 당시 거짓 선지자들과 하느님의 사자(使者)라고 자처하는 엉터리 협잡꾼들에 의해 미혹 당했던 것이다. 한편 주민들은 다가오고 있는 멸망을 미리 보여주는 명백한 징조들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으며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분명하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타키투스의 ‘박물학’ 5:13, “타키투스는 유대인들이 로마인들과 같지 않게 (그가 미신이라고 부르는)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경이로운 일들이 그들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았다는 뜻으로 말했다”.]


    [별과 혜성]


     하느님이 유대인들을 멸망할 것을 미리 보여준 징조들 가운데 하나는 예루살렘 위에 칼처럼 생긴 별 하나와 혜성이 일년동안 계속 떠 있었다는 것이다.


     [한 밤중에 비친 제단 주위의 불빛]


     또 다른 징조로는 로마군과의 전쟁을 야기시킨 유대인들의 반항과 대소동이 있기전 크산티쿠스(Xanthicus)월[㈜ 3월-4월 ; 요세푸스가 자주 사용했던 것을 따르자면 율리우스력 4월 25일이다. 그러나 그는 더 오랜 고대 유대의 계산을 따른 것 같다(Niese).] 8일 밤 제9시에 무교절을 지내기 위해 주민들이 함께 모여 있었을 때 일어났다. 아주 밝은 빛이 제단과 성전 본당 주위를 비치고 있어서마치 대낮같았다. 이러한 현상이 한시간 반동안 계속되었다. 경험이 없는 미숙한 서기관들은 이 현상을 길조(吉兆)라고 여겼으나 거룩한 서기관들은 이후에 일어날 재난을 알리는 불길한 징조로 해석했다.


    [이상스럽게 성전에서 새끼를 낳음]


     바로 무교절에 제단에 바치려던 암소가 성전 뜰 한가운데서 새끼 양을 낳았던 것이다.


    [성전 문이 열림]


     게다가 성전 안뜰의 동쪽문이 저녁에 닫혀 있었는데 밤 제6시경에 저절로 열린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 동쪽문은 황동으로 된 아주 육중한 문으로 장정 20명이 밀어야 겨우 열릴 수 있는 문으로 쇠로 만든 빗장으로 잠겨 있었고 나사못들이 단단한 돌로 된 문지방에 깊이 박혀 있어 도저히 저절로 열릴 수 없는 문이었다.[㈜ 타키투스의 ‘박물학’, “갑자기 성전문이 열리고”.] 성전을 경비하던 자가 성전 수비대장에게[㈜ “성전 맡은자”, 행 4:1, 5:24.] 달려와 이 사건을 알렸으며 수비대장은 문으로 다시 달려와서 힘들게 겨우 문을 잠갔다. 이 사건은 무엇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가장 좋은 징조로 보여서 하느님이 유대인들에게 축복의 문을 열것이라고 해석했다.그러나 학식이 있는 자들은 성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징조로 해석하면서 성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 로마군에게 잇점으로 작용하여 성전의 안전이 허물어 진다고 생각하였다.


     [천군(天軍)]


     이밖에 하느님이 예루살렘을 멸망할 것이라는 또다른 징조로는 무교절이 지난 몇일 후인 아르테미시움(Artemisium)월[㈜ 5월경(“6월 8일” 위에서 Niese 얘기한 것처럼).] 21일에 믿기 어려운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 설명하려는이 현상은 만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자들의 진술이 없었거나 그후에 그 징조대로 재난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한낱 우화로 여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해가 지기 전에 예루살렘 전 지역에 병거들과 무장한 병사들의 대부대가 구름 가운데 나타나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은 타키투스의 ‘박물학’에 나오는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일부는 Virgil에서 나온것이다.]


     [성전에서 들리는 음성]


     이 현상 이외의 예루살렘 멸망의 또다른 징조는 오순절(Pentecost)이라 부르는 유대인 절기에 제사장들이 관례대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밤에 성전의 안뜰로 들어갈 때의 일이었다. 이때 제사장들은 소동과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번쩍들었으며 잠시후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우리는 이곳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라는[㈜ 본문에서는 이문에 나오는 ‘이제 우리를 떠나게 하라.’는 것보다 ‘ metabaivnomen ‘이 더 어울린다. 이는 타키투스의 ‘박물학’에 나오는 본문의 지지를 받는다.]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전쟁 전 4년 동안 예수라는 사람의 불길한 외침이 있었다.]


     이와같이 하느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경고하는 징조들은 그밖에도 많이 있었다. 앞에서 말한 징조들보다 더 놀라운 징조는 전쟁이 나기 4년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그때는 예루살렘이 아주 평화롭고 번창함을 누리고 있을 때였다. 장막절에 전 유대인들이 관습에 따라 장막을 치고 하느님께 절기를 지키고 있을때,[㈜ 전쟁. 6권. 5:3(308)에서 오는 것처럼 주후 62년 가을, 숙고의 장막절, 4년후 주후 66년의 가을에 케스티우스(Cestius)의 패배와 함께 전쟁이 시작됐다.] 아나니아스(Ananias)라고 어느 한 미천한 농부의 아들인 예수(Jesus)라 하는 자가 성전문 앞에 갑자기 다음과 같이 외치기 시작했다 “동쪽에서 들여오는 한 목소리, 서쪽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가 있으니 이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대적하는 소리요, 신랑과 신부를 대적하는 소리요[㈜ 참).예레미야에 나오는 반복적인 상투어, “그때에 나는 예루살렘의 거리…신랑의 목소리와 신부의 목소리가…끊쳐지게 하리니”(7:34등).] 온 백성을 대적하는 목소리니라.” 예수는 밤이나 낮이나 이렇게 외치면서 사방 골목마다 모두 돌아다녔다. 일부 지도자격인 백성들 중 유명인사들은 이러한 불길한 예언에 분개하여 예수를 붙잡아서 심하게 채찍질 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을 변명하거나 매질을 하는 자들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오직 전에 외치던 그 말만을 계속 소리쳤다. 그러자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가 불가사의한 어떤 힘에 조정되어 진다고 생각하고 그를 로마 총독에게 데리고 갔다. 예수는 채찍에 뼈가 드러나도록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단지 가장 슬픈 목소리로 채찍질 당할 때마다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아!” 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유대 총독인 알비누스(Albinus)가[㈜ 주후 62-64년 사이의 행정장관. 전쟁.2권. 14:1(272-276).] 예수에게 그가 누구며 어디 출신이며 왜 그런저주의 말만 되풀이 하느냐고 물었다. 예수는 알비누스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말만 되풀이 하였다 결국 알비누스는 예수를 정신이 돈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석방시켰다. 예수는 로마와의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그후 내내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시민들과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으며 오로지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아!” 라는 말만 매일 마치 기도문을 암송하듯이 되풀이 하였다. 그는 매일 자신을 때리는 자들을 조금도 저주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음식을 주는 자들에게도 축복하지 않았다.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있는 유일한 대꾸의 말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우울한 저주뿐이었다. 그의 저주의 외침은 유대인들의 명절때에 더욱커졌다. 그래서 7년 5개월 동안 내내 예수는 저주를 계속했으며 그의 목소리가 결코 위축되거나 지치지 않았다. 그는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그의 예언이 실지로 증명되고서야 외치기를 그만두었으며 그도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이 포위당하자 예수는 성벽을 돌면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아! 백성과 성전에 화가 있을지어다!”라고 외치고 난 뒤 마지막으로 “내게도 또한 화가 있을 지어다”라고 덧붙였고 이와 동시에 로마군 투석기에서 돌이 날라와 그를 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는 죽으면서까지 이제까지 계속 되풀이 하던 저주의 말을 입에 담은 채 숨을 거두었다.


     4. 두가지 신탁


     이러한 것들을 깊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하느님이 인간을 돌보시며 갖가지 방법으로 미리 자신의 뜻을 알리는 표적(징조)들을 통해 자기 백성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보이셨다는 것으로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미친 듯이 파멸의 길로 치달아스스로 재난을 자초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언서에 성전이 4스퀘어(four square)될 때 예루살렘과 성전이 함락되리라고 기록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스퀘어인 안토니아 망대를 파괴한 후에 성전을 4스퀘어 만들었던 것이다.[㈜ 근거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전쟁을 하게 한 것은 “그때에 유대에서 난자가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리라”라는 성경에 있는 애매모호한 예언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통치자가 유대 민족중에 한명이라고 이해했으며 많은 현명한 유대인들도 그러한 잘못된 해석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실제로 유대땅에 황제로 선포된 베스파시안의 통치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Tacitus의 ‘박물학’ 13절과 동일함. 참).수에토니우스(suetonius)의 ‘Vesp.’ 4에 동일한 진술이 나온다. 이(메시아적) 예언에 관한 것과 요세푸스와 티투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견에 관해서는 E. Norden이 쓴 ‘헬라 로마시대에 관한 신연보'(Neus Jahrbucher fur das Klassische Alertum) (1913)의 31:637이하와 P.Corrsen이 쓴 ‘신약학지’ (Zeitschrift fur die NT Wissenschaft) (1914)의 114이하를 보라. 타키투스는 요세푸스 본문을 읽은 것 같지 않으며 두사람 모두 공통 자료를 의존한 것 같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미리 그것을 예견했다고 하더라도 운명을 피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아무튼 유대인들은 이같은 징조(표적)들을 자기들 좋을 대로 해석하거나 아예 징조들을 무시하였으며 결국 이 같은 그들의 광기로 인해 예루살렘과 자신들의 파멸을 자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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