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가이사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그리고 포로들의 숫자와 공격 때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 또한 폭도 시몬과 요한이 사람들을 데리고 지하 동굴로 피신한 것에 대하여
1. 티투스의 입성
한편 티투스는 시내로 들어오면서 도시가 튼튼하게 건설된 것에 대해 경탄했으며, 무엇보다도 우선 강도들이 당황해서 버리고 간 망대들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망대의 견고하고 우뚝 솟은 규모와 돌 하나 하나의 크기와 연결부분의 정결함을 바라보면서 티투스는 망대의 높이와 넓이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탄했다. \”하느님은 이번 전쟁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다. 바로 하느님께서 유대인들을 이렇게 견고한 요새에서 떠나게 하셨다. 어찌 인간의 손이나 공성 무기들이 이렇게 막강한 망대들을 무너뜨릴 수 있단 말인가?\” 티투스는 이와 비슷한 많은 감탄의 말을 측근들에게 자주 했다. 그는 또한 강도들이 붙잡아 놓은 요새 속에 갇혀 있던 모든 포로들을 석방시켰다.그리고 그 후에 티투스는 도시의 나머지 부분들을 파괴했으며,성벽도 모두 무너뜨리고 망대들만[㈜ 파사엘(Phasael)은 \’다윗의 망대\’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여전히 서있다.] 남겨 두었다. 그는 망대들을 운이 따라준 기념으로 파괴 시키지 않았는데, 사실 공격도 하지 않고 방어만으로도 망대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운이 크게 따라준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생포된 유대인들의 운명
로마 병사들은 살아 남아 있는 유대인들이 아직도 계속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살상하는 데에 점점 진력을 내자, 티투스는 병사들에게 무장을 하고 대항하는 유대인들만 죽이고 나머지는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로마 병사들은 티투스가 죽이라고 명령한 자들 뿐만 아니라 나이 많은 노인과 약자들도 살해하였다. 반면 로마 병사들은 혈기 왕성한 쓸만한 젊은이들을 성전으로 끌고가 여인들의 뜰에 감금시켰다. 가이사 티투스는 그의 부하 중 한명을 유대인 젊은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임명했으며, 친구인 프론토(Fronto)로 하여금 체포된 유대인들에게 각각 적절한 형량을 판결하도록 임명하였다. 프론토는 반역을 일으킨 자들과 강도들을 모두 처형하였으며, 유대인들이 서로 서로 고발하는 정보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렸다. 또한 프론토는 젊은이들 가운데 키가 크고 잘생긴 자들을 뽑아 그들을 승리의 기념물로 남겨 두었으며, 나머지 가운데 17세 이상은 결박을 하여 애굽에 있는 작업장에[㈜ Whiston은 \’광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 베스파시안의 죄수들을 네로] 보냈다. 반면 티투스는 많은 유대인들을 다른 여러 지방에 선사품(노예)으로 보냈다. 선사품으로 보내진 유대인들은 경기장에서 칼이나 사나운 맹수들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또한 17세 이하의 포로들은 노예로 팔렸다.프론토가 체포된 유대인들을 심사하여 판결하는 동안 11,000명의 포로들이 굶주림으로 아사했다. 그 중 일부는 그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 간수들을 저주하며 죽어갔고, 일부 유대인들은 음식이 주어졌는데도 먹기를 거부해서 굶어 죽었다. 게다가 포로의 수가 엄청났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하였다.
3. 포로들과 사망자들의 통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면서 시작되어 예루살렘이 파멸될 때까지의 모든 전투를 통해 포로로 잡힌 전체 인원은 97,000명에 이르렀으며, 사망자의 숫자는 1,100,000명에 이르렀다. 그들가운데 대부분은 유대인이었지만, 예루살렘 시민은 아니었다.왜냐하면 이들은 유대의 각 지역에서 무교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인 자들로 갑자기 로마군과의 전쟁에 휘말린 유대인들이었다. 따라서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게 되어 처음에는 전염병이 생기게 되었고, 후에는 기근까지 겹쳐 더 급속도로 떼죽음을 당하였다. 예루살렘에 아주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수 있다는 사실은 케스티우스(Cestius)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통계 자료에 의해 분명해진다. 케스티우스는 유대를 경멸하는네로를 예루살렘이 강하다는 것을 설득하고 싶어서 대제사장들에게 가능한 방법으로 인구 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하였다. 따라서 유월절(Passover)이라 불리는 유대인의 명절에 유대인들은 제9시에서 제11시까지 제사를 드렸는데, 그때 잡은 제물의수를 계산하면 인구조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혼자서 제물을 바치는 것은 허용이 안되었고, 가족 단위로 최소한 10명 이상이 한조가 되어 각각 제물을 드렸으며, 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조가 되어 제물을 바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따라서 대제사장들이 희생된 번제물의 숫자를 셀 수 있었고, 그 수는 255,600마리에 달했다. 제물 한 마리당 평균 10명으로 계산하기만 해도 거룩하고 정결한 유대인들은 전부 총 2,700,000명에[㈜ 본문 또는 계산상의 오류. 합계는 2,556,000이 될 것이다.] 이르렀던 것이다. 게다가 문둥병이나 임질에 걸린 자들, 혹은 경도(經度)하는 여인들이나 그 외에 불결한 자들은 유월절에 함께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모든 사람들을 제외하고 계산한 유대인들의 수만 계수하였는데도 최소한 2,700,000명에 달했던 것이다. 또한 하느님을 경배하려 예루살렘에 찾아온 이방인들도 이 숫자에서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 예루살렘시에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4. 로마군은 지하 동굴에 숨은 유대인들을 수색함
이렇게 많은 유대인들이 멀리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 전 민족이 어쩌면 운명에 의해 감금 되다시피 완전히 갇히게 된 것이며, 로마군과의 전쟁으로 포위되어 있을때 예루살렘은 사람들로 완전히 꽉 차 있었다. 따라서 희생자들의 수는 인간에 의해서건 하느님의 심판에 의해서건 그전의 다른 어떤 재난으로 인한 희생자들 보다 그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학살되거나 로마군의 포로가 되었다. 게다가 승리자 로마군들은 지하 동굴속까지도 수색하기 시작했으며, 땅을 헤치며 발견하는 대로 모두 죽여버렸다. 지하 동굴에도 역시 2,000구 이상의 유대인들 시체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자살해 죽었으며, 일부는 서로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근으로 인해 죽었다. 로마 병사들이 본 시체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아주 끔찍스러웠으며, 많은 병사들이 보는 즉시 철수했지만 일부 다른 병사들은 탐욕 때문에 시체더미를 발로 밟으면서 더 안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많은 귀중하고 값비싼 물건들이 그들이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며, 로마 병사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귀중품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또한 로마 병사들은 폭군들이 붙잡은 많은 포로들을 데리고 왔다. 왜냐하면 요한이나 시몬과 같은 폭군들은 심지어 마지막까지도 잔인함을 버리지 못하여 포로들을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목들의 운명]
그러나 하느님은 이 두 폭군을 적절한 벌로 합당하게 심판하셨다. 요한은 동굴 속에서 형제와 함께 배고파 죽게 되자, 그 전에 그렇게도 화평의 제안을 박차고 거절하던 그가 로마군에게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시몬은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로마군과 싸운 후에 항복하였다. 여기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할 것이다.[㈜ 7권. 2:1,2 (25-36).] 시몬은 후에 승리의 기념으로 남겨두었다가 처형당했으며, 요한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로마 병사들은 예루살렘 상부도시의 외곽 지역까지 불을 질렀으며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제 9 장
가이사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그리고 포로들의 숫자와 공격 때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 또한 폭도 시몬과 요한이 사람들을 데리고 지하 동굴로 피신한 것에 대하여
1. 티투스의 입성
한편 티투스는 시내로 들어오면서 도시가 튼튼하게 건설된 것에 대해 경탄했으며, 무엇보다도 우선 강도들이 당황해서 버리고 간 망대들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망대의 견고하고 우뚝 솟은 규모와 돌 하나 하나의 크기와 연결부분의 정결함을 바라보면서 티투스는 망대의 높이와 넓이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탄했다. “하느님은 이번 전쟁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다. 바로 하느님께서 유대인들을 이렇게 견고한 요새에서 떠나게 하셨다. 어찌 인간의 손이나 공성 무기들이 이렇게 막강한 망대들을 무너뜨릴 수 있단 말인가?” 티투스는 이와 비슷한 많은 감탄의 말을 측근들에게 자주 했다. 그는 또한 강도들이 붙잡아 놓은 요새 속에 갇혀 있던 모든 포로들을 석방시켰다.그리고 그 후에 티투스는 도시의 나머지 부분들을 파괴했으며,성벽도 모두 무너뜨리고 망대들만[㈜ 파사엘(Phasael)은 ‘다윗의 망대’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여전히 서있다.] 남겨 두었다. 그는 망대들을 운이 따라준 기념으로 파괴 시키지 않았는데, 사실 공격도 하지 않고 방어만으로도 망대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운이 크게 따라준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생포된 유대인들의 운명
로마 병사들은 살아 남아 있는 유대인들이 아직도 계속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살상하는 데에 점점 진력을 내자, 티투스는 병사들에게 무장을 하고 대항하는 유대인들만 죽이고 나머지는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로마 병사들은 티투스가 죽이라고 명령한 자들 뿐만 아니라 나이 많은 노인과 약자들도 살해하였다. 반면 로마 병사들은 혈기 왕성한 쓸만한 젊은이들을 성전으로 끌고가 여인들의 뜰에 감금시켰다. 가이사 티투스는 그의 부하 중 한명을 유대인 젊은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임명했으며, 친구인 프론토(Fronto)로 하여금 체포된 유대인들에게 각각 적절한 형량을 판결하도록 임명하였다. 프론토는 반역을 일으킨 자들과 강도들을 모두 처형하였으며, 유대인들이 서로 서로 고발하는 정보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렸다. 또한 프론토는 젊은이들 가운데 키가 크고 잘생긴 자들을 뽑아 그들을 승리의 기념물로 남겨 두었으며, 나머지 가운데 17세 이상은 결박을 하여 애굽에 있는 작업장에[㈜ Whiston은 ‘광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 베스파시안의 죄수들을 네로] 보냈다. 반면 티투스는 많은 유대인들을 다른 여러 지방에 선사품(노예)으로 보냈다. 선사품으로 보내진 유대인들은 경기장에서 칼이나 사나운 맹수들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또한 17세 이하의 포로들은 노예로 팔렸다.프론토가 체포된 유대인들을 심사하여 판결하는 동안 11,000명의 포로들이 굶주림으로 아사했다. 그 중 일부는 그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 간수들을 저주하며 죽어갔고, 일부 유대인들은 음식이 주어졌는데도 먹기를 거부해서 굶어 죽었다. 게다가 포로의 수가 엄청났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하였다.
3. 포로들과 사망자들의 통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면서 시작되어 예루살렘이 파멸될 때까지의 모든 전투를 통해 포로로 잡힌 전체 인원은 97,000명에 이르렀으며, 사망자의 숫자는 1,100,000명에 이르렀다. 그들가운데 대부분은 유대인이었지만, 예루살렘 시민은 아니었다.왜냐하면 이들은 유대의 각 지역에서 무교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인 자들로 갑자기 로마군과의 전쟁에 휘말린 유대인들이었다. 따라서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게 되어 처음에는 전염병이 생기게 되었고, 후에는 기근까지 겹쳐 더 급속도로 떼죽음을 당하였다. 예루살렘에 아주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수 있다는 사실은 케스티우스(Cestius)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통계 자료에 의해 분명해진다. 케스티우스는 유대를 경멸하는네로를 예루살렘이 강하다는 것을 설득하고 싶어서 대제사장들에게 가능한 방법으로 인구 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하였다. 따라서 유월절(Passover)이라 불리는 유대인의 명절에 유대인들은 제9시에서 제11시까지 제사를 드렸는데, 그때 잡은 제물의수를 계산하면 인구조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혼자서 제물을 바치는 것은 허용이 안되었고, 가족 단위로 최소한 10명 이상이 한조가 되어 각각 제물을 드렸으며, 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조가 되어 제물을 바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따라서 대제사장들이 희생된 번제물의 숫자를 셀 수 있었고, 그 수는 255,600마리에 달했다. 제물 한 마리당 평균 10명으로 계산하기만 해도 거룩하고 정결한 유대인들은 전부 총 2,700,000명에[㈜ 본문 또는 계산상의 오류. 합계는 2,556,000이 될 것이다.] 이르렀던 것이다. 게다가 문둥병이나 임질에 걸린 자들, 혹은 경도(經度)하는 여인들이나 그 외에 불결한 자들은 유월절에 함께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모든 사람들을 제외하고 계산한 유대인들의 수만 계수하였는데도 최소한 2,700,000명에 달했던 것이다. 또한 하느님을 경배하려 예루살렘에 찾아온 이방인들도 이 숫자에서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 예루살렘시에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4. 로마군은 지하 동굴에 숨은 유대인들을 수색함
이렇게 많은 유대인들이 멀리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 전 민족이 어쩌면 운명에 의해 감금 되다시피 완전히 갇히게 된 것이며, 로마군과의 전쟁으로 포위되어 있을때 예루살렘은 사람들로 완전히 꽉 차 있었다. 따라서 희생자들의 수는 인간에 의해서건 하느님의 심판에 의해서건 그전의 다른 어떤 재난으로 인한 희생자들 보다 그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학살되거나 로마군의 포로가 되었다. 게다가 승리자 로마군들은 지하 동굴속까지도 수색하기 시작했으며, 땅을 헤치며 발견하는 대로 모두 죽여버렸다. 지하 동굴에도 역시 2,000구 이상의 유대인들 시체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자살해 죽었으며, 일부는 서로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근으로 인해 죽었다. 로마 병사들이 본 시체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아주 끔찍스러웠으며, 많은 병사들이 보는 즉시 철수했지만 일부 다른 병사들은 탐욕 때문에 시체더미를 발로 밟으면서 더 안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많은 귀중하고 값비싼 물건들이 그들이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며, 로마 병사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귀중품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또한 로마 병사들은 폭군들이 붙잡은 많은 포로들을 데리고 왔다. 왜냐하면 요한이나 시몬과 같은 폭군들은 심지어 마지막까지도 잔인함을 버리지 못하여 포로들을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목들의 운명]
그러나 하느님은 이 두 폭군을 적절한 벌로 합당하게 심판하셨다. 요한은 동굴 속에서 형제와 함께 배고파 죽게 되자, 그 전에 그렇게도 화평의 제안을 박차고 거절하던 그가 로마군에게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시몬은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로마군과 싸운 후에 항복하였다. 여기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할 것이다.[㈜ 7권. 2:1,2 (25-36).] 시몬은 후에 승리의 기념으로 남겨두었다가 처형당했으며, 요한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로마 병사들은 예루살렘 상부도시의 외곽 지역까지 불을 질렀으며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