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화 및 기타 민속 속의 민간사고

5. 민간화 및 기타 민속 속의 민간사고


흔히 民畵라고 부르는 民間畵는 전문적 기술을 가진 畵工에 의해 그려진 정규 그림이 아니고 비전문적인 민간인들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다. 民間畵의 소재는 주로 새나 짐승, 松竹 등의 長壽하는 자연물들이다. 불로장생한다고 믿는 十長生1)의 그림도 자주 그려졌다. 이외에도 옷이나 베개 마구리에도 ‘壽’, ‘福’ 등등의 글씨가 쓰였다. 이 글귀가 뜻하는 것은 건강, 장수, 부와 多産의 의미이며, 인간의 존재지속에 대한 염원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보겠다. 


이상에서 본 民間畵와 服飾 등에 담긴 사고는 (1) 건강하여 (2) 장수하면서 (3) 富하고 貴하게 되려는 욕구로 집약시켜 볼 수 있다.


6. 民間思考의 ‘本’


위에서 본 통과의례, 세시풍속, 가신·동신·풍수신앙 등의 민간신앙과 기타 민속 속에 담긴 공통적 욕구는 인간이 나서 죽을 때까지 많은 자손을 거느리고 病 없이 건강하고 부귀를 누리고 편안하게 장수하려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것은 결국 한마디로 ‘인간존재의 영구지속 욕구’로 압축된다. 이 속에 깔려 있는 民間思考의 원리는 존재를 ‘카오스’ 쪽에서 보는 입체적 존재사고여서 존재가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미분적 동일근원의 순환 체계 위에서 영원히 지속된다고 믿는 것이다. 낮과 밤의 순환, 달이 차고 기우는 것, 죽은 사람의 영혼이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것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巫俗이 민간인들에게 잘 받아들여진 것은 바로 巫俗 안에서 이러한 미분적 동일근원의 ‘本’을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제2절 ‘원본’과 민간상


이 장에서는 ‘原本’思考를 통해 한국의 전통적인 民間像2)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巫俗에 대한 평가는 주로 역기능적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비판되었다. 巫俗으로 인해 나태심과 요행심만 심어 주게 되었고, 윤리의식과 역사의식이 결여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에 巫俗이 한국인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기능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부정적인 견해들이 나오게 된 이유는 민간인들의 반대편에서 합리적인 관찰자대로의 주관적 척도를 가지고 관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적 입장에 서서 민간인들의 생활현장으로부터 그들의 心性을 들여다보면 ‘카오스’ 쪽에 비중을 두고 살아온 民間思考를 이해하게 된다. 즉 ‘카오스’ 속에는 질서가 없어서 질서를 전제로 하는 합리성이나 역사의식, 책임의식과 조직력에 의한 횡적 결합과 단결이 있을 수 없다. 이런 民間像을 편의상 구분해 보면 ‘카오스’적 未分性, 循環性, 持續性인데, 이 3자는 모두 ‘原本’思考에 기반을 둔 相補的 관계에 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차례대로 검토해 나가기로 하자.


1. 미분성


자연적 상황 속에 살고 있는 민간인의 心象은 질서 체계 이전의 未分性을 간직하고 있다. 분화된 개별 질서 체계로 인한 너와 나의 분리된 경쟁적 적극성이 없어 체념과 나태심이 있을 수 있다. 상대편이 자기와 대등하게 分化되어 있는 개체임을 인정하지 않아서 사회적 통합성이 결여되며, 이 때문에 한국의 굴절된 人間像의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未分性이 이와 같은 역기능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민간인들의 융화, 協同과 人情 등의 기능적인 일면도 지니고 있다. 카오스를 넘나들며 자연적 상황 속에 살고 있는 민간인들은 너와 나의 구별없이 온 마을이 한 덩어리가 되어 살고 있다. 洞神祭나 ‘품앗이’, ‘계’와 같은 마을 전체의 공동 목적인 있을 때만 단합되고, 그 외의 평상시엔 원상태로 돌아와 자아중심이 되기 때문에, 여전히 이웃과의 反目과 갈등이 있게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未分性이 때로는 人心과 素朴, 착한 心性이라는 긍정적인 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人情이나 人心은 너와 나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未分性에서 나온다. 따라서 남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과 똑같이 여기게 되고 남의 길흉사에 기꺼이 협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상호 협동이 무조건적으로 사람은 원래 그래야 된다는 일방적인 생각으로 흘러 갈 가능성이 높다. 한편 사람들은 한데 어울리어 동일감 속에 사는 人情을 원하면서도 때로는 분화 질서를 원하는 반대현상을 보이고 있다. 未分性이 지나쳐 상대편의 개체 분화 한계를 인정하지 않게 될 때 ‘뻔뻔스럽다’는 말을 듣게 된다.


2. 순환성


‘循環性’은 어떤 것이든 한 상태로 지속되지 않고, 다른 상태로 변해 돌아가며 교체되는 것이 반복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두 상태의 개체분화가 명확하지 않은 카오스적 未分性의 연장 변화 상태로 볼 수 있다. 


이런 循環性의 예는 다음과 같다. 설화의 경우, 前生에 살다 죽은 총각의 영혼이 이승에 태어나 정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거기서 다시 이승으로 오는 循環性을 보여 준다. 그리고 민요와 민담에서 고난을 이기고 마침내 행운으로 끝내는 이야기의 例, 또 時空을 초월해 變身이 자유로운 變身說話의 例가 있다.


한편 속담의 경우,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등의 말은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고난이 낙이 될 수도 있는 고난과 낙의 未分的 循環인 것이다. 이와 같은 循環性은 민간인의 忍耐心과 내일을 기다리며 희망을 갖고 조급하게 굴지 않는 餘裕와 樂天性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보인다.


3. 지속성


未分性의 기반 위에 循環性이 있고, 이 둘은 존재의 持續性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民間思考 속의 靈魂觀, 來世觀, 그리고 怨恨, 保守性과 傳統의 固守, 物慾이나 慾心, 혈통의 계승을 위한 아들 重視와 근원을 重視하는 孝誠의 결과가 생겼다.


靈魂觀과 來世觀은 인간이 죽어도 그 육체에 있던 영혼은 멸하지 않고 그 근원인 ‘카오스’로 돌아가 永遠存在로 지속되면서 환생 또는 내세에서 영생한다는 것이다. 살아 생전의 怨恨이 죽은 후까지도 계속된다고 믿는 것 역시 未分性에 기반을 둔 恨의 持續性이다. 保守性과 傳統의 固守는 자아 중심의 未分的 지속 욕구이며 여기서부터 개인 慾心이 더욱 강하게 부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자아중심의 未分的 持續性은 딸보다 아들을 重視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자아 연장인 아들이 다시 자아를 계승 연장시켜 자아를 영원히 持續해 가려는 욕구는 한편 자아와 未分的 관계인 부모·조상을 重視하는 孝誠으로 발전해 간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民間像으로 비추어진 未分性·循環性·持續性은 相補的 관계에 있다. 이런 心性은 존재를 ‘카오스’ 쪽에서 보는 ‘原本’思考에 기반을 둔 것이다. 자아 중심의 결과를 가져온 ‘카오스’적  未分性은 제반 부정적 요소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또한 많은 긍정적 요소도 여기서 나오고 있다. 즉 未分性은 人情·素朴美·善 등을, 循環性은 인내심과 여유· 희망·낙천성 등을, 끝으로 持續性은 孝誠과 혈친을 重視하는 등 ‘否定 속의 肯定’이란 逆現象을 보이고 있다. 민간인들은 존재의 永久持續을 위해 늘 ‘카오스’의 未分性에 비중을 두면서 필요에 따라 分化秩序를 인정도 하고 부정도 하는 유동성을 보여 否定과 肯定이 교체 循環하면서 영원히 持續한다고 본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