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homet 570?∼632
이슬람교의 창시자. 원명은 Muhammad이다. 570년경 메카의 쿠라이시족(族)의 하심가(家)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조부 압둘 무탈리브에게 양육되었으며, 조부가 사망한 후에는 숙부 아부 탈리브에게 양육되었다. 소년시절 숙부와 함께 대상(隊商)으로 시리아에 다녀왔으며, 청년시절에는 상인들의 대리인을 하였다. 숙부의 소개로 알게 된 부유한 미망인 하디자의 일을 돕던 중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었다. 이때 마호메트는 25세, 하디자는 40세였다. 그는 차츰 생활의 안정을 얻고 3남 4녀를 두었지만 아들들은 모두 일찍 죽었다. 이때부터 마호메트는 메카 교외의 히라산 동굴에서 기도와 명상에 잠기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610년 어느날 밤, 히라산 동굴에 갑자기 천사 지부릴(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처음으로 신의 계시를 받았다. 혼란과 고뇌 속에서 마침내 그는 자신이 예언자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주위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일신(唯一神) 알라에 대한, 종말·부활·심판, 천국과 지옥, 신앙과 선행에 의한 구제(救濟)와 불신자에 대한 벌의 가르침은, 메카의 다신교·상인윤리·부족윤리와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것이어서 대부분의 메카사람들로부터 비웃음과 반감을 사고 박해를 받게 되었다. 615년 연안 건너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로 약 80명의 신도를 피신시켰다. 619년 그를 보호해주던 숙부와 아내 하디자를 잃었으며, 선교활동은 쿠라이시족의 박해로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620년, 판테온·카바 신전을 순례하기 위하여 메카를 방문한 이교도(異敎徒)인 야스리브(지금의 메디나)인들이 마호메트의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 당시 메디나는 유대교도의 부족 외에 아우스족과 하즈라지족이라는 두 아랍부족이 있었는데 이들은 오랫동안 대립·항쟁하고 있었다. 마호메트의 설교를 들은 순례자들은 그를 조정자(調停者)로 추대하게되었고, 그도 선교의 좋은 기회로 생각하여 622년 9월, 70여 명의 신도들과 함께 비밀리에 메카를 탈출하여 메디나에 도착하였다. 이것을 히즈라(Hijrah;또는 헤지라, 聖遷)라고 부르며, 후에 이 해를 이슬람력(曆)의 원년으로 삼았다. 이곳에서 이주자(移住者;muh겸jir경n) 약 70명, 메디나의 원조자(ansar) 약 80명이 함께 마호메트를 예언자로 인정하는 작은 이슬람공동체(umma)를 만들었다. 그러나, 마호메트가 예언자로 받아들여지기는 하였지만, 조정자의 지위에 있었기 매문에 조정에 실패하면 그의 예언자로서의 지위는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메디나사회에는 유대교도를 비롯하여 그의 지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고, 더구나 메카의 대상(大商)들에게는 메디나에 있는 이슬람교도의 존재가 시리아지방으로 가는 교역로를 위협하는 것이 되므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 곤란과 장애를 극복하고 사명을 완수하는 데는 종교적 지도자로서는 물론 뛰어난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능력도 요구되었다. 624년 메디나의 이주자에게 자활의 길을 열어주고, 메카에 경제적 타격을 주기 위하여 시리아에서 돌아가는 메카의 상인들을 공격하였다. 메카에서 증원부대를 보냈지만 메카와 메디나의 중간지점인 바도르에서 격파되었다. 625년 우후드산 아래에서 메디나측은 다시 메카측과 교전, 이번에는 메디나측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그 후 마호메트는 당분간 내정과 포교에 힘썼으며, 이 무렵 이슬람교도에 대한 협력이 기대되었던 유대교도와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메디나측에 대해 배반하였던 쿠라이시족 등이 마호메트의 명령으로 멸망당하는 일 등이 있었다. 627년 싸움에서는 메카측이 메디나를 포위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 동안에 그는 군사적 승리를 이용하여 유대교도와 불만분자를 배제, 외교교섭으로 주변 아랍부족들을 개종(改宗)시키고 동맹을 맺어서 내외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강화시켜 나갔으며 이것이 그의 인덕(人德)과 종교적 권위를 한층 높여 주었다. 630년 마호메트는 메카로 군대를 진격시켜 무혈정복에 성공하였으며 카바신전에 있는 모든 우상들을 제거했다. 아랍부족 중 유력한 쿠라이시족이 마호메트의 권위에 복종하자, 아라비아반도 전역에 그의 위력이 알려져 많은 부족들이 메디나에 사절을 보내와 맹약을 맺고, 이슬람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호메트는 632년 메카 순례를 끝내고 메디나에 돌아가서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후계자문제와 아랍부족들의 배반에 의해 공동체는 한때 붕괴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초대 칼리프(마호메트의 후계자)에 선출된 아부바크르(재위 632∼634)의 노력으로 반도는 다시 통일되고, 이슬람교도군은 반도를 나와 동서로 그 판도를 넓혔다. 이리하여 마호메트는 신의 사도(使徒)·예언자로서 신의 계시를 전달하고 그 가르침을 현실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종교자요, 뛰어난 조직자였다. 이슬람교에서는 신 이외의 모든 것은 그 피조물(被造物)로서 신과 구별되며 그런 것들의 신격화는 엄격하게 부정된다. 예언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코란에도 반복하여 강조되고 있는 것처럼 마호메트는 <한 사람의 경고자(53장 56절)> <보통인간, 한 사람의 사도(17장 93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호메트는, 그를 만났던 사람이나, 그를 경애하는 신도들에게는 <보통인간>이 아니었다. 여러 시대의 여러 사람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모슬렘(이슬람교도)의 본보기였고 초인적인 존재였다. 서민에게는 기적의 집행자였고, 법학자에게는 그에 대한 복종이 곧 신에 대한 복종이었으며, 그 언행은 코란에 이어서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신비주의자에게 그는 이상적인 신비주의자였고, 그의 본질은 우주창조에 앞장선 신의 선재적(先在的) 로고스였으며, 철학자는 이상적인 철인(哲人)을, 근대주의자는 최고의 도덕적 완성자를 그에게서 발견하였다. 이처럼 마흐메트는 시대를 초월하여 이슬람교도의 신앙을 북돋아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