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세 종교의 공통 조상

 

아브라함은 세 종교의 공통 조상




1. 아브라함의 이주 여행




  서력 기원전 19세기에 종교의 역사는 바른 영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아브라함(Abraham, 아랍어로는 Ibrahim)이 그의 아버지 테라(Terah)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상들이 믿고 있던 가신(家神, househole gods: 터주신, 地神)을 저버리고 새로운 유일신(唯一神)의 종교로 전향하였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그 당시의 종교 사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ꡒ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ꡓ(창세 12, 1-2).


  코란에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를 아자르(Azar)라고 부르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그의 부친의 우상 숭배에 항의하고 또 우상을 모조리 때려부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ꡒ아브라함이 그의 부친 아자르에게 ‘아버지께서는 우상을 신으로 삼으시나이까? 실로 제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람들이 분명히 잘못하고 있음을 아나이다’ 하고 말하였다ꡓ(코란 6, 75).


  ꡒ그는 우상들을 우두머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산산조각으로 부수었으니… 저들이 말하기를 ‘누가 우리 신들에게 이 짓을 하였는가? 실로 그는 악행자이니라.’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한 청년이 신들에게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나이다. 그는 아브라함이라고 하나이다’ꡓ(코란 21, 59-61).


창세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칼데아(Chaldea) 지방의 우르(Ur)에서 가족을 데리고 떠나 서북 지방의 하란(Haran)으로 이주(移住)했다가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Canaan)과 이집트로 옮겨 살다가 다시 약속된 땅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정착하였다(창세 12, 1-20).


  ꡒ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를 데리고 칼데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다 자리 잡고 살았다ꡓ(창세 11, 31-32).


  그런데 이슬람 교도들은 아브라함이 위의 이주 여행에서 아라비아의 메카(Mecca)를 거쳐 갔다고 믿고 있다. 창세기 21장 20절에 나오는 바란(Paran) 사막이 메카 부근이라고 주장하고 아브라함도 이스마엘과 같이 그곳에 살았고 알라신(神)의 신전(神殿) 카바(Kaaba)도 그들이 처음 세웠다고 주장한다.


  ꡒ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신전의 기석을 올려, ‘주여! 저희로부터 이것을 받아 주옵소서. 당신은 모든 것을 듣고 계시옵고 전지하시나이다’라고 기도했던 때를 기억하라ꡓ(코란 2, 128).


  아브라함의 이주 여행은 종교의 혁신(innovation of religion)을 가져왔고 또 여러 지방의 순례(geographical pilgrimage)로 많은 민족의 집결을 촉진시켰다.




2.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하느님이 재삼 가르쳐 주신 유일신교의 첫 신자였던 아브라함의 역사는 세 종교(유다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 다 같이 수용하고 또 그를 위대한 ‘믿음의 아버지(Father of the Faithful)’로 모시며 자랑하고 있다.  




  1) 구약 성서


  아브라함을 ‘만민의 아버지’로 또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구원하실 왕손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


  ꡒ나는 전능하신 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 없이 살아라. 나는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을 세워 네 후손을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너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왕손도 너에게서 나오게 하리라…ꡓ(창세 17, 1-6).


  ꡒ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생각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굽어살펴 주셨다ꡓ(출애 2, 24-25).




  2) 신약 성서


  아브라함을 구세주 예수의 선조(先祖)요. 또한 ‘하느님의 친구’요 ‘믿음의 사람’이라 부르고 있다.


  ꡒ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ꡓ(마태 1, 1).


  ꡒ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ꡓ(갈라 3, 6-7).


  ꡒ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ꡓ(로마 4, 16).


  ꡒ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ꡓ(야고 2, 23).




  3) 코란


  코란은 아브라함을 ‘민족의 지도자’, ‘예언자’, ‘첫 모슬렘’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ꡒ성전에 언급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말하라. 그는 진실한 사람이고 예언자였느니라ꡓ(코란 19, 42).


  ꡒ주님께서 아브라함이 이행한 계율로써 아브라함을 시험했던 때를 기억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너로 하여금 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겠노라’ꡓ(코란 2, 125).


  ꡒ저희는 아버지의 조상이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그리고 이사악의 하느님이시며 아버지의 하느님이신 유일하신 그분을 경배하렵니다ꡓ(코란 2, 134).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보다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에 대한 교리를 더 강조하여 코란에 무려 25장(surah)이나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랍 민족이 아브라함과의 인연을 잊어버리거나 혹은 잘못 알아듣고 있었기 때문에 마호메트가 옛 본연의 위치로 복귀시키기 위함이었다.




3. 아브라함의 두 아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이사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이스마엘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두 민족의 조상은 같은 아버지를 가진 형제였으나 처음부터 불화와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 구약의 창세기와 코란은 대체로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민족의 우위성(優位性, priority)을 주장하는데는 서로 상반된다.




  1) 사라와 이사악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가 되었고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도 90세가 되었는데 아직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하느님이 ꡒ네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이사악이라고 하여라ꡓ(창세 17, 19)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1년 후에 이사악이 태어났다. ꡒ사라가 임신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때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ꡓ(창세 21, 2).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해 보시려고 이사악을 당신이 일러 주는 산에 올라가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였다(창세 22, 1-14).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대로 실천하려고 모든 준비를 갖추었으나 천사의 만류로 이사악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 후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 때문에 더욱 많은 은혜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


  ꡒ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마저 서슴지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으니… 나는 너에게 더욱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ꡓ(창세 22, 16-17).




  2) 하갈과 이스마엘


  사라가 늙도록 아기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자진해서 그의 몸종이었던 이집트 출신의 하갈을 소실로 맞아들일 것을 아브라함에게 건의하였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건의를 받아들였다(창세 16, 1-3). 막상 하갈이 임신하게 되자 사라는 하녀를 시기하여 박대하기 시작하였다. 하갈은 사라의 학대에 못 이겨 집을 나와 도망쳤다. 하느님의 천사를 중도에 만났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그녀와 그녀의 아이의 앞날을 예언해 주었다.


  ꡒ야훼의 천사는 주인 곁으로 돌아가 고생을 참고 견디라면서 이렇게 일러 주는 것이었다. ‘내가 네 자손을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야훼의 천사는 다시 ‘너는 아들을 배었으니 낳거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ꡓ(창세 16, 9-11).


  그러나 사라와 하갈의 사이가 더욱 나빠져 사라의 요구에 따라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냈다.


  ꡒ아브라함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스마엘도 자기 혈육이었기 때문이다ꡓ(창세 21, 11).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식 얼마와 물 한 부대를 하갈에게 매어 주며 아이를 데리고 나가게 하였다. 하갈은 길을 떠나 얼마쯤 가다가 브엘세바 빈 들을 헤매게 되었다.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목이 말라 거의 죽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샘을 발견하게 해주셨다. 이스마엘은 바란 사막에서 살며 사냥꾼이 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며느릿감을 이집트 땅에서 골라 왔다(창세 21, 14-21).




  3) 이스라엘과 아랍의 갈등


  이슬람 교도들은 위의 창세기의 사실에 대해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즉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바친 번제물은 이사악이 아니고 이스마엘이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이름을 바꾸어 넣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록 이스마엘이 여종인 하갈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법적으로 아브라함의 맏아들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본시 이슬람법에 의하면 종과 자유인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장자권은 먼저 세상에 태어난 이스마엘에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 바친 제물도 이사악이 아니고 장자인 이스마엘이었다는 것이다. 이집트 출신의 이슬람 신학자 하마다 압달라티(Hammadah Abdalati)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ꡒ만인은 하느님 앞에 평등하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적 및 윤리적 질(質)이 어머니의 가문의 귀천과 인종의 색깔로 인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ꡓ


  이사악이 장자가 아니고 이스마엘이 장자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즉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때에는 이사악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이스마엘이 장자의 자격으로 아브라함과 같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ꡒ아브라함은 그날(계약의 날)로 아들 이스마엘을 비롯하여 집에서 난 씨종과 돈 주고 산 종에 이르기까지 집안에 있는 모든 남자를 다 불러들여 포경을 베어 할례를 베풀었다ꡓ(창세 17, 23).


  다음 ꡒ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거기서 내가 일러 주는 산에 올라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ꡓ(창세 22, 2)라는 구절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엄연히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사악이 있었는데 ꡒ네 외아들 이사악ꡓ이라고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랍 모슬렘 민족을 하느님의 구세 계획에서 배제시키려고 인위적으로 써넣은 구절이라고 주장한다. 처음 유다인들이 이스마엘의 이름을 빼고 나중에 크리스찬들이 그 진위를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한편 창세기의 위의 기록과는 달리 코란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이사악은 부수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물론 번제의 제물도 이스마엘로 암시하고 있다.


  ꡒ(아브라함이) ‘주여! 의로운 아들 하나를 제게 주옵소서’라고 하였노라. 그리하여 내가 그에게 훌륭한 아들에 관한 기쁜 소식을 주었노라…. 그 아이(이스마엘)가 성장하여 그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는 말하기를 ‘오 나의 아들아! 너를 제물로 바치는 꿈을 꾸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였을 때 아들이 말하기를 ‘오 아버지! 명령받으신 대로 하시옵소서’ 하였다ꡓ(코란 37, 101-103).


  ꡒ나는 그 (이스마엘)와 이사악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으며 그들 두 사람의 자손 중에는 선을 행하는 자도 있으나 불의를 행하는 자도 분명히 있었느니라ꡓ(코란 37, 114).


  코란에서 아브라함의 족보를 말할 적에는 아브라함 바로 뒤에 이스마엘이 오고 다음 이사악이 온다. 그것은 이스마엘이 형이기 때문이다.


  ꡒ야곱이 죽음에 임하였을 때…아들들은 대답하여 ‘저희는 아버지의 조상이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그리고 이사악의 하느님이시며’…ꡓ(코란 2, 134).


  창세기에는 이스마엘과 이사악의 후손이 서로 갈등하며 불화를 일으키게 될 것을 미리 예언하고 있다.


  ꡒ네(하갈) 아들은 들나귀 같은 사람이라 닥치는 대로 치고 받아 모든 골육의 형제와 등지고 살리라ꡓ(창세 16, 12).


  기원전 19세기부터 오늘의 2천년까지 거의 4천 년간 두 민족은 불화와 전쟁의 연속으로 형제 살육(frat갸챵미 struggle)의 역사를 계속해 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할 전망이다.


  오늘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와의 갈등과 싸움이 과거 불행한 역사의 연속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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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세 종교의 공통 조상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아브라함은 세 종교의 공통 조상


    1. 아브라함의 이주 여행


      서력 기원전 19세기에 종교의 역사는 바른 영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아브라함(Abraham, 아랍어로는 Ibrahim)이 그의 아버지 테라(Terah)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상들이 믿고 있던 가신(家神, househole gods: 터주신, 地神)을 저버리고 새로운 유일신(唯一神)의 종교로 전향하였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그 당시의 종교 사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ꡒ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ꡓ(창세 12, 1-2).

      코란에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를 아자르(Azar)라고 부르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그의 부친의 우상 숭배에 항의하고 또 우상을 모조리 때려부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ꡒ아브라함이 그의 부친 아자르에게 ‘아버지께서는 우상을 신으로 삼으시나이까? 실로 제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람들이 분명히 잘못하고 있음을 아나이다’ 하고 말하였다ꡓ(코란 6, 75).

      ꡒ그는 우상들을 우두머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산산조각으로 부수었으니… 저들이 말하기를 ‘누가 우리 신들에게 이 짓을 하였는가? 실로 그는 악행자이니라.’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한 청년이 신들에게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나이다. 그는 아브라함이라고 하나이다’ꡓ(코란 21, 59-61).

    창세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칼데아(Chaldea) 지방의 우르(Ur)에서 가족을 데리고 떠나 서북 지방의 하란(Haran)으로 이주(移住)했다가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Canaan)과 이집트로 옮겨 살다가 다시 약속된 땅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정착하였다(창세 12, 1-20).

      ꡒ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를 데리고 칼데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다 자리 잡고 살았다ꡓ(창세 11, 31-32).

      그런데 이슬람 교도들은 아브라함이 위의 이주 여행에서 아라비아의 메카(Mecca)를 거쳐 갔다고 믿고 있다. 창세기 21장 20절에 나오는 바란(Paran) 사막이 메카 부근이라고 주장하고 아브라함도 이스마엘과 같이 그곳에 살았고 알라신(神)의 신전(神殿) 카바(Kaaba)도 그들이 처음 세웠다고 주장한다.

      ꡒ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신전의 기석을 올려, ‘주여! 저희로부터 이것을 받아 주옵소서. 당신은 모든 것을 듣고 계시옵고 전지하시나이다’라고 기도했던 때를 기억하라ꡓ(코란 2, 128).

      아브라함의 이주 여행은 종교의 혁신(innovation of religion)을 가져왔고 또 여러 지방의 순례(geographical pilgrimage)로 많은 민족의 집결을 촉진시켰다.


    2.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하느님이 재삼 가르쳐 주신 유일신교의 첫 신자였던 아브라함의 역사는 세 종교(유다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 다 같이 수용하고 또 그를 위대한 ‘믿음의 아버지(Father of the Faithful)’로 모시며 자랑하고 있다.  


      1) 구약 성서

      아브라함을 ‘만민의 아버지’로 또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구원하실 왕손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

      ꡒ나는 전능하신 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 없이 살아라. 나는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을 세워 네 후손을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너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왕손도 너에게서 나오게 하리라…ꡓ(창세 17, 1-6).

      ꡒ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생각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굽어살펴 주셨다ꡓ(출애 2, 24-25).


      2) 신약 성서

      아브라함을 구세주 예수의 선조(先祖)요. 또한 ‘하느님의 친구’요 ‘믿음의 사람’이라 부르고 있다.

      ꡒ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ꡓ(마태 1, 1).

      ꡒ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ꡓ(갈라 3, 6-7).

      ꡒ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ꡓ(로마 4, 16).

      ꡒ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ꡓ(야고 2, 23).


      3) 코란

      코란은 아브라함을 ‘민족의 지도자’, ‘예언자’, ‘첫 모슬렘’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ꡒ성전에 언급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말하라. 그는 진실한 사람이고 예언자였느니라ꡓ(코란 19, 42).

      ꡒ주님께서 아브라함이 이행한 계율로써 아브라함을 시험했던 때를 기억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너로 하여금 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겠노라’ꡓ(코란 2, 125).

      ꡒ저희는 아버지의 조상이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그리고 이사악의 하느님이시며 아버지의 하느님이신 유일하신 그분을 경배하렵니다ꡓ(코란 2, 134).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보다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에 대한 교리를 더 강조하여 코란에 무려 25장(surah)이나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랍 민족이 아브라함과의 인연을 잊어버리거나 혹은 잘못 알아듣고 있었기 때문에 마호메트가 옛 본연의 위치로 복귀시키기 위함이었다.


    3. 아브라함의 두 아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이사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이스마엘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두 민족의 조상은 같은 아버지를 가진 형제였으나 처음부터 불화와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 구약의 창세기와 코란은 대체로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민족의 우위성(優位性, priority)을 주장하는데는 서로 상반된다.


      1) 사라와 이사악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가 되었고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도 90세가 되었는데 아직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하느님이 ꡒ네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이사악이라고 하여라ꡓ(창세 17, 19)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1년 후에 이사악이 태어났다. ꡒ사라가 임신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때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ꡓ(창세 21, 2).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해 보시려고 이사악을 당신이 일러 주는 산에 올라가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였다(창세 22, 1-14).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대로 실천하려고 모든 준비를 갖추었으나 천사의 만류로 이사악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 후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 때문에 더욱 많은 은혜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

      ꡒ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마저 서슴지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으니… 나는 너에게 더욱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ꡓ(창세 22, 16-17).


      2) 하갈과 이스마엘

      사라가 늙도록 아기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자진해서 그의 몸종이었던 이집트 출신의 하갈을 소실로 맞아들일 것을 아브라함에게 건의하였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건의를 받아들였다(창세 16, 1-3). 막상 하갈이 임신하게 되자 사라는 하녀를 시기하여 박대하기 시작하였다. 하갈은 사라의 학대에 못 이겨 집을 나와 도망쳤다. 하느님의 천사를 중도에 만났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그녀와 그녀의 아이의 앞날을 예언해 주었다.

      ꡒ야훼의 천사는 주인 곁으로 돌아가 고생을 참고 견디라면서 이렇게 일러 주는 것이었다. ‘내가 네 자손을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야훼의 천사는 다시 ‘너는 아들을 배었으니 낳거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ꡓ(창세 16, 9-11).

      그러나 사라와 하갈의 사이가 더욱 나빠져 사라의 요구에 따라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냈다.

      ꡒ아브라함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스마엘도 자기 혈육이었기 때문이다ꡓ(창세 21, 11).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식 얼마와 물 한 부대를 하갈에게 매어 주며 아이를 데리고 나가게 하였다. 하갈은 길을 떠나 얼마쯤 가다가 브엘세바 빈 들을 헤매게 되었다.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목이 말라 거의 죽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샘을 발견하게 해주셨다. 이스마엘은 바란 사막에서 살며 사냥꾼이 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며느릿감을 이집트 땅에서 골라 왔다(창세 21, 14-21).


      3) 이스라엘과 아랍의 갈등

      이슬람 교도들은 위의 창세기의 사실에 대해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즉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바친 번제물은 이사악이 아니고 이스마엘이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이름을 바꾸어 넣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록 이스마엘이 여종인 하갈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법적으로 아브라함의 맏아들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본시 이슬람법에 의하면 종과 자유인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장자권은 먼저 세상에 태어난 이스마엘에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 바친 제물도 이사악이 아니고 장자인 이스마엘이었다는 것이다. 이집트 출신의 이슬람 신학자 하마다 압달라티(Hammadah Abdalati)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ꡒ만인은 하느님 앞에 평등하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적 및 윤리적 질(質)이 어머니의 가문의 귀천과 인종의 색깔로 인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ꡓ

      이사악이 장자가 아니고 이스마엘이 장자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즉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때에는 이사악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이스마엘이 장자의 자격으로 아브라함과 같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ꡒ아브라함은 그날(계약의 날)로 아들 이스마엘을 비롯하여 집에서 난 씨종과 돈 주고 산 종에 이르기까지 집안에 있는 모든 남자를 다 불러들여 포경을 베어 할례를 베풀었다ꡓ(창세 17, 23).

      다음 ꡒ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거기서 내가 일러 주는 산에 올라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ꡓ(창세 22, 2)라는 구절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엄연히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사악이 있었는데 ꡒ네 외아들 이사악ꡓ이라고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랍 모슬렘 민족을 하느님의 구세 계획에서 배제시키려고 인위적으로 써넣은 구절이라고 주장한다. 처음 유다인들이 이스마엘의 이름을 빼고 나중에 크리스찬들이 그 진위를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한편 창세기의 위의 기록과는 달리 코란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이사악은 부수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물론 번제의 제물도 이스마엘로 암시하고 있다.

      ꡒ(아브라함이) ‘주여! 의로운 아들 하나를 제게 주옵소서’라고 하였노라. 그리하여 내가 그에게 훌륭한 아들에 관한 기쁜 소식을 주었노라…. 그 아이(이스마엘)가 성장하여 그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는 말하기를 ‘오 나의 아들아! 너를 제물로 바치는 꿈을 꾸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였을 때 아들이 말하기를 ‘오 아버지! 명령받으신 대로 하시옵소서’ 하였다ꡓ(코란 37, 101-103).

      ꡒ나는 그 (이스마엘)와 이사악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으며 그들 두 사람의 자손 중에는 선을 행하는 자도 있으나 불의를 행하는 자도 분명히 있었느니라ꡓ(코란 37, 114).

      코란에서 아브라함의 족보를 말할 적에는 아브라함 바로 뒤에 이스마엘이 오고 다음 이사악이 온다. 그것은 이스마엘이 형이기 때문이다.

      ꡒ야곱이 죽음에 임하였을 때…아들들은 대답하여 ‘저희는 아버지의 조상이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그리고 이사악의 하느님이시며’…ꡓ(코란 2, 134).

      창세기에는 이스마엘과 이사악의 후손이 서로 갈등하며 불화를 일으키게 될 것을 미리 예언하고 있다.

      ꡒ네(하갈) 아들은 들나귀 같은 사람이라 닥치는 대로 치고 받아 모든 골육의 형제와 등지고 살리라ꡓ(창세 16, 12).

      기원전 19세기부터 오늘의 2천년까지 거의 4천 년간 두 민족은 불화와 전쟁의 연속으로 형제 살육(frat갸챵미 struggle)의 역사를 계속해 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할 전망이다.

      오늘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와의 갈등과 싸움이 과거 불행한 역사의 연속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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