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이슬람과 모술렘의 낱말
1) 마호메트
마호메트(Mahomet) 혹 무하마드(Muhammae, A.D. 571-632)가 이슬람의 종교를 세웠다고 해서 서구인들이 마호메트교(Mahometanism)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잘못된 호칭이라고 이슬람 교도들은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크리스찬들이 그리스도를 숭배(崇拜: 神格化)하고 있는 데 반하여 이스람 교도들은 마호메트를 예언자(Prophet), 사자(使者: Messenger), 사도(使徒: Apostle)로 부를 뿐 마호메트를 믿는 것이 아니고 알라신(Allah神)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호메트가 이슬람 종교를 창설했기 때문에 알라신과 코란 경전 다음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는 신(神)이 아니며 또 신의 화신(化神: Incarnation of God)도 아니기 때문에 숭배(worship)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2) 이슬람
이슬람(al-Islam=the Islam)의 낱말은 어원(語源)적으로는 아랍어의 Salam(평화)에서 나왔으나 Islam이란 순종(順從, submission)을 뜻한다. 따라서 이슬람교란 ꡒ다만 하나이신 알라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종교ꡓ혹은 ꡒ알라신에게 순종하여 평화를 얻는 종교ꡓ를 뜻한다.
마치 구약 성서의 모세가 히브리인에게 하느님의 계시를 전달하고 또 예수가 전 인류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과 같이 마호메트가 알라신의 메시지를 아랍인들에게 전달하여 그를 신봉(信奉)케 한 것이다. 코란(Koran, Quran)에는 이슬람의 종교를 알라신이 선택하여 완성시켰다고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ꡒ오늘 내가 너희를 위해 너희의 종교를 완전케 하고 너희에 대한 나의 은혜를 완전케 하고 너희를 위해 이슬람을 너희의 종교로 선택하였노라ꡓ(코란 5, 4).
3) 모슬렘
모슬렘(Moslem) 혹은 무슬림(Muslim)이란 낱말은 ꡒ믿는 이ꡓ(信人) 혹은 ꡒ신하(臣下)ꡓ(=Subject)를 뜻하는데 ꡒ이슬람 신앙을 정식으로 신봉하는 사람ꡓ(Who officially adheres to the faith of Islam)을 가리킨다.
이슬람교에서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ꡒ첫 모슬렘(The Fifst Moslem)ꡓ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아랍인들(Arabs)이 그의 조상과 그의 유일신교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는데 마호메트가 그들 조상의 신앙을 깨우쳐 주고 바로잡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바른 신앙을 믿는 이들을 마호메트는 ꡒ모슬렘ꡓ이라고 불렀다.
ꡒ아브라함은 유다인도 아니었고 기독교인도 아니었노롸. 그러나 그는 항상 하느님께 가까이하였고 하느님께 복종하였노라ꡓ(코란 3, 68).
4) 회교
서기 8-12세기에 몽고와 중국 신강성(新疆省)에 살던 터키계의 부족을 회흘(回訖, Wigur)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전한 종교라고 해서 중국어로 회교(回敎)라고 표기하였는데 중국식으로 ꡒ후이후이(Hui-Hui, 回回)ꡓ라고 발음하였다. 몽고 출신의 원(元)나라 (A.D. 1260-1308)의 영향으로 대식교(大食敎)라는 이름에서 회교 혹 회회교로 바뀌게 되었다.
5) 아랍인
Arab이란 낱말은 본시 유목민(遊牧民, nomad)이란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랍인이란 아바리아 말을 하고 아라비아 문화권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서방 학자들은 아랍인과 이슬람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데 그것은 이슬람 종교가 아라비아에서 시작되었고 또 마호메트가 아랍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도 이슬람을 믿는 큰 나라지만 그들은 아랍어가 아닌 다른 말을 사용하고 또 그들의 민족 문화도 따로 갖고 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1억6천만의 이슬람 종교의 나라지만 아랍인은 아니다. 현재 아랍인의 90퍼센트가 모슬렘이지만 그 숫자는 전체 모슬렘 인구의 20퍼센트밖에 안 되고 남은 80퍼센트는 비아랍인의 모슬렘으로 구성되어 있는 실정이다.
제2절 아브라함은 세 종교의 공통 조상
1. 아브라함의 이주 여행
서력 기원전 19세기에 종교의 역사는 바른 영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아브라함(Abraham, 아랍어로는 Ibrahim)이 그의 아버지 테라(Terah)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상들이 믿고 있던 가신(家神, househole gods: 터주신, 地神)을 저버리고 새로운 유일신(唯一神)의 종교로 전향하였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그 당시의 종교 사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ꡒ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ꡓ(창세 12, 1-2).
코란에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를 아자르(Azar)라고 부르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그의 부친의 우상 숭배에 항의하고 또 우상을 모조리 때려부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ꡒ아브라함이 그의 부친 아자르에게 ‘아버지께서는 우상을 신으로 삼으시나이까? 실로 제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람들이 분명히 잘못하고 있음을 아나이다’ 하고 말하였다ꡓ(코란 6, 75).
ꡒ그는 우상들을 우두머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산산조각으로 부수었으니… 저들이 말하기를 ‘누가 우리 신들에게 이 짓을 하였는가? 실로 그는 악행자이니라.’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한 청년이 신들에게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나이다. 그는 아브라함이라고 하나이다’ꡓ(코란 21, 59-61).
창세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칼데아(Chaldea) 지방의 우르(Ur)에서 가족을 데리고 떠나 서북 지방의 하란(Haran)으로 이주(移住)했다가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Canaan)과 이집트로 옮겨 살다가 다시 약속된 땅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정착하였다(창세 12, 1-20).
ꡒ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를 데리고 칼데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다 자리 잡고 살았다ꡓ(창세 11, 31-32).
그런데 이슬람 교도들은 아브라함이 위의 이주 여행에서 아라비아의 메카(Mecca)를 거쳐 갔다고 믿고 있다. 창세기 21장 20절에 나오는 바란(Paran) 사막이 메카 부근이라고 주장하고 아브라함도 이스마엘과 같이 그곳에 살았고 알라신(神)의 신전(神殿) 카바(Kaaba)도 그들이 처음 세웠다고 주장한다.
ꡒ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신전의 기석을 올려, ‘주여! 저희로부터 이것을 받아 주옵소서. 당신은 모든 것을 듣고 계시옵고 전지하시나이다’라고 기도했던 때를 기억하라ꡓ(코란 2, 128).
아브라함의 이주 여행은 종교의 혁신(innovation of religion)을 가져왔고 또 여러 지방의 순례(geographical pilgrimage)로 많은 민족의 집결을 촉진시켰다.
2.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하느님이 재삼 가르쳐 주신 유일신교의 첫 신자였던 아브라함의 역사는 세 종교(유다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 다 같이 수용하고 또 그를 위대한 ‘믿음의 아버지(Father of the Faithful)’로 모시며 자랑하고 있다.
1) 구약 성서
아브라함을 ‘만민의 아버지’로 또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구원하실 왕손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
ꡒ나는 전능하신 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 없이 살아라. 나는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을 세워 네 후손을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너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왕손도 너에게서 나오게 하리라…ꡓ(창세 17, 1-6).
ꡒ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생각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굽어살펴 주셨다ꡓ(출애 2, 24-25).
2) 신약 성서
아브라함을 구세주 예수의 선조(先祖)요. 또한 ‘하느님의 친구’요 ‘믿음의 사람’이라 부르고 있다.
ꡒ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ꡓ(마태 1, 1).
ꡒ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ꡓ(갈라 3, 6-7).
ꡒ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ꡓ(로마 4, 16).
ꡒ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ꡓ(야고 2, 23).
3) 코란
코란은 아브라함을 ‘민족의 지도자’, ‘예언자’, ‘첫 모슬렘’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ꡒ성전에 언급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말하라. 그는 진실한 사람이고 예언자였느니라ꡓ(코란 19, 42).
ꡒ주님께서 아브라함이 이행한 계율로써 아브라함을 시험했던 때를 기억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너로 하여금 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겠노라’ꡓ(코란 2, 125).
ꡒ저희는 아버지의 조상이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그리고 이사악의 하느님이시며 아버지의 하느님이신 유일하신 그분을 경배하렵니다ꡓ(코란 2, 134).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보다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에 대한 교리를 더 강조하여 코란에 무려 25장(surah)이나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랍 민족이 아브라함과의 인연을 잊어버리거나 혹은 잘못 알아듣고 있었기 때문에 마호메트가 옛 본연의 위치로 복귀시키기 위함이었다.
3. 아브라함의 두 아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이사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이스마엘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두 민족의 조상은 같은 아버지를 가진 형제였으나 처음부터 불화와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 구약의 창세기와 코란은 대체로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민족의 우위성(優位性, priority)을 주장하는데는 서로 상반된다.
1) 사라와 이사악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가 되었고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도 90세가 되었는데 아직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하느님이 ꡒ네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이사악이라고 하여라ꡓ(창세 17, 19)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1년 후에 이사악이 태어났다. ꡒ사라가 임신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때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ꡓ(창세 21, 2).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해 보시려고 이사악을 당신이 일러 주는 산에 올라가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였다(창세 22, 1-14).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대로 실천하려고 모든 준비를 갖추었으나 천사의 만류로 이사악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 후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 때문에 더욱 많은 은혜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
ꡒ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마저 서슴지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으니… 나는 너에게 더욱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ꡓ(창세 22, 16-17).
2) 하갈과 이스마엘
사라가 늙도록 아기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자진해서 그의 몸종이었던 이집트 출신의 하갈을 소실로 맞아들일 것을 아브라함에게 건의하였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건의를 받아들였다(창세 16, 1-3). 막상 하갈이 임신하게 되자 사라는 하녀를 시기하여 박대하기 시작하였다. 하갈은 사라의 학대에 못 이겨 집을 나와 도망쳤다. 하느님의 천사를 중도에 만났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그녀와 그녀의 아이의 앞날을 예언해 주었다.
ꡒ야훼의 천사는 주인 곁으로 돌아가 고생을 참고 견디라면서 이렇게 일러 주는 것이었다. ‘내가 네 자손을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야훼의 천사는 다시 ‘너는 아들을 배었으니 낳거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ꡓ(창세 16, 9-11).
그러나 사라와 하갈의 사이가 더욱 나빠져 사라의 요구에 따라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냈다.
ꡒ아브라함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스마엘도 자기 혈육이었기 때문이다ꡓ(창세 21, 11).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식 얼마와 물 한 부대를 하갈에게 매어 주며 아이를 데리고 나가게 하였다. 하갈은 길을 떠나 얼마쯤 가다가 브엘세바 빈 들을 헤매게 되었다.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목이 말라 거의 죽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샘을 발견하게 해주셨다. 이스마엘은 바란 사막에서 살며 사냥꾼이 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며느릿감을 이집트 땅에서 골라 왔다(창세 21, 14-21).
3) 이스라엘과 아랍의 갈등
이슬람 교도들은 위의 창세기의 사실에 대해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즉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바친 번제물은 이사악이 아니고 이스마엘이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이름을 바꾸어 넣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록 이스마엘이 여종인 하갈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법적으로 아브라함의 맏아들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본시 이슬람법에 의하면 종과 자유인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장자권은 먼저 세상에 태어난 이스마엘에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 바친 제물도 이사악이 아니고 장자인 이스마엘이었다는 것이다. 이집트 출신의 이슬람 신학자 하마다 압달라티(Hammadah Abdalati)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제1절 이슬람과 모술렘의 낱말
1) 마호메트
마호메트(Mahomet) 혹 무하마드(Muhammae, A.D. 571-632)가 이슬람의 종교를 세웠다고 해서 서구인들이 마호메트교(Mahometanism)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잘못된 호칭이라고 이슬람 교도들은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크리스찬들이 그리스도를 숭배(崇拜: 神格化)하고 있는 데 반하여 이스람 교도들은 마호메트를 예언자(Prophet), 사자(使者: Messenger), 사도(使徒: Apostle)로 부를 뿐 마호메트를 믿는 것이 아니고 알라신(Allah神)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호메트가 이슬람 종교를 창설했기 때문에 알라신과 코란 경전 다음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는 신(神)이 아니며 또 신의 화신(化神: Incarnation of God)도 아니기 때문에 숭배(worship)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2) 이슬람
이슬람(al-Islam=the Islam)의 낱말은 어원(語源)적으로는 아랍어의 Salam(평화)에서 나왔으나 Islam이란 순종(順從, submission)을 뜻한다. 따라서 이슬람교란 ꡒ다만 하나이신 알라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종교ꡓ혹은 ꡒ알라신에게 순종하여 평화를 얻는 종교ꡓ를 뜻한다.
마치 구약 성서의 모세가 히브리인에게 하느님의 계시를 전달하고 또 예수가 전 인류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과 같이 마호메트가 알라신의 메시지를 아랍인들에게 전달하여 그를 신봉(信奉)케 한 것이다. 코란(Koran, Quran)에는 이슬람의 종교를 알라신이 선택하여 완성시켰다고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ꡒ오늘 내가 너희를 위해 너희의 종교를 완전케 하고 너희에 대한 나의 은혜를 완전케 하고 너희를 위해 이슬람을 너희의 종교로 선택하였노라ꡓ(코란 5, 4).
3) 모슬렘
모슬렘(Moslem) 혹은 무슬림(Muslim)이란 낱말은 ꡒ믿는 이ꡓ(信人) 혹은 ꡒ신하(臣下)ꡓ(=Subject)를 뜻하는데 ꡒ이슬람 신앙을 정식으로 신봉하는 사람ꡓ(Who officially adheres to the faith of Islam)을 가리킨다.
이슬람교에서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ꡒ첫 모슬렘(The Fifst Moslem)ꡓ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아랍인들(Arabs)이 그의 조상과 그의 유일신교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는데 마호메트가 그들 조상의 신앙을 깨우쳐 주고 바로잡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바른 신앙을 믿는 이들을 마호메트는 ꡒ모슬렘ꡓ이라고 불렀다.
ꡒ아브라함은 유다인도 아니었고 기독교인도 아니었노롸. 그러나 그는 항상 하느님께 가까이하였고 하느님께 복종하였노라ꡓ(코란 3, 68).
4) 회교
서기 8-12세기에 몽고와 중국 신강성(新疆省)에 살던 터키계의 부족을 회흘(回訖, Wigur)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전한 종교라고 해서 중국어로 회교(回敎)라고 표기하였는데 중국식으로 ꡒ후이후이(Hui-Hui, 回回)ꡓ라고 발음하였다. 몽고 출신의 원(元)나라 (A.D. 1260-1308)의 영향으로 대식교(大食敎)라는 이름에서 회교 혹 회회교로 바뀌게 되었다.
5) 아랍인
Arab이란 낱말은 본시 유목민(遊牧民, nomad)이란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랍인이란 아바리아 말을 하고 아라비아 문화권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서방 학자들은 아랍인과 이슬람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데 그것은 이슬람 종교가 아라비아에서 시작되었고 또 마호메트가 아랍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도 이슬람을 믿는 큰 나라지만 그들은 아랍어가 아닌 다른 말을 사용하고 또 그들의 민족 문화도 따로 갖고 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1억6천만의 이슬람 종교의 나라지만 아랍인은 아니다. 현재 아랍인의 90퍼센트가 모슬렘이지만 그 숫자는 전체 모슬렘 인구의 20퍼센트밖에 안 되고 남은 80퍼센트는 비아랍인의 모슬렘으로 구성되어 있는 실정이다.
제2절 아브라함은 세 종교의 공통 조상
1. 아브라함의 이주 여행
서력 기원전 19세기에 종교의 역사는 바른 영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아브라함(Abraham, 아랍어로는 Ibrahim)이 그의 아버지 테라(Terah)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상들이 믿고 있던 가신(家神, househole gods: 터주신, 地神)을 저버리고 새로운 유일신(唯一神)의 종교로 전향하였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그 당시의 종교 사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ꡒ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ꡓ(창세 12, 1-2).
코란에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를 아자르(Azar)라고 부르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그의 부친의 우상 숭배에 항의하고 또 우상을 모조리 때려부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ꡒ아브라함이 그의 부친 아자르에게 ‘아버지께서는 우상을 신으로 삼으시나이까? 실로 제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람들이 분명히 잘못하고 있음을 아나이다’ 하고 말하였다ꡓ(코란 6, 75).
ꡒ그는 우상들을 우두머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산산조각으로 부수었으니… 저들이 말하기를 ‘누가 우리 신들에게 이 짓을 하였는가? 실로 그는 악행자이니라.’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한 청년이 신들에게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나이다. 그는 아브라함이라고 하나이다’ꡓ(코란 21, 59-61).
창세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칼데아(Chaldea) 지방의 우르(Ur)에서 가족을 데리고 떠나 서북 지방의 하란(Haran)으로 이주(移住)했다가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Canaan)과 이집트로 옮겨 살다가 다시 약속된 땅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정착하였다(창세 12, 1-20).
ꡒ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를 데리고 칼데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다 자리 잡고 살았다ꡓ(창세 11, 31-32).
그런데 이슬람 교도들은 아브라함이 위의 이주 여행에서 아라비아의 메카(Mecca)를 거쳐 갔다고 믿고 있다. 창세기 21장 20절에 나오는 바란(Paran) 사막이 메카 부근이라고 주장하고 아브라함도 이스마엘과 같이 그곳에 살았고 알라신(神)의 신전(神殿) 카바(Kaaba)도 그들이 처음 세웠다고 주장한다.
ꡒ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신전의 기석을 올려, ‘주여! 저희로부터 이것을 받아 주옵소서. 당신은 모든 것을 듣고 계시옵고 전지하시나이다’라고 기도했던 때를 기억하라ꡓ(코란 2, 128).
아브라함의 이주 여행은 종교의 혁신(innovation of religion)을 가져왔고 또 여러 지방의 순례(geographical pilgrimage)로 많은 민족의 집결을 촉진시켰다.
2.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하느님이 재삼 가르쳐 주신 유일신교의 첫 신자였던 아브라함의 역사는 세 종교(유다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 다 같이 수용하고 또 그를 위대한 ‘믿음의 아버지(Father of the Faithful)’로 모시며 자랑하고 있다.
1) 구약 성서
아브라함을 ‘만민의 아버지’로 또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구원하실 왕손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
ꡒ나는 전능하신 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 없이 살아라. 나는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을 세워 네 후손을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너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왕손도 너에게서 나오게 하리라…ꡓ(창세 17, 1-6).
ꡒ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생각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굽어살펴 주셨다ꡓ(출애 2, 24-25).
2) 신약 성서
아브라함을 구세주 예수의 선조(先祖)요. 또한 ‘하느님의 친구’요 ‘믿음의 사람’이라 부르고 있다.
ꡒ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ꡓ(마태 1, 1).
ꡒ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ꡓ(갈라 3, 6-7).
ꡒ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ꡓ(로마 4, 16).
ꡒ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ꡓ(야고 2, 23).
3) 코란
코란은 아브라함을 ‘민족의 지도자’, ‘예언자’, ‘첫 모슬렘’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ꡒ성전에 언급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말하라. 그는 진실한 사람이고 예언자였느니라ꡓ(코란 19, 42).
ꡒ주님께서 아브라함이 이행한 계율로써 아브라함을 시험했던 때를 기억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너로 하여금 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겠노라’ꡓ(코란 2, 125).
ꡒ저희는 아버지의 조상이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그리고 이사악의 하느님이시며 아버지의 하느님이신 유일하신 그분을 경배하렵니다ꡓ(코란 2, 134).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보다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에 대한 교리를 더 강조하여 코란에 무려 25장(surah)이나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랍 민족이 아브라함과의 인연을 잊어버리거나 혹은 잘못 알아듣고 있었기 때문에 마호메트가 옛 본연의 위치로 복귀시키기 위함이었다.
3. 아브라함의 두 아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이사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이스마엘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두 민족의 조상은 같은 아버지를 가진 형제였으나 처음부터 불화와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 구약의 창세기와 코란은 대체로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민족의 우위성(優位性, priority)을 주장하는데는 서로 상반된다.
1) 사라와 이사악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가 되었고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도 90세가 되었는데 아직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하느님이 ꡒ네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이사악이라고 하여라ꡓ(창세 17, 19)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1년 후에 이사악이 태어났다. ꡒ사라가 임신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때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ꡓ(창세 21, 2).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해 보시려고 이사악을 당신이 일러 주는 산에 올라가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였다(창세 22, 1-14).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대로 실천하려고 모든 준비를 갖추었으나 천사의 만류로 이사악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 후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 때문에 더욱 많은 은혜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
ꡒ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마저 서슴지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으니… 나는 너에게 더욱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ꡓ(창세 22, 16-17).
2) 하갈과 이스마엘
사라가 늙도록 아기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자진해서 그의 몸종이었던 이집트 출신의 하갈을 소실로 맞아들일 것을 아브라함에게 건의하였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건의를 받아들였다(창세 16, 1-3). 막상 하갈이 임신하게 되자 사라는 하녀를 시기하여 박대하기 시작하였다. 하갈은 사라의 학대에 못 이겨 집을 나와 도망쳤다. 하느님의 천사를 중도에 만났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그녀와 그녀의 아이의 앞날을 예언해 주었다.
ꡒ야훼의 천사는 주인 곁으로 돌아가 고생을 참고 견디라면서 이렇게 일러 주는 것이었다. ‘내가 네 자손을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야훼의 천사는 다시 ‘너는 아들을 배었으니 낳거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ꡓ(창세 16, 9-11).
그러나 사라와 하갈의 사이가 더욱 나빠져 사라의 요구에 따라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냈다.
ꡒ아브라함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스마엘도 자기 혈육이었기 때문이다ꡓ(창세 21, 11).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식 얼마와 물 한 부대를 하갈에게 매어 주며 아이를 데리고 나가게 하였다. 하갈은 길을 떠나 얼마쯤 가다가 브엘세바 빈 들을 헤매게 되었다.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목이 말라 거의 죽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샘을 발견하게 해주셨다. 이스마엘은 바란 사막에서 살며 사냥꾼이 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며느릿감을 이집트 땅에서 골라 왔다(창세 21, 14-21).
3) 이스라엘과 아랍의 갈등
이슬람 교도들은 위의 창세기의 사실에 대해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즉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바친 번제물은 이사악이 아니고 이스마엘이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이름을 바꾸어 넣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록 이스마엘이 여종인 하갈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법적으로 아브라함의 맏아들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본시 이슬람법에 의하면 종과 자유인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장자권은 먼저 세상에 태어난 이스마엘에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 바친 제물도 이사악이 아니고 장자인 이스마엘이었다는 것이다. 이집트 출신의 이슬람 신학자 하마다 압달라티(Hammadah Abdalati)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